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1009

1009화 네 번째 주빈 (2)

응당 지식인이라면 새로운 미지를 밝혀내는 것에 성심을 다해야 한다. 아르카디옴은 그런 장소다. 어떤 지식인이든 각오만 되어 있다면 원하는 지식을 손에 넣을 기회가 주어진다.

하지만 지식인은 무모함과 거리가 멀다.

실낱같은 가능성이 있는 도전에 몸을 던질지언정 스스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에는 철저하게 경계를 긋고 탐욕을 추스르기에.

이야말로 지성체와 지식인의 차이.

‘세 번째 주빈이 정면 대결을 피했다.’

호스트가 선정한 주빈은 어째서 아르카디옴에서 경원시되는가.
차원이 다른 지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첫 번째 주빈과 두 번째 주빈이 참석했던 시대에 활동했던 귀빈은 이제 두 명밖에 남지 않아 신화처럼 전해지지만…….
세 번째 주빈이 얼마나 대단한 지식인인지는 두 눈으로 보았다. 그에게 도전했다 지식을 전부 빼앗겨 망령이 된 귀빈만 10명이다.

별개로 세 번째 주빈의 식사 시간은 매우 짧았고, 그의 식사는 밀실에서 이루어졌기에 해당 장면을 본 지식인은 아무도 없었다.

존귀한 미식가.

세 번째 주빈을 칭하는 이명이다. 그런 지식인이 물러섰으니 그보다 못한 이들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는 정해진 셈이었다.

우르르르르르.

집사들을 제외한 참석자들이 다급하게 세 번째 주빈을 뒤따랐다. 자존감 높은 상류 귀빈들도 조용히 그 행렬에 끼어들었다.
그렇게 북적거리던 만찬회장이 눈 깜짝할 사이에 공허해질 때쯤이었다.

따각.

귓가를 자극하는 예리한 구두 굽 소리.

[크흐흐흐흐흣, 과연, 과연. 마기온이 꼬리를 말 정도라는 건가.]

붉은 드레스의 여인이 매혹적인 콧소리를 내며 다가온다.

베르덴의 시선이 점점 더 높아졌다.

‘……어마어마한 장신이군.’

마울러보다도 신장이 크다.

베르덴의 눈높이가 붉은 여인의 명치에 가 있을 정도였는데, 신체 비율은 여자로서 완벽에 가까우니 오히려 괴리감이 심했다.

[종으로서 우월하구나. 하긴 그 정도가 아니라면 ‘당신’의 꿈꿔 왔던 운명의 수레바퀴를 파괴할 생각도 못했겠지만.]

여인이 아무렇지 않게 ‘당신’을 언급하며 가면 쓴 얼굴을 가까이 했다.
느슨한 드레스.
인간 따위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몸매가 무겁게 흔들렸다.

알파와 베타는 인형처럼 멀뚱멀뚱 여인을 올려다보았고, 무표정한 테아렐은 정신적으로 다소 충격을 받은 듯 멈칫했다.

베르덴이 물었다.

“첫 번째 귀빈인가?”

[아르카디옴에서는 블러디아, 라는 가명을 쓰고 있다. 이쪽 문어 대가리 때문에 짜증이 났는데 덕분에 기분이 나아졌어.]

문어 대가리?

아무런 거리낌 없이 호스트에게 멸칭을 쓰는 걸 보니 보통 신분은 아닐 터.
호스트와 동급인 존재는 몇 없다.

“……사도.”

[글쎄, 어떨까. 여기서 아무런 대가 없이 지식을 나누는 행위는 피해야 하지. 그냥 모조리 죽여 버리고 멋대로 하고 싶지만 영역은 존중해야 하는 법이니 말이야. 그래도 한낱 지식 대결이라니. 아, 이래서 오기 싫었는데.]

{도전하지 않을 거라면 넘어가라.}

[크흐흐흐하핫.]

블러디아가 붉은 가면을 살짝 들었다. 날카롭게 솟아오른 송곳니가 폭력적인 웃음과 함께 베르덴의 시야에 드리웠다.
그녀는 베르덴을 제외한 존재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마지막 게임에서 기다리지.]

문이 닫혔다.

블러디아가 이동하고 저택의 집사들도 어딘가로 사라졌다. 이제 베르덴 일행과 호스트만 만찬회장에 남았다.

[블러디아. 위험.]

[매우 폭력적입니다.]

