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8화 마도 축제 (1)
수족관 안에 준비된 세련된 의자에 루자크가 걸터앉았다.
심해의 귀빈답게 고상하게.
“아! 비바람이 몰아치며 내해에서 떠오른 미지의 섬이라. 참 운치가 있는 문구이구려. 상상만 해도 감동이 느껴진달까.”
“당신은 전혀 아는 바가 없으신가요? 그 섬이 무엇인지?”
“없소. 그도 그럴 것이, 금환일식의 때를 가르쳐 준 건 내가 아니라 호스트이지 않소? 말할 게 있었다면 미리 귀띔해 주었을 거요. 보다시피 나는 지금 주빈의 자문가이기도 하니까.”
루자크는 당당하게 해당 지식이 하나도 없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주기적으로 루자크에게서 심해와 아르카디옴의 정보를 수집해 왔던 멜라드는 가만히 루자크의 눈을 응시했다.
“그렇게 뜨겁게 바라봐도 나는 진심이 아니었던 적이 없소. 호스트의 처벌로 육지로 올라온 뒤 언제나 진실로 답했지. 잘 알지 않소, 지혜로운 마법사여.”
“아는 게 없다면 그걸로 됐어.”
멜라드와 나란히 앉은 흑해, 테아렐이 따뜻한 홍차를 홀짝였다.
“그래서 어떻게 될 것 같은데?”
“추측을 묻는 거요? 앞으로 대륙의 상황이 어찌 될지?”
“지식인이라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현재에 대한 정보를 더 얻을 수 없으니 루자크의 의견이라도 듣는 편이 이득이다.
적어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나야 아르카디옴의 주민이니 뭐라고 자신 있게 단정할 수 없지만, 뭐, 뻔한 답변이 아니겠소? 대개 대사건이 벌어지기 전에는 여러 작은 사건이 도처에 깔리기 마련이니. 작은 사건이 차고 넘친다면 여러 대사건이 일어날 거요. 호스트께서도 친히 관심을 가질 만큼.”
거친 손이 느긋하게 바다코끼리처럼 우툴두툴한 코를 쓸었다.
“바다 위로 섬이 떠오른 것일까, 세상이 바닷속에 가라앉은 것일까……. 현재란 시간은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일 것이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주빈께서 ‘허기’가 질 일이 올 테지.”
루자크가 다리를 꼬으며 깍지 낀 양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제야 비로소 지식의 만찬회──아르카디옴이 열릴 것이오.”
“…….”
“아, 물론 아마도.”
호스트가 결국에 아르카디옴을 언제 개최할지는, 호스트가 직접적으로 공표하기 전까지 감히 누구도 알 수 없다.
불확실한 사안에 대해 단정하는 척하며 여지를 둬 빠져나갈 구석을 만든다, 그것이야말로 지식인의 덕목이었다.
* * *
마도 축제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날이 어두워지며 대륙 전역에서는 마도 축제의 전야제가 열렸다. 각국의 수도에서 원소 마법사들이 볼거리를 자아냈다.
주인 없는 땅의 어레인에서도.
펑! 펑! 퍼버벙!
하늘 높이 쏘아 올린 아홉 개의 화염구가 일제히 폭발했다.
대규모 비행정에서 시전한 화염 마법이 도시로 떨어지고, 도시의 마법사들은 넓게 펼친 바람의 막으로 화염을 차단했다.
대기의 흐름을 따라서 불길이 얇고 넓게 퍼지며 상공을 뒤덮었다. 소규모 비행정 다섯 대가 그 불길을 뚫고 상공을 가로질렀다.
별빛처럼 반짝이다가 사라지는 불씨가 눈동자를 찬란하게 물들였다.
“우와아아…….”
“히야…….”
부모를 따라나선 자식들이 멍하니 원소의 예술을 한눈에 담았다. 자식들의 손을 꼭 잡은 부모들도 그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예쁘다아……!”
“원장님! 저희 오빠하고 언니도 저런 거 할 줄 알아여?”
“그럼 그럼. 너희 오빠하고 언니는 엄청 대단한 마법사거든.”
