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1129

1129화 이면 서사 (2)

“드라벤이 왜 하필이면 나와 그 늙은이 둘을 거래 대상으로 지정했는지 궁금했는데. 사문 거래는 핑계일 뿐이고, 우리를 부활시키는 게 목적이었어. 드라벤이 아닌 당신이.”

히스릴은 직감으로 간파한 가설을 생각도 거치지 않고 그대로 내뱉었다.

“내 말이 맞아? 초대 마도왕.”

그렇게 물으며 무투계의 육감으로 힘을 가늠하려 했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도리어 실낱같던 기척조차 사라졌다.

‘본체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초월자의 범주를 완전히 탈피한 건가.’

겁에 질린 짐승들이 그러하듯이 사냥당하기 전에 상대를 물어뜯으라고 본능이 짖어 댔다.
식은땀과 긴장감으로 젖어든 그녀의 목울대가 짧게 오르내렸다.

‘이게 전인미답의 9위계.’

머릿속으로 각 방위에서 검격을 휘둘렀지만 다음이 이어지지 않았다. 제압당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생각 자체가 도중에 끊겨 버렸다.

베르덴이 투지와 피를 끓어오르게 한다면…… 초대 마도왕은 머리를 차갑게 식힌다고나 할까.

태어나서 이렇게 싸워 볼 생각도 들지 않는 상대는 처음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녀만큼은 기분이 몹시 더러웠다.

“칫.”

검날을 치우고 대충 의자에 앉았다.
등받이에 팔을 걸쳤다.
여관방 바닥에 검을 꽂은 그녀가 날카로운 눈매를 가늘게 떴다.

“……그러면 당신 나이가 최소 800살 이상이라는 이야긴데. 뭐, 됐어. 몇 살인지 알 게 뭐야. 이렇게 나를 찾아왔으니, 그 수백 년간 준비해 온 뭔지 모를 대계를 밝힐 생각이라고 이해해도 되겠지? 그러려고 나와 그 둘을 부활시킨 걸 테니까.”

히스릴이 정면을 응시했다.

“보다시피 난 들을 준비 됐어. 질문거리도 꽤 많고 말이야. 대답할지 말지는 당신이 알아서 정해. 그런데 그전에 하나만 짚고 넘어갈까?”

그녀가 억지로 이성적인 사고를 몰아내고는 본성을 끌어냈다.
혈류가 가속하며 피부가 옅게 붉어졌다.

“초월자가 어떤 족속인지 당신도 잘 알잖아? 남이 왈가왈부하면 그 입부터 뜯어 버리고 싶은 거. 부활은 고마운데, 누굴 멋대로 이용하려고 들어? 차라리 그냥 죽어 버리고 말지.”

분위기가 삽시간에 흉흉해졌지만 제왕의 분노는 곧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나는 관대한 편이니까 약속 하나만 해 주면 용서해 줄게.”

피의 여제가 단호히 요구했다.

“나하고 싸워.”

전투 의지를 상실하게 만든다고 해서 싸우지 않을 이유는 없다. 아무리 억압돼도 본질을 잃지 않는 것이 초월자의 태도이리라.

“마음에 들면 협조해 줄지도?”

히스릴은 초월자의 역사 이래 가장 강력한 제왕의 폭력에 도전장을 던졌다.

* * *

클린턴은 아내와 딸에게 줄 간식을 사러 제과점에 들렀다가, 겸사겸사 히스릴의 몫도 구입해서 그녀가 머무는 여관으로 향했다.
최신 국제 신문도 챙겼다.
가르간트로 이주한 뒤 같은 집에서 살지는 않지만 여전히 그녀는 손님이었다.

거리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국제 신문은 세계 연합의 낭보를 실어 날랐고, 이를 통해 시민들은 안정감을 얻었다.
물론 신문에 게재된 정보가 전부는 아니겠지만 각 대륙에서 세계 연합이 승리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일 터였다.

‘부디 끝까지 큰일이 없기를.’

클린턴은 마음속으로 승전을 기도하며 계단을 올라 방문을 두드렸다. 똑. 두 번 두드리기도 전에 히스릴의 호실이 열렸다.

“케이크와 음료를 좀 사 왔는……?”
“어때, 어울려?”

히스릴이 붉은색이 은은히 감도는 하얀 머리카락을 찰랑거렸다. 그녀는 평상복이 아니라 마법적이면서도 정제된 위엄을 풍기는 복장을 갖추었다.
온몸에 정확히 알맞은 전신 갑옷을 세련된 로브가 덮고 있다. 클린턴은 저도 모르게 여제(女帝)라는 말이 떠올랐다.

“어, 어울리긴 한데…… 훔친 거요?”
“이 거대 도시라고 해도 이런 장비를 훔칠 수 있는 곳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아마 없을 것 같소.”

클린턴은 용병 출신이다. 검으로 먹고살았던 만큼 갑옷만이 아니라 그녀가 등에 찬 대검이 얼마나 귀한 물건인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너무나도 편하고 자유로워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문득 클린턴이 말했다.

