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8화 이면 서사 (1)
아드리안을 위시한 토벌군단이 제국의 라크디온과 본격적으로 충돌하기 시작한───테르네티아 연방의 사문이 폐쇄되기 전의 일이었다.
* * *
베르덴이 <신비>와 <베일>로 존재를 은폐한 채로 마렌 왕국을 횡단했다. 그의 로브에는 세 개의 광환(光環)이 떠올라 있었다.
특정 속력을 돌파하면 발현되는 [아인베르]의 고유 기능으로, 광환이 하나 중첩될 때마다 일정 가속도가 더해졌다.
베르덴이 처음으로 [아인베르]를 쟁취했을 때부터 존재했던 성능이었다.
‘이 근처에 도시가 있을 텐데.’
펜드렌호에서의 승리를 확인하고 마렌 왕국 북동쪽 끝자락으로 <전이>한 베르덴은 짧은 시간 동안 상당히 먼 거리를 이동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근방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감지할 수 없었다.
하늘은 한층 더 무채색에 가까워졌다.
마법의 잔향이나 사룡의 자취를 찾기 위해 안력을 높이고 있자, 베르덴이 대륙 지도에서 본 적 있는 도시 ‘드벨트’가 보였다.
성문을 통해 출입할 여유는 없다.
─────────쿵!
그 즉시 급격하게 방향을 뒤틀어 도시 한가운데에 착지했다. 속도를 거의 줄이지 않은 터라 광장에 강한 기류가 뒤늦게 몰아쳤다.
착륙 지점만 제법 갈라졌을 뿐 인간이 다칠 정도의 충격력은 아니었다.
베르덴이 눈을 가늘게 떴다.
‘독.’
드벨트 전체에 안개가 낮게 깔려 있다. 투명했지만 그의 푸른 눈동자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세 입자를 인지했다.
이를 흡입한 신체가 그것이 맹독 중의 맹독이라고 판별했다.
‘이건 자연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수준의 극독이다. 이전의 나였다면 중독됐을 정도로.’
베르덴은 [아인베르]의 <생츄어리> 덕에 모든 독에 면역이다. 하물며 초월자 특유의 저항력과 항상성까지 갖고 있다.
그런 베르덴을 중독시킨 것은 단 한 명뿐이었다.
메마른 태양의 신───이슈르.
운명의 일곱 번째 사도가 가진 권능만이 베르덴의 항독(抗毒)성을 무력화했다. 8위계에 도달하고 신위를 이룬 지금은 물론 통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초월자도 위협하는 독의 안개가 퍼져 있다는 뜻은 도시에 영향을 끼친 원흉이 ‘당신’의 권능과 같은 힘을 갖고 있다는 것.
베르덴이 사룡 네크바엘의 흔적을 발견했다.
‘입자치고는 무거워 어지간한 바람에는 밀려나지 않는다. 성벽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럼 도시 어딘가에서 독이 생성됐다는 건가.’
사룡의 거체가 습격했다면 드벨트는 반파되었어야 정상인데 이상하리만치 멀쩡하다. 게다가 독의 안개에 녹아내린 시민의 흔적도 안 보인다.
드벨트의 거리는 심각하게 깨끗했다.
“…….”
베르덴은 광장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이내 구석으로 시선을 던졌다.
하수도로 이어진 배수구가 보였다.
콰아아아아앙!
<염동력>으로 광장 한 축을 뜯어버린 다음 내부로 진입했다.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그의 벽안이 형형하게 빛났다.
하수 통로는 메말라 있었다.
옅은 악취가 감돌았는데 일반적인 오물의 그것과는 달랐다. 부패한 유기물이 메마른 듯한, 건조하면서도 불쾌한 시취.
<지형 조작>
베르덴이 무한의 마도를 개방하며 열매의 알맹이를 꺼내듯이 하수도를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8위계급의 대지 마법이 작은 도시를 개변시켰다.
