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1077

1077화 죄인들의 개전 (1)

“전쟁을 시작하지.”

아칸드가 옥좌 뒤편에 꽂혀있던 용검 [마그라스]를 붙잡았다.
전쟁 선포와 함께 발밑이 흔들렸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

먼바다로부터 절벽 아래까지 거친 파도가 높이를 키우며 몰려왔다. 뭔가가 다가온다. 머지않아 만(灣) 한가운데에서 반경이 무려 수십 킬로미터에 육박하는 광활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대지가 부상하고 있다.’

그것은 첫 번째 하인인 드라벤의 기억에 없는 낯선 현상이었다.
과거와 현재의 차이.
아칸드가 최측근으로 대동한 네 마리의 언데드와 완전한 고룡으로 되살아난 사룡 네크바엘처럼 800년 전에는 없었던 전력임이 자명했다.

바다 밑에서 솟구치는 암흑.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

어둠 전체를 뒤덮고 있던 바닷물이 구름에 가려진 햇빛처럼 쫓겨나듯 폭포가 되어 쏟아졌다. 천문학적인 질량이 빠져나가고 바다는 곧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격하게 소용돌이쳤다.

베르덴과 알파가 천천히 시선을 높였다.

크세리온 제국 전력과 대치하고 있던 초월자들도, 수왕 안티아스도, 제라클 황제도 정신이 홀린 것처럼 그쪽으로 눈길을 향했다.
그들의 눈빛에 같은 감정이 떠올랐다.
여지 없는 경악이었다.

“하늘, 섬?”
“하! 천공 도시라. 해괴한 걸 다 보는군.”
“예전에는 저런 거 없었는데……?”

거대 도시 가르간트를 제외하고 인류사의 그 어떤 대도시보다 더 드넓은 황도가 상공에 현현했다. 바로 허공에 멈춰 선 초거대 섬 위에 말이다.

신(新) 크세리온 제국 황성 – 시타델(Citadel).

모두의 머릿속에서 그 이름이 메아리쳤다.

───────────────!

베르덴의 초감각에 시타델에 주둔한 언데드 군단이 감지됐다.
수십만, 수백만, 그 이상.
더군다나 제법 불길한 존재들이 많다. 세계 연합의 국가급 전력들이 존재한다면 크세리온 제국에도 그런 언데드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가증스러운 것들…….]

사룡 네크바엘은 시타델 정상에서 고고하게 자리를 잡고는, 운명과 저항을 비롯한 모든 사상을 증오하고 저주하는 눈으로 세계를 노려보고 있었다.

철컹.

아칸드가 용검을 뽑아 한쪽 어깨에 올렸다. 황제의 의복이 옛 왕이란 유일무이한 이명에 걸맞은 갑옷으로 화했다.
차디찬 금속과 금속이 맞닿으며 서슬 퍼런 소음이 귀곡성처럼 고막을 자극했다.

“이것이 나의 제국이다.”

마침내 ‘당신’의 여섯 번째 사도가 진정한 존재의 격을 드러냈다.

히아레마르 내해에서와는 다르게 온전히 회복한, 죽음을 극복한 죽음의 사도.
천 년 역사상 가장 많은 초월자를 살해한 인간.

그 존재감이 베르덴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어두워지는 하늘, 뒤틀리는 대기, 생명체를 두렵게 하는 공포, 운명을 지향하는 사명감, 굴레를 거부하는 저항, 창조에 대적하는 파멸…….

주변 일대에서 소리가 사라졌다.

사방에서 불규칙적으로 내리치며 황야를 불태우고 바다를 물들이는 벼락의 연속체조차 그저 빛만 내세울 뿐 뇌성을 터뜨리지 못했다.

오직 두 명만이 침묵을 벗었다.

“아직 루네시카에 대한 답을 듣지 못했군.”
“협상은 결렬이다.”

베르덴이 마주 일어섰다.

