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835

835화 세계 회의: 베르덴 (1)

신앙은 기적을 이루고, 본능은 야성을 부르며, 마력은 마법을 구성한다. 이처럼 당연한 자연계의 원리와 법칙을 일컬어 ‘섭리’라 칭한다.
이치를 아우르는 개념.
섭리는 언제나 한쪽만이 아니라 양방향으로 존재한다.

츠츠츠츳.

톱니바퀴가 거꾸로 돌아가듯이 기적은 신앙으로, 야성은 생명력으로, 마법은 마력으로 환원됐다. 모든 힘이 흩어지고 주인에게 되돌아갔다.
마법적인 고유한 힘이 현상의 원인과 결과의 흐름을 뒤집었다.

이것이 레프라기움 마탑주이자 섭리자, 데우스 위덴의 마도 ‘<천리(天理)>’.

그리고.

인과가 역전하는 세상 옆에는 죽음이 넘실거리는 세계가 있었다.
기적, 야성, 마법은 살아 있는 뭔가가 아닌데도 마치 심장이 뜯겨 나간 생물처럼 순식간에 생기를 잃어 갔다.

힘도, 자연도, 공간도…… 범위 내에 속한 개념이 죽어 간다. 사멸이 깃는 대기는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폐의 기능을 상실케 하며, 고유한 사기는 생과 사의 경계를 명확하게 긋는다.
저항에 실패한 개념과 존재를 즉사시키는 죽음의 영역이 현현했다.

그것이 다크워튼 마탑주이자 죽음의 이해자, 라인델 넥스레온의 마도 ‘<사경(死境)>’.

‘이게…….’

베르덴은 처음으로 섭리자와 라인델이 개척한 마도를 목격했다. 그건 대부분의 세계 회의 참석자도 마찬가지였다.

전자는 신비주의 집단의 수장답게 자신의 힘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고, 후자는 타인의 시선에는 무관심한 듯 힘을 과시한 적이 없었다.

‘하나같이 위험한 마도들이다.’

서로 성질이 다른 두 개의 생소한 경치가 시각과 촉각을 자극했다.

섭리자는 말 그대로 자연계 법칙을 조종했다. 라인델은 산 자는 겪어 본 적 없을 죽음이 무엇인지 느끼게 했다.

두 사람이 깨우친 마법적 개념은 마법계에서 쌓아 올린 그들의 드높은 위상이 절대로 헛된 것이 아님을 증명했다.

특히 라인델이 인상 깊었다.

섭리자는 최초의 위계 마법사인 데다가 실제로도 8위계에 도달했기에, 그가 어떤 강함을 보여 주더라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저것이 8위계의 어떤 경지라는 사실만이 어렴풋이 실감될 뿐이었다.

반면에───라인델 넥스레온은 무채색의 그림처럼 공허했다.

‘격이 제대로 파악이 안 되는군.’

에스티리아 왕국에서 마력회로를 활성화했을 때와는 달리 본격적으로 마도를 개방한 이후부터 존재감이 모호해졌다.

온전히 느껴지는 건 단 하나였다.

바로 위험성.

왜 라인델이 마도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는지 상식적인 측면에서 이해가 되었다. 마법 저항력이 특출나게 강하지 않은 이상, 저 힘에 스치기만 해도 절명한다.
심지어 생물만이 아니라 공간처럼 무생물에게도 죽음을 안길 수 있는 듯했다.

‘이제까지 마주쳐 왔던 주검의 영광의 하인들은 물론이고, 유골룡조차 감히 비견할 수 없는 순수한 사기(死氣)…….’

마치 죽음 그 자체다.

베르덴은 초월에 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라인델의 경지를 추측했다. 스스로 개척한 마도, 죽음의 개념에 통달한 경지.

8위계.

라인델은 이미 초월의 벽을 한 단계 더 넘어섰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라면, 최소한 그 문턱에 다다랐을 것이라 베르덴은 판단했다.

그때, 섭리자가 말했다.

