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3화 죄인들 (3)
약 수십 일 전.
생과 사의 역전───루아스 교국의 기적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환원되는 부활이 실행되었음을 인지했다.
그러자마자 다크워튼 마탑을 나섰으나 그 여파의 규모가 워낙 컸기에 위치를 정확히 특정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
라인델의 어두운 눈동자가 현세의 존재는 볼 수 없는 것을 간파했다.
‘고대,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먼 시대.’
한껏 여유를 보이는 낯선 드워프의 명(命)은 낡아 빠졌고, 또 괴이했다.
새까맣다.
저것은 더할 나위 없이 깨끗한 악이었다.
라인델조차 저렇게나 순수한 악으로 내면이 가득 찬 존재는 처음이었다.
“죽음 자체를 자원으로 삼는 흉물로 언데드만이 아니라, 산 자까지 깨울 수 있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았는데. 시대가 주검의 영광을 과소평가했군.”
주검의 영광은 시체에 사기를 불어넣어 강대한 언데드를 탄생시킬 수 있다. 할디른이 베르덴을 도와 토벌한 유골룡이 그 예였다.
800년 전의 초월자 전쟁에서 주검의 영광은 이를 통해서 별격의 언데드 드래곤을 불러냈고, 전 세계와 전면전을 치를 수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언데드 군단을 조직했으며…….
옛 왕의 선천적인 신체의 취약점을 없애기 위해 최후의 의식을 거행했다.
초대 네크로맨서가 다크워튼 마탑에 남긴 수기엔 그렇게 쓰여 있었다.
그런데 죽음을 부여하는 게 아니라 아예 생명을 불어넣을 수도 있다니.
루아스교와 다크워튼 마탑이 무려 수백 년 동안 처단하고자 했던 주검의 영광에 대해서 아직 모르는 부분이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라인델이 물었다.
“너와 같은 존재가 더 있나?”
부활한 것이 한 명인지 두 명인지, 아니면 그보다 더 많은지 분명하지 않다. 라인델은 지금 상황이 제법 흥미로웠다.
난쟁이가 답했다.
“그건 말해 줄 수 없지. 솔직히 말해 주고 싶은데, 말하지 말라고 하더구먼. 나는, 나를 부활시킨 주체를 따라야 하는 입장이라.”
“하인들은 어디에 있나.”
“그 또한 침묵으로 일관하는 바이네.”
라인델이 난쟁이 너머로 보이는 험준한 산맥에 눈길을 두었다. 초목보다 날카로운 바위이 더 많아서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사기는 더 느껴지지 않는다.
첫 번째 하인과 두 번째 하인은 진즉에 본거지를 떠난 게 틀림없다. 도망친 건 아니다. 본거지가 이제 더 필요없으니 미련 없이 버린 것일 터.
“정말로 목전에 다가왔나 보군, 옛 왕이.”
마도 <사경(死境)>
라인델의 마력에 노출된 생명이 순식간에 사멸에 이르렀다. 풀과 나무는 죽어 버렸고, 바위엔 그 기운이 스며들었다.
폐를 적시는 공기는 오히려 산 자를 해치는 독이 되었다.
죽음이 드리운다.
난쟁이는 아주 오랜만에 촉각이 곤두서는 전율을 만끽했다. 그는 두려워하기는커녕 입꼬리가 찢어질 듯 웃음을 지었다.
라인델이 멈칫했다.
“당대의 네크로맨서? 라는 것이 꽤 위험하다던데, 참말이었어. 흑마법의 경지만 아니라 다른 의미로도 말이야.”
“…….”
“자네도 우리 과(科)로구먼?”
라인델이 지면을 내려다본 순간이었다.
“다음에 다시 보자고.”
지상 최악의 난쟁이에게서 달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인형들이 노니는 정식 ‘무대’에서.”
쿵.
주변이 한 차례 들썩거렸다.
라인델이 딛고 있는 땅과 주변 산맥이 수천, 수만 갈래로 갈라졌다. 곧 그 틈새에서 새어 나온 푸른빛이 하늘로 솟구쳤다.
이윽고 반경 수 킬로미터 안쪽에서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대지가 터졌다.
지하에서 시작된 어마어마한 연쇄 폭발이 주검의 영광의 본거지를 집어삼켰다. 도시 하나를 지워 버릴 정도의 절륜한 파괴력.
서늘한 안개로 덮인 자연은 아예 초토화되어 그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
쿠구구구구구……!
쩌저저적!
지진에 이어 여진까지 발생했다.
움푹 가라앉은 땅이 주변과 단절되어 큰 절벽이 되었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크고 작은 바위 잔해로 가득했다.
폭발에 휩쓸린 동식물은 자그마한 벌레 하나조차 살아남지 못했다.
“…….”
라인델이 파괴된 대지를 상공에서 가만히 내려다봤다. 폭발의 중심지엔 시체가 없었다. 크나큰 죽음이 발생하지도 않았다.
‘이미 사라졌다.’
되살아난 옛 드워프는, 현대의 드워프와는 전혀 다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방금 폭발의 위력은 예사롭지 않았다.