쿠구구구구구구……!!!!
마렌 왕국에 일어난 이변 탓에 생명체는 감지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마력을 퍼뜨려 지형의 형태는 파악할 수 있다.
하수도에 누가 숨어 있을 가능성을 고려하여 어떠한 손상 없이 도시를 확장했다.
성벽이 여러 조각으로 분해되며 드벨트의 규모가 넓어지고, 광장도 몇 배로 커지면서 하수도 중심부가 지상 위로 솟구쳤다.
거대한 구조물이 갑자기 만들어진 듯한 광경.
다음으로 그걸 반으로 분리해 하수도 단면이 훤히 보이게 했다.
어둠 속에 꼭꼭 숨어 있던 거대한 이형종이 햇빛을 받더니 꿈틀거렸다.
“정령인가.”
부패의 기운이 삽시간에 확산했다.
‘드벨트에 있는 모든 수분을 흡수했군.’
드벨트의 하수도에 있던 것은 물의 정령이었는데 대수림에서 본 형태와 사뭇 달랐다.
독기를 뿜어댔고, 맑은 강물과 같은 빛무리는 탁한 색으로 물들었다. 본질 자체가 오염돼 본래의 형태를 잃어버린 것이다.
[……!……!!]
타락한 물의 정령이 베르덴을 인식하자마자 아주 강한 살의를 번뜩이며 공격했다. 에스티리아 왕국에서 모험가 파티 만하와 함께 조우한 정령 – 블루가 분노한 반응과 동일했다.
‘정령석이 완전히 오염돼 되살릴 수 없다.’
눈앞까지 들이닥친 썩은 급류를 와해시킨 베르덴의 손에서 불줄기가 일렁였다.
<화연의 역류>
물마저도 불태워 버리는 고화력이 맹독의 기운만을 집어삼켰다. 짙은 독기가 거칠게 폭발했으나 불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순식간에 오염된 정령석이 덩그러니 남아 아래로 떨어졌다.
툭.
정령이 사라지자 드벨트 시민들로 추정되는 잔해가 훤히 드러났다. 대부분은 녹아내린 채로 수분을 전부 빼앗겨 말라 있었는데, 극소수는 생전의 형태가 조금 남은 상태였다.
그중에서 말라비틀어진 팔 하나가 하수도의 벽에 닿아 있었고, 그 위로 피로 급하게 쓰인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비는 부정을 씻어내리고.
바람은 정결을 실어 나를지니.
경배할지어다.
죽음과 구원의 온상을.
“……예언가의 문체.”
베르덴은 여러 예언가를 만났다. 아이샤나 방랑의 무나딤처럼 천재 예지자로 분류되는 선지자들은 그의 권역에 머물고 있기도 했다.
그들의 모호하면서도 미래나 존재를 암시하는 듯한 어법은 익숙했다.
드벨트의 혈서(血書)는 점쟁이 같은 예언가가 죽기 전 깨달음을 얻고 쓴 모양이었다. 그의 유언이 가리킨 것은 옛 왕, 혹은 사룡, 어쩌면 둘 다.
예언가가 운명의 사도와 연관된 내용을 남겼다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모든 예언가는 운명의 수레바퀴가 만들어 낸 가상의 미래에서 비롯된 부산물이니까.
‘확률은 낮지만 없는 것보단 낫겠지.’
후웅.
베르덴은 오염된 정령석을 줍고는 다양한 마법진을 작성했다. 정령석에 깃든 기운을 분리하고 아공간에서 소환한 마석에 결합시켰다.
오염된 마석을 나침반에 넣자 마법적 자침이 빙글 돌기 시작했다.
원본 [블랙 아워의 나침반].
독성이 깃든 마력을 인식한 인공 아티팩트가 그와 같은 반응을 탐지했다.
‘대략 북동쪽인가.’