라스카벨, 아니 이젠 어레인 고아원의 아이들이 재잘거렸다. 마일라는 그런 아이들의 모습이 참으로 사랑스러웠다.
월릭은 전쟁이 아닌 축제를 위해 사용되는 원소 마법을 말없이 바라봤다.
그 옆 술집에서는 도살자 갈리아크가 맥주잔을 강하게 내려놓았다.
“존나 화려하긴 하네. 시벌, 우리 파티에도 작은 비행정 한 대만 있으면…… 아, 이번에 황금의 길인가 뭔가 열리면 하나 사 볼까? 어때?”
“그냥 배도 아니고 비행정??? 모험가 때려치우고 하늘에서 해적질이나 하게?
“갈리아크 씨, 소규모 비행정 하나에 얼마나 하는지 알긴 하세요? 게다가 미스릴 모험가 신분으로는 턱도 없어요.”
“우리가 돈만 있냐? 엉? 인맥도 있는데. 비행정 타고 다니면서 모험질하면 얼마나 좋냐. 모험가라면 낭만 좀 가지라고, 확 씨.”
황금의 죄인의 잡다한 보물로 주머니 사정이 아주 좋아진 갈리아크는 최근 자신만의 이동 수단을 갖고 싶어 했다.
그야 거동이 편해야 더욱 과감하게 모험할 수 있으니까.
언제나 그랬듯이 갈리아크는 강한 놈하고 맞붙고 강해지길 바랐다. 그의 파티원인 고드와 네리엔은 저 고집을 어떻게 꺾을지 고민했다.
퍼버버버버버벙!
아까보다도 규모가 큰 불꽃놀이에 전야제가 한껏 달아올랐다.
“…….”
베르덴과 함께 아크에서 돌아온 레이라는 혼자서 창틀에 머리를 툭 얹은 채 여관 꼭대기 층에서 도시를 초점 없이 구경했다.
어레인 성채로 오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그녀는 이렇게나 성대한 축제 분위기가 어색했기에 거절의 의사를 내비쳤다.
레이라는 평소처럼 부모와 남동생을 죽인 악마를 생각했다.
그리고.
“아! 이래서 관절 부위에서 충돌이…… 좋아, 그럼 동력을 반대편으로 연결하고…… 출력을 조, 조금 더 낮추면…….”
아티슨 마탑주와 친구인 틸버 스팬기어는 마도 축제를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개인 연구실에 틀어박혀 골렘 기술을 연구했다.
마침 알파가 내 준 과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다. 한계는 있었으나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던 마법사의 독학.
틸버는 선천적인 왜소증 때문에 남들보다 몸은 작을지언정 골렘을 향한 노력과 열정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많은 감정이 교차하는 밤이었다.
이자벨라는 평생의 동반자와 어디 있는지 모를 여동생을 생각했고, 칼리아는 진정 사랑하는 남자를 떠올렸으며, 로벨린은 언제나 하나뿐인 소꿉친구를 가슴에 담았다.
사막의 신의 죽음을 목격한 투하르의 시민은 새로운 신을 향해 기도했고, 조각상을 깎는 사내도 자신만의 신을 향해 기도했다.
의도적으로 창조된 존재들은 창조주와 창조주의 흔적을 쫓고 있는 한 명의 젊은 초월자를 머릿속으로 그려 냈다.
밤하늘에 흐르는 은하수는 어쩌면 그들의 마음이 모여 만들어진 걸지도 모른다.
“…….”
베르덴은 마도 전야제에 참석하지 않고 어레인 성채를 지켰다. 아드리안 일행이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를 섬을 탐색하는 중이다.
그럴진대 그들의 수장으로서 한가롭게 축제를 즐길 수 있을 리 없었다.
파직. 파지직.
베르덴은 한 손에 든 [탈라지움]에 순간적으로 현뢰를 가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검붉은 빛이 금속 구체를 물들였다가 사라졌다. 그러기를 반복한 것이 벌써 셀 수도 없다.
파멸이 접촉하는 시간은 더 줄이고.
