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888

888화 여섯 번째 (1)

날카롭고 투박한 특유의 전신 갑옷을 두른 자가 성큼성큼 걸어온다. 그의 등에는 언제나처럼 거대한 창이 사선으로 걸쳐져 있다.
체격과 보폭이 커서 빠르게 걷는 속도가 남들이 달리는 속도와 비슷할 정도였다.

진동이 점점 더 커진다.

막강한 위압감에 이자벨라는 본능적으로 신경이 곤두섰다.
제라클 황제가 제의한 마경 정벌이 부결되었다고 세계 회의에서 그가 초월자를 도발하고 이그나시아와 대립각을 세웠던 순간이 떠올랐다.

북부의 감시자가 평가하길, 최강의 선장.

‘……뭐지?’

세계 회의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오늘따라 이자벨라는 그런 재액의 토벌자에게서 알 수 없는 거부감을 느꼈다. 아니, 거부감이라기보단 거북함에 가까웠다.
공간 이동 울렁증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레이라 정도는 절대로 아니었지만, 방심하면 조금 구역질을 할 것 같았다.

쿵.

모험가 길드에서는 마의 공포라고 불리는 재액의 토벌자가 멈춰 섰다.
길게 팔을 뻗으면 베르덴에게 닿는 거리였다.

“재액의 토벌자를 뵙습니다.”

리스너가 테일라를 비롯한 방주의 일원을 대표해 예를 갖췄다.

모두가 토벌자의 투구 안쪽에서 일렁이는 눈빛을 올려다봤다. 에온에서 최장신인 아드리안조차 미간을 좁히며 시선을 높였다.

베르덴이 물었다.

“내게 할 말이 있나?”
“……훌륭했다…….”

토벌자가 성대가 갈가리 찢어진 듯한 목소리를 내며 베르덴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 반대편 어깨에 앉아 있는 알파가 흔들렸다.

“마경과…… 마해는…… 정벌될…… 것이다…… 적룡…… 또한…….”

토벌자가 순간 감정을 내비쳤다.
그것은 분노이며 증오였다.

“……반드시.”

툭.

아드리안이 가로막듯 팔을 들어 토벌자의 손길을 차단했다. 적의가 없어서 개입하지 않았지만 주군께 계속 손을 대는 걸 지켜볼 생각은 없었다.

토벌자는 잠시 아드리안에게 시선을 두고는 팔을 거두었다. 그리고 베르덴을 향해 나지막이 한마디 더 남겼다.

“……잘했다…….”

무거운 발소리가 멀어져 갔다.

정말로 칭찬과 말 몇 마디가 용건이었는지 그가 뒤를 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다리시아가 그쪽을 향해 작게 손을 흔들었다.
압박감이 사라졌다.
그제야 주변에서 목 안쪽에 머물고 있던 숨을 내뱉었다.

[이상한 선장.]

“그런 구석이 있긴 해요.”

다리시아가 우아하게 웃었다.

“정말로 당신이 마음에 들었나 보네요. 저번에 이어서 당신에게만 직접적으로 의사를 표현한 적이 벌써 두 번째니까요.”
“그렇게나 마경 정벌을 바랐던 건가.”
“마경, 정확히는 적룡 사르칸드라의 토벌은 그의 숙원이죠. 어째서인지는 동료로서 제가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요. 궁금하시면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세요. 대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당신이라면 짧게나마 대답해 줄지도?”

그녀는 팔을 늘어뜨린 채 양손으로 깍지를 끼곤 다른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이로써 차기 선장이 아크에 도착했고, 즉위식에 참석할 후보도 전부 모였습니다. 즉위식을 거행하기에 앞서 베르덴과 선장 관련해서 긴밀히 이야기를 나눌 게 몇 가지 있는데. 괜찮을까요?”
“주군께서 바라신다면.”

[확인.]

[확인했습니다.]

알파가 능숙하게 기어올라 아드리안의 머리 위로 자리를 옮겼다. 프레임을 줄인 상태였어도 어지간한 바위보다 무거운 베타는 평소처럼 이자벨라의 어깨에 앉아 있었다.
기와 마력 없이, 순수한 완력만으로는 그녀가 에온에서 가장 강했다.

“다녀오지.”
“어…… 잘 다녀와, 가주.”

이자벨라는 또 빼앗겼던 시선을 되돌리며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베르덴은 홀로 다리시아와 다리시아를 보좌하는 사람들을 따라서 아크의 성채로 이동했다.

“이렇게 선장 두 분을 동시에 가까이서 뵌 적은 오랜만이군요. 저도 마저 즉위식 준비를 마무리하러 가 보겠습니다. 테일라, 안내를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리스너.”

