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6화 대공세 (2)
펜드렌 호는 대륙에서 두 번째로 거대한 호수답게 깊이 또한 심상치 않았다.
그곳은 하나의 바다였다.
이곳은 감히 대륙에 갇힌 대양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서늘한 수온…….
인적 없는 설산에 파묻혀도 얼지 않고, 잿더미를 사랑하는 불길에도 타지 않으며, 질척거리는 용암의 열압(熱壓)에도 손상되지 않는 몸은 환경의 상태만을 인식했다.
호수 밑바닥에 닿으며 먹먹한 발소리가 흩어졌다.
베르덴은 [아인베르]의 <신비>로 본모습과 거리가 먼 칠흑의 로브로 위장했다.
로브에 새겨진 문양처럼 외형적인 특징은 고대에서 착안한 것이라 어느 모로 봐도 그의 상징적인 잿빛의 로브가 연상되지 않았다.
‘시각적으로는 구분되지 않으나, 가장자리임에도 오염의 농도가 제법 진하다.’
본부로 전달되는 것보다 더 많은 정보량이 감각에 스며든다. 인식 주체가 다르니 현장과 본부의 괴리가 생기기 마련이다.
가면으로 감춰진…… 끝없는 푸른 바다가 담긴 듯한 벽안이 명멸했다.
보통 가장 깊은 지점이 중앙 쪽에 모이게 되는 여느 호수가 그러하듯 중심부로 향할수록 수면 너머의 빛이 닿지 않는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완전한 적진.’
인위적인 물살이 베르덴을 향해 밀려왔다.
‘테아렐의 군단이 애먹을 만하군.’
펜드렌호 사문에 의한 오염은 인간뿐만이 아니라 수중 생물에도 영향을 주었다. 오염된 생명은 다양한 개체로 나누어지거나 합쳐져 생명과 죽음의 경계에 위치한 주민으로 변모했다.
쿠웅───
바닥이 갈라지며 불쑥 튀어나온 무수한 이형체의 팔이 베르덴의 발목을 붙잡았다.
정면에서는 흉측하게 일그러진 혈관으로 이루어진 이형체 무리가 물의 부력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인지 걸음을 옮기며 다가왔다.
부패한 점액질의 보랏빛 슬라임이 놈들 사이사이에 끼어 있었다.
낯선 목소리와 정신파가 동시에 전달됐다.
[함께……녹아내리자…….]
대체 함께 녹아내려서 무엇이 되려는 걸까.
밝혀진 건 없다.
일종의 번식 욕구처럼 동족 수를 늘리려는 본능의 발로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 외에는 생리적인 충동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존속을 도모하는 대신 격렬하게 베르덴에게 저항하기로 했다.
사문을 지키기 위해────
<퇴락의 현체>
베르덴의 몸에 닿은 것들이 썩어 문드러져 처참하게 사그라들었다. 초월 위계의 흑마법이 이형체의 경계를 허물어뜨려 확실한 사멸을 선사했다.
‘진영이란 지배력의 유무. 나아갈 힘이 부족하다면, 적의 말단부터 썩혀 집어삼키면 그만.’
찬란하게 일렁이는 흑마력이 전신의 마력회로를 질주했다.
‘장악한다.’
탄생과 죽음의 개념이 양립하는 것처럼 유기물은 자연적으로 쇠락하는 것이 섭리.
흑마법의 본질.
흑마법은 본디 필연적으로 진행되는 쇠퇴와 쇠퇴의 결말을 연구하는 마법 학문이며, 쇠퇴는 재생과 달리 몰락으로 향하는 개념.
그래서 흑마법사는 상대를 저주하거나 상태를 악화하거나 시체를 다루는 등 세간의 관점에서 부정적인 방향으로 발전을 거듭하는 것처럼 보인다.
고블린을 가까이하면 고블린처럼 행동하게 된다는 옛말처럼 악한 지식을 접하면 악행을 일삼게 된다는 건 상식일지도 모르나, 사실 이는 일차원적인 편견에 불과하다.
부정(不正)이란 무엇인가?
사전적으로는 옳지 못한 것을 의미하나, 그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기는 어렵다. 무엇이 부정한지는 주관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이 세계는 하나일지언정 생명체는 저마다의 세상을 살아가므로.
그렇기에 탐구가 필요한 것이다.
부정을 이해하려 애써야만 그것을 인지하고 거부할 힘을 얻을 수 있는 법이니, 온갖 경험으로 쌓아올려진 인류 역사는 방향성 역시 수단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걸 방증한다.
