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938

938화 옛 왕 (3)

머리가 어지럽다.
이명이 들린다.
전신이 터질 것처럼 뜨겁다.

심장이 수십, 수백, 수천 개라도 된 것처럼 많은 박동 소리가 내면을 채웠다. 육체의 생명력이 서서히 증폭하고 있다.
긴장감을 유지하며 억제되었던 피로감이 일순간 모든 신경을 휘감았다.

베르덴이 비틀거리다가 곧장 한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중심을 잃고 기울어진 <인테리스>가 떨어져 금속음을 냈다.

‘뭐냐, 이건.’

당장이라도 의식을 잃을 정도로 정신계가 격하게 흔들렸다.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눈앞에 비친 사물이 여러 개로 나뉘어 보였다.
손끝에 실린 힘이 지하 미궁의 바닥을 으깨듯이 파고들었다.

탈진감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한데 모순적으로 낯선 충만감도 느껴졌다.

벽안이 세상이 아닌 베르덴의 내면을 비추었다.

심장에서 깊이를 측량할 수 없는 무한한 마력의 바다가 파도친다. 언제나처럼 푸르고 투명했으며, 그 아래에는 심해가 자리 잡은 광경이다.
그때 심해에서 올라온 불가해한 어둠이 바다의 절반을 물들인다.

푸른 마력의 바다.
검붉은 마력의 바다.

두 바다가 공존하는 세상이 물결친다.

“……!!……!!!!”

베르덴은 바닥을 짚은 채 다른 한 손으로 이마를 붙잡았다.
식은땀이 멈추지 않았다.

역천의 마법진이 홍채에 새겨진 마안은 파멸에 잠식되었고, 왼쪽 벽안은 강하게 명멸하며 무한에 동화되었다.
그에게서 푸른 눈동자와 검붉은 눈동자가 동시에 발현됐다.

“──군!”

동공이 지진이 난 것처럼 요동쳤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무엇이든 파괴할 수 있을 것 같은.

베르덴은 초월자로 각성했을 당시와는 격이 다른 전능감(全能感)을 느꼈다.

“주군!”

옆쪽에서 들려온 아드리안의 목소리에 베르덴이 흠칫했다. 겨우 현실을 인식한 그가 빠르게 호흡하며 고개를 들었다.

“주군, 괜찮으십니까?!”

아드리안은 리산드로의 열매 포션으로도 곧바로 회복하지 못하는 중상을 입은 채 베르덴이 쓰러지지 않도록 받치고 있었다.
베르덴이 발산하는 체온에 근처 기온이 급변하며 기류가 형성됐다.

‘감각이…… 교란됐다.’

언제 아드리안이 곁에 다가왔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처음이다. 이런 적은.
당혹스럽다. 지금 억지로 불잡고 있는 신경줄을 놓으면 눈앞에 있는 것조차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베르덴은 대답하기도 어려워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의 시선이 옛 왕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데우스, 위덴.’

섭리자와 옛 왕이 대치했다.

섭리자의 개입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생각하는 한편, 베르덴은 어금니를 부러질 듯 깨물며 가슴팍을 부여잡았다.

두근.

심장이 다시 거세게 뛴다.
동시에 베르덴의 존재 자체에서 순수한 욕망이 맥동했다.

주체할 수 없는…… 극렬한 파괴 충동이.

* * *

레프라기움 마탑주의 등장은 다른 이들로 하여금 놀라움을 자아내게 했다.
레프라기움 마탑은 애초에 용검 탐색에 참여하지 않은 세력일뿐더러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신비주의를 고수하고 있었으니까.

‘공식적인 현대 마법계의 정점…….’

벤디에는 섭리자의 존재를 의식하면서도 옛 왕을 주시했다. 그녀가 쥔 [모르베인]에는 옛 왕의 혈흔이 묻어 있다.
괴이한 저항력 탓에 옛 왕의 신체 자체를 베는 건 어려웠으나, 베르덴의 마도에 의해 난 균열을 헤집는 정도는 가능했다.

‘그야말로 선택받은 신체. 옛 왕이 완전한 전력을 회복하면 감당하기 어려워.’

수를 맞대 보니 체감할 수 있다.

벤디에는 주검의 영광에 대해서 진즉부터 알고 있었지만.
루아스 교국이 어째서 옛 왕이란 존재를 그리도 경계하고, 수백 년 동안 감춰 정보 자체를 말살하려 했는지 이제야 비로소 이해했다.

‘온전하지 않은 지금 처리해야 한다.’

섭리자가 가세해 왔으니 전력의 균형은 이쪽으로 기울었다. 기를 다듬었다. 얕은 검기로는 생채기조차 나지 않으니, 검격 하나하나에 검의를 담아야 상처를 넓힐 수 있다.

