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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투쟁의 연유점창파의 태화대보다 조금 늦게 출발한 무당파의 맹호대는 이동 중에도 계속해서 개방의 전서를 받았다.
호령산을 넘어 영산에 당도한 이들은 그곳에서 먼저 담악을 추격하던 현영을 마주했다.
“어떤 상황이더냐.”
맹호대 대주 명진의 물음에 현영이 답했다.
“개방이 황매로 향하는 태을문의 마차를 쫓는 중이고, 점창은 마성 인근에서 태을문의 마차를 놓쳤다 합니다.”
“태화대가?”
명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개방이야 추격에 나선 인원 중에 무인이 없어 제지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점창의 태화대가 태을문을 막지 못했다는 건 사뭇 이해가 가지 않았다.
뒤이어 들려오는 보고는 더 가관이었다.
“서른 명의 무사들 중 열다섯이 전투 불능에 빠져 결국 마차 내부를 확인하지 못했다 합니다.”
“멍청한 것들.”
한편으론 이해는 간다.
자신들은 정식 작전을 실행하는 중이 아니고, 태을문은 무림맹의 혈맹인 백팔봉 중에 하나.
함부로 피를 볼 수 없는 사정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태을문 따위를 상대로 태화대 절반이 전투 불능에 빠졌다니.
쉬이 납득하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탈출 행렬에 백수신녀가 동반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조심했어야지.”
명진으로선 태을문이 오직 본인들 힘으로 태화대를 무력화시켰다는 게 이해 불가의 영역이었기에 결국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해 버렸다.
“그럼 지금은 홍안으로 움직이면 되는 것이냐?”
황매로 향하는 마차는 미끼가 확실하다.
애당초 사흑련으로 향하는 것도 아니고, 설사 그 안에 담악이 타고 있다 해도 그렇다면 결국 다시 마성으로 돌아오게 된다.
개방의 포위망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상황.
그들은 그저 포위망을 헐겁게 하는 미끼에 지나지 않았다.
담악은 아마도 태을문의 본대에 탑승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마성을 넘어 남장과 자귀, 은현을 지나면 곧장 안휘성이 나오니까.
“저는 움직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뭐?”
당장이라도 본대를 쫓아가 태을문을 박살 내고 마차를 찢어발기려던 명진의 몸이 우뚝 멈췄다.
“그게 무슨 소리더냐?”
“지금 마성에 있는 마차를 쫓으면 담악이 다른 곳에서 나타날 경우 대응할 수가 없습니다.”
한번 남장과 은현으로 들어서면 되돌아 나올 수가 없다.
양옆으로 커다란 산맥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
그 덕에 이곳 관도가 안휘성으로 가는 데 가장 많이 쓰이기도 하는 것이고.
하지만 반대로 거리를 벌리게 되면 그만큼 쫓기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남장으로 향하는 태을문의 마차에 담악이 타고 있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냐?”
“점창의 이들이 말하길 마차에 탄 이들 중에 군부의 무술을 쓰는 자는 없었다 합니다.”
“……!”
왜 그걸 생각하지 못했지.
당장 눈앞에 태화대가 실패했다는 데에 너무 눈이 돌아가 있었다.
“중간에 빼돌렸음이 분명하구나!”
“더구나 상대는 진소운과 백수신녀가 함께한 행렬이었습니다. 얼마든지 추격자들을 쳐낼 수 있었음에도 딱 한 번밖에 본격적으로 손을 쓰지 않았습니다.”
현영의 말마따나 그간 알지 못했던 상황들이 머릿속에서 하나하나 맞춰진다.
일부러 추격자를 달고 다니던 녀석들이 어느 순간 추격자들을 떨쳐 냈다.
이후엔 보란 듯이 태을문의 마차임을 밝히고 정면 승부를 피하지 않았다.
황매까지 태을문의 제자를 보내어 속임수를 쓰던 놈들치곤 행동 자체가 어색하기 그지없다.
더구나 놈들은 무한에서도 정도회의 눈을 피해 무한을 빠져나간 이력이 있다.
총체적인 상황을 조합해 합리적 판단을 내리는 현영.
용소아에 가려져서 그렇지, 현영 역시 몹시도 뛰어난 인물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네 말이 맞구나.”