악을 저주하는 것은 과연 악일까.
<르비다의 독배>
베르덴이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자 핏빛이 뒤섞인 어둠이 흘러내렸다.
액체 간의 확산처럼, 혹은 대기 중에 안개가 깔리는 것처럼 퍼져 나갔다. 이에 휩싸인 이형체들이 천천히 정지하다가 확 온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하, 함께…… 노, 녹아내리, 자, 자…….]
베르덴은 엘리먼 학파의 보헤미른 마탑에 소속되어 있었기에 다양한 원소계 마법론을 깊이 파고들 기회가 있었으나, 흑마법계는 상식적인 지식 외에는 자세하게 접할 계기가 없었다.
솔직히 크게 관심도 없었다.
흑마법사보다 원소 마법사가 베르덴의 성향에 훨씬 더 가까웠으니까. 이제 와서 뒤늦게 흑마법을 익히는 것도 비효율적인 성장이었다.
죽음의 사도의 재림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드라벤 르마르크의 마도 공명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체득하는 일은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성격과는 별개로 베르덴은 흑마법계에 소질이 있는 듯했다.
특히 저주 계열에서.
베르덴은 긴 시간 타인을 죽도록 저주해 본 과거가 있었다. 감정의 팽창과 쇠퇴를 경험했다.
복수, 분노, 살의.
그의 역천은 객관적으로 선(善)이 아니라 악(惡)에 가까운 정념의 산물이었다.
우드드득!
격정의 독배를 들이마신 이형체들이 베르덴에게서 등을 돌렸다. 익사체 같은 그들의 눈동자가 알 수 없이 찬란한 어둠에 물들어 있었고, 섬뜩한 눈빛은 동족을 향해 있었다.
일견 자신을 실험체로 삼은 원수를 노려보는듯한 증오 어린 시선이었다.
베르덴이 저주했다.
“역진(逆進)하라.”
이형체들이 두 진영으로 나뉘어 충돌했다.
* * *
제국령에서 진형을 갖추어 출발한 연합의 함대는 개전하고 약 6일 만에 펜드렌 호수의 사문을 드높은 상공에서 식별하는 데 성공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춘 함대 자체의 진군에는 휴식이 불필요했을뿐더러, 그간 교전이 일절 발생하지 않아 예정보다 훨씬 더 많은 거리를 이동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지만…….
그것은 다른 대륙의 사문과 비교해서 수백 배는 더 거대하기도 했다. 현재 사문의 7할은 호수에 잠겨 있는 상태였다.
실로 경악스러웠다.
정찰을 통해 사문의 형상을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대부분 동요했다.
금방 추스르긴 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커다란 사문 내부에 과연 무엇이 있을지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아 긴장감은 계속 커져만 갔다.
그러나…… 어쨌든 목적지가 가시거리에 들어온 건 사실이다.
델하룬 사문을 제외하고──펜드렌호 토벌군단이 가장 먼저 사문을 없애는 쾌거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게 전의를 다진 채로 사문을 앞에 둔 지 십수 일이 더 지났다.
아직도 그들은 사문에 진입하지 못했다.
투확────────────!
아르나크 제국이 자랑하는 전 세계 유일의 초거대 규모 비행정, 어토리움에서 융단 폭격을 가해 호수를 크게 격동시켰다.
온갖 아티팩트로 완전 무장한 그것의 위력은 가히 도시의 소거가 가능할 정도.
물밑에서 수중 폭발이 발생.
산맥과 같은 물기둥이 치솟았다.
크세리온 제국이 나포한 대륙의 선박들이 아래에서 위로 쪼개지듯 떠올랐다. 적진에서 촉발된 충격이 곧 아군 진영에도 전해졌다.
“기울어진다!”
“큭……!”
갑판의 각도가 높아지며 연합군이 상체를 낮추거나 구조물을 힘껏 붙잡아 무게중심을 유지했다. 호흡을 억누르며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호수로 떨어지면 죽는다.
호수에 닿는 순간 오염은 시작된다!
선체 파편이 호수의 물방울과 섞여 소나기가 되어 쏟아졌으며, 일정 거리 바깥에서 날아오는 투사체에만 반응하는 오스테아 마탑의 마법적 보호막이 이를 전면 차단했다.
마도 <성연(城鏈)>
오스테아 마탑주이자 수호의 현자, 또한 열한 번째 위상인 메드란트 케덴은 재차 허공에 여러 겹의 마력 방패를 띄우며 생각했다.
