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3화 공멸 (2)
신앙은 마음에서 우러나오기에 육신이 부패해도 신성력은 여전하고.
마도는 정신을 근간으로 두고 있어 몸이 없어도 일부는 남아 있으며.
기운은 육체에서 비롯되지만 일정 경지에 도달한 전사의 내면엔 강인한 생명력이 단단히 뿌리를 내려 형태를 유지한다.
그렇다.
목숨을 잃어도 영혼이 남아 있으면 초월자의 힘은 잔존한다. 이야말로 아니무스가 드라벤에게 속삭인 진리이자 진실 중 하나였으니.
‘네놈의 생명부터 폐하겠다!’
사방에 모래알처럼 흩어진 명운의 마도의 흔적이 발광한다.
수천을 넘어 수만 개에 육박하는, 명확한 형체 없이 반투명한 검보라색 사슬이 한순간에 드라벤의 심장에 꽂혔다.
콰드득!
드라벤은 역수로 잡은 [모르베인]을 지면에 꽂고 그대로 질주했다.
초위 마법.
난명(亂命): <드라우 모르티스>
무수한 쇠사슬이 현현함과 동시에 일제히 하늘로 솟구치고는 각각의 사슬이 불규칙적으로 지상을 향해 날카롭게 휘어졌다.
범위는 대광역 내부의 약 8할.
회피 불가.
7위계 초월자가 주도하는 대륙 연합군의 수뇌부 한 축을 말 그대로 갈아 버렸었던 흑마법계의 정수가 적들의 하늘을 뒤덮는다.
스읍─
벤디에의 입술 사이로 사라진 바람이 실오라기 같은 소리를 냈다. 인드렌과 베르덴 앞에 선 그녀가 무기고를 완전히 개방했다.
수십 개에 달하는 무구의 형상이 주변 일대에 떠올랐다.
초월기.
무경武境
검을 휘두르면 태산이 양단되고, 창을 내지르면 바다가 꿰뚫린다. 절대적인 신념은 고고한 하늘마저 고개를 떨구게 한다.
만변(萬變)하는 세상 속에서 이상을 향한 의지는 변치 않으니, 그 손에 무엇이 들려 있든 오직 그녀만이 존엄할 뿐이다.
직검에서 창으로, 창에서 단검으로, 단검에서 곡도로, 곡도에서 칼날이 접합된 너클로, 너클에서 대검으로, 대검에서 메이스로, 메이스에서 할버드로, 할버드에서 레이피어로, 레이피어에서 날이 유려한 쌍검으로──
순식간에 몇 번이고 무기를 교체하며 서로 다른 무기술로 전방 72방위에서 쏟아지는 마도의 사슬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제자리에서 쳐 내고, 박살 내고 절단했다.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게 아니었다.
새로운 무구를 손에 쥘 때마다, 각 무기에 걸맞은 최적의 경로가 그려지면서 도구에 내재된 잠재력이 극한까지 개화했다.
천재가 비로소 검을 이해했을 때 그녀는 무구의 본의를 깨달았다. 낡은 철검조차 그녀가 쥐면 천하의 명검과도 같다.
무기술의 정점.
벤디에 카에나르는 자신만의 단련으로 초월의 경지를 넘어섰다.
카앙───────!
공간을 뒤덮었던 명운의 쇠사슬들이 그보다 훨씬 많은 파편으로 쪼개져, 마치 소나기가 내리듯 지상에 흩날렸다.
초위 마법, 파훼.
그걸로 그치지 않고 벤디에는 전신의 모든 기를 집중해 투사했다. 수십 개의 무구가 드라벤을 향해서 투석기처럼 쇄도했다.
드라벤은 동체 시력을 최대로 높였다.
한쪽 귀가 날아가고, 허벅지가 파열되고, 옆구리 좌측이 관통되고, 오른팔이 으깨지고, 곳곳의 살점이 뜯겨 나갔다.
오직 옛 왕의 신체만이 무사했다.
직선으로 쏟아진 무구의 비를 헤쳐 나온 드라벤이 성자의 영혼을 이용해 초월적인 신성력을 끌어모아 마검에 실었다.
