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9화 여섯 번째 (2)
약 330년 전에 마경을 활보하던 아에로돈은 초대 마도왕에게 살해당했다.
하나 죽기 직전에 육신을 버리고 영혼만 탈출해, 미리 분리해 두었던 심장의 일부에 깃들어 현대에서 부활할 수 있었다.
초대 마도왕은 아에로돈의 영혼을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아에로돈이 말하길, 자신의 고귀한 육체만을 원하는 것 같았다고.
‘이게 대체 왜 여기에……?’
초대 마도왕은 드래곤을 소재로 무구를 만들 수 있으니 언젠가 천공룡으로 제작된 뭔가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다.
그래도 설마 하늘섬에서, 그것도 심지어 방주의 선장에게서 찾게 될 줄이야.
과거의 단서.
베르덴이 얼굴을 조금 더 가까이해 세상의 눈을 통찰했다. 그러고 보니 세계의 주시자와 아에로돈의 능력이 거의 흡사했다.
세계를 주시하는 자.
하늘 아래에 있는 모든 걸 볼 수 있는 천공룡.
‘……그렇군.’
베르덴은 머릿속의 퍼즐이 일부 맞춰지는 감각에 전율했다. 초대 마도왕이 이전에 무엇을 실험했는지 떠올렸다.
───아인베르의 본체가 직접 죽인 드래곤의 가죽과 비늘이 메인으로 사용되어, 이 시설에서 만들어졌다. ‘드래곤의 힘’을 아티팩트로 사용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보다시피 결국 실패했지. 더군다나 진화된 성능도 본체가 생각하는 것과 맞지 않았다.
골렘 연구 시설에서는 용의 이능을 도구화하는 실험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과정은 관리자의 기억에도 존재하지 않았으나, 결과는 진화형 아티팩트 [아인베르]라는 실패작으로 남아 있었다.
언제 [아인베르]가 제작됐는지는 정확히 모르나 추측은 할 수 있다. 초대 마도왕이 골렘 연구 시설에 방문하지 않은 지 이제 약 470년 정도 되니 그보다 더 예전일 터였다.
천공룡을 살해한 날짜보다 거의 150년은 더 앞선 시기의 일……. 초대 마도왕이라면 옛 실패를 뒤집고도 남을 시간이다.
실험 주제가 상식적으로 허무맹랑한 것일지라도 말이다.
다시 말해.
‘연구는 성공했다.’
초대 마도왕은 이미 드래곤의 특성을 재현할 수 있게 됐다, 천공룡의 고유한 힘이 세상의 눈을 통해 다리시아에게 전해졌듯이.
베르덴과 다리시아.
실패작을 손에 넣은 자와 성공작을 계승한 자가 한곳에 모였다.
“저기…… 베르덴?”
다리시아의 당혹감이 서린 목소리에 베르덴이 상념에서 깨어났다.
“세상의 눈을 관찰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너, 너무 가깝지 않을까요?”
그녀가 부끄러워하며 살짝 시선을 피했다.
숨결이 피부에 닿았다.
베르덴은 조심스럽게 세상의 눈을 놓고 한 발짝 물러났다.
“실례했군. 나도 모르게.”
“괜찮아요. 이렇게 드래곤의 눈 전체를 소재로 삼은 아티팩트는 거의 없으니까요. 호기심이 동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죠. 마음 같아선 살펴볼 시간을 따로 드리고 싶지만, 다음 계승자가 정해지지 않는 이상, 이 목걸이는 벗을 수가 없어서요.”
직전 같은 거리를 유지한다면 세상의 눈을 보여 줄 수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다리시아에게 너무나도 수줍은 일이었다.
그녀가 양손으로 세상의 눈을 어루만지는 척하며 가슴을 최대한 가렸다.
“흐흠, 그러니까 제 말뜻은, 각 선장에겐 반드시 후인에게 계승되는 고유한 무언가가 존재해야 한다는 거예요. 방주에서는 그것을 ‘렐릭(Relic)’이라 부르죠. 여섯 번째 선장이 될 당신에게도, 당신만의 렐릭이 있어야 해요. 그런데 여기엔 문제가 있어요. 당신이 곧 선대이자 초대 선장이라는 것.”
당연하게도 베르덴에게는 전승받아야 할 렐릭이 없다. 여섯 번째 선장은 과거에 생겼을 뻔했던 직위에 불과했으므로.
그뿐만 아니라 그때 구상했던 선장직은 베르덴의 위상과 업적에 걸맞게 바뀌었다.