“개전 장소와 시간은?”
“중앙 대륙. 딘엘 왕국과 테르네티아 연방의 국경 지대, 폴테인 평야.”

아칸드가 무정한 얼굴로 절도 있게 옆으로 용검을 휘둘렀다. 사선의 궤적을 그리던 중간에 손목을 꺾어 흐름을 제어했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멈춰 선 용검 끝에서, 마치 칼날에 묻은 핏물이 관성에 밀려 부르르 떨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천명하마.”

검압의 여파만으로 삭막한 대지가 들썩였다.

지표면은 가뭄이 일어난 것처럼 갈라졌으며,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풍화되어 형성된 바위기둥들이 붕괴했다.

“나는 그 어떤 개입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오직 내게 주어진 운명이니.”
“…….”
“이틀 뒤.”

아칸드가 단언했다.

“우리는 진정한 전쟁을 개시하리라.”

시타델에서 확산한 사기(死氣)가 아칸드와 최측근, 그리고 어느새 기절한 비올라를 에워쌌다. 아홉 개의 사문에서 느낀 그것과 동일한 기운이었다.

베르덴을 비롯한 초월자들은 그 움직임을 막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은 결전을 벌일 때가 아니었기에.

스하아아아…….

냉기가 목덜미를 핥는다.

일순간 어둠이 선명해지며 아칸드 일행의 모습이 가려졌고, 서쪽으로 광풍이 몰아치더니 시타델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죽음의 기운에 노출됐던 해양 생물이 떼 지어 둥둥 바다 위에 떠올랐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 미물들이 몰살되었다.

대륙에 죽음이 돌아온 것이다.

외부 회담장에 남은 건 고풍스러운 테이블과 옥좌, 의자들…… 그리고 세계 연합에서 온 제왕들과 그들의 호위들뿐이었다.

“퉷.”

아드리안이 불쾌감을 씻어 내려고 아칸드의 옥좌를 베고 침을 뱉었다. 하지만, 그걸로는 이미 감각이 새긴 아칸드의 인상은 흐려지지 않았다.

세계 연합의 총전력을 알고 있기에, 그래도 최악의 위기까진 몰리지 않은 채 아마 승리할 거라고 막연히 믿었던 제왕들의 호위들은 생전 느끼지 못한 긴장감에 두려움과 흥분을 동시에 느꼈다.

승리하면 기록할 것이고.
패배하면 기록당할 것이다.

전쟁의 결과는 둘 중 하나로 귀결되리라.

제1차 초월자 전쟁의 주역을 대면한 회담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 * *

‘아칸드의 황성, 시타델. 하늘섬을 기반으로 삼고 있고, 방금처럼 공간 전이를 포함한 물리적인 이동이 가능하다. 그야말로 이동 요새인 셈이군.’

하늘섬 아크와 녹시아스의 리버레아스와 겉모습은 비슷해 보이나, 아칸드의 시타델은 그 둘과 비교하면 일차원적이다.

아크와 리버레아스는 분리된 3차원의 영역에 속해 있어 가상의 4차원을 형성 및 경유하지 않는 한 침범이 불가능하다.

반면 시타델은 대륙이 있는 3차원에 국한되어 있어 양방향 간섭이 가능하다. 시타델이 대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듯이, 대륙 또한 시타델에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닿기만 하면 문제없다.’

시타델의 존재는 상정하지 못했지만 계획을 수정할 필요는 없다.
베르덴은 그렇게 판단했다.

회담이 끝난 뒤 베르덴은 동행했던 제왕들과 함께 시간을 갖고서, 시타델이 향후 전쟁에 어떤 영향력을 끼칠지 논의했다.

시타델 자체의 대륙 침공.
아칸드가 전선에 가세할 경우의 수.
시타델 상륙 시 예측되는 전황과 해당 지역의 피해.
…….

결론은 하나였다.