[안녕.]

리스너도 자리를 떠났다.

이내 공허해진 선착장에서 이자벨라가 진지하게 중얼거렸다.

“엄청난 선장이었네.”

아드리안은 그 말의 진의를 알고 있었기에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가리킨 건 재액의 토벌자가 아니라 세계의 주시자였다.

“정말 엄청난 존재감이었어…….”
“예, 그게 다리시아 님이십니다.”

테일라가 같은 여자로서 공감을 표했다.

근처 나무 상자에 걸터앉아 겨우겨우 울렁증을 가라앉힌 레이라가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무슨 일인지 구태여 묻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알아도 쓸데없을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 * *

여러 크고 작은 하늘섬들이 아크를 중심으로 천천히 공전한다.
그중에는 2년 전 레그리트와 베르덴이 교류전을 펼쳤던 섬도 있었고, 방주의 장로 중 한 명이 머무는 섬도 있었다.

“……묘해. 보면 볼수록 묘해.”

챙그랑!

칼날이 아예 나가 버린 날붙이를 아무렇게나 뒤로 툭 던졌다. 그 주변엔 다양한 생체적, 그리고 마법적 도구가 즐비했다.
당연하게도 이 중에는 윤리를 벗어난 용도로 사용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노인이 말했다.

“역시 글러트니의 이식자와는 결이 다르고, 격이 다르다. 마족이라고 했나? 인간과 이형종이 결합해서 이런 새로운 종족이 되다니. 상식이 완전히 어긋나는 기분인데, 허.”

레그리트가 길게 하품했다.

“분리는 실패입니까?”
“사람이 팔다리를 잃었다고 해서 사람이 아니게 될까? 그와 같은 이치다. 이미 자네는 인간을 완전히 벗어났어.”

털썩.

노인이 그녀와 마주 앉았다.

“비늘의 물리 저항력은 성체 드래곤에 비견되는 수준이다. 신체 능력도, 예전에 용인이 되었을 때보다 더 높아졌고. 생물학적으로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원. 달리 불편한 점은 더 없나? 그때 설명했던 거 말고.”
“없습니다. 거슬리는 점이 있다면 워 로드로서의 거동이 힘들어졌다? 정도죠.”

하마터면 아르나크 제국에서 나오지 못해 아크로 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하긴 난데없이 드래곤의 뿔을 달고 나타났으니 제국으로서는 당연히 그녀를 붙잡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편의를 봐주는 제라클 황제가 아니었다면 베르덴의 즉위식에 참석하지 못한 유일한 선장이 될 뻔했다.

“주체하기 어렵다던 성적 충동은? 다른 이에게도 반응했나?”
“여전히 한 명에게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본능이 강해지면서 이성적인 끌림에 솔직해진 게 분명해졌군.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별로 문제 될 건 없겠어.”

노인은 습관처럼 자신의 피부에 가득한 흉터를 어루만졌다.

“……어쨌든. 정말로 기묘해. 아무리 용의 소재와 결합한 방식에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자네는 종족이 바뀌고 토벌자는 그렇지 않으니. 도대체 어떤 요인 때문일까.”
“저도 궁금합니다. 왜 최근 들어 토벌자를 보면 구역질이 나는지.”

레그리트는 마족의 개념적 단서를 더 알고 있고, 그녀보다 먼저 마족이 되었던 마법사도 알고 있지만 거기까지는 보고하지 않았다.

물론 정보 제공자가 방주에 소속되지 않았다면 진즉 모든 걸 밝혔겠지만, 아쉽게도 그 인물은 그냥 방주의 후보도 아니고 다름 아닌 차기 여섯 번째 선장이었다.

베르덴이 허락하지 않는 이상 레그리트는 입을 열 생각이 없었다.

스윽.

레그리트의 눈동자가 기울었다.

“베르덴이 도착했습니다.”
“벌써 때가 되었나.”

노인은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야 창가로 몸을 옮겼다.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아크의 풍경이 그를 맞이했다.

“조금 긴장되는군. 인체 실험을 혐오하는 사내가 나를 어떻게 대할지.”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그 옛날이라면 모를까, 지금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베르덴이 죽이려 들진 않을 겁니다.”
“죽음 자체는 아무래도 좋다. 그저, 내가 죽으면 토벌자의 육체를 치료하고 관리할 사람이 더 없다는 것만이 두려울 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마주해야겠지.”

방주에 대한 불신을 지우는 것.

“방주의 사람으로서.”