‘크세리온 제국은 처절할 만큼 집요하다.’
펜드렌호 토벌군은 초월자가 한 명뿐이지만 규모는 타 군단에 못지않다. 종합적으론 가장 균형이 좋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성녀의 원거리 지원을 우선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정상 회의에서 조율한 터라 전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적군 또한 만만치 않았다.
“또 수면 아래에서……!”
“올라옵니다!”
“우측부터 떨어뜨리게!”
못해도 수백만 명의 인간과 셀 수 없이 많은 호수의 생물이 오염돼 탄생한 이형체의 수는 마치 정어리 떼를 떠올리게 했으며…….
심지어 놈들은 아인종과 마수의 급증으로 발생하는 스탬피드 현상과 다르게 무턱대고 정면으로 들이받지 않았다.
선체 하부를 손상시키거나.
선체를 타고 오르거나.
제국은 철저히 잠복과 급습을 반복해 연합 함대의 전진을 늦추었다.
사실 그 정도뿐이라면 늦어도 10일 이내로 돌파할 수 있을 터였지만, 오염된 거대 호수가 전장이란 점이 문제였다.
아무리 강력한 마법 폭격을 가해도 타격할 수 있는 수심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호수에 직접 들어가자니 저항력이 낮은 이들은 오염을 오래 버티지 못하고 괴이한 이형체로 변형되고 만다.
사문에 근접할수록 오염 농도는 진해졌다. 물질에 능한 수인도 이제는 견디기 어려워 갑판에서 어쩌지 못하고 있을 지경이다.
이 호수의 환경을 온전히 견딜 수 있는 존재는 오직 테아렐뿐이었다.
수상(水上)과 수중(水中).
서로의 영역이 달라 제국도 연합에 심대한 피해를 안길 수 없었지만, 마찬가지로 연합도 제국의 저항을 정도 이상으로 무너뜨릴 수 없는 구도.
성녀의 연이은 성창 폭격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사문에 접근하지 못했으리라.
‘크게 어림 잡아, 앞으로 고작 한 걸음.’
그 한 걸음을 위해 여러 방안을 모색했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없었다.
해상 함대의 기동이 어렵다고 해서 비행이 가능한 수인들과 비행정 함대만 보내자니 불안했다.
사문에 맞춰 고도를 낮추면 이형체의 공격 범위에 들어갈뿐더러 사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대대적으로 기습을 받으면 불리해지므로.
사문 내부 정찰은 번번이 실패한 터라 불확실성이 매우 컸다.
정찰이든 뭐든 테아렐 혼자 들어가는 것은 당연히 논외. 군단장이 가장 강하다고 한들 혼자 보냈다가 고립당하면 군단은 동력을 상실하고 만다.
전쟁에서 자만은 죽음으로 직결된다. 초월자 또한 예외는 아닐 것이다. 제국에도 초월자급의 적은 다수 존재한다.
‘반드시 비행정 함대와 해상 함대가 동시에 사문에 진입해야 한다. 그것이 가장 안전하고 사문을 폐쇄할 가능성이 높으니.’
콰가가가가각!
메드란트는 마력 방패로 선체를 위협하는 이형체를 갈아 버리면서 이대로 가면 언제쯤에 사문에 진입할 수 있을지 나름대로 계산했다.
아군의 피로도와 적의 저항이 서서히 약해지는 걸 고려하며.
‘단 한 걸음에 약 6일인가.’
그야말로 무거운 걸음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시간을 좀 더 단축하려면 방법은 당장 세 가지밖에 없다.
테아렐의 초위 마법.
루아스교의 성창.
연합 본부의 지원.
쿠구구구구구구……!
[함께…… 녹아내리자…….]
얼마 전에 해상 함대를 두 척이나 파괴한 이형체의 군집이 솟아올랐다.
거대한 기둥 형상이었다. 혈류가 비치는 투명한 혈관이 배배 꼬여 있었고, 그 위에는 무수한 눈과 입이 박혀 있었다.
이번이 세 번째.
전에 조우한 놈들은 결국에 토벌했으니 그에 대한 대처법을 체득한 상태다. 지체하면 피해가 급증한다는 걸 부하와 동료, 또 상관의 전사로 이해한 지휘관들은 한 몸처럼 반응했다.
일제 폭격.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마법사와 마법적 병기에 의한 원소 마법이 군집을 강타했다. 그리고 어토리움에서 제국 마법성의 로드가 마법을 전개했다.