아칸드를 처단하려면 강제로든 뭐든 간에 시타델을 전장으로 유도해야 한다. 놈이 전력을 재정비하거나 무엇으로도 보호를 받지 못하도록, 본진을 공략하는 것이 승리의 열쇠일 것이다.

다음은 회담의 소감이었다.

베르덴이 물었다.

“네가 보기에 아칸드와 제국은 어땠지?”
“패왕(覇王)이었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존재의 마력은 있으나, 결국 무력 그 자체가 권력이자 지배력의 핵심인 것 같더군.”

제라클 황제가 이번 회담에 참여한 것은 아칸드를 직접 보고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혹시라도 그의 절대적인 지배 구조에 파고들 틈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정치적 눈썰미만으로는 제라클 황제를 따라올 만한 인물은 세계 연합에 없다.

아르나크 황실의 여러 아티팩트로 무장한 제라클 황제는, 엄청난 존재의 압력 속에서도 방해받지 않고 정치적 관찰에 전념할 수 있었다.

“주검의 영광의 초월자들과 그 네 마리의 언데드 사이에 미묘한 엇갈림이 보였네. 크세리온 제국에도 엄연히 파벌이 구분되어 있다는 의미일 터.”
“통합이 완전하지 않다는 겐가?”
“언데드를 지배하는 흑마법이 그러하듯 언데드는 무조건적으로 옛 왕의 명을 듣겠지만, 주검의 영광은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지성체. 즉, 인간일세. 충성심의 방향은 같아도 정도는 다르지. 하물며 옛 왕의 힘으로 부활한 그들은 우리처럼 옛 왕을 실제로 접하는 게 처음이니, 당장의 부조화는 순리일 수밖에.”

언데드는 단순히 따를 뿐이나, 인간은 본능적으로 인정 욕구를 충족하려 한다.

충성은 고인 물이 아니라 흐르는 강과 같다.

주검의 영광은 궁극적으로 언데드를 밀어내고서 옛 왕의 하인이 되려 할 것이다. 첫 번째 하인이나 두 번째 하인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옛 왕에게 직접 충성을 바친 건 드라벤과 루네시카뿐인데 한 명은 죽었고, 다른 한 명은 처형이 내일 당장 확정된 상황이지.”
“그 말은…… 옛 왕과 주검의 영광 사이를 긴밀하게 매개할 인물이 제국에 없다는 거군.”
“그렇네. 그러므로 옛 왕이 작금의 주검의 영광을 아주 장악하려면 루네시카가 필요하네. 그자가 제안한 포로 협상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혹은 태연한 척하려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루네시카를 그렇게 쉽게 포기하는 건 이치에 맞치 않네.”

제라클 황제가 의견을 개진했다.

“옛 왕의 부활에 사용됐던 [아니무스]가 파괴되지 않았다는 베르덴의 말이 사실이라면, 반드시 그것을 이용해 루네시카를 되돌려받으려 하겠지. 아마 영혼의 형태로.”
“호오, 그럼 처형을 미뤄야 하나?”
“이제 와서 처형을 중지하면 연합의 사기만 떨어질 걸세. 그리고, 그걸 인지하고 있음에도 베르덴은 정상 회의가 끝나기도 전, 대륙 전역에 루네시카의 처형을 선포했네. 모두 듣지 않았나?”

제라클 황제가 냉수로 가볍게 목을 축이고는 말을 이었다.

“베르덴의 마도는 영혼을 해방할 수 있다, 죽음이 사라진 대륙에서 우리가 아는 죽음을 선사할 수 있는 건 베르덴뿐이었네.”

모두가 짐작하듯이 옛 왕은 죽은 존재를 계속해서 부활시킬 수 없다, 거대한 작용에는 반작용이 있듯이 드라벤을 부활시키지 못하는 것은 어떤 강력한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제라클 황제는 납득 가능한 논리를 펼치며 설명을 정리했다.