그것이 렌 발하그 장로와 쉐오른 케르노든 장로, 그들과 같은 위치에 자리한 노인─────글러트니 출신의 장로가 행해야 할 의무였다.

* * *

아크의 성채, 엑소디움(Exodium).

다리시아가 안내한 장소는 아크가 훤히 보이는 동부 탑의 꼭대기였다. 주변 사람을 모두 물린 이곳엔 둘밖에 없었다.

“평화롭죠?”

하늘섬의 주거 지역을 내려다봤다. 규모에 비해 인구수는 적었지만 그래도 천 명이 훌쩍 넘는 주민이 일상을 구가하고 있었다.
그들이 사는 곳은 남달랐지만, 그들의 삶은 남과 다르지 않았다.

“전부 현지 태생인가?”
“9할 정도는 아크가 고향이에요. 약 300년 전에 아크로 이주했던 인류의 후손이죠. 그 외 1할은 최근 대륙에서 온 사람들이고요. 방주에 소속된 사람들의 가족이 대부분이에요.”

그들도 다리시아가 세계의 주시자로서 선정한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방주의 후보들을 선별할 때와는 기준이 아주 엄격하진 않았다.
세상을 계속 오가는 방주의 일원과 달리 아크의 주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평생 대륙으로 내려갈 일이 없으므로.
정보가 새어 나갈 가능성이 없는 만큼 그 부분의 기준은 다소 느슨한 편이었다.

“저는 어디 출신이게요?”
“아크 출신이겠지. 그렇게 묻는 걸 보면.”
“맞아요. 저기, 저 작은 집에서 태어났는데. 저희 부모님은 아직도 거기 살고 계세요. 자주는 못 뵙고 있지만, 저는 언제 어디서나 그분들을 눈에 담는 걸로 그리움을 달래곤 하죠. 아! 물론 그렇다고 부모님의 사생활을 침범하는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음.”

베르덴이 물었다.

“넌 어떻게 선장이 된 거지?”
“선대 주시자에게 선택을 받았어요. 주시자로서 적합성이 아주 높았거든요.”
“적합성?”
“네, 적합성. 그건 당신이 선장직에 오르기 전에 알아야 할 주제이기도 해요.”

다리시아는 조곤조곤 설명했다.

“현시점, 방주의 다섯 선장은 각자의 비행정만이 아니라 인류를 위한 사명과 더불어서 고유한 상징을 계승해요. 당신도 잘 알 거예요. 이미 실제로 본 적이 있으니까.”
“에레스의 보검 말인가.”
“정답이에요.”

재액의 토벌자는 역전의 단검을.

균형의 조율자는 균제와 권형의 깃털펜을.

미지의 탐색자는 지형지물이 발산한 마력 파장을 분류 및 특정하는 [토르아이트]를.

북부의 감시자는 열한, 니비스를.

세계의 주시자는 세상의 눈을.

“여기서 조율자, 감시자, 주시자에겐 적합성이란 개념이 존재해요. 강함이라든가 인품이라든가 선장의 자격이 충분해도 적합성이 부족하면, 결국 이 세 개의 선장직은 계승할 수 없어요. 그래서 선대는 미리미리 후임을 찾아 가르치고 자리를 넘겨요. 혈통으로 잇는 감시자와 달리 조율자와 제가 그런 예에 속하죠.”
“그 눈은, 주시자가 된 대가인가?”
“또 정답이에요.”

다리시아가 눈을 가린 천을 어루만졌다.

“세계의 주시자는 필연적으로 시력을 포기해야 돼요. 그렇지 않고서는 세상의 눈을 온전히 다룰 수 없기 때문이죠. 그래도 예전보다 훨씬 더 잘 보이니까 딱히 대가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요. 그런 의미에서 당신과 저에겐 공통점이 있는 셈이죠.”
“어떤 점이 그렇지?”
“드래곤 소재로 만든 도구를 쓴다는 점에서요?”

베르덴이 눈을 약간 크게 떴다.

“드래곤이라고?”
“후후, 역시 마법사다우시네요. 드래곤이란 단어에 반응하시는 걸 보면요. 보여 드릴까요?”

다리시아가 드레스 옷깃에 가려진 체인을 천천히 잡아당겼다.
가슴 부근에 있던 목걸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

탁.

찰나에 성큼 다가온 베르덴이 세상의 눈을 잡고 자세히 관찰했다.
목걸이의 중심을 장식하고 있는 특유의 하늘색 눈동자. 그 빛을 맞닥뜨린 순간, 베르덴은 목걸이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챘다.

이거, 천공룡 아에로돈의 눈이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