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8화 주검의 영광 (5)
극점에 도달해야 초월자와 그나마 합을 나눌 수 있고, 초월자에게 대적하려면 극점이 여럿 모이지 않으면 안 된다…….
세월 속에 쌓인 강자들의 인식이 그렇다.
그러나 마법의 위계가 다양하듯 초월자의 경지도 하나가 아니다.
각성을 경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월자는 아직 초월에 익숙하지 못해 평균적으로 수년에서 십수 년 동안 적응의 단계를 거치고.
초월을 온전히 제힘으로 만든 초월자는 그제야 완연한 격을 갖게 되며.
천부적인 재능의 그릇을 빈틈없이 채움으로써 천천히 완성된다.
그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초월을 다시 한번 뛰어넘을 수 있는 잠재력을 바탕으로 초월 이상의 경지에 발을 디딘다.
극점과 초월자와의 격차…… 그것은 위에 나열한 초월자의 여러 단계에서 처음과 중간 그 사이에서만 통용된다.
심지어 그조차도 경우에 따라 달라 장담할 수도 없다.
어쨌든 전력을 내는 초월자와 사생결단을 내려면 많은 것을 각오해야 한다. 희생은 물론이다. 국가라면 국가의 존속을 걸고 싸워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초월자를 상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바로 다른 초월자에게 맡기는 것.
“허헛…… 저, 정말로 오실 줄은…….”
“어서 마셔라.”
메드란트가 직접 유르기엔과 에온의 마도사 두 명에게 포션을 먹였다.
드라벤의 고유 마도는 생명을 거절하고.
포션의 주재료가 되는 리산드로의 열매는 절로 엘프를 떠올리게 만드는 대수림의 풍요로운 생명력을 품고 있다.
대자연의 기운이 그들의 얼굴에 드리운 명운의 기운을 빠르게 거두었다.
끔찍하게 갈라졌던 팔뚝도 서서히 회복했다.
불안감이 사라진다.
전의가 솟는다.
에온의 집행 부대가 예를 갖추며 정점의 참전을 환영했다. 지금 유르기엔의 눈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메드란트는 복부를 파고든 저주를 로브 자락으로 몰아냈다. 마탑주로서 만약에 대비하여 보신을 위한 아티팩트는 언제나 지니고 있다.
마저 몸을 일으켰다.
정말로 갑작스럽게 등장한 베르덴은 드라벤과 정면으로 대치했다.
메드란트는 후방으로 가기 전 특이 사항만 짧게 보고했다.
“주검의 영광 이외에도 민간인으로 위장한 적이 다수 있다. 주모자는 아마 이데라트 연맹장. 어디로 갔는지 모르나 이런 말을 하더군.”
“…….”
“모든 것은 ‘당신’을 위해서, 라고.”
베르덴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다. 루아스교를 지원하도록.”
“최선을 다하지.”
메드란트가 수신호를 보내 유르기엔, 집행 부대, 오스테아 마탑의 마법사들을 데리고 교국의 요새인 성소로 물러났다.
툭…… 투둑…….
때마침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 * *
전투의 여파로 엉망이 된 거리에 두 초월자만이 남았다.
서로를 가늠하는 저마다의 통찰력.
그중에서 먼저 의문을 입에 담은 것은 드라벤 르마르크였다.
“……교국의 경계는 폐쇄했을 텐데. 대체 어떻게 들어온 거냐.”
“네가 모르는 마법으로.”
베르덴은 달리 목적이 있지 않는 이상 살기가 만연한 적에게 원하는 대답을 해 줄 정도로 친절한 성격이 되지 못했다.
“잔트라의 붕괴로 세간의 눈길을 돌리고 루아스 교국에 본인이 직접 침투할 줄은 몰랐다. 성녀도 그런 식으로 시선을 빼앗은 거겠지. 지금까지 쥐새끼처럼 굴더니, 꽤나 대담해졌군.”
