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951

951화 황금 비고 (2)

아드리안은 당연하게도 주군께서 갈리아크와 어떤 인연이 있는지 알고 있다.

리비안트 공국에서는 통곡의 기사를 함께 토벌했고, 에스티리아 왕국에서는 로아프라의 주인인 빈테르트와 전쟁을 벌였다.
이데라트 연맹국에서는 고물상으로 활동하던 죽음의 죄인, 레지날프의 중개로 다시 만나서 서로 가진 황금의 유골로 마그누스를 깨웠다.

이에 대한 아드리안이 생각은 이러했다.

‘운 좋은 놈.’

도살자?
요란한 이명이다.

옛날 술에 취해 준귀족인 기사를 두들겨 팼다고 하던데, 안하무인의 대명사였던 아드리안에게는 별로 인상적인 경력도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서 갈리아크는 주군께 은혜를 입은 자 중 하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애셔, 그 자식 없이 간다고?”

방금까지는 말이다.

“……그 자식?”

갈리아크 파티에게 아주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한 유니아가 얼어붙었다.
아무리 선배하고 친분이 있다고 할지언정 선배를 그따위로 부른 건 그녀의 심기에도 거슬렸지만…… 지금은 화를 낼 때가 아니었다.

유니아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아니나 다를까, 아드리안의 관자놀이에 굵은 핏줄이 불거졌다.

“일단 진정부터 할까?”
“비켜.”
“넹.”

아드리안이 소리 없이 다가와 갈리아크의 코앞에 섰다. 수평적으로나, 수직적으로나 전반적인 체격은 갈리아크가 더 컸다.

아드리안이 약간 턱을 들었다.

“시선이 높군.”
“…….”
“말투는 시건방지고.”

도살자 갈리아크의 파티원인 고드와 네리엔이 입만 뻥긋거리며 덜덜 떨었다. 아드리안이 격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는데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압감에 가슴이 답답했다.
등에서 확 쏟아진 식은땀이 서늘한 바람과 만나 한기가 느껴졌다.

갈리아크가 눈가를 살짝 움찔거렸다.

‘중앙 대륙 4강, 천검.’

초월자가 되기 이전에, 그리고 베르덴 측근으로 다시 세상에 나타나기 전에 홀로 활동했던 아드리안 첸버스의 악명은 익히 들었다.

각국 귀족들과 왕족들을 공식 석상에서 하대하는 정신 나간 오만함 때문에, 살인 의뢰가 쏟아져 대륙의 암살자 집단인 그림낙스의 표적이 되었는데도 멀쩡히 살아남은 천재 검사.

‘대륙을 통틀어 찾아보기 어려운 개망나니라고 들었는데. 성격이 아주 좆같다고.’

혈류가 가속하며 몸이 뜨끈해진다.
포식자가 아닌 피식자의 반사적인 본능이다.

‘시발, 어제 술을 너무 처마셨나.’

갈리아크가 베르덴을, 애셔를 그 자식이라고 칭한 건 사실 단순한 실수였다.

베르덴과 처음으로 만났을 땐 지금과 다르게 동등한 관계였던 터라 당시의 말투가 입에 붙은 것이기도 했고.
태생적으로 거친 갈리아크의 성격이 유연하거나 섬세하지 못한 탓이기도 했다.

하물며 황금 유골 건으로 우연찮게 재회했을 때 베르덴에게 애셔라 불러도 된다고, 평소와 같이 말을 놓아도 된다고 언질을 받은 적 있기까지.

물론 충고는 똑똑히 기억한다.

───공사만 구분하면 된다. 내가 아니라 너를 위해서.

숙취인지 뭔지, 어쨌든 간에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 나가는 바람에 그놈의 조언을 당장 떠올리지 못한 것뿐이다.

호흡이 점차 거칠어진다.

상식적으로 지면에 머리부터 박는 게 정상이나, 갈리아크도 반골 기질이 심한 데다가 휘어지기보단 꺾이는 걸 택할 억센 사내였다.

