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1180

1180화 베르덴 – 1

‘역시 네크바엘에게 내 신격에 대해 들었나…… 아니, 아니군.’

베르덴은 직감이 반응했다.

‘그보다 훨씬 이전이다.’

네크바엘과 일전을 치르기 전부터 아칸드는 그의 신격을 인지한 상태였다. 확신한다. 놈의 흔들림 없는 검은 눈동자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언제부터?

필시 전쟁 이전일 것이다.

히아레마르 내해의 섬.

베르덴 자신도 자각하지 못했고, 감히 제어할 수도 없었던 신체적 증상, 그 신의 편린을 아칸드에게 보인 것은 그때뿐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아칸드는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조짐이 없었다. 심지어 묵시록의 권속들도 이에 대해서 아예 모르는 기색이었다.

‘잘만 이용한다면 루아스 교국과 나를 조금이라도 반목시킬 수 있었을 텐데. 어째서…….’

그것이 첫 번째 의문이었다.

두 번째 의문은 지금 묵시록이 보여주고 있는 세계 멸망의 원인.

마지막으로 세 번째 의문은 이 결판의 향방에 따라 운명에 대한 금기, ‘당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제6사도의 사명을 알려주겠다는 언질이었다.
도대체 어떤 의도로 갑자기 운명을 배신하는 듯한 기행을 벌이려는지 베르덴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위대한 전쟁.’

아칸드가 언급했던 전쟁의 대목. 놈이 사도가 되어 일으켰던 초월자 전쟁의 궁극적인 목적에 명확한 답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해답의 열쇠는 다름 아닌 아칸드 본인의 죽음에 있다.

쿠웅!!!

아칸드가 역수로 잡은 [마그라스]를 멸망한 세상에 내리꽂으며 기도했다.

“아비가 막는다면 아비를 죽이고, 신이 막아선다면 신살을 행하리.”

내면에서, 그리고 외면에서 격의 정도를 헤아릴 수 없는 존재감이 움텄다.

“나, 제6사도──아칸드. 복음을 받은 인간으로서 이곳 최후의 땅의 생명체를 근절하여 죽음의 고행을 완수하겠다.”

최후의 수.

<안식: 강세(降世)>

모든 대륙을 통틀어 시타델의 알현실에서만 가능한 기적이 발동됐다. 어둠에 훨씬 가까운 ‘불결한 잿빛’이 전신을 휘어감았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옛 왕의 갑옷 파편이 하나둘씩 우수수 떨어졌다.

신성력이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며 잃어버린 왼팔을 대체했다.
용검에도 같은 기운이 스며들었다.

아칸드가 차가운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아 사선으로 들어올리고는, 무릎을 굽히면서 위에서 아래로 칼날을 비스듬히 기울였다.

“오라, 운명을 부순 악신이여.”

스스로가 옳다고 믿는 흑회색의 눈동자가 베르덴을 직시했다.

‘잿빛…….’

아칸드에게서 동질감이 느껴졌다. 다만 본질적으로 비슷한 듯하나 결국에는 다른, 마치 모조품을 보는 것 같은 불쾌한 기분이었다.

‘자기 자신을 불쏘시개로 삼아 한계 이상의 권능을 발현하는 최후의 기적인가. 시간만 끌어도 얼마 가지 못하고 자멸하겠군.’

하지만 그딴 식으로 어중간하게 상대할 만한 힘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런 미적지근한 길을 걸어오지도 않았다.

아칸드는 신의 사도로서 베르덴을 악신(惡神)으로 규정했다.

이 순간 강함의 논리가 전부가 아니게 됐다. 순수한 이상과 이상의 충돌이자, 오랜 규율과 새로운 질서가 대립하는 현장으로 승화했다.

제1차 초월자 전쟁은 불완전하게 끝났고.
제2차 초월자 전쟁은 비로소 서사의 완성을 앞두고 있다.

아주 머나먼 과거에 중단되어 재개되기를 기다리는 운명전의 축소판이자, 일종의 예행이라는 느낌은 분명 착각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

지금 이 자리는 제6사도 아칸드가 신의 힘을 빌려 대행하는───

‘나와 ‘당신’의 전초전.’

진심 어린 신의(神意)에 [아인베르]와 [인테리스]가 고동을 울린다. <대마력>의 흐름이 기존 <아케인>을 완벽하게 대신한다.

스스로 자유를 버리고 이상을 좇는 신.

