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953

953화 세계의 틈새 – 1

“아드리안?”

이자벨라가 통신 장치를 확인했다.
이미 연결은 끊겼다.
다시 통신을 걸었지만 공간 이동진이 사라졌는지 신호가 닿지 않았다.

투하르 수도인 누하라와 대륙 사이에는 광활한 침묵의 사막이 있다.
아직 이 사막에는 마력을 중계할 중추 신호기를 설치할 수 없는 터라 공간을 잇지 않으면 통신 장치를 이용할 수 없다.

‘황금의 죄인하고 황금의 길 찾으러 간다더니, 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정말로 가주가 깨어났는지 궁금해서 연락한 건 아닐 텐데.’

이자벨라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일단은 신경을 끄기로 정했다.
어차피 돌아가면 알게 될 테니까.

“큰 사안은 아닌 듯하구나.”
“네, 목소리를 들어 보니 아무래도 위급한 상황은 아닌 모양이에요. 말을 안 해서 무슨 일인지는 가 봐야 알겠지만요.”

이자벨라가 근원의 마도를 유지하는 관리자 옆에 섰다. 여전히 잠들어 있는 베르덴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관리자가 말했다.

“방금 베르덴의 내면에 변화가 생겼다.”

이자벨라가 깜짝 놀라며 얼굴을 가까이했다.

“어떤 변화죠?!”
“한차례 격동하더니 곧 잠잠해졌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숲처럼 고요히. 마치 꿈이라도 꾸듯 이제야 깊은 잠에 든 것 같다.
“꿈…….”
“이대로 더 살펴봤자 달리 알아낼 것은 없어 보이는군.”

관리자조차도 외부에서 파악할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이자벨라는 안도감을 느꼈다.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도 쉴 줄 모른다, 그런 점이 무척 베르덴다웠다.

“……제가 이렇게 곁에 있는 게 능사는 아니겠죠?”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

관리자가 장담했다.

“베르덴은 우리가 지켜보겠다. 그대는, 그대가 해야 할 일을 해라.”

신격이든 뭐든…… 그녀가 베르덴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조치는 당장 아무것도 없다. 관리자도 그러하고, 오메가와 생명의 거목 또한 같은 처지다.

기다려야 한다.
언제나처럼.

베르덴은 당연하다는 듯 다른 사람보다 적어도 한 발짝 앞장서 있다. 항상. 이자벨라도, 아드리안도, 알파도, 베타도 결국엔 베르덴과 나란히 걷지 못하고 그의 등을 쫓을 뿐이다.

손에 닿지 못할 만큼 멀어질까 봐 두렵다. 하지만 무엇보다 베르덴이 외롭지 않을까, 이자벨라는 그런 걱정이 가장 컸다.

‘현재 국제 정세는 혼란의 극치. 베르덴의 상태가 괜찮다는 걸 확인했으니, 나도 한시라도 빨리 복귀해 아드리안과 함께 자리를 지켜야 한다. 그게 베르덴을 위하는 길이니까.’

고개를 끄덕인 이자벨라가 조심스럽게 베르덴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뜨거운 체온이 피부를 달구었다.

“관리자님, 베르덴은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요?”
“꿈은 연속적인 심리를 반영하곤 하지.”

관리자가 천천히 마도를 거두었다.

“꿈속에서도 현실과 다를 것 없이 나아가고 있을 거다. 이상을 추구하는 초월자니까.”

* * *

운명에 의해 원치 않게 탄생했다.
반기를 들었다.
원치 않은 창조주로부터 악으로 규정받은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저항하고, 또 저항했다.

신앙이란 믿음이라 했는가.
신앙이란 보완이라 했는가.

우리 또한 믿을 줄 안다.
우리 또한 부족한 마음이 보완되길 염원한다.
우리 또한 믿음을 베풀 줄 안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의지할 곳이 없는가.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여전히 갈 곳이 없는가.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평생 숨어 지내야만 하는가.

‘당신’은 우리를 혐오하고.
저항자는 우리를 위하지 않는다.

이렇게 태어난 게 죄란 말인가?

선택권을 가지고 있을지언정 진정으로 바라는 선택지는 보이지 않는다. 세상은 우리의 존재 자체를 죄악으로 규정했기에.

하지만 포기할 수 없다.

