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1028

1028화 지적 충돌 (2)

소리밖에 오가지 못하는 탈출 불가능한 감옥에 적막감이 감돈다.
지하인가, 지상인가.
매번 모든 감각이 차단된 상태로 이동한 터라 알 도리가 없다.

“…….”

아르나크 제국의 마법적 구속복에 갇힌 루네시카 안테르노아는 무력하게 구석에 앉은 채로 무릎에 이마를 대고 있었다.
그녀는 사실상 구속이 필요 없을 정도로 심신이 지친 상태였다.

얼굴 곳곳에 구타를 당한 흔적이 역력하다.

루아스 교국은 대악마를 토벌할 당시에 창설했던 성율성단을 조직했다. 직접 상대해 본 적은 없었는데 이번에 마주하게 됐다.
과연 광신도들이었다.
루아스를 모독하니 심문을 빙자한 고문은 참으로 자비가 없었다. 하나, 그딴 육체적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두근…… 두근…….

존재가 깨지는 듯한 격통이야말로 애써 외부의 생명을 불어넣어 가면서 800년 넘게 살아온 초월자도 감내할 수 없었다.

이제는 영혼에 단단히 뿌리내린 검붉은 마력이 여실히 느껴진다. 이건 치유할 수 없는 독이다.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이보다 지독한 맹독은 없다. 죽음을 극복한 옛 왕의 신체마저 훼손한 힘이니.

호흡이 일순 떨렸다.

베르덴의 고유 마력이 언제 다시 잠에서 깨어나 영혼 발작을 일으키려 할지 모르는 터라 본능적으로 불안은 갈수록 더 증폭됐다.
차라리 매일같이 팔과 다리가 잘리는 고문이 더 낫다. 내적인 고통은 외적인 고통의 상한선을 초월한 정도에 있다.

‘그나마 제국이…… 뭔 깨달음이라도 있었는지 내 영혼에 간섭해 안정을 도모했지만, 결국 임시방편에 불과해.’

루네시카는 자신의 한계를 짐작했다.

‘앞으로 며칠도 견디기 어렵다.’

영혼이 끝끝내 원형을 잃어버리고 산산조각 나면 초월성을 상실할 것이다. 즉사하거나, 폐인이 되거나. 결과는 둘 중 하나이리라.
뭐가 됐든 간에 루네시카 안테르노아라는 마법계 초월자는 끝났다. 주검의 영광의 두 번째 하인으로서 어울리는, 또 어울리지 않는 최후였다.

“……단장하고 같이 죽었으면 좋았을까.”

여전히 초월자로서 이상을 추구하기에 삶에 대한 미련이 극도로 강한데도, 우습게나마 그런 생각을 할 만큼 루네시카는 쇠약해졌다. 차츰 초월을 잃어 가는 영향일지도 모른다.
마음속으로 시간을 얼마나 흘렀는지 세는 것조차 이제는 포기했다.

“쿨럭, 쿨럭!”

기침에 섞인 핏물이 구속복을 적셨다.

그때였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핫! 할 수 있는 심문이 더 있는가? 아니면 드디어 날 처형할 작정인가? 제법 자극적이면 좋겠구먼! 이러다가 시시해서 죽어 버릴 지경이니!

오만하고 사나운 난쟁이의 웃음소리가 감옥에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지상 최악의 난쟁이, 그림멜 그롬파르.
대학살의 수인, 바르카젤.

정체 모를 조직에서 나온 비공식 초월자가 시신 조각을 전달하고, 드라벤과 루네시카가 아니무스에 저장한 영혼들을 소모해 육체를 수복한 뒤에 영혼을 불어넣은 고대의 존재들.

포로로 지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바깥의 정보가 들어오고는 한다.
혹독한 심문 중에도 귀는 열려 있다.

‘……폐하의 부활을 위해 세간의 시선을 끌었던 그림멜은 베르덴에게 양손이 잘렸고, 바르카젤은 성녀에게 참패. 하지만 성녀도 무사하지 않다.’

성녀에 관한 내용은 추측이다.
물론 확신에 가깝다.
성녀가 온전했다면 진즉에 루네시카의 심문을 주도했을 테니까. 그년은 성율성단보다도 광신적인 신의 하수인이다.

‘게다가 베르덴도…… 한 번도 심문을 참관하지 않았어. 계속 좌시하고 있을 인물이 아닌데. 아직도 회복하지 못한 건가. 하긴 그날, 한계를 넘어선 걸로 보였으니.’