“지금은 마성에서 대기하며 수상한 자가 나왔을 때 그들을 쫓는 것이 합당하다 생각합니다.”
명진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옳다!”
“더불어, 특전부대들 또한 마성에 모으는 것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어째서?”
“무한에 와 있는 태을문의 인원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황매와 남장으로 향한 마차들을 빼면 다른 마차들에 태을문의 인원들이 타 있을 확률은 떨어집니다. 차라리 인원들을 모아 단박에 추살하는 것이 어떨는지요.”
“그것 또한 맞는 말이다. 내 직접 전서를 보내도록 하마.”
큰 칭찬에 뿌듯한 감정을 표현할 법도 하건만 현영은 의젓하게 제자리로 돌아갔다.
명진의 눈엔 그런 현영이 더욱 이뻐 보였다.
이게 무당이고 이게 무당의 정신이니까.
뿌듯한 눈으로 현영을 보던 명진이 이내 맹호대의 인원들을 바라봤다.
“담악 그자는 맨바닥에서 사흑련이란 거대 집단을 세운 자다. 만약 그자가 살아서 사흑련으로 돌아간다면 차후 무림맹과의 전쟁에서 수없이 많은 동료들이 죽어갈 것이다. 그러니 그가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 하여 절대로 손속에 사정을 두어선 안 된다.”
부대원 하나가 손을 들었다.
“태을문이 담악의 탈출을 돕고 있다 했습니다. 그들에겐 어찌 대응해야 합니까?”
“만약 진소운 그놈이 마지막 속임수를 썼다면 태을문의 본대와 떨어져 일부 인원만으로 움직이고 있을 터.”
무림맹의 보호 속에서 자랐고, 무림맹의 수혜 속에서 교육받은 태을문의 진소운.
은혜를 아는 이라면, 응당 정도의 가장 앞에 서서 스스로를 불태워 정의를 실현해도 모자랄 판국에 개인의 욕망을 위해 마두를 돕고 있다.
그런 녀석을 무림맹의 동료로 봐야 하는가?
명진이 살아온 삶은 말한다.
아니라고.
“그렇다면 손속에 사정을 둘 필요는 없다.”
“!”
대원들의 눈이 번쩍 치켜떠지지만, 그의 말에 반박하는 이는 없었다.
“흑도 무림의 거두다. 그를 절대로 사흑련까지 보내선 안 된다. 그는 반드시 이곳에서 죽어야 한다! 알겠느냐!”
의기충만한 대원들이 결연한 기세로 대답했다.
“““네!”””#말로 바꿔 탄 후 반나절이 지난 후에 담악은 깨어났다.
자신이 원하는 것과 다르게 일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그는 담담한 태도였다.
“제때에 영산을 지나지 못하는 걸 보고 확신했습니다. 이 작전은 결국 실패하리란 걸.”
“아직 해보지도 않았는데 뭔 소립니까.”
“나는 알고 있습니다. 작전이 성공했다면 우린 최소 은현에 있었어야 했지요.”
내 뒤에 앉은 담악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성 인근의 산길이면 죽호산이겠군요. 이 길을 따라 안휘로 간다는 건…… 시간이 세 배로 늘어난다는 이야기겠고요.”
“걱정 마시죠. 임기응변은 내 특기니까.”
진짜, 이 양반 왜 계속 초 치는 이야기를 하는 거…….
꽈악
-그때, 담악이 내 옷자락을 힘껏 잡아당겼다.
나는 별수 없이 그를 바라봐야 했다.
“왜 그러…….”
“나는 이곳에서 죽어야 합니다.”
그는 태연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 담담한 태도로 소름 끼치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이었다.
“이곳에서 비참하게 죽어야 합니다.”
“……
뭔 개소리를 하는 겁니까?”
“나의 죽음은 사흑련이란 화로를 불타오르게 하는 불씨가 될 겁니다.”
왜 그의 눈동자엔 미동도 없는 것인가.
자신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그렇게 불이 붙은 사흑련이란 화로는 무림맹이란 장작에 의해 더욱 오래 타오를 겁니다.”
마차에서 쓴 책들은 만약을 위한 대비가 아니었군요.”
