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823

823화 세계 회의 (7)

빛을 신앙하냐니…… 저 말은 단순히 빛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빛처럼 유일무이한 어느 신적인 존재를 함축할 터였다.
기이한 노인의 목에 걸린 황금빛 정십자가의 의미가 그러하듯이.

“신이 있다면 신을 증오할 것이고, 신이 없다면 나를 혐오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무엇도 신앙하지 않는다.”
“가련한 자로다.”
“시답잖은 동정은 거절하지.”

방주의 지도자가 여전히 뒷짐을 진 채 거대한 노인을 내려다봤다.

“네가 베르덴을 습격하려 한 흉수인가?”
“무의미한 질문이군.”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는 내가 정한다.”

쩍.

무형의 검격이 벽을 갈랐다.

광신자 노인의 어깨 위로 울퉁불퉁한 돌조각이 후드득 떨어졌다. 벽에 새겨진 검흔의 끝은 명확히 노인의 목을 겨냥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기이한 노인은 느긋하게 수염을 쓸었다.

“훌륭하다. 더 이상 검이 필요하지 않은 경지는 오랜만이로다.”

방주의 지도자가 멈칫했다.

“……오랜만이라고?”
“자네가 보는 경치는 아름답지. 자유롭고. 하지만 그 또한 결국 버렸다. 검을 놓는다는 건 신념을 놓는 것이며, 멀고 먼 과거에 신념을 포기한 내가 새로운 신념을 갖게 되었으니, 어찌 다시 나의 검을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오, 루아스시여.”

노인의 중얼거림과 느닷없는 기도는 그야말로 광신적이었다. 통제할 수 없는 과도한 믿음은 눈과 귀를 가리는 법이다.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묘한 불안감이 거슬린다…… 방주의 지도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안광을 번뜩였다.

촤아악!

광신자 노인의 목과 어깨 사이가 베였다. 갈라진 넝마에서 피가 울컥 뿜어져 나왔다.
피에 닿아 해진 갈색 천 조각이 점차 검붉은색으로 물들고 있다.

“…….”

이전에 공간 너머로 날린 일격보다 조금 더 힘을 준 정도인데 노인은 반응하지 못하고 중상에 가까운 상처를 입었다.

막지 않은 걸까.
막지 못한 걸까.

방주의 지도자가 괴리감을 느낀 순간이었다.

“나는 현세에 간섭할 수 없고, 역으로 현세 또한 내게 간섭할 수 없노라. 규칙은 지엄한 것이다. 내가 현세를 해하면 나는 끝끝내 추방당하고, 현세가 나를 해하면 그 응분의 대가만큼 나도 힘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느니…… 보아라.”

광신자 노인이 몸을 일으켰다. 어느샌가 허름한 붕대로 감긴 그의 손에 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무기가 들려 있었다.
새빨간 기운이 노인의 전신에서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내가 인류의 왕이노라.”

그림자가 드리운다.

일광一匡

폭풍 전야의 순간처럼 초대형 거검이 조용히 들이닥쳤다.
처음으로 느껴 보는 어마어마한 기운의 압력에 방주의 지도자가 힘을 극성으로 끌어올리며 오른팔을 마주 휘둘렀다.

대검식大劍式 – 심인心印

유형검과 무형검.

천하를 바로잡는 왕의 기예와 희생과 대의를 품은 모험가의 절기가 격돌했다.

──────!

서로에게 작렬하지 못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건물이 파괴되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흔적도 없이 조각났다.
후폭풍이 작렬했다. 가르간트의 세 개 구역이 초토화됐다. 무려 일 킬로미터가 넘는 반경 내 모든 생명이 절멸했다.

마법으로 이루어진 사회 기반 시설이 붕괴하면서 거대한 폭발이 발생했다.
화마가 일대를 뒤덮었다. 끔찍한 이명이 정신을 강타했다.

불타오르는 폐허가 된 거대 도시에서 시선이 교차했다.

“우리는 역할을 부여받은 존재. 운명의 실에 얽힌 인형이며, 이 세상은 거대한 인형극. 하지만 실이 없다고 해서 인형이 아닐 수는 없노라. 자네의 세상 또한 하나의 인형극이다.”

붕대가 조금 풀어지며 늙은 손가락이 방주의 지도자를 가리켰다.