[블랙 아워의 나침반]은 마력을 증폭시켜 마법사를 찾는 아티팩트이나, 동일한 기운을 품은 존재가 여럿 존재하면 그중 가장 가까운 자를 가리킨다.
당장 북동쪽에 사룡이 있을 수도 있지만 사룡 대신 이 오염된 정령처럼 사룡의 영향을 받은 존재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
자칫 무작정 나아가는 것보다 먼 거리를 돌아가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그냥 차라리 테르네티아 연방의 사문으로 직행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베르덴은 직감이 작용하지 않는 이곳에서는 단서의 자취를 추적하기로 했다. 무릇 마법사라면 판단에 근거가 따라야 하므로.
모든 걸 운에 맡기는 선택은 활용할 수단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뿐이다.
베르덴은 드벨트를 떠났다. 아무도 마주치지 못한 채 마렌 왕국을 가로질렀다. 애석하게도 생존자는 한 명도 찾지 못했다.
언데드가 정처 없이 떠도는 부식된 도시.
드벨트처럼 고요한 도시.
…….
오직 참상만이 반복됐다.
전쟁에서 파생된 무거운 침묵이 베르덴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이 너머를 진정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닥쳐.’
* * *
사룡과의 전투가 시작되고 머지않아서 마렌 왕국 전역이 고요에 휩싸였다.
나라 전체가 죽어 버린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드래곤 로어(Roar).
무형의 충격파가 작렬해 브리칼 산맥을 송두리째 날려 버렸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각!
정통으로 맞은 반토레온이 뇌격을 갈퀴처럼 활용해 바닥을 긁었다. 가까스로 제동을 거는 데 성공한 그의 눈과 코에서 피가 흘렸다.
입에서는 피거품이 일었지만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든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크…… 얼큰하구먼.”
반토레온이 천둥과 같은 함성을 내질렀다. 하늘을 물들인 <뇌경>의 영역이 동조했다. 높이 뻗은 양팔을 강하게 내리쳤다.
<뇌경: 천주(天柱)>
섬광이 터지며 떨어진 전격의 기둥이 네크바엘을 내리눌렀다. 화염계와는 본질이 다른 고온에 암녹색의 비늘이 달아올랐고.
마법의 효력이 끝나자마자 안데스가 돌진하여 목을 물었다.
[─────────!]
다크워튼 마탑에서 다양한 부위의 용골을 재료로 써 구축한, 강화된 유골룡의 힘과 저항력은 살아 있는 성체 드래곤을 방불케 했다.
그리고 마도 <사령>으로 불러낸 원혼계의 언데드 무리가 힘을 더했다.
쿠우우우웅!
짧게 들어 올려진 네크바엘이 짓눌렸다.
[나는 신경 쓰지 말게!]
“당연한 말을!”
반토레온이 빛의 속도로 회전하는 번개의 사슬을 사출했다.
<뇌경: 뇌륜(雷輪)>
벼락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쇄도하며 주변 일대의 전력을 흡수했다. 파지지직! 안데스와 사룡을 강타한 그것이 쳇바퀴처럼 회전을 거듭했다.
막대한 화력에 반경 수백 미터 안쪽의 자연환경이 점차 잿더미가 되었다.
[그깟 뼈에 영혼이 깃들었다고 해서 드래곤이라도 된 것 같으냐.]
[크으으윽……!]
[초월마저 상실한 버러지가.]
네크바엘이 발톱을 뻗어 뇌륜을 파훼하고 안데스의 목뼈를 잡아 올렸다. 안데스를 따르는 언데드들이 거의 사멸했다.
힘을 겨루는 것이 무색하게 안데스가 반토레온이 있는 방향으로 던져졌다.
네크바엘이 포효했다.
하늘을 덮은 뇌운이 일부 뒤바뀌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부패와 오염의 폭우, 아니, 그것은 폭우라고 하기에도 너무도 강렬했다.