<마나(Mana)>
메리사 페스필드의 고대 혈통인 엘드리움의 마력 운용법에 의해 자연의 마력이 마나라는 고유한 것으로 변질되었고.
그녀가 10개의 손가락으로 마나에 형태를 부여해 고유의 형식을 구현했다.
위성 추락.
상공에 떠오른 세 개의 원이 어지럽게 회전하다가 일순간 모여들더니 수직으로 같은 선상에 놓여 군집을 겨누었다.
<데워스>
마나로 이루어진 고열의 광선이 이형체의 군집에 내리꽂혔다.
시야가 빛으로 물들었다.
살점이 타는 악취가 일며 군집의 표면이 용암처럼 붉게 달아오른 채로 뭉개졌다.
메리사가 중얼거렸다.
“지금이에요.”
말이 끝나자마자 호수에서 거대한 수압의 칼날이 비스듬히 쇄도했다.
<케르 마비나>
이형체 군집이 절단됐다. 연합의 일점 공격에 몸을 수복할 틈도 없이 핵심이 파괴되어 힘을 잃고 호수로 추락했다.
군집 기둥은 초월자의 고유 마법을 한 번 이상 견딜 수 있는 저항력을 갖고 있기에, 연합은 테아렐이 두 번 손을 쓰지 않도록 최대한 약화시켜 결정타를 가하는 전술을 구사했다.
지금은 최고 전력들이 가급적 힘을 보전할 때.
탁!
한바탕 호수를 누빈 테아렐이 갑판 위에 착지했다. 물론 그녀의 몸을 적신 오염된 물은 선박에 닿기 전에 남김없이 떨쳐 냈다.
토벌군단의 선두를 맡고 있는 모험가 길드의 대형 함선에서 옛 동료들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적발의 유르발이 말했다.
“저 빌어먹을 기둥도 나오자마자 없애버리니 이제 큰 문제가 안 되는구만. 수면 아래는 어떻지? 아직도 많아?”
“아직도 많아.”
“에라이.”
“그래도 이제 하루이틀이면 이 저항선을 돌파할 수 있을 것…….”
투확! 투확! 투확! 투확!
사문까지 이어진 경로 주변에 이형체 군집이 무려 네 개나 수면 위로 올라왔다.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라에틸라 베넷이 입가를 가렸다.
“어머.”
“입이 주책이라니까.”
“군집이 더 숨어 있을 걸 상정하면 못해도 사문에 진입하는 데 6일은 걸릴 것 같습니다.”
수상전에서 적극적으로 힘을 쓰지 못하는 무투계의 전사들이 혀를 찼다.
그때, 테아렐의 통신 장치가 울렸다.
───테아렐 님.
“응.”
───현재 성녀님께서는 과도한 성창 폭격으로 휴식을 취하고 계십니다. 성창 지원 없이 저 군집들을 일거에 처리하려면 상당한 전력이 소모될 텐데 차라리 한발 물러서서 재정비를 한 뒤에 한 번에 밀어 버리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해서…….
메리사의 조언에는 일리가 있었다.
어쭙잖게 공세를 지속했다가는 소모만 발생하리라.
마침 메드란트도 통신을 연결해 왔다.
───연합 본부에서 보낸다는 지원은 언제쯤 오는 거지?
테아렐에게 적잖은 시선이 몰렸다. 연합 본부에서 지원군을 보낸다고 했는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었다. 본부에서는 명확한 답변 없이 기다리라는 답변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글쎄.”
테아렐은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연합 본부에서의 지원은 분명히 베르덴의 명령에서 비롯된 것일 터.
“아.”
“아?”
함께 녹아내리자는 이형체의 시끄러운 절규 속에서 아르카디옴에서 몸소 경험해 봤던 베르덴의 타이밍이 그녀의 감각을 문득 일깨웠다.
“지금?”
“지금??”
모험가들의 고개가 더 기울어졌다.
“뭐가 지금이라는…….”
쿠오오오오오오───!
사문을 중심으로 반경 수십 킬로미터가 갑작스럽게 어둡게 물들었다.
연합군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
“이런 씹빨!!”
“테아렐!”
전 흑해 파티의 리더였던 다엘이 테아렐을 안으며 난간에서 멀어졌다. 직업상 위기 감지에 능한 최고위 모험가들이 죄다 갑판을 굴렀다.
펜드렌 호수에 대규모 저주가 작렬했다.
이형체 군집들이 갈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