“그러니 당신에겐 새로운 렐릭을 결정할 의무가 있어요. 이곳 엑소디움에서.”
“절차는?”
“방주의 보관소에서 단 하나의 물건을 고르시면 돼요. 아티팩트든 그 무엇이든.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은 영원히 당신의 상징으로 남을 테니까, 신중하게 선택하세요. 후후, 제가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시겠지만요.”
실핏줄이 비칠 듯 희고 가느다란 검지가 치켜세워졌다.
“하지만 그 전에 절차를 하나 거쳐야 해요. 아직 당신은 뵌 적이 없으니까요.”
다리시아가 속삭이듯 말했다.
“윗분을.”
“……!”
마침내 현 방주를 이끄는 지도자와 대면할 때가 다가왔다. 바라던 바였다. 베르덴은 윗분에게 질문할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바로 뵈러 갈까요?”
“물어볼 게 있는데.”
베르덴은 그녀를 직시했다.
“초대 세계의 주시자는 세상의 눈을 어디서 얻은 거지?”
재액의 토벌자였던 글러트니의 첫 번째 송곳니, 발리온 프레이아는 방주의 내전을 벌이고 글러트니의 장기를 탈취했다.
시기는 대략 300년 전.
그런 발리온은 아크에 대해서도 모르고, 세계의 주시자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놈은 당시 선장이 네 명뿐이라고 했으니.
즉…….
방주가 아크를 본거지로 삼은 것은 300년 안팎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그때 세계의 주시자가 탄생했을 가능성도 말이다.
그렇다면 천공룡으로 제작된 세상의 눈은 어떻게 방주로 흘러들어 갔단 말인가.
애초에 아크에 있었던 걸까.
타인의 손으로 전해졌던 걸까.
뭐가 됐든 간에 초대 마도왕의 의도가 숨어 있을 것이다. 천공룡이 죽은 시점과 방주가 아크를 발견한 시점의 간격은 고작 30년뿐이니.
다리시아가 기꺼이 답했다.
“본래 이 세상의 눈은 윗분께서 소지하고 계셨던 물건이었어요. 그러나 스스로 적합자가 아니었기에, 적합자를 찾아 소유권을 넘기신 것이 다섯 번째 선장, 세계의 주시자의 시초였죠.”
이로써 베르덴은 확신이 생겼다.
무려 3세기를 넘게 살아온 현 방주의 지도자는 초대 마도왕과 접점이 있다.
‘섭리자처럼.’
어쩌면 초대 마도왕의 협력자로서.
* * *
레그리트를 찾으러 침묵의 사막으로 가기 전에 베르덴은 엑소디움의 회랑(回廊)을 거쳐서 회장(會場)까지 가 본 적이 있었다.
그곳은 선장의 허락이 있어어만 출입할 수 있는 드높은 구역이었다.
베르덴과 다리시아는 그런 회장보다 한 차원 더 높은 곳에 발을 디뎠다.
엑소디움의 정상.
아크의 정점.
레프라기움 마탑의 영역으로 알려진──대륙을 통틀어 첫 번째로 높은 산맥보다, 아마도 드높을지도 모르는 지고한 공간.
“…….”
마지막 계단을 올라온 베르덴이 훤히 개방된 바깥으로 시선을 던졌다.
대륙에서는 하늘을 향해 올라갈수록 밝아지지만 아크는 그 반대였다. 하늘섬의 땅과 멀어진 베르덴은 도리어 어둠에 가까워졌다.
우주의 암흑이었다.
끝없이 광활하고 공허한 세상 한가운데에 혼자서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리시아는 베르덴보다 한 계단 아래에 서 있었다.
“어렸을 때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하염없이 멍해진 적이 있어요. 저 찬란한 별은 뭘까. 저 어두운 곳에는 뭐가 있을까, 저기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곤 했었죠. 그러다가 저 어둠이 나를 집어삼킬까 봐 지레 겁을 먹기도 했고요. 이제는 그리운 추억이네요.”
다리시아가 난간을 짚었다.
“제 안내는 여기까지예요. 이 위로는 세상의 눈이 닿지 않는 영역이라서요. 앞으로 가시면 이후는 다른 분들께서 인도해 주실 거예요.”
“…….”
베르덴이 어딘가로 이어진 복도를 바라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
베르덴이 선뜻 손을 내밀어 다리시아를 한 계단 아래까지 부축했다. 두 사람이 최상층에서 두 계단 멀어졌다.