“성녀, 에르세티아. 그리고 수왕, 안티아스. 서로 피를 보지는 않았으나, 이로써 세계 회의 동안에 쌓인 감정은 어느 정도 풀어졌을 터. 내가 세계 의장으로서 허락할 수 있는 마찰은 여기까지다. 이제는 성녀와 수왕뿐만 아니라, 참석자들의 모든 폭력적 행동을 묵과하지 않겠다.”
“…….”
“이의는 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복하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지금 말하라.”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위대한 격이 초월자들을 은연중에 압박했다.

“내가 직접 추방하겠다.”

조금 전까지 점잖고 엄숙하게 관망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결정에 반발하는 참석자는 경고 없이 내쫓겠다는 듯 강경했다.

하지만…… 달리 말하자면 섭리자와 힘을 겨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세계 회의에서 쫓겨날 걸 감수한다면 말이다.

“으으으으음.”

수왕은 여전히 초월자들에게 속박당한 채로 낮게 으르렁거렸다. 어떻게 해야 할지 진심으로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파앗.
그러는 사이 성녀는 두 개의 신물을 역소환해 무장을 해제했다.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여기까지 할게요. 그러니 더는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성자가 ‘어, 어떻게 하죠?’라는 눈빛으로 교황을 바라봤다.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교황은 차분하게 성녀의 눈을 옆에서 들여다봤다.

‘역시 진정된 듯 보이긴 합니다만…….’

성녀는 인내심이 강한 편이나, 그 인내심으로도 억누르지 못한 감정이 끝내 격앙되면 오직 믿음만을 중시하는 신앙자가 된다.

일종의 정신적 문제다.

그녀의 광기는 힘으로 누를 수 있을 만한 종류의 것이 아니다. 제대로 폭발하면 빛의 신께서 오지 않는 이상 만류할 수 없다.

‘가급적 화를 내지 않겠다고 하여 혼자 진실의 서약에 참여하겠다는 청을 받아들였는데…… 수왕과 계외가 어지간히 성질을 건드렸나 보군요.’

여기서 끝난 게 다행이다.

그런 뜻에서 교황은 실로 놀랍다는 듯 베르덴을 흘끔거렸다. 마지막에 성녀와 수왕을 위협했던 묘한 빛이 머릿속에서 아른거렸다.

‘성녀의 고질적인 광기를 조금이나마 억누를 수 있는 마법계 초월자라니.’

검붉은 마력의 정체는 모르겠으나, 그 사실은 결코 나쁘다고 볼 수 없었다.

광기 억제제.

어쩌면 세계 회의에서 루아스교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이 들 정도로 성녀는 숭고했고, 또 위험했다.

……후웅.

교황이 성서의 책장을 덮음으로써 빛의 사슬들을 제거했다. 성녀의 팔다리가 자유를 되찾았다. 성자도 깊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성창을 막고 있던 성검을 회수했다.

나무뿌리가 역성장하듯이 점차 작아지며 대지로 숨어들어 갔고, 옅은 청록색을 띤 마법적 봉인도 큰 소리를 내며 해제됐다.

베르덴도 [인테리스]를 아공간에 보관했다.

“다소 싱겁기는 하지만…… 이건 이것대로 나쁘지 않군. 재미는 있었다.”

수왕은 더 이상 날뛸 생각이 없다는 듯 천천히 가슴을 폈다. 으드득. 몸속을 파고든 키퍼의 봉인을 힘만으로 파훼했다.
관절의 이동을 방해하는 네 개의 창도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의 팔을 붙들고 있던 마울러가 침을 뱉으며 물러났고, 그의 손등을 억누르고 있던 반젤리스가 스태프를 바로 했다.

촤륵.

맹수의 그것처럼──성창과 [인테리스], 그리고 광검에 연이어 부딪쳤음에도 흠집 하나 나지 않은 수왕의 손톱이 살 속으로 사라졌다.

“이걸로 됐나?”
“예, 됐습니다.”

마스터가 손에서 힘을 풀자, 롱소드가 자취를 감추었다. 곧이어 바닥에 나뒹굴던 네 개의 창도 그녀에게 돌아가며 사라졌다.

어디까지나 수왕의 도발로 시작된, 성녀와 수왕 간의 감정적인 마찰은 결과적으로 많은 초월자가 개입하고 나서야 끝이 났다.