마도 폭주를 진정시키는 과정에서 이전보다 변질된 진정한 신에 가까워진 그가 믿음마저도 양분으로 삼는 육체와 영혼에서 ‘순결한 잿빛’을 발산했다.

<신성(神性): 강림>

안식의 권능과 다르게 어떠한 더러움도 섞여 있지 않은 회색의 빛무리.

툭……투두둑…….

멸망한 세계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묵시록으로 구현한 허상에 불과한, 그 고정된 공간에 있을 수 없는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

아칸드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온 하늘을 덮고 있는 담회색의 구름에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아니, 이제 보니 그것은 빗방울의 형태를 한 재였다.
만물이 타오른 뒤 종극에 남은 찌꺼기나 다름없을 회진(灰塵)이 어떤 생명도 살아남지 못한 미래의 땅에 스며들었다.

깊게, 더 깊게…….

영원한 불모지에서 생명이 싹텄다. 푸른 마력으로 이루어진 반투명한 존재들이 지표면을 뚫고 바깥으로 기어 나왔다.

그들은 신이 아니었다.
그들은 사도가 아니었다.
그들은 병사도 아니었다.
그들은 신자도 아니었다.

모두가 약자였다.

[아아아…….]

귀가 없으며 눈과 입이 꿰매진 이들이 흐느끼면서 아칸드의 다리를 연신 더듬었다. 실낱같은 구원이라도 갈구하는 다급하고 힘없는 손길이었다.
벌레를 짓밟는 것보다 떨쳐 내기 쉬울 테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신이시여.
묻겠나이다.

누가 이들을 절망으로 밀어 넣어 이렇게나 구원을 바라게 하였습니까.
누가 이들을 감히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만들었습니까.

아칸드는 그 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세상이었다.

운명의 제물로 전락하고, 저항자에게 외면받은…… 모든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아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소외자(疏外者).
버려진 자들이 강제로 닫힌 눈꺼풀 사이로 눈물을 흘렸다. 아칸드가 죽인 자들이 아칸드인 줄도 모르고 그에게서 구제의 손길을 기다렸다.

“운명의 구원은 올바른 대안이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단언컨대 몇 번이고 같은 시간을 반복할 것이다. 그러니 비켜라.”

[아으으…….]

“비켜라…….”

아칸드는 단호하게 그들을 외면했지만 밀어내지는 못했다. 버려진 자들의 물결이 이내 파도가 돼 메마른 다리를 적셨다.

어느새 아칸드는 끝없는 푸른 바다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망망대해였다.
그의 다리는 보란 듯이 수면 아래를 딛고 있었으나 그 아래는 깊이의 정도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 무한한 심해였다.

콰르릉.

천둥을 동반한 파멸의 벼락이 광란했다. 구름 위로 세계수의 형상이 표면적으로 드러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망막에 새겨졌다.

잿빛 하늘.
푸른 바다.
검붉은 나무.

신의 마안(魔眼)에서 떨어진 회색의 눈물이 멸세의 풍경을 위로했다.

“그런 감정은 누구에게나 허락된 게 아니지.”

아칸드가 발현한 권능의 눈에서 암회색의 눈물이 번져 내렸다.
실재하며, 동시에 실재하게 될 신의 영역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를 통해 베르덴이 어떤 개념의 신인지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버려진 자들의 신…….”

저마다의 이유로 유기된 낙오자들을 보살피겠다는 신이 탄생했다.
낙오자들의 믿음으로 탄생한 자연적인 신이 아닌, 나약한 인간이었던 자가 다시는 주어지지 않을 자유를 저버리고 책임을 자처하여 이룩한 고귀하고 고결하고 숭고해 마지않는 신위.

아칸드가 폭소했다.

올다르크와는 차원이 다르다. 어이가 없을 정도라 웃음이 터졌다. 인격도, 명분도 태초의 마법사 따위는 견줄 수 없으리라.

‘당신’이여, 보고 있는가?

올다르크와 다르게 그대가 저지른 원죄를 직시하고 단죄하려고 하며 자신만의 해답을 찾는 존재가 이곳에 있다.
맹목적이고 광신적인 사도들과 추종자들은 감히 그 가치를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옳았다. 위대한 전쟁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자는 없다.

“내가 그러하듯이 당신의 눈에는 내가 악의 주구로 보이겠지. 당연히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종말 앞에 선악의 구분은 무의미하지. 그럼에도 선악을 따지자면 나는 필요악이다.”

아칸드가 나지막이 말했다.

“내 존재에는 의의가 있었다.”

쩌적, 묵시록이 깨졌다.