드라벤과 루네시카를 죽여 버리고, 폐하에게 맞서 히아레마르 내해의 섬을 파괴해 버린 초위 마법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중간에 의식을 잃어 결과를 보지 못했지만 그건 7위계를 웃도는 힘이었고, 7위계 초월자로서 감당키 어려운 화력이었다.

‘그때 폐하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 듯하나 결국에 사문은 열렸다. 폐하는 온전하시다. 크세리온 제국이 군림하고, 전에 이루지 못한 불멸의 세상이 머지않아 도래하겠지.’

루네시카는 아마 그 세상을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지만, 염원에 손이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는 사실에 작은 웃음을 흘렸다.
이상을 맡긴달까?
크세리온 황제를 향한 충성의 정도는 아르나크의 검 못지않았다.

어쨌든.

‘그림멜의 목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감옥 밖으로 이동 중…… 다시 심문이 시작됐나? 정보 하나 얻지도 못했으면서 질리지도 않네.’

그림멜의 목소리가 또 들려오면 다음은 루네시카 차례다. 이제까지 그래 왔다. 그녀는 죽음을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벽면에 머리를 기댔다.

‘……?’

한데 예상했던 것보다 귀에 익은 발소리가 빨리 들려왔다. 의문이었다. 루틴이 깨졌다는 것은 상황에 변화가 있다는 뜻.
심문이 전혀 통하지 않으니 그냥 어디 광장으로 끌고 가 상징적으로 목이라도 벨 작정일까.

‘세상이 보는 앞에서 맞는 죽음이라. 나쁘진 않을지도.’

금속음이 귓가를 흔든다.

루네시카는 입가에 묻은 피를 방치한 채 자신을 찾아온 초월자를 노려봤다. 생명이 꺼져 가는 눈빛은 희미했으나, 그런데도 체념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무척 강렬했다.

“네가 처형하게?”
“처형?”

리반데일 대공은 무슨 소리냐는 듯 한쪽 눈가를 씰룩였다.
그러곤 조소했다.

“영혼 발작을 거듭하다 보니 불안감이 심해졌나 보군. 죽기는 싫나?”
“죽일 거면 네가 죽여.”

루네시카가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처럼 거뭇한 눈가로 어깨를 으쓱였다.

“제국 수호자의 검이면 받을 만하니까.”

로드릭 리반데일 대공.

백 년이 넘도록 아르나크 제국의 검을 자처해 온 초월자. 제국의 또 다른 황제. 대공이 있는 곳이 곧 제국의 국경이다.

서로 다른 제국을 섬기긴 하나 충성하는 자로서 나름의 경의는 있었다. 물론 그딴 하잘것없는 이유가 아니더라도, 아르나크 제국 내정에 깊게 관여할 생각은 없었다.

‘성녀가 위험하다면, 이 녀석은 까다롭다.’

전면전을 치른다면 아르나크의 검을 죽일 자신은 있지만 그의 신념은 꺾지 못할 테니까. 이런 부류의 놈은 동급의 상대가 한 명이든 두 명이든 한순간에 역전의 한 수를 노려 온다.

“처지에 맞지 않은 태도군.”

리반데일 대공이 가드가 없고 검신이 얇은 것이 특징인 [에테스]를 뽑았다. 검기의 파동이 물결친다. 구속복이 일부 갈라지며 루네시카의 사지가 자유롭게 풀렸다.

“……그냥 죽이는 건 재미없으니까 저항이라도 하라는 거야?”
“마도를 개방하지 못하는 너는 내게 어떤 위험도 되지 못한다. 물론 상태가 만전이었다고 해도 다르지 않겠지만.”

어느새 검을 거둔 리반데일 대공이 뒷짐을 지며 등을 돌렸다.

“따라와라. 너를 프로하스로 이송한다.”
“북부?”
“옛 왕 건으로 긴급 정상 회의가 개최됐다.”

리반데일 대공의 스산한 눈빛이, 어깨 너머로 대륙과 아르나크 제국에 혼란을 가져온 초월자를 향했다.

“네놈들의 처우는 그곳에서 결정된다.”

루네시카는 눈을 크게 뜨며 확신했다.
정상 회의에 베르덴이 온다.

