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3화 대공세 (9)
결국 진입한 펜드렌 호수의 사문 내부는 생각지도 못하게 아름다웠으며, 또 넓었다. 소금 사막을 연상케 하는 공간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테아렐이 손목을 비틀었다.
<아르마레>
주변에 여러 소용돌이가 형성되더니 곧 역회전하며 확산했다. 그 흐름을 즉석에서 조작해 여덟 방향에서 사문의 근원체를 노렸다.
마법적 유연함은 테아렐의 특기.
서로 다른 파도가 끝도 없이 출렁거리는 바다처럼 그녀의 마도는 변화무쌍하다.
콰아아아아아아!
사문의 근원체를 감싼 소울 트리가 가지를 움직여 심해의 압력을 차단했다. 나무껍질이 벗겨졌지만 심은 부러지지 않았다.
그러곤 반격을 가했지만 녀석의 뿌리는 테아렐에게 닿지 않았다.
‘역시 단단해.’
히아레마르 내해 밑바닥에서 옛 왕을 일시적으로 봉인한 정체불명의 나무뿌리보다는 아니었지만 믿을 수 없는 저항력이다.
명백히 특수 개체로 진화한 소울 트리의 범주마저 벗어났다.
저걸 토벌하려면 일부 고유 마법이나 초위 마법이 필요해 보이나…… 그녀가 정도 이상으로 마력을 실은 마법은 제4사령관이 나서서 파훼하고 있는 터라 쉽지 않은 상황이다.
테아렐이 물었다.
“나보고 죽을 거라며. 언제 죽일 건데?”
[정해진 결과다.]
제4사령관───사르카논이 손짓했다.
[결과를 앞당기고 싶다면 가까이 오도록.]
“싫어.”
사르카논은 사문의 근원체를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일정 반경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특히 제국의 초거대 비행정을 경계하고 있는 듯했다.
근원체에 확실하게 타격을 입힐 만한 위험이라고 인식한 것일 터.
테아렐은 직감으로 그 거리를 정확히 판단하고 쭉 간격을 유지했다.
‘나 혼자 들어가면 죽어.’
해 볼 만하다고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집단으로 공략했을 때다. 그녀 혼자서는 이길 수 없다. 그만한 격차를 어렴풋이 느꼈다.
그러나 이대로 소모전을 지속하는 망설임은 승산을 낮출 뿐이다.
‘현재로서는 비대칭 전력의 지원은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흑마법계 초월자…… 베르덴이 지원을 도맡을 모종의 마법을 시전하겠다고 말하긴 했지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언질을 주지 않았으니.’
처음에 병사를 사문 밖으로 살짝 내보내서 비대칭 전력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주고받은 뒤로 베르덴과의 통신은 두절됐다.
몇 번이나 후방 인원에게 명령하여 펜드렌 호수를 확인시켰지만.
돌아온 것은 이형체 시체의 파편이 움직였다는 둥, 거대한 외눈박이가 나타났다는 둥, 무언가 벌어지고 있다는 식의 횡설수설뿐이었다.
아무래도 베르덴이 흑마법과 펜드렌 호수를 토대로 비대칭 전력급의 언데드? 같은 개체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라 아주 집중하고 있는 듯한데……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기약 없이 시간만 끌 수는 없다.
마법적 자원은 무한하지 않다.
체력에도 한계가 있다.
지원군이 왔을 때 정작 토벌군단에 진격할 여력이 부족해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단언컨대 한순간에 밀려 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선은…… 우리가 미리 길을 터놓는 것.’
가장 상태가 좋을 때 토벌군단이 공세를 퍼부으며 압박하고, 그렇게 벌어진 균열로 지원군이 가세한다면 최고의 시나리오겠지.
다만 그 흐름은 필연적으로 군단의 희생을 전제할 수밖에 없다.
‘아, 이래서였구나.’
테아렐은 그제야 베르덴이 연합장인데도 최전선을 자처한 이유를 온전히 이해했다.
책임감뿐만이 아니었다.
