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979

979화 죽음의 문 (3)

“뭐 하긴? 에스티리아 국왕의 스승으로서 우리 제자 만나러 왔지. 정신 계열 마법이 얼마나 방대한지 알잖아? 가르칠 게 산더미라고.”

이그니시아가 보란 듯 쭉 기지개를 켜며 왕좌에 늘어졌다.
그녀의 말대로 에스티리아 왕국은 베르덴의 권역이기도 하지만, 계외의 유일한 제자인 실리스의 나라이기도 하다.

‘실리스를 통해서 정신만 이곳에 투영한 건가. 육체는 가르간트에 있고.’

베르덴은 이전보다 정교해진 통찰력으로 왕성 에스노렌의 깊은 장소와 이어진 이그나시아의 마력 흐름을 꿰뚫어 보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벽안과 보랏빛 은하수가 깃든 눈동자가 정면에서 마주쳤다.
둘이 서로의 존재감을 새삼 인식했다.

……?!!

이그나시아가 흠칫하더니 이내 어깨를 들썩이며 경직된 웃음을 흘렸다.

“어머, 이것 봐라?”

이그나시아가 언제나 그렇듯 신기루처럼 갑자기 사라졌다.

툭.

베르덴이 옆으로 팔을 뻗었다. 잿빛의 건틀릿을 두른 손가락이 바로 좌측에서 나타난 이그나시아의 이마를 짚었다.
허상을 일순간 넘나들며 이동하는 환상의 개념의 고유 마법 <리메시아>를 간파당한 그녀가 찬란한 눈을 깜빡였다.

“그만한 규모의 섬을 흔적도 없이 지워 버렸다고 들었을 때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그건 7위계의 힘이 아니었구나? 섬을 파괴한 검붉은 번개, 그 뒤에 이어진 의식 불명 상태. 모두 초월의 벽을 다시 넘는 과정이었니?”
“그래.”
“근데 그게 전부가 아닌 것 같은데?”

웃음기를 거둔 이그나시아가 푸른 눈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초월자의 정신계가 아니잖아.”

8위계로 상승한 결과인가?
절대 아니다.
데우스 위덴과 라인델 넥스레온은 서로 최소한의 공통점을 갖고 있었지만, 베르덴은 별개의 것이 된 듯 교차점이 전혀 없었다.

이그나시아가 숨결이 닿을 정도로 천천히 얼굴을 들이민다.
그녀가 통찰력을 극성으로 발휘했다.

“……아니, 초월자는 맞나……? 순수한 초월자가 아닐 뿐…… 뭔가 섞였어, 혹은 더해졌다? 뭐지? 이런 정신계가 어떻게 존재할 수가…….”

정신을 통해서 초월자의 격과 하나가 된 신격을 감지한 건가. 과연 현 정신계 마법사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인지력.

조용한 독백은 질문으로 귀결되었다.

“뭔지 안 알려 줄 거지? 친구라고 해도.”

베르덴이 당연하다는 듯 그녀의 매끄러운 이마를 톡톡 두드렸다.

“아직은.”
“아하하, 여러모로 달라졌어도 본질만은 변하지 않은 것 같네. 뭐, 좋아. 네가 숨기고 있는 게 한둘이 아니니까. 그 실타래가 언제쯤 풀릴지 기대되네. 안 그러니?”

[알파. 아무것도 몰라.]

알파가 시선을 피하며 곧장 [아인베르] 안쪽으로 모습을 감췄다. 성인의 모습을 취한 이그나시아가 한 발짝 물러났다.

베르덴이 세 번째로 물었다.

“그래서, 여기서 뭐 하는 거냐. 진심으로 마법을 가르치기 위해서만은 아닐 텐데.”
“너무 친해졌나? 금방 알아채네. 겸사겸사 마법 연구도 하러 왔어. 아무래도 나 혼자서는 불가능할 것 같아서 말이야.”

그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는 알현실에서 그녀가 턱짓했다.

“자리 좀 옮길까?”

* * *

후우웅.
후우우우우웅.

에스노렌의 처소에서 실리스가 두 눈을 감은 채 바닥에 앉아 있다.

