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4화 전멸 (1)
쿠웅…….
미궁이 흔들린다.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상상을 넘어선 전투가 벌어지는 듯하다. 진원지가 위가 아니라 아래라는 건 틀림없다.
“경사가 아래로 향하고 있군요. 이쪽이 맞는 것 같습니다.”
“부디 그래야 할 텐데.”
그레이브가 소검과 단검을 쥔 채 빠르게 통로를 <비행>했다. 알더니스와 에온의 탐사대가 신속하게 그의 뒤를 따랐다.
상황이 급변한 느낌이다.
방금까지만 해도 미로에 즐비하던 미라 기사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다른 세력의 탐사대가 그 용검을 발견한 걸까.
혹은 개인으로 움직이는 아드리안이 섬의 중심에 근접할 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동을 멈춰서는 안 된다.
후퇴를 고려하지 않아아 될 정도로 탐사대의 전력은 온전하다.
“?!”
“……!”
통로와 통로가 교차하는 비교적 넓은 공간에서 다수와 마주쳤다. 누군지 알고 있다. 선두에 선 자는 제국의 검성이다.
서로를 인식한 아르나크 제국과 에온의 탐사대가 제동을 걸었다.
“……워 로드가 보이지 않는군.”
그레이브가 말했다.
검성 프리발트가 짧게 답했다.
“신경 꺼라.”
“제국에서도 더 깊은 지하로 이어진 길을 찾고 있습니까.”
알더니스가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온과 아르나크 제국의 내외적인 관계는 그리 나쁘지 않다. 오히려 우호적인 편이다. 애초에 적대할 이유가 없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알더니스는 간접적으로 공동 탐사를 제안했다.
이곳의 통로는 세 개니까.
제국과 에온이 각각 하나의 통로를 지나왔으니, 결국에는 둘 다 하나 남은 통로로 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
프리발트는 검 손잡이를 툭툭 두드리며 잠시간 생각에 잠겼다.
‘미라의 대량 출몰 탓에 레그리트의 흔적이 끊겨 그녀를 놓치고 말았다. 하물며 미궁의 파동이 다시 뒤바뀌기까지.’
여기서 시간을 축낼 여유는 없다.
내키지 않지만 에온이라면 그나마 협력 대상으로 괜찮은 세력이긴 하다. 프리발트는 나름대로 최대한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
“좋다. 선두는 내가 맡──”
쿠웅.
미궁이 격하게 울렸다.
뭐지?
지금까지와는 충격량이 다르다.
섬 전체를 쪼개 버릴 것 같은 대규모 지진이 공간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탐사대원들이 균형을 채 잡지 못해 벽을 짚거나 스태프에 의존했다.
프리발트가 세 번째 통로로 고개를 확 돌리며 눈을 부릅떴다.
‘이 소름 끼치는 파동은 설마.’
직후 미궁의 벽을 뚫고 전해지는 막대한 마력에 알더니스와 그레이브도 숨을 삼키며 옆쪽으로 눈길을 곧장 돌렸다.
어둠 속 저 멀리───통로 내부에서 검붉은 빛이 새어 나왔다.
“저, 저건.”
“베르덴 폐하의 마도다……!”
통로가 무너졌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
미친 듯이 요동치는 마력과 뒤이어 통로 전체를 휩쓰는 후폭풍의 항거할 수 없는 압력이 두 탐사대에 들이닥쳤다.
지상과 지하를 잇는 마도.
하늘에서 추락한 아주 거대한 현뢰가 미궁을 관통했다.
* * *
‘이 마력의 질, 절대로 나와 같은 7위계 수준이 아니다……! 일시적으로 경지를 높인 건가? 초월자의 위계를 돌파해서?’
인드렌은 복부에 꽂힌 마검을 빼낼 생각도 하지 못하고, 베르덴에게서 일어난 변화에 주목하다가 곧 머리를 쳐들었다.
‘뭔가 온다.’
천장이 산산이 무너진다.
히아레마르 내해의 섬을 뒤덮은 검붉은 하늘에서 강림한 벽력이, 지하 유적을 수직으로 뚫고 밑바닥에 당도했다.
고막을 찢는 뇌음.
눈을 뜨기도 어렵다.