루네시카의 영혼에 베르덴이 간섭해 그녀의 부활을 막는다면, 옛 왕과 주검의 영광 사이에 한동안 좁힐 수 없는 간극을 남겨 둘 수 있을 거라고.

“그걸 비틀 수 있으면 옛 왕의 지배 체계에 상당한 균열을 낼 수 있을지도 모르네. 사소한 차이로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것이 곧 정치이니.”

반젤리스, 리반데일 대공, 안티아스에게 차례대로 대답한 제라클 황제.

과연 정치계 초월자다운 통찰력이었다.

덕분에 베르덴은 편해진 셈이었다. 제라클 황제의 추측과 베르덴의 의도가 겹치면서 앞으로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했기에.

‘주검의 영광과 크세리온 제국 사이에 있는 괴리를 느끼고, 주군께서 드라벤의 기억으로 알아낸 정보까지 거의 근접했다. 뇌 구조가 무슨 이간질에 특화된 것도 아니고. 이래서 황제인가?’

아드리안은 정치를 좋아하지 않기에 제라클 황제를 경계했다. 녀석이 작정하고 분탕을 치면 안티아스와 이그나시아도 상대가 안 될 것 같았다.

그때, 알파가 작은 손을 들었다.

[그 어떤 개입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아칸드의 말. 어떻게 생각?]

“말 그대로의 의미일 걸세, 이 전쟁은 세계 연합과 크세리온 제국의 것이라는.”

제라클 황제는 황성의 깊은 지하에 있는, 베르덴과 알파에게도 보여 주었던 군단의 대악마, 몰가른이 남긴 벽화를 떠올렸다.

‘시체의 산 위에 앉은 군주.’

아무것도 없는 여백으로 나아가는 미래 벽화는 옛 왕의 출현을 암시했다. 또, 그 안에는 거인이나 드래곤 등 다른 존재들도 있었다.

즉…… 이번 전쟁에서 옛 왕을 제외한 다른 미래의 위험은 나서지 않는다, 제라클 황제는 옛 왕의 말뜻을 그렇게 해석했다.

‘아무래도 미래 벽화로 조각된 존재들 또한 하나로 통합되지 않은 모양이군.’

생각은 거기까지 닿았지만 제라클 황제는 벽화에 대해서는 계속 함구했다.
그야 밝힐 생각이 없으니까.
아직까지는.

“내가 보기에 아칸드는 목적성이 분명한 존재이네. 완연한 폭군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그 기질은 충동이 아니라 인내와 이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듯했어. 화법 자체가 교묘하기 짝이 없었듯이.”
“하하, 괜히 파국의 모략가로도 불린 것이 아니지.”

반토레온이 머리를 주억거렸다.

제라클 황제는 아칸드로부터 상대하기 까다로운 정치가의 면을 느꼈다고 설파했다.

“베르덴이 가진 그 은하수의 돌, 묵시록이 보여 준 절망적인 장면이 우리의 미래라고 했던가? 사실일지도 모르지.”
“…….”
“그렇다고 하더라도 난 믿지 않네.”

베르덴이 말했다.

“이유는?”
“정치인의 입은 믿는 게 아니니까. 그러니 몇 마디 문장에 휘둘릴 필요 없네. 정치가를 온전히 평가하고 싶다면 훗날 과정과 결과만 봐도 충분하지.”

제라클 황제는 교활한 미소를 머금었다.

“옛 왕의 계시가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세계 연합이 패배하면 알게 될 걸세.”

옛 왕을 압도적인 초월자나 죽음의 제왕이 아니라 순수한 정치인으로 생각하고 대응하려는 그의 관점은 확실히 독보적이었다.

믿을 수 있는 것만 믿어라.

그것이 제라클 황제가 전하려는 요지였다.

각자 생각하는 바와 비슷하거나 일치했는지 모두가 수긍하는 기색이었다.

“…….”

베르덴은 테이블에 놓인 묵시록의 돌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아공간에 수납했다. 그러곤 로마누스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 언데드들은?”
“확실히 그 사기를 기억했습니다.”

