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882

882화 죄인들 (2)

낯익은 존재감이다.

아드리안에게 한 명은 생소했으나 다른 한 명은 익숙했다. 베르덴은 두 명 다 이미 만나 본 적이 있는 인물이었다.

끼익.

부서진 나무문이 열리며 가느다란 백골의 손이 보였다.

[베르덴만이 아니라 아드리안도 같이 왔군. 어서 들어오게.]

아드리안은 딱히 안면도 없으면서 왜 친한 척을 하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베르덴이 곁에 있어 조용히 말을 삼켰다.

아드리안이 선뜻 앞으로 나와 먼저 오두막 안에 발을 디뎠다. 그나마 최소한의 예의를 챙긴 그는 초대 네크로맨서를 향해 고개만 까닥거리곤 다른 죄인들의 기척을 주시했다.
입구가 낮은 터라 체격이 큰 아드리안이 고개를 기울여야 했다.

[소문보다 과묵한 사내로군.]

“과묵하기보다는 붙임성이 없습니다.”

배타적인 성격의 아드리안을 따라서 베르덴도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보글보글.

낡은 화로 위에서 주전자가 끓었다.

자그마한 등불이 놓인 식탁 주변에는 죄인들이 있었다. 한 명은 귀한 출신이라는 듯 바르게 앉아 있었고, 한 명은 서 있었다.

“당신이 죄인 중 하나일 거라고 어렴풋이 예상은 했지만…… 그쪽은 의외군.”

베르덴이 젊은 사내의 목에 눈길을 향했다.

“설마 모험가였을 줄이야.”
“세계 회의에선 부득이하게 정식으로 인사드리지 못했습니다.”

앉아 있던 사람이 일어섰다.
흑요 등급 플레이트가 쩔그럭거렸다.

“카스티안 리니게아 타인 크세리온. 망국의 죄인입니다.”

세계 회의에서 모험가 길드장과 흑해의 호위를 담당했던 흑요 등급 모험가 중 일인, 이명은 완벽한 모험가.
억양이 정제되어 있다.
기억났다.
베르덴은 수개월 전에 이자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들어 본 적이 있다.

왕족은커녕 귀족 가문도 아닌데 어디서 배웠는지 말투와 행동이 왕족 같은 이상한 모험가…… 마법계 총회의에서 이그나시아 넌지시 언급했던 그 ‘이상한 놈’이 틀림없었다.

아드리안은 다른 것에 주목했다.

“크세리온?”

주검의 영광이 부활시키려 하는 존재의 이름은 아칸드 리니게아 타인 크세리온. 아칸드를 가리키는 다른 이명은 크세리온 황제.
그자와 같은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출신임을 의미했다.

“옛 왕과 무슨 관계냐.”
“그것이 이번 만남의 주제이기도 하오.”

입술 위를 콧수염으로 장식한 중년의 사내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재회가 일찍 이루어졌구려.”

이데라트 연맹국의 고물상, 레지날프.

외로운 늑대 로메르와 친분이 깊으며, 베르덴과 갈리아크의 황금 유골이 한곳에 모이도록 중개역을 맡은 인물이었다.

베르덴이 말했다.

“당신이 죽음의 죄인이군. 혈맹의 정보와 피울음 역병 완화제로 신세를 졌다.”
“인사는 됐소. 감사해야 할 것은 오히려 우리지. 에온 덕분에 불필요한 의심을 사지 않고 대대적으로 주검의 영광에 대응할 수 있었으니.”
“그래서 그 할 일이라는 건 끝났나?”

황금의 죄인이 부활하자마자 안내한 창고에서 둘은 이런 대화를 나눴다.

───장사를 잠시 접을 예정이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래서 그런데 로메르를 데려가 줄 수 있겠소? 젊어서 혈기가 넘치긴 하지만 그래도 밥값은 할 줄 아니까, 신경에 거슬리는 일은 딱히 없을 거요. 어쩌면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제 앞가림을 못 하는 것 같지는 않던데.

───그렇다고 혼자 내버려 두면 언젠가 여자 꼬시다가 죽을 것 같아서 말이오. 살다 보니 저런 녀석들은 대개 그렇더군.

레지날프는 로메르의 신변을 에온에 부탁하고는 자취를 감췄다. 베르덴이 그를 죄인으로 의심하게 된 대목이기도 했다.
황금의 죄인이 의식을 찾은 직후에 공교롭게도 장사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으니.

“얼추 마무리는 했소. 사안이 사안인지라 아무리 준비해도 안심은 되지 않지만. 여러 변수도 생겼고 말이오.”

[다소 심각한 변수지.]

초대 네크로맨서, 안데스 네크라일이 베르덴의 맞은편에 섰다.

