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2화 네 번째 주빈 (5)
세 번째 주빈, 마기온.
가면으로 얼굴 전면을 덮었어도 불편한 기색은 가려지지 않는다.
게임을 개시할 때 일대일 마법적 이해력 문제 대결을 거부한 것처럼 그는 베르덴과의 정면 승부를 성가셔 하고 있었다.
‘첫 번째 귀빈…… 사도일지도 모르는 블러디아는 마기온과 우호적인 관계는 아닌 듯했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분명히 둘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존재했다.’
그와 더해서 베르덴이 만찬회장에 막 들어섰을 때 귀빈들과 하객들 사이에서는 세 번째 주빈에 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마기안에 대한 정보.
지식인들에게는 모두가 아는 흔한 단서였겠지만, 베르덴이 마기온의 가면 너머를 유추하기에는 충분한 지식이었다.
“네 번째 주빈이 선정된 건 14세기 만의 일이라고 하더군.”
“…….”
“아르카디옴에서는 가명을 써야 하니 실명까지는 거론하지 않겠다.”
베르덴이 제 얼굴을 손끝으로 톡톡 두드렸다.
“이만 가면을 벗지 그래. 전(前) 그링 아르카넘의 소유주.”
“아르카디옴의 지식인들은 수다스럽지. 벗어날 수 없는 심해에서 본인의 지식을 자랑하는 것만이 유일한 낙이니.”
마기온이 손을 가볍게 휘젓자 공간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희미하게 느껴지던 집사들의 존재감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밀실을 만들었나.”
“세 번째 주빈의 고유 권한이다. 놈들의 지식욕을 채워 줄 의무는 없으니까. 이 상태에선 본명을 말해도 제재를 받지 않지.”
마기온이 천천히 가면을 내렸다.
“무사히 신격을 자각했군, 베르덴,”
약 14세기 전에는 영창 마법과 위계 마법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졌고, 그링 아르카넘은 최초의 마탑의 가장 깊은 곳에 있었다.
위계 마법 시대의 시작과 최초의 마탑.
이 두 조건에 부합한 존재는 거의 없으니 주빈이 누군지는 사실상 명확했다.
“데우스.”
현 레프라기움 마탑주이자 최초의 위계 마법사, 현재는 섭리자로 일컬어지는 데우스 위덴이 세 번째 주빈이다.
* * *
아르카디옴의 게임에서 패배하면 머릿속 지식을 빼앗긴다. 베르덴의 경우에는 상대에 따라 승리 시에 질문권을 획득한다.
‘호스트는 상급 질문권을 사용하면 금기에 갇힌 진실을 알려 주겠다고 선언했다. 말하는 것으로 보아 아르카디옴에선 특정 조건을 충족하면 금기의 대가를 피할 수 있다는 의미겠지.’
앞꿈치에 실리는 무게중심.
‘데우스를 이기면 상급 질문권.’
베르덴의 전신 근육이 팽팽해졌다. 코앞에 있는 데우스를 사냥감으로 보는 눈빛이다.
일단 접촉한다.
마법적 이해력이 주제라면 베르덴은 그를 압도할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몸을 움찔거린 순간 데우스가 제지하듯 팔을 뻗었다.
“거래를 제안하겠다.”
“무슨 거래.”
“피차 궁금한 점이 있을 텐데. 일방적으로 지식을 넘기는 것이 아니면 아르카디옴에서는 순조로운 정보 교환이 가능하다.”
“그냥 누가 묻고 답할지 게임으로 정하도록 하지. 아르카디옴의 규칙대로.”
“거절한다.”
데우스가 단호히 선을 그었다.
“승산 없는 게임에 임할 이유는 없다. 특히나 이 호스트의 저택에서는.”
데우스는 마법적 이해력 문제로는 베르덴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정면 승부를 피한 것이다.
‘……이 주제로 베르덴과 겨뤄 볼 현대 마법사는 전무하다.’
베르덴은 독자적인 마법으로 운명의 수레바퀴를 파괴한 장본인이다. 마법사의 자존심을 거론할 만한 수준을 넘어선 격차! 타고난 마법적 지성이 데우스와 차원이 다르다.
