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984

984화 죽음의 문 (8)

한낮의 빛을 능욕하는 듯한 어둑한 사기(死氣)가 서쪽에서 몰려들어 수도가 있는 동쪽까지…… 로니아 왕국 전역을 휩쓸었다.

이후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세상은 원래 이렇게 잔혹한 것이었나.

– 옛 왕이 부활하고 47일 뒤, 에온의 일곱 번째 위상, 그레이브 러드워스가 –

* * *

중앙 대륙에서 서대륙의 대전당으로 전이할 때 이그나시아의 도움을 받아 차원을 넘었다.
이론적으로 <디아셴시오>를 로니아 왕국으로 갈 때 사용하는 게 안전하긴 하지만, 베르덴은 안전보다 시간을 택했다.

중앙 대륙에서 서대륙으로, 다시금 서대륙에서 중앙 대륙으로 가서 이그나시아를 만나 동대륙으로 전이하는 것보다…….
중앙 대륙에서 이그나시아를 통해 서대륙으로, 그다음 베르덴의 힘으로 서대륙에서 동대륙으로 가는 편이 훨씬 더 효율적이었기에.

쩌저저저적.

침묵의 사막에서 중앙 대륙으로 공간을 무너뜨려 이동했을 당시엔 불안정한 공간 좌표가 뒤틀리는 등 오차가 발생했다.
숙련도가 부족한 탓이니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전보다 나을지언정 기껏해야 오차율을 줄이는 것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아티팩트로 보완한다.’

외적인 요소를 활용하는 것도 엄연히 마법사의 능력이다. 순수한 마법적 체급만이 마법사의 전부가 아니다.

무너진 공간 좌표로 들어온 직후 동대륙 남부의 좌표를 포착했다.

<게이트>

잿빛의 [아인베르]가 명멸하며 뻗어 나간 마력이 공간을 열어젖혔다.
베르덴과 함께 진화했기 때문인지 공간 특유의 보랏빛이 아닌 회색 광채로 이루어진 원형의 입구가 현현했다.

‘기능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는데…… 오묘하군. 신격이라는 건.’

베르덴은 여전히 신의 힘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 신성력은 불친절했다. 신앙을 모으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겠다는 듯 말이다.

어쨌든.

대전당과 동대륙의 좌표가 연결됐다.
오차는 없다.
공간 이동을 저해하는 파장으로 인한 불안정성 때문에 <게이트>를 평소보다 오래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이 유일한 흠이었다.

───!

주저 없이 잿빛 틈새로 몸을 던진 베르덴.

혼란스러운 냄새.
주변에 넘실거리는 불길함.

상공에서 나타난 그의 벽안에 아직 가 본 적 없는 동대륙 남부의, 하부 수인 부족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로니아 왕국의 풍경이 펼쳐졌다.

가장 먼저 파괴되어 함락당한 도시가 베르덴을 맞이했다.
멀리서 날아온 바위에 곳곳이 무너진 성벽, 강한 충격에 우그러진 성문, 여러 구조물과 지면을 물들인 수많은 혈흔.

‘공성전이라도 벌어진 건가? 인간의 기척이 없다.’

언데드의 사기가 짙게 느껴진다.
기이한 일이다.
다른 대륙에서 대규모 언데드에게 습격당했다면 현장이 더 난잡했어야 정상일 텐데 인간끼리 전쟁을 치른 것 같은 흔적이 난무했다.

게다가 시체가 없다.

로니아 왕국에서 날아온 비행정에서 찾은 단서와 일치한다. 뒤이어 자연스럽게 베르덴의 눈길이 도시 내부로 쏠렸다.

[와아아아아───!]

기괴한 환호성이 귓가를 스쳤다.

‘확인해 봐야겠군.’

베르덴이 도시로 향하며 [블랙 아워의 나침반]을 조작했다. 카인과 그레이브 등의 마력이 담긴 마석을 차례대로 장착했다.

핑그르르─

마법사를 찾아 회전한 자침은 전부 같은 방향을 가리키지 않았다.
정확히는 두 개의 방위로 귀결되었다.

분대를 나눈 듯하다.

로니아 왕국의 중심 지역이 이러한 걸 보아 왕국 전역을 무언가가 휩쓴 모양이다.