백색의 머리카락 위에는 [마녀의 가시왕관]이, 백옥 같은 목 위에는 푸른 수정을 매단 목걸이가 올라가 있었다. 후자는 어머니의 심장으로 만들어진 마녀의 심장이었다.

가시왕관에서 자라난 가시들이 관자놀이에 닿아 핏방울이 맺혔다. 미증유의 힘이 마력회로에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그녀에게서 확산한 마력이 자그마한 소용돌이를 그렸다.

마녀의 고대 혈통.
고유 정신계에 특화된 마법적 존재.

글러트니가 이용했던, 아버지의 왕명으로 인체 실험을 받은 끝에 사망한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그 재능을 있는 힘껏 발현했다.
실리스의 심장과 레미엔의 심장, 모녀의 심장이 함께 공명했다.

뚝…… 뚝…….

여러 가시에 맺힌 핏방울이 땀에 섞여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눈꺼풀에 힘이 들어갔다. 그 속에서 눈이 계속해서 움직였다.
간헐적으로 마력이 크게 요동칠 때마다 고통에 겨운 신음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실리스는 자기 자신의 정신세계에 몰두하고 있었다. 옆에서 누가 대화를 나눠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깊게 말이다.

베르덴이 말했다.

“네 정신계를 체화시키는 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쓸 만한 경지를 이룩하는 데 한세월이니까.”

이그나시아가 푹신한 침대에 걸터앉았다.

“마녀의 혈통은 확실히 정신계에 특화된 놀라운 핏줄이긴 해도, 성장 속도와 한계는 결국 개체에 달려 있잖아? 그런 의미에서 실리스의 오성은 나쁜 편이 아니야. 오히려 좋은 편이지. 다만 뛰어나다고 하기엔 애매하고. 심지어 실리스는 제대로 마법에 입문하는 게 너무 늦었어. 혼자였으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일정 수준 이상은 넘보지 못했겠지.”

그녀가 실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와는 다르게.”

이그나시아는 고대의 핏줄을 이은 것도, 고귀한 가계를 지닌 것도 아니었다. 재산이 어느 정도 있는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 자체만이 특별했다.
부모가 어렵게 초빙한 스승은 그녀를 질투하고, 두려워해서 재능이 완전히 개화하기 전에 죽이려고 했다가 정신계가 붕괴했다.

초월자의 재목.
그중에서 압도적인 재능을 타고나 초월을 이룩한 존재.

고대 혈통이 대단하다고 한들 초월자가 바라보는 경치는 볼 수 없다. 고대 혈통에다가 초월의 가능성을 타고난 자가 아니라면.

“그러니 스승으로서 소중한 제자를 이끌어 줘야 하지 않겠니? 암월의 꿈에 깃든 내 초위 마법을 통해 이미 환상에 조금은 적응한 상태니, 종국엔 나와 함께 마법을 구사할 수 있게 될 거야.”

[마법?]

알파가 핵심을 찔렀다.

[실리스의 성장 도모. 모종의 합동 마법. 그것이 왕국에 온 목적?]

“정답! 상품은 없어. 하지만 느닷없이 왜 새로운 마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는지는 말해 줄 수 있지. 자자, 이유가 뭐냐. 뭘까?”

이그나시아가 본심을 드러냈다.

“저번에 너하고 함께 사차원을 생성했을 때 본 게 좀 있거든.”

그녀가 속삭였다.

“거대한 악마의 손, 말이야.”

옛 왕이 부활하는 사태가 일어나기 전…….

베르덴은 도시 잔트라를 파괴한 드워프인 그롬멜 그롬파르를 놓치고, 주검의 영광에 의해 공간 이동이 차단된 루아스 교국으로 넘어가려고 <디아셴시오>를 발동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직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들지 못한 마법인지라 어쩔 수 없이 이그나시아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었다.

‘그때 봤군.’

네 번째 좌표에서 관측할 수 있는 세상은 대륙을 제외하고 세 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맥에 자리한 레프라기움 마탑.
하늘섬, 아크.
대악마의 피난처, 리버레아스.

