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1152

1152화 전환점 (8)

죽음의 감각.

자아를 상실하고, 이성을 잃어버리는 기분.
존재가 한없이 가벼워지는 느낌.

본래 생명은 한 번만 주어지기에 죽음은 익숙해질 수 없다. 익숙해져서도 안 된다. 그렇지 않은 존재들은 단지 내색하지 않을 뿐이다.
지성은 계속 잔존하려고 하고, 본능은 살아남으려 하므로.

언데드는 죽음에서 비롯된 종족이지만 그저 망자는 아니다. 공허할지언정 그들의 부패한 발자국은 대륙에 남아 있다.
움직이고 있다.
흔적을 남기는 것은 산 자의 전유물. 그럼 언데드는 살아 있는 것인가, 죽은 것인가. 그것을 가름하는 것은 언제나 ‘뜻’이었다.

너의 발자취는 무엇을 남겼는가?

어떤 존재의 의미도 논할 수 없는 공허함이야말로 비로소 죽음이니, 육체가 말소돼도 뜻은 남아 마음에 깃든다면 명맥(命脈)은 이어진다.

그렇다.

그렇기에 나는 살아 있다.

쿠우우우우웅!

제르마엘이 진각을 밟았다.

균열이 생긴 대지가 곧 불규칙하게 솟으며 단층이 어긋났다. 기근의 검에서 발해진 사기가 스쳐 지나간 순간 근방의 식물뿐만이 아니라 생생한 땅까지도 말라비틀어졌다.

그 위를 뒤덮은 무수한 언데드가 격한 괴성과 함께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제10사령관.

제1사령관의 권능으로 구축된 군체는 여느 언데드 군단과 판이하게 달랐다. 그들의 육신은 죽었을지언정 의지는 격하게 태동했다.

순수하게 그들의 힘 전부를 합치면, 제1사령관부터 제4사령관을 제외한 사령관 중에서 가장 성가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기근: 탐조(貪鳥)>

아칸드와 네크바엘 다음가는 크세리온 제국의 최고 전력이 수적 우위까지 동원하여 상대하는 것은 단 한 사람이었다.
한 사람의 초월자이자, 한 사람의 신이며, 단신으로 반역을 일으킨 한 명의 인간.

콰과과과과광!

검붉은 낙뢰가 떨어지며 권능으로 짜인 묵시록의 망조를 찢어발겼다.
잔류 번개가 확산하여 필사적으로 접근하는 군체 일부를 지워 버리고, 다시금 되돌아가 한 점에 집중된 마도가 제르마엘을 가리켰다.

[……!]

제르마엘이 급격하게 상체를 틀었다.

광선에 스친 견갑이 부서졌다.

사도로부터 부여받은 권능이라고 해도 감히 파멸에 저항할 수 없었다. 먼 옛날에 운명전에서 느꼈던, 또한 경험했던 그것이 제르마엘에게 전장에 남겨 둔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그런 제르마엘에 반응해 제10사령관들이 훨씬 더 격하게 울부짖었다.

도시 마르테스는 이미 붕괴했다.

제물로 쓰인 시체들은, 베르덴을 자극하려고 모은 시신들은 재도 남기지 못했다. 피와 장기로 더럽혀진 거리와 온갖 죽음이 묻어난 건물들은 이제 기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반역자는, 아직 선을 넘지 않았다.’

베르덴이 [인테리스]를 휘두를 때마다 실시간으로 군체의 전력이 깍여 나갔다.

뇌굉(雷轟).

극대화 현뢰가 추락해 그의 손에 깃들었고, 그것은 수직으로 지상에 힘껏 내리꽂혔다. 시야가 광기 어린 파멸로 물들었다.

반경 수 킬로미터를 멸망시키며 생긴 크레이터.

그곳에서 뛰쳐나와 압도적으로 군체를 유린하는 베르덴의 모습은 제르마엘조차 발을 내딛는 걸 한순간 주저하게 했다.
검붉은 색채로 물든 벽안은 운명전에서의 그들과 같은 살기로 가득했다.

