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215화.
파천귀의 시험.
철쇄천겁을 얻기 위한 자격을 증명하던 중, 파천귀가 유독 경악했던 순간이 몇 차례 있다.
횟수로 치자면 세 번.
-허어, 이걸 벗어나다니. 보고도 믿을 수가 없구나.
그중 첫 번째가 바로 세 번째 사슬과 네 번째 사슬을 버텨냈을 때였다.
-영겁무사부옥지옥(永劫無赦縛獄地獄)……. 사면 없는 영겁의 구속지옥이거늘.
말 그대로 상대를 끈질기게 옭아매고 구속하는 지옥.
명계에 있는 실제 지옥의 특성을 그대로 두 사슬에 나눠 담아내었다고 하던가.
악독한 기원답게 능력 또한 소름 끼치기 그지없었다.
촤라락- 꽉.
[제3계 사슬 – 죄박형계(罪縛刑界)를 시전합니다.]
[10초간 묶인 대상에 한하여 죄인을 묶는 형벌의 세계를 구현화합니다.]
[구속당한 대상은 이동기를 사용할 수 없으며, 묶인 동안 시전자에게 받는 피해가 20% 증가합니다.]
[또한, 격의 차이가 나지 않는 한, 자력으로 사슬을 끊어낼 수 없습니다.]
[제4계 사슬 – 무사부옥(無赦縛獄)을 시전합니다.]
[죄박형계에 구속당한 대상이 사슬을 끊으려 시도할 시 강한 반발력을 가하며, 3계 사슬의 효과가 증폭됩니다.]
[반발 중첩 시마다 상태 이상을 1개 부여합니다.]
“이게 무슨……! 어떻게 리스크도 없이 이 정도의 바인딩 기술이 있을 수…… 크윽!”
“얌전히 있어. 발버둥 칠수록 더 강하게 옭아맬 테니까.”
“크, 으윽…….”
아더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진 상태이다.
처음 보이던 긍정적이던 열망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건 절망에 가까운 무력감과 박탈감뿐.
‘저거 뭔 기분인지 잘 알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늪에 갇힌 기분은 실로 불쾌하기 짝이 없으며, 발버둥 칠수록 도리어 가라앉는다.
한 번 구속된 대상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죽음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마치 파리지옥에 빠진 파리처럼.
‘도움을 줄 동료가 없는 일대일에선 사실상 가불기지.’
그렇기에 시험을 치를 때, 단 한 번도 묶이지 않기 위해 죽어라 굴러야했다.
백 번 잘해도 한 번 실수하면 끝인 미친 시험이었으니까.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깬 건지, 참 주옥…… 아니, 지옥 같았다.
‘잘 통하는 거 같아서 좋네.’
그 지옥을 이제 자신이 다룬다는 점에선 만족스럽지만.
‘어디, 그럼 끝내볼까.’
씨익 웃은 도현이 사슬을 쥔 채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그런 그의 손에 쥐어있던 사슬이, 어느 순간 빛을 발하며 사라졌다.
그 대신 모습을 드러낸 건 한 자루의 검.
[천변(千變)이 ‘+15진(眞) 하얀 사자의 설화(雪花)검’으로 변형됩니다.]
이게 철쇄천겁(鐵鎖千劫)의 사기성이었다.
본디 무기를 바꾸면 사라져야 마땅하건만.
몇몇 사슬의 경우 이미 발동된 상황에선 별개의 능력으로 취급되기에, 철쇄천겁의 착용을 해제해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저벅.
도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집행신의 십자가를 발동합니다.]
[플레이어 ‘아더’님을 대상으로 지정합니다.]
[두 발이 2초 이상 지면에 닿아있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수호신의 가호를 발동하였습니다.]
[플레이어 ‘아더’님을 대상으로 지정하였습니다.]
[뇌룡강림(雷龍降臨)을 사용하였습니다.]
아아아- 파지직!
‘기왕 하는 거 확실하게.’
천상의 하모니가 울리며 솟아난 십자가와 두 사람의 머리 위에 뜨는 검방 형태의 징표.
그리고 두 사람의 위로 내리꽂히는 푸른 뇌룡까지.