찰나의 파괴력은 더 강하게.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텔라지움]의 파멸에 몰두하면 몰두할수록 그때만큼은 베르덴의 복합 사고가 단일 사고로 변해 갔다.
개념의 합일도 아닌.
마법의 연계도 아닌.
수를 헤아릴 필요조차 없는.
단 한 줄기의 검붉은 초위(超位)의 벼락.
마도가 속삭이는 듯하다.
파멸의 본의를 깨달으려면 단순한 단련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명과 개념. 운명을 파괴하면서 탄생한 파멸은 제물을 요구했다.
결국 금속에 불과한 [텔라지움]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까지와 다를 것도 없군.’
베르덴은 평화와 자비를 주창하는 성인군자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용서 대신 복수를, 설득 대신 힘에 의한 지배와 자유를.
그는 기꺼이 피와 시체를 만들고 짓밟으며 길을 개척했다.
베르덴이 말했다.
“전야제가 한창인데 일찍 돌아왔군. 별로 재미없었나?”
“앗, 재미는 엄청 있었는데요…….”
점술가의 손녀인 아이샤가 구석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다가, 베르덴에게 기척을 들키자마자 슬쩍 다가왔다.
“또 뭔가를 본 건가?”
“그게 잘 모르겠는데, 으음, 그러니까.”
아이샤가 뭐라고 말해야 할지 우물쭈물하다가 이내 양 주먹을 꽉 쥐어 보였다.
“저도 열심히 할게요, 마법사님!”
뭘 열심히 하겠다는 걸까.
아이샤조차 모르는 아이샤의 힘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아인베르]의 <베일>로 감춘 초월자의 존재감을 꿰뚫어 보는 시야.
피울음 역병을 내다본 예지력.
선지자로서의 그야말로 격이 다르다는 방랑의 무나딤의 평가…….
눈앞의 소녀 또한 베르덴이 파헤쳐야 할 경이 중 하나였다.
그래도 경계심이 들지는 않았다.
베르덴을 돕겠다고 선언한 아이샤에게서 적의나 악의는 티끌조차 없었다. 벽안에 반사된 아이샤의 눈은 한없이 순수했다.
“그래, 열심히 해라.”
“에헤헤.”
베르덴은 그 각오를 격려하듯 아이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전야제의 빛이 사라지고, 새벽이 지나, 마도 축제의 첫날이 밝았다.
* * *
최초의 마탑을 기념하며 마법의 부흥을 바란다.
그로부터 시작된 마도 축제는 본래 총 7일 동안 진행되지만, 먼 훗날 초대 마도왕의 경지를 기리는 의미를 담으며 9일로 늘어났다.
마도 축제의 공식 절차는 전반, 중반, 후반으로 나뉘어 있다.
전반에는 마법 자주 연대, 아카데미 등 10대 마탑 외의 다양한 집단이 마법계의 공식 무대에서 마법을 선보이거나 발표하며.
중반에는 중위권 및 하위권 마탑이 주도하고.
후반에는 아케나드 마도국, 상위권 마탑 등 세계 회의의 상원이었던 마법계의 정상들이 마도 축제의 마침표를 찍는다.
마도 축제를 함께하기로 했던 에온과 마도국은 후반부의 두 번째를 배정받았다. 이 순서의 기준은 무작위로 정해졌다.
그렇다면 어디를 주무대로 할 것인가.
이번에도 가르간트였다.
가르간트처럼 무지막지한 유동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거대 도시는 없을뿐더러 베르덴과 레프라기움 위계 돌파 사태 강의가 아카데미에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세계 회의에 이어서 마도 축제까지! 역시 내 권역이야.”
다시 세상의 중심이 된 이그나시아의 콧대가 아주 높아졌다.
중앙 대륙의 중앙.
확실히 도시 기반만으로 가르간트에 비견될 만한 권역과 국가는 없었다.
“어머, 부럽니? 부러우면 언제든 말해. 너한테는 특별히 한 구역 빌려줄 테니까. 대가는 아주 조금만 받을게.”
“필요 없다.”