[통성명은 다 했으니 이만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게 좋겠군. 향이 제법 좋은 차를 데워 놓았으니 한 잔씩 들게.]

베르덴, 아드리안, 카스티안 앞에 차례대로 철제 컵이 놓였다. 안데스가 주전자를 들어 뜨거운 찻물을 손수 따라 주었다.
레지날프는 안데스와 마찬가지로 차를 마시지 않았다.

───[그리고 두 번째 안배는 나와 동일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에게 내게 적용한 불사의 의식을 적용해, 오랜 세월에 걸쳐 혹시 모를 옛 왕과의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었네.]

───그게 죄인들입니까?

───[죽음의 죄인, 황금의 죄인, 망국의 죄인. 그들은 후대를 구하고, 옛 왕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렇게 함으로써 후회에 속죄하기 위해서 세월의 고통을 자처한 자들이네. 그중 망국의 죄인은 불사의 의식을 거치지 않았지만, 모두 뜻은 같지.]

안데스와 황금의 죄인은 불사의 의식을 통해서 인격을 유지한 채 언데드가 되었다.
안데스의 말에 따르면 레지날프도 동일한 의식을 치렀다고 했는데, 그는 겉으로 보기에 평범한 사내와 차이가 없었다.

‘역시 사기(死氣)는 느껴지지 않는다.’

베르덴의 통찰력은 여전히 레지날프를 평범한 시민으로 규정했다. 죽음의 죄인이라고 자기 자신을 소개한 것과 대비됐다.

하기야 눈앞의 존재들은 하나같이 약 8세기 전의 고대인들이니 어떤 특성이 있다고 해도 딱히 이상할 것은 없었다.

고로 모험가로서 활동하고 있던 카스티안에게도 뭔가 특별한 점이 있으리라.

안데스가 턱뼈를 움직였다.

[저번에 말했던 황금 비고, 죄인의 배경, 그리고 새로운 변수들. 우리가 이야기할 주제를 크게 나누면 이렇게 셋이네. 어떤 것부터 듣고 싶은가.]

“변수부터 듣겠습니다.”

과거는 이미 정해진 결과이기에 나중에 들어도 상관없다. 그에 비해 현재는 향후의 미래를 결정짓는 유일한 길목이다.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는 구태여 설명할 것도 없었다.

[알겠네. 확실히 그러는 편이 좋겠지. 변수는 총 두 개인데, 그중 하나는 자네들이 코앞에서 들었던 내용이기도 하니.]

안데스가 손뼈를 모았다.

[첫 번째 변수는 용검의 소재. 정확히 말하면 그 소재의 단서를 밝힌 자일세.]

* * *

침묵의 사막에서 안데스는 말했었다. 아무래도 주검의 영광이 모종의 세력의 도움을 받아 움직이는 것 같다고.

그 와중에 용검의 소재가 드러났다.

세계 회의에서 용검 마그라스를 처음으로 언급한 사람은 다종족의 화합을 주장하는 이데라트 연맹장, 테리웬이었고.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400년 전에 죽은 바아렌 모루가 쓴 예언적 시구를 꺼낸 것은 세계적 감정사, 레논 버나드였다.

두 사람을 주검의 영광의 조력자로 의심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지만, 생각해 보면 그럴 확률은 매우 낮았다.

용검은 옛 왕의 무기.

몰래 챙겨도 모자랄 판에 그 소재를 선뜻 공개한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았다. 주검의 영광이 취할 이득이 사실상 없었다.

그래도 안데스는 테리웬과 레논 버나드의 뒤를 캐기로 했다. 머리로 따진 합리성이 항상 현실과 들어맞는 것은 아니므로.

“뭔가 찾은 겁니까?”

[이데라트 연맹장은 공개적인 행보를 자주 보인 만큼 깨끗했네. 의심할 여지가 없이…… 하지만 레논 버나드는 좀 다르더군.]

안데스가 손끝으로 오래된 식탁 위에 수평선을 천천히 그었다.

[평상시에는 종적을 감추기에 행방을 알 수 없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감정 능력을 보유해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감정사. 우리는 세계 회의가 끝나자마자 그자를 추적함과 동시에 수십 년에 걸친 감정 경력을 조사했네.]

아드리안이 컵을 내려놓았다.

“이렇게나 빨리?”
“우리가, 정확히는 내가 갖춘 정보력은 그 어떤 세력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소. 오히려 부분적으로는 앞서 있지. 수백 년이라는 세월을 낭비하지 않았으니 말이오.”

[그 덕분에 레논 버나드의 과거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었네. 어느 정도까지는.]

베르덴이 말했다.

“문제가 생겼군요.”

안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논 버나드의 경력을 조사하던 자들이 일부 실종됐네. 하지만 대체 무엇 때문에 사라졌는지가 확실치가 않아.]