“절규하라.”
마검 [모르베인]의 마지막 세 번째 시동어를 외며 신의 기적을 펼쳤다.
<심판: 처단>
성검의 역할을 대신한 마검의 참격에서 눈부신 명암이 폭발했다. 이에 맞서 벤디에가 자신의 체격을 웃도는 거검으로 참격을 날렸다.
검명이 서로를 휘감았다.
촤아아아악!
한쪽 안구가 갈라지는 대가로 벤디에의 옆구리를 베며 격퇴했다. 신성 마도의 검기가 대광역의 폭풍에 부딪혀 굉음을 터뜨렸다.
드라벤이 강하게 지면을 박차 죽어 버린 속도를 되살렸다. 벤디에를 지나치자 드라벤의 앞을 막아선 것은 베르덴이었다.
실재의 말살.
<무암(無暗)>
한 차례 점으로 응축된 소멸의 개념이 제어에서 벗어났다.
이글거리는 어둠이 솟구치며 신의 기적의 빛을 지워 없애고, 드라벤을 둘러싼 세계를 불태울 듯이 세차게 물결쳤다.
동시에 <인테리스 대광역>에서 두 번째로 무차별 낙뢰 폭격이 떨어졌다. 인드렌에게도, 벤디에에게도, 드라벤에게도.
‘암월의 초위 마법에 검붉은 전격. 사환의 마도를 활용할 여유는 없다.’
드라벤은 자살로 망가진 몸을 수복하지 못하고 마력회로를 채찍질했다. 한계 위계 돌파. 그도 암월의 꿈을 꾸었던 마법사였다.
압력에 으깨지는 치아.
반토레온의 전격을 왼팔에 두른 드라벤이 함성을 내질렀다.
패자의 권앙(權仰).
옛 왕의 왼다리와 왼팔로 펼친 대제의 초월기가 흑염의 파도와 격돌했다.
심지어 권격의 충격파는 반토레온의 뇌명과 함께 퍼져 하늘에서 떨어지는 파멸의 낙뢰가 육체에 닿는 걸 차단했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
베르덴과 드라벤이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접전을 이루었다.
공간이 비틀려, 왜곡된다.
힘의 압력이 귓가를 스쳐 지나가는 모든 소리를 앗아 갔다. [인테리스]가 허공으로 날아가고, 옛 왕의 신체가 크게 떨렸다.
모든 초월의 궁극이 상쇄된 순간 무거운 정적이 찰나에 내려앉았다.
마침내 정면이 열렸다.
드라벤은 가장 성가신 초월자를 죽이기 위해서 다음 일격을 준비했으나, 영혼 발작이 일어나 체내의 혈관과 신경마저 뒤엉켰다.
끝내 하중을 채 견디지 못하고 금이 가 무너지는 기둥처럼…….
‘위대한 주검을 위해.’
드라벤은 전심으로 관절을 비틀어 [모르베인]을 내던졌다. 허공을 격한 칼날이 눈을 깜짝하기도 전에 목표물의 로브에 닿았다.
콰지지직!
인드렌의 복부에 마검이 꽂혔다.
살가죽을 가르고 장기를 관통한 것이다.
‘잡았다.’
드라벤은 기대했던 희열을 느꼈다가 이내 얼굴을 굳혔다.
‘잠깐. 내가, 왜 인드렌을……?’
인드렌이 준비하는 초위 마법을 경계하는 반응은 응당 옳지만, 그렇다고 해서 처리해야 하는 초월자의 우선순위가 바뀌진 않는다.
베르덴의 죽음이 일 순위다.
베르덴을 죽일 수 없다면 벤디에를 노리는 것이 이 순위다.
둘에 비해서 인드렌의 위험성은 떨어지니까.
그런데 방금의 공방에서 드라벤은 오직 인드렌의 존재에 신경이 팔렸다. 저 초위 마법을 막으려고 모든 힘을 쏟아부은 것이다.
“강건하나, 쉽게 무너지는 것이 균형. 초월자라고 해도 예외는 없지.”