“대안 없는 저항인가, 유일한 순응인가. 선택의 때가 오리라. 방주. 미쳐 버린 저항자에게 이용당하는 가련한 인형이여.”

광신자 노인이 천천히 이글거리는 불길 속으로 뒷걸음질했다.

아주 오랜만에 전력을 끌어올리고 있던 방주의 지도자가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을 힘으로 억누르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사라졌다.’

광신자 노인의 기척이 완전히 지워졌다.
원래 없었던 것처럼.

‘그자의 정체도 정체지만…… 수습이 문제군.’

으득.

방주의 지도자가 입술을 짓씹었다. 주변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뜻하지 않게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때, 등 뒤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쉐오른 장로가 나타났다.

방주의 지도자가 면목이 없다는 듯 살짝 고개를 당겼다.

“쉐오른 장로, 미안하군. 수습을 도와 다오.”
“수습이라면…… 무엇을 수습해야 하는지 말씀만 해 주십시오.”
“뭐?”

방주의 지도자가 퍼뜩 고개를 움직여서 뒤를 돌아보았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골목 중앙에 선 쉐오른 장로가 보였다.

주변을 둘러봤다.

모든 건물이 멀쩡했다. 갑작스러운 힘의 여파에 휩쓸려 죽었다고 판단했던 사람들의 기척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청명한 하늘과 겨울의 햇빛이 평화로운 가르간트를 감싸고 있다.

‘내게 허상을 보여 준 건가? 아니…… 그건 그런 속임수가 아니었다.’

방주의 지도자가 내적 혼란을 가라앉히며 시선을 바로 했다. 조금 전까지 광신자 노인이 앉아 있었던 자리를 보았다.
그 위쪽 벽면에 위협용으로 쓴 무형검의 검흔이 남아 있었다.

노인은 분명히 실재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노인만이 없는 세상이 눈앞에 있을 뿐…….

“내 기를 느끼고 찾아온 건가?”
“갑자기 존재감을 일부 발현하시길래……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방주의 지도자가 전신에서 힘을 풀었다.
존재감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무래도 세상엔 내가 모르는 비밀이 생각보다 많은 모양이다, 쉐오른 장로.”
“예?”
“수색은 중지다. 범인이 더 이상 나타나진 않을 것 같군.”

방주의 지도자는 광신자 노인의 정체를 떠올리며 등을 돌렸다. 어두운 골목에서 화창한 거리로 나가는 그가 수심에 잠겼다.

미쳐 버린 저항자.
인형극.
이용당하는 인형.

노인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감도 잡히지 않으나, 그런 것보다도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건 단 하나의 사실이었다.

‘노인은 내 정체를 포함한 방주를 알고 있다.’

대체 누구길래.

* * *

베르덴과 이데라트 연맹장이 차례대로 소의제를 발의한 이후부터 첫 번째 소의회는 하원 참석자들의 무대가 되었다.

섭리자가 첫 번째 대의회가 끝나기 전까지 필요 이상의 감정적인 마찰을 자제하라고 하니까 상원은 그보다 잠잠할 수가 없었다.

서대륙의 이텔 국왕은 음지로 크게 확산하고 있는 검은 연초, 페이버와 여러 마약을 논하며 대응을 촉구했고.
비렌테의 마법 협회장은 최근 마석 공급량이 유의미하게 줄었다고 발표하며 이에 대한 대책을 제안했다.

그리고 에스티리아 국왕, 실리스도 한마디 얹었다.

“재작년 에스티리아 왕국은 언데드 사태로 인해 곡창 지대에 큰 피해를 당했습니다. 루아스 교국의 지원 아래 순조롭게 회복 중이었으나 피울음 역병과 재차 발생한 언데드 사태 때문에 장기적으로 식량 문제가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이 근심은 에스티리아 왕국의 것만이 아니겠죠.”

에스티리아 왕국은 작금의 사태에서 가장 피해가 적은 국가로 손꼽힌다.

당연히 에온 덕분이었다.

이웃국인 리비안트 공국은 무려 천검이 직접 보호해 주었고, 벨디른 공화국도 직간접적으로 여러 도움을 받았다.

‘단순히 권역에 들었다는 이유로……!’