특정 지점에 손을 대었다가 봉변을 당한 거라면, 그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조사함으로써 레논 버나드의 비밀에 다가가면 된다.

그런데 조사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4년 전을 조사한 사람은 멀쩡했지만, 3년 전을 조사한 사람은 사라졌고.
21년 전을 조사한 사람은 사라졌지만, 17년 전을 조사한 사람은 멀쩡했다. 다시 17년 전을 조사하라고 사람을 보냈는데 또 그 사람은 무사했다.

불규칙적이다.

어떤 경력을 조사하든 무관하게 아무나 골라잡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왜 곧바로 발각됐는지 차치하고 말이다.

“일부러 혼선을…….”

베르덴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제가 보기에는 역으로 당신들을 끌어내려는 것 같습니다.”

[같은 생각이네. 우리가 상대의 꼬리를 잡으려는 것처럼, 상대도 우리의 꼬리를 잡으려는 것이겠지. 즉 우리가 누구인지는 파악하지 못했다는 뜻이며, 레논 버나드의 배후에 정체불명의 세력이 있다는 의미일 터…… 설령 주검의 영광과 무관하다고 해도 여러모로 의심스러울 수밖에.]

그때, 아드리안이 물었다.

“레논 버나드의 추적도 실패했나?”

[현재 진행 중이네. 레논 버나드는 계속 미행하고 있지.]

“그럼 놈의 신변부터 확보하지. 괜히 시간과 인력 낭비하지 말고.”

베르덴이 안데스를 정중히 존대해도, 아드리안은 반말을 고수했다. 그가 진심으로 예를 갖추는 사람은 베르덴과 돌아가신 스승님이 전부였으므로.
아드리안의 그런 태도는 위의 두 명이라고 해도 고칠 수 없었다.

무려 수백 살이나 어린 초월자의 말에 안데스는 전혀 개의치 않았지만, 카스티안은 조금 불만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중요한 건 레논 버나드가 아니라 레논 버나드의 뒷배입니다. 저쪽에서 레논을 버리기로 하면 꼬리를 잡을 단서가 영영 사라지게 되겠죠. 섣불리 다가가면 일을 그르치게 될지 모릅니다.”

[레논 버나드의 납치는 마지막 수단으로 염두에 두고 있네. 모든 것이 불분명한 지금은 시기상조니까. 아무튼, 레논 버나드와 그의 뒤에 있는 무언가가 첫 번째 변수일세.]

안데스가 손가락 하나를 접었다.

[그리고 마지막, 두 번째 변수는 최근에 대륙에 퍼져 나간 불길한 파동이네.]

“불길한 파동?”

[그래…… 나로서도 그렇게나 짙은 사령의 기운을 경험하는 것은 처음이었네. 이 현상이 시사하는 것은 단 하나밖에 없지.]

안데스가 단언했다.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죽음에서 부활하여 다시금 생명을 얻었네.]

……!

베르덴과 아드리안이 동시에 반응했다.
부활이라니.
그들에게 부활은 말로만 들어 봤다는 점에서 전설 같은 것이었다. 마법계로 비유하자면 그 엘릭서처럼 말이다.

“그 주체는 주검의 영광입니까?”

안데스가 머리를 저었다.

[확인할 수 없네. 내 마도로는 그 위치도 시기도 특정할 수 없어. 사령의 기운은 파동처럼 퍼져 나가는 것이니, 거리가 가깝지 않은 이상 나는 뒤늦게 감지할 수 있을 뿐이네.]

그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자라면 곧바로 특정했겠지.]

“그게 누구입니까.”

[자네와 친분이 있는 자일세.]

안데스가 나지막이 말했다.

[죽음의 이해자.]

* * *

산맥 전체에 음산한 기운이 흐른다.

안개도 제법 짙다.

다크워튼 마탑주, 라인델 넥스레온은 드래곤의 두개골로 장식된 네크로맨서의 스태프를 들고 주변 공기를 들이마셨다.

“퀴퀴하고, 난잡하군.”

라인델이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 주검의 영광의 본거지라고 하기에는 참으로 보잘것없구나.”

죽음이 깃든 시선이 정면을 가로질렀다.
그 끝에 괴이한 난쟁이가 있었다.

“으하하핫! 미친 짐승이 며칠 전부터 뭔가 올 것 같다고 하더니. 진짜로 왔구먼! 역시 그놈의 빌어먹을 본능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드워프.”

라인델이 상대의 정체를 꿰뚫어 봤다.

“죽음에서 부활한 것이 너로군.”

대륙 어딘가에서…….

8위계 마법계 초월자와 지상 최악의 난쟁이가 조우했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