“…….”
드라벤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포르메네 자유국의 도시 잔트라가 멸망했다는 걸 인지했다. 너무 이르다.
이는 그림멜 그롬파르의 테러가 끝까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음을 뜻했다.
‘그래서 그림멜이 늦게 도착했나.’
어떤 공간 이동 마법을 시전해서 이곳으로 직접 넘어왔는지 모르겠지만…… 말인즉슨 그림멜이 흘린 단서를 통해 당장 맞닥뜨릴 예정이 없었던 초월자가 개입한 것이리라.
두 초월자는 이번이 첫 대면이었지만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봤다.
“사사건건 훼방을 놓는군, 베르덴.”
에스티리아 왕국에서는 에스퍼렌사 가문과 힘을 합해 백골의 비올라와 노사를 살해.
벨디른 공화국에서는 네 번째 하인인 케실루스 차에렌을 살해.
세계 회의장에서는 두 번째 하인인 루네시카 안테르노아의 분신을 통해서 본체를 죽이려고 직접 손을 썼다.
마지막으로 옛 왕의 부활을 목전에 둔 루아스 교국에서는, 이렇게 난입까지 해 성소로 가는 길을 차단하고 있다.
에온을 제외하더라도 베르덴은 주검의 영광의 걸림돌이었다.
루아스 교국도, 다크 워튼 마탑 소속도 아닌 인물이 이렇게나 앞길을 막았던 적은 지난 800년 동안 없었다.
베르덴이 말했다.
“계속 눈에 거슬리는 건 너도 마찬가지다, 드라벤 르마르크.”
“라인델 넥스레온과 친분이 있다고 들었다. 내 본명은 놈에게 들었나.”
“이따위 만행을 벌이고 있는데 세상에 네 적이 어디 한둘일까. 늙어 굳어 버린 그 머리로는 짐작도 하지 못하겠지만.”
첫 단추부터 틀어진 지 오래다.
베르덴과 드라벤의 추구하는 이상향은 맞물리지 못하니, 끝까지 가면 결국에 둘 중 하나가 죽어야 하는 미래만이 존재했다.
루아스 교국의 재정비까지, 아마 1분 10초.
교황의 천사 강림까지, 2분 30초.
‘그림멜이 도착했으니 장치가 발동했을 터. 남은 시간은 ‘20분’.’
이제 무슨 일이 있어도 20분 안엔 반드시 루아스 교국을 나가야 한다.
방금까지만 해도 그 계획에 큰 차질은 없었는데, 베르덴이라는 변수가 더해지면서 예정에 없던 상황이 펼쳐졌다.
성소에 도착만 하면 되지만.
그렇다고 다른 놈들 대하듯이 무시하고 지나갈 수는 없었다.
───그 검붉은 마도…… 마법 법칙을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고 내 본체에 닿았다고. 랑데르크가 예정보다 빨리 죽은 것도 전부 녀석 때문일 거야. 분신을 통해 본체를 죽일 수 있다면 랑데르크의 병원체는 대항할 방법이 없으니까.
루네시카는 강력하게 신성의 마도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드라벤은 유능한 부하의 충고를 새겨듣지 않는 어리석은 상관이 아니었다.
베르덴의 발목을 잡을 인물이 필요하다.
드라벤을 대신해서.
“으하하하하하하하핫! 분위기 한번 살벌하구먼!”
쿠웅!
유골룡 하나가 건물 지붕에 착지했다. 그 머리 위에서 등에 거대한 기계 장치를 짊어지고 안대를 쓴 그림멜이 얼굴을 내밀었다.
다른 유골룡들은 교국의 하늘을 유영하며 크게 원을 그리고 있었다.
<메테오 스웜>에 직격한 한 마리는 골격이 살짝 어긋나 있었지만 넝마 같은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드래곤의 저항력을 자랑했다.
드라벤이 물었다.
“그 눈은 뭐지.”