‘다만…… 변수는 사룡 네크바엘을 상대하면서 얻은 부상과 피로. 빈틈은 존재한다. 그리고, 타인의 죽음을 짊어져야 하는 중압감과 책임감.’

제르마엘의 존재감이 군체에 녹아들었다.

‘이미 반역자의 정신은 몰려 있다.’

육사도의 뜻을 위해.

종말이 찾아온 듯한 풍경이 좌우로 지나쳤다. 시체 군단에 숨어든 제르마엘은 어느샌가 베르덴의 사각을 점하고 있었다.
기근의 권능에 지목당한 대상은 제르마엘을 감지할 수 없다.

<기근: 착혈(搾血)>

기근의 칼날이 소리 없이 휘둘러졌다.

쩌어어어엉───!

베르덴이 눈으로 식별하지도 않고 [인테리스]를 등 뒤로 꺾어 권능을 차단했다. 둘이 딛고 있던 리비안트 공국의 영토가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주변의 소리가 멎는 듯했다.

‘권능이 간파당했다?’

제르마엘은 망설이지 않고 기교를 펼쳐 아래에서 위로 권능과 검로를 이었다.

스태프가 회전했다.

불꽃이 튀자마자 언데드 군체가 몰아치며 베르덴의 신경을 분산시켰다. 놈들이 그의 옆구리에 난 상처를 집요하게 노린 것이다.

사룡의 발톱에 관통당한 자상.
몰아내지 못한 짙은 사기.
콘라드와 파이테 영주를 지키느라 이미 제르마엘의 공격을 허용한 그 부위.

지금 베르덴의 약점.

기근의 검이 분리되며 나온 작은 칼날이 베르덴의 어깨를 찍었다. 혈관 자체에 착혈의 권능을 불어넣어 내부를 파괴했다.
원활하게 움직이지 못하도록 관절 부위를 칼날로 단단히 걸고, 상체를 뒤로 빼내며 검끝으로 베르덴의 목을 그으려고 했다.

<기근: 갈열(渴裂)>

<로드 아케인: 천멸(扦滅)>

일격이 교차했다.

제르마엘의 일격은 닿지 못했다. 베르덴의 손끝이 직선으로 뻗어 나가 제르마엘의 손바닥 아랫부분부터 팔꿈치까지 앗아 갔다.
수평으로 갈려 나간 탓에 두께의 반만 남은 팔뚝이 너덜거렸다.

그리고, 격통.

[────────────!]

제르마엘이 내지르는 비명이 리비안트 공국 전역에 울려 퍼졌다.
언데드이기에 고통을 느끼지 않는 몸이나 베르덴의 마도는 당연하다는 듯 이치를 무시했다. 죽은 피가 후두둑 떨어졌다.

제르마엘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다음은 왼팔이다.”

베르덴은 군체를 날려 버리며 끊임없이 마력회로에 차오르는 어두운 마력을 발산했다. 갈라진 피부에서 마도의 빛이 새어 나왔다.
내상도 깊어졌다.
분명 자멸하고 있었지만 그 힘은 처음과 비교해서 더 강해진 상태였다.

한계에 몰릴수록 경지가 높아진다는 건가.

콰드드득.

제르마엘은 무용지물이 된 오른팔 절반을 절단하고 태세를 갖췄다. 사지 하나가 날아갔지만, 피를 흘리는 것은 베르덴도 매한가지.

[기대하겠다.]

남은 제10사령관은 약 절반 이하.

투확!

베르덴이 투창했다. 그 마력으로 가득 찬 스태프가 군체를 쳐부수며 쇄도했고, 제르마엘이 정확히 포착해 권능을 발하며 쳐 냈다.

그 순간에 빛이 점멸했다.

──────────!

질서의 종말 [인테리스]가 지근거리에서 제르마엘을 집어삼켰다.

* * *

고화력의 원소 마법이 빗발쳤다. 패턴을 전혀 읽을 수 없었다. 그것마저도 철저하게 계산으로 이루어진 폭격 방식이었다.

에온의 마법사들이 대마력을 일으켜 마력 입자포를 가동했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
콰과과과과과과광!