가장 거대한 위험을 감당함으로써 스스로를 억지로 납득시키는 것이다. 자신의 선택으로 인한 모든 희생은 불가피했음을…….
‘바보.’
답답한 사고방식이다.
애꿎은 병사들을 전장으로 보내는 왕들이 들으면 비웃을 것이다. 물론 베르덴 면전에서 그랬다간 죄다 ‘파멸’당하겠지만.
어쨌든 다른 이들을 전쟁터로 보내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는 이유로 자신은 사지로 들어가는 마음가짐은 전혀 지배자답지 않았다.
그래도 마음에 들었다.
물론 테아렐은 책임감에 있어 베르덴처럼 연약하지 않았다. 전쟁은 전쟁. 이건 한 명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감당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지원이 오기 전에 뚫는다.
테아렐의 의념이 메리사에게 전해졌다.
───총공세, 준비.
메리사는 즉시 모든 지휘관에게 군단장의 명령을 하달했다.
* * *
터어어어엉!
수인 대부족의 류왕(流王)이 물살을 가르며 육중한 이형체를 날려 버렸다.
바닷가에 기거하며, 태생적으로 물질에 특화된 수류족의 우두머리인 그는 펜드렌호에 파견된 수인들의 지휘관이었다.
‘바깥에 있는 것들은 기둥 군집을 제외하면 대체로 획일적이었는데 이곳에 있는 놈들은 다종다양하군.’
작은 이형체.
거대 이형체.
뒤틀린 이형체.
두꺼운 이형체.
얇은 이형체.
지성적인 이형체.
…….
동일한 이형 종족인데 저마다 천차만별로 다르게 생겼다. 마치 인간종처럼. 그래서인지 불쾌감이 적지 않았다.
차라리 야생의 짐승들처럼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며 날뛰었으면 별다른 생각도 들지 않았겠지만, 지성적인 이형체를 제외한 나머지는 그저 양팔을 뻗으며 접근할 뿐이었다.
[함께…… 녹아내리자…….]
“흐아아아아악!”
이형체의 포옹을 허용한 병사가 보랏빛의 액체로 녹아내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비명을 지르다가 잠시나마 황홀한, 혹은 편안한…… 그런 표정을 지으며 이형체와 융합되었다.
펜드렌 호수에서 미처 확인하지 못한 반응이었다.
‘괴이하기 짝이 없어.’
류왕이 손가락 사이의 물갈퀴로 쓸어 담은 물방울을 넓게 투척했다. 구멍이 숭숭 뚫린 이형체들이 바닥에 몸을 처박았다.
넘치는 체력으로 동분서주하며 연합군의 진격에 일조하던 그가 크게 물러났다.
“마법사 모험가 양반, 이형체와 하나가 된 놈들의 반응이 이상하던데. 저놈들의 꿍꿍이가 대체 뭐라고 생각하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언데드와는 완전히 다른 목적을 띠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생물이 그러하듯이 언데드라고 할지언정 존재하는 이상 행동 원리가 있기 마련이다.
함께 녹아내리자.
단순하게 생각하면 개체 수를 늘리려는 특정 행위에 불과할 수도 있으나…… 문제는 언데드는 그런 종족이 아니라는 것.
‘숙주에게 황홀감이나 안도감 등을 주입하는 것은 기생 생물의 특징이다. 상리 공생이든, 편리 공생이든, 일방적인 착취든 숙주의 생존이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언데드는 가질 수 없는 습성일 텐데.’
언데드는 산 자를 증오한다.
죽음에 기반한 개체는 모든 초점이 생명체를 향한 적대감에 맞춰져 있다. 다크워튼 마탑에서는 그것을 자신이 다시는 가질 수 없는 생명에 대한 질투심이라 설명했다.
모험가 길드 본부의 토벌 기록에 따르면, 아주 극히 드물게 인간을 고문하는 언데드 아종도 있다고 하지만 결국엔 오래 살려 두지 않고 죽였다.
그럴진대 기생이라니?
