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1063

1063화 신하(神下) (3)

쿵! 쿵! 쿵! 쿵! 쿵!

대전당의 심층 복도가 일정 간격마다 격벽으로 차단된다.
보헤미른 마탑의 비행정 함대가 사차원의 경계를 넘어 침입한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 삼엄함은 공기의 흐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지층(地層)과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버린 지하에서 고요한 긴장감이 흘렀다.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위상들을 비롯한 극소수였다.

군림자 라테온이 투구를 제외하고 전쟁 무구를 갖췄다. 그는 육중한 방패의 손잡이를 다잡아 감각을 끌어올리며 물었다.

“악신의 잔재……? 아니, 그런 것은 대체 어디서 구하는 겁니까?”

위상들의 의문이 대개 그러했다.

현대에서 신이라고 하면 백이면 백 빛의 여신을 떠올린다.
아는 게 여신뿐이니까.
그마저도 빛의 신성력과 빛의 기적이 존재하기에 실존을 믿는 것이지, 실물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실재감 자체는 희미했다.

그런데 악‘신’이라니?

베르덴이 말하지 않았으면 우스갯소리로 넘겼을 것이다. 대부분 이성을 중시하는 마법사이니 더더욱 그래야 마땅했다.

카인이 어깨를 으쓱였다.

“딱히 이상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왜 이상할 게 없는데?”
“선배가 훨씬 더 이상하니까요.”

라테온은 낮게 신음하며 곰곰이 베르덴의 행적을 돌이켜봤다.
음, 말도 안 된다.
의식을 잃었다가 수십 일 만에 깨어나더니 8위계 초월자가 된 것 자체가 불가해다. 모든 걸 베르덴과 비교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긴 하지.”
“그걸로 납득하는 거냐? 대충이군. 그러니까 제 투구도 대충 부숴 먹지.”

단차가 있는 계단에 걸터앉은 그하룬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눈길로 라테온을 쳐다봤다.

“다른 무구도 죄다 손상되고.”
“……내가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나? 초월자하고 붙었다고.”
“그래서 잘도 살았다고 칭찬이라도 해 주랴?”

라테온은 피가 거꾸로 솟았다.

“마울러, 그놈과 조우해서 투구 하나 망가진 거면 싸게 먹힌 거지. 그게 꼴보기 싫으면 안 망가지는 무구나 제작해 주든가.”
“이 새끼 말뽄새가?”
“와, 카인. 저 사람 노인 공경도 모르나 봐.”
“노인 공경은 무슨. 저 드워프 팔뚝 크기나 보고 말해라.”

그하룬이 야장일로 단련한 짤막한 몸은 드워프의 상식마저 벗어났다.
겉보기만이 그렇고 실제 근력도 그러했다.

유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
“너도 납득이 빠르구나, 꼬마.”
“편들어 줄 테니까 나도 스태프 하나만.”
“네게 적합한 무기는 이미 갖추고 있잖냐. 과하면 독이다. 그릇이나 키워라.”
“칫.”

유니아의 마법적 능력을 최대로 끌어낼 수 있는 아니팩트는 대륙을 둘러봐도 스태프 [울티마] 이상을 찾아보기 어렵다.

굳이 바꿀 이유가 없다.

[울티마]를 강화하면 안 그래도 탈진을 일으키는 신체적 부담이 반영구적인 손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생긴다.

그하룬이 보기에 유니아의 현재 경지로는 지금의 무장 상태가 알맞았다. 한 번 싸우고 죽어 버릴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는 아직 철이 덜 든 천재 마법사를 쳐다보고는 라테온에게 콧방귀를 꼈다.

“뭐? 절대로 안 망가지는 무구? 새끼가 말이나 못 하면. 꼬우면 다른 대장장이 찾든가.”
“그건 좀.”
“그건 좀, 뭐.”
“……시정하지.”
“시국이 시국이니 더 지랄은 않으마. 투구는 새로 제작해 줄 테지만 전쟁 끝나면 너는 광산행이다. 와서 라이너스하고 광물이나 캐도록.”

라이너스가 옆에 있었다면 “예? 스승, 왜 저한테 지랄이신지……?”라고 했겠지만 그는 주인 없는 땅의 드워프 요새에서 한창 대장일에 열을 올리고 있기에 최근 바깥에 나갈 새도 없었다.

그하룬이 혀를 찼다.

“쯧, 안목도 없는 녀석들이.”

단독으로 베르덴이 신이 되었음을 간파한 인물은 그하룬뿐이다. 드워프는 신을 숭배하지 않지만, 그는 여기 모인 위상들보다 강하게 신의 존재를 실감하고 있었다.

‘저 악신의 잔재라는 거, 상당히 위험한 물건인 것 같군.’

리토 바르슬란도 보고 싶다며 시위를 해 댔는데, 베르덴이 기어코 거절한 것을 보면 위험을 가늠할 수 없다는 의미일 터.

그하룬의 참관이 허락된 이유는 순전히 정신력이 아주 막강하기 때문이다. 일신의 무력도 국가급 전력 범주이고 말이다.

