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9화 옛 왕 (4)
옛 왕의 명령에 의존하는 미라들이 통제를 잃고 발광한다. 이 섬의 근원을 파괴시킨 개념을 피하려고 생존을 갈구했다.
가레스의 초월기에 미라는 어느 정도 부서지기만 할 뿐 죽지는 않으나, 베르덴의 마도는 그들의 소중한 운명을 끊을 수 있다.
“전운이라.”
섭리자───데우스가 말했다.
“너희에게는 암운(暗雲)이겠지.”
“소나기는 소나기일 뿐.”
옛 왕───아칸드가 대답했다.
“폭우가 된다고 할지언정 어찌 드높은 하늘을 가라앉힐까.”
지하 미궁의 크고 작은 잔해가 추락하며 바닥이 으깨진다. <멸절>에 의해 생겨난 크레이터의 절벽이 위태롭게 갈라졌다.
아칸드 옆에 비스듬하게 박힌 용검 마그라스가 조금 더 기울었다.
“하나, 운명 파괴자가 보여 준 위세는 첫 번째 사도가 속삭인 것보다도 경이로웠다.”
신체적 재능이 미개한 일개 인간 따위가 운명을 거부했다. 운명의 수레바퀴를 부수고 스스로 선택의 권리를 쟁취했다.
하물며 초월을 손에 넣고, 그보다 더 높은 존재의 경지에 임박했다. 운명이 창조된 세월에 비해 찰나에 불과한 그 짧은 시간 동안.
“어째서 ‘당신’께서 수중에 넣으려고 하시는지 이해가 가더군. ‘당신’의 개념과 운명 파괴자의 개념. 그가 비로소 운명의 이유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서로 반대되는 힘이 합일하여 유일무이한 절대적인 개념이 완성되겠지.”
“망상을.”
“운명을 거부하는 자가 예단하는가.”
아칸드는 낮게 웃었다.
“운명 파괴자의 행보가 저항자에 아주 가깝기는 하지만, 저항자의 세력에 속한 적은 없을 텐데. 그가 저항자의 진의를 애써 이해할지도 의문이고. 너희의 그림자도 깊지 않나.”
아칸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새로운 금기로 은폐해야 할 만큼.”
최후의 저항자가 제정한 금기 탓에 여러 정보의 공유가 불가능해지면서, 언젠가는 재개될 운명전을 대비해 계획한 최후의 저항자의 수를 파악한 존재는 사도 중에서도 극히 일부밖에 없다.
8세기 만에 부활한 아칸드는 당연히 알지 못했고.
첫 번째 사도는 말하지 못했다.
그저 정신이 나갔다는 극도의 비난 외에는…….
억지로 들을 수는 없다.
해당 금기를 위반하면 최후의 저항자가 선사하는 금기 저촉의 대가를 치러야 하니까. 운명의 사도라고 해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최후의 저항자를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당신’뿐이므로.
다만.
아르카디옴의 호스트이자 세 번째 사도인 그라면 금기의 제한을 조건부로 해제할 수 있으나…… 그에게서 지식을 얻으려면 세의 심해에서 개최되는 만찬회에 초대받아야 하며, 아르카디옴의 게임에서 승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식에 대한 욕망.
세 번째 사도는 ‘당신’이든 최후의 저항자든 간에 중요한 판세를 뒤흔들 만한 지식을 절대로 무상으로 제공하지 않는다. 사도의 직함을 받았으나 개인적인 태도를 고집할 수 있는 존재다.
그가 ‘당신’에게 이렇게 남다른 배려를 받는 것은 운명의 수레바퀴를 구축하는 데 있어 혁혁한 공훈을 세웠기 때문이다.
“미쳐 버린 저항자. 대체 무엇을 하려고 하기에 사도들이 그리 평가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내게 중요한 것은 ‘당신’께서 부여하신 사명의 이행이다.”
“나 또한 내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할 뿐이다.”
데우스의 녹색 안광이 스산하게 빛났다.
“결국 운명은 폐기된다.”
“그 의지.”
아칸드가 용검 마그라스를 뽑아 들어 섭리자를 겨누었다.
“전쟁에서 증명하라.”
베르덴의 개입으로 인해 아칸드의 행동에 한동안 제약이 걸리긴 하겠지만, 주검의 영광은 8세기 동안 아칸드의 부활만 준비한 게 아니다.
크세리온 제국이 다시 군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전력’을 확보했다. 그들은 아칸드를 대신하여 전쟁의 기반을 다질 것이다.
“운명과 저항. 과연 운명 파괴자는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 개인적으로는 운명전의 휴전이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만 선택을 유보해 부디 나의 반대편에 서길 바라고 있다.”
