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851

851화 신년(新年) (1)

‘<겁화>가 억제되어 있다. 그럼 의식만 물리적인 실체를 갖고 패잔병의 감옥으로 이동했다고 해석하는 게 맞겠어.’

돌이켜 보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마치 어느 날 꾼 허무맹랑한 꿈 같은 경험이었다.

잿빛의 용이 정확히 [아인베르]에 어떤 선물을 줬는지 알 길은 없다.

어쨌든…….

‘금기를 위반한 대가가 그리 가벼울 리 없다.’

다름 아닌 ‘당신’이 직접적으로 봉인한 존재이니 처벌도 무거울 것이다. 그의 말대로 죽지는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여러모로 빚을 졌군.’

잿빛의 용은 파멸의 마도에서 뭔가를 깨달았고, 그것을 계기로 금기를 홀로 감당하면서까지 새로운 정보들을 전달해 줬다.

운명의 사도.
다섯 번째 세계에 있는 운명의 원천.

전자는 이견의 여지 없이 몰가른의 미래 벽화에 있던 존재들이다. 그리고 후자는…… 아마도 ‘당신’의 역린이 되는 가장 중요한 비밀이 아닐까,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든다.

완전한 의식.
잿빛의 진정한 의미.
태초의 드래곤.
운명전에서 ‘당신’에게 굴복한 저항자들.

현실에선 시간의 경과가 무의미할 만큼 정말로 찰나였지만, 그동안 잿빛의 용과 나눈 대화는 깊은 영향을 남겼다.

단순히 인과의 모순을 일으켜 운명을 불완전하게 만들려고 했던 베르덴에게 조금이나마 명확한 실체를 가진 지향점이 주어진 셈이니.

그뿐만이 아니다.

‘잿빛의 용처럼 불멸은 아니더라도 존재의 격이 높으면 금기를 감당할 수 있다.’

금기의 파훼법을 알아냈다.

그야말로 무식한 방법이기는 해도 일단 가능하단 점이 매우 고무적이었다. 압도적인 강함은 잡다한 기교에 흔들리지 않는다.
앞으로도 폭발적인 성장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파멸의 개념적 확장.’

침묵의 사막에서 베르덴의 단기적인 목표는 이미 정해졌다. 그는 <무한>과 <파멸>에 대한 깨달음의 합일이 8위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나저나 아무리 생각해도 적대감이 들지 않는군.’

잿빛의 용을 처음 봤을 때 경계는 했지만 적의는 전혀 생기지 않았다. 격상의 존재감에 압박당하는 와중에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본질적으로 잿빛이란 개념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까.

베르덴이 괜히 잿빛 머리카락을 쓸었다.

“가주…… 뭐가 잘 안돼?”
“음?”

베르덴이 다시 현실에 집중했다.

마법진 디스펜서로 구현했던 로어 울프 아종은 이미 흩어졌다.
집중력이 풀어진 탓이다.
이를 본 이자벨라는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냈고, 테오도르는 소환 마법의 실패를 직감했는지 실의에 빠진 얼굴이었다.

“의식 격리는 너무 난해한 방법일까요……? 그러면 개선해야 하는데, 일단 그게 소환 마법의 근간이라서 어떻게 할지…… 차라리 발표를 나중에…….”
“소환 마법은 성공했다.”
“네?”

테오도르가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전혀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이다. 마법진 디스펜서가 해제되어 사라졌다.

베르덴이 다가가 테오도르의 머리를 다독이듯 두드렸다.

“소환 마법 발표는 마도 축제에서 진행될 거다.”
“넹?”
“모든 비용은 에온에서 지불한다. 그러니 후회가 남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라. 뭐, 머지않아 아카데미에 정식으로 방문할 때 다시 보겠지만. 아니면 아크에서 볼 수도 있고.”

사실상 베르덴이 잿빛의 용을 만날 수 있었던 건 테오도르 덕분이었다. 연구비쯤이야 얼마든지 지원해 줄 수 있다.
물론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테오도르는 멍하니 눈만 끔뻑일 뿐이었다.

