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209화.
처음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뭐가 있겠냐 ㅋㅋㅋ 걍 드립 치는 거지.
-맨날 샌드백이라고 부르니까 애칭이라 하는 거임 ㅇㅇ
-이걸 설명해줘야 함? 겜안분인가. 갓오세 하는 사람 중에 이제 모르는 사람 없을 정도인데.
-ㄹㅇㅋㅋㅋ
-걍 애착 인형 같은 거라 생각하면 됨 ㅋ
-천마 눈나의 애착 인형…… 나쁘지 않은 삶일지도……?
-넌 좀…… 아니다.
-뭐야, 끝까지 말해줘요.
으레 하는 드립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 분위기가 바뀐 건 곧이어 이어진 의미심장한 멘트 때문이었다.
-ㅋ;; 애착 인형은 무슨.
-내가 듣고 본 게 있는데 ㅎ
-알 사람은 다 알지.
채팅창에 느닷없이 올라온 의미심장한 멘트.
심지어 한 명도 아니고 여럿이 하니 그 무게가 배가 되었다.
-? 둘이 뭐 있나?
-몰?루?
-뭐여. 반응 좀 이상한데?
-이게 WWE가 아니었다고?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 거로 유명한 두 남녀 사이에 무슨 비밀이 있다?
심지어 그 두 남녀가 모두 10대 길드의 마스터라는 거물이다?
찌라시고 뭐고 당연히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뭔데, 뭔데.
-둘이 뭔 사이인데.
-뭔 사이겠냐 ㅋㅋㅋㅋ 만나면 바로 트래쉬 토크 갈기는 사이지. 애칭 ㅇㅈㄹ 걍 관종이 어그로 끄는 거임 병머금 하셈.
-ㄹㅇㅋㅋㅋ 이걸 낚이냐.
-근데 둘이 좀 가까워 보이기는 하지 않냐. 유독 거리감이 없달까.
-ㅇㅇ 솔직히 나도 좀 의미심장하게 보긴 했었음. 천마 웃는 거 한 번도 못 봤는데 뭔가 무기고 주인이랑 있을 때만 웃는 것도 그렇고, 약간 전형적인 티격거리지만 서로 내심 좋아하는 소꿉친구 바이브?
-오…… 생각해보면 그렇긴 하네.
-오 ㅇㅈㄹ. 소설을 써라 그냥.
그렇게 때아닌 찌라시에 들끓은 채팅창의 분위기는 반반이었다.
둘 사이에 뭐가 있다는 말에 ‘어? 그런가? 듣고 보니 좀?’이라는 반응과 헛소리라고 일갈하는 반응.
정확히 둘로 나뉜 세력이 저들끼리 맞네 틀리네 싸우던 그때.
-아냐, 들어봐. 생각보다 진짜 그럴싸하다니까? 누구인진 말 못 하는데 전에 우리 길마가 천마 앞에서 아스트 욕한 적이 있단 말임. 근데 그때 갑자기 천마 개정색하면서 걸어오더니 대뜸 하찮은 것이 주제도 모른다면서 시비 걸면서 한 판 붙었다더라고.
-오…… 그래서 누가 이김?
-당연히 우리 길마가 개 털렸지 ㅋ 숨도 못 쉬고 처맞았음.
-ㅋㅋㅋㅋㅋㅋ
-하여튼 그때 옆에 있던 간부가 내 지인인데 표정 진짜 엄청 살벌했다고 함. 딱 남친 원수 만난 비밀연애하는 여친 바이브였다는데.
팽팽하던 무게추가 기울일 결정타가 올라왔다.
-뭐야, 진짜인 거야? 뭐지? 근데 왜 만나면 둘이 싸우기만 함?
-그렇다기엔 아스트는 아무 뭐가 없던데? 비밀연애 중이면 저 단순한 아재가 티가 안 날 리가 없을 테고.
