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1073

1073화 군단들 (5)

처음으로 발을 디딘 아크에서 방주의 교류회를 치렀던 때를 상기했다.
그 기억의 흐름은 레그리트와 일대일 마법전을 벌인 뒤 그녀와 독대하여 대화를 나누었던 장면으로 이어졌다.

과거의 베르덴이 묻는다.

───왜 방주에는 루아스교가 존재하지 않는 거지?

아크에서 루아스교의 황금빛 정십자가를 본 적도 없고, 방주의 관련자 중에서 신성력을 다루는 인간도 없기에 나온 질문이었다.

과거의 레그리트가 대답했다.

───마땅한 의문이군. 방주는 개인적으로 종교를 신앙하는 건 간섭하지 않는다. 루아스교의 신성력과 기적은 인류를 치유하고 수호한다는 건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하지만 방주로서는 그럴 수 없다.

───왜지?

───신은, 인간이 아니니까.

오직 인간종만을 위하는 방주의 신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베르덴은 바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쉐오른 장로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옅은 자줏빛을 띠는 눈동자에 푸른 고리가 떠올라 있다.
그가 대체 어떤 방법으로 베르덴 자신의 변화를 인지했는지는 알고 있다.

케르노든 가문의 고대 혈통 – 근원의 고리.

쉐오른 장로는 본디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으로 꿰뚫어 볼 수 있다. 베르덴이 준초월자임을 간파했던 것처럼 말이다.

‘방주에 있어서 나는 인간인가.’

베르덴은 신격을 깨닫고서 줄곧 염두에 두었던 문제에 직면했다. 방주의 여섯 번째 선장으로서 그는 방주를 납득시켜야 했다.

이곳은 도시 어레인 변두리에 위치한 이자벨라의 개인 연구실.
적막 속에서 베르덴이 차를 따랐다.

“장로님께서 생각하는 인간이란 무엇입니까.”
“좁게는 인간이란 종족 자체, 보다 넓게는 스스로 인간임을 잊지 않는 자일세.”

쉐오른 장로가 은은한 버터 향이 감도는 차를 한 모금 음미했다.

“초월자는 빛의 교리상 루아스의 신성력으로부터 외면받기에 순수한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네. 하지만 그렇다고 루아스 교국이 초월자들을 엘프나 드워프, 수인 대하듯이 하지도 않지.”
“예, 성녀 에르세티아는 초월자를 교화 대상으로 보고 있더군요.”
“그렇네. 교국이 어떤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태도네. 초월자는 인간인가? 이에 대해 오랜 세월 다양한 해석이 분분했지. 그중에서 초월자에게 신성력의 긍정적인 영향이 통하지 않는 원인을, 나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인간에게 신앙심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자립(自立)설’에 무게를 두고 싶네.”

무투계와 마법계 초월자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각성을 통해 이상을 추구하며, 수명은 늘어나고 육체 나이는 고정되거나 젊어진다.

반면 신앙계 초월자는 신물을 통해 각성 현상을 겪는다. 신인들의 이상 또한 빛의 신을 향한 신앙심에 초점을 두며, 그들의 노화는 겉모습만으로 드러나되 실제 수명은 인류의 한계에 속해 있다.

인간을 벗어난 초월자.
인간을 벗어나되 인간의 한계를 계승한 초월자.

초월자가 신성력에 도움을 받는 기준선은 신앙의 의존도다.

이것이 초월자 자립설이다.

“그리고, 나는 더 나아가서 초월자야말로 진정한 인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네.”
“신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입니까?”
“신이 인간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네. 만약 신이 인간이라고 밝혀지면 방주는 신성력을 다루는 인간도 품에 안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신은 미지의 존재네. 그런 존재로부터 힘을 받은 인간들과 거리를 두는 방침은 인간이란 종을 위하는 데 있어서 당연한 경계심이지.”

쉐오른 장로가 찻잔을 비웠다.