공동의 규모에 필적하는, 난생처음 보는 크기의 낙뢰가 베르덴 위를 그대로 내리치며 <인테리스>에 깃들었다.
파멸이 번지며, 초월자들의 교전에 휩쓸려 몸이 파괴돼 버린 미라 기사들이 그 티끌조차 남기지 않고 세상에서 사라졌다.
제자리에서 벤디에와 인드렌이 남은 기와 마력을 끌어올렸다.
모든 여력을 방어에 집중했다.
신체 부상이 제법 깊다. 드라벤과 함께 폭풍에서 쏟아진 검붉은 낙뢰의 폭격에 두 번이나 제대로 맞은 터라 저항력이 약화됐다.
거기에 벤디에의 경우는 초월기의 반동까지 겹친 몸이었다.
‘또, 새로운 초위 마법이라고……? 안 돼. 무리한 운용이야. 자칫하면 베르덴의 존재 자체에 영구적인 피해를 남길 수도 있는데……!
‘지금 베르덴의 힘에 정통으로 맞으면 항상성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두 초월자는 옛 왕의 신체를 이식한 드라벤을 상대했을 때보다, 아군인 베르덴에게서 훨씬 더 큰 위기감을 느꼈다.
베르덴은 아공간에서 두 개의 플라스크를 꺼내 던졌다. 그것들은 깨지지 않고 벤디에와 인드렌의 발 앞에 놓였다.
“엘프에게 받은 선물로 제조한 포션이다. 그걸로 몸을 회복해라.”
파멸적인 뇌광 한가운데에서 베르덴은 스태프를 강하게 비틀어 쥐었다.
연쇄적으로 전격이 폭발했다.
공간이 떨렸다.
공동 전체가 갈라졌다.
무한한 파멸의 마력을 방출하며 투창의 자세를 취한 베르덴의 검붉은 마안이 미궁의 끝으로 이어진 어둠을 직시했다.
“휘말려도 죽지 않게.”
뒷다리로 지면을 박차는 순간 섬 전체에 격랑이 일었다. 우렛소리가 파열함과 동시에 검붉은 광휘가 작렬했다.
드라벤 르마르크가 도주한 마지막 통로를 밝히는 파멸의 개념.
베르덴은 섬광처럼 사라졌다.
* * *
맹렬한 난전이었다.
보이지 않는 속도로 사각만을 노리는 아드리안의 광검과 제 저항력을 믿고 정면을 돌파하는 마울러의 건틀릿이 불사의 의식 제단과 함께 루네시카의 목을 끊임없이 노렸다.
자색의 검기가 미친 듯이 난발한다.
루네시카만이 아니라 제단을 포함한 공간에 있는 모든 것을 가를 듯이.
그야말로 과도한 공세였다.
으득.
루네시카가 어금니를 깨물며 손바닥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영혼들의 비명이 청자들에게 파고들어 정신계를 훼손했다.
저항력 무시.
정신력에 따라 정도는 다르지만 초월자라고 해도 정신은 반드시 손상된다. 두 초월자가 멈칫하자 아크 리치가 흑마법을 전개했다.
<영혼 부패>
<영체 착란>
6위계 마법만을 다루는 단순한 아크 리치 따위가 아니다. 루네시카가 영혼을 제물로 삼아 힘을 부여한 특수 개체다.
비교하면 저항력은 아주 약할지언정 루네시카의 고유 마법을 다룸으로써 초월자에게 피해를 주는 데 특화되었다.
하나 저항력은 약점이되 약점이 아니다
특별하게 만든 종말의 기사 두 기가 모든 방어를 대신하니까. 이것이 루네시카를 호위하는 세 마리의 언데드다.
더블 캐스팅: <사자의 군대>
트리플 캐스팅: <오락툼>
루네시카는 제단을 제외한 공간을 거의 채우고도 남을 숫자의 언데드를 소환한 다음에 그들의 사기에 광기를 실었다.
종말의 기사가 초월자들의 접근을 가로막고.
폭주하는 언데드들이 종말의 기사와 초월자에게 달려들어 그 위를 온몸으로 덮더니 하나의 봉인체로 변모했다.
‘……둘 중 하나라도 초월에 적응하지 못했으면 쉬웠을 텐데.’
루네시카는 영혼 봉인에 금이 간 걸 보고 입술을 짓씹었다.