게다가 숙주에게 잔혹한 고통을 선사하기는커녕 쾌감을 느끼게 한다?
‘……지나치게 친절하다.’
근거는 없지만 크세리온 제국은 전쟁의 승리만이 목적이 아닌 듯했다, 에브란은 모험가이자 마법사의 직감으로 그런 의심을 품었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것은 이형체들의 해석 불가능한 행동 양식이 아니다.
사문의 근원체를 감싸고 있는 거대한 소울 트리와 그것을 지키고 있는 제국 제4사령관의 토벌이 승리의 핵심이다.
사문 내부는 넓었으나 전쟁은 그 전체를 아우르지 않았다.
전장은 한정되어 있다.
공성전을 펼칠 만한 성벽도 없다.
탁 트인 이 공간에서 세계 연합과 크세리온 제국이 제한된 병력으로 끝장을 볼 때까지 맞부딪칠 뿐이니, 장기전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는다.
고로…….
‘펜드렌호 사문은 오늘 폐쇄된다.’
대(大) 함대에서 시간을 들여 준비한 연쇄 폭격이 곧이어 쏟아졌다. 화염과 벼락으로 이루어진 마법적 공세가 수평과 수직에 걸쳐 적진을 휩쓸었다.
제4사령관의 영역에 진입할 각이 보였다.
총공세의 신호였다.
“에브란!”
“알고 있습니다.”
에브란이 날아올라 다레도르 옆에 자리했다.
지상에서 적을 상대하고 있던 병사들이 후방으로 퇴각하고, 병사와 병사 사이에서 해상 함대가 동력을 최대로 활성화했다.
해상 함대는 제1열과 제2열로 나뉘었다.
테아렐이 손을 쳐올렸다.
<마레논>
태해의 파도가 굽이치며 해상 함대 제1열을 쐐기 형태로 가속시켰다.
비행정 함대도 전진했다.
그렇게 이형체 군단을 질량으로 짓밟으며 나아가다 테아렐의 손길에 따라, 그녀를 중심으로 각각 좌우로 방향을 틀었다.
함대로 이루어진 장벽이 형성되었다.
적진을 그대로 파고든 만큼 위험은 급증하나 모든 이형체를 몰살한 뒤에, 그제야 사문의 근원체를 부술 생각이 아니라면 합리적인 전략이었다.
팔다리는 수없이 많을지언정 그것을 움직이는 머리는 하나일 뿐이니까.
콰과과과과과과과! 쿠웅!
퇴각한 병력을 태운 해상 함대 제2열도 합류하더니 벽이 증축되었다. 사실상 크세리온 제국군에 연합군의 진영을 마련한 셈이었다.
“인공 골렘 활성화!”
“인공 골렘 활성화!!”
각 함대가 보유한 에온의 방어 골렘들이 갑판으로 나와 함선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앞뒤에서 올라오는 이형체들을 상대로 수성전을 펼쳐야 하고 함락당하면 끝장이지만 감수할 가치는 높았다.
함선들의 벽은 이형체 대부분을 사문의 근원체와 분리시켜, 소울 트리와 사르카논을 최대한 고립시키는 전장을 구축했으니까.
소수의 적을 상대로 다수의 집단전을 벌일 준비가 갖춰진 것이다.
테아렐.
유르발.
다레도르 칼브.
에브란.
라에틸라 베넷.
메리사 페스필드.
류왕.
메드란트 케덴.
유르기엔.
젠티르 마탑의 장로.
다크워튼 마탑의 장로.
은휘(銀輝)의 대주교.
성염(聖炎)의 대주교.
그들만이 아니라 고위 팔라딘과 상위 주교, 그리고 마탑과 제국의 정예. 수십 명이지만 토벌군단 전력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사령관은 우리가 맡고, 나머지는 사문의 근원체를 부숴.”
[타인의 결과까지 앞당기는…….]
“달그락, 달그락.”
테아렐이 앞장섰다.
“시끄러워.”
사르카논의 발밑에서 죽음의 형상이 기어나왔다.