호스트, 태초의 마법사, 세계수 정도가 아니라면 상대가 불가능할 터.
“호스트에게 지식을 빼앗기긴 싫다는 건가. 하긴 지금까지 무패였을 테니까 당연하겠군. 하물며 놈은 운명의 사도이기도 하니.”
베르덴의 상체가 조금 더 앞으로 기울었다.
“싫다면?”
“나도 극단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데우스의 존재감이 술렁였다.
“게임이 시작되기 전 나 자신을 아르카디옴에서 추방하겠다.”
서로 합의하지 않을 경우 반드시 몸이 접촉해야 게임이 성립된다.
베르덴의 손이 데우스에게 닿는 것이 먼저일까, 데우스가 초월자의 격을 발현하여 아르카디옴에서 사라지는 것이 먼저일까.
‘한발 물러서는 게 이득이겠군.’
베르덴은 행동에 따른 다양한 결과를 짚어 보고는 몸에서 힘을 풀었다.
데우스와는 적대적 관계가 아닌 데다가 게임에서 이겨도 데우스가 앞서 문답 제안을 수락하지 않으면 오직 상급 질문권만 얻을 뿐이다. 물론 갈등이 생길 수도 있고 말이다.
베르덴은 데우스 위덴에게 따로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게임을 치르지 않는 대신 서로의 질문에 진실로 대답한다. 이런 거래면 되나? 대답의 수위는 긍정과 부정의 유무와 한두 문장의 간단한 설명까지.”
“그리고 주제는 ‘근황’에 한하는 걸로.”
근황이라.
정보의 범위를 제한하겠다는 이야기다.
‘숨기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닐 테니.’
대충 그럴 거라고 예상했다.
“대신 질문비를 조율하지. 네가 하나를 질문하면 내가 세 개를 질문하겠다. 일대삼. 게임을 거부한 건 너니 공평성까지는 바라지 마라. 정 싫으면 추격전을 벌이든가.”
“일대이. 질문은 내가 먼저 한다.”
“받아들이겠다.”
의견은 빠르게 일치했다.
‘협박을 듣고도 맞서지 않고 적당히 양보하는군. 음, 그만큼 내게서 대답을 들어야 하는 사안이 있다는 건가.’
베르덴이 팔짱을 꼈다.
데우스는 여유를 부릴 생각이 없다는 듯 곧바로 질의를 던졌다.
“세계의 틈새에서 두 번째 사도를 만났나?”
* * *
두 번째 사도…… 인간계 최초의 왕.
아서 타렌폴드.
전력을 내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세계의 틈새에서 베르덴과 군단장 하드라스를 압도한 존재. 베르덴은 아서와의 격전을 상기했다.
“만났지.”
베르덴은 즉답했다.
“놈은 당분간 현세에 관여하지 못할 거다.”
“……!”
금기의 제약을 받은 상태임에도 아서는 무리하게 힘을 끌어냈다. 그 반동으로 세계의 틈새에 처박힌 채 현실로 나올 수 없게 됐다.
[아인베르]에 깃들었던 잿빛의 용이 남긴 사념이 장담했으니 분명했다.
“잘됐군.”
데우스는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베르덴은 그 웃음의 의미가 궁금했지만 그보다 중요한 의문을 우선했다. 베르덴이 연속으로 물어볼 차례였다.
“네가 아르카디옴에 참석한 이유는 블러디아와 필시 관련이 있을 터.”
첫 번째 질문.
“여기에 온 목적이 뭐냐.”
운명 측과 저항 측의 인물이 마치 대표라도 되는 양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이 지식의 만찬회에 와야만 하는 무언가가 아르카디옴에 있다.
“드라벤 르마르크.”
“……드라벤?”
“호스트가 멋대로 드라벤의 영혼을 복구한 다음 직접 아르카디옴에 들였다. 이게 쟁점이지. 드라벤이 갖고 있는 지식은 명백히 옛 왕─여섯 번째 사도에게 불리하다는 것.”