셀 수 없이 내리꽂히는 암녹색의 빗방울이 지상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쏴아아아아아──────
안데스는 사령의 장막과 양 날개로, 반토레온은 벼락을 둘러 대항했으나 견딜 수 없다고 판단해 즉각 후퇴했다.
“……큭.”
빗방울에 닿은 부분에 강한 독기가 남아 저항력을 훼손했다.
“청룡이 울부짖으면 비가 내린다고 하더니. 과연 전설대로군. 800년 전에도 녀석이 저런 능력을 쓸 줄 알았다면 우리 중 절반이나 남았을까.”
[저런 드래곤이 셋이나 더 존재한다니.]
“괜히 먼 옛날부터 초월을 타고난 최강의 종족이라 일컬어졌겠나. 4대 고룡은 그런 드래곤의 정점이니 이 정도는 해 주는 게 정상이지. 뭐, 내 예상보다 아주 조금 더 강하긴 하다만…… 결국 청룡도 죽어 사룡으로 다시 태어났으니.”
네크바엘이 그들을 추격했다.
“한 번 죽은 거 두 번은 못 죽으랴.”
고대의 초월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서로 마력을 부딪쳤다.
콰아아앙!
반토레온과 안데스가 제각기 좌측과 우측으로 튕겨 나갔고, 본격적으로 가속한 네크바엘이 그들의 사이를 통과했다.
임무 완료.
네크바엘을 함정으로 끌어들였다.
“마탑들이 준비한 게 뭔지 좀 볼까.”
“유도하느라 고생했네.”
마탑의 아티팩트로 은폐하고 있던 인드렌 피어시아 레이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네크바엘이 지면을 부수며 정지하더니 고개를 돌렸다.
죽음을 형상화한 용안과 관제라고 불리는 초월자의 시선이 교차했다.
[하등 생물이 발악을.]
‘가까이서 보니 헛웃음도 안 나오는군. 단일 개체의 범주에서 이런 강대한 존재감은 처음이다. 혼자서는 목숨이 몇 개라고 해도 부족하겠어.’
준비를 마친 인드렌이 두 손으로 붙잡은 지팡이로 앞을 가리켰다.
“그래, 이를 위한 연합이구나.”
초월자의 마력이 격동해 감춰져 있던 탑의 행렬이 차례대로 드러났다. 왼쪽에 하나, 오른쪽에 하나가 한 세트였다.
그것들이 저마다 수 킬로미터를 사이에 두고 여러 세트가 지면에 박혀 있었으며, 그렇게 일종의 통로를 구성하고 있었다.
질서의 행류(行流).
<네르칼리프(Nerkaliph)>
인드렌이 개척한 고유한 마도 <제유>는 물질계를 통제하는, 만물을 제어하는 길. 사룡을 억제하기에는 경지가 부족하기에, 아티슨 마탑의 전력으로 필요한 기량을 보충했다.
쿵.
네크바엘이 밀리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용력으로도 통제의 압박을 부술 수 없었다. 펠디안느를 필두로 한 아티슨 마탑의 고위 마법사들이 준비한 탑들이 빛나며 인드렌을 보조했다.
쿠구구구구구구구……!!
지팡이가 세차게 떨렸다.
지축이 흔들렸다.
네크바엘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몸체를 낮추고 이내 한 발을 내디뎠다. 고룡이 가진 저항력이 얼마나 격이 다른지 몸소 증명하듯이.
그러나.
실패할 가능성이 있었다면 이런 함정은 계획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티슨 마탑의 번외 장로는 안정을 지향하는 존재이므로.
“──────!”
인드렌의 기합 소리가 천지에 울려 퍼지며 마도의 격류가 굽이쳤다. 네크바엘이 밀리다가 이내 지면에서 멀어지며 마찰력을 크게 상실했다.
탑으로 이루어진 질서가 네크바엘을 정해진 경로로 몰아넣기 시작했다.