왕국의 상황이 어떤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어쨌든 목숨이 붙어 있는 것만큼은 자명했다.
라테온과 아드리안도 살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을 터.

‘다행이다.’

카인은 북쪽에 있고.
그레이브는 서쪽에 있다.

거리는 알 수 없지만, 새로운 중추 신호기를 이 근방에 설치하면 연락할 수 있을 것이다. 통신 장치를 팔목에 차고 있다면 말이지만.

탁.

그렇게 생각하며 베르덴이 폐허가 돼 버린 도시에 입성했다.
환호성이 들려왔던 곳으로…… 몇 걸음 앞으로 이동하자 공기가 질척거리고 분홍빛 살점이 흩뿌려진 역겨운 광장이 보였다.

거기엔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제단을 쌓아라! 왕을 위한 제단을!]

[더 높게! 더 높게!]

피부가 하얗게 질린 귀족 시체들이 단상에 올라 좀비, 고스트, 스켈레톤 등의 다종다양한 언데드에게 지시를 내렸다.

퍽! 퍽!
콰득! 콰득!

녹슬고 무딘 칼과 도끼가 부드러운 살을 으깨고 뼈를 부순다. 리치들이 <염동력>으로 사지를 뜯어내 신체 부위를 차곡차곡 쌓는다.
극히 드물게 자연 발생하는, 비물질계에 속한 레이스(Wraith)와 스펙터(Specter)가 창대에 꽂힌 머리통 위에서 비명으로 노래를 부른다.

도살장.

어린아이부터 어른 할 것 없이 분명 인간이었던 것들이 해제되었다. 심지어 아직 형체도 갖추지 못한 태아까지도 소재였다.

광장 한가운데에 ‘시체의 산’이 쌓였다.

이것은 수천 명을 넘어서 만 명 단위로 이루어진 끔찍한 의식장이었다.

사방이 죽음으로 가득하다.

베르덴조차도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초월자 전쟁을 경험한 초대 네크로맨서의 기억에서도 보지 못했다.

우뚝.

[다음 제물이 왔구나.]

귀족 시체 하나가 씨익 웃자 언데드들이 일제히 베르덴을 노려봤다.

* * *

[주변 인간들은 전부 끌어모은 것 같았는데. 다른 지역에서 온 건가?]

[그렇지 않겠소? 밖에서 살아남아 ‘로셀라’까지 오다니. 제법 강한 마법사인 것 같소.]

[제물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강하면 강할수록 더욱.]

달리 부패한 부위 없이 인간의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한 두 귀족 시체가 베르덴을 내려다보며 서로 말을 주고받았다.

[예비 제물로 보관해 두기에는…… 토막 내기에는 소재가 아깝지 않겠소? 차라리 제물이 아니라 동포는 어떨는지?]

[하긴 필요한 제물은 마련했으니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 저런 것을 데리고 다니면 다른 동포들이 우릴 우러러보겠지.]

그들은 베르덴의 생김새에 흥미를 보이며 그의 처우를 논의했다. 제물과 동포. 살벌한 대화 속에서 의미심장한 단어들이 이어졌다.
주변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지 언데드들은 묵묵히 시체의 산을 장식했다.

그때, 베르덴이 말했다.

“동포?”

[‘죽음의 문’이 열려 죽음이 도래했으니. 시체의 산의 일부가 될 것인가, 아니면 죽음의 군주를 위하여 시체의 산을 쌓을 것인가. 살고 싶다면 선택하게.]

[기뻐하라. 선택의 기회는 누구에게도 주어지는 것이 아니니.]

죽음의 기사가 여자 시체를 하나 가져와 베르덴 앞에 던졌다. 평범한 여인이었다. 잔혹하게 일그러진 표정과 상처의 흔적을 보아 심한 고문을 당하다 죽은 것 같았다.

[범하고, 여섯 조각으로 토막 내, 산 자의 제단을 쌓아라. 그리하면 너는 죽음의 군주의 가호를 받아서 죽음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생기를 사기로 물들이게.]

귀족 시체들은 제대로 된 설명 없이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늘어놓았다. 하나 그렇다고 핵심 정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죽음의 문은 이자벨라가 본 아홉 개의 균열을 뜻하는 걸까. 또한 이런 식으로 동포가 될 수 있다는 말은…….’

스륵.