교황 로마누스가 품속에 넣어 둔 성서 [오멘코드]를 다잡았다.

수왕 안티아스도 제 콧잔등을 두드렸다.

“나 역시.”

논의는 조금 더 이어졌다.

회담에서 조금이라도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최대한 끌어내었다. 베르덴은 정보를 다른 제왕들에게 공유할 준비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루네시카의 처형까지 D – 1.

개전까지 D – 2.

* * *

8세기 전 대상인이자, 황금 비고를 설계한 황금의 죄인, 마그누스.

8세기 전 최고의 전쟁 상인이자, 대륙 3대 은행을 창설한 죽음의 죄인, 레지날프.

둘은 현재 하이랜디아에 있는 초월자 연합 본부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들은 황금 비고의 무구로 무장한 연합군을 지켜보았다.

“이걸로 우리의 소임은 마쳤군.”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크세리온 황제가 완전히 절멸할 때까지 쭈욱 지켜봐야지요. 거기까지가 우리가 수행해야 할 역할입니다.]

“그래, 이제는 그저 지켜보는 것만이…….”

크세리온 제국과 막대한 무구를 거래하여 세상에 죽음을 팔던 죽음의 상인과 크세리온 제국에 엄청난 자금을 지원한 탐욕의 대상인.

옛 왕이 불태운 대륙을 보고 나서야 죄업을 깨달은 그들은 초대 네크로맨서가 개량한 불사의 의식을 치러 속죄하려 했다.

언데드로서 의식을 이어가 먼 미래에 조직될 세계 연합에 유산을 넘기는 것.
그게 둘이 이행해야 할 사명이었다, 마침내 사명을 완수했다.

하지만, 역시 마음은 차지 않았다.

당대의 네크로맨서와 힘을 합쳐 강력한 유골룡으로 변모한 초대 네크로맨서와 망국의 죄인처럼 막강하지 못해 참전은 불가능했기에.

레지날프와 마그누스는 아주 뛰어난 상인이었으나 스스로 검 하나 겨눌 수 없는 약자였다. 그저 타인에게 희생을 부탁할 뿐이었다.

“과연 우리는 이것만으로 속죄할 수 있을까.”

[글쎄요, 누군가가 저희의 업보를 용서해 주는 것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연합이 패배하면 속죄할 기회조차 없을 거라는 건 자명합니다.]

황금의 해골이 턱뼈를 달그락거렸다.

[그러니 승리만을 기도합시다.]

“루아스 여신에게 말인가?”

[누구든요. 저는 세 개의 황금 유골을 모은 베르덴 님을 믿으렵니다, 후호호홋!]

“음, 나도 그래야겠군.”

두 죄인은 세계 연합장을 향해 마음으로 기도하곤 다시 머리를 들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없는 죄인에 대해 말했다.

[그런데 망국의 죄인께서는 어디를 가셨길래 도통 보이지 않으시는 거지요? 여기로 합류하고 움직이는 것 아니었습니까?]

“사정이 생겨서 늦는다고 하시더군. 그래도 통신 장치로 연락 자체는 되고 있으니 별문제는 없을 걸세. 그분은 우리와 다르지 않나.”

카스티안 리니게아 타인 크세리온이 망국의 죄인을 자처한 것은, 같은 핏줄인 옛 왕의 폭거를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레지날프나 마그누스처럼 돈에 눈이 멀어 옛 왕의 진의를 알아보지 못하고 크세리온 제국의 전쟁 확대에 조력한 죄인 따위가 아니었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신 거겠지.”

레지날프는 감히 카스티안의 마음을 헤아렸다.

“용서할 수 없는 존재라고 할지언정 자기 형제를 죽여야 하는 비극이니.”