“신이라…… 흥미로운데.”
“줄곧 신이란 추상적이되 미증유의 힘을 보유한 개념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제 추측이 틀렸나 보군요.”
“틀림없이 강할 테지, 신이란 존재들은.”
“…….”

배교의 무나딤은 주변 소음이 들리지 않는 듯이 악신의 잔재가 봉인된 작은 은빛 기둥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실제로 신을 본 적이 있다.
게다가 정신력도 강인하기에 무력과는 별개로 입회가 허락됐다.

‘섬뜩해, 사막의 신과는 다른 의미로.’

오랜만에 예지력이 반응했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혼잡했다. 그녀 혼자만의 역량으로는 악신의 잔재로 인한 여러 위험의 가능성을 선명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것 같았다.

파아아아앗!

현자들은 베르덴이 지정한 거리에서 마력회로를 활성화했다. 각자 마도를 개방하여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했다.
수호의 현자인 메드란트 케덴의 보호막이 겹겹이 쌓여 중심부를 격리하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베르덴 폐하께서는 신마저 발 아래에 두셨──컥.”
“이리 오기나 해.”

레바나에게 목덜미를 콱 잡힌 알데반이 외곽으로 끌려갔다.

베타도 마력의 보호막으로 보안에 한층 더 힘을 실었고, 알파는 베타의 머리 위에 앉아서 베르덴에게 신호를 보냈다.

[충격 대비. 완료.]

마법적 장막 내부에 남은 이는 베르덴, 아드리안, 이자벨라.
안전을 확보했으니 실행의 때다.

“이 악신의 잔재에 피를 먹이면 개체의 형태를 갖게 된다. 어떤 형태인지는 피의 주체에 따라 다르니 뭐가 나올지 알 수 없다.”

베르덴이 손바닥만 한 은빛 기둥을 마법진으로 바닥에 고정시켰다. 억제력을 거두자 그 안에서 촉수 같은 것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가공된 바르그논의 시신경.

“흠……!”
“그, 극악한 생김새로군.”

누가 봐도 악의적인 기괴함에 위상들이 최대로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그하룬도 거대 망치를 한 손에 쥐고 눈을 가늘게 떴다.

베르덴이 말했다.

“전원, 긴장을 풀지 말도록.”

베르덴이 오른손을 옆으로 뻗었다.

“시작해라.”
“예, 주군.”

아드리안이 광검으로 베르덴의 손끝을 베어 옅은 출혈을 일으켰다.

맺히는 핏방울.

이를 <염동력>으로 조작하여 허공에 수직으로 떨구었다. 아래에서 먹이를 기다리는 악신의 신경 다발이 일제히 머리를 쳐들었다.

‘태고의 모험에서 등장한 악신의 잔재는 두 개의 다리와 하나의 팔이 큰 머리에 달려 있고, 진물이 잔뜩 흘러내리는 붕대를 두른 거대한 괴이였다.’

새벽녘의 기사이자 대악마의 군단장 하드라스의 아내이기도 한 엘로리스의 피를 먹고서 그런 형체를 갖춘 것이다.

과연 베르덴의 피에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신의 힘을 부여받은 신인이 아니라 진정한 신의 혈액에 깃든 생명력이라면 모험극에서 본 것 이상의 괴물이 될 터.

‘부디 실망시키지 않기를.’

폐기 처분은 가급적 피하고 싶다.

베르덴에겐 현재와 미래를 위한 강대한 전력이 하나라도 절실했다.

슉─콰득!

가장 굵은 촉수의 끝이 벌어지더니 떨어지는 피 한 방울을 한순간에 삼켰다. 촘촘하게 박힌 이빨들이 서로 부딪쳤다.
동시에 은빛 기둥 틈새에서 기어 나온 촉수들이 일제히 경직됐다.

직후 반응이 일어났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신경 다발이 한 가닥 한 가닥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쩍 갈라졌다. 순식간에 폭증하는 존재감이 대전당의 심층 공간을 뒤흔들었다.

초월자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관측자들에게 가해지는 압력은 현대의 인물에게 아주 생소한 것이었다. 알더니스는 촉수의 변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신위(神威).

그들은 비로소 신을 느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괴아한 함성이 청각을 압도했다.

은빛 기둥이 금이 갔다.
봉인이 깨졌다.

거대해진 촉수들이 서로 뒤얽히며 새로운 형상을 취했다. 사족보행의 인간. 피부가 없어 근육과 신경이 고스란히 외부로 드러났다.

‘사막의 대재해와 비슷한 기운, 아니, 아니야.’

배교의 무나딤이 숨을 죽였다.

‘한없이 그 원형에 가깝다……!’

신적 존재가 강림했다.

눈은 하나였다.
입과 코는 없었다. 귀도 없었다.

그저 커다란 눈동자가 머리 한가운데에 자리했을 뿐이다. 눈꺼풀 없이, 동공이 수축과 확장을 반복하다 이내 초점을 맞추었다.