푸른빛의 두터운 광선이 날아들어 스칼룸 단층협에 작렬했다.

대도시 하나가 자리 잡아도 모자라지 않을 협곡에서 불길과 연기가 솟구쳤다. 곳곳에 만들어진 크레이터가 병기의 파괴력을 보여 주었다.

[착탄 확인.]

알파가 직접 공세를 지휘했다.

베타는 본부에 남았다.

미니 골렘 프레임으로 활동하는 알파는 파괴되어도 죽지 않는다.
본체는 골렘 연구 시설에 있기 때문이다. 기억 또한 미리 공유해 뒀다. 신속한 판단을 위해 알파가 현장에 온 것은 합리적이었다.

[제거 실패.]

자욱하게 피어오른 연기를 뚫고 아칸드가 정면으로 협곡을 돌파한다.

제1방어선.
제2방어선.
제3방어선.

방비가 철저함에도 아칸드는 우회하지 않았다. 그 노림수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세계 연합의 전력을 홀로 상대하겠다는 것.

[폭격 재개.]

“폭격을 재개하라!!”

[마력 입자포. 각도 조정 실시. 제1입자포 13.4도. 제2입자포 15.6도. 제3입자포 16.8도. 제4입자포 19도 좌향. 제5입자포에서 제8입자포. 차례대로 같은 각도. 우향.]

협곡이 재차 초토화됐다.

콰앙! 콰아앙!

아칸드가 용검으로 마법을 가르거나 막아 내면서 전진을 거듭했다.
일제히 날아온 6위계 원소 마법의 폭우는, 도저히 사람이라고 볼 수 없는 몸놀림으로 회피했다. 발끝에 실린 힘이 바위를 으깼다.

이내 가속하려고 하자 갑작기 마력 광선이 휘어져 아칸드를 강타했다.

콰아아아아앙!

알파의 연산 능력이 아칸드의 경로를 예측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어진 마력 입자 포격이 같은 지점에 쏟아졌다.

용검을 역수로 잡아 바닥을 긁으면서 뒤로 물러난 아칸드가 작게 감탄했다.

“호오.”

순수한 찬사였다.

손잡이를 바로잡아 칼날을 옆으로 늘어뜨리자 용검 [마그라스]가 맥동했다.

제1형단 – 글라로스.

압도적으로 거대한 검기가 쇄도하면서 좌우 전부를 아울렀으며, 대협곡에 설치되어 있는 모든 입자포를 한꺼번에 겨냥했다.

연합군의 보호막으로는 견뎌 낼 수 없다.

격화激化

<성결: 인도>

아드리안과 레온하르트가 절기와 기적을 발현하며 검기에 맞섰다.
각각 레바나에게 보급받은 고농축 리산드로의 열매 포션과 성직자들의 치유로, 제2사령관을 상대하면서 얻은 치명상과 중상은 회복했다.
정상적인 컨디션은 절대로 아니었지만 그래도 검을 들 수는 있었다.

“크흡……!”
“하아아아아압!!”

세렌디아는 마력으로, 메르퀴엔은 원초의 정령이 깃든 화살로 힘을 더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국가급 전력의 보조를 받고 나서야 가까스로 검기를 흘려 낼 수 있었다. 상쇄한 게 아니라 궤도를 트는 게 전부였다.

연합군의 방어선 대신에 구름층이 갈라졌다.

전위를 담당한 아드리안과 레온하르트를 마주하며 아칸드가 말했다.

“라크디온에게서 승리하며 얻은 대가를 소화하지 못한 듯한데. 무리하는군.”
“아가리 닥쳐.”
“뒤에 있는 자들을 앞세워라.”

아칸드가 손짓했다.

“타인의 희생이 없으면 지금의 너희는 상대도 되지 않는다.”

아드리안과 레온하르트가 동시에 핏대를 세우더니 돌진했다. 신속의 영역에 들어선 아드리안이 광검으로 공간을 가르며 굽이쳤다.