데우스에게도 역시 거짓은 없었다.
“하여 블러디아는 드라벤의 영혼을 아예 말살하기 위해서 왔고. 나는 드라벤의 영혼을 손에 넣기 위해서 이곳에 발을 들였다.”
운명의 세력에게 드라벤은 정보 자체라 상대에게 넘어가면 안 됐다. 써먹을 대로 써먹었으면 파기해야 마땅했다.
그런데 그걸 호스트가 남몰래 빼돌려서 만찬회에 던졌으며, 데우스는 운명에 저항하는 존재로서 이를 좌시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으나 사실 양측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지.”
데우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세 번째 사도, 호스트는 그런 존재다.”
베르덴은 심해의 저택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했다. 호스트로 인해 아르카디옴에서는 운명과 저항의 예기치 않은 암투(暗鬪)가 벌어지고 있었다.
* * *
평생 쌓아 온 탑이 무너졌지만 기반은 남아 있으며 잔해도 가득하다. 기반과 잔해는 다른 탑을 쌓을 수 있는 재료다.
이전보다 볼품없는 탑일지언정 그저 폐허 앞에 앉아 있는 것보다는 이상이라는 하늘에 더 가까워질 수 있으리라.
{이 와중에도 이상을 좇겠다?}
호스트가 깊은 흥미를 보인다.
{어떻게?}
드라벤은 쓰러진 의자를 세우고 단연한 의지로 호스트와 마주 앉았다. 그의 눈동자는 증오와 분노, 광기로 물들었지만 그 중심에는 아주 강렬한 이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먹이에 불과한 건가?”
{손님이자 주찬(主饌)이다. 아르카디옴의 끝에 도달한 자는 네 영혼을 손에 넣지.}
“더 이상 떨어질 데가 없을 정도로 전락했군. 이 내가…… 주검의 영광의 수장이…… 루네시카가 보면 뭐라고 할지…….”
드라벤은 크게 자조했지만 호스트는 전혀 웃지 않았다. 이미 드라벤의 감정과 지성은 절망을 압도한 상태였기에.
{마음은 오묘한 것이지. 증오와 사랑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그렇게나 숭고했던 충섬심이 진실로 뒤집혀 복수심이 되었듯이.}
“호스트.”
그는 호스트의 조롱에도 더는 심신이 흔들리지 않았다.
“아르카디옴의 게임에서 이기면 어떤 지식이든 손에 넣을 수 있나?”
{상대가 가진 지식이라면 뭐든지.}
“만약 네게 이긴다면?”
호스트가 책을 덮었다. 지금은 드라벤의 상태를 기록하기보다는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새로운 지식을 실시간으로 기억에 담았다.
{너는 알고 싶은 걸 알게 될 것이다.}
“부탁을 요청한다면.”
{네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부탁이라면 들어줄 수 있겠지.}
“……명료하군.”
드라벤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옅을 숨을 내쉬곤 호스트를 응시했다.
“호스트, 너에게 게임을 제안한다. 아르카디옴의 손님으로서.”
{호오.}
“물론 지식과 지성을 대결하는 게임이라면 내게 승산은 없겠지.”
드라벤은 지적 충돌을 통해서 그의 지적 수준을 어렴풋이 인지했다.
마법계 초월자로서 드라벤은 엄연히 천재이기는 했으나 호스트가 바라보는 세상에는 절대로 닿을 수 없음을 실감했다.
‘지력(智力)이 승패에 곧장 직결되지 않는 게임을 떠올려야 한다. 내 이상을 향한 최후의 발악을 위해.’
이것이 드라벤의 해답이었다.
“너는 누가 이 아르카디옴의 끝에 도달할 거라고 생각하지?”
{간단하게 후보는 셋. 그중에는 당연히 베르덴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후보는 후보일 뿐…… 결국 승자는 한 명이지.}
호스트는 우아하게 양손을 모았다.