베르덴은 살해당한 여인의 반쯤 뜬 눈을 손수 감겨 주었다.
그러곤 물었다.

“너희는 본래 인간이었나?”

귀족 시체들이 입고 있는 옷깃에 로니아 왕국의 휘장이 달려 있다. 백작급 이상에게 허락되는 왕국의 권위를 상징하는 물건이다.

귀족 시체들의 입가가 기분 나쁘게 벌어졌다.
우월감에 취한 눈빛이 번들거렸다.

[선택받은 인간이지.]

“선택…….”

왕국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한 베르덴이 턱짓했다.

“제단에 있는 놈을 불러내라.”

귀족 시체들이 산 자의 제단이라고 칭한 시체의 산 자체에서 고위 언데드와 궤를 달리하는 존재감이 태동했다.
시체를 두르고 숨어 있어도 베르덴의 통찰력을 피할 수 없었다.

[음, 죽어도 인간으로 남고 싶다는 건가? 고고한 척한다고 해서 봐주는 사람은 없네. 그냥 본능에만 따르면 될 것을.]

[선택을 거절했다…… 그 얼굴 가죽만은 남겨서 써 주도록 하지.]

반말을 지껄이는 오만한 귀족 시체 하나가 혀를 할짝거리곤 제단에 몸을 던졌다. 시체의 산에 순식간에 파묻혀 사라지자 막대한 사기가 솟구쳤다.

콰드드드득!

비대한 팔이 토막 난 시체들을 짓누르며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눈구멍이 뻥 뚫린 커다란 인간의 머리가 극심한 자살 충동을 유발하는 고유 정신파를 방출했다.

[강한 마법사라고 해도 죽음의 군주의 힘 앞에선 한낱 벌레일 뿐.]

“…….”

[스스로 두 눈을 뽑고…… 씹어 삼켜라.]

생기에 반하는 강력한 명령이 베르덴의 정신계를 건드렸다.

로니아 왕국에 열린 죽음의 문.

그것의 영향력을 받은 인간은 선택이라는 구실로 언데드로 타락할 수 있었고, 시체의 산을 쌓아 강력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르자면 배신이었다.
공포든 무엇이든 죽기 싫어서 언데드가 되어 버린 인간들은 그렇게 자아를 유지하면서, 다른 인간들을 제물로 삼아 강해지려 한다.

옛 왕을 위해서.

어쩌면 죽음의 문이란 건 옛 왕이 지휘할 군세를 만드는 ‘생산 수단’일 가능성이 있다, 로니아 왕국에 오자마자 베르덴은 그렇게 추측했다.

‘사태를 종식하려면 문을 닫아야겠군.’

연락이 두절된 에온의 위상들도, 그들을 찾으러 이곳에 온 아드리안도 그와 같은 판단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베르덴이 정면으로 뻗은 손에서 헤아릴 수 없는 마력이 집중했다.

<아케인: 마력 융합>

갑자기 들이닥친 온몸이 짓눌릴 듯한 중압감에 귀족 시체가 경직됐다. 그의 눈에 푸른 마력의 광채가 폭발했다.

콰과과과과과!

거대한 마력 광선이 직선상에 있는 모든 사물을 집어삼켰다. 도시 로셀라의 광장에서 성벽 너머까지 빛이 관통했다.
경로 위에 있던 건물들은 물론이거니와 시체의 산까지 송두리째 사라졌다.

[린첼…… 백작?]

귀족 시체가 고개를 돌렸다.

제단을 통해서 죽음의 군주의 권능을 받은 린첼 백작이 사라졌다. 그가 있던 자리에는 도시 절반을 가로지른 파열의 흔적밖에 없었다.

[죽었어……?]

마도 <파멸>

베르덴이 찰나에 죽음의 기사를 처리하고, 남은 귀족 시체의 머리를 짓밟았다. 검붉은 마력에 노출된 놈이 괴성을 질렀다.

[아아아아아!!!!!!!!!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저 살아남기 위해 이렇게까지 하다니. 추하기 그지없군.”

[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죽음의 문은 어디에 있나.”

조금 숨통을 열어 주자 귀족 시체가 필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내, 내가 추하다고……?]

파지지직!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서쪽……!! 서쪽에 있네……!!!!!]

서쪽.