그녀가 손을 움켜쥐었다.
<시체 폭발>
거대한 폭발로 인해 공동 내부에 성난 바람이 휘몰아쳤다. 죽음의 기운에서 비롯된 부패한 연기가 사방에 내리깔렸다.
화아아악!
아드리안이 연기를 뚫고 나왔다. 종말의 기사와 합을 나누다가 놈을 제치고는 루네시카에게 네 번의 참격을 발했다.
영혼의 벽을 세워 대응한 그녀의 목덜미에 얕은 절상이 생겼다.
연환 – 광륜狂輪
마울러가 무게중심을 앞꿈치에 실은 채 육체를 기울이고 전진하며 회전했다. 주먹, 전완, 팔꿈치, 무릎, 정강이, 발등까지.
사지(四肢)로 가능한 종류의 모든 타격이 돌풍이 되어 몰아쳤다.
콰아아앙!
갑옷 곳곳이 찌그러지며 종말의 기사가 바닥에 처박혔다. 마울러의 권기가 루네시카를 지나 제단을 강타했다.
“쯧, 성가신 흑마법사 년이.”
“너희한테 무너질 제단으로 보여? 그럴 거였으면 시작도 안 했어.”
아드리안과 마울러가 침입하자마자 다섯 개의 아티팩트 중 세 개를 사용해 제단의 사기를 강화하고, 그 위로 장막을 덧씌웠다.
‘제단은 부서지지 않아.’
그럴 기회를 줄 생각조차 없다.
루네시카가 준비한 수단들이 다시 아드리안과 마울러와 격돌했다. 몇 번이고 부딪치며 서로의 몸과 정신에 상처가 늘었다.
그녀의 목적은 철저하게 시간을 끄는 것이기에 버티는 데 온 힘을 할애했다.
그때였다.
쿠웅…….
아까부터 거슬렸던 알 수 없는 굉음이 문득 귀를 기울이니 아주 가까워졌다. 진동에 떨린 공동, 이윽고 쩌적, 하는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콰아아아아앙!
공동의 드높은 천장 부근에서 벽면을 뚫고 나온 레그리트가 허공에서 두 날개를 펄럭이더니 바닥에 힘껏 착지했다.
용인의 모습을 처음 목격한 루네시카, 마울러, 레온하르트가 눈을 크게 떴다.
“뭐야, 이건.”
“드디어 찾았군.”
레그리트가 가쁘게 숨을 내쉬었다.
“오다 지치는 줄 알았다.”
뒤이어 그녀를 조력했던 다른 두 명도 공동으로 내려왔다. 미궁을 부수느라 지친 기색이 상당했지만 의지는 변함없이 강건했다.
정의의 추기경, 그레고르반.
완벽한 모험가, 리디안…… 본명 카스티안.
“불사의 의식!”
그레고르반은 루아스교의 추기경답게 고농도의 사기를 감지했다. 제단의 구성과 그 너머에 나열되어 있는 관을 가리켰다.
“각 신체가 회귀하고 있어……! 큰일이네! 의식이 끝나기까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그 전에 어떻게든 제단을 부숴야 하네!”
그레고르반은 신성력을 끌어모으며 당장 전투 태세를 갖췄다. 내외에 겹겹이 쌓인 피로를 다스릴 여유는 없다.
휴식은 주어진 모든 의무가 종결된 뒤에 누려도 충분하다!
“음?! 어떻게 성자께서 이곳에?!”
그레고르반이 그때 구석에 봉인된 레온하르트를 인지하고 경악했다.
그동안 카스티안은 분노를 끌어올렸다.
‘루네시카 안테르노아.’
카스티안은 크세리온 황성에서 몇 번이고 봤었던 초월자에게 검을 겨눴다. 그는 투구를 쓰고 있었기에 그녀는 알아보지 못했다.
루네시카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 굉음이 미궁을 부수는 소리였다고……? 분명 이 유적이 감지 거리를 제한했을 텐데. 도대체 어떻게 내가 여기 있는 줄 알고 온 거야?’
이 시점에서 상대의 전력 증강은 예상치 못했다.
낭패다.
특히나 드래곤의 특징을 가진 인간…… 아르나크 제국의 워 로드의 경지가 심상치 않다. 초월적 존재에 버금가는 수준일지도.