* * *

눈보라가 멎은 드넓은 프로하스의 지역은 제법 장관이다.
누구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동토는 그야말로 순백이며, 이 추운 땅에서 자라나는 식물은 생명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콰직.

추위 속에서도 겨우 싹을 피운 겨울꽃이 무섭게 짓밟혔다.

“미치광이의 기운이 저기서 느껴지는군.”

백색의 여행 로브를 둘러 하얀 산맥과 하나가 된 수인이 상당히 먼 거리에서 프로하스의 극지 요새를 주시했다.

바르카젤.

골드힐에서 성녀에게 패배했으나 목숨만은 건진 대학살의 수인이었다. 소매 한쪽이 펄럭거렸다. 저번 전투에서 오른팔을 잃은 까닭이었다.

“그래요? 저는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 역시 괴물 수인 씨네요.”

나르비아의 육악을 이끄는 일악-나르비아 페린이 망원경으로 시야를 확대했다. 그녀는 세 번째 하인이 한창 뒷세계 혈맹을 조직할 때 죽음에서 부활한 고위 범죄 마도사였다.

나르비아는 다 죽어 가는 바르카젤을 몰래 회수한 인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저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정찰이라는 걸 명심해요. 쳐들어가는 건 물론 절대로 유의미하게 힘을 드러내서도 안 되고요. 분명 프로하스 국왕에게 발각될 테니까.”

프로하스의 영토는 드넓으나 멋대로 활개 쳐서는 아니 된다. 공간 이동도 불가능. 방법은 몰라도 이상 현상이 발생하면 귀신같이 북부의 왕이 냄새를 맡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북부 영토 전체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에 준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북부에서 개방된 사문(死門)이 미처 기능하기도 전에 들켜 봉인된 것처럼 말이다.

바르카젤이 길게 찢어진 입가에서 첨예한 이빨을 빛냈다.

“나라고 해서 과감하게 요새에 들이받을 생각은 없다. 저긴 사지다. 여기서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도 위험을 감수해야 할 테지.”

극지 요새에서 감도는 여러 존재감이 바르카젤의 본성을 자극했다. 요새에서 지내는 초월자가 한둘이 아니다.

사냥 욕구와 생존 본능이 대립했다.

바르카젤이 아무리 강자라고 한들 저들을 모조리 상대하는 것은 자살행위.

하물며 이 시대는 기이했다.

성녀가 그러하듯이 바르카젤을 위협하는 존재가 몇이나 있다. 7대 마도왕이나 섭리자 등 바르카젤은 만신창이가 된 육신을 회복하는 동안 나르비아로부터 세계급 강자들에 대해 들었다.

“공간 이동이란 수단이 없었으면 이송 도중에 미치광이와 하인을 빼앗을 수 있을 텐데. 아쉽군.”
“그렇다니까요. 옛 왕의 뜻만 전달하면 그 둘을 함부로 죽이지는 못할 거예요. 그럼 전령을 준비하고 어서 이 지긋지긋한 북부를 벗어나죠.”

나르비아는 차가운 바람에 진저리를 치며 산맥을 내려갔다. 혹시라도 들킬까 봐 무서워서 <비행>조차 쓰지 못했다.

“그런데 옛 왕을 조력하면서 왜 크세리온 제국에 정식으로 소속되지 않는 거예요? 옛 왕을 만난 적도 없고. 괴물 수인 씨의 능력이면 이인자는 따 놓은 당상일 텐데.”
“내 세력을 이끌면 이끌었지 그런 국가에 소속될 이유가 없다.”

바르카젤도 극지 요새를 등졌다.

“난 이미 운명에 속해 있으니.”

또 운명이다.

나르비아는 그가 몇 번이나 언급한 운명이 대체 뭔지 골똘히 생각했지만 그래 봤자 이렇다 할 가설도 세우지 못했다.

‘뭐, 아무래도 좋나.’

특별한 명령이 주어지지 않으면 나르비아는 전쟁 내내 바르카젤에게 붙어 있을 작정이었다.
그 성녀와 사실상 공멸한 힘에 대적할 자는 거의 없으므로.

과거 나르비아를 처형한 마탑도 바르카젤 앞에선 한낱 양에 불과하리라.

* * *

“……?”

극지 요새의 성벽에 서 있던 이자벨라가 남쪽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지?”
“뭔가 시선이 느껴져서.”
“시선?”

