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5화 광기란
물리적으로 가능한 속도, 그 임계를 돌파한 성창이 날아온다.
피할 수 없다.
‘피할 생각도 없다.’
살아 있는 유성이 된 바르카젤은 시야에 닿는 땅 전부를 부수겠다는 일념으로, 고열로 달아오른 팔을 내질렀다.
쿠오오오오……!
신의 기적에 격돌한 순간 바르카젤을 비춘 빛이 무수한 알갱이로 변했다. 알갱이들은 빛무리가 되어 신성한 권능 그 자체가 되었다.
눈부신 성광이 부서지면서 다이아몬드 조각 같은 빛살이 흩날렸다.
<여신의 심판>
───────────────!
어둠이 사라져 버린 상공 한가운데에 거대한 빛의 정십자가가 출현했다.
그로부터 쏟아진 빛이 대지에 스며들어 하늘에서 땅이 아닌, 땅에서 하늘로 빛살이 솟구쳐 신성한 낮이 탄생했다.
‘성녀……!’
성창 그란테르가 팔을 관통하고 오른쪽 어깨와 윗가슴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우측 날개 또한 반쯤 갈라졌다.
해당 부위가 멸각했다.
바르카젤의 상반신에서 떨어져 나간 오른팔이 낙하했다. 마찬가지로 바르카젤 또한 튕겨 나가며 급속도로 추락했다.
‘빛의 여신이란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사랑을 받는 인간 여자…… 그중에서 최강…… 과연 신이나 다름없는 힘…… 그야말로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
바르카젤은 남은 날개로 한순간에 속도를 늦추며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강자인가.’
둘 중 누구도 죽지 않았다.
끝은 멀었다.
그 빛나는 창을 결국 막아 낼 수 없다고 직감하고 오른팔을 버렸다.
절단된 신체 부위만으로 자신이 죽었다고 판단한 성녀가 물러나면 전투는 중지, 그에 속지 않고 성녀가 추격을 계속해 오면…….
사냥은 그때부터 시작이다.
쿠웅──!
성녀 에르세티아가 땅을 몇 번 정도 박차고 높이 뛰어오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로 감각을 집중하니 존재감이 엄습했다.
“도망을 허락한 적은 없습니다.”
성창이 쇄도하며 일대를 뒤엎어 버리는 빛 폭발을 일으켰다. 그 범위에 걸친 바르카젤이 낙법을 취하곤 내달렸다.
에르세티아는 그 기민함을 웃도는 속도로 거리를 빠르게 좁혔다.
‘빛의 날개는 처음보다 희미해졌고, 투창의 정확도는 미세하게 떨어졌다. 움직임도 미약하게 느려졌다.’
전반적인 자세의 무게중심이 아주, 아주 살짝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겉으로는 거의 티가 나지 않을 정도다.
에르세티아 본인조차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직 바르카젤의 숨통을 끊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중대한 오판이다.
‘신체 균형이 깨졌군.’
완전과 불완전.
둘의 차이는 허점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에 있다.
콰아앙!
바르카젤이 즉각 전력으로 지면을 박차며 역으로 에르세티아에게 몸을 던졌다. 그가 회전하며 날개로 무게중심을 제어했다.
우측 날개는 절반이 없었기에 움직임이 순식간에 불규칙적으로 변화했다.
두 사람 간의 상대 속도가 급증했다.
찰나에 지척에 도달했다.
행동으로부터 상대 의도를 파악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다.
“……!”
참변.
쩌어어어어어어엉!
에르세티아가 뒤늦게 성창으로 막았으나 강렬한 옆차기는 창대를 밀어내고, 그녀의 오른팔과 몸통을 강타했다.
날아가는 도중 빛의 날개와 두 다리로 제동을 건 에르세티아가 직후 휘청거렸다.
‘위력이…….’
성갑 아르미넬의 저항력을 관통하고 장기까지 흔들렸다.
마지막 발악이었나.
수인은 오른쪽 날개와 오른팔을 잃었다.
승패는 결론 났다.
신성력으로 자기 자신을 치유한 에르세티아가 성창을 회전시켰다. 바르카젤이 곧게 편 왼팔로 찔러 들어왔다.
한 번 한 번의 공방마다 뒤늦게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 인근의 숲 절반을 쑥대밭으로 만든 그들이 살의를 번뜩였다.
에르세티아가 빛으로 화했다.
<성결: 개전>
머리를 겨냥해 찌르고, 재빠르게 창을 되돌려 사선을 벤 뒤, 극단적으로 상체를 낮추며 회전하여 다시 한번 사선을 가르고, 반동을 억눌러 심장을 향해 광선을 사출했다.