“방심하다가 당했네. 저 친구에게.”
그림멜이 안대를 확 뒤집으며 눈꺼풀을 최대한 크게 열었다. 눈동자가 없다. 안쪽에는 검붉은 살과 어둠만이 존재했다.
“아까는 미안하게 됐네, 베르덴! 자네라는 존재를 너무 얕보고 말았어! 으하핫! 이제 그런 실수는 없을 걸세!”
그림멜이 안대를 덮었다.
“시체 없는 무덤을 만들어 주지.”
“수고를 덜었군.”
베르덴이 힘을 아끼지 않고 전신의 마력회로를 최대로 활성화했다. 그의 고유한 격이 루아스 교국의 하늘을 격동시켰다.
“너희 무덤을 따로 파지 않아도 될 테니.”
쿠르르르릉…….
교국과 함께 영혼의 장막으로 갇혀 있는 회색빛 구름에서 뇌성이 들려온다. 작은 빗방울이 굵어지고 한데 모여 소나기를 이루었다.
도시 곳곳에서 발생한 화재가 비를 만나며 검은 연기를 뿜어 댔다.
여전히 굉음과 비명이 난무하는 종교의 수도 한편에서 적막이 흘렀다.
“───진군하라.”
드라벤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상공에서 강력한 사기가 방출되었다. 유골룡 두 기에 고정된 주검의 영광의 스크롤이 드라벤의 마도에 반응하여 일제히 발동되었다.
<무덤안개>
<망자의 행진>
<망자의 행진>
<망자의 행진>
스크롤에 저장된 네 개의 7위계급 흑마법이 성소 북쪽을 어둠으로 물들였다.
사람 없는 거리를 채운 <무덤안개>의 사기가 곧 <망자의 행진>의 원료가 되어서 시체 없이도 일만이 넘는 언데드를 탄생시켰다.
그것들이 유골룡의 그림자를 따라서 성소를 향해 진격했다.
키이이잉!
유골룡에서 뛰어내린 그림멜이 기계 다리의 힘을 이용해 가속했다. 거대한 기계 갑옷을 두른 그림멜의 몸체가 베르덴보다 더 커졌다.
금속 팔이 허공을 갈랐다.
팔뚝에서 뻗어 나온 칼날이 푸른빛으로 발광했다. 그림멜이 자신만의 기술력으로 만든 인위적인 마력의 칼날이었다.
쩌어어엉!
이를 [인테리스]로 막아 낸 베르덴의 발밑이 크게 갈라졌다. 그림멜의 최악의 병기는 순수한 자연의 마력을 동력으로 삼는다.
그로부터 발생하는 힘은 자연의 위대함을 온전히 품고 있다.
“자네에게 자연이 무엇인지 보여 주겠네.”
드워프가 인공적인 산물을 무기로 삼으며 자연을 설파한다. 이보다도 역설적인 존재는 세상을 뒤져도 찾아보기 어려우리라.
그사이 드라벤이 경로를 약간 우회해 베르덴을 지나치려 했다.
“또 쥐새끼처럼 구는군.”
<혼광(混光)>
암청색의 빛과 파동이 베르덴을 중심으로 일대에 작렬했다.
번개, 화염, 중력.
원소의 혼돈에 노출된 그림멜은 병기의 저항력을 자랑하듯 회피하려는 노력도 없이 제자리에서 충격을 받아 냈다.
<전이>
베르덴이 공간을 넘어 드라벤의 근처에 나타난 순간, 올 줄 알았다는 듯 마검 [모르베인]의 칼날이 급격히 궤도를 틀었다.
드라벤의 감각은 정확히 베르덴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크세리온 제국 검술 제1형단 – 글라로스.
<아케인──정(定)>
베르덴이 즉각 파멸의 마도를 개방했다. 스태프 머리에서 형성된 파멸의 창날이 빗방울을 멸하며 사선을 베었다.
쿠웅───!