{두 번째 게임은 무작위로 결정되지만, 마지막 세 번째 게임은 정해져 있다. 내가 손수 준비한 놀이다. 외부 조건은 완전히 평등하나, 그렇기에 그 게임에서 베르덴은 압도적으로 ‘불리’하지. 사실상 변화가 없는 한 승산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무슨 게임이길래 베르덴의 패색이 짙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드라벤은 이미 마음속으로 정한 내기를 바꾸지 않았다.
다른 게임을 떠올리기에는 그의 정신력이 턱없이 부족했으므로.
“아르카디옴의 끝에 가장 먼저 도달할 지식인이 누구일지로 대결하지. 그리고 패자는 승자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최대한 지식과 승패가 무관한 게임으로 골랐군. 좋다. 그렇지 않으면 일방적일 테니. 그럼 ‘부탁’에 대한 게임은 정했으니…….}
호스트가 기대감을 내비쳤다.
{‘지식’에 대한 게임은 무엇으로 할 거지?}
이상을 위한 충성심을, 이상을 위한 증오로 바꾼 드라벤이 지금 당장 호스트에게 원하는 것은 바로 두 가지였다.
부탁과 지식.
이에 드라벤은 또 다른 대결을 제시했다.
“동전.”
동전 던지기.
동전을 던져 앞면과 뒷면 중 하나를 무작위로 정하는 게임.
{운에 의존한 게임인가. 너는 운을 지식의 갈래로 여길 수 있나?}
“지식이 모든 걸 아우른다면 운 또한 지식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하하, 너는 이미 아르카디옴에 적응했군. 어엿한 지식인 중 한 명으로서.}
호스트가 피아노의 건반을 치듯 손가락을 교차해 움직였다. 고대의 동전이 손의 틈새에서 나타나 장작 없는 화롯불의 빛을 받아 반짝였다.
{상승일로에 오른 자를 한순간에 추락의 좌절로 떨어뜨리고, 절망밖에 모르는 자에게 갑자기 희망을 안겨 주는 것, 운(運). 운의 개념은 지식으로서 지금도 완벽하게 해명되지 않았다.}
길쭉한 엄지와 검지에 잡힌 동전이 드라벤의 동공에 반사됐다.
{누군가는 운을 신이라고 여기고, 누군가는 운을 하늘이 결정한 운명이라고 믿으며, 또 누군가는 운을 자기 자신의 힘이라고 생각하지.}
“…….”
{네가 이기면 지식을 주겠다. 하지만 내가 이기면 너라는 자아를 부수겠다. 지식만 가진 영혼 덩어리가 되는 것이지.}
호스트가 묻는다.
{드라벤 르마르크여, 너는 어떤 운에 최후를 맡길 것인가?}
“나는 뒷면을 고르겠다.”
드라벤은 일련의 대화를 통해서 호스트와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놈의 언변에 휘둘려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니까 닥치고 던져.”
* * *
‘설마 드라벤의 영혼이 목적이었을 줄이야.’
다시 말해 호스트가 운명에게 부정적인 행동을 취한 것이다. 그리고 저항자 측까지 게임에 끌어들인 걸로 보아 그들을 아예 갖고 놀고 있다도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호스트는 무슨 사도인가?
놈에 관한 의문이 조금 더 커졌지만 데우스가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다. 문답은 어디까지나 근황에 한정되어 있으므로.
‘어쨌든.’
베르덴은 다른 화두를 꺼냈다.
두 번째 질문이었다.
“이전에는 운명과 저항자, 둘 중에 먼저 움직이는 쪽이 불리하다고 했었지. 하지만 옛 왕이 부활한 이상 저항자도 움직일 명분이 있을 텐데, 어째서 방치하고 있는 거지?”
히아레마르 내해에서 막 옛 왕이 금기의 봉인을 풀고 나왔을 때 레프라기움 마탑은 끝까지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프로하스에서의 긴급 정상 회의가 결정되었음에도 여전히 소식이 없었다.
“방치하지 않았다. 나름의 준비를 갖췄지.”
“설명이 부족하다.”
“운명은 세상 자체에 작용한단 점에서 통상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데우스가 문장을 덧붙였다.