“…….”
“나도, 아직 ‘신’과 전쟁을 치른 적은 없으니.”
공간이 흔들렸다.
“관조하는 존재가 도착했군.”
데우스와 아칸드의 의식이 같은 곳을 향했다. 곧 어둠 속에서 대자연으로 빚어진 듯한 엘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영혼 금기의 침범을 확인했으나 위반자는 사망. 관조하는 존재로서, 하여 위반자가 미처 치르지 못한 대가는 위반자의 영혼을 통해 부활한 관계자에게 부과하겠습니다.”
세계수의 뿌리가 드리웠다.
부활하자마자 옛 왕의 기를 억누르고 있던 힘이 더 강해졌다.
아칸드의 전신 근육이 불거졌다.
“‘당신’의 여섯 번째 사도, 아칸드 리니게아 타인 크세리온. 그대의 부활은 ‘지연’되는 것으로 판정하여 일시적인 봉인을 집행합니다.”
“드라벤이 주제에 맞지 않는 선택을 내린 덕분에 너희에게는 잠시 유예 기간이 생겼군. ‘분열’하고, 서로 ‘대립’하는 대륙을 어떻게 규합하여 나의 제국에 맞설 것인지, 기대하고 있도록 하겠다.”
용검이 예리하게 빛났다.
“그러나.”
무적에 가까운 투기(鬪氣)가 용솟음친다.
“적장을 앞에 두고도 순순히 물러나는 건 전쟁의 이치에 맞지 않지.”
이에 섭리를 다스리는 마력이 타올랐다.
“동감이다.”
교차하는 적의.
세계수의 뿌리들이 들이닥치는 순간 아칸드의 용검이 횡을 갈랐고, 데우스의 고유 마법이 인과를 뒤집었다.
서로의 일격이 직접 닿지도 않았는데도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섬광이 폭발했다.
* * *
7대 마도왕과 다크워튼 마탑주가 이룩한 경지는 범상치 않았지만, 둘은 직접 자신의 경지 자체를 밝힌 적은 없었다.
그런 이유로 8위계 초월자로 공식적으로 알려진 레프라기움 마탑주의 위상이 더 높았고, 그런 인식이 오래전부터 박혀 있었다.
레프라기움 마탑은 종합과 무력 둘 다에서 서열 1위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전 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을 권역으로 삼았다는 단서 이외에는 이렇다 할 정보가 거의 없었다.
마탑의 형태조차 밝혀진 바가 없다.
지독한 신비주의는 레프라기움 마탑의 명성을 특별하게 꾸몄고, 다른 마탑보다 범접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심어 주었다.
그래서였다.
섭리자의 언변에는 거부하기 어려운 강력한 힘이 있었다. 그가 어떠한 행동을 취했을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됐다.
레프라기움 마탑의 분명하지 않은 행보가 도리어 믿음을 주는 셈이었다.
“…….”
벤디에는 이미 뒤로한 섭리자와 옛 왕의 공동에 잠시 시선을 두었다.
그녀의 판단이 매번 옳다곤 할 수 없으나 저곳에 남아 봤자 섭리자가 말대로 뭔가를 얻을 수는 없었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옛 왕은 죽일 수 없다.
적어도 지금은.
섭리자가 물러나라고 한 데에는 그런 뜻이 있지 않았을까.
지하 미궁의 미라는 아무리 베어도 어느 정도만 절단되고 죽지 않는다. 불사의 의식을 치른 옛 왕이 그보다 더한 불사성을 가졌다면 벤디에의 무기술도 결국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단순한 추측으로 그칠 게 아니라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게 특히 문제였다.
그리고…….
‘섭리자는 옛 왕에게 용건이 있어 보였다. 게다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섭리자를 대하는 옛 왕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어. 올 걸 알았다는 듯. 시대가 다르니 서로 안면이 있을 리 없을 터인데.’
여러 의문이 피어났다.
나중에 고찰할 생각들이었다.
‘아무튼 섭리자가 혼자 남았다는 건 옛 왕을 막을 방법이 있다는 의미겠지. 옛 왕을 다시 봉인할 비장의 수단이 있는 걸지도.’
혹시라도 섭리자와 옛 왕이 한패라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섭리자는 옛 왕에게 상처를 남긴, 옛 왕의 불사성을 무시한 베르덴을 돕는 듯한 기색을 보였으니까.
아니, 실제로 도왔다.
타다다다다다다다닥.
베르덴은 의식을 거의 상실했는지 아드리안에게 업혀 있었다. 통로를 질주했다. 벤디에가 즉각 지면을 박차 [모르베인]을 휘둘렀다.
“통곡하라.”