충돌과 동시에 검보라색 화염과 검붉은 전격이 미쳐 날뛰었다. 뒤늦게 마도의 충격파가 일며 건물과 바닥이 크게 가라앉았다.
대등하게 서로 맞닿은 스태프와 마검이 부들부들 떨렸다.
드라벤이 무겁게 속삭였다.
“하나도 온전히 감당하기 어려울 텐데 감히 둘을 상대하겠다. 혈기 넘치는군. 오만하고. ”
“그런 이야기를 몇 번 듣긴 했지.”
오른쪽 눈동자에 역천의 마법진이 떠올랐다.
“내게 죽은 놈들에게.”
트리플 캐스팅: <대폭렬>
마안으로 즉시 발동된 7위계 마력 폭발이 교국을 뒤흔들었다.
하늘이 차가운 눈물을 흘렸다.
* * *
폭우가 쏟아졌다.
쏴아아아아아아아───
학살을 자행한 적들을 최대한 걸러 내어 시민들을 성소 근처로 대피시켰다. 혹여 위장한 적이 있을지도 모르기에 빛의 하인으로 철저히 감시했다
성소를 중심으로 구축된 전열.
상급과 하급을 막론하고 루아스 교국의 성직자가 재정비를 마쳤다. 그리고 아군으로 검증된 타국과 타 세력의 강자들도 그들에게 힘을 더했다.
교황의 신성한 기도가 빗소리를 압도하며 하늘을 떠받쳤다. 성서. 빛의 균열은 몇 배나 더 커져 모든 사람의 눈에도 보였다.
신의 기적이 곧 발동된다.
루아스의 천사가 이 땅에 강림한다.
필요한 것은 약간의 시간뿐이다.
“먼 과거! 여신의 빛에 패배했던 사악한 존재들이 다시 빛을 더럽히려 하고 있다! 그러나 두려워할 것은 없다. 우리들의 선조가 그러했던 것처럼 타락한 자를 음지로 추방할 것이다! 아니, 영영 나타나지 않도록 이 자리에서 멸절하겠다!”
은휘의 대주교가 소리쳤다.
“성소를 지켜라!”
“무구한 영광으로!”
유골룡 셋이 옆으로 선회하며 아가리를 크게 벌렸다. 그 안쪽에서 차갑고 푸른 불꽃이 거칠게 피어올랐다.
팔라딘이 소리쳤다.
“브레스가 온다!”
주교들의 기적을 받은 성기사들이 일제히 방패의 벽을 세웠다. 성소의 신성까지 더해지며 빛의 장막이 구축되었다.
냉기의 숨결.
청광이 번뜩인 순간 극저온의 한기가 남쪽, 동쪽, 서쪽에서 들이닥쳤다. 살 떨리는 진동에 발밑이 크게 흔들렸다.
빛이 얼어붙었다.
그러나 드래곤이 가진 생전의 힘을 내지 못하는 유골룡 따위로는 성소의 외곽조차 단번에 넘어설 수 없었다.
“언데드 군세 확인!”
“정화하라!”
신성 광선이 빛의 장막 너머로 나아가 언데드를 지웠다. 메드란트를 비롯한 외부 강자들은 대주교의 기적을 받아 제한적으로 빛의 장막 바깥으로 마법을 보낼 수 있었다.
신성 폭격.
마법 폭격.
혼란을 수습한 루아스 교국의 방어벽은 사악한 자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교황님께서 준비를 끝내실 때까지 무사히 버틸 수 있겠군.”
“추기경님, 일단은 안정을 취하셔야……!”
“문제없다.”
인내의 데엘로 추기경이 천천히 아물기 시작한 검흔을 짚었다.
마지막 순간에 목과 심장 부근을 신성력으로 막지 않았다면 뇌와 심장, 둘 중 하나는 부패해 죽었을 터였다.
빛의 신자는 쉽게 죽지 않는다.
데엘로 추기경은 그런 면에서 특출났다.