“크으윽……!”
사슬에 묶인 덕에, 주변 일대를 뒤덮은 스파크에 꼼짝없이 감전된 아더가 침음을 흘렸다.
꼼짝없이 덫에 갇힌 쥐의 신세가 된 모습.
다소 과한 퍼포먼스 아닌가 싶지만, 결과적으로 도현의 선택은 옳았다.
[대상이 ‘성검(聖劍), 아스바온’의 주인임이 확인됩니다.]
[대상이 타이틀 ‘여신과 가장 가까운 사도’의 소유자임이 확인됩니다.]
[플레이어 ‘아더’님의 격이 시전자를 상회합니다.]
[제3계 사슬이 격에 짓눌려 약해집니다. 시전 시간이 대폭 감소하며, 데미지 증폭 효과가 사라집니다.]
[제4계 사슬이 격을 버티지 못하고 약해집니다.]
‘이 문구를 유저한테서 볼 줄은 몰랐는데.’
하기야 그 르베드 경조차 선택받지 못한 성검의 주인인데, 저 정도는 되어야겠지.
지금에 와선 아무렴 상관없지만.
[천왕진기(天王震氣)를 시전합니다.]
[기사왕, ‘루슬레인 발레몽’의 기 운용법을 활용한 천왕진기의 기세를 발현합니다.]
[천변(千變)에 ‘어둠 두르기’를 사용합니다.]
[타이틀, ‘어둠 파괴자’가 발동합니다.]
[어둠 두르기의 효과가 상승합니다.]
[마나 소모량이 적어지며 방어력 무시 효과가 증폭되고, 확률적으로 상대를 ‘암흑’ 상태로 만듭니다.]
준비가 된 걸 느끼며 도현이 발을 옮겼다.
저벅, 나아갈 때마다 발을 타고 올라온 태산과도 같은 기운이 전신을 순환한다.
출구를 찾지 못한 듯 몇 차례고 순환하던 기운이, 끝내 터져 나오듯 검 끝에 몰린 순간.
[역천기(逆天期) 제2초식, 파(始)를 사용합니다]
“그럼, 간다.”
“아…….”
도현은 망설임 없이 검을 그어, 기운을 쏟아내었고.
쨍그랑-
마치 유리가 깨져나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세상이 하얗게 물들었다.
성스러운 기운에 의해 백금색을 띠는 신성력과 달리, 강력한 충격파가 주변을 뒤덮으며 찾아온 순백의 세상.
‘아…….’
그 속에서 아더는 제 몸을 바라보았다.
드높은 신성력이 안구를 보호한 덕에 가능한 행위였다.
철그럭.
거대한 황금 십자가에 걸려있는 몸.
두 개의 검붉은 사슬에 팔다리가 묶여, 조금의 미동도 허락되지 않는다.
전신을 짓누르는 천왕진기의 기세와 파(破)의 충격파를 보며 아더는 허탈한 숨을 뱉었다.
‘……이 정도라고?’
전투 센스부터 전략, 수 싸움, 기술 활용.
그 외 전투력이라 칭할 모든 것에서 비비기는커녕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잊혀진 무덤에서 처음 보았을 땐 놀랐지만 이길 수 있을 거라 여겼고, 미궁에서는 감탄하며 따라잡힐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흑시가 가리온 때 활약하는 모습에선 경악했다.
자신은 절대 저렇게 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뇌리를 지배했다.
하나 곧 신대륙이 업데이트되고, 수개월을 뒤처지게 된 카이저와 달리 성검의 주인이 된 지금.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더는 진심으로 자신이 우위를 점했다고 생각했다.
내심 멸살과도 승부를 겨룰 만하다고 여겼으니까.
그리고 지금.
그게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를 여실 없이 깨달았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멸살이 얼마나 괴물 같은 존재인지.
그와 비교하며 내심 얕잡아보던 카이저가, 이미 자신 따위는 한참 전에 추월했음을.
……아니, 정말 따라잡힌 게 맞을까?
처음부터 넘을 수 없는 벽을, 넘볼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
눈앞까지 온 충격파가 전신을 뒤덮는 걸 느끼며,
아더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래, 어쩌면.’