‘말하는 걸 보니까 소문보다는 상당히 점잖은 것 같은데…… 그냥 살짝 더 긁어 볼까. 이런 기회는 거의 없다.’

튼튼한 육체로 여러 난관에 부딪쳐 미스릴 등급 모험가까지 올라왔다. 강한 놈, 더 강한, 더 더 강한 놈, 더 더 더 강한 새끼.
결국에는 주먹으로 부수고, 도끼로 쪼개 버려서 경험치로 삼았다.

갈리아크는 강함을 숭상한다.
하여 전투를 사랑한다.
직접 싸워 이겨 낼수록 갈리아크는 더 강해지는 성장을 실감했다.

‘내가 바라는 힘의 지향점.’

상대방은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그 초월자 중 한 명이다. 심지어 자신과 같은 무투계. 마법계가 아니니 뭔지 모를 마법에 당할 일 없이, 그 완력을 고스란히 체험할 수 있을 터.

‘그래, 쫄아서 놓치면 병신이지. 설마 죽이기야 하겠냐.’

갈리아크는 굴복하는 대신 눈을 더 크게 뜨면서 입가를 비틀었다.

“거, 그 자식이든, 그 새끼든. 시발, 친분도 있는데 그렇게 부를 수 있지. 예민하게 굴─”

쩌억!

뒤늦게 바람이 불었다.

갈리아크가 그대로 무릎을 꿇고, 힘없이 양팔을 늘어뜨린 채 고개를 떨구었다. 반응하기도 전에 턱을 스친 주먹에 의식이 날아간 것이다.

“이놈도 군림자 과(科)군. 처맞을 걸 알면서도 꼭 머리를 치켜드는 게.”

금 등급 모험가 고드가 숨을 삼켰다.

‘그 갈리아크 씨가, 수, 순식간에, 단 일격에.’

아드리안이 얼마나 강대한 존재인지는 지식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그 힘의 편린을 실제로 보니 상상을 벗어났다.
대형 이형종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은 갈리아크의 굳건한 등이 눈에 선했기에.

“지금 출발한다. 끌고 오도록.”
“아, 네!!!”

네리엔과 고드가 기절한 갈리아크를 부축하려고 애썼지만, 무기와 갑옷이 더해진 체중이 상당해 여자 궁수 한 명과 남자 마법사 한 명만으로는 영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

“턱뼈는 멀쩡하게 남겨 놨네? 그나저나 쟤들은 도착하기 전부터 지치겠는걸.”
“돕고 싶으면 도와라.”
“흠, 나도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유니아는 술 냄새를 풍기는, 생판 모르는 거구의 모험가를 손으로 만지는 게 싫었다.

‘그래도 동료들이 저렇게 챙기는 걸 보면 쓰레긴 아닌가. 뭐, 하긴. 애초에 그런 인간이었으면 선배가 진즉 쳐 냈겠지만.’

유니아는 슬쩍 뒤쪽을 돌아보고는 아드리안을 따라갔다. 그리고 낑낑대는 모함가들에게 뭉툭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쯧, 시간 없다면서 죄다 뭉그적거리는. 나와라, 애송이들.”
“무슨……!”
“흐헙!”

그하룬의 두꺼운 손아귀가 갈리아크의 머리채를 붙잡아 끌었다. 어마어마한 완력에 네리엔과 고드가 딸려 나가며 앞으로 넘어졌다.
두 사람이 즉각 고개를 들었다. 늙은 드워프에게 잡혀 질질 바닥을 온몸으로 핥는 갈리아크의 모습이 눈동자에 비쳤다.

“어?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하룬 님. 어쩐 일로 어레인에 오셨어요? 안 그래도 광석 건으로 요새에 방문하려고 했는데.”
“지나가다 잠깐 들렀다. 그리고 그런 건 나 말고 제라딘하고만 논의하라니까.”
“하하, 제라딘 촌장님이 중요하다 싶은 건 그하룬 님의 고견을 들어 보라고 하셔서…… 아무튼. 여러모로 바쁘신 것 같으니 먼저 가 보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하룬 님.”
“오냐.”