‘제대로 신격을 품고 있군.’

베르덴은 그것과 시선을 교차했다.

미약하게 떨리는 악신의 동공에 수평으로 선이 그어졌다.
눈동자 안에 입이 있었다.

[세계수?]

* * *

유니아는 정면을 겨냥한 [울티마]를 보다 강하게 쥐었다.

“저거…… 말한 거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은데.”

그레이브가 소검과 단검을 교차하곤 당장이라도 <전이>할 태세를 갖췄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기이한 불쾌감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누구도 악신이 무슨 지금 말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초월자의 의념처럼 상대의 내면에 뜻을 전달하는 소통 방식이 아니라 물리적인 음성이었으나, 평범한 언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신의 언어.

오직 신적 존재만이 구사하는 전유물. 그렇기에 알아들을 수 있는 것 또한 신 이외는 없다. 베르덴은 그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악신도 내게서 세계수를 보고 있군.’

베르덴이 물었다.

“네가 바르그논인가?”

[바르그논…….]

피부를 벗긴 인체 모형 같은 악신이 제 옆머리를 붙잡았다. 고장난 기계처럼 움찔거리다가 베르덴에게 다시 시선을 꽂았다.

[세계수가 아니군. 그녀가 아니야. 하지만 너는 세계수다. 무슨 신이지? 모르겠군. 나는 누구지? 난 바르그논. 바르그논의 신경 다발. 나는 무슨 신이지? 모르겠군. 알 수 없군. 누가 나를 죽였지? 나는 언제 죽었지? 신들의 전쟁…… 대분기…… 대분기…… 그래, 대분기…….]

대분기.

혼란과 평화의 대립.

혼란을 주도하다가 끝내 패색이 짙어지자 대륙을 아예 파괴하려고 했던 고대 신 세력은, 세계수에 의해 주 전력이 침묵의 사막에서 찢어 발겨졌다.

바르그논은 그 전쟁에 참전한 신인 모양이었다.

[세계수가, 둘. 반드시 하나여야 하는데 둘. 둘 이상 존재하면 안 되는데 둘.]

“무슨 의미지?”

[세계수, 너도 위선자였구나.]

바르그논이 커다란 눈에 핏발을 세웠다. 머리에 닿은 손가락 끝이 살점을 파고들었다. 그가 동공으로 한껏 조소했다.

[대분기에 승리한 평화의 주체 중 하나가 도리어 우리보다 더한 혼란을 야기하다니. 이보다 최악이 또 있을까. 이럴 거면 왜 승리한 거지?]

“……?”

[세계수는 언제나 단 하나여야 한다. 없어서도 안 되고, 둘이 되어서도 안 된다. 그것이 세계가 타고난 섭리…… 아.]

바르그논이 뭔가 깨달았다는 듯 베르덴을 새롭게 직시했다.

[낯설지 않다고 했는데 너였군.]

진실된 속삭임이었다.

[나를 죽인 것이.]

바르그논의 눈동자를 담고 있는 베르덴의 뇌리에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끝이 없는 미궁 아래로 강제로 전이당한 최초의 마탑, 그보다 훨씬 더 깊은 지하엔 [그링 아르카넘]이 봉인된 장소가 있었다.

그곳에는 고대 신들의 잔재로 가득했다.

전부는 아니었으나 대부분 세계수가 살해한 고대 신들이었고, 그것들을 한곳에 모아 봉인한 이는 초대 마도왕이었다.
그들에게 깃은 신성은 초대 마도왕도, ‘당신’도, 세계수도 완전히 없애지 못했으니…….

베르덴은 파멸의 개념으로 가장 위대한 존재들도 사멸시키지 못했던 신들에게 종막을 안겼다. 그리고 바르그논도 그중 하나였다.

콰아아아아앙!
바르그논의 죽음을 인지하는 그 찰나에 베르덴이 충격을 받고 벽을 관통했다.
일격에 마법 보호막이 모조리 붕괴됐다.

[감히 미숙한 신 따위가. 나의 신성을 멸해?]

“악신은 악신인 모양이군.”

악의로 가득한 바르그논의 눈동자가 일그러졌다. 눈길이 뒤틀렸다. 베르덴은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그의 곁에 서 있었다.
일격을 허용한 것은 한낱 분신이었다.

“호스트가 너를 태고의 모험극에 등장하게 만든 의도가 있을 텐데.”

베르덴은 아르카디옴 게임의 요소 하나하나에 진의가 있다고 믿었다.
호스트는 계속 그러했으니까.

“아마 이것밖에 없겠지.”

베르덴이 아공간을 개방했다.

‘영혼의 서’로 뒤바뀐 [그링 아르카넘]이 현세에 소환됐다. 그런데 아르카디옴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기운이 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절규, 혹은 평안.

그런 희미한 목소리들.

“저건…….”

이자벨라의 형안이 [그림 아르카넘]의 본질을 시각화했다.

“영혼들?”

[그링 아르카넘]이 제법 많은 영혼을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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