인드렌은 입가에서 피를 흘리며 당황한 드라벤을 직시했다. 검에 몸이 꿰뚫렸음에도 인드렌의 다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조급함은 판단을 그르치게 만드는 법이네.”
인드렌을 중심으로 삼각형을 이루는, 마력으로 이루어진 세 개의 탑 위로 인드렌을 닮은 눈동자가 떠올라 있었다.
첫 번째 탑은 대상의 주의(注意)를 제어하고.
두 번째 탑은 대상의 힘을 억제하며.
세 번째 탑은 대상의 근원을 봉쇄한다.
드라벤이 초위 마법을 시전하기 전부터 인드렌은 초위 마법을 완성한 상태였다.
그중에서 첫 번째 탑의 눈이 가장 먼저 드라벤을 응시했고, 수세에 몰린 드라벤은 조급해지며 의지의 빈틈을 허용했다.
“이만 가시게.”
인드렌이 지팡이를 내리그었다.
쇄폐의 첨탑: <오벨리스크>
초위 마법이 온전한 힘을 발현하자, 이미 주의를 제어당한 드라벤은 육체와 정신이 자물쇠들에 걸리는 듯한 감각에 전율했다.
내면에 자리한, 셀 수 없이 많은 자물쇠가 빠르게 하나둘씩 잠기자 그를 따라서 마력과 마도에 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이건, 봉인……?!’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 한다.
마법의 영향력이 영혼까지 닿을 것 같은 직감에 황급히 물러섰으나, 드라벤의 뒤에는 극도의 살기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베르덴의 손날이 근섬유를 찢어발기고 드라벤의 어깨를 뚫었다. 분출하는 피는 망화에 타올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서늘한 푸른 마안이 만신창이인 드라벤의 전신을 비추었다.
‘손상이 심각하다.’
드라벤은 서둘러 사환의 마도를 발동하기 위해서 베르덴을 떨어뜨리려고, 놈의 마도에 대적할 수 있는 폐하의 신체를 앞세웠다.
일격이 맞닿기 직전이었다.
쩌적.
파멸과 소멸에 노출된 옛 왕의 왼팔에서 미세한 틈새가 생겼다.
검붉은 핏방울이 맺혔다.
‘뭐…….’
무엇으로도 감히 손상할 수 없는 위대한 주검의 신체에 상처가 생겼다. 루아스 교국조차 어쩌지 못해 봉인해야만 했었던 그 육체가.
죽음을 완전히 극복한 크세리온 폐하의 유일한 지고의 옥체가.
‘안 돼.’
드라벤은 반사적으로 팔을 뺐다.
폐하의 신체는 파괴 불능이라는 명제가 깨져 버린 탓이다. 드라벤은 자신의 목숨보다 폐하의 안위가 더 중요했기에.
그 탓에 몸이 열렸다.
콰드드드득!
베르덴의 거친 손아귀가 드라벤의 배를 파고들어 내부를 헤집었다. 손을 움켜쥐었다. 그에 닿은 장기 일부가 으깨지듯 파괴됐다.
“도주할 작정인가? 말했을 텐데.”
“큽…… 크허억…….”
“넌 여기서 죽는다고.”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베르덴의 마력회로에서 지금까지와는 격이 다른 파멸이 일어났다.
그림멜을 일격에 멸하려고 했으나, 반젤리스와 리반데일 대공의 합류로 인해 발동하지 못했던 초위 마법의 전조였다.
이에 반응한 대광역의 흐름이 한층 더 거세지며 영역을 위압했다.
철컥.
결국 인드렌에 의해서 마도 <사환>이 닫히고 말았다.
초위 마법이 끝나 가고 있다.
드라벤에 깃든 영혼들이 내면에서 시끄럽게 지껄인다.
‘닥쳐라.’
드라벤은 필사적으로 심장까지 파고드는 불길한 마력을 밀어냈다. 식은땀마저 증발해 버린 그의 녹색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져 갔다.
아니무스에 저장한 초월자들의 힘을 점차 쓸 수 없어진다. 부활할 수 없다. 몸은 넝마가 됐다. 자신의 영혼은 처참하게 망가져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시야가 흐릿해졌다.