히아레마르 내해의 섬에서 막 부활한 아칸드에게도 공격이 먹히지 않았다.
그때보다 성장했을지언정 기운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지금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초석은 될 수 있다.
그리고 라크디온을 죽였던 그 감각을 한순간이나마 재현하면 벨 수도 있을 터.

그때 용검이 눈앞에 들이닥쳤다.

“……!”

아칸드가 용검을 던진 것이다.

막을 수 없다.
막으면 광검이 부러진다.

그것이 만물을 극하는 용검 – 마그라스의 특성.

콱.

아드리안이 찰나에 제동을 걸고 다시 가속하려는 순간에 안면이 붙잡혔다. 눈을 부릅떴다. 아주 잠깐 속도를 죽였다고 해도 따라잡힐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명확히 알지 못하기에 세계 연합은 간과할 수밖에 없는 변수.

아칸드의 전력(全力).

여섯 번째 사도로 완성된 그가 스칼룸 단층협에서 마침내 진심을 드러냈다. 델하룬에서 수왕 안티아스를 상대했을 때, 그 이상.

‘당신’에게 선택받아 완전히 개화한 경지의 극한.

그는 더 이상 힘을 조절할 생각이 없었다.

콰아아앙!

아칸드가 보폭을 전환하며 아드리안을 들어 그대로 내리꽂았다. 뒤통수에 가해진 충격이 너무나 큰 탓에 광검을 놓쳐 버렸다.
이어진 발차기가 아드리안의 가슴뼈를 감아차듯이 강타했다.

레온하르트가 눈을 크게 뜨고는 반사적으로 나가떨어진 아드리안을 받았다.

“괜찮─”

쩌어어어어엉!

권격에 정통으로 맞은 레온하르트의 머리가 뒤로 꺾였다. 목뼈가 뿌득거렸다. 정복의 묵시록을 웃도는 완력이었다.
척추가 손상되었는지 팔다리만이 아니라 육체가 잘 움직이지 않았다.

아드리안이 광검을 불러들였지만 그전에 아칸드가 밀쳐 그를 벽으로 몰아세웠다.

“내게 용검이 있는 이상 네 검은 무용(無用)하다.”

아드리안이 어금니를 깨물며 양팔을 교차했다. 이내 방어 따위는 무시하는 무릎차기가 마치 철퇴처럼 깊게 파고들었다.

쩍.

협곡의 절벽이 갈라졌다.

잔해에 묻힌 아드리안을 뒤로하고 레온하르트에게 다가갔다. 신성력으로 회복을 도모하는 청년의 숨통을 붙잡았다.

“끅…… 끄윽…….”
“여흥은 이만 되었다.”

아칸드가 시선을 옮겼다.

“가진 패를 보이도록.”

알파가 대답했다.

[확인.]

신호가 떨어졌다.

레온하르트가 안광을 번뜩이며 아칸드의 팔목을 힘껏 붙잡았다. 바위 잔해에서 빠져나온 아드리안이 광검을 회수했다.

‘당장 움직일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닐 텐데?’

연합군의 전략에 대응하려는 도중 하늘에서 빛이 쏟아졌다.

스칼룸 단층협이 격동하면서 인류를 보듬는 신성한 빛으로 물들었다.

콰드드드득.

아칸드가 바깥으로 밀려났다. 그의 육체에 성창의 성흔이 새겨졌다. 용검의 날을 땅에 가깝게 떨어뜨린 그가 새로운 초월자를 응시했다.

“정말로 다른 전력은 없는 것 같군.”
“혼자서 충분하다는 거겠죠.”

아드리안과 레온하르트는 미리 소지하고 있던 회복 수단으로 육체 손상을 수복했다. 아칸드는 누구하고도 연결되지 않았다.
가까이에서 확인했다.
아칸드는 다른 사령관들처럼 언데드 군세를 이끌고 오지 않았다.

아칸드는 제 몸에 난 성흔을 통찰했다.

“800년 전의 성녀보다는 낫군.”
“성녀 에르세티아.”

성창과 성갑으로 무장하고 루아스 교국에서 강림한 에르세티아가 단언했다.

“여신의 빛으로, 옛 왕을 심판하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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