드라벤의 마도가 아닌 벤디에의 기운에서 비롯된 음험한 기운이 검기를 이룬다.
아티팩트의 시동.
그녀는 드라벤의 마검을 제 것처럼 다루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
미궁의 무너진 틈새와 통로 반대편에서 쏟아지는 미라들의 허리가 절단되었다.
그렇게 미라의 파도를 무너뜨렸는데도 곧 다음 파도가 쇄도했다. 수백, 수천…… 아니, 기척으로 보면 수만, 그 이상이었다.
촤자자자자자작!
벤디에를 선두로 미라들을 처리하며 나아갔지만 숫자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방을 뒤덮은 검붉은 틈새가 조금 더 벌어졌다.
저 균열이 끝까지 확장하면 어떻게 될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천장과 벽에서 저항력이 높은 잔해들이 떨어지며 가속했다. 미궁을 완전히 주파해서 나가려면 절대 쉽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지름길은 있다.
조금 전까지 드라벤과 교전을 벌였었던 장소에 도착했다. 섭리자가 구현한 백색의 실이 하늘 위로 이어졌다.
천공에서 떨어져 지상과 지하를 수직으로 관통한 현뢰의 흔적. 베르덴이 의도치 않게 만든 아주 거대한 탈출로였다.
“내가 발판을 만들겠네!”
마도를 개방한 인드렌이 모두의 발밑에 마력의 원판을 구축했다.
여기저기 금이 가 있는, 지하 미궁처럼 위태로운 마력의 구성체였다. 파멸의 여파에 연이어 노출되다 보니 마력회로가 심히 불안정했다.
그래도 베르덴이 준 포션 덕에 마검에 관통당한 복부에서 큰 출혈은 더 발생하지 않았다.
“충격이 강할 테니 주의하도록 하게!”
레온하르트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넵!”
후우우우웅!
모두 인원을 태운 마력 원판이 솟구쳤다.
상당한 압력이 어깨를 짓눌렀다.
재빠르게 미궁의 밑바닥에서 벗어났다. 케이크를 반으로 자른 것처럼 여러 층의 단면이 시야와 감각에 들어왔다.
“음?!”
인드렌이 발판을 정지했다.
일부 층에서 수직 통로를 중심으로 하여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아직 미궁에 남은 탐사대들이 미친 듯이 몰려드는 미라를 상대하고 있었다.
미궁의 최하층에 비교적 가까운 통로에서 익숙한 존재감이 감지됐다.
“어이, 프리발트! 여기다!”
“……! 레그리트.”
“베르덴 폐하!”
검성 프리발트가 파동검으로 미라들을 밀어내곤 제국 탐사대를 후방으로 물렸다. 그들과 함께 싸우고 있던 알더니스와 그레이브가 에온의 탐사대의 전선을 후퇴시켰다.
그레이브와 알더니스가 베르덴과 아드리안의 몸 상태를 보고 경악했다.
“아, 아드리안 님, 이 아래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아드리안의 호흡은 무거웠다.
“설명하자면 길다. 올라타라. 이곳에서 탈출한다.”
쿠구구구구구구구!
섬이 격동했다.
균열 일부가 터졌다. 마치 화산의 용암이 분출한 듯 검붉은 마력이 통로를 덮쳤다. 그에 휩쓸린 미라의 군체가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감히 형용할 수 없는 마력 위압감에 마법사들이 뒷걸음치거나 주저앉았다.
“큭……!!”
실시간으로 미궁이 조각난다. 프리발트의 낯빛이 크게 변했다. 이렇게 파괴적인 파동은 다시 태어나도 느끼지 못할 터였다.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현 상황을 이해했다.
섬에 있으면 반드시 죽는다.
화아아아아악!
제국과 에온을 당장 태운 인드렌이 재차 지상을 목표로 마력을 움직였다.
그때 상층부에서 수천 마리의 미라들이 저들끼리 밀며 낙하했다. 멀리 보이는 하늘이 미라의 그림자에 뒤덮였다.
“같잖은 시체들이!”
가레스가 연환의 태세를 취하는 순간에 추락하는 미라와 원한 사이에 있는 통로의 단면 중 하나에서 강렬한 창격이 끼어들었다.
폭풍에 쓸려 나간 미라들이 발판까지 닿지 못하고 다른 통로로 나가떨어졌다.
“마침 올라갈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서약자를 모시는 격진의 레오나가 위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그녀는 평소 냉소적이나 서약자와 동급인 초월자들에게는 깍듯했다.
“저희도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관제시여.”
“…….”
본래 초월자가 탐색에 참여하는 것은 합의되지 않은 일이었고, 그래서 모두가 저마다의 루트로 섬에 진입했으나…… 정체고 뭐고, 이미 그런 걸 신경 쓸 데가 아니었다.