* * *
펠디안느 피어시아 레이트가 뒷짐을 진 채 전장이 될 지역을 내려다봤다. 당장 할 일을 마쳤으니 다음을 위해 휴식이 필요했다.
물론 사룡과의 일전에서 그 마법적인 강함은 전혀 통하지 않으니 개입할 여지도 없었다.
“네크바엘이 이쪽으로 오고 있군요. 호호호, 역시 우리 선조님입니다.”
펠디안느가 중성적인 웃음을 흘렸다.
“이제 어떤 변수가 생겨도 계획은 변함없겠지요? 섭리자.”
“변수는 무의미하다.”
데우스와 펠디안느의 대화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네크바엘을 이용해 시타델을 불러낸다.”
베르덴은 단기적인 목표와 장기적인 목표 둘 다를 이루려고 한다. 그래서 희생을 자처하고 있지만 결국 무모할 뿐이다.
완벽에 가까우면서도 불안정한 승리보다는 확실한 과정을 통해 승기를 잡는 것이 합리적이고, 그렇기에 옳은 선택이다.
그렇다.
그들은 베르덴과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최후의 저항자께서 바라시는 대로.”
* * *
같은 시각───거대 도시, 가르간트.
히스릴 델 로하룬은, 과거에 이자벨라의 마부였던 클린턴이 직접 가져다주는 국제 신문을 통해서 전황을 파악했다.
“상당히 선전하잖아. 의외네.”
히스릴이 턱을 괸 채 웃었다.
“결국 진흙탕 싸움이겠지만.”
옛 왕은 물론이거니와 크세리온 제국의 전력도 본 적이 없지만, 히스릴 또한 나름대로 전쟁에 일가견이 있었다.
300년 전에 휴전 직전이던 이종족 전쟁을 다시—그보다 훨씬 더 증오스럽게—재점화해 대륙을 피로 물들인 악명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눈을 감아도 그려진다.
승리로도 덮을 수 없는 시체의 산이.
후룹.
히스릴은 느긋하게 현대 여관방의 창가에 앉은 채 커피를 음미했다. 세계급 전쟁이 한창인데 델하룬의, 피의 여제가 한가로이 있는 것은 어울리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베르덴에게 입은 부상이 나으려면 솔직히 아직도 멀었기에.
‘검 말고 다른 장비도 뛰어났으면 더 제대로 싸워 볼 수 있었을 텐데.’
베르덴을 이긴다는 상상까지 하진 못했다. 애초에 베르덴은 전력을 드러내면서도 또 다른 전력을 숨기고 있었으니까.
“……힘에 의한 자유라니. 역시 터무니없어.”
베르덴이 언급한 이상에 헛웃음을 짓고 아직 읽지 않은 국제 신문을 집었다. 그녀는 은근히 아드리안에 관한 소식을 찾고 있었다.
그때였다.
“…….”
문이 열리는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지만 미세한 기척만은 느껴졌다.
히스릴은 눈치채지 못한 척하다가 이내 벽에 기댄 검을 순식간에 잡아채고는 몸을 낮추며 불청객의 목에 검을 갖다 대었다.
“도둑치고는 실력이 준수하──”
상대를 인식한 히스릴이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멈칫했다. 검 끝이 희미하게 떨렸다. 그녀를 이렇게나 당황하게 만들 수 있는 존재는 전 대륙을, 아니 역사를 통틀어도 몇 없으리라.
“그 얼굴은…… 게다가 이 기운, 그때 [아니무스]를 통해 드라벤과 부활의 거래를 했을 때 느꼈던……? 하, 설마.”
초월자의 직감이 작용했다.
“드라벤이 왜 하필이면 나와 그 늙은이 둘을 거래 대상으로 지정했는지 궁금했는데. 사문 거래는 핑계일 뿐이고, 우리를 부활시키는 게 목적이었어. 드라벤이 아닌 당신이.”
히스릴이 역사 서적으로만 접했던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내 말이 맞아? 초대 마도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