알파가 물었다.

[복귀?]

“대외 일정은 여기까지.”

베르덴이 시전한 공간 마법이 일행들을 부드럽게 감쌌다. 공간 속성 특유의 보랏빛이 자연의 중심에서 빛났다.

“이리스에게 안부 전해 주도록.”

다른 좌표로 옮겨지는 듯한 느낌이 테오도르의 감각을 뒤덮었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아카데미 근처 골목이었다.
베르덴, 이자벨라, 알파, 베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후웁, 테오도르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거리 한복판에서 소리쳤다.
베르덴을 향한 뒤늦은 답변이었다.

“네!!!!!!!!!!!!!!!!!!!”
“아, 깜짝이야!!!”

마침 지나가던 쉐오른 장로의 후손이 기겁하며 빵 봉투를 떨어뜨렸다.

* * *

여러모로 큰 변수가 있었지만, 틸버 스팬기어를 영입하고 테오도르의 소환 마법을 시험함으로써 가르간트에서의 일정은 마무리됐다.
이제 간단한 내부 일정만 처리하면 권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오후의 티타임.

“저는 감회가 새롭다는 말이 이렇게 와닿은 적이 없습니다.”

리비안트 공왕의 얼굴에 진심 어린 감동이 담긴 미소가 번졌다.
베르덴이 리비안트 공국을 떠나 에스티리아 왕국으로 넘어간 이후 직접적인 왕래는 없었지만 인연이 깊은 인물이었다.

공국의 대행사에서 개최된 시합에서 우승했던 기억, 글러트니의 다섯 번째 송곳니를 품은 라비슈른 후작가를 멸문했던 기억 등이 떠오른다.

리비안트 공왕은 글러트니에 대해 여전히 알지 못하지만, 바로 그 옆에 자리한 가드란 후작은 아니었다.

공국의 2왕자와 가드란 후작은 방주의 일원으로 베르덴과 함께 리비안트 공국에 숨어든 글러트니를 척살했다.

베르덴이 말했다.

“동감이다, 리비안트 공왕.”

과거와 달리, 신분은 역전됐다.

불과 약 4년이란 시간 만에 그레이에서 활동하던 용병이 대륙에 군림하는 절대적인 지배자가 될 거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리비안트 공왕은 이번 세계 회의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스쳐 지나간 인연임에도, 베르덴 님이 리비안트 공국을 신경 써 주고 계신 점. 이 자리를 빌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감히 서면으로 인사를 전할 수 없어서 고심했는데, 이렇게 베르덴 님과 대면할 기회가 생겨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짧았지만 가벼운 인연은 아니지. 네가 내게 준 추억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이자벨라의 목에 걸린 [삼원색의 중심]의 검은 보석이 무지갯빛을 띤다. 한때 리비안트 공국의 소유였던 아티팩트.

───자네에게 위험하다고 못 준다고 했었지. 그 말도 맞긴 하다만 그건 진짜 이유가 아니었네. 사실 이건 젊은 시절, 왕국의 경매장에서 라비슈른과 가드란과 함께 구한 추억이 담긴 물건이지.

───이제 추억을 떠나보내야 할 차례인 것 같군.

───자네와 같은 원소 마법사라면 분명 이 아티팩트를 다룰 수 있을 걸세. 지금이 아니라도 언제가 됐든. 암. 한 국가의 후작가를 상대해 승리한, 역사상 유례없는 4위계 마법사에겐 간단한 일이겠지.

───고마웠네.

공국의 수도, 리드론 근처의 작은 언덕에서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그곳에서 리비안트 공왕은 추억을 묻었다.

“……그건, 제 평생을 통틀어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일 겁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군.”

베르덴이 시선을 돌렸다.

“에스티리아 왕국과 벨디른 공화국도 잊지 않고 있다. 너희들에게서 받은 아티팩트는 여전히 유용하게 쓰고 있지. 보다시피.”