블러디아가 별다른 위압감을 표하지 않았는데도 알파와 베타가 극도의 경계심을 보였다. 그녀의 존재 자체에 서린 잔혹성을 느낀 것이다.

‘설마 또 하나의 운명의 사도를 맞닥뜨리게 될 줄이야…….’

사막에서 만인에게 숭배받는 자 → 사막의 신.
시체의 산 위에 앉은 군주 → 옛 왕.
거대한 인간들 → 거인족.
빛을 중심으로 집결한 인류 → 첫 번째 사도.
하늘을 향해 스스로 무릎 꿇고 왕관을 바치는 초라한 왕 → 인간계 최초의 왕.
물결치는 바다 → 호스트.

베르덴은 여태껏 몰가른의 미래 벽화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내려 했다. 아직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사도가 있었지만 그것이 어떤 존재인지는 대충 간파했다.

단 하나를 제외하고 말이다.

‘대지를 향해 숨결을 토해 내는 드래곤들.’

……블러디아가 만약 운명의 사도라면 드래곤이 틀림없다.

* * *

드래곤의 생태에 대해서는 베르덴도 달리 아는 바가 없다.
최초의 마탑에 드래곤에 관한 여러 서적이 있긴 했지만 거시적인 설명이 대부분일 뿐 심도 있다고 볼 만한 정보는 딱히 없었다.

‘사도의 칭호를 부여받을 정도라면 정점에 오른 드래곤일 가능성이 높다.’

적룡, 거룡, 청룡, 격룡.

4대 고룡.

청룡은 언데드가 되어 사룡이 되었고, 현재는 옛 왕의 세력에 속해 있다. 게다가 청룡은 저항자의 편에 선 잿빛의 용과 깊은 친분이 있어 보였다.

‘청룡을 후보에서 제외하면 청룡을 죽인 적룡이 사도일까? 붉은색. 애초에 블러디아가 두른 색깔과 동일하기도 한데.’

물론 예단은 금물이다.

블러디아가 일부러 정보를 교란해 베르덴을 속일 가능성을 배제해선 안 된다. 거룡이나 격룡이 운명의 사도일수도 있다.

최악으로는 남은 4대 고룡 전부일 수도 있고.

어쩌면 다른 드래곤일 수도 있다.

세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태초의 드래곤이 실존하니, 4대 고룡에 비견되는 드래곤이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째서 다른 사도가 아르카디옴에 참석한 거지?’

베르덴은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가장 큰 의문에 직면했다.
왜 이곳에 사도가 둘이나 있는가.

{진실은 언제나 간단하면서도 복잡하지.}

호스트가 직접 문고리를 당겼다.

{열아홉 번째 귀빈 ‘테린’은 도전하겠나? 아니면 본 무대로 넘어가겠나?}

테린은 테아렐의 가명이었다.
어릴 적 별명이었다고.

아르카디옴의 게임은 개인전이다. 파티 따위는 없다. 일행이라고 해도 베르덴과 테아렐은 각각의 참가자로 움직여야 한다.

“운명, 운명 파괴자, 사도, 외적.”

심해의 옷자락이 나풀거린다.

“애셔, 네가 어떤 비밀을 쫓고 있든, 그리고 어떤 비밀을 감추고 있든 간에 상관없어. 내 이상에 조금 더 가까워질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아.”

테아렐은 여러 생소한 단어를 접했음에도 뜻을 묻지 않았다. 초월자로서 어디까지나 이상에 집중할 뿐이었다.

베르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에서 패배하면 지식을 내놓아야 한다는 걸 명심해라.”
“네가 나보다 명석하다는 건 인정해.”

그녀가 베르덴을 돌아봤다.

“하지만 나도 기본은 하거든.”

마법계 초월자는 재능만 충만하다고 해서 도달할 수 없다. 그에 걸맞은 노력이 필요하다. 수십 년 동안 모험가 생활을 해 온 테아렐 또한 자기 나름의 지식을 갖추고 있다.

[승리. 기원.]

“응.”

알파의 응원을 받으며 테아렐이 나무문 너머로 이동했다. 남은 이들을 둘러싼 저택이 텅 빈 것처럼 확 쓸쓸해졌다.

{더 이상 도전자가 없는 관계로 게임의 개막식은 이걸로 마치겠다. 이로써 네 번째 주빈은 성공적으로 개막을 마친 보상으로 첫 번째 게임을 관전하고 바로 두 번째 게임에 참가할 권한을 얻는다.]

“게임을 안 하는 게 보상인가?”