아드리안이 남쪽을 응시했지만 이상한 것은 딱히 없었다. 눈보라가 그쳐서 가시거리가 길었으나, 멀리 보이는 것은 마을과 눈 덮인 산맥뿐이었다.

이자벨라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기분 탓이었나 봐. 그나저나 이제 이틀도 안 남았는데 가주는 영 소식이 없네. 연락이 닿을 방법도 없고.”

모두가 대규모 전쟁이 다가온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일까. 극지 요새에는 폭풍 전야 특유의 고요함이 감돌았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그 주군이다. 예기치 않은 변수가 발생해도 능히 타파하시겠지.”
“그거야 잘 알고 있지만…….”

이자벨라가 목소리를 낮췄다.

“상대는 사도잖아.”

아르카디옴의 호스트가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해도 아군보다 적에 가깝다. 사도는 아직 둘이 가늠하지 못한 존재들이었다.

아드리안이 팔짱을 꼈다.

“물론…… 주군께서 좋지 않은 상황에 부닥치실지도 모르지. 그래도 결국에는 정상 회의가 시작하기 전에 도착하실 거다.”

베르덴은 혼자가 아니다.

“알파와 베타가 함께 갔으니까.”

* * *

아르카디옴.

지적 충돌은 체스 구조와 크기가 유사한 심해의 보드게임.
적당한 테이블 위에서 한 손으로 감싸고도 남는 작은 말들을 옮겨 가며 승패를 가리는, 서로 지적 능력을 부딪치는 놀이다.

그런데 호스트가 이 아르카디옴의 마지막 게임을 위해서 새롭게 개량한 지적 충돌은, 그 규모가 차원이 달랐다.

설산, 임야, 황야, 사막, 호수, 바다 등 현실 속의 자연을 모방한 다각형의 세계.
그것은 멈춰 있지 않고 실제인 양 움직였다. 사막 지역에서는 모래바람이 흩날렸고, 바다 지역에서는 파도가 쳤다.

각 타일은 사람이 몇 명이나 들어가도 될 정도로 넉넉했다. 실제 사람 말이다.
호스트의 새로운 지적 충돌은 그야말로 축소된 세상이었다.

그리고 기물 하나하나의 외적 형태가 무척이나 섬세했다. 만약 색만 제대로 입혔다면 실제 인물로 착각할 정도였다.

베르덴이 시선을 옮겼다.

‘실물로 기물을 본뜬 것은 에온만이 아니다.’

운명의 진영에는 인간계 최초의 왕, 드래곤, 옛 왕, 사막의 신, 거인 등이 있었고…….
저항자의 진영에는 데우스 위덴과 메이아 등의 기물도 있었다.

‘이상하군. 내 진영의 모든 기물은 특정 인물들로 보이는데, 다른 두 진영의 기물은 일부밖에 식별되지 않는다. 그 외에는 일반적인 기물과 같다. 혹시 내가 정체를 파악한 존재만 인식되는 건가?’

그런 베르덴의 생각은 적중했다.

{기물의 외형은 개인이 따라 달라 보인다. 쌓아 온 지식에 따라서 세상을 대하는 시야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

호스트는 수천 개의 타일로 이루어진 보드게임을 굽어봤다. 그가 손가락을 튕겼다. 베르덴, 블러디아, 데우스 앞에 규칙서가 나타났다.

{이 지적 충돌은 기본 규칙을 토대로 삼았기에 진행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으나 구조가 개편된 만큼 새로운 규칙이 추가되었다. 그러니 세 번째 게임의 참가자들에게는 개정 규칙을 익히고, 전략을 구상할 시간을 주도록 하지.}

두 번째 게임과 세 번째 게임 사이의 휴식을 짧게 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도록.}

철컥.

허공에서 생성된 문들이 일순간에 참가자들을 집어삼켰다. 개인 공간으로 이동한 것이다. 관객들은 숨죽인 채 호스트와 덩그러니 남은 거대한 지적 충돌 무대를 바라봤다.

{관람 혜택을 받은 탈락자들과 포기자들은 나를 따라와라.}

호스트가 계단을 올랐다.

{극장으로 안내하마.}

아르카디옴의 집사들이 당장 좌우로 늘어서 길을 만들었다. 네 번째 귀빈은 기대감에 차오른 듯이 선뜻 발을 내디뎠다.
루자크는 말없이…….
테아렐은 심해처럼 깊은 눈동자로 호스트라는 존재를 좇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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