그 순간 가슴 한 켠에 자리 잡은 건 허탈함이나 굴욕감보다는, 놀라움과 기대감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멸살을 이기는 자는 존재하지 않으리라 여겼던 확신이 깨진 것에 대한 놀라움.
‘카이저, 너라면…… 정말 이길지도 모르겠군.’
그리고 불헌 듯 품은 생각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그에 대한 해답은, 곧 볼 수 있을 것이다.
콰가가가-!!!
[플레이어 ‘아더’님이 탈락하였습니다.]
[더 킹 길드의 참가자가 모두 탈락하여 ‘더 킹’ 길드가 탈락합니다.]
눈부신 빛이 그치고.
충격파에 의해 풍비박산이 난 경기장이 드러났다.
와아아아아!!!!
-맙소사! 카이저, 카이저 선수가 압도하며 아더 선수를 탈락시켰습니다!!
-엇비슷하긴 했으나 정배를 뽑자면 아더 선수가 조금 더 높았는데…… 이 정도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일 줄은 몰랐습니다.
-감히 나를 무시해!? 에라이, 나 뎀로크 1위 출신 카이저야! 라고 말하는 듯한 퍼포먼스였죠?
흥분한 관중들의 함성.
마찬가지로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해설자들의 목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채운다.
와아아아아아-!!!
그 위에서 검을 어깨에 댄 채 당당하게 선 홱 뒤돌며 말했다.
“다음.”
“…….”
이 순간.
참가자들의 눈에 도현의 검은 가면과 도복이, 유독 더 저승사자처럼 보이는 건 기분 탓이 아니리라.
* * *
[경기가 종료되었습니다.]
[플레이어 ‘카이저’님을 제외한 모든 플레이어가 탈락하였습니다.]
[승리한 길드는 ‘카신교’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와아아아아아!! 와아아!!
“으아아아아!! 카이저 선수가 최종 승리를 쟁취하며 결승전에 진출합니다!!!”
“이로써 멸살 선수와 카이저 선수가 붙는 건 확정된 상황이죠!!”
“와, 카이저 선수. 이 정도였나요!? 라이하스 선수를 초살…… 크흠, 승리해 낼 때부터 예상했지만 정말 한계를 알 수 없는 선수입니다.”
“사실 카이저 선수가 후발주자인 건 이미 유명하거든요. 갓오세에서의 1년 6개월은 무척 큰데 어떻게 벌써 이렇게 성장을…… 성장도 성장이지만, 전투 센스가 말도 안 되는 수준입니…….”
정배였던 아더를 찍어 누르는 퍼포먼스와 일대 다수에서 펼친 압도적인 양학쇼.
여러모로 충격적인 경기력에 해설진의 목소리가 커졌다.
“카이저! 카이저! 카이저! 카이저!”
“카이저, 그는 신이야! 카이저, 그는 신이야! 카이저, 그는 신이야!”
“믿고 있었습니다, 신이시여!!”
“카멘!”
“와씨, 카이저 미쳤다!!!”
관중석 또한 마찬가지.
그리고 이 파급력은 단연 현장에서 그치지 않았다.
-ㄷㄷㄷㄷㄷㄷㄷ
-미친;;;
-와씨;; 카이저 이 정도였냐?
-ㄹㅇ 상대가 안 되던데.
-ㅅㅅㅅㅅㅅㅅㅅ
-역겨운 억까들 컷컷컷컷컷~!!
-?? : 성검의 주인이 x으로 보이냐고? 어, 형은 x으로 보여~
-씨Xㅋㅋㅋㅋ 내가 뭘 본거지.
-카이저 오늘 폼 미쳤네;;
-성검이 사기야? 그럼 못 쓰게 하면 되잖아.
-어, 형이야. 형은 묶어놓고 패.
-묶…… 어? 오호라.
-오호라는 니X, 걍 개패고 싶네.
-악착같이 물어뜯던 벌레들 카이저가 이기니까 귀신같이 사라진 거 ㅈㄴ 역겹네 ㅋㅋㅋㅋ
-카퀴라고 했나? 자, 이제 누가 벌레지?
-카멘…….