* * *

히아레마르 내해의 섬에서 끝내 의식을 잃어버린 망국의 죄인───카스티안은 모험가 길드 본부에서 정신을 차렸다.
그는 사경을 헤매는 동안 어떤 꿈을 꾸었다. 결코 뇌리에서 지울 수 없는, 너무나도 강렬하고 운명적인 몽상이었다.

카스티안은 그 기묘한 이끌림에 빠져드는 시간이 갈수록 많아졌다.
급박한 정세마저 잊어버릴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옛 왕이 완전히 부활하여 크세리온 제국의 재건을 선포한 이후 카스티안은 매일같이 꿈을 꾸게 되었다.

전부 같은 환상이었다.

단 하나의 창으로 옛 왕을 꿰뚫는 꿈.

그것은 날마다 구체화되었고, 마치 신의 계시처럼 영혼을 자극했다.

결국에 모험가 길드 본부에서 초월자 연합 본부로 이동하던 카스티안은 본능을 인내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콰득.

카스티안은 외딴 절벽을 올랐다. 악력에 돌조각에 금이 갔다. 꿈에서 본 장소를 찾기 위해 가파른 바위 지대를 기어올랐다.
맞닥뜨린 아인종과 이형종을 모조리 처단하며.

이윽고 작은 동굴을 찾아냈다.

‘꿈에서 본 것과 똑같아.’

카스티안은 검을 늘어뜨린 채 천천히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저 멀리 빛이 있었다.
천장에 난 틈새로 스며들어 온 빛을 반사하는 것이 있었다.

“……아.”

평범한 듯 보이면서도 어딘가 고풍스러운 듯한 창.

예지몽이었을까.
꿈이 현실이 되어 찾아왔다.

챙그랑.

저도 모르게 검을 떨어뜨린 카스티안이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창에 손을 뻗었다.
창대를 붙잡았다.
그 순간 신비한 기운이 흘러넘치더니 창이 그에게 빨려 들어갔다. 눈을 끔뻑이니, 꿈속의 창이 꽂혀 있던 자리에는 흔적만 남아 있었다.

“이건…….”

카스티안은 멍하니 손바닥을 바라보다가 직감으로 의식하며 손가락을 굽혔다.

화아아악.

창이 소환되었다.
무엇이든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과 함께.

“……[루기나 혼].”

카스티안은 내면에 떠오른 창의 명칭을 중얼거리곤 눈을 다시 떴다. 강렬한 눈빛. 확신이 실린 손가락들이 창을 강하게 다잡았다.
더 이상 형 – 크세리온 황제에게 느꼈던 무력감은 보이지 않았다.

죄인복수죗값미안해복수복수미안하구나복수복수복수복수자살복수해같이죽어죽어버려제국의복수증오멸망마침내!

카스티안의 가슴에 박힌 아티팩트 안에서 영혼들이 소리쳤다. 그 영혼들은 언데드가 되지 않고도 그에게 수명과 힘을 부여한 원천이었다.
원한과 원망, 비탄과 환희.
황제에게 희생당한 제국 수도의 시민들과 부모의 감정이 어떤 때보다 가깝게 느껴졌다.

“이제,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아칸드를 죽인다.
멸망한 자국에 속죄하기 위해.

“제가 전부 끝내겠습니다.”

카스티안은 망국의 죄인으로서 스스로 정한 사명을 되새겼다.

* * *

레프라기움 마탑.

마도를 개방한 채로 의식을 집중하고 있던 대행자, 메이아가 눈을 떴다.

“여섯 번째 사도의 대적자, 확인.”

과거에 안배한 대로 6대 전설 중 4대 전설, 서로를 죽이는 창 – 루기나 혼 (Lugina Horn)이 주인의 손에 들어갔다.

그들은 언제나 운명에 저항했다.

* * *

회담 이후로 하루가 지났다.

루네시카의 처형은 그 누가 훼방을 놓는다고 해도 예정대로 집행될 것이라고 확언하듯이 베르덴이 직접 움직였다.

그 장소는 가르간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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