“부상이 전부 나으셨구려.”
“엘릭서 맛이 생각보다 좋던데. 아, 그나저나 진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더라고. 나의 상상을 한 차원 벗어난 영역이랄까.”
“엘릭서……? 영역……?”
“그 이상은 ‘금기’니까 그러려니 하렴. 어쨌든 내가 후련해졌다는 게 중요한 거니까. 하, 그 정도면 거래에 응할 만하지.”

히스릴은 뭔지 모를 혼잣말을 주절거렸다. 그래도 그녀의 기분이 가려운 등을 긁은 것처럼 상쾌하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 검, 잘 썼어.”
“어이쿠.”

히스릴에게 빌려준 검이 클린턴에게 돌아왔다. 겉은 원래와 다를 바 없었는데 검집에서 꺼내지 않았음에도 묘한 예리함이 엄습했다.

“검이 뭔가 이상하오.”
“내가 과도하게 불어넣은 기운이 물질 자체에 깊게 스며들어서 그래. 정말로 극히 드물게 있는 일이지. 검 한두 번 더 휘두르면 알아서 빠질 거니까 신경 쓰지 마. 그 대신 검은 망가지겠지만.”
“…….”
“대충 일회용 아티팩트가 생겼다고 생각해. 그걸로 너희 가족한테 빚진 건 퉁치자.”

클린턴이 이내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떠날 생각이군.”
“할 일이 생겼어. 육체도 회복했으니 가르간트에 볼일이 더 없기도 하고.”
“어디로 가는지 물어봐도 되겠소?”
“전장.”

히스릴이 흉포한 미소를 한껏 지으며 클린턴을 지나쳤다.

“살아남아라, 클린턴.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악당 같은 말을 남기며 떠나는 히스릴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때 그녀가 다시 돌아오더니 그의 손에서 최신 국제 신문과 더불어 간식과 음료를 냉큼 강탈했다.

“나 주려고 했던 거니까 가져간다?”
“하하하.”

클린턴은 털털하게 웃었다.

“잘 지내시오.”

* * *

쿠우우우우우──────!

인드렌의 초위 마법 중 하나인 <네르칼리프>가 네크바엘에게 질서를 강제했다.
아티슨 마탑의 역량을 총동원해 준비한 여러 탑과 연결돼 증폭되고, 또 완벽하게 안정된 마도의 억압이 드래곤의 오만한 성정을 파고든 것이다.

네크바엘이 불쾌한 압력에 격노했다.

탑들이 진동했다.
대기가 뒤흔들렸다.

그럼에도 인드렌의 질서는 깨지지 않았다.

[…….]

이윽고 목적지에 다다를 무렵이 되어서야 압제가 약해졌고, 이를 인지한 네크바엘이 거체를 회전시켜 힘으로 질서가 채 잦아들기 전에 뒤틀었다.
그믈과도 같던 질서의 흐름이 용의 힘에 얽혀 이내 찢어졌다.

콰아앙! 콰앙! 콰아아앙!

탑들이 견디지 못하고 연쇄적으로 폭발했다. 마력 특유의 빛이 서로 간격을 두고 수십 킬로미터에 걸쳐 이어졌다.

‘내게 반동을 입히기 위해 곧 사라질 초위 마법을 파훼했다. 악독하구나……!’

질서의 흐름에 녹아 있던 인드렌이 나가떨어지듯 현현했다. 네크바엘과 그리 멀리 않은 곳에 추락했고, 일대가 붕괴되었다.

쿠과과과과과.

네크바엘은 날개를 펄럭이며 대지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개활지에 이끌려 온 드래곤, 그 눈동자가 위로 향했다.

[네 족속들의 거창하고 무의미한 집요함은 변하질 않는구나.]

“그것이 우리의 본질이자 이상이지.”

데우스 위덴이 백색의 스태프를 쥐고서 네크바엘을 내려다보았다.

“너 또한 그러했듯이.”

용안에 핏발이 섰다.

[네까짓 것이 감히 무엇을 안다고─────!]

네크바엘이 돌진해 절벽을 들이받았다. 무지막지한 질량만으로도 지형이 초토화됐다. 오염된 물의 칼날이 데우스 옆쪽을 지나쳐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는 대기를 절단했다.

마도 <천리>

데우스의 마력이 자연계의 이치를 크게 아우르기 시작했다. 레프라기움의 마법사들이 마법적인 의식을 진행했다.
지역 전체를 기반으로 삼아 미리 준비해 두었던 여러 마법진에서 장대한 기둥들이 소환되더니 해당 영역을 봉인했다.

개념마저 벗어나지 못해 하염없이 헤엄치는 반경 약 37.8km의 감옥.

<연리(連理)의 수조>

데우스를 죽이지 않는 한 네크바엘은 혼자서 마렌 왕국을 벗어날 수 없다.

“하하! 수조에 갇힌 물고기가 따로 없군!”

[우리도 마찬가지이네만.]

“후우…….”

반토레온과 안데스가 합류해 네크바엘의 포위망을 형성했다.
인드렌도 내상을 다스리며 합세했다.

폭음이 번졌다.