그가 마차 안에서 집요하게 작성했던 서책은 일반적인 계책을 나열한 게 아니었다.
자신의 죽음을 시작점으로 한 사흑련의 부흥계책.
그는 애당초 자신의 죽음에 겁먹고 있었던 게 아니다.
그에게 있어선 죽음조차 그저 계책에 활용할 도구에 불과할 뿐.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생에의 집착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근본적 욕망.
죽음은 깨달음에 이른 도인도 승려도 피해 갈 수 없는 공포다.
그런데 어째서.
평생 속세의 문인으로 살았던 담악은 왜 이리도 생에 미련이 없는 걸까.
사흑련이 대체 뭐라고 그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그것이 내게 맡겨진 일이니까.”
단호한 듯 말하는 척하지만, 그 안은 텅 비게 느껴진다.
그렇기에 더더욱 납득할 수 없다.
전생에서 맡겨진 일을 하다 결국 소모된 담악이다.
현생에서까지 그런 꼴을 보고 싶지 않다.
“개소리 말고 꽉 잡고 계십시오.”
“지금부턴 저들도 진심으로 나올 겁니다. 그럼 진 공자의 목숨도 보중할 수 없을 겁니다.”
“제 목숨 걱정할 시간에 본인 안위를 좀 더 걱정하는 게 어떻습니까?”
이 상태로 내려서 도망칠 수도 있습니다.”
그 발로 어디까지 가려고?
“전 천하제일신법 중 하나를 익혔고, 제가 가진 이 비룡조는 천잠사로 만들어서 절대 끊을 수가 없지요. 부디 담 군사를 꽁꽁 묶어 끌고 가지 않게 해주시죠.”
내 협박이 먹혔던 걸까? 아니면 그 좋은 머리로 내게서 벗어나려 방법을 강구하는 걸까?
담악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물론 말에서 뛰어내리지도 않았고.
그의 머릿속에 그려진 미래란 대체 무엇일까.
“담 군사께서 죽은 이후에 사흑련은 어떻게 되리라 예상하십니까? 마교와 싸울 수 있습니까?”
“무림맹은 사라질 것이고, 사흑련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명맥을 유지한다는 건 대부분이 죽는다는 이야기군요. 그건 괜찮은 겁니까?”
“…….”
그가 어떤 미래를 예상했든 나는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왜 내가 쓸 만한 동료를 여기서 잃어야 하지? 미안하지만, 좆 같은 건 전생 한 번으로 족하다.
“같이 싸웁시다. 위정자들이 뭔 개지랄을 떨건 진짜 위험은 아직 다가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지금 어처구니없는 데에 목숨 걸지 말자고요.”
마교 그 끔찍한 새끼들을 상대로 싸우는 데에 얼마나 많은 영웅이 필요하던가.
하하.”
뭐가 우스운지 담악이 미소 지었다. 참으로 복잡해 보이는 미소였다.
“진 공자야말로 어처구니없는 것에 목숨 걸고 있는 거 아닙니까?”
“전혀 어처구니없지 않습니다.”
담악 당신은 나랑 같이 싸워야 하거든. 미래에 나 혼자 뺑이 칠 수는 없으니까.
산 어림을 지나다 서서히 길이 좁아지더니 결국은 말이 지나갈 수 없는 곳까지 다다랐다.
우린 결국 말에서 내리기로 결정하고 다시금 걷기 시작했다.
담악은 호위들이 번갈아 가면서 업고 뛰었다.
산속 깊이 들어갈수록 숲이 울창해지기 시작했다.
곳곳에는 화전의 흔적을 제외하곤 인적이 드물었고, 잠자던 야생 동물들은 낯선 방문자에 화들짝 놀라 도망갔다.
가장 앞서 수풀을 헤치고 나아가던 나는 뒤를 돌아보곤 수신호를 보냈다.
“잠시 쉬어 가도록 하죠.”
“저흰 더 갈 수 있습니다.”
호위들이 의지를 표명했지만 난 되려 고개를 저었다.
“담 군사님의 상태가 영 아닙니다.”
그제야 담악의 안색을 살핀 호위들이 뜨악하는 심경으로 자리에 멈춰 섰다.
계속해서 업혀 왔다곤 하나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니까.