‘패배, 인가? 또다시…….’
이대로는 베르덴의 범위에서 벗어날 방도가 전혀 없다. 발작하는 영혼. 드라벤을 지탱하던 생명의 불이 빠르게 꺼져 갔다.
그때였다.
───르마르크 선생님! 저도 선생님처럼 멋진 검사가 될 수 있을까요?
그리운 목소리가 떠올랐다.
* * *
기조차 깨우치지 못한 시골 검사에게 선생님은 과분한 호칭이었다. 그를 보며 검사의 꿈을 키우는 마음도 시골 검사에게는 과분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드라벤을 존경하며 제자를 자처했다.
그게 행복이란 걸까.
드라벤은 자신보다 제자들의 목숨을 우선하겠다 내심 다짐했다.
보잘것없는 시골 검사 따위보다 가능성이 무한한 앞날이 펼쳐진 그들의 삶이 더 보람찰 것이고, 소중할 것이기에.
……애석하게도 그 다짐은 지키지 못했다.
초월자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의 전운에 대륙에서는 전쟁이 점차 흔해졌다. 영지전이 벌어져 약탈도 빈번해졌다.
변두리의 자그마한 마을은 사나운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드라벤이 없었을 때 아이들은 전부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혼자 남은 선생이 해 줄 수 있는 건 무덤을 만드는 것뿐이었다.
마음은 참담했지만, 그래도 빛을 신앙했고, 모두 심성이 착했으니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루아스 신의 곁으로 갔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열렬히 기도했다.
신앙했다.
한때는 루아스를.
그러나 아니무스가 보여 준 현실은 바람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루아스 신의 곁으로 갔어야 할 아이들의 영혼은 오히려 죽고 난 뒤 마치 죄인처럼 고통의 구렁텅이로 떨어졌다.
아이들의 일그러진 영혼과 끝나지 않는 비명은 도저히 잊을 수 없었다.
그것이 세상의 내막이었다.
오직 인류를 위한 빛의 교리는 애초부터 새빨간 거짓이었다. 그들의 순진한 믿음과 기도는 보답받지 못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크세리온 폐하께서 부활하지 않으시는 한.’
콱.
드라벤은 영혼을 쥐어짜 베르덴의 손목을 붙잡고 숨을 들이켰다. 베르덴은 절대적인 육체를 손상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
동반 자살을 해서라도 폐하를 위해 반드시 죽여야 할 의무가 있다.
“……이 세계에는, 절대로 발설하지 말아야 할 정보가 있다. 세계 회의에서 아세트로 올딘이, 라인델 넥스레온에게, 질문한 ‘금기’란 것……. 하여, 나는, 폐하에게도, 루네시카에게도, 언급할 수 없었다.”
드라벤은 선택을 내렸다.
“설마, 내가 먼저 진실을 밝히는 게, 네놈들이 될 줄이야.”
기류가 뒤바뀐다.
쩌억!
베르덴은 심상치 않은 조짐을 감지하고 드라벤의 성대를 파괴했다. 파멸과 함께 파고든 손가락에 목이 반쯤 궤멸했다.
한데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루아스의 곁으로 가는 것을, 천국. 그렇지 못한, 것을 지옥이라고 하지. 빛의 교리를 통해 그렇게 널리 알려졌으나, 실제는 다르다. 아무리, 아무리 더러움을 씻어 낸다 한들─── ”
드라벤은 육신이 아니라 영혼을 통해서 800년이 넘도록 입에 담은 적이 없었던 영혼에 대한 진실을 고백했다.
“인간은, 천국에 갈 수 없다.”
빛의 교리가 정의한 사후를 믿지 않기에 천국과 지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줄곧 있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무지와 추측에서 비롯된 주장이었다.
지식이란 곧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
지식에는 힘이 있다.
알고 말하는 것과 모르고 지껄이는 것의 차이는 천지 차이. 드라벤이 내뱉은 그것은 배교자들의 말과 본질적으로 달랐다.
사방이 적막에 잠겼다.
베르덴은 익숙한 오싹함에 눈을 부릅뜨며 현상을 관조했다.