-아재 성격상 좋아하면 저렇게 트래쉬 토크도 못할 듯 ㅋ
-뭐야뭐야, 그럼 설마…… 짝사랑?
-짝사랑은 씨X, 천마 누님이 뭐가 아쉬워서 저런 흔한 동네 아저씨랑 만나겠냐.
-흔하다기엔 피지컬이 괴물이긴 해. 아스트 피지컬 보고 보디빌딩계가 별을 잃었다고 그러더만.
-ㅇㅇ 심지어 능력남. 최소 재벌 2세 추정인데 ㅋ
-……ㅈㄹ마라. 천마 님이 그럴 리가 없음.
-왜 너가 그렇게 충격 먹냐?
-천마 팬인가 보지 ㅋㅋㅋ 예뻐서 인기 많긴 하잖슴. 정작 천마는 접근하는 남자들 다 벌레처럼 내려다본다던데.
└그게 매력이야 씨X아.
└어우…… 네 취향 따위 궁금하지 않았어.
└내…… 나이……50인데…… 우리 동년배들…… 다…… 천마 좋아한다…….
-아니, 그래서 진짜야? 뭐야?
-얼마 전에 두 사람 엮는 어그로 글들 봤는데 이왜진;;?
그에 분위기가 점점 묘해지고 있을 그때.
콰아아아아아아앙!!!!
과열되기 직전 화면 너머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이전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과격한 소리에 화제는 순식간에 전환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와, 저거 뭐야?
-ㅁㅊ;;;
-실화냐.
-야씨, 니들 눈엔 저게 뭐 그렇고 그런 사이로 보이냐? 그렇고 그렇게 만들어버릴 사이 같은데.
-와씨, 천마 ㅁㅊㄴ;;;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던 전투를 끝내버릴 거대한 한 방이 천마의 주먹에서 튀어나왔으니까.
무대 바닥에 생겨난 거대한 크레이터.
그 위에서 천마는 고고한 검은 학처럼 선 채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밑을 내려다보았고.
“끄으…….”
그런 그녀의 밑에는 쿨럭거리며 대자로 드러누워 피를 토하는 아스트가 있었다.
* * *
“?”
“뭐임?”
“뭐야, 왜 무기고 주인이 쓰러져 있는 거야?”
“방금 본 사람? 누가 설명 좀.”
줄곧 저돌적으로 돌진일도였던 아스트가 피를 토하며 쓰러져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에 관중석에선 환호조차 나오지 못하고 벙쪄 있었다.
[아아! 무슨 일인가요! 눈 깜짝할 새 벌어졌습니다.]
[허어,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해설자들도 다를 바 없었다.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며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예상치 못한 결과도 놀라웠지만, 더 황당한 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두 눈으로 보고도 파악하기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천마가 뭔가 한 거 같긴 한데…….”
“정권 지르기였나?”
“발 걸었던 거 같기도 하고…….”
“이상하다. 분명 아스트가 휘두르는 철퇴 피하고 있던 거 같은데 갑자기 굉음 터지면서 아스트가 쓰러졌네.”
전처럼 먼지 바람이 피어올라 시야가 가려지거나 하는 이슈도 없었다.
그냥 순수하게 사고회로가 눈으로 본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마치 복싱 경기를 슬로모션으로 보지 않으면 공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처럼.
하나 이 중에서 몇몇 소수 인원.
‘……천마, 저 정도였단 말인가?’
‘허. 괴물이 되어서 돌아왔네.’
‘아스트가 아니라 누구라도 당했겠어. 저런 움직임이 가능할 줄이야. 저게 10성에 도달한 천마신공인가.’
‘10성에 도달한 건 최근으로 알고 있는데…… 벌써 저 정도의 활용이 가능하다니.’
‘재밌는 걸 보여주는구나, 천마.’
NPC 소속의 주축을 맡고 있는 길드의 간부들과 10대 길드 마스터들.
혹은 그에 준하는 몇몇 하이 랭커들은 이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엔 도현도 포함되어있었다.