“이그나시아, 여기서 멈추지 않고 또 분란을 일으키면 즉각 제재하겠습니다.”
“흐응.”

이그나시아가 머리를 뒤로 젖혔다. 레프라기움 마탑의 대행자, 메이아가 차가운 눈빛으로 스태프를 겨누고 있었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설마 이런 분위기에서 함부로 굴겠니? 물론 나도 눈치라는 게 있고, 나만의 선이란 게 있는데.”
“회의장을 복구하세요.”
“알겠어, 알겠어.”

이그나시아가 수천 명에 달하는 환영의 분신을 제거하고는 상하가 반전된 환상의 세상을 원래대로 되돌렸다.

따악──!

그녀가 다시금 손가락을 튕겼다.

눈 깜짝할 사이에 초원의 풍경이 사라지고, 조금 전까지 소의제와 대의제를 논의하며 서로의 진실을 추궁하던 회의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와 동시에 섭리자와 라인델도 마도를 거두며 권좌에 몸을 실었다.

어느샌가 이그나시아도 자신의 자리에 착석해 있었다.

“아하하하, 내가 너무 제멋대로 굴었나? 사과의 의미로 준비했으니까, 먹고 싶은 대로 먹어.”

마그누스 은행산 레드 와인이 담긴 잔들이 또 참석자들 앞에 놓였다. 보다 큰 그릇에 담긴 극상품의 과자까지도 말이다.

“사양하면 배만 고플 뿐이지.”

와그작, 와그작!

수왕이 그릇째로 간식을 씹어 먹곤 아주 값비싼 와인을 단숨에 들이켰다.
산짐승을 산 채로 뜯어먹을 것 같은 외형과는 다르게 이그나시아가 준비한 과자와 술이 꽤 입맛에 맞은 모양이었다.

쿵.

섭리자가 상원 테이블을 한 차례 두들겨 모두의 이목을 끌었다.

“마지막 질문이 끝났다. 이로써 진실의 서약을 마친다. 의장의 권한으로 1시간 정회를 선언하며, 이후 두 번째 소의회를 속행하겠다.”

잠시 휴식이 주어졌다.

* * *

주변에 아무도 없는 복도 끝.

“끄으, 윽……!”

다른 수인족 왕들에게 부축을 받은 산왕이 상처 부위를 살폈다. 팔은 깔끔하게 부러졌고, 갈비뼈도 반쯤 금이 간 듯했다.
내부 장기는 별로 문제가 없었지만 타격 부위의 근육이 다소 손상됐다.

수인족 상위권의 강자는 대체로 회복력이 뛰어나 며칠이면 나을 테지만, 고작 일격을 허용한 것치고는 상당한 피해였다.
상대가 무투계도 아닌, 명실상부한 마법계 초월자라는 점에서 말이다.

“마법 없이도 이 정도의 신체 능력.”

조왕(鳥王)이 중얼거렸다. 무슨 파도라도 치듯이 날개와 몸의 깃털이 순차적으로 일어났다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어떠셨습니까, 그 힘은.”
“포식자로서의 자격이 있다. 아직도 성장 중인 걸 감안하면 더더욱. 그러면서도 인간 출신 마법사답게 스스로를 감출 줄도 알고.”

카가각.

수왕이 송곳니를 긁었다.

“확실히 여흥 이상이다.”

마스터 정도 되는 실력자는 많아야 세 명에 불과할 것이라 여겼는데, 인간 측 초월자들의 전력은 기대를 훨씬 뛰어넘었다.
그중에서도 마법계 초월자는 뜻밖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음험하고 위험한 냄새를 풍기는 놈들이 한둘이 아니다.

* * *

교황과 성자, 그리고 추기경과 대주교에게 진실의 서약에서 얻은 정보를 건넨 성녀는 가만히 상념에 잠겼다.

신성, 베르덴.

원소 마법이 마도이자 주력일 거라는 평가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기이할 정도로 육체 능력 전반이 골고루 발달했다.