나의 곁에는 가련한 아이들이 있으니까. 그러니 난 피난처를 만들어 그때가 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릴 것이다.

운명이 무너지는 순간을.

이윽고 우리의 신이 탄생하는 순간을.

마침내 우리의 영혼이 구원받는 순간을.

우리가 비로소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순간을.

───어둠의 대악마 녹시아스, 대악마의 피난처 리버레아스를 만들며───

* * *

고즈넉한 세상.

시간의 탁류(濁流)를 거슬러 올라간다.

“…….”

베르덴이 조용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화창한 햇빛이 쏟아져 내리는 숲이 보였다. 그가 풀숲을 짓누른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고유 신성력을 자각하기 위해서, 자신의 존재와 연결된 모든 걸 지각하기 위해서──히안테와 알파를 앞에 둔 채 내면세계의 거목에 동화됐던 순간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여긴 내면세계가 아니군.’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동시에 자신의 몸을 살폈다.

‘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현실도 아니다.’

심장에 무한한 마력이 깃들어 있으나 마력회로가 느껴지지 않는다. 사라졌다. 이대로는 무한과 파멸의 마도를 개방하는 데 애로 사항이 생긴다.

베르덴은 [아인베르]가 아니라 허름한 갈색의 옷차림을 둘렀다. 변두리에 사는 청년이 입을 만한 그런 조촐한 의복이었다.

이곳은 무엇인가.
상황 파악이 우선이다.

베르덴은 싱그러운 풀내를 맡으며 나무 사이를 걸었다. 새들의 지저귐과 벌레의 울음소리가 이따금 들려왔다.

머지않아 숲을 벗어났다.

저 멀리 완만한 언덕 아래에서 생소한 대도시가 보였다. 그런데 성벽의 형태가 마법의 시대인 현대와 거리가 한참 멀었다.

‘……다수의 기척.’

도시뿐만이 아니다.

대도시로 이어진 가도를 평범한 인간들이 거닐고 있다. 드그둑, 드그둑. 마차에 탄 이들도 그들과 같은 길을 경유했다.
보다시피 겉모습은 멀쩡하다.
통찰력을 발휘해도 딱히 이렇다 할 만큼 이상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아직 판단을 내리기에는 단서가 턱없이 부족했다.

사박, 사박.

풍경을 주시하던 베르덴이 곧 대도시에 접근하기 위해 언덕을 넘었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앞으로 엎드렸다.
땅을 짚은 채 슬쩍 고개를 내밀자 개방된 성문이 훤히 보였다.

‘제법 삼엄하다.’

갑옷과 창으로 무장한 경비들이 철저하게 출입을 통제했다.
대도시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손목을 내보였고, 그때마다 경비는 고개를 끄떡이며 통행을 허가했다.

‘마차에 실린 물자를 확인하지도 않는다. 특이한 검문이군. 신체에 새겨진 표식이 일종의 허가증으로 기능하는 모양인데.’

베르덴이 낡은 소매를 크게 들췄다. 당연하게도 표식은 없었다. 하나 현실에서처럼 역천의 마법진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잿빛 머리카락과 벽안까지.
마력회로가 없어져 버린 상태에서도 변하지 않은 부분이 여럿 있었다.

뭐, 어쨌든.

‘사람들이 있는 이상 이 세상에 대한 정보를 얻을 길은 열린 셈인가. 현실의 인류와 차이점이 있을 수도 있지만.’

대도시 입성.

첫 번째 목적지를 정한 베르덴은 어떤 방법으로 도시에 들어갈지 고민했다.

물리적이든.
일부 사용 가능한 마법이든.

성벽을 넘을 수도 있으나, 대도시의 감시 체계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 모르기에 자칫하면 발각될 수도 있다.
그런 이유에서 명확하면서도 허술하기 짝이 없는 정면을 역으로 파고드는 편이 여러모로 유리할지도 모른다.

“흠.”

언덕에 드러누운 베르덴이 고민하며 푸른 하늘을 눈에 담았다. 구름에 가려진 태양의 형태를 응시하고 있자 후방에서 말발굽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그뿐만 아니라 무게감이 꽤 실린 바퀴 굴러가는 울림까지도.

베르덴이 즉시 움직였다.

풀잎이 살짝 흔들리며 그의 신형이 빠르게 숲을 가로질렀다. 마력회로가 없어도 베르덴은 당장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내면세계에서와는 다르게 신체 능력은 약화하지 않았으므로.