괜히 주검의 영광이 수천 년 전 존재를 부활시킨 게 아닌 모양.
───자네도 우리 과(科)로구먼?
옛 드워프가 사라지기 전에 했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물론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듣자마자 바로 깨달았다.
이기심.
흥미.
옛 드워프는 특유의 관찰력으로 라인델의 면모를 간파했다. 비록 전부는 아니었지만, 그의 안목은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라인델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재밌군.”
혼란은 곧 변화의 조짐이다.
다크워튼 마탑주로서 주검의 영광을 막는 것이 의무이자 도리지만, 만약 옛 왕이 다시 세상에 발을 디딘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2차 초월자 전쟁이 발발하면 베르덴은 어떤 변화로 극복할까.
라인델은 예전처럼 대륙의 절반, 아니 그 전체가 불타 버려도 상관없었다. 아무래도 좋다. 라인델에게 세상은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베르덴이 선도하는 변화를 돕고 싶을 뿐이었다. 변화의 끝에, 죽음 너머에 그토록 바라던 것이 있을지도 모르기에.
오직 단 하나의 꿈을 위해서…….
라인델 넥스레온은 남과 다른 이상을 추구하는 초월자였다. 그것이 자신조차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목표일지라도 말이다.
* * *
초대 네크로맨서는 부활을 시행한 주체가 주검의 영광인지 확실치 않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들 이외에 의심 가는 자들은 없었다.
‘라인델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계 회의에서 안건으로 통과된 이형종 공존을 빌미로 조만간 두 네크로맨서를 서로 접촉시키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 일정을 조금 앞당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주검의 영광이 대체 누구를 부활시켰는지 아는 게 없으니.’
놈들에게 초월자 전력이 늘어난 거라면 상황이 좋지 않다.
[당장의 변수는 이 둘이 끝이네.]
“알겠습니다. 저도 후에 나름대로 대책을 강구해 보겠습니다.”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죄인에 대해서.
대화의 목적은 명료했기에 피차 쓸데없이 사족을 붙이지 않았다. 베르덴의 벽안이 안데스에서 두 명의 죄인을 향했다.
“죄인이란 명칭은 당신들 스스로 채운 족쇄라고 들었다. 옛 왕을 그토록 증오하는 이유가 뭐지? 설마 정의감은 아닐 테고.”
베르덴은 죄인들이 무려 8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성을 유지하며, 옛 왕의 부활을 저지하려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제대로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안데스처럼 숭고한 사명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개인적인 감정이 다분할지도 모른다는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레지날프가 말했다.
“그렇소. 정의감은 아니지. 세 명의 죄인은 각자 사연이 다르지만…… 나는 그저 뒤늦게 죄를 깨닫고 참회하고 싶을 뿐이오. 그게 전부요.”
아드리안이 나무 등받이에 체중을 실으며 팔짱을 꼈다.
“고작 참회에 800년을 쓴다? 어지간히도 극악한 범죄자였나 보군.”
“범죄는 아니었지만 그보다 질이 나쁘지. 사람의 죽음을 사고팔았으니. 혹시 죽음의 상인이 무엇인지 들어 보셨소?”
죽음의 상인.
살상 무기의 수입 및 수출로 각지에서 큰 이윤을 창출하는, 전쟁과 갈등을 야기하는 무기 상인의 다른 명칭이다.
“타인의 피와 죽음으로 자신을 위한 행복과 부를 누린다. 그보다 죽음의 상인을 더 잘 설명하는 문장은 없을 거요.”
이제야 레지날프가 제 과거를 밝혔다.
“난 그런 죽음의 상인 중 한 명이었소. 다만, 옛 왕을 고객으로 둔.”
* * *
크세리온 제국이 크세리온 왕국이라고 불리던 시대, 옛 왕이 크세리온 왕국의 제1왕자로 존재했던 먼 시절…….
초월자 전쟁에 휘말려 버린 크세리온 왕국은 벼랑 끝에 몰렸다. 약소국에 불과한 국력으로는 멸망을 피할 수 없었다.
전쟁에서 짓밟히거나 흡수된 여타 국가들처럼 말이다.
그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아칸드는 나약한 군대를 지휘해 적을 격파했다. 규모를 구분하지 않고 11전의 승리를 거두었다.
다만 적국 수도에 도달했음에도 성벽을 돌파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아칸드는 자신의 활약을 신용으로 삼아 무기와 자금을 구했소. 여러 공성 장비와 병장기, 화살. 전부 나와 거래한 물건이었지.”
베르덴의 기억이 반응했다.
───[하지만 공성 장비도 없이 병사만으로 수도를 함락하는 건 손해가 큰 법. 여기서 아칸드는 자신의 활약을 신용으로 삼아…… ‘전쟁 상인’과 ‘대상인’과 거래를 했네. 그리고 놀라운 수완과 언변으로 무기와 자금을 지원받았지.]
안데스는 이미 알게 모르게 레지날프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었다.
“전쟁 상인.”