우주의 은하가 깃든 돌이 산산조각이 나서 바다에 흩뿌려졌다.
멸망해 버린 세계와 신역이 서로 뒤섞이더니 이내 무(無)의 공간이 되었다. 어떤 지형도 존재하지 않는, 아무것도 없는 허무의 전장.

베르덴은 벽안에서 변한 회안(灰眼)으로 아칸드를 굽어보았다. 오른쪽 눈동자에 박힌 마법진이 느릿하게 회전했다.

버려진 자들의 신.
순환의 파괴자.

|아칸드|

절대자의 음성이었다. ‘당신’과 올다르크에 비해서 한없이 불완전하기는 하나 절대자의 편린이 느껴졌다. 시야가 일순간 아득해지며 <안식의 권능>이 근본부터 뒤흔들렸다.

“……!!!!!……!!!……!!!!!”

사념을 품으면 무너질 것이다.

그래서 아칸드는 오직 하나를 향해 의지의 칼날을 벼렸다. 제6사도의 사명, 더 나아가 사명을 거부하지 않은 인간적인 본심에.

|그렇다면 증명하라|

운명이 존재하지 않는 태고의 시대에 심판은 오직 신의 권리였다.

신앙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미지에 가까운 심판과 여파를 두려워했지만 아칸드는 그런 지성체들과 결이 달랐다.
그는 스스로 무엇을 믿고 행동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기에 미혹되지 않았다.

“어찌 마다하겠는가.”

아칸드가 권능의 빛을 흩날렸다. 같잖은 눈속임은 필요 없다. 보란 듯이 도약해 전력을 실어 [마그라스]를 내리찍었고.
이에 베르덴의 안광이 명멸했다.

두 개의 권능이 충돌했다.

─────────!

지상으로 곤두박질친 아칸드가 낙법을 취해 찰나의 틈도 없이 공세를 이어 나갔다.
그러나 검기와 기적이 닿기도 전에, 심지어 몇 걸음 나아가기도 전에 한순간에 저지당해 거리는 원래대로 돌아갔다.

‘전투 방식이 본연의 것으로 돌아갔다.’

베르덴이 굳이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과거 ‘당신’의 기억에서 보았던 올다르크의 수법과 흡사했다. 갈래는 수도 없이 많을지언정 결국엔 궁극적인 하나의 진리로 통한다는 것이겠지.

‘마법…….’

베르덴의 근본은 마법사.

마법을 인지하지 못하면 닿을 수도 없다.

* * *

“베르덴이…….”

아칸드의 존재를 통해, 정확히는 ‘당신’의 시야로 베르덴을 목도한 인드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눈가에 맺힌 눈물을 느꼈다.

“베르덴이, 그 신이라는 말인가? 루아스나 그대와 같은……?”

=아름답지 않습니까=

‘당신’의 심층의지는 베르덴의 신역에 감격한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녀가 그리는 이상은 여전히 한 치의 변함도 없었지만, 베르덴이 자처해서 걷고 있는 길은 그녀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아름답다니…… 적인데도?”

인드렌이 움찔거렸다. ‘당신’의 손끝이 눈동자에 박혀 있는 이물감에 소름이 끼쳤다. 다만 이렇다 할 고통은 없었다.
오히려 익숙해지니 신격에 으깨지는 듯한 압력이 좀 가시는 듯했다.

=베르덴은 운명의 굴레를 망가뜨렸습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영원한 순환을 방해한 반역자인 것은 사실이지요. 하나, 저는 분노하는 것 이상으로 그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올다르크의 동력원을 소멸시켰기 때문이죠. 고작 하나라고 할지라도=

보헤미른 마탑의 동력원과 운명의 수레바퀴를 함께 세상에서 지워 버린 베르덴의 위업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것이 모든 변화의 시작이었고, 훗날 신이 될 자의 탄생이었다.

인드렌이 입술을 달싹였다.

이 질문을 해도 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지만, 그는 두려움보다는 마법사답게 지적 탐구에 몰두했으며, 그 과정에서 무모함마저 서슴지 않았다.

“동력원이 무엇이길래?”

펠디아느는 금기를 언급하며 이에 대해서 대답하지 못했다……애석하게도 그것은 ‘당신’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었다.

=저라고 해도 동력원의 본질을 외부에 발설할 수는 없어요. 올다르크가 운명의 원천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인드렌은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오직 이타적인 존재들만이 진정 눈물을 흘릴 수 있죠=

‘당신’의 피눈물에 인드렌이 비쳤다.

=올다르크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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