그 일련의 공세를 모조리 흘려보낸 바르카젤이 손바닥으로 창날을 쳐 냈다.
빛이 애먼 데로 날아가 착탄했다.
휘릭.
에르세티아가 힘의 흐름에 따라서 성창을 짧게 공중에 띄웠다. 그리고 양 주먹을 옆구리로 당기며 기도를 읊었다.
<성광: 고해>
권격이 곧 빛살이 되어 퍼부어졌다.
그 순간.
바르카젤의 왼손은 수백 개의 잔상을 남기며, 단 한 번의 공격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내 그녀의 주먹이 그의 손아귀에 잡혔다.
공기가 경직됐다.
바르카젤의 경도 높은 전신의 갑각에 금이 가게 만들었던 최고위 기적이, 손끝 하나 닿지도 못한 채로 파훼되었다.
“어떻게…….”
“오만은 강자의 특권이지.”
날카로운 이빨이 드리웠다.
“과신은 약자의 족쇄고.”
훅───콰아앙!
바르카젤이 팔을 강하게 당기면서 무릎으로 열린 복부를 차올렸다. 단순한 타격음을 초월한 파열음이 귓가를 때렸다.
잠시 에르세티아의 호흡이 멎었다.
‘말도 안 돼.’
쩍.
성갑이 손상됐다.
4대 신물 중 하나인 성갑 아르미넬이 마지막으로 훼손된 적은, 약 6세기 전에 발발한 1차 대성전에서 군단의 대악마와 맞섰을 때였다.
당연하게도 여신의 무구이기에 언제든 수복할 수 있고, 무슨 일이 있든 완전히 파괴될 가능성은 절대로 없지만…… 이 광경은 그녀에게 믿을 수 없는 충격을 안겨 주었다.
성갑을 파손했다는 건 수인의 힘이 3대 대악마에 버금가는 수준이라는 뜻이었으므로.
“아무래도 진리를 깨닫지 못한 것 같으니 특별히 다시 한번 알려 주마.”
발끝에 힘이 실리자 평지가 갈라졌다.
전보다 더 크게.
“비로소 살아남는 것이 강함이다.”
회복의 기적이 작용하는 도중 눈에 보이지 않는 발차기가 작렬했다.
에르세티아가 바닥을 굴렀다.
천공 추락.
바르카젤이 미친 듯이 웃으며 불구가 된 육체로 이 땅을 산산조각 냈다. 겨우 오른팔로 막아 낸 그녀가 땅속에 파묻혔다.
“내가 거의 죽었다고 생각했나? 팔을 미끼로 해 도망친 거라고 여겼나? 성녀여!!!!! 경험 부족이다!!! 맹수는 상처를 입었을 때야말로 본성이 극대화되기에 맹수인 것을!!!”
생명의 야성.
바르카젤의 육체는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본능이 발광하여 생존을 갈구한다.
단번에 죽이지 않으면 그는 물리적으로 사망에 이를 때까지 강해진다. 즉사. 그것만이 바르카젤의 약점이었다.
지상 최악의 난쟁이는 광기가 넘치는 격전 끝에 대학살의 수인의 한 팔을 날려 버렸다.
그리고.
더욱 강맹해진 대학살의 수인을 감당하지 못하고 하반신이 뜯어졌다. 자살을 감수하고 대륙의 일부를 날려 버리지 않았다면 지상 최악의 난쟁이의 패배로 전쟁은 끝났으리라.
“끝까지 신중했어야지!!! 내 머리를 토막 낼 때까지!”
콰드드드드드득!
머리를 잡힌 에르세티아가 지면에 파묻힌 채로 끌려다니다 던져졌다.
척살.
그가 허공에 붕 뜬 그녀에게 연격을 쏟아 내며 질주했다.
성창의 빛이 드리웠다.
터엉!
에르세티아가 성창을 잡기 전에 바르카젤이 쳐 내 날려 버렸다. 이미 바르카젤은 성창이 빛이 되었다가 원래대로 돌아오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지 정확히 파악한 상태였다.
바르카젤이 허리를 비틀었다.
“확실히 너의 총력은 나를 뛰어넘었다. 정면으론 다름 아닌 내가 상대가 되지 않을 수준의 경지. 내가 살던 시대에서도, ‘인간종’ 중에서 너처럼 순수한 강자는 단언컨대 없었다.”
쩌억!
방패와 같던 빛의 날개가 부서지고 에르세티아가 피를 토했다.