정적 속에 긴장감이 감돈다.

섭리자는 이내 옛 왕과 서른 발자국 남짓 떨어진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서로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전원, 지상으로 올라가라.”
“……?!”

난데없이 물러나라는 말에 모두가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레그리트가 미간을 좁혔다.

“그게 무슨 소리지? 후퇴하라고?”
“들은 대로다.”
“레프라기움 마탑주, 설명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움직일 수 없네.”
“교전의 승패는 정해졌다.”

섭리자가 단언했다.

“승리를 쟁취한 이상 너희들이 여기서 더 얻을 수 있는 건 없으니, 여기에 계속 남아 있어 봤자 무의미할 뿐이다.”
“승리? 저희가……?”
“하하하하하하하.”

레온하르트가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 의아해하는 순간, 갑작스러운 옛 왕의 웃음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성검을 세웠다.

쿠웅!

옛 왕이 자세를 풀고, 팔을 휘둘러 용검을 땅에 꽂았다.

“이번엔 그렇게 되겠군.”

대지의 축이 들썩였다.
공동만이 아니다.
섬의 지하 미궁 자체가 흔들릴 정도의 대지진이 엄습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

구덩이 끝에 무수한 손이 불규칙적으로 걸리더니 미라들이 기어 올라왔다.
미라 기사들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탐사대들의 조사를 방해했던 존재들과 같은 뿌리를 둔 개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끼아아아아아아아아!]

순식간에 나타난 무수한 미라들이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돌진하기 시작했다. 개체의 힘은 별 볼 일 없는 수준이었으나 범상치 않은 숫자.
하물며 옛 왕이 소환한 걸로 보이는 괴물들이니 방심할 이유가 없었다.

적습에 대응하려고 하자 좌측에서 막대한 기운이 밀려들었다. 인드렌은 서둘러 마력을 조작해 기절한 카스티안을 먼저 챙겼다.
초월자들이 즉각 자리를 벗어났다.

극한까지 당겨진 권(拳).
대지를 짓밟아 부수는 각력.

“누구 보고 물러나라는 거냐.”

붕괴의 유린.

무전 – 암파성(岩破城)

가레스의 초월기가 그대로 지면에 내리꽂히면서 공동이 출렁거렸다. 곡선으로 파도친 땅이 곧 늘어난 부피를 견디지 못하고 깨져 버리자 날카로운 대지의 송곳들이 일대를 뒤덮었다.

콰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작!

최전선에서 달려오던 미라들이 여지없이 붕괴에 휩쓸렸다. 안 그래도 밀도가 높았던 무리가 고스란히 충격을 받아 전멸했다.
위로 치솟은 쐐기의 지옥에 관통당한 그것들이 공동을 장식했다.

“다음 초월기는 네 아가리에 꽂아 주마.”

우그러진 갑옷을 부숴 버린 가레스가 옛 왕에게 살기를 향했다. 옛 왕의 입을 뭉개 버리기 전까지는 등을 보일 생각이 없다는 듯.

쿠우우웅!

공동의 천장에서 미궁의 구조물을 이루는 거대한 파편이 떨어졌다. 공동은 베르덴의 초위 마법에 의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였다.
케케묵은 먼지와 돌조각, 그리고 파편이 진동의 규모에 따라서 연이어 추락한다.

레온하르트가 움찔거렸지만 누구도 철수하려고 하지 않았다. 일대가 무너지는 정도로 죽지 않으니, 그보다 추후에 반드시 위험이 될 옛 왕을 죽이는 게 우선이었다.

‘음? 잠깐, 이 지진…….’

이제 보니 취약한 지반에 계속 충격이 가해져서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니다.
옛 왕에 의해서도 아니고.
가레스에 의해서도 아니다.
다른 무언가가 원인으로 섬의 지하가 뒤흔들리고 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이들이 반사적으로 진원지를 파악하려는 도중이었다.

벤디에의 의념이 섭리자에게 전해졌다.

───옛 왕을 처단할 거라면 조력하죠.

섭리자는 짧게 답했다.

───더 얻을 수 있는 건 없다고 말했을 텐데.

───그런데도 당신은 당장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이네요. 단순히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서 여기까지 온 건 아닐 텐데.

그녀는 눈을 가늘게 떴다.

───옛 왕에게 무슨 볼일이죠?

벤디에 카에나르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옛 왕과 섭리자 사이에 감도는 묘한 분위기를 어렴풋이 감지했다.

섭리자는 침묵하며 옛 왕을 마주했다.
옛 왕은 전의를 거둔 채 검을 들지 않고 섭리자를 응시했다.

틈이 모호하다.

섭리자가 가만히 있으니 먼저 움직이기에 석연치 않았다. 옛 왕과 대치하는 이 상황을 강제로 흔들자니 제대로 파고들 각이 없었다.