더구나 매번 초상비를 시전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상태가 좋을 수 없었다.
“우웩-.”
바닥에 내려앉은 담악은 얼마 먹지도 않았던 육포 조각과 벽곡단을 모두 토해냈다.
“이거 참, 흑도 거두라는 호칭이 부끄럽군요.”
수통의 물을 어느 정도 들이켠 이후에야 조금씩 안색이 돌아오는 담악.
잠시 쉬고 있는 사이, 호위 하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군가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대낮의 숲속을 가득 채운 풀벌레 울음소리 사이로 일단의 인원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어이, 강 씨 비축해 놓은 곡식은 좀 있나?”
“있긴 무슨…… 다 먹고 없지. 보리 좀 심어 놓은 게 있으니 그거라도 가져다 먹든가.”
“감자는 이제 지겨워서 말이지.”
희미한 기척과 들려오는 말소리에 검에 손을 가져다 대었던 호위들이 스르륵 검을 내렸다.
그 순간, 숲을 내려오던 화전민 넷이 우리와 눈이 마주치곤 뻣뻣하게 몸이 굳었다.
호위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담악은 그들을 안심시키려 조심히 말을 걸었다.
“우린 위험한 사람이 아닙…….”
담악이 말하는 사이, 나는 궁시탄영의 수법을 펼쳐 뛰쳐나갔다.
그리고 동시에 네 사람의 마혈을 집었다.
탁, 탁, 탁, 탁.
내 행동에 호위와 담악이 기함했다.
“뭐 하는 겁니까?!”
뭐 하는 거냐고? 위험이 코앞에 다가왔을 때 움직이는 건 당연한 행동이 아니던가.
나는 담악에게 대꾸하지 않고 화전민 넷을 내려다봤다.
“너희들 개방 소속이구나.”
놈들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무, 무슨 소리인지.”
“저, 저희는 그냥 숲에서 화전을 일구고 살아가는 놈들일 뿐입니다.”
가련하게 몸을 떠는 사내들. 그들을 살펴보던 담악이 내 앞을 막고 섰다.
“진 공자. 그냥 평범한 사람들 아닙니까?”
평범하다고?
나는 숯으로 얼굴에 얼렁뚱땅 칠해 놓은 검댕이를 가리켰다.
“저 얼굴 좀 보시죠. 못 씻어서 찌든 때는 저렇게 선명하게 묻어 있지 않습니다.”
더불어 한 가지 더.
“저렇게까지 못 씻은 자들의 몸에서 왜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 겁니까?”
개방의 거지와 일반 거지를 구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차림새 그리고 ‘냄새’다.
“이놈들에게서 아
-주 오랫동안 씻지 않아 묵은 냄새가 납니까?”
담악이 뜨악하여 고개를 돌리는 순간.
툭
– 투툭
-뒤편에 섰던 자칭 화전민 두 놈이 마혈을 풀고 움직였다.
쐐애액
-수리검 여섯 자루가 담악의 등과 목을 노리며 날아든다.
나는 그것들을 잡아챔과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스걱
-찰나의 순간 소천검법이 휘둘러지며, 개방의 방도들의 목을 벤다.
채채채챙
-한 놈은 그 자리에서 즉사 했지만 나머지 셋은 팔과 무기를 내뻗으며 소천검법을 방어해 냈다.
이어 다시금 수리검이 담악을 집요하게 노리며 날아들었다.
호위들도 경악한 표정으로 뒤늦게 전장에 참여한 순간.
나는 맨 뒤에 있던 놈이 품 안에서 신호탄을 꺼내는 모습을 보았다.
나머지 두 명의 개방도는 호위들에게 맡긴 채 나는 즉시 맨 뒤의 놈을 향해 백월제천삼식 극쾌를 펼쳤다.
쐐애애액
-한 줄기 섬전이 쏘아져 나가며 녀석의 손과 목을 잘라낸다.
푸쉬
-핏물이 분수처럼 터져 나오며 죽음을 확인한 순간.
그의 잘린 손에서 떨어져 나간 신호탄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피잉
-대낮임에도 확연하게 들릴 만한 소리와 연기.
그리고펑.
마지막에 터지는 붉은색의 신호탄은 다시금 치열한 추격전의 서막을 밝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