이그나시아는 이 중에 대악마 녹시아스의 손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악마가 거주하는 어둠의 공간을 목격한 것이리라.

‘사차원의 틈새는 내가 들어간 뒤에 금방 닫혀서 여유가 없었을 텐데. 설마 그사이에 머리라도 들이민 건가?’

자칫하면 그녀의 목이 잘렸을 것이다.

초월자의 막강한 저항력에도 공간의 절단력은 위협적이다. 그것이 차원을 나누는 경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더욱이 그러하다.

뭐, 어쨌든.

‘레프라기움 마탑과 하늘섬을 언급하지 않은 걸 보니 겨우 리버레아스만 본 모양이군.’

베르덴은 지금 이그나시아의 목적이 무엇인지 이해했다.

“악마의 손으로 갈 작정인가.”
“베르덴, 너는 입이 무거우니까 순순히 사차원을 열어 주지 않을 거잖니? 그게 뭔지 제대로 알려 주지도 않을 거고. 그러니 알아서 길을 찾을 수밖에. 덕분에 <디아셴시오>의 근본 원리는 이해했어. 물론 나로선 그만한 마법진을 작성할 수 없지만, 마법진을 대체할 매개체는 있거든. 내 허상은 실재(實在)와 같으니.”

그녀의 눈매가 호선을 그렸다.

“난 그 악마의 손이 뭔지 너무 궁금해.”
“지금 대륙은 혼란에 직면했다. 궁금증은 나중에 해소해도 될 텐데.”
“혼란스럽기는 해도 위험하지는 않아. 기껏해야 전조에 불과할 뿐. 진짜는 옛 왕이란 게 다시 봉인이 풀릴 때 비로소 전개될 거야.”

서대륙, 중앙 대륙, 동대륙 등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한 이그나시아는 대규모 언데드의 출몰 자체를 위협이라고 보지 않았다.

세력들이 굳건히 버티고 있으니까.
곡소리가 덜 들리니까.
악몽에 시달리는 자가 아직 적으니까.

정체를 알 수 없는 배신자 세력이 있기는 하지만 서약자의 계약 탓에 각 대륙의 중심 수뇌부에 접근할 수 없다.

“시작을 위한 시작. 그런 형국인데 왜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못 하면서 긴장하고 있어야 하니? 응? 내가 나서지 않아도 지금 당장 대륙의 절반이 타오를 일은 없어. 나의 가르간트가 멸망할 일도 없고. 그러니 내 호기심을 억누를 이유도 없지.”

집착으로 이어진 광기.

“악마의 손에는 뭐가 있을까?”

이그나시아가 흥분에 찬 미소를 지으며 베르덴의 심장을 가리켰다.

“네 비밀은 뭘까.”
“…….”
“내 손으로 하나하나 전부 풀 거야. 그게 얼마나 재밌을지 상상도 안 돼. 분명 그 결과 세상은 더욱더 즐거워지겠지. 아──역시.”

이그나시아가 눈을 빛냈다.

“베르덴, 역시 넌 달라.”

드래곤의 갈비뼈를 상품으로 둔 이그나시아의 저울에서, 초위 마법으로 구축된 개미들의 미궁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었다.

───……하지만 어쩌면 넌 다를지도 모르지. 정말로 어쩌면. 왠지 모르게 너라면 이 세상을 재미있게 만들어 줄 것 같은 기대감이 들거든.

그때의 기대는 이미 확신으로 변해 이그나시아를 자극했다. 지독한 쾌락주의자가 과감하게 행동하는 현실을 낳은 것이다.

이에 베르덴은 내심 장담했다.

‘막을 수 없다.’

이그나시아를 제압한다 해도 리버레아스를 향한 호기심을 어찌할 수 없다. 그녀는 반드시 차원을 넘어 대악마의 피난처에 도달하리라.

‘하지만 막을 필요는 없지.’

리버레아스에 간다고 해서 금기에 위배되는 것도 아니고, 준비되지 않은 대륙에 거대한 위험을 부르는 것도 아니다.

이건 선택이다.
결과가 정해지지 않은…….