성갑이 피로 물들었다.
“하지만 너처럼 자만심에 취해 살해당한 미숙한 강자는 수도 없이 많았지.”
바르카젤은 압도당하는 와중에도 에르세티아를 관찰했고, 에르세티아는 압도하는 도중에도 자신만을 신경 썼다.
생각이 좁아지면서 루아스교의 적을 멸하는 데만 몰두한 것이다.
이처럼 형세는 역전되었으나 사실 현재 둘 간의 힘의 차이는 크지 않다. 바르카젤이 빈틈을 내보이면 처지가 바뀔지도 모른다.
달리 말하자면 헛짓으로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는 이상은 지금의 상태가 아예 뒤집힐 가능성은 없다는 의미였다.
“방심의 대가를 치러라, 성녀.”
성창 아래를 파고들며, 그녀의 오른쪽 팔꿈치를 올려 쳤다. 손목을 고정시키고, 무릎으로 관절 부위를 정확히 노렸다.
으지지지지직!
바르카젤이 의도적으로 충격을 집중시킨 부위가 마침내 부러졌다.
팔이 축 늘어졌다. 성창이 떨어졌다.
참극.
가녀린 목마저 제압당한 사냥감의 발이 지면에서 멀어졌다. 성갑 안쪽을 파고든 손톱이 새하얀 피부를 점차 일그러뜨렸다.
“나의 신체를 이해하려 들지 않고, 오직 스스로의 강함만을 믿고 사냥에 임한 것. 그것이 네가 살아남지 못하는 이유다.”
본래라면 사냥의 여운을 한창 즐겨야 했지만 그럴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기회가 됐을 때 서둘러 죽여야 한다.
본능이 그렇게 소리쳤다.
바르카젤이 목을 붙잡은 손을 빠르게 회수하고 다시 내질렀다.
일그러진 성갑의 복부를 향해 굽이치는 손날.
대참수.
콰지지지지지직──!
마침내 성가신 성갑을 관통하고 피부와 근육까지 파고들었다. 연약한 장기가 만져진다. 이대로 전부 뜯어 버려도 신성력으로 살아날 수 있을까.
바르카젤은 그녀가 죽을 때까지 갈기갈기 해체할 작정이었다.
그때였다.
에르세티아의 부러지지 않은 팔로 바르카젤의 팔뚝을 붙잡았다.
* * *
고통이 밀려 들어온다.
“……!”
장기를 끄집어내려던 손길이 마치 벽에 가로막힌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손가락을 구부려 몸 안쪽을 헤집어도 반응이 없었다.
“루아스시여, 신자가 어리석어 이제야 당신의 시련을 이해하였나이다.”
에르세티아에게서 흘러나오는 무한한 신성력이 마치 밀물처럼 굽이치며, 둘만이 아니라 일대 전체를 빛으로 위압하기 시작했다.
‘무슨, 큽!’
바르카젤이 황급히 물러나려고 했다.
움직이지 않는다.
여력을 해방한 완력으로도 어쩔 수 없을 정도로 팔뚝을 잡은 손아귀가 억셌다.
“빛의 성녀임에도 미숙해 상대가 신물을 훼손할 정도의 존재임을 간파하지 못했습니다. 수인 따위가, 짐승 따위가. 하지만 그래서 기쁘군요.”
에르세티아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바르카젤. 이런 당신을 단죄하면 저는 단신으로 대악마를 상대할 수 있는 성녀라는 걸, 빛의 어머니께 증명할 수 있겠죠.”
장기가 끊어지는 와중인데 매혹적인 입가가 부드럽게 휘어지다 이내 길게 찢어졌다.
아이처럼 무구한 미소이자 웃음이었다.
오싹.
바르카젤은 이제까지 범접한 적 없는 소름 끼치는 기분에 휩싸였다. 정신 나간 난쟁이보다 더한 광기가 신경을 자극했다.
‘이, 이런……!!!!!’
그림멜의 자폭으로 죽었던 순간을 떠올린 그가 억지로 왼팔을 빼냈다. 살점이 붙은 감각이 통째로 떨어져 나갔다.
최대한 거리를 벌리고 있자, 피가 쏟아지는 팔의 상처 부위에 황금빛 정십자가가 문신처럼 육체 위로 떠올랐다.
<성흔>
“빛의 흔적이 떠오른 자는 누구나 신성한 광채를 누릴지니.”
모든 부상을 회복한 에르세티아가 양손으로 창을 쥐고 기도했다.
“루아스시여, 제게 다시 한번 위대한 신격을.”