에스티리아 왕국에선 레오닐을 처단하고 왕가를 구한 베르덴은 국보 [레인디아]를 받았고.
벨디른 공화국에서 유골룡을 토벌한 보수로서 아드리안은 현 갑옷에 걸친 검푸른 로브 [그늘거미]를 손에 넣었다.

참고로 아드리안은 여기에 없고 에네트와 함께 있다. 일정을 숨기자는 베타의 의견을 이자벨라가 채용한 결과였다.

아무튼.

루아스교에 협력해 유골룡 사태에서 여러 도움을 제공했던 공화국의 최고 의원, 브릴런 케이란스가 손사래를 쳤다.

“여태껏 저희가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그리 말씀하시면 폐하를 대할 낯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후후, 그럼요.”

실리스가 자애롭게 웃었다.

세계 회의 개최 전에 에스티리아 진정한 국왕이 누구인지 공화국과 공국에 전달했는데 단순히 놀란 반응이 전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전대 에스티리아 국왕이 동대륙 전쟁의 원인이었으므로, 그와 반대되는 행보를 걷는 실리스를 국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현재 벨디른 공화국, 리비안트 공국, 에스티리아 왕국은 에온이라는 큰 집합 안에서 동맹을 체결한 상태다.

물론 실리스가 베르덴의 측근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었다.
심지어…….

“너희들 되게 화기애애하다. 베르덴이 권위로 애들을 어떻게 찍어 누르는지 구경하러 왔는데. 너무 심심한데?”
“하하…….”

사전 약속도 없이 갑작스럽게 티타임에 끼어든 이그나시아가 실리스의 어깨에 팔을 걸친 채 과자를 씹어 먹었다.
마치 인형처럼 안겨 있는 듯한 실리스는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식은땀을 흘렸다.

베르덴이 말했다.

“또 뭐냐.”
“어머, 매정한 거 봐? 가르간트에서 여기저기 전이하고 다니는 것도 봐줬더니. 시내에서 허가되지 않은 마법 쓰면 불법인 거 모르니?”
“초월자에게도 통용되진 않을 텐데.”
“그건 내 마음이지. 가르간트는 내 권역이고, 내 거니까.
“벌금 부과하든가.”
“아하하하하하하하, 벌금이래! 재밌다! 그렇지 않니?”

이그나시아가 정색했다.

“웃어.”
“하하하하.”
“협박하지 마라.”
“아하핫, 이게 권위지. 얘들아, 장난이니까 겁먹지 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세계 회의에서 성녀의 심기를 건드리고, 참석자들을 향해 마법을 퍼부었던 광경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들은 새삼 계외와 신성의 친분이 상당히 깊다는 걸 깨달았다.

“근데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내 경매를 위해서 초청했던 행운의 선율가가 이렇게 될 줄이야, 정말로 놀랐다니까?”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당신에겐 감사하고 있어요. 덕분에 가주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

이그나시아는 이자벨라의 황금빛 눈동자를 잠시 바라보다, 전부터 느꼈던 이질감을 확인하곤 입가를 끌어 올렸다.

“역시 다르긴 다르네. 그냥 최고위 마도사는 아닌 모양이야. 그 예쁘장한 얼굴로 베르덴의 왼팔이 된 건 아닌가 봐?”
“제 외모가 도움이 안 된 건 아니죠.”
“아핫, 당돌해서 재밌네. 베르덴이 사람을 잘 보긴 한다니까.”

이그나시아가 느닷없이 칼리아를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여긴 눈매가 날카로운 게 매력인 여기사. 게다가 그 붉은 머리 여자까지. 취향이 다양하네.”
“시끄럽고. 용건이 뭐지?”
“내 제자 보러 왔지. 그리고 너한테 마지막으로 물어볼 것도 있고.”
“말해라.”
“내가 봤을 때 조만간 전쟁이 날 것 같거든? 그 주검의 영광이라는 녀석들하고. 그냥 투덕거리는 게 아니라 대륙의 패권을 다투는.”