하이랜디아 왕국 소속 언령의 기사단이 탈출에 합류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상과 멀리 떨어진 깊이에 있던 아케나드 마도국과 일부 마탑 등등도 인드렌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원판의 빈 곳이 거의 채워졌다.
미궁 전역에 뻗어 있는 섭리자의 실이 모두를 그리로 인도한 것이다.
‘지상에 거의 다 왔다. 당장 주변에 더 합류할 탐사대는 없는 것 같은데.’
인드렌이 내심 망설였다.
‘만약 아직 보이지 않는 거라면?’
혹시라도 뒤늦게 다른 세력의 탐사대가 나타나지 않을까, 인드렌이 성치 않은 몸으로 무리하게 감각을 집중하려고 했다.
미궁이 무너지며 감각을 제한하는 특유의 환경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아무도…… 없다.”
초월자들이 흠칫했다.
“주군?”
“……베르덴?”
“그러니, 신경…… 쓰지 마라.”
베르덴은 머리를 떨군 채 느릿하게, 하나 확신을 담아 말했다. 기이한 감각이었다. 파멸에 휩싸인 섬의 드넓은 내부가 전부 느껴졌다.
인드렌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마력 승강기를 제외하면 지하 미궁에 다른 탐사대의 생명 반응은 일절 존재하지 않는다.
인드렌과 벤디에가 우연히 눈을 마주쳤다.
그녀가 짧게 턱을 당겼다.
“알겠네, 베르덴. 자네를 믿겠네.”
인드렌은 그제야 전력으로 발판의 속도를 최대로 높였다. 수십, 수백 개의 통로에서 미라들이 울부짖는 소리와 그 모습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화아아아아아아악!
이윽고───신선한 공기가 폐를 적셨다.
한동안 지하 미궁에 틀어박혀 지상으로 나오지 못했던 이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 주변을 보고 얼어붙었다.
초월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베르덴의 검붉은 폭풍과 비슷한…….”
“지하나 지상이나 다를 바가 없군요.”
레온하르트의 입술이 떨렸다.
“세, 세상이.”
검붉은 하늘이 섬을 뒤덮었고.
어두운 바다는 격랑과 함께 폭풍을 일으켰다.
종말.
이 광경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은 그 단어뿐이었다.
상공이 불길하게 번쩍였다.
우르르릉──콰과과과과광!
파멸의 낙뢰가 섬 어딘가를 강타했다. 땅이 아예 파열되면서 하늘로 솟구친 대지의 파편들이 곳곳으로 확산했다.
집채만 한 크기의 바윗덩어리가 섬 외곽에 자리한 탐색대의 진영을 노렸다.
미궁으로 진입하는 입구에서 탐색대 진영으로 서둘러 달려가던 수인의 무리, 거기서 그림자가 하나 튀어 올랐다.
콰아아아아앙!
수인 대부족의 묘왕이 발차기로 바위를 산산이 부숴 버렸다. 그렇게 바위의 잔해는 진영이 없는 숲에 착탄했다.
공중에서 회전한 그녀가 혼란한 탐색대 진영의 내부에 착지했다.
“묘왕님?!”
이데라트 연맹국의 비행정을 지키고 있던 탐색대 일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이게 무슨 상황인 겁니까? 아까 전부터 섬 전체에 괴이한 현상이…….”
“비행정 가동해!”
“예? 어억!”
묘왕이 순식간에 다가와 그의 어깨를 짓이길 듯이 붙잡았다. 이어 수인족 특유의 신체 능력으로 비행정 갑판으로 던졌다.
“살고 싶으면 당장 비행정 띄우라고!!!!”
묘왕은 수인 부족장 중에서도 탐지 능력이 매우 우수하다. 그중에서도 죽을 곳과 살 곳을 구분하는 예민함이 특기였다.
그런 그녀의 얼굴이 다급하다 못해서 절박함으로 일그러졌다. 털이 곤두섰다. 지하 미궁 탐사를 막 시작했을 때 보였던 수인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머, 멀리 떨어져야 해. 최대한 멀리. 멀리. 멀리. 멀리. 멀리. 멀리. 멀리. 멀리. 멀리. 멀리. 멀리. 멀리. 멀리. 멀리. 멀리!!’
현 수왕 안티아스의 진심 어린 살기를 체험했을 때와 똑같은 기분이다.
묘왕의 생존 본능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 전체를 빨갛게 인식했다.
어딜 둘러봐도 안전지대는 없다.
지금 이 섬 자체가…… 감히 즉사를 피할 수 없는 절명지(絶命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