그레이브가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리고, 북쪽으로……! 귀족의 군세가 움직였네…… 나와 같은……! 부, 부, 북쪽에 몰려 있는 인간들을…… 죽이려고……!]

그래서 카인이 북쪽에 있는 건가.

고통에 굴복해 묻지도 않은 정보를 설설 흘리니 편했다. 하긴 인간을 배신하고 언데드가 되어 시체의 산을 쌓은 놈의 입이 무거울 리 없다.

우득, 우드득.

귀족 시체의 머리뼈가 아주 으깨지기 직전까지 뒤틀렸다.
가장 중요한 정보가 하나 더 남았다.

[가아아악……!!!]

“죽음의 문은 누가 열었지?”

[여, 여자……!! 아름다운, 여자!!!!]

아름다운 여자.

귀족 시체는 그것밖에 모른다는 듯 같은 단어를 계속 되풀이했다.

‘초월자 인형인가?’

귀족 시체의 말이 진실임을 간파한 베르덴이 그 몸통을 발로 걷어찼다. 단상 위에서 나가떨어진 놈이 부들거리더니 이내 크게 소리쳤다.

[내가…… 추하다고…… 나는……!!!!! 살아남고 싶었을 뿐이네!!]

[카아아아악!]

인간의 시체들을 내버려 둔 언데드들이 사방에서 들이닥쳤다. 고위 언데드도 포함되어 있었으나 별 의미는 없었다.

[어떤 인간이 그대로 언데드에게 씹어 먹히는 걸 택했을까……! 인간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네……!! 그게 뭐가 추하다고……! 자, 자네가 나였다면 달랐을 것 같나!!!]

“인간이면 더더욱 그러지 말아야 했다.”

잿빛의 건틀릿에서 불꽃이 피어났다.

“네 선택에 존엄은 어디에 있나.”

[존…… 엄……?]

귀족 시체가 멍하니 중얼거리다가 눈을 찢어질 듯 크게 떴다. 언데드가 되면서 희미해졌던 생전의 기억이 번쩍였다.

지성의 존엄을 훼손하지 마라.
자유를 제한하지 마라.
책임을 인식하라.

로니아 국왕과 귀족들이 너무도 두려워했던 세 개의 계명이 떠올랐다. 동시에 세상에 계명을 제정한 초월자의 얼굴이 선명해졌다.

[시, 신성.]

에온의 수장을 목도한 귀족 시체가 반사적으로 뒤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단순히 죽음을 직감했기 때문인지, 인간이었던 시절에 켕기는 것이 많았기 때문인지 본인도 알지 못했다.
어쩌면 존엄을 지키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웠기 때문일지도…….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시간 속에서 귀족 시체가 황급히 발을 내디뎠고, 그의 뒤로 샛노란 빛이 강하게 몰아쳤다.

<화연의 역류>

화염계로 강화된 <대격변>이 8위계 마력회로의 출력을 받아 광장에 작렬했다. 하늘과 땅을 잇는 화염 폭풍이 시체와 대기를 모조리 불태우며 이윽고 도시 전역을 휩쓸었다.

한때 장미 정원으로 유명했으나 살아 있는 사람이 모조리 제물로 바쳐져 죽음의 제단으로 전락한 도시, 로셀라───멸망.

* * *

반짝.

통신 장치에 불이 들어왔다.

하지만 누구도 신호에 응하지 못해 통신 장치는 잠시 후 꺼졌다. 다시 연락이 왔지만, 주변에 통신을 수신할 수 있는 이가 없었다.

그리고.

통신 장치 등이 보관된 곳과 멀리 있는 어딘가에 감옥이 있었다.

“시발…… 좆같은.”

마울러가 피가 섞인 침을 연신 뱉으며 감옥 벽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의 전신에는 ‘광검’의 날에 베인 검흔이 여럿 새겨져 있었다.
최상위 금속으로 구속된 팔과 다리.
느긋하게 상처를 봉합할 상황도 아닌지라 감옥 바닥은 피로 적셔진 상태였다.

“어이, 뒈졌냐?”
“…….”

권격에 몇 번이고 격중당한 흔적…… 마울러와 마찬가지로 심한 중상을 입고, 결박당한 아드리안이 고개를 들었다.

“닥쳐.”

에온의 초월자와 델하룬의 초월자가 같은 감옥에 갇혔다.

“어떻게 탈출할지 생각하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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