무엇보다도 스태프를 활용한 특유의 무기술을 사용한다는 점은 다름 아닌 7대 마도왕, 반젤리스 루인 아케나드를 연상케 했다.
물론 그 전반적인 움직임은 서로 거의 일치하지 않았지만.

그보다…… 성녀의 머릿속을 헤집고 있는 건 그런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그 마력.’

성창과 성갑을 통해 느꼈던 충격이 환상통처럼 감각에 남아 있다. 아무래도 그것이 베르덴의 진정한 마도인 모양이었다.
한데 으레 마도사를 대하듯 단순히 특이하다고 치부할 수가 없었다.

‘뭘까, 이 기분은.’

검붉은 색채를 맞닥뜨린 순간을 떠올리자 감정이 또 술렁였다.

낯익으면서도 낯선 감각.

그것은 후련하면서도…… 어째서인지 구역질이 날 만큼 역겨웠다.

* * *

서약의 참여자들은 자신의 세력에 어떤 진실이 오갔는지 은밀히 정보를 공유하고는 세계 회의장으로 돌아와 착석했다.
미참여자들은 궁금증을 안은 채 자리를 지키거나 복도를 한 바퀴 돌며 시간을 때웠다.

쿵.

정확히 1시간이 지나자 개방되어 있던 회의장 문이 닫혔다.

“두 번째 소의회를 재개하겠다. 언쟁은 허락하나, 물리적인 수단을 동원할 경우 경중을 불문하고 즉각 퇴장 조치를 취할 것이다. 이 점 유의하도록. 그럼, 제의자는 거수하라.”

서약자가 제의한 진실의 서약으로 인해 여러 충격적인 기밀이 만천하에 밝혀졌다.

그런데 좌중은 고요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 진실들을 이용해서 올릴 만한 안건이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마경에 기생의 대악마가 있으니까, 마경 정벌을 재발의한다? 정보 출처는 그 섭리자이나 아직 실제로 확인된 건 없다.
게다가 섭리자는 제라클 황제가 건의한 마경 정벌에 반대표를 던졌다.

물증이 없는 이상 루아스교가 움직이도록 설득할 방법은 요원하다.
차라리 마경 조사 후 확실한 단서를 발견해서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세계 회의를 다시 여는 편이 합리적이었다.

그렇다면 베르덴이 초월적 존재 다섯을 죽인 건 어떨까?
이것도 논외다.
산디르 파엔은 애초에 공식적인 초월자 자격을 박탈당한 지 오래니까. 그를 죽여도 초월자의 규율엔 저촉되지 않는다.

하물며 베르덴이 또 누굴 죽였는지 알지 못하는 이상 단순히 숫자만 가지고 그를 초월자의 규율로 처벌할 수는 없었다.

그럼 루아스교와 주검의 영광에 얽힌 역사는?
이건 가능성이 있다.
투표로 루아스교가 확보한 주검의 영광에 대한 모든 정보를 공유하게 해, 대륙을 위협한 놈들에 대한 세계적인 공조를 시작하는 것.

하지만…… 그런 식으로 루아스교를 압박하는 건 여러모로 옳지 않다. 그들이 인류에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이 너무도 크니까.

서약자도 그걸 알기에 침묵을 지켰다.

세계 회의가 끝나고 난 뒤에 따로 자리를 마련해 협력 관계를 맺는 게 적당하다. 강압으로 이루어진 동맹은 결국 금이 가기 마련이다.

5분이 흘렀다.

“이걸로 두 번째 소의회를 마치겠다.”

정회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세계 회의는 곧장 다음 차례로 넘어갔다.

“이제 두 번째 대의회를 시작하겠다.”
“……”
“두 번째 대의제는, 사전에 설명한 대로 적룡의 비늘에 이은 기본 대의제 중 하나다. 그러나 주제는 주인 없는 땅에 대한 에온의 권역 정당성이므로 발언 주체는 정해졌다.”

섭리자가 나지막이 말했다.

“신성, 베르덴. 앞으로.”

첫 번째 소의회, 첫 번째 대의회, 두 번째 소의회, 진실의 서약을 지나 세계 회의의 마지막을 장식할 두 번째 대의회.

베르덴의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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