“그러므로 운명은 이용할 수 있다.”
“……선택을 받은 초월자처럼 말인가.”
“답은 여기까지다.”
데우스가 볼일을 마쳤다는 듯 등 뒤의 문고리를 잡았다.
“다른 질문은 없나?”
“일대이의 질문비로는 문답을 거듭할수록 내게 불리하니, 수지 타산이 맞지 않다.”
데우스도 아직 질문거리가 남아 있는 듯했지만 계속 손해를 감수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 정도로 중요하지 않은 질문이런 거겠지.
“그래. 가라.”
베르덴은 질문비를 낮출 수도 있었지만 타협하지 않았다. 근황에 관한 질문으로는, 베르덴이 내어줄 정보에 비해 얻는 정보의 가치가 낮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아, 그런데 내게도 네 번째 주빈의 고유 권한이 있는 건가? 별말은 못 들었는데.”
“지식은 쟁취하는 것이기에 스스로 알아내야만 하지. 내가 그랬듯이.”
“알려 주기 싫으면 됐다.”
데우스가 다시 가면을 썼다.
“……셋이자 하나. 그것이 네 권한일 거다. 아르카디옴이 간섭하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정보지.”
베르덴, 알파, 베타.
‘아, 그런가.’
셋은 네 번째 주빈으로서 동일시된다. 데우스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다른 지식인들과 매우 차별적인 요소니까.
끼익.
베르덴이 고맙다고 하기도 전에 데우스가 방에서 나갔다. 그가 사라지자 아르카디옴의 집사들의 옅은 기척이 다시 느껴졌다.
“흐음.”
본의 아니게 데우스와 아르카디옴의 게임에 함께하게 된 베르덴도 ‘운명은 이용할 수 있다’는 문장을 곱씹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이로써 첫 번째 게임──마법적 이해력 문제를 종료하겠다.}
마침내 첫 번째 게임이 끝났다.
* * *
저택 전체에 호스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마자 공간이 뒤바뀌었다.
‘처음 장소로 돌아왔군.’
다시 만찬회장으로 돌아온 베르덴은 양어깨에서 무게감을 느꼈다. 알파와 베타는 베르덴과 한 몸인 듯, 그의 곁으로 이동해 있었다.
“게임은 어땠지?”
{알파. 최강.}
{전부 승리했습니다. 재밌었습니다.}
게임이 아주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녀석들이 어린아이였다면 아마도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확실히 수가 확 줄었군.’
북적거리던 만찬회장에도 첫 번째 게임 후로 제법 빈자리가 보였다. 이내 겁에 질린 시선들이 베르덴 일행에게 향했다.
[알파랑 게임?]
“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객들이 저택 밖으로 도망쳤다.
알파와 베타가 얼마나 활약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주변을 둘러보고 있자 테아렐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다행히 무사하, 지는 않군.”
테아렐의 얼굴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힘겨웠나?”
“……질 뻔했어.”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그녀는 총 세 번의 대결을 펼쳤다.
하객 둘과 열여덟째 귀빈.
하객 둘은 그나마 여유롭게 이겼는데, 만약 작은 실수를 했다면 여지없이 하류 귀빈에게 패배했을 것이다.
상류 귀빈을 이기고 중급 질문권을 얻어야 하는 테아렐은 무척 심란했다.
그때였다.
{첫 번째 게임은 잘 즐겼나? 탈락자와 두 번째 게임을 포기한 이들이 전체 참석자의 7할이나 되니, 그만큼 치열한 게임이었을 테지.}
호스트가 계단 위에 등장했다.
{휴식을 취하고, 식사를 즐기기 이전에 두 번째 게임의 주제를 결정하겠다. 첫 번째 게임은 네 번째 주빈이 뽑았으니…… 다음은 세 번째 주빈과 첫 번째 귀빈에게 동시에 맡기는 것이 좋겠군.}
오징어 집사가 다시 여러 주제가 적힌 공들이 담긴 입방체를 가져왔다.
{마기온과 블러디아,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