섭리자가 서 있는 자리가 알게 모르게 옛 왕에게 이어지는 경로를 제한했다. 8위계의 경지가, 그 알 수 없는 의도를 뒷받침해 다른 사람이 섣불리 행동하지 못하도록 했다.

[아아아아아아아아……!]

절벽에서 다시 미라들이 기어 올라온다.

어떤 판단이 최선일까.

공동이 시시각각 무너지고 있는 와중에도 찰나의 망설임이 이어진다. 경험이 부족한 레온하르트의 턱 끝에 식은땀이 맺힌 순간이었다.

두근.

심장의 고동 소리가 울렸다.

뇌리가 번쩍이듯 옛 왕, 섭리자, 벤디에의 신경에 벼락이 쳤다. 모든 감각이 절로 극대화됐다. 직후에 인드렌, 아드리안, 가레스, 레그리트, 레온하르트도 같은 현상을 경험했다.
미라들이 정지했다.
그레고르반 추기경은 그 자리에서 정신이 날아가 쓰러졌다.

공기가 극도로 무거워졌다.

“──────!”

베르덴이 얼굴을 부여잡은 채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비명보다 절규에 가까웠다. 아니, 비명보다 환희의 외침에 가까웠다. 아니, 외침보다는 광포한 포효에 가까웠다.
그들은 베르덴의 목소리에서 저마다 다른 감정을 느꼈다.

“주군……! 큽!!”

파멸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아드리안은 미처 다가가지 못한 채 조금 멀리서 버틸 뿐이었다. 광검을 회수해 땅에 박았다. 감당하기 힘든 위압감에 숨이 막혔다.

섭리자가 손을 움찔거렸다.

‘잠시도 억제하지 못했나. 예상은 했지만, 8위계 각성의 과정 자체가 다르군. 위계의 상승만 관련된 게 아니라 복합적이기도 하지만…….’

섭리자가 임시 조치로 구현한, 마도를 억누르는 투명한 장막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완전히 파괴됐다.

‘순수한 개념의 잠재력이 차원이 다르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베르덴의 오른손으로 폭풍이 몰려들며 파멸의 정수가 맺혔다.
지고한 이성은 변화에 변화가 겹치며 당장 미쳐 날뛰는 육체를 제어하지 못했다. 대신 본성이 마도와 행동을 지배했다.

<대멸절(大滅絶)>

베르덴은 거대한 함성과 함께 대상을 지정하지 않고 오른손을 내질렀다. 본능으로 이루어진 초위 마법이 대지를 관통했다.

쩍.

옛 왕이 부활한 공동에 무수한, 검붉은 틈새가 떠올랐다.
지하 미궁에 수많은 균열이 생겼다.
그를 넘어 히아레마르 내해의 섬 전역이 불길한 전조에 휩싸였다.

섬의 핵심이 파멸했다.

마도 <천리(天理)>

섭리자가 허공을 긋자 백색의 선이 미궁 전체로 뻗어 나갔다. 섬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은 그를 보고 지상으로 나갈 수 있으리라.

“섬에서 탈출해라.”

섭리자가 8위계의 격을 드러냈다.

“지금 당장.”
“인드렌, 그 모험가를 부탁하지.”

파멸의 마력이 잦아드는 순간에 아드리안이 즉시 베르덴을 둘러업고 질주했다. 베르덴은 거의 기절한 상태였다.

“……먼저 가겠습니다.”

섬의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벤디에도 결국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섬에는 공동에 있는 초월자만 있는 게 아니다.

“시발…….”

가레스 또한 말이다.

“어서 가세!”
“아, 네!”

인드렌은 서둘러 카스티안을 데리고 <비행>했고, 레온하르트는 성서와 그레고르반 추기경을 챙기고는 땅을 박찼다.

“너는 여기에 남을 건가?”
“알아서 나가겠다.”

옛 왕은 그저 서 있었다.
섭리자는 혼란 속에서도 옛 왕을 응시했다.

생각해 둔 게 있으리라.
레프라기움 마탑의 주인이니.

고개를 끄덕인 레그리트는 날아오르려다가…… 냉큼 기절한 루네시카 안테르노아의 뒷덜미를 잡고 공동을 빠져나갔다.

쿠구구구궁! 쿠우우웅!

섬의 붕괴가 가속화되었다.
바위가 떨어졌다.
공동에서 나가는 통로가 막혔다.

그렇게 밀폐된 공간에는 오직 두 존재만이 남게 되었다.

“저 파괴적인 힘…… 느껴 본 적 없는 전운(戰雲)이군.”

옛 왕이 말했다.

“그렇지 않나, 최후의 저항자를 따르는 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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