[초월자의 입버릇이란.]
그들의 발목까지 차오른 투명한 물에 짙은 어둠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사기가 확산했다. 저항에 실패한 순간 죽음을 맞이하는 특유의 오라였다.
이에 테아렐도 영역을 전개했으며, 어느 경계선을 기점으로 심해와 죽음이 충돌했다.
쿠구구구구구구……!
테아렐이 점차 밀렸지만 사르카논이 마력이 아닌 사기를 이용하는 이상 그녀가 단신으로 감당할 이유는 없었다.
“루아스시여!”
“무구한 광명을 위해!”
두 명의 대주교가 각각 석장과 검을 내세우며 신께 기도했다. 빛이 물에 깃들었다. 게다가 그들은 루아스 교국의 최상급 성물을 저마다 보유하고 있는 상태.
대주교들이 사르카논의 기운을 노려보면서 보호의 기적을 외웠다.
빛과 어둠이 동시에 번졌다.
성물이 전부 부서졌다.
그리하여 테아렐과 류왕을 제외한 모든 토벌자에게 신성력이 깃들었다. 일정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한, 그들은 놈이 발하는 즉사 오라에 육체적으로 사망하지 않는다.
사르카논이 이에 오라를 육체가 아닌 정신 계열로 변질시켰다.
그걸 기다렸다는 듯이 메리사 페스필드가 아르나크 제국의 국보를 기동했다.
[제의(帝意)의 정신관].
토벌자들은 저항력을 낮춤으로써 국보의 영향력을 받아들였다.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외부의 어떠한 압력에도 그들의 정신은 붕괴되지 않는다.
사르카논이 말했다.
[라인델 넥스레온의 짓인가.]
“원래부터 보유하고 있었지만, 다크워튼 마탑주의 조언이 도움이 되긴 했지.”
[그래…….]
사르카논이 손뼈를 드러냈다.
[내게 다가올 정도는 되는구나.]
사르카논에게 국가급 전력까지도 즉사시킬 수 있는 오라는 특별한 기술이 아닌 그저 숨을 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고작 그걸 견뎌 냈다고 우쭐거리는 연합군의 행태가 가소로울 뿐이었다.
찰나의 정적이 감돌았다.
그리고.
테아렐의 마법과 사르카논의 광선이 격돌하는 것을 시작으로 모두가 움직였다.
* * *
사문에 들어왔을 때는 날이 밝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석양이 졌다.
테아렐의 토벌군단과 제4사령관의 언데드 군단이 사문의 근원체를 두고 정면으로 충돌한 지 몇 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쿠우우웅! 쿠우웅!
해상 함대의 장벽은 이형체들을 철저하게 붙잡고 있었다. 예상보다 상황이 좋았다. 이형체에게 닿아도 에온의 인공 골렘은 아무렇지 않았기에 거의 천적과 같았다.
물론 이형체 다수에게 계속 노출되면 물리적으로 망가지긴 했지만, 그것만 조심하면 연합은 골렘들을 중심으로 방어선을 견고히 할 수 있었다.
다만…… 예상을 뛰어넘은 건 연합군의 방어선만이 아니었다.
비대칭 전력.
8위계급의 경지와 맞서 싸운 경험이 있는 사람은 테아렐과 류왕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 그럼에도 적의 능력을 상상할 수 있는 한계의 한계까지 끌어올려 가정했지만, 그마저도 넘어섰다.
툭.
사르카논의 손뼈에 닿은 고위 팔라딘이 미라가 돼 사망했다. 성물들을 희생한 보호막조차 그 직접적인 접촉은 막지 못했다.
유르발, 다레도르, 라에틸라가 저마다의 기예를 펼쳤다. 한때 모험가 길드의 정점에 선 파티의 합격은 더할 나위 없이 조화로웠다.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죽음의 가시들을 스치지도 않게 회피하며 접근.
스하아아악!
“뭣…….”
사르카논을 세 방향에서 베었지만 몸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놈이 대주교를 지목한 순간에 메드란트의 마력 방패가 이를 차단.