‘그나마 유지한 균형이 깨졌어.’
루네시카가 뒤로 물러났다. 1분이 60개로 나뉘어 1초가 된 것처럼 1초가 다시 수십 개로 나뉘어 세상이 느리게 흘러갔다.
‘이건…… 못 막아.’
루네시카는 세계 회의에서 그 존재를 드러냈다.
적은 너무도 명확했다.
별다른 말을 주고받지 않고도 대륙의 강자들이 움직였다. 그레고르반 추기경이 기적을 펼쳐 죽음을 약화했다.
난전이 벌어졌다.
하나 흔들거리던 저울의 균형에 추가 더해지면서 애매한 평형이 사라졌으니 공방의 흐름은 일방적으로 전개됐다.
<명종>
난무亂舞
레그리트의 건틀릿에서 폭발한 황금의 우레가 종말의 기사를 강타했다. 아드리안이 무수한 검기를 일순간에 퍼부었다.
갑옷과 검을 본체와 함께 수백 조각으로 절단한 그가 잔상을 남겼다.
연환 – 섬벌殲伐
마울러의 연격을 막아 내던 다른 종말의 기사, 그 뒤를 점한 카스티안이 일격으로 종말의 기사의 등을 관통했다.
칼날을 붙잡은 마울러가 몸을 비틀어 힘껏 팔을 끌어 올렸다. 가슴부터 머리가 짓이겨지듯 쪼개져 버린 언데드가 죽음으로 돌아갔다.
‘[희생]으로 즉사에 가까운 치명상을 무효화할 수 있는 건 7번. 하나 여기서 다시 살아나 봤자 아무것도 못하고 곧바로 죽겠지.’
루네시카의 손목을 장식한 팔찌 [희생]은 보석에 담긴 영혼에게 소유주가 받은 충격을 전가한다.
세계 회의가 끝날 무렵에 빙의체에서 본체까지 전해진 베르덴의 마법에 당하고 무사할 수 있던 것도 이 고대 아티팩트 덕분이었다.
‘남은 시간은, 어?’
루네시카가 흠칫했다.
‘갑자기 의식의 진행 속도가 더 빨라졌어. 이건, 아, 아아!!! 드디어…….”
스하아아아아아───
등 뒤에서 소름 끼치는 죽음이 그녀의 목덜미를 핥았다. 몸이 떨렸다. 그것은 두려움이자 다시 없을 환희였다.
‘폐하의 의식이 깨어나셨다.’
지금 불사의 의식을 주도하는 건 그녀가 아니라 크세리온 페하 본인. 심혼진제는 폐하게서 강림하실 발판에 불과하다.
‘남은 건 불사성을 완성할 동력을 채우는 것뿐.’
루네시카는 마지막 남은 리치를 앞세우며 자신의 영혼을 둘로 쪼갰다.
하나는 초위 마법을 발동해 적들의 시선을 끄는 역할이고, 다른 하나는 심혼진제를 매개체로 삼아서 폐하의 신체에 영혼이라는 동력을 추가로 부여하기 위한 용도다.
영혼을 일시적으로 분리한 대가는 육체의 죽음.
개의치 않는다.
크세리온 폐하께서 죽음의 왕이 되어 부활하시면 모든 게 해결된다. 죽음만이 있어 생명이라는 개념이 사라지는 세상이 오는 것이다.
아크 리치에 모든 마력을 집중.
[희생]에 깃든 모든 영혼을 끌어내어 다시 살아날 수 없게 되는 대신에 초위 마법에 필요한 시전 시간을 극단적으로 단축.
루네시카는 자신을 향한 초월자들의 살의를 마주하며 승리를 확신했다.
파아아아아아앗!
성스러운 빛이 어둠을 밝혔다.
루네시카의 경계 대상에서 잠시 지워졌던 사내가 성검을 높이 들었다.
종말의 기사를 처리하자마자 레그리트가 돌진해 레온하르트를 해방해 준 것이다. 드래곤의 발톱, 아니 손톱은 마법을 찢어발긴다.
‘일격에 부서질 봉인이 아닌데…… 아.’