<신기 해방>
성갑과 성창이 맥동했다.
본래 네 장이었던 성스러운 날개가 여섯 장으로 늘어나고, 그녀의 신성력이 폭증하여 존재감만으로 바르카젤을 압도했다.
“루아스시여, 제게 다시 한번──”
바르카젤을 겨냥한 신의 창끝에 거룩한 빛이 모여들었다.
지축이 흔들렸다.
“심판의 기회를.”
파앗!
무거운 반동을 남기고 쏘아져 나간 광선이 곧이어 극대화되었다. 직선 경로를 벗어난 바르카젤을 따라 궤도가 휘어졌다.
그 여파만으로 주변에 있는 것들이 파괴되거나 밀려났다.
눈이 멀어 버릴 듯한 광휘.
‘필중이자 필사의 일격인가.’
바르카젤이 좌측 날개와 왼팔로 심장과 머리를 보호했다.
‘견디면 성녀는 끝이다.’
광선에 직격한 순간 그대로 밀려나며, 멀리 있는 거대한 산까지 날아가 충돌했다. 빛의 힘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그를 압박했다.
쿠과과과과과과과!
비명이 목젖을 때렸다.
무지막지한 압력과 열기에 전신이 아예 박살 나는 것 같았지만, 그럴수록 야성이 바르카젤의 생명력을 떠받쳤다.
빛이 약해진다.
이윽고 광채가 사라지면서 다시 눈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신에 붉게 달아오른 채로 벽에서 나온 그가 지친 듯 몸을 지탱했다.
“성녀 에르세티아…… 이로써 증명되었다. 넌, 날 죽일 수…….”
빛이 명멸한다.
성흔은 아직 남아 있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바르카젤이 눈을 부릅뜨고는 반사적으로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었다. 거대한 발광체 같은 것이 빠른 속도로 낙하하고 있었다.
“끝이…… 아니라고?”
“빛에 대적한 극악의 대죄.”
에르세티아가 최후를 고했다.
“멸하라.”
<심판: 천벌>
세상을 가르는 굉음과 함께 태산보다도 거대한 성창이 떨어져 바르카젤이 서 있는 일대를 쳐부수며 꿰뚫었다.
대지에 떠오른 정십자가.
빛의 상징.
루아스의 진정한 신벌이 강림한 광경에, 그녀가 눈을 감고 기도를 올렸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빛이 피부를 감쌌다.
그리고 인간을 제외한 모든 것에는 단죄의 빛이 깊게 스며들었다.
여신의 뜻대로.
강렬하고 광활한 무구한 광명이 중앙 대륙 남부를 순간 밝게 비추었다.
* * *
풍요로운 협곡과 산맥,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거대했던 태산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파괴의 흔적이 짙은 평지가 시야에 드리웠다.
존재감이 사라졌다.
성녀 에르세티아가 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조용히 속삭였다.
“끝났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루아스교의 비행정이 다가와 하늘에 멈춰 섰다.
세르파니아 추기경과 조제프 대주교가 서둘러 하차했다. 조제프 대주교는 그를 위한 새로운 대주교 의복을 착용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격전이라니……. 하나 그 괴물 같은 수인조차 결국 패배했다. 역시. 에르세티아 성녀님……!’
당대의 성녀는 최강이다.
어떤 초월자도 감당하지 못하리라.
“성녀님, 옥체는, 윽!”
다가갈 수가 없다.
다가갈 수 없을 만큼 뜨겁다.
조제프 대주교가 그 신성한 열기를 목도하고 경악했다.
“설마, 성녀님께 또다시 신열이……?!”
신열(神熱).
루아스교의 신인은 드물게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고열에 시달린다. 그리고 열이 가라앉으면 전보다도 더욱 여신께 가까워진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강대한 신인들은 예외 없이 신열을 경험했다.
하지만 에르세티아처럼 수년 전에 신열을 겪은 신인에게 두 번째 신열이 찾아오는 경우는 종교가 탄생한 이래 처음이었다.
“아아, 빛의 어머니시여. 제게 이렇게나 위대한 사랑을…….”
에르세티아는 정말로 황홀한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광기 어린 신앙이 더욱 깊어졌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잠시 기도를 올린 그녀가 이내 표정을 굳혔다.
“지금 당장 루아스 교국으로 돌아가죠.”
“일단 안정을 취하시는 게 먼저입니다!”
“복귀가 먼저입니다.”
에르세티아가 즉각 추기경의 비행정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바르카젤이라는 수인은 과거의 존재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아주 먼…… 그런 존재를 되살릴 가능성이 있는 존재는 하나뿐이죠.”