테아렐이 손을 움켜쥐었다.
<심네르>
<카노 마렌시스>
사르카논을 수중 구체로 가두고 체내를 파열시키는 심해의 음파를 작렬시켰다.
“폭격.”
거리를 좁힌 비행들과 보조 전력은 소울 트리에게, 마탑의 장로들을 비롯한 주 전력은 사르카논에게 최대한의 파괴력을 투사했다.
그 순간───거대한 암흑이 치솟았다.
무려 만 단위에 이르는 이형체를 소거시킬 수 있는 마법적 화력이 어둠에 닿자 소실되었고, 그것이 순간 맥동하더니 폭발했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콰아아아앙!
사르카논의 영역에 걸쳐져 있었던 중형 및 소형 비행정이 파선되었다. 제국의 초거대 비행정은 겨우 견뎠지만 보호막의 손상이 확연히 보였다.
사르카논이 다시 팔을 움직였다.
테아렐이 가속했다.
흑해 파티의 전 리더인 다엘도 전위를 자처했다.
소울 트리가 광범위하게 뿌리를 내리찍었다.
콰과과아아아아앙!
희생을 발판으로 삼은 격전에 이어서 다시 격전이 벌어졌다. 생과 사의 경계에 들어온 것만 같은 공방의 연속이었다.
‘닿지 않는 건 아니야.’
아무리 비대칭 전력이라고 해도 이 전력을 상대론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사문의 근원체까지 지키고 있으니.
테아렐은 그 틈새를 정확히 노렸다.
‘닿지 않는 건 아닌데…….’
상대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안개와 싸우는 것 같다.
분명히 손을 휘두르면 흩어지긴 하지만 무언가가 닿는 감각이 없다. 냄새도, 느낌도 존재하지 않지만 서서히 다가오는 실체.
죽음이란 게 저런 걸까.
“끅.”
테아렐은 일순간 목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에 정신을 차렸다. 정신계인가? 그녀의 손이, 그녀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죽음은 종착지가 아니다. 수단, 그 자체지.]
알 수 없는 기류가 흐르며 항거할 수 없는 위기감이 엄습했다. 테아렐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토벌자 모두가 그 기분에 휩싸였다.
[죽음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사르카논이 속삭였다.
[안내를……?]
사르카논이 느닷없이 말을 멈췄다. 그놈의 시선은 테아렐 어깨 너머로 향해 있었다. 그녀가 이내 천천히 고개를 틀었다.
덜컥.
마음이 내려앉았다.
거대한 사문에서…… 약 수십 미터에 이르는 체고를 가진 거인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외눈박이였다. 그 커다란 외눈이 테아렐의 전장을 직시했다.
‘외눈박이. 베르덴의 지원군.’
테아렐은 내심 그 괴물을 환영했다.
쿠웅.
외눈박이가 사문에 진입한다.
전장이 고요해졌다.
이형체들마저 움직임을 멈출 정도였다.
[우……며…….]
외눈박이가 어눌하게 중얼거렸다.
[운……며…….]
다음 문장은 더 선명했다.
[운……명…….]
그 다음 문장은 더 선명했다.
[운명.]
외눈박이는 베르덴의 실험체 시절의 감정을 갖고 있다. 하늘에 대한 원망. 자신에게 그런 운명을 부여한 세상을 향한 증오가 기반.
그렇기에……외눈박이는 운명에 관한 모든 존재를 적대하도록 만들어졌다.
예를 들면 운명의 사도를.
예를 들면 운명의 사도의 권속을.
쿠웅───
외눈박이가 사문 세계 전체를 뒤흔들며 테아렐을 향해 질주했다. 물론 그녀가 아니라 그 뒤쪽에 있는 사르카논이 목적일 것이다.
테아렐은 베르덴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외눈박이가 괴성을 지르며 성염(聖炎)의 대주교를 걷어찼다.
푸슉, 푸슈슉.
덩그러니 남은 그의 하반신에서 피가 분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