베르덴은 그녀의 제안을 일축했다.
“그보다 가르간트에는 별일 없나?”
“별일? 아하.”
이그나시아가 과자를 집었다.
“그때 말한 노인 말하는 거지? 전혀. 그냥 전혀 안 보이던데? 실존하는지조차 의문일 정도로. 왜, 또 뭐 있었어?”
“아니, 아직은.”
방주의 지도자에게 자신을 노출한 광신자 노인은 다시 종적을 감췄다. 하나 가르간트 어딘가에 있는 건 분명하리라.
놈의 은폐 원리를 당장 알 수 없으니 꽤나 신경에 거슬렸다.
“내가 통신 장치를 왜 줬는지, 잊지 마라.”
“노인하고 조우하면 당장 연락한다, 내가 그것도 기억 못 할 것 같니?”
“네가 사적으로 연락하는 데만 쓰고 있잖아.”
“당연하지. 통신 장치를 얼굴도 모르는 노인이 나타날 때까지 방치할 수는 없잖아? 귀찮아도 어쩔 수 없어. 이건 네가 나한테 준 거니까, 네가 감당해야지. 안 그래? 아하핫.”
이그나시아가 깔깔거리며 장난스럽게 과자를 깨물었다.
“근데 히아레마르 내해에 엄청나게 거대한 섬이 떠올랐다며. 이제부터 뭐 할 거야?”
“마도 축제를 보내며 탐사 보고를 기다려야지.”
“기다린다고? 베르덴이?”
몽환적인 눈동자가 빛났다.
“그걸 누가 믿겠니? 온갖 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너인데. 철석같이 붙어 다니던 아드리안도 갑자기 어디 갔는지 안 보이고. 내가 볼 때, 넌 당장이라도 마치 연기처럼 사라져서 그 섬으로 갈 것만 같은데.”
“…….”
“난 뭐든 좋아. 요즘 재밌는 경험을 많이 했더니 자극의 역치가 높아졌거든. 또 어떤 쾌락을 줄지 기대할게. 자, 그럼.”
이그나시아가 몸을 일으켰다.
“시작해야지? 최초의 마탑주.”
환상의 안식처.
이그나시아가 거주하는, 가르간트에서 가장 높은 건물에서 베르덴이 아침 일찍부터 나와 있는 사람들을 굽어보았다.
마도 축제의 기원은 최초의 마탑.
개막식을 주도하는 데 베르덴 이상의 적임자는 없다. 참고로 이 기획은 이그나시아가 직접 구상하고 추진한 것이었다.
이윽고 베르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법은 만인을 위해.”
축사는 짧고 명확했다.
“마도 축제의 개최를 선언한다.”
우와아아아아───!
군중이 환호한다.
전 세계에서 마도 축제가 시작됐다.
* * *
히아레마르 탐사에 공식 파견된 루아스 교국의 성기사단과 주교단이 촉각을 곤두세운 채 미지의 섬을 탐색했다.
각국의 탐사단장이 한데 모여 효율적으로 서로 살펴볼 구역을 나눈 것이다.
바다의 비릿한 향.
울창한 숲의 풀 내음.
조화롭지 않은 냄새가 사방에 만연하니 현실감이 떨어지는 듯했다. 애초에 이 섬이 나타난 것 자체가 하나의 꿈이 아닐까.
……덜컥.
맨 앞에 서 있던 성기사의 발에 뭔가가 채었다. 평범한 돌부리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형태의 촉감이 이상했다.
정지 신호를 보내고, 무릎까지 솟은 풀 안쪽을 자세히 살폈다.
‘구조물?’
인공적인 무언가의 잔해.
즉시 대주교에게 보고하고는 주변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 숲의 기분 나쁜 물기가 갑옷과 로브와 피부에 닿았다.
땀이 그의 피부에 끼어 불쾌해질 무렵, 첫 번째 발견이 있었다.
7인의 대주교───현광(賢光)의 대주교가 아연실색했다.
“이 섬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곳에는 오래된 유적이 있었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어둑한 지하로 이어진 입구, 그리고 계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