“그게 나의 이명이었소. 오직 악명만으로 얼룩진 추한 별칭이었지. 초대 네크로맨서께서 말씀하셨듯 당시 나와 대상인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거둘 수 있었소. 발밑에 시체가 얼마나 깔려 있든 간에 개의치 않았지.”
아칸드가 전장을 휩쓸 때마다 그의 거래처였던 이들의 재산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돈!
진심으로 대륙의 황제와 초월자가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단언컨대 내게 죄책감은 일체 없었소.”
전쟁도 사람이 하는 것이고, 돈도 사람이 버는 것이다. 어차피 일어날 전쟁에 손을 거들었다고 해서 왜 비난 받아야 한단 말인가?
약자는 닥쳐라.
거지는 닥쳐라.
그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던 레지날프는 자신의 출세에 불만을 품은 경쟁 상인들을 모조리 처리해서 무기 시장을 평정했다.
자만심이 하늘에 이르렀다.
레지날프의 악명은 더 높아져, 전쟁의 원인이라고 불리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는 수십만 명의 죽음과 부상에 영향을 끼쳤으므로.
“노인의 몸이 창대에 걸리든, 아이가 전쟁통에서 고아가 되거나 죽어 나가든 간에 아무래도 좋았소, 난 상인이니까. 상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윤리도 뭣도 아닌 바로 돈이니까.”
“…….”
“그런데, 내게도 선이 있더군.”
전쟁을 시작하겠다.
그렇게 선언한 아칸드가 용검을 쥐고 단 세 번의 일격으로 초월자를 반으로 갈라 버리자 정세는 변하고 말았다.
대륙이 쓸려 나갔다.
말 그대로.
수십만이 아니라 수백만 명이 전쟁터와 도시에서 학살당했다. 레지날프의 무기로 무장한 크세리온의 군단이 만인을 죽였다.
───거슬리는구나.
아칸드의 검이 길을 막고 있는 도시를 수평으로 쪼개 버렸다. 레지날프는 아칸드의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상체와 하체가 나뉜 사람들이 잔해 더미 아래에 가득했다.
멍하니 도시에 들어간 레지날프가 바닥을 내려다봤다. 틈새에 누군가가 있었다. 다리가 날아가는 대신 목숨을 건진 사내가 제 아이를 끌어안은 채 숨죽이고 있는 모습이 비쳤다.
레지날프는 처절하고 절박한 두 명의 눈동자에 압도당한 기분이 들었다.
푸푸푸푸푹.
크세리온의 병사들이 다가와 틈새 안으로 창을 찔러 넣고 저몄다. 짤막한 비명도 없이 부자(父子)는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레지날프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생존자가 철저히 살해당하고 있었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잔해 밑에서 뻗은 그들의 손이 퍼덕거렸다.
“몇 명이 죽었을까…….”
아칸드가 본격적으로 전쟁을 시작한 후 희생자가 얼마나 되는지 계산했다. 아. 천만 단위를 넘은 지 이미 오래였다.
레지날프는 온몸이 뒤틀리는 느낌에 그 자리에서 구토했다.
“그제야 나는 정신을 차린 듯 기회를 엿보아 대륙 연합에 익명으로 내 모든 걸 쏟아부었소. 한심하겠지, 다 저질러 놓고 이제 와서 죄책감 때문에 수습하는 꼴이라니.”
레지날프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봤다.
깨끗했지만 피비린내가 났다.
“이윽고 옛 왕이 봉인되면서 크세리온 제국은 패배했소. 그리고 우습게도 전쟁이 끝났음에도 나는 살아남았지. 여전히 죄책감은 지울 수 없어 절벽에서 뛰어내리려고 할 때…… 초대 네크로맨서께서 나에게 제안하셨소. 옛 왕에게 최후를 선사할 때까지 함께할 생각이 없느냐고.”
레지날프는 주먹을 쥐었다.
“나는 기꺼이 고통을 자처했소. 그리고 불사의 의식을 통해 수명을 없애고, 세 명의 죄인 중 가장 먼저 깨어나 사명을 이행했소. 내가 살아온 방식이자 그 특기를 이용해서. 상인으로서.”
레지날프의 사명은 ‘무기’였다.
옛 왕을 상대할 군대를 조성하기 위한 무기를 모으는 것. 그러기 위해선 자금 흐름과 수많은 거래 상대가 필요 불가결 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고민하던 나는 시장부터 개편하기로 했소. 우리의 무기와 자금을 보호해 주고, 우리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세력을 구축하기 위해서 말이오. 나는 하나의 중심을 두고, 다음으로 두 개의 중심을 더 만들었지.”
세 개의 중심.
레지날프가 설립한 기반은, 현재 세상의 기둥이 되어서 대륙의 재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중이다.
“잠깐…….”
거기까지 설명을 들은 베르덴과 아드리안이 눈을 크게 떴다.
“그 말은, 당신이 은행을?”
“마그누스 은행, 아노니움 은행, 다이나 은행.”
레지날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대륙 3대 은행의 최초 설립자요.”
겉으로는 사기꾼 같은 고물상.
실제로는 대륙 재계의 주인.
그것이 레지날프의 정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