붕괴되어 소멸해 가는 봉인 위로 검흔이 남아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아드리안은 과할 만큼 많은 검기를 쏘아 보냈던 순간이 뇌리를 스쳤다.
‘천검, 저 비천한 새끼가.’
레온하르트가 격노를 분출했다.
루네시키가 초위 마법을 발현하기 직전에 성검이 수직을 갈랐다.
신의 기적.
<심판: 처단>
신성한 참격이 아크 리치와 그 안에 깃든 초위 마법의 정수를 양단하며 빛에 대적하는 사기를 전부 지워 버렸다.
<명룡의 숨결>
무전 – 대태륜大輪泰
레그리트의 브레스와 마울러의 절기가 제단을 격동시켰다.
우측 상반신이 파열되고 겨우 피한 루네시카가 그나마 영혼의 동력이라도 넘기기 위해 심혼진제 안으로 들어가려고 팔을 뻗었다.
초월기.
계열界裂
광검 [실렌다르]가 공간을 절단했다.
루네시카의 남은 팔과 멀쩡한 다리가 여지없이 단절됐다. 목도 반쯤 갈라지며 쏟아진 피가 웅덩이를 만들었다.
그녀는 손목만 남은 팔뚝으로 필사적으로 목의 상처를 틀어막았다.
“커, 커흑, 조, 조금만, 더…….”
루네시카의 숨이 꺼져 간다.
그런데 초월기와 신의 기적, 절기, 레그리트의 숨결에도 심혼진제는 금이 갔을 뿐 아직 무너지지 않은 상태였다.
여기서 전력을 쏟아부으면 부술 수 있을까.
어떻게든 부숴야 한다.
모두 그리 확신하고 전력을 발휘하자 아드리안의 통신 장치가 반응했다. 아드리안은 주저없이 팔찌에 대고 말했다.
“주군, 현재…….”
───최대한 저항력을 끌어올려라.
주군의 목소리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전부 지워 버릴 테니.
……!
후방에서 강대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아드리안조차도 채 움직이기도 전에 드라벤이 빛살처럼 날아왔다.
온몸이 만신창이인 그가 심혼진제에 부딪쳤으나 나가떨어지지 않았다. 드라벤이 루네시카를 붙잡아 제단의 장막 안쪽으로 던졌다.
“폐하를, 어서!”
“아…….”
루네시카가 단연한 의지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옛 왕의 관으로 기어갔다.
조금만 버티면 된다.
아주 조금만.
드라벤은 그 짧은 시간이라도 벌기 위해서 입구 앞에 섰다. 마울러가 “끈질긴 새끼들”이라고 하며 나서려던 순간이었다.
미궁 전체가 흔들렸다.
뒤에서 무지막지한 힘의 급류가 느껴졌다.
아드리안이 소리쳤다.
“전원, 저항력을 끌어올려라!”
검붉은 광채가 뇌명과 함께 번쩍였다.
순식간에 드라벤을 따라서 등장한 베르덴이 땅을 밟았다. 앞다리에 실린 힘에 공동 전체가 쪼개져 수천 개의 금으로 분열됐다.
파멸…… 그 자체가 된 베르덴이 정확히 드라벤을 노려봤다.
“이만 사라져라.”
현뢰에 휩싸인 <인테리스>가 검붉은 번개의 창이 되었다. 오로지 파멸의 위력에 집중하며 얻은 그때의 깨달음이 현현했다.
개념의 합일도 아닌.
마법의 연계도 아닌.
수를 헤아릴 필요조차 없는.
단 한 줄기의 검붉은 벼락.
초위 마법.
<멸절(滅絶)>
베르덴이 손에서 뻗어 나간 <인테리스>가 뇌명을 터뜨렸다.
얼어붙은 드라벤을 향하는 파멸은 대상에게 닿기 전에 그 여파만으로 가장 먼저 대상 주변의 모든 걸 집어삼켰다.
심혼진제가 파괴됐다.
관을 향해 기어가던 루네시카가 멍하니 뒤를 돌아봤다. 그녀의 몸 전체에 붉은 틈새가 생기며 빛이 뿜어졌다.
“……어?”
루네시카 안테르노아가 파멸했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
주검의 영광의 모든 걸 무너뜨린, 멸절의 번개가 된 <인테리스>가 드라벤 르마르크의 존재를 향해 쇄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