“이야, 제대로 공략하는데?”
-허어, 굉장한 움직임이었습니다, 주군.
-리자리자? 리자?
-뭐야? 난 못 봤는데. 방금 뭐 어떻게 된 건데?
도현의 혼잣말에 가까운 감탄에 순수하게 감탄하며 동의하는 찰리와 이해하지 못하는 두 가디언들.
그에 도현이 내심 놀란 눈으로 찰리를 바라보았다.
‘이걸 봐?’
경기에 크게 집중하지 않은 것 같은데 얼핏 본 것만으로도 정확히 파악하다니.
확실히 기사단장 출신이어서인지 움직임을 보는 눈이 살아있었다.
‘하긴, 찰리도 빛의 검 3성에 도달했으니까.’
그간 꾸준히 수련하더니, 어느새 빛의 검의 3성에 도달한 걸 넘어 4성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정말 작은 계기만 있으면 4성에 도달할 수 있을 정도의 경지.
5성이 최종 경지라는 걸 생각하면, 지금 찰리의 수준은 평범한 기사단장을 상회한 실력이라 볼 수 있었다.
특히 심연을 상대할 때는 모든 능력치가 강화되니 최고전력감일 터.
-리자리자! 리자!
설명을 요구하는 듯 폴짝거리는 엘리자의 모습에 상념에서 벗어난 도현이 검지로 엘리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보법이야.”
-보법? 무슨 보법…… 아! 혹시 예전에 그 천마군림…… 뭐시기 하던 그거?
-리자! 리자리자!
어리둥절하던 지하드가 문득 깨달았는지 탄성을 내지른다.
그에 자신도 떠올랐다는 듯 옆에서 폴짝거리는 엘리자.
천마가 사용하는 유일한 보법.
‘천마군림보.’
그것의 다음 초식.
[제2초식, 이무기를 꿰뚫은 붕권.]
천마군림보로 대상을 압도하는 것에 성공 시 발동 가능한 초식으로, 일직선으로 섬광처럼 튀어나가 방어력의 80%를 무시하는 일격을 가하는 기술.
아무리 모든 피해의 70%를 무시하는 방어구와, 온갖 방어 효과가 붙은 악세사리와 스킬로 떡칠한 아재라고 하더라도 저 기술까지 무시하지 못할 터였다.
다만,
‘저번에 본 것과 달라.’
기존에는 상대를 짓누르는 패기를 발산하는 걸 기반으로, 그저 앞으로 걸어가던 게 천마군림보였다.
그러한 천마군림보가 극성에 이르며 보다 자유롭고 현란하게 바뀌어서 그런 것일까?
2초식 또한 많이 바뀐 듯 보였다.
‘시전 시간이 없어.’
아니, 정확히는…… 카운터에 가깝달까.
아스트가 철퇴를 휘두르는 것에 정확히 반응하여, 천마군림보를 사용하여 오히려 안으로 파고들며 제로 거리의 붕권을 날린다.
콰아아아앙!!
타격 지점을 시작으로 뒤로 퍼져나가야 하는 충격파가 사라진 대신, 타격한 곳의 내부에 폭발일 밀집되는 구조.
단일기로 바뀌고 사거리가 극한으로 짧아졌지만, 그만큼 시전 시간이 빨라지고 데미지가 증폭되었다.
그 결과가 지금 보이는 저 장면이었으나…… 과연 아재도 아재였다.
[생명력이 60% 이하입니다.]
“커헉. 꺽. 어우…… 씨X럴. 죽을 뻔했네.”
“엄살도 유난스럽게 떠는구나. 그걸 맞고도 생명력이 반도 안 닳다니, 튼튼함을 넘어 미련한 거 아니냐.”
저걸 정통으로 맞고도 고작 40%의 피밖에 닳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니, 이전까지 누적된 걸 생각하면 30% 남짓밖에 닳지 않았다고 봐야 했다.