“그렇게 생각하면 초월자를 순수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자력(自力)으로 의지를 관철하니 말일세.”
“순수한 인간. 글러트니가 주창한 신인류 개념이 떠오르는군요.”
“글러트니는 섭식을 통해 홀로 진화를 거듭하며, 본인들만의 기준으로 판단한 약점들이 모조리 거세된 인류를 바라지. 이타(利他)가 필요없는 완벽한 인간. 선장에 의한 인간들의 단결성을 중시하는 방주와는 정반대의 이념이야. 난 초월자를 완벽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네. 단순히 종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해도 인간이라는 말을 하고 싶을 뿐.”

베르덴이 손수 고풍스러운 주전자를 기울여 빈 찻잔을 채워 주었다.

“정리하자면.”

쉐오른 장로가 말을 이었다.

“빛의 신앙은 오직 인간만을 치유하며 보호하는 종교. 인류의 번영을 논함에 있어서 루아스교는 결코 떼어 놓을 수 없네. 하나, 신앙만으로 인간을 구분하는 것은 오만이네. 초월자도 오직 인류에게서 탄생하는 존재이니, 우리는 근본으로 거슬러 올라가 뿌리를 볼 필요가 있네.”
“다른 인간과는 달라졌어도, 그 본원이 인간이면 인간이라는 말씀입니까.”
“스스로 인간임을 잊지 않는다면.”

쉐오른 장로가 미소를 머금었다.

“베르덴, 레그리트는 인간이네.”

미지의 탐색자────레그리트 나르실리아는 용인이 되었다.
인간이 아닌 마족이 되었다.

그럼에도 레그리트가 방주에서 추방당하는 일은 없었다. 뿌리는 인간이고, 그녀 자신이 인간임을 잊지 않았기에.
용인으로서의 힘은 신성력처럼 바깥에서 온 것이 아니라 온전히 레그리트의 것이다.

“자네의 곁에 있는 이자벨라 또한 인간임을 잊지 않으면 인간이네. 인체 수술을 받지 않으면 육체가 붕괴하는 데미안도 인간이네. 글러트니 또한 엄연히 인간이지. 인간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야. 그것은 마치 누구나 가진 이름과도 같네.”

쉐오른 장로가 두 번째로 비운 찻잔을 계속해서 쥐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 눈으로 8위계에 도달한 초월자를 여럿 살폈기에 알 수 있네. 자네는 벽의 벽을 넘어선 그들과는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네.”

베르덴이 주전자를 든 채 물었다.

“제게서 무엇이 보이십니까.”
“잿빛. 고고한 회색.”

쉐오른 장로는 안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가 고통을 느꼈다.
동공에 맺힌 고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나로서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네. 정보조차 얻을 수 없어 이렇다 할 가설마저 세울 수 없네. 지금 내 판단은 방주의 판단과 동일하네. 그러므로 자네가 무엇인지는 자네만의 정의할 수 있겠지.”

방주가 질문한다.

“초월자에게 없는 힘을 가졌고, 엘프가 형제자매 이상으로 여기며, 인간과 이형종이 결합한 마족의 탄생과 관련이 깊은 초월자.”
“…….”
“다시 묻겠네. 자네는 지금도 인간인가?”

베르덴의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베르덴이 언제나 베르덴이듯이 많은 변화를 거듭했어도 그는 본질을 잊지 않았다.

“인간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여전히 인류의 선장이네.”

명확하면서도 다소 모호한 대답이었으나 쉐오른 장로는 만족하며 찻잔을 내밀었다.

베르덴은 공백을 채웠다.

탁.

쉐오른 장로는 세 번째로 찻잔을 비운 뒤에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럼 본론으로 넘어가겠네. 사막에서 돌아오면 다른 공간 개념도 가르치겠다고 했는데, 바로 지금이 그때.”

공간이 울렁거린다.

“공간의 파괴를 논할 때네.”

* * *

이자벨라의 개인 연구실은 연금술 재료와 다양한 포션 등 마법적인 냄새로 가득했다. 마법사들에게는 안정감을 불러일으키는 공기였다.