사룡 네크바엘은 분노를 토해 낼 대상이 필요했다.
반토레온은 베르덴과 진심으로 죽고 죽이기 위해 연합의 편에 섰고,
안데스는 자신의 세대에 종식시키지 못한 크세리온 제국과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 초월마저 버린 채 현대에 이르렀으며,
인드렌은 세계의 안정을 되찾고자 했다.

그리고.

데우스는 시타델을 대상으로 한 계책을 실행에 옮겼다.

저마다의 목적이 분명하니.
행동만이 유의미했다.

* * *

하늘섬 시타델의 알현실에서 기물을 놓는 소리가 불규칙적으로 메아리쳤다.

아칸드가 전장을 관조했다.

‘사르카논이 부진했다. 정보에는 없었던 흑마법계 초월자가 불러낸 외눈 거인이 그만한 변수를 일으킬 존재였나.’

흥미로웠다.

‘라크디온은 목적을 달성했으나 결국에 그 정도.’

패배에 대해 별 감상은 없었다. 전쟁에 있어서 개별 전장은 일부에 불과했다. 초월적 존재가 난무하는 이 전쟁에서는 더더욱.
두 명의 권속을 조금 더 길게 활용하지 못해 아쉬울 뿐이었다.

베르덴은 전쟁의 초반부부터 강수에 이은 강수로 전진해 압도하려고 한다.
좋은 판단이다.
사문들이 장기간 유지될수록 대륙은 불리해질 테니 과감하게 수를 던져 어떻게든 일부 사문부터 폐쇄하는 것이 상책이므로.

그렇기에…….

아칸드는 전쟁의 중반부를 염두에 두고 있다. 세계 연합이 사문을 폐쇄한 대가로 전력이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는 그때를.
궁극적으로 그가 칼을 겨누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대륙과 베르덴이었다.

탁.

아칸드는 시간이 흐르고 자신의 기물을 세계 지도 위에 두어 중반부의 끝을 가시화했다. 베르덴의 수를 예측하고, 자신의 수로 대응해 미래의 그림을 완성한 것이다.

알현실에 발소리가 잔잔히 퍼졌다.

아칸드는 후반부에 돌입할 때까지 더는 볼 필요가 없는 지도를 치우고, 현재 루네시카를 대신해 주검의 영광을 관리하고 있는 부패성전──티아즈라 모튼을 맞이했다.
크레시온 제국의 제복을 갖춘 그녀가 무릎을 꿇고 깊이 고개를 숙였다.

“루네시카 안테르노아의 영혼 및 육체의 수복이 약 9할에 다다랐습니다.”
“의식은?”
“외부 자극에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것으로 보아 늦어도 며칠 이내에 의식을 완전히 되찾을 거라고 판단됩니다.”

아칸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티아즈라, 루네시카가 복귀하기 이전까지 주검의 영광을 총지휘해 연합의 내부를 무너뜨려라. 사령관의 군단들이 도울 것이다.”
“황명을 받들겠습니다.”

쿠구궁…….

그때 시타델 전역이 떨렸다.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공간을 <전이>하기 직전의 전조였다. 시타델에 있는 언데드들이 울부짖었다.

‘네크바엘의 반응이 소실됐다.’

크세리온 제국이 지배하는 모든 언데드의 근원은 시타델이고, 시타델은 아칸드가 ‘당신’에게 하사받은 권능의 총체.
네크바엘은 그런 권능의 화신이나 다름이 없기에 연결이 끊기면 시타델이 반응하고, 곧바로 네크바엘을 찾아 움직인다.

세계의 금기와 같이 근원적이고도 운명적인 인력이 작용하는 것이다.

섭리자.

사룡을 특정 지역에 봉인할 수 있는 존재는 데우스 위덴밖에 없다. 저항자 측은 애초에 사룡을 경계하여 나름대로 수를 준비한 모양.

과연 베르덴은 마렌 왕국에 있을까.

베르덴은 현재 테르네티아 연방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그것이 베르덴의 본체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다.
후자라고 생각하지만 굳이 구별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상관없으므로.

‘이 수는 감당하기 벅찰 거다, 베르덴.’

아칸드가 권좌에서 몸을 일으켰다.

* * *

베르덴이 [블랙 아워의 나침반]을 이용해 추적을 지속했다. 여러 도시를 경유하며 사룡의 사기에 물든 존재들은 전부 처리했다.

한때 인간이었던 언데드까지도.

나침반으로 사룡의 기운만을 쫓았기에 참극만이 그를 맞이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미 마렌 왕국은 그런 폐허만이 남은 것인가.

감정이 깊게 침잠했다.

‘……저건.’

베르덴이 속도를 죽였다. 그가 코앞에 놓인 광활한 마법적 영역을 인식했다.
장막은 안팎의 출입을 완벽히 차단하고 있었는데, 내부의 가장자리에서 다소 익숙한 형태의 기둥이 눈에 들어왔다.

‘데우스 위덴.’

아르카디옴의 무저해에서 경험한 그것과는 형태가 조금 다르지만 흡사했다.
같은 갈래에서 파생된 게 틀림없었다.

마침내 전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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