‘내가 맞았으면 바로 신의 눈물 발동됐을 거 같은데.’
그야말로 경이로운 방어력이었다.
그런 의미를 담은 천마의 극찬에 아스트가 피식 웃으며 툭툭, 제 갑옷을 두드렸다.
“이거 안 가져왔으면 아무리 나라도 큰일 날 뻔하긴 했어. 이거 딜 무시가 방어력 무시 딜까지 감소시키거든. 방감 무시는 효과가 절반 감소로 적용되지만 말이야.”
“…….”
방금의 공격이 방어력을 80% 무시하니까, 그 절반인 40% 감소로 적용되었다는 뜻.
실로 사기적인 방어구가 아닐 수 없었다.
그야말로 템빨의 극치.
방금 공격이 거의 최고 수준의 일격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허탈할 지경이었으나…… 천마는 도리어 즐겁다는 듯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다.
“그래, 샌드백은 내구성이 튼튼해야 하는 법. 아직 시험할 게 많으니 잘 버텨보아라.”
아직 써먹지 못한 기술이 한참 남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미안한데 이제 그만 맞아줄 생각이라서 말이야.”
“호오?”
“슬슬 끝내자. 사람들 지루하겠다야.”
“관종이로고.”
“그딴 말투로 그런 단어 쓰지 말아 줄래?”
“쯧. 꼰대로고.”
“에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아스트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전봇대만 한 철퇴를 양손으로 꽉 쥔 채 허벅지가 팽팽해질 만큼 두 다리에 힘을 줄 뿐.
지면을 미는 발바닥에서부터 종아리, 허벅지를 타고 엉덩이까지 근육이 부풀어 오른 순간.
퍼엉!
육중한 거구가 마치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 높이만 무려 10M에 달할 정도.
보통의 경우에는 허공에 떠 있으면 그저 움직이지 못하는 과녁 신세가 될 뿐이지만, 아스트에겐 예외였다.
[‘결코 물러서지 않는 파괴왕의 철퇴’의 특수 효과를 발동합니다.]
[‘파괴왕의 강인함’ 효과로 공격을 준비하는 동안 그 어떠한 상태 이상과 넉백에 방해받지 않습니다.]
[갑옷에 깃든 ‘반악(叛惡)의 돌’과 천상의 미스릴, ‘천광은정(天光銀晶)’의 기운이 피해의 70%를 흡수합니다.]
[‘수호신의 미스릴 보옥 귀걸이’의 효과로 마나로 이루어진 공격을 일부 무시합니다.]
……
[전설 스킬 ‘드높은 전사의 긍지’를 사용하여 일시적으로 방어력이 100% 상승합니다.]
넉백 불가, 상태 이상 불가.
압도적인 방어력과 공격 무시 효과의 콜라보까지.
[플레이어 ‘아스트’님이 전설 스킬, ‘파괴신의 가호’를 발동합니다.]
[90초 동안 5번째 타격마다 강력한 ‘파괴의 일격’을 날리며 데미지는 무기 공격력에 비례합니다.]
[스킬 발동 후 첫 공격은 ‘파괴의 일격’이 적용됩니다.]
[초월 고유 능력 ‘리미트 해제’를 발동합니다.]
[리미트 제한을 해제하여 일시적으로 무기 업그레이드의 효과를 극한으로 사용합니다.]
[‘+20 결코 물러서지 않는 파괴왕의 철퇴’가 완성됩니다.]
[사용 시 무기가 파괴되며 50분간 특성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20 결코 물러서지 않는 파괴왕의 철퇴’의 두 번째 효과 ‘극복’이 무기 파괴 효과를 막습니다. (남은 횟수 (2 / 3)]
우우우우우웅-!!
철퇴에 모이는 비현실적인 기운들을 눈앞에 두고도 그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이것이 아스트가 준비한 최강의 전략.
답지 않게 굳은 얼굴로 올려다보고 있는 검은 여인을 보며 아스트가 호쾌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따끔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