“히아레마르 내해의 섬이 파괴되고, 시간이 흘러 8위계로 승격한 자네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공간의 급격한 변화를 감지했네. 세계의 주시자의 힘을 빌려 당시 대륙을 주시하고 있었기에 포착할 수 있었던 흔적이었지.”

세계의 틈새에서 현실로 돌아온 베르덴은 침묵의 사막에서 깨어났다. 한창 대륙에서는 사문으로 인해 <전이>에 문제가 생긴 시점이었다.

베르덴은 서둘러 현장으로 복귀하기 위해 공간 좌표를 파손, 일그러진 두 개의 좌표를 인위적으로 연결해 통로를 구축했다.

이는 쉐오른 장로의 공간 지배와 베르덴이 초위 마법으로 경험한 차원의 개념으로 고안한 상당히 무식한 공간 이동이었다.

“자네의 그 공간 이동은 얇은 종이에 작은 상처를 내어 꿰뚫는, 잠시나마 앞면과 뒷면을 하나로 만들어 반대편으로 넘어갈 수 있게 하는 방식이었을 걸세.”
“정확합니다.”
“아주 위험한 마법이었네.”

쉐오른 장로가 진중한 목소리로 조언했다.

“그런 방식의 <전이>는 좌표로 이루어진 세계를 인식하고, 그 안으로 직접 들어가야만 하지. 자칫하면 갇힐 수 있고, 숙련도가 부족하면 잘못된 공간 좌표로 전이될 수 있으며, 공간의 수복에 휘말린 순간 온몸이 갈가리 찢길 수도 있네. 더군다나 현재는 사문이라는 것에 의해 나조차 알지 못하는 공간 파동이 발생하고 있기도 해.”
“하물며 공간이 완전히 수복하기 이전에 공간에 그 정도의 손상을 다시 가하게 되면 본 적 없는 공간 왜곡이 발생할지도 모르죠.”
“그걸 알면서도 두 번 이상 행했으니 무모하다고 평할 수밖에.”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공간이 수복할 때까지 기다린 것은 아주 잘했네. 검이 위험하다는 걸 누가 모르겠나? 중요한 건 언제나 누가 그 검을 쥐었느냐지.”

그가 천천히 양손을 모았다. 두 손바닥 사이에 적당한 여백을 두며.

“자네의 그런 공간 활용은 공간의 파괴에 한없이 가깝네. 다만, 완전하진 않네. 파괴를 행함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없기에.”
“중요한 요소라면…….”
“이 역시 직접 보는 것이 빠를 테지.”

마도 <조허(操虛)>

쉐오른 장로의 손 안에서 공간의 밀도가 극도로 높아졌다. 특유의 자줏빛이 명멸하더니 마력이 깃든 공간이 ‘그물’의 형상을 갖췄다.

“그물을 사용하면 어찌해야 할까?”
“회수해야 합니다.”
“바로 그거일세.”

공간의 그물이 오른손에 감겼다.

“사후(事後)를 생각하는 것.”

쉐오른 장로가 팔을 당기더니 그물을 던지듯이 우측으로 뿌리쳤다.

<공간 파괴>

콰자자자자작────────!

쭉 날아간 공간 그물의 결을 따라서 공간 자체가 박살 났다. 유리가 잘게 깨지는 굉음이 베르덴의 귀를 강하게 때렸다.
3차원의 조각난 파편들이 허공에서 느릿하게 회전했다.

그 순간.

쉐오른 장로가 뿌리쳤던 오른팔을 다시 당기자, 공간의 그물이 그 궤적을 따라서 되감기듯 파편들을 끌어당겼다.

……!

무수한 조각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파괴된 공간이 수복됐다.
마치 누군가가 완성된 퍼즐을 친 탓에 공중으로 떠오른 퍼즐 조각들이 저절로 돌아와 다시금 퍼즐을 완성한 듯한 광경이었다.

베르덴이 즉시 공간 인식을 끌어올렸지만, 분명 붕괴됐던 공간에는 그 어떠한 파괴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파괴와 복구를 함께……?”
“파괴에 특화된 자네의 검붉은 마력으로는 아마 재현하기 많이 어려울 걸세.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러한 마도를 개척했다는 점에서 자네의 파괴는 나보다 고차원적인 영역에 닿아 있을 터.”