베르덴은 자유로운 이그나시아의 선택을 기꺼이 존중했다. 그렇게 그녀를 제지하는 대신에 친구로서 조언을 남겼다.

“악마들은 널 죽이려 들 거다.”
“그거야 당연히 악마니까─”
“만약 악마의 손에 도착하면 내 이름을 대라.”

네 번째 좌표에서 관측한 악마의 손과…… 악마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는 말투에 이그나시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궁금증이라는 호수 위에 단서가 던져지며 파문이 일었다.

“……아핫.”

이그나시아의 쾌락 중추가 폭발했다.

* * *

이그나시아와 미리 협조를 구했다. 가르간트에 가면 그녀의 본체와 합세해 <디아셴시오>를 발동할 수 있게 됐다.
공간을 무너뜨려 이동하는 방법은 공간이 완전히 수복될 때까지 기다리고 나서야 다시 쓸 수 있다, 즉 재사용이 가능한 것이다.

모종의 요소로 막힌 공간의 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남쪽에서 로니아 왕국 소유로 추정된 비행정이 불시착했고, 칼리아가 직접 조사에 나섰다…… 블루, 카란스, 알데반이 있으니 문제는 없을 터.’

이그나시아와 뜻밖의 재회를 한 이후 레바나와 페르네를 통해 왕국의 정보를 얻은 베르덴이 빠르게 허공을 가로질렀다.

‘계획대로 통신 장치부터 복구한다.’

동부 늪지대에 있는 초대 마도왕의 무덤──골렘 연구 시설과 연결된 공간 이동진을 작동하여 베타를 만나야 한다.

[마법진. 기동 중.]

유적의 깊은 곳으로 들어온 둘이 공간 이동진의 빛에 휩싸였다. 역시 건축물 형태인 터라 공간 좌표가 불안정하지 않았다.

[집으로.]

파앗──!

베르덴과 알파가 수십 일 만에 골렘 연구 시설에 복귀했다.

‘역시.’

기척이 느껴진다.

베르덴과 알파가 나아가는 길 반대편에서 묵직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고릴라 형태로 사족 보행을 하는 베타가 나타났다.

[베타, 내 동생.]

“오랜만이군, 베타.”

[베르덴 폐하와 알파의 귀환을 축하드립니다.]

베타는 평소와 같이 기계적으로 답했지만 기쁨의 감정이 여실히 느껴졌다. 다른 이는 몰라도 베르덴과 알파는 그러했다.

[와아.]

[와아, 입니다.]

인공 골렘 형제가 잠시 상봉의 순간을 만끽하고 난 뒤…… 베르덴이 알파를 머리 위에 태운 베타에게 물었다.

“여유가 없으니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하마. 지금 중추 신호기를 개조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순조롭게 진행 중인가?”

[그렇습니다. 통신 장치의 마력 파장을 간섭하는 요소를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중추 신호기의 개조도 설계를 마친 상태입니다.]

“……! 벌써? 잘했다.”

[역시 우리 동생.]

[감사합니다.]

베타는 칭찬받아서 행복했다.

“그런데 뭐가 중추 신호기에 간섭한 거지?”

[그건.]

베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곧장 둘을 연구실로 안내했다.

[지금 보여 드리겠습니다.]

* * *

내부 구조가 반쯤 드러난 중추 신호기가 연구실 중앙에 놓여 있다.

[중추 신호기의 마력 파장에 간섭한 것은 다른 파장이었습니다.]

“다른 파장?”

통신 장치와 중추 신호기를 서로 연결하는 마력 파장은, 오직 마도왕의 골렘들끼리만 수신과 통신이 가능한 특수한 마력을 이용한 터라 외부에서 개입이 불가능하다.

본래라면 이 같은 일은 없어야 했던 것이다.

[중추 신호기의 고유 파장 범위를 침범할 정도의 정체불명의 파장이었습니다. 그래서 해당 파장의 주파수를 차단하는 구조로 중추 신호기를 개조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문제 되는 파장을 포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끼릭, 끽.

베타가 중추 신호기를 조작하여 그 파장을 재생했다.

───아…… 여기…….

중추 신호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는…… 어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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