같은 동대륙의 국가들이 혜택을 받았다는 사실에 로니아 국왕이 질투를 삼켰다. 왕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 성자에게 대놓고 핍박을 받은 상황이라 그 질시의 눈총은 더욱 표독스러웠다.
그는 마울러의 권역에 들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질 날을 고대했다.

그때, 실리스가 말했다.

“그래서 저는 대륙 간 상호 무역을 제안합니다.”
“……!”

세계 회의에서 거론되는 거래는 평범한 거래와는 의미가 다르다.

바로 세계가 공증하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약속한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초월자라고 해도 세계적인 제재가 따른다.

섭리자가 말했다.

“대륙 상호 무역은 각 대륙에서 화답하는 세력이 필요 불가결하기에, 대륙으로 분류되지 않는 비공개 투표는 의미를 잃는다. 최소한 서대륙에서 하나, 중앙 대륙에서 하나가 공개적으로 에스티리아 왕국의 무역 제안에 응하지 않으면 해당 안건은 폐기된다. 그러니 뜻이 있는 자는 거수하라.”

동대륙, 중앙 대륙, 서대륙은 대륙마다의 특징이 있고, 인류는 풍족한 걸 내주고 부족한 걸 채움으로써 성장해 왔다.

다만 동대륙과 서대륙은 직접적으로 교역을 하기 무척 까다로워서 항상 중앙 대륙을 중개해 간접적인 교류를 맺었다.
결국 서대륙과 동대륙 간의 연결 고리도 그만큼 빈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베르덴 님이 말씀하신 두 번째 단추.’

실리스는 자세한 내막 자체는 모르나, 베르덴이 여러 국가가 서로에게 인력을 발하여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바란다는 건 이해했다.

여기서 말하는 관계는 당연하게도 돈과 자원으로 형성된다. 그 두 가지가 국가 운영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기 때문이다.

그렇다.

실리스가, 그리고 베르덴이 궁극적인 목표로 하는 건 대륙 간의 연결이었다. 애써 떨어지려고 하면 살점까지 뜯어져 버리는 그런 연결 말이다.

이에 세렌디아가 손을 들었다.

“손상된 자연을 회복시키는 거라면 저희 엘프가 함께하겠습니다.”
“……?!”

그 엘프가 선뜻 무역 협정에 응했다.

마울러가 강하게 짓누르듯이 손끝으로 제 턱을 긁었다.

‘에온과 엘프는 동맹 관계다. 엘프의 뜻은 베르덴 놈의 뜻일 가능성이 높아. 하지만 개회식 행렬에서 둘은 동행하지 않았다.’

역시나 모종의 감정보단 서로의 이익을 위해 맺은 동맹이었나? 정확히 무슨 관계인 거지? 그 관계에 비집고 들어갈 틈은 있나?

마울러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참석자가 그런 생각을 품었다. 대자연의 주민인 엘프와 조금이라도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출혈은 감수할 수 있다.

그게 아니라도 에스티리아 왕국과의 교류가 생기는 건 아주 달가운 일이었다. 이는, 즉 에온과도 접점이 생기는 것이니까.

다음으로 제라클 황제와 리반데일 대공이 손을 들었다.

“아르나크 제국이 응하겠다.”

무역 조건을 만족했다.

다른 참석자도 기묘한 흐름을 느끼고는 늦을세라 황급히 손을 들 찰나였으나, 섭리자가 분위기를 억눌러 제지했다.

“이로써 대륙 무역 협정의 최소 요건을 충족했다. 첫 번째 소의회를 끝마친 이후 무역에 참여하고 싶은 세력은 협의하여 공식 협정서를 작성하도록. 차례를 넘기겠다. 다음 제의자는 없나?”
“…….”

하원은 고요했다.

사실 자국의 이권을 위해 발의하고 싶은 제안은 차고 넘친다. 하나 그런 사소한 걸 회의에 상정했다간 상원의 눈총을 받을 것이다.
하원의 왕들은 윗사람의 눈치를 봐야만 하는 낯선 경험에 연신 비지땀을 흘렸다.

“이것으로 첫 번째 소의희를 마치겠다. 소의제 투표를 하기에 앞서 잠시 정회하고, 10분 후 토의를 시작하겠다.”