그녀가 쑥스러운 듯 웃으며 입술을 떼었다.
“눈치채셨나요?”
“그래.”
다리시아에게 허락된 높이는 정상에서 두 계단 아래까지다. 그 위로 넘어가면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맹인이 되어 버린다.
이는 세상의 눈의 한계였다.
그런데도 다리시아는 여기 올 때마다 마지막 한 계단만 남기고는 했다. 주시자의 능력을 시험해 보는 것이다.
물론 시야는 그대로였다.
다리시아는 여전히 어린 시절에 보았던 우주를 다시 본 적이 없었다.
“안내해 줘서 고맙군.”
“별말씀을요.”
그렇게 베르덴은 무심히 하늘섬 꼭대기를 홀로 올랐다. 다리시아는 그 자리에 서서 멀어져 가는 발소리를 들었다.
“친절한 사람.”
* * *
다리시아의 말대로 복도를 걷다 보니 안내자들이 등장했다.
“글러트니의 다섯 번째 송곳니를 토벌한 사내가 사막의 신을 처단했다. 슬슬 그간의 삶을 정리할 때가 다가온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은 아직도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 많군.”
“삶을 정리할 나이는 아니라고 보네만.”
“난 인간이지 않은가. 초월자라고 치면 연배는 자네하고 비슷해.”
렌 발하그 장로.
쉐오른 케르노든 장로.
전자는 평소처럼 칠흑의 정복과 하얀색 장갑을, 후자는 라이브러리의 주인다운 어두운 녹색의 로브를 두르고 있었다.
그들은 베르덴의 좌우 대각선에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앞서 걸었다.
쉐오른 장로가 말했다.
“벌써 공간 인식과 공간 지배를 아주 능숙하게 다룬다고 들었네. 자네라면 그럴 줄 알았지. 솔직히 말해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빠르긴 하지만.”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참으로 보람찬 말이네. 좀 더 배우면 머지않아 공간의 초월자는 자네에게 어울리는 이명이 되겠어. 기대가 되는군.”
베르덴의 공간 마법이 특정 수준에 도달하기만 하면, 쉐오른 장로는 언제든 공간 마도 최후의 개념을 전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경지를 소화하기만 한다면 베르덴의 적수는 역사를 통틀어도 결코 많지 않으리라.
렌 발하그 장로가 껄껄 웃었다.
“공간 마법을 제대로 가르칠 만한 인재가 없다고 한탄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아주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어. 나도 로크가 어서 성장해 무투술의 정수를 터득했으면 좋으련만.”
“최근 로크의 성장세도 점차 가팔라지고 있으니 걱정할 건 없을 걸세.”
“부디 그래야지. 그나저나 자네한테 그런 격려를 듣게 되다니. 영 익숙하지 않군.”
두 사람의 대화는 무척이나 온화했다.
역시 방주의 장로들.
베르덴이 일꾼이었을 때 마주했던 어른들과는, 그야말로 인품의 격이 달랐다.
이윽고 복도 끝에 도착했다.
굳게 닫힌 문 앞에는 온몸에 흉터가 가득한 한 명의 노인이 서 있었다.
마치 누더기 같은 신체였다.
‘방주의 세 번째 장로…… 글러트니 출신의 그 장로인가.’
시선이 교차했다.
세 번째 장로는 말없이 베르덴을 바라보더니 곧 손수 문을 개방했다. 쿵! 다소 어두운 그 안쪽에서 윗분의 존재가 느껴졌다.
세 번째 장로가 옆으로 최대한 비켜섰다.
렌 발하그 장로와 쉐오른 장로도 베르덴에게서 떨어져 벽 쪽으로 물러났다.
이윽고 낯선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들어와라.”
출입이 허가됐다.
베르덴은 주저하지 않고 나아갔다. 글러트니의 첫 번째 송곳니가 평가했던 괴물, 그 방주의 지도자를 마주하기 위해서.
그렇게 경계를 넘어 윗분이 존재하는 공간에 들어섰다.
……동시에.
아무도 모르게, 엑소디움이 베르덴의 마력과 존재를 인식했다.
* * *
엑소디움을 타고 내려간 마력은 방주조차 알지 못하는 아크의 지하 어딘가로 흘러 들어갔다.
잠잠한 미지의 공간.
그곳에 마력이 흐르기 시작해 사방이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던 유선형 관으로 점차 마력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관의 아랫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고대 문자가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개체명, 감마(Gam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