쉐오른 장로가 마도를 닫았다.

“베르덴, 그러나 파괴만 일삼아서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걸세. 파괴가 이루어지면 필히 재건이 뒤따라야 하며, 궁극적으로 창조가 있어야 파괴도 성립하는 법이니.”

그 문장이 파괴의 개념에 대한 베르덴의 견문을 넓혔다.

“이것이 나의 파괴일세.”

베르덴은 파멸의 개념에 통달했다. 8위계가 그 증명이었다. 지금의 베르덴은 물질계 밖에 있는 것도 멸절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파괴 이후의 재건이나 복구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한 적이 없었다. 파멸의 마도는 그런 것까지 아우르지 않으니까.

‘그럼 <파멸>이 일으키는 여파를 <무한>으로 제어한다면…….’

베르덴이 마력회로를 활성화해 공간을 지배했다. 쉐오른 장로처럼 손을 모았다. 공간의 밀도가 빠르게 높아진 그때였다.

“어허!”

쉐오른 장로가 다급하게 손날로 베르덴의 양손의 중심점을 갈랐다.
지배되었던 공간이 해제됐다.

“휴, 자네의 마법적 이해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네. 그래도 숙련도가 부족한 지금 <공간 파괴>를 시험하면 위험하네. 게다가 여긴 도시 안이지 않나?”
“범위는 이 공간으로 한정했습니다만.”
“정정하겠네. 내가 위험해.”
“아.”

쉐오른 장로라서 엇나가도 안전할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니 쉐오른 장로 또한 타인의 공간적 파괴를 상대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공간 파괴>는 쉐오른 장로의 고유 마법이므로.

베르덴이 마력을 가라앉혔다.

쉐오른 장로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 <공간 파괴>의 바탕 원리는 충분히 이해한 것 같아서 다행이네. 부디 자네가 추구하는 이상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베르덴은 예를 갖춰 감사를 전했다.

“생각지도 못한, 제게 필요한 가르침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자네의 성장이 나의 보람이네. 하지만 나를 쉽게 따라잡을 수는 없을 걸세. 공간 개념은 깊이, 또 깊이 파고들수록 어려워지니.”

쉐오른 장로는 훗날 공간 초위 마법도 보여 주고 싶다고 하며 껄껄 웃었다. 마법을 아낌없이 베풀고도 그는 역시 전혀 아까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베르덴은 은혜를 모르지 않았다.

“쉐오른 장로님께서는 지금도 미지를 추구하고 계십니까?”
“죽는 날까지 그러하겠지. 그것이 마법사의 숙명 아니겠나.”
“선물입니다.”

그가 아공간에서 나뭇가지를 소환했다.

“이건…… 평범한 나뭇가지가 아닌 듯한데.”
“투하르로 들어가는 열쇠입니다. 단 한 번밖에 쓸 수 없는.”

투하르에 심어진 세계수의 나뭇가지.

베르덴이 직접 투하르 출입을 허락한 사람에게만 주는 일회용 통행증이다.

“쉐오른 장로님께서 지금도 마법사로서 미지를 추구하고 계신다면, 이 작은 나뭇가지가 길을 안내할 겁니다.”

초대 마도왕은 베르덴의 스승인 관리자가 무엇을 하는지 진즉에 꿰뚫어보고 있을 것이다. 그야 자신의 분신이니까.
게다가 방주의 하늘섬인 아크는 초대 마도왕의 어떤 안배.

다시 말해…… 방주 전체가 초대 마도왕의 영향에 놓여 있다. 실제로 방주의 지도자는 초대 마도왕에게 직접 아크를 받기도 했다.
관리자에 대해 밝힐 수 있는 세력이 있다면 당장 방주가 유일하다. 무엇보다 레그리트가 관리자를 접하기도 했고 말이다.

초월자들로 하여금 진실을 좇게 하는 것.

이는 베르덴은 노림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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