후욱.

숲속에 놓인 가도에 도착했다. 물자를 잔뜩 실은 마차 세 대의 뒷모습이 보였다.

비싼 옷을 입은 사람이 두 명.
무장 호위가 열한 명.

‘상인 행렬.’

베르덴은 인간을 벗어난 몸놀림으로 순식간에 나무를 박차고 올라갔다. 그대로 나뭇가지를 밟고, 밟아 허점밖에 안 보이는 호위들을 뚫고 중간 마차에 숨어들었다.

“하아암…….”
“아…… 피곤해 죽겠구만.”

벽 너머에서 하품이 늘어진다.

‘아무리 봐도 영락없는 인간이긴 한데. 목소리가 의념을 전달하듯이 내 마음에 직접적으로 전해지는 걸 제외하면.’

자기들끼리는 멀쩡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데, 베르덴의 귀에는 정확히 어떤 언어인지 흐릿해서 분간되지 않았다.

여태껏 다양한 이형종을 봐 왔기에 방심하지 않고 경계심을 품었다.
그렇게 호위들과 상인들이 일상적으로 떠드는 대화를 엿듣고 있던 도중에 대도시에 도착했다.

경비가 싸늘하게 말했다.

“징표.”
“여깄…… 소.”

열세 명이 일제히 손목을 보이고 나서야 경비는 표정을 풀었다.

“오느라 고생 많았네. 지금 도착한 거면 야영도 안 하고 달린 것 같은데. 피곤해 보이기는 해도 용케 멀쩡하군.”
“어이구, 말도 마시오. 요즘에 ‘악귀’들이 얼마나 많은지 원. 운이 좋아서 망정이지, 다음부터는 밤이 오지 않는 날에만 움직일 생각이오.”

악귀?

“그랬다가 장사 접는 거 아닌가?”
“허허, 돈보다 목숨이 먼저니까 말이오. 그나마 이 ‘렌디바르’ 근처에는 악귀가 거의 없어서 한시름 덜었소. 과연 세상에서 가장 큰 도시답구려.”
“최근에 귀족들께서 악귀를 대대적으로 토벌해서 깨끗하네. 이러한 모든 게 ‘폐하’의 은덕이지. 게다가 이번에는 좋은 볼거리도 가져오셨다고 하네. 오늘 오랜만에 처형식이 진행될 거라더군.”

상인이 눈을 빛냈다.

“처형식? 말하는 악귀를 잡았다고?”
“철창 안에 갇혀서 꽥꽥 울어 대는데 이게 어찌나 소름이 끼치던지. 그런 괴물이 지금 도시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지경이네. 먼 옛날엔 우리를 닮은 악귀가 도시에 숨어들기도 했다고 하지 않나? 표식도 통하지 않았다던데. 상상만 해도 아주 끔찍하군.”

경비가 한숨을 쉬며 물러났다.

“아무튼, 이따 광장에서 처형한다고 하니 보고 싶으면 오게. 나도 퇴근하는 대로 갈 생각이네.”
“처형식을 빠질 수야 없지 않겠소. 그럼 광장에서 뵙겠소.”
“사람이 워낙 많아서 마주치기라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뭐, 알겠네.”

경비는 마차 내부를 확인하지 않고 상인 일행을 도시로 들여보냈다. 존재감을 죽이고 있던 베르덴이 팔짱을 끼었다.

‘생소한 정보투성이군.’

악귀.
말하는 악귀.
렌디바르.
폐하.
표식의 기능.

요약하자면───

베르덴이 잠입한 대도시는 세간에서 렌디바르로 불리고, 현실이 아닌 이 정체 모를 세상에서 가장 큰 도시로 꼽힌다.
악귀라는 괴물이 있다.
폐하라는 지배층이 있다.
표식으로 악귀를 구분할 수 있다.
이들이 기겁하며 언급한 악귀는 렌디바르의 광장에서 처형된다.

‘……이곳의 인간을 봐도 이렇다 할 느낌은 들지 않는다.’

마차의 틈새를 이용해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를 관찰했다. 수인, 드워프, 엘프는 없이 오직 인간만의 도시인 듯했다.

‘그렇다면 악귀가 정답인가?’