섭리자는 다시 한번 확인을 거치고는 테이블을 두드렸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울림이 참석자들의 마음을 진동시켰다.

잠깐의 휴식 시간이 주어지고…….

정확히 10분이 지난 뒤 본격적인 소의제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여러 대화가 오가면서 잠깐의 고성이 오가기도 했지만 의장이 딱히 문제 삼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이형종 공존에 대한 대의제의 개정과 대륙 간 무역 협의에 대한 토론회는 장장 13시간 만에 끝났다.

* * *

대의제 개정은 에온, 루아스 교국, 다크워튼 마탑이 주도했고, 하원의 참석자들은 무역 협의서를 만드는 데 진땀을 뺐다.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안 그래도 몸이 약한 노덴 공왕은 고된 논의에 눈앞이 흐릿해졌다.
옷 안이 땀으로 푹 젖었다.
서약자의 언령이 효과가 다 되어 사라지면서 긴장감으로 얼룩진 정신과 육체가 불안정해지고 있었다.

“전원, 진정하라.”

<휘광의 평화>

서약자의 언령과 교황의 기적이 하원의 참석자를 감쌌다. 육체적 및 정신적 피로가 말끔하게 사라지고 상태가 안정되었다.
그들이 감사 인사를 올린 직후 섭리자가 모두의 이목을 끌었다.

“지금부터 세계 회의의 첫 번째 소의제 표결을 시작하겠…….”
“와, 드디어 투표!”
“이그나시아, 경고.”

이그나시아가 너무 야박하다며 구시렁거렸지만 섭리자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지금부터 세계 회의의 첫 번째 소의제 표결을 시작하겠다.”

각자의 앞에 완벽하게 동일한 도장과 투표지들이 전달됐다. 아까까지 없었던 투표함이 테이블 위에 자리했다.

쿵.

모든 참석자가 내외가 완벽하게 차단된 벽 안에 갇혔다. 일종의 칸막이를 구축한 섭리자의 목소리만 울려 퍼졌다.

“신성, 베르덴이 발의한 대의제 개정안에 투표할 참석자는, 투표지로 찬성과 반대를 결정해 투표함을 채워라.”

이미 결정을 내릴 시간은 충분히 있었기에 실제 투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칸막이가 사라졌다. 투표함이 통째로 바깥으로 나가 의장에게 향했다.

섭리자가 보란 듯이 가장 가까운 투표함부터 개봉했다. 비공개 투표의 결과가 어떤지 공개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찬성 1표.”

개표가 이어졌다.

찬반이 정해진 투표지가 점차 쌓인다. 이윽고 마지막 투표함까지 열리고는, 마지막 투표지가 그 정점에 얹어졌다.

“참석자 54인 가운데 대표자가 중복된 벨디른 공화국, 테르테니아 연방, 디아문 마탑을 고려하면 실제 표결에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은 49명이다. 이 중 총 22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섭리자가 고지했다.

“찬성 22표, 반대 0표. 이에 따라 이형종 공존에 대한 대의제가 개정되었음을 선포한다.”

회의장이 규칙적으로 세 번 진동했다.
가결이었다.
예상한 결과이긴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었을 때의 기분은 상당히 좋다.

베르덴은 와인을 머금었다.

‘시작은 지났다.’

실리스가 제안한 대륙 무역 협정도 호응이 좋아 이미 통과된 것이나 다름없다.
곧 두 번째 소의제에서 제의할 로벨린의 안건도 찬반이 갈리는 게 전혀 아니니 계획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일은 없을 터.

베르덴이 준비한 단추는 한둘이 아니다.

‘다만 문제는…….’

세계 회의가 막을 내리기 전까지 여러 장애물이 산적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많이 신경이 쓰이는 건 아르나크 제국이었다.

───제국은 세계 회의에서 ‘단 하나의 안건’을 올릴 예정이네. 이에 에온은 이유를 묻지 않고 반드시 찬성하도록 하게.

아르나크 제국과 그 영향권에 있는 국가들이 가르간트를 세계 회의 개최지로 선택하는 대가로, 베르덴은 제라클 황제의 다소 일방적인 거래를 감수했다.
이그나시아에게 진 두 개의 빚 중 하나를 갚기 위해서 말이다.

‘과연 황제는 무엇을 제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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