‘이건…… 금기 위반.’
몇 번이고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불길한 감각이 존재를 훑었다.
그런데 이 상황은 평소와 뭔가 좀 달랐다.
위험하다.
잿빛의 드래곤이 금기를 어겼을 때보다 약하지만 비슷한 위기감이다! 파멸을 외부로 돌린 베르덴이 다가올 뭔가에 대비했다.
그 순간.
<인테리스 대광역>이 붕괴하며 외부에서 존재에 어떠한 힘이 가해졌다. 금기를 들은 네 명의 초월자가 전부 대상이었다.
“이게, 무슨……?”
인드렌과 벤디에는 낯설고 섬뜩한 기분에 갈피를 잡지 못했다.
당혹감이 얼굴에 드러났다.
“베르덴, 넌, 내 예측을, 현저히 초월했다.”
드라벤은 피눈물을 흘렸다.
“그러니, 나와 공멸(共滅)하자.”
푸화아아악!
드라벤이 죽은 피를 쏟아 낸 직후 인드렌, 벤디에, 베르덴도 토혈했다. 눈과 귀에서 큰 출혈이 발생해 그들의 무릎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쿠웅!
베르덴은 [인테리스]를 회수해 땅에 닿을 뻔했던 무릎을 지탱했다.
* * *
쓰러져야 했을 베르덴이 멀쩡하게 살아 있다.
바닥에 쓰러진 드라벤이 멍하니 있다가 곧바로 주변을 둘러봤다. 인드렌과 벤디에는 고통스러워만 할 뿐 목숨에 지장이 없었다.
“아무도 죽지 않았다고……? 게다가 나조차.”
금기를 이해했을 당시에 초월자라고 해도 즉사할 거라고 판단했다.
그렇기에 수백 년 동안 혼자서 입을 다물었건만.
스윽.
베르덴은 피눈물을 훔쳤다.
───반동이 생각보다 적군. 눈 하나는 줘야 할 줄 알았는데. 네가 경청자이니 금기의 강제력도 약해진 것인가. 아주 흥미로워.
이는 ‘죽음은 수단이다’라는 말로 금기의 경계를 건드린 다크워튼 마탑주가 피를 닦으며 내린 개인의 감상이었다.
‘내 존재가 금기의 대가를 약화시킨다…… 인가.’
명확한 인과는 모른다.
인간은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금기가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도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자살을 각오한 드라벤의 마지막 발악이 무위로 돌아갔다는 사실은 이해했다. 숨을 가다듬어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승자와 패자가 정해졌다.
다만 이곳에서의 승패는 일부에 불과했다.
스하아아악───
옛 왕의 왼팔과 왼다리에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사기가 흘러나와, 루네시카가 있는 방향으로 흐름을 형성했다.
부활이 임박했다.
“잘했다, 루네시카……!!”
투확!
드라벤은 강제로 끌려 나가듯 통로가 있는 곳으로 쏘아져 나갔다. 옛 왕의 신체가 본체가 있는 제단으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베르덴이 중얼거렸다.
“역시 근본까지 없애야겠군.”
베르덴이 통신 장치를 조작해 아드리안과 것과 연결했다. 대광역이 사라졌고, 서로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기에 통신이 이어졌다.
───주군, 현재…….
“최대한 저항력을 끌어올려라.”
아드리안이 당장 어떤 상황에 직면했는진 중요치 않다. 살아 있으니까. 어디까지나 마무리는 베르덴이 지을 생각이었다.
“전부 지워 버릴 테니.”
첫 번째 하인, 드라벤 르마르크도.
두 번째 하인, 루네시카 안테르노아도.
옛 왕의 신체 조각 여섯 개도.
흔적도 없이 파괴하면 끝난다.
드라벤에게는 저항할 수단이 남아 있지 않으니 더 이상 거리낄 게 없다. 옛 왕의 몸을 파괴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모든 힘을 쏟아부어도 그 뒤를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베르덴이 역수로 [인테리스]를 잡아 머리 위로 들었다.
마도의 위계 돌파.
8위계의 경지가 다시 한번 현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