“성자께서는.”
“현재 주교들이 성물을 사용해 폐관을 해제하고 있습니다.”
“문을 개방하기 전에 반드시 성자의 의사부터 확인하라고 다시 한번 일러라. 만약 성검과의 합일 도중이라면 큰일이시니.”
“명심하라 전하겠습니다.”
데엘로 추기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다른 격전지를 주목한 그의 눈가가 약간 떨렸다.
“초월적 존재 다섯을 죽인 것이 한 치의 거짓 없는 사실이었다니…….”
대기가 요동쳤다.
지축이 흔들렸다.
이 중에서 베르덴의 진정한 힘을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메드란트만은 다히트와 베르덴의 결착을 직접 지켜봤지만, 그로부터 시간이 지난 지금 베르덴이 현재 어떤 강함을 손에 넣었는지 실전에서 확인하지 못했다.
유르기엔이 입을 벌렸다.
성직자들도 그러했다.
다른 마탑의 장로들은 무지막지한 마력을 느끼고 전율했다. 교국의 시민들은 공포에 떨면서 언데드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현뢰 - 유전(流電)>
검붉은 뇌격이 어두운 밤을 물들였다.
지상으로 곤두박질친 그림멜이 건물 잔해를 뒤집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표정에는 즐거움과 당혹감이 공존했다.
본래라면 베르덴을 압박하고도 남아야 했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착각했구먼. 마력 분열만 제대로 통하지 않는 게 아니었어. 내가 동력으로 삼은 마력에서 비롯된 모든 현상에 극도의 저항력을 갖고 있다.’
그림멜의 병기가 울부짖었다.
‘마치, 대자연의 마력에 사랑을 받기라도 하듯─’
빛이 드리웠다.
<유성>
콰과과과과과과과!
성신 마법의 첫 번째 별이 그림멜이 있던 장소를 집어삼켰다. 정확히 해당 범위만이 고열과 고압에 파괴되었다.
제5형단 – 아르코스.
드라벤이 연격으로 베르덴을 몰아붙이다가 그 복부를 걷어찼다. 쩍! 나가떨어진 베르덴이 건물을 부쉈다.
제국 검술과 격투술의 조화.
멈추지 않고 명운의 검기를 쏟아 내어 베르덴이 있는 장소를 난도질했다.
드라벤이 즉각 고유 마법을 연산하며 다시 제국 검술의 자세를 취했으나, 그의 눈에도 그림멜처럼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뭐냐, 저건.’
드라벤의 통찰력이 베르덴의 육체 너머에 있는 것을 일부 보았다. 그의 통찰력으로도 시간을 들여서 겨우 찾은 틈새였다.
‘영혼이…… 대체.’
가늠할 수 없이 광활하다.
저토록 거대한 영혼은 흑마법을 터득한 이래로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저걸 과연 영혼이라 규정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 저것은 마치───
‘세계?’
드라벤 르마르크는 베르덴의 영혼에서 세계를 보았다. 순간 혼란을 느꼈다. 그 탓에 반응속도가 조금 늦어졌다.
눈앞에 [인테리스]가 드리웠다.
퀸터 캐스팅: <모멘티움>
막대한 중력파가 한 점에서 몰아치며 드라벤을 강타했다. 그대로 날아가지 않고 상체를 말아 마검을 땅에 박았다.
카가가가가가각!
수십 미터 밖에서 겨우 멈춰 선 드라벤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의 입가에서 한 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비가 세차게 쏟아지는 교국의 중심에서 벽안이 명멸했다. 순수한 마력처럼 푸른 눈동자 주변으로 검붉은 빛이 불규칙적으로 번쩍였다.
‘영혼의 형태가 완전히 다르다.’
그의 머릿속에 새로운 의문이 자리 잡았다.
‘저건, 정말로 초월자인가?’
드라벤은 지금까지 봐 온 초월자와 베르덴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