워낙 갈라치기와 악질성 채팅이 많았던 만큼, 채팅창에는 도파민이 폭죽마냥 펑펑 터져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악질들의 화력에 밀렸을 뿐.
현시점 카이저의 팬층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기에, 마치 정의구현이라고 해낸 듯한 반응들이었다.
-와, 근데 진짜 카이저 이 정도일 줄은 몰랐음;;
-나 카이저 팬인데 나도 몰랐다.
-카신교 신도들은 알았음?
-……카멘.
-그저 신의 광명을 따를 뿐이지요.
-어? 이 새끼들 말 돌리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 지들도 몰랐네.
하지만 그들도 설마하니 이 정도를 보여줄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눈치였다.
그래서일까?
-이 정도면 진짜 멸살이랑 해볼 만한 거 아님?
-모르겠네. 멸살이 보여준 게 너무 넘사라…… 근데 또 카이저가 보여준 것도 진짜 말 안 되는 수준이라 스읍;;
-둘 중 누구도 지는 그림이 안 그려짐;; 이럼 우야노.
-아, 둘 다 팬인데 누굴 응원해야 하냐.
-오늘부로 갓오세 최강자 결정되는 거 아냐. 와씨, 나까지 긴장되네.
-아, 그래서 언제 시합 치르냐고~! 빨리 남은 경기 끝내라고.
-야마모토 관심 다 뺏겨서 오열 중 ㅋㅋㅋ
-? 뭐여, 걔도 여기까지 올라왔냐?
-ㅇㅇ 다음 시합임. 어 지금 시작한다.
-관심 없음. 결승전 시작하면 불러주셈. 햇반 좀 데워오게.
-ㅋㅋㅋㅋㅋㅋ 그래도 명색이 10대 길드 마스터인데 너무하네.
이번에 카이저가 오름으로서 멸살과의 결승전이 확정된 지금.
채팅창엔 둘의 승패에 관한 얘기만이 가득했다.
“멸살이 이기지.”
“노노. 카이저가 이김.”
“개소리야. 멸살이 근본 10대 길드 마스터인데.”
“근본 따질 거면 뎀로크부터 따져야지. 애초에 거기서 카이저가 1위였음.”
“둘이 붙은 적은 없는 거로 아는데? 솔직히 카이저가 이번 경기에서 보여준 게 많긴 해도, 아직은 멸살이 탑독이지.”
“그래도 카이저가 질 거 같진 않은데?”
“아, 진짜 빨리 결승전 됐으면 좋겠네. 야마모토인지 나발인지 경기 꼭 봐야 돼?”
“어차피 우승은 둘 중 하난데 시간 낭비 오지네.”
“인정.”
현장의 반응도 그와 비슷했고, 그러한 분위기 때문일까.
아니면 결승에 올라가도 어차피 질 거라는 생각에서였을까.
‘올라가서 뭐하냐…….’
‘저 괴물들이랑 싸우라고? 그냥 기권하는 게 낫지.’
‘어차피 다 편집 당하게 생겼는데 괜히 깝치지 말고 여기까지만 하자.’
‘눈치 없이 시간 끈다고 조리돌림 당할 게 눈에 훤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의욕이 떨어진 참가자들 다수가 기권하거나, 시작하자마자 박치기 공룡 뺨치는 무지성 패싸움을 벌였고.
[참가자 ‘리브’ 님이 ‘야마모토’님에게 처치되어 탈락합니다.]
……
[‘야마모토’님을 제외한 다른 참가자들이 모두 탈락하였습니다.]
[경기가 종료됩니다.]
[승리한 길드는 미카즈키 길드입니다.]
[‘르펫’님과 ‘가릿슈’님을 제외한 다른 참가자들이 모두 탈락하였습니다.]
[승리한 길드는 ‘세라핌’입니다.]
그 결과 남은 두 시합이 5분 만에 끝나버리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잠시 후 마지막 경기가 시작됩니다.]
[참가 길드는 ‘카신교’, ‘집행’, ‘미카즈키’, ‘세라핌’입니다.]
[지정된 참가 인원들은 모두 무대에 올라주십시오.]
마침내, 최종전의 막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