{이번 첫 번째 게임은 솎아 내기기에 개인끼리의 무차별적인 게임이 펼쳐질 예정이다. 그동안 휴식을 취한 다음 만전의 상태로 다소 지친, 하나 급이 높은 지식인을 상대하는 것이지. 지성을 온전히 발휘하는 행위는 몸을 극한으로 움직이는 것 이상으로 체력을 소모하니.}

호스트가 입맛을 다셨다.

{이 주제에서 특히 너는 해당되지 않겠지만.}

[아쉬워하는 기색으로 보입니다.]

{예정된 결말에 흥미는 없다.}

호스트는 이보다 흥미진진하고 접전에 가까운 게임의 전개를 기대했다. 말인즉슨 첫 번째 게임의 주제가 베르덴에게 유리한 마법적 이해력 문제라는 게 별로 마음에 안 들었다.

[고약한 문어 대가리.]

{전부터 좋지 않는 말부터 배우는군. 올다르크의 피조물.}

알파가 호스트와 눈싸움을 벌이는 사이 베르덴이 생각을 정리했다. 열 번째 귀빈을 통해 얻은 질문권을 어떻게 쓸지 결정한 것이다.

“여기서 하급 질문권을 사용하겠다.”

{하급에 걸맞지 않은 질문이면 어떠한 답도 하지 않을 것이니 신중하도록.}

“아르카디옴과 대륙 사이의 시간 배율이 어떻게 되지?”

히아레마르 내해의 섬에서 첫 번째 사도의 공간에 들어섰을 때.
태초의 드래곤이 갇힌 패잔병의 감옥으로 이동했을 때.
내면 세계와 세계의 틈새에 머물렀을 때.

시간은 절대적이나, 베르덴이 인지한 각 시간의 흐름은 상대적으로 달랐다. 언제는 빠르게 지나갔고, 언제는 느리게 흘러갔다.

전쟁이 코앞이다.

옛 왕의 부활을 저지하려다가 첫 번째 사도에게 발목을 잡혀 버린 순간처럼 타인의 공간에서는 시간에 주의해야 한다.
이 시점에 헛되이 시간을 흘려보내면 놓치는 게 한둘이 아닐 테니까.

{경험은 훌륭하고도 중요한 지식이지.}

호스트가 흡족한 듯 대답했다.

{정확히 3.76 : 1. 즉, 이번 아르카디옴의 1초는 대륙의 3.76초와 같다.}

저번에 방문했을 때와는 다르게 시간의 배율에 차이가 발생했다. 베르덴이 침묵했다. 몰랐으면 큰 낭패를 볼 뻔했다.

{알았으니 다행이지.}

적어도 지금의 호스트는 ‘당신’도, 저항자의 편도 아니었다.
베르덴의 관점에선 그렇게 보였다.
호스트는 베르덴의 편도 아니었으므로 만찬회에 있는 동안에는 어떤 행동을 취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놈에 대해 신중히 판단해야 했다.

아무튼.

‘생각보다 여유가 없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아주 부족한 건 아니군.’

아르카디옴이 조기에 폐막한다면 예정대로 정상 회의에 참석할 수 있다. 정보. 원하는 걸 다 얻으려면 시간을 최대한 줄일 수밖에.

“아르카디옴에서 알파와 베타는 개별 지식인이 아니라 내게 귀속된다도 했었지. 그러면 각각 게임에 참여할 수 있는 건가? 나를 대행해서?”

{규칙에 대한 질문이니 답해 주지. 그렇다. 대신 알파와 베타가 대결에서 패배하면 그 대가는 온전히 네가 짊어져야 한다.]

“그렇군.”

베르덴이 어깨를 으쓱였다.

“자신은?”

[자신감. 완충.]

[지성을 증명하겠습니다.]

알파와 베타는 기다렸다는 듯 아르카디옴 참가를 선언했다.
패배는 없다는 확신.
그도 그럴 것이 녀석들은 창조주로부터 지성을 일부 물려받았다. 베르덴에 비견될 지성인이 있다면 알파와 베타가 이에 해당했다.

“관전 권한은 사용하지 않겠다. 첫 번째 게임에 참여하지.”

베르덴이 전진했다.

“봐줄 필요는 없으니 닥치는 대로 이기도록.”

귀빈이든 하객이든 무작위로 조우한 지성인들을 모조리 탈락시킨다. 참석자들이 급격하게 줄어들면 남은 게임들의 시간도 극단적으로 단축된다.