리엄 어레인과 리엄이 베르덴을 만나기 전, 이웃 영주에게 전쟁이 걸려 도시와 목숨을 빼앗길 뻔했던 나약한 영주였음에도 그의 곁을 끝까지 지킨 유일한 가신, 하녀 미레스.
그들은 그하룬만이 아니라 네리엔과 고드에게도 짧게 인사를 건네며 옆을 지나쳤다.

둘의 약지에는 똑같은 반지가 끼어 있었다. 최근 리엄과 미레스는 훗날 대륙이 안정되면 결혼하기로 단둘만 있는 공간에서 가약을 맺었다.

“…….”

상황이 개판인데 어레인의 대영주는 별로 신경 쓰지도 않고 넘어간다.
이건 놀라운 축에도 못 든다는 듯이.

미스릴 등급 모험가 파티?
도살자?

에온의 고위 관계자들과 비교하면 정상인이자 범부에 불과하다. 베르덴의 곁에 가까이 머무른다는 건 그런 것이다.

* * *

파앗.

에온의 특수 마법 부대가 작성한 공간 이동진이 빛을 발한다.

중앙 대륙 동쪽, 그러니까 가르가트 동쪽에 작은 소도시가 세워져 있다. 3대 은행 중 하나인 아노니움 은행에서 설립한 도시였다.
아노니움 은행은 다이나 은행과 마그누스 은행과 다르게 대륙에 어떤 지점도 내지 않고 오직 본점만을 운영한다.

‘여기 오는 건 처음이군.’

블랙 아워 찬탈전이 끝난 이후에 주군과 알파는 아노니움 은행에 방문했었다.
정체를 감춘 채로.
유골룡 사태 당시에 살해당한 벨디른 공화국의 넬로니안 최고 의원의 비자금이 이 은행에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신분증과 같은 비자금 열쇠는 주군과 리비안트 공국의 대행사에서 시합을 벌였던 잭이라는 사내가 목숨 빚이라며 선물했다.

비자금은 진즉 확보했다.
유니아와 카인의 개인 별장도 거기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도 주군께선 훗날 아노니움 은행이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니 수수료를 계속 지불해 은행 계좌를 유지해 왔다.

스윽.

정체를 감춘 아드리안 일행은 아노니움 은행의 성문으로 향했다.

황금의 죄인은 특별히 준비한 로브로 번쩍거리는 겉모습뿐만이 아니라 혹시 모를 마법적인 간파까지 철저하게 차단했다.
익명성을 보장하는 은행이라 너무 경계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언데드라는 점을 고려하여 준비를 미흡하게 하진 않았다.

“신규 고객이 아니시라면 신분증을 제시하십시오.”

5위계급 마법사인 은행 경비가 절도 있게 통행을 제지했다.

신분증, 즉 열쇠는 있다.

본래 주군의 아공간에 보관된 아노니움 은행의 열쇠는 비교적 최근에 신설된 에온의 재무 부문에서 관리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드리안이 손을 까딱거렸다. 마그누스가 샛노란 열쇠를 건넸다. 이를 자세하게 확인한 마법사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마법사의 입에서 대륙 공용어가 아닌 고대어가 흘러나왔다.

“황금은 불변하고.”

마그누스가 화답했다.

[그 길을 걷는 죄인의 의지 또한 변하지 않으리.]

“……!”

숨을 삼킨 마법사가 즉시 황금 열쇠를 돌려주곤 신호를 보내 성문을 개방했다. 성문의 모든 경비가 기립했다.

“아노니움 은행의 최고 고객님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경비들이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즉시 아노니움 은행장님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30보 이내에서 저희를 따라와 주십시오.”

* * *

아노니움 은행장은 서둘러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지팡이를 들었다.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지났다. 노쇠한 몸이기에 속도는 나지 않았으나, 그 뜨거운 마음만은 생에 어느 때보다도 신속했다.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은행장들이 대대로 이어 온 의무의 종착지.
염원을 이룰 순간이 도래했다.

똑똑똑, 벌컥.