주검의 영광.
어떻게 빛의 기적도 없이 죽은 자를 아예 산 자로 되살렸는지는 몰라도, 작금의 사태는 수많은 불안을 떠올리게 했다.
“교황과 성자가 있으니 교국은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겠지만, 서둘러 주검의 영광의 움직임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어요. 그 수인 같은 존재가 하나 더 있다면 대륙 전역이 위험…….”
피잉.
눈앞이 헛돌았다.
‘아…….’
신열을 겪고 있는 신인은 약해진다.
정확히는 정신력이 약화한다.
더군다나 몸은 회복했을지언정 태어나 처음으로 경험한 절대적 강자와의 전투에 그녀의 신경은 이미 마모될 대로 마모된 상태였다.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몸에서 힘이 풀렸다.
“서, 성녀님!!!”
루아스교의 최강자인 에르세티아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 * *
“후아, 말도 안 되게 섬뜩하네. 나도 나름대로 거의 극점에 다다랐는데, 가까이 다가갔다면 스치는 것만으로도 죽었겠어.”
나르비아의 육악 중 일악, 나르비아 페린.
주검의 영광의 세 번째 하인, 만연의 랑데르크가, 뒷세계에서 혈맹의 창설했을 당시에 부활시킨 범죄 마도사.
그녀는 마탑의 장로, 왕족, 재상 등 대륙 고위급 인물들을 납치해 산 채로 해부한 죄목으로, 젠티르 마탑주에게 처형당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으…….”
사실 기억은 제대로 나지 않았다.
죽음의 감각만 남아 있을 뿐.
나르비아 페린은 애초에 불완전하게 부활했기 때문이었다. 완전히 되살아나려면 옛 왕의 재림이 필요 불가결하다.
“그래도 들키지 않아서 다행이네.”
나르비아가 마법으로 작동하는 수레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렇죠? 괴물 수인 씨?”
“크흐흣…… 크하하하핫…….”
온몸이 거의 타오른 바르카젤이 수레에 실린 채 몸을 들썩였다. 재생력이 말을 듣지 않는다. 생명의 야성조차 무의미할 정도로 육체가 파괴됐다.
그러나───살아 있다.
부들부들.
바르카젤은 아주 힘겹게 너덜거리는 팔을 높이 들었다. 부러진 이빨 사이로 환희에 찬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역시…….”
바르카젤이 하늘을 움켜쥐었다.
“운명은 나의 편이군.”
“괴물 수인 씨가 살아남은 게 운명이라면, 저는 운명의 인도자 같은 게 되겠네요.”
나르비아가 싱긋 웃었다.
“그러니 저한테도 감사하세요. 빚이니까 나중에 꼭 갚으시고.”
운명인지 무엇인지, 나르비아는 그런 허무맹랑한 개념에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주목하는 것은 수인의 말도 안 되는 강함이었다.
‘홀로 마탑을 없애 버릴 수 있는 존재라니. 완전 대박이잖아.’
주검의 영광이 명령한 대로 감시하다가 혹시나 이런 상황이 되면 도우라고 해서 도왔다.
솔직히 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 몸뚱이라 강제로 행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수인을 구한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바르카젤과 친해지면 득이 되면 득이 됐지 결코 실이 되지 않으리라.
“아하하하.”
“크하하하하하핫!”
죽음에서 살아난 마도사와 수인이 저마다 다른 이유로 웃었다.
* * *
거대 도시, 가르간트…… 근방의 초원.
“네 계획이 성공하면 무사히 네 번째 좌표가 생겨 삼차원을 넘을 수 있겠지. 하지만 실패하면 그 대가는 꽤 참혹할 거야.”
이그나시아가 마치 소녀처럼 뒷짐을 진 채 반 바퀴 돌았다.
밤의 은하수가 그녀를 장식했다.
“조금이라도 삐끗한 순간 내 초위 마법을 전부 감당해야 하니까. 나야 다히트처럼 파괴에 특화된 초월자는 아니니 죽지는 않겠지만 한동안 거동하기 어려울걸? 정신계 자체만 파열되는 거라 엘릭서로도 회복할 수 없을 거고.”
이그나시아가 마지막으로 묻는다.
“그래도 할 거니?”
“당연히.”
베르덴은 즉답했다.
“준비됐으면 시작하지.”
두 명의 초월자가 네 번째 공간 좌표를 생성하는 초위 마법의 구현을 시도한다.
모종의 힘으로 폐쇄된 루아스 교국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