[확인.]

[확인했습니다.]

알파, 베타, 마지막으로 베르덴이 차례대로 문을 통과했다. 마법적 이해력 문제를 주제로 한 첫 번째 무대에 각각 떨어졌다.

* * *

쿠웅.

네 번째 주빈마저 넘어가자 굳게 닫힌 문은 곧 사라졌다.

{행운의 알파라. 운명이 없는 세상에서 운이란 대체 무엇일까. 우연인가, 혹은 필연인가. 무엇이든 결국 선택의 인과겠지. 그나저나…….}

호스트가 중얼거리다가 턱 쪽에 달린 촉수들을 꿈틀거렸다.

{슬슬 진정됐겠군.}

문어 머리의 눈매가 휘었다.

* * *

보잘것없었던 시골 검사.
크세리온 제국의 황실 호위 기사단인 크세리온의 영광을 이끄는 단장.
주검의 영광의 첫 번째 하인.

드라벤 르마르크.

‘나는 폐하를 부활시키고…… 베르덴에게 죽임을 당했다.’

드라벤은 일생의 시작과 끝을 되돌아보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몇 번이고 회상을 거듭하니 감정이 점차 진정되었다.

거대한 검붉은 뇌창에 온몸이 파괴당하는 고통이 생생하게 떠오르지만, 드라벤은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오히려 웃었다.

“우리가.”

위대한 주검께서 봉인에서 풀려나셨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초월자가 대륙에 재림했다.

“우리가, 이겼다.”

약 8세기를 바쳐서 목표를 이루었으니 드라벤이 결국 승리했다.
희생할 가치가 있었다.
드라벤이 못다 한 이상은 루네시카와 함께 아칸드 리니게아 타인 크세리온 폐하께서 분명히 이루어 주실 테니까!

웃고, 또 웃었다.

새로운 세상을 직접 볼 수 없는 것이 아쉽긴 하나 그래도 한 명의 초월자로서 납득하고 만족할 수 있는 결말이었다.

{네가 선택한 죽음에 흡족한가 보군.}

드라벤이 휙 고개를 돌렸다.

천장이 보이지 않는 서재.

어느샌가 난롯불 앞에 놓인 고풍스러운 의자에 호스트가 마치 고지식한 상담사처럼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

“호스트.”

만찬회장에서와는 달리 흥분하지 않은 드라벤이 입술을 떼었다. 영혼 상태일 때 아르카디옴 무엇이고 호스트란 명칭에 대해서도 들었지만 그가 알고 싶은 것은 그게 아니었다.

“진짜 정체가 뭐지?”

{나는 아르카디옴의 운영자이자 ‘당신’의 세 번째 사도다.}

“……뭐?”

{이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너의 무지를 의미하지.}

호스트가 앞을 가리켰다.

{앉아라.}

드라벤은 잠깐 망설였지만 곧 호스트의 맞은편에 착석했다. 정보가 필요했다. 왜 죽었어야 할 자신이 이곳에 있는 건지, 그리고 왜 베르덴이 아르카디옴에 있는 건지.

탁.

호스트가 하나의 보드 게임을 테이블에 올렸다. 능숙하게 판을 전개한 그는 서로의 기물을 정리해 게임을 준비했다.

{이건 ‘지적 충돌’이란 보드 게임이다. 체스하고 비슷하나 훨씬 더 난해하지. 규칙이 많지만 너라면 금방 습득할 수 있을 거다.}

“지금 장난하나?”

{아르카디옴에서 지식을 일방적으로 주려면 그에 합당한 이유가 필요하다. 게임은 좋은 근거지. 그러니 집중하는 게 좋다.}

드라벤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난데없이 게임이라니.
눈앞의 문어 대가리의 의도가 무엇인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동기가 부족한가 보군.}

호스트가 의자에 등을 기댔다.

{드라벤 르마르크여, 옛 왕이 네가 그토록 바라던 이상을 이루어 줄 거라고 확신하나?}

드라벤은 흠칫했지만 곧장 대답했다.

“그야 당연히…….”

{가엾군.}

호스트가 단언했다.

{진심으로 그리 생각한다면 너의 이상향은 절대로 완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지. 네가 이상을 바랐다면 옛 왕을 부활시키지 말았어야 했다.}

“……뭐?”

{이유가 궁금한가? 숨겨진 내막이?}

호스트가 보드 게임을 향해 턱짓했다.

{그렇다면 게임에 응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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