베르덴이 이곳으로 흘러 들어온 이유가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걸 찾아내야 한다.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면 확인해 보는 게 옳을 터.

스윽.

마차에 보관된 로브를 걸친 베르덴이 자연스럽게 거리로 나갔다. 그리고 후드를 눌러써서 눈에 확 띄는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숨겼다.

‘어디부터 수소문해 볼까.’

거리에서 무턱대고 표식을 확인하는 일은 없는 듯하니 베르덴은 이제 겉보기엔 렌디바르의 시민이다.
리비안트 공국의 그레이에서 페일의 의뢰를 받아 용병일을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야말로 경험의 결실.

베르덴은 낯선 세상과 환경에 대한 적응을 이미 끝마쳤다.

‘그나저나…….’

베르덴은 재차 도시를 둘러봤다.

‘시대 배경이 언제인지는 몰라도 한참 아득한 옛날인 듯하군.’

건물의 양식과 시민의 복장.
도시의 정경.
마법적인 건 물론이거니와 기술력이라고 마땅히 부를 만한 걸 찾아보기 어려웠다. 경악스러울 정도로 조악하고 열악했다.

* * *

간단한 수소문 끝에, 말하는 악귀가 렌디바르의 특별 감옥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거리에서 대놓고 이송된 터라 기밀이랄 것도 없었다.

사람이 많으면 번거롭다.
그러므로 처형식을 기다릴 이유가 없다.

“흐……?!”

베르덴에게 경동맥을 압박당한 기사가 순식간에 정신을 잃었다. 저항조차 할 수 없다. 기사와 병사가 다수 길을 막고 있어도 베르덴의 모습을 미처 보기도 전에 제압했다.

‘기껏해야 한 도시의 기사단장급도 못 되나.’

특별 감옥이란 걸 관리하기에 그리 약한 전력은 아니었으나, 이 정도로는 마법을 쓰지 않는 베르덴의 잠입을 감히 저지할 수 없었다.

철컹, 끼이이익.

기사의 허리춤에서 획득한 열쇠 꾸러미로 감옥의 입구를 열었다. 특별 감옥이라서 그런지 죄수가 없고 극도로 어두컴컴했다.
공기가 말라 있다. 오래된 피의 냄새가 곳곳에서 코끝을 스쳤다.

그런데, 그 안에 신선한 혈향이 섞여 있었다.

‘저쪽이군.’

말하는 악귀의 위치를 대강 파악하고, 성큼성큼 발을 내디뎠다. 희미하게 들려오던 신음 소리가 점점 더 커진다.
그에 대비되는 콧노래까지도.

길 끝의 모퉁이를 돌았다.
골목에 끝자락엔 철창살로 구분된 별도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철창 내부에 자리한 두 명.

“처형식을~~ 준비해야 해용~~ 흠~~ 흐흐흠~~!”

살이 뒤룩뒤룩 붙어 몸집이 거대한 사내가 춤을 추며 칼을 갈고 있다. 얼굴은 철 가면으로 가렸고, 맨몸에 바지와 앞치마를 입었다.
인간인데도 기괴한 이형종보다 더한 불쾌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흐흑…… 흑…….”

다른 한 명은 십자가에 사지가 결박된 채로 울고 있었다. 곳곳의 피부가 칼로 벗겨져 분홍빛의 속살이 훤히 드러난 채로 말이다.
눈꺼풀도 거칠게 잘렸다.
마른 눈동자가 움찔거릴 때마다 피눈물이 찔끔 새어 나왔다. 손가락도, 발가락도, 한쪽 다리도 없다. 도를 넘어선 고문의 현장이었다.

즉사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는 분명히 살아 있었다. 아이처럼 성인보다 몸집이 한참 작은데도 불구하고…….
무엇보다도 베르덴을 경악하게 한 건 그 녀석의 외형이었다.

네 개의 눈동자.
칠흑의 피부.
7할 가까이 잘려 나간 날개.
절반은 인간.

“……악마?”

말하는 악귀를 찾으러 왔더니 다름 아닌 악마가 눈앞에 있다. 여태까지 본 악마와 형태가 달랐지만, 단언컨대 악마가 자명했다.
악마라는 종족의 거대한 틀 안엔 수많은 개체가 존재한다.

“옹?”

베르덴의 의문을 들은 뚱뚱한 고문 기술자가 휙 머리를 틀었다.

“누구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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