이그나시아가 전쟁을 언급하자 삼국의 정상들이 경청의 자세를 취했다. 그녀도 농담이 아니라는 듯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네 생각은?”
“그게 이 자리를 만든 이유지.”

베르덴이 자신의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벨디른 공화국, 리비안트 공국, 에스티리아 왕국을 쳐다보며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본국으로 돌아가는 즉시 국가 전력을 정비하고, 전쟁에 대비하라. 물론 세계 회의에서 합의된 안건도 준비하면서.”
“……!”
“군사 훈련을 강화하되 특히 비행정, 공성 병기, 전략용 매직 아이템 등에 집중하도록. 숫자의 힘이 극대화될 수 있게.”

베르덴이 단언했다.

“올해는, 어쩌면 현시대에서 가장 힘든 한 해가 될지도 모른다.”
“작년 말에는 대륙 규모의 전염병, 올해는 대륙 규모의 전쟁 위기. 아하핫. 베르덴, 널 만난 이후로 영 지루하지가 않다니까.”

평화가 저물고 세상에 전란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혼란은 초월자들의 광기로 인한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기준을 어기지 않으면서 마음대로 날뛸 수 있는 시대.

와삭.

이그나시아는 바구니 속 사과를 꺼내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좋네, 신년(新年)부터.”

* * *

파아아앗!

아르나크 제국의 초거대 비행정──어토리움을 필두로 한 함대가 공간을 뛰어넘어 서대륙의 상공에 당도했다.

가장 보안이 철저한 어토리움의 내부에서 제라클 황제가 서면을 펼쳤다.

“헬리온 마탑주, 전선전쟁, 트리톤 마르투스가 세계 회의의 안건들과 여러 계약을 이유로 정식으로 제국을 마탑에 초대했다. 헬리온 마탑의 심층부에 접근할 기회가 생긴 것이지.”

[드디어!]

천공룡 아에로돈이 정식 서면을 빠르게 훑고는 포효했다. 물론 손바닥만 한 크기라 포효라고 할 수도 없었지만.

“몇 번이고 말하지만 마탑의 동력원에 접근하는 건 네 몫이다. 오만하게 굴다가 발각되면 돌이키기 어려우니, 반드시 명심하도록.”

[이 몸은 천공룡이다. 저급한 하등종도 아니고 그런 실수를 할 것 같으냐. 몇 번이고 말하지만 너는 날 마탑에 데려다주기면 되는 거다.]

“이걸로 약속은 지켰다. 그러니 마탑 건으로 더 이상 시끄럽게 굴지 마라.”

[흥. 좋다. 특별히 이 몸이 아량을 크게 베풀어서 그러도록 하마. 후하하하! 기다려라, 올다르크 놈! 내가 네놈의 비밀을 전부 파헤쳐 줄 테니!]

아에로돈이 폴짝폴짝 뛰며 자그마한 날개를 퍼덕거리다가 휙 고개를 돌렸다.

[아참. 그보다 세계 회의에서 대체 무슨 얘기가 오갔느냐? 특히 베르덴이 뭘 했는지 궁금하니 어서 말해 보거라.]

“원하는 것도 많군.”

제라클 황제가 호화로운 의자에 몸을 실었다.

“그 전에 너부터 얘기해라.”

[또? 고작해야 100년도 못 사는 황제 놈이 옛날 역사에 관심도 많구나. 머릿속에 오래 담지도 못할 것을. 그래서 뭐가 듣고 싶은 거지?]

“지난 이야기를 이어서.”

[아,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험한 존재들에 대해서 말이냐? 음. 확실히 누구에게나 흥미로운 주제긴 하지. 어디 보자.]

아에로돈이 턱을 짚고는 특유의 눈동자를 천천히 굴렸다.

[오늘은 이게 좋겠군.]

녀석이 발톱 두 개를 폈다.

[지상 최악의 난쟁이와 대학살의 수인. 들을 준비 되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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