아노니움 은행장이 직접 노크했다. 내부에 있던 경비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오직 은행장만이 남아 아드리안 일행을 대면했다.

“후우…….”

은행장이 땀을 닦아 낼 겨를도 없이 거칠어진 호흡을 진정시켰다.

“세계 회의 이후로 다시 뵙는군요, 아드리안 각하.”

아드리안이 후드를 걷었다.

“알아보는군.”
“은행의 창립자께서 에온을, 베르덴 폐하를 신경 쓰고 계신 시점부터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은행들의 오랜 의무가 끝나는 날이 온다면, 필시 그분이 중심에 서 계실 거라고. 그런 베르덴 폐하의 권한을 대행할 존재는 에온 내에서 아드리안 각하와 이자벨라 각하 외에는 없지요.”

유니아도 얼굴을 내보이며 불만스러운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나도 권한 대행 잘할 수 있는데.”
“넌 아직 멀었다, 꼬마야.”

그하룬은 영 답답했는지 아예 로브를 거칠게 벗었다. 갈리아크 파티도, 마지막으로 마그누스도 정체를 드러냈다.

“황금의…… 죄인이십니까? 은행의 창립 자금을 마련하셨다던……!”

[황금의 죄인. 마그누스입니다.]

화려한 조명에 비친 마그누스가 골격이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걸어간 그가 은행장을 마주했다.

[참으로 긴 시간이었습니다. 그렇죠?]

“아…….”

[8세기 전에 봉인되어 최근에야 깨어난 제가 감히 레지날프와 여러분의 오랜 노고를 이해하려 들지는 않겠습니다. 그런 제가 지금 당신에게 드릴 수 있는 건 이것뿐이군요.]

마그누스가 머리를 숙이며 은행장의 주름진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의무를 다해 주어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과거가 스쳐 지나갔다.
눈물이 흘렀다.

“창립자의 배려와 은혜가 아니었다면 저따위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겠습니까. 부모에게 버려져 굶어 죽어야 했을 인생, 은혜를 입어 풍족하고 보람차게 살았습니다. 오히려 감사를 드려야 하는 건 저입니다. 하지만, 딱 하나 바람이 있다면…….”

아노니움 은행장이 간절하게 부탁했다.

“제가 행했던 의무의 결과를, 이 두 눈으로 보고 싶습니다.”

[후호호호호홋!]

마그누스가 껄껄 웃었다.

[물론입니다, 동지여.]

마그누스의 점잖은 모습에 고드와 네리엔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막 부활했을 때 아주 건물이 떠나가라 호들갑을 떨어 댔던 그 경박한 언데드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무게감이었다.

“시발, 감동하고 싶어도 아는 게 없, 윽.”

3대 은행과 죄인들의 관계조차도 모르는, 황금 유골을 베르덴에게 중개한 고물상 레지날프의 정체도 모르는 갈리아크는 구시렁거리다가 턱을 부여잡고 짧게 신음했다.

턱뼈에 손상은 없지만 신경이 다소 타격을 입어, 오늘 하루 동안 무리하게 말을 많이 하면 통증이 올 수 있다.

“개시발…….”
“뭐.”
“…….”

아드리안이 노려보는 순간에 갈리아크가 즉시 방어 자세를 취했다. 본능이었다. 유니아가 소리 없이 깔깔거렸다.

어쨌든.

황금의 열쇠가 죄인의 손에서 빛났다.

[자, 모두. 황금의 길을 걸을 준비가 되셨습니까?]

아드리안, 그하룬, 유니아, 마그누스, 갈리아크, 고드, 네리엔, 아노니움 은행장…… 이 기묘한 일행의 최종 목적지는 그 발밑이었다.

도시의 가장 깊은 지하.

그곳에 아노니움 은행이 창립된 이유가 있다.

* * *

쿠우우우우우우우…….

아노니움 은행장만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 그 안에 감춰진 특별한 고속 마력 승강기가 어둠을 뚫고 내려간다.
수평과 수직을 오가는 경로.
다름 아닌 은행장이 직접 승강기를 조작해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그때, 고드가 용감하게 질문했다.

“저…… 혹시 그 의무라는 게 무엇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아, 이젠 너까지…….”

네리엔이 이마를 짚었다.

고드도 이따금씩 갈리아크 못지않게 정신 나간 짓을 하기도 한다. 마법사의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할 때가 특히 그러했다.
괜히 고드가 수년간 갈리아크 파티에서 멀쩡히 지내 온 게 아니었다.

아노니움 은행장이 슬쩍 눈치를 살폈다.
마그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왔으니 비밀은 더 이상 엄수할 필요가 없었다.

“먼 과거 은행의 창립자께서는 마그누스 은행, 다이나 은행, 아노니움 은행의 수장들에게 고유한 의무를 부여했네. 마그누스 은행과 다이나 은행의 의무는 ‘조달’이라는 점에서 교집합을 이루었지만, 아노니움 은행의 의무는 ‘보관’이라는 점에서 다른 은행과 차별되었지.”
“보관, 말입니까?”
“은행이 거금을 축적하는 방식은 티끌을 모아서 태산을 이루는 것이네. 사람들은 어째서 돈을 모으려 할까. 왜 거액을 마련하려 할까? 집을 사고 싶어서? 책을 구매하고 싶어서? 타인을 돕기 위해서? 이유는 천차만별이나, 결과적으로 그 방향은 오직 한곳으로 향해 있네.”

달칵.

“미래.”

아노니움 은행장이 레버를 당겼다.

“모든 준비는 미래를 위한 것이지. 다만 우리들은 창립자의 의지를 따라서 남들보다 조금 더 먼 미래를 염두에 두었을 뿐이네. 혹시 생각해 본 적 있나? 만약 수백 년 동안 돈을 모은다면 얼마나 큰 규모의 재산이 형성될지.”
“그건…….”
“미력한 개인이라고 해도 상당한 액수를 모을 수 있겠지.”

그하룬이 팔짱을 끼었다.

“세계적인 집단이라면 자릿수의 차원이 달라질 테고.”

[그게 레지날프, 죽음의 죄인의 의도일 겁니다. 아니, 틀림없습니다. 아직 레지날프에게 과정에 대해 듣지는 못했지만, 우리가 당시 약속한 목적은 변하지 않았으니까요.]

마그누스가 승강기의 움직임을 느꼈다.

[마그누스 은행과 다이나 은행으로 자금을 굴려 세상이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마련하고, 반복적으로 ‘미래를 구매’하여 아노니움 은행에 그때가 올 때까지 보관해 두는 것. 이야말로 은행의 궁극적인 의무일 겁니다. 그렇지요?]

“예, 그렇습니다.”

유니아가 물었다.

“미래를 구매한다고? 반복적으로?”

[이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저희는 옛 왕의 재림을 대비해 왔습니다. 말인즉슨 저희가 생각하는 미래란 옛 왕에 맞설 수 있는 힘의 마련인 셈이지요.]

쿠웅!

마력 승강기가 밑바닥에 닿았다.

문이 열렸다.

별도의 통로는 없이 황금과 흑마법으로 이루어진 벽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 중심엔 열쇠 하나가 들어갈 만한 작은 구멍만이 있었다.

마그누스도 처음으로 오는 장소이지만 뭘 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아무리 넘치는 재력이 있어도 모든 걸 할 순 없지만, 웬만한 일은 해낼 수 있습니다. 가령 막대한 무구와 자금을 모아서, 초월자 전쟁에서처럼 옛 왕의 군세에 대적할 군세를 일으키는 것이라든가.]

“그 말은.”

[그렇습니다.]

황금의 열쇠가 제자리를 찾았다.
동시에 마그누스의 존재에 반응한 벽에 균열이 생겼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휘황찬란한 빛에 마그누스와 아드리안을 제외한 모두가 시야를 가렸다. 아드리안의 하늘색 눈동자에 황금빛 통로가 펼쳐졌다.

[대륙 연합군의 재창설.]

마그누스가 앞장섰다.

[그것이 죄인들의 목적입니다.]

황금 비고로 이어진 황금의 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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