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230화.
“으윽…….”
“미친…… 이게 다 뭐야.”
“이, 이걸 잡으라는 건 아니지?”
“월령단인지 뭔지에 이어 이젠 심연의 강자들이라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그에 공포에 질린 유저들은, 도망조차 치지 못하고 발이 얼어붙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기념비적인 순간을 만끽하듯 가만히 서 있던 강자들이, 입을 연 건 그때였다.
[크흐…… 흐. 그릇이여, 몰골이 말이 아니군.]
[그 남자의 검을 잇고도……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건가?]
[실망이로군.]
귀 안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소름 끼치는 목소리.
하나 소리에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세 강자의 시선을 동시에 받으니, 숨이 턱 들어 막히며 몸을 옥죄는 기분이었으니까.
다행이라 해야 할까.
그들의 시선은 곧 다른 곳으로 향했다.
[월령단…… 버림받은 자여. 재미있는 짓을 벌였군.]
[약조는 깨졌을지언정, 약속의 날은 아직 완연히 깨지지 않았거늘…… 감히…… 네놈들이 금기를 깨려 드는가…….]
낮게 읊조리듯 말하지만, 그 안에는 격한 분노와 질책이 담겨있었다.
타당한 잘못을 짚어내는 것만 같았으나, 월령단의 단장은 코웃음을 치며 맞받아쳤다.
[아니, 약속의 날은 깨졌다. 조건은 모두 달성되었으니.]
그 뜻을 곧장 이해한 심연의 강자들의 기세가 달라졌다.
불쾌함에 가까웠던 감정에 싸늘한 분노와 한발 늦었다는 것에서 오는 격양이 담기기 시작한 것이다.
고오오—-
전신에 한기가 돋는.
생물이라면 본능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압박감이 짓눌렀지만, 단장은 담담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그러는 그대들도 바로 달려온 것 같아 보이는데. 선수를 치지 못해 억울한가?]
아무리 그들의 기운에 의해 지면 밑에 심연화를 할 양분이 생겼다곤 하나, 이 정도로 빠르게 등장한다?
이건 이전부터 준비했다는 것 외엔 말이 안 된다.
그리고 그걸 모를 만큼 단장은 심연이란 것에 대해 문외한이 아니었다.
[잊은 건 아니겠지. 모든 심연이 너희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이는 심연의 강자들에게 있어 아킬레스건과 같은 일.
그것을 담담하게 꺼내자, 결국 심연의 강자들이 강렬한 분노를 토해냈다.
[감히……! 네까짓 게 우리를 능멸하려 드는 건가.]
[네 놈은 아직 정당한 격을 부여받지 못하였다. 그런 네가 한 번 자리에 올랐던 우리를 상대로 도발을 해?]
[못할 것도 없지. 결국엔 네놈들도 격을 잃어 나와 같은 위치인 것을.]
[건방진……!]
극심한 분노로 인해 공간 전체가 뒤흔들리고, 후끈 달아오르다 못해 타오르는 공기에 숨이 턱턱 막힌다.
가히 분노의 주인다운 기세.
[그만. 같잖은 도발에 넘어가지 마라, 분노. 애써 만든 심연의 통로가 무너지려 하지 않나. 그게 저놈이 원하는 바다.]
[…….]
하나 그래도 이성이 날아가진 않았는지, 파멸의 주인의 중재에 기운을 거두었다.
[이런. 아쉽게 되었군.]
마지막까지 담담한 어조로 비아냥대는 모습에, 다시금 분노가 끓어올랐으나 참았다.
아직 심연의 통로는 불완전한 상태.
금이 가기 시작한 약조가 완전히 무너져 약속의 날이 되려면, 조금의 시간이 남아 있다.
여기서 날뛰어봐야 서로 좋을 게 없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철수한다.]
-에엑! 이렇게 끝낸다고? 한창 몸이 달아올랐는데……
-멍청한 소리 하지 말고 명령을 따라라, 다칸.
-사도들의 수준을 파악하고, 심연의 움직임을 보았으니 목적은 이루었다. 단장의 판단이 옳아.
-아니, 나도 아는데 아쉽다는 거지.
그리고 그건 월령단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빈집을 노렸던 것이지, 이렇게 전면전을 펼치기엔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너무 컸다.
-쳇, 다음에 보자고 영감. 오늘 받은 건 전부 이자 쳐서 돌려줄게.
결국, 다칸도 순순히 수긍하자, 단장이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심연의 강자들이 공격하리란 염려는 없었다.
지금 통로가 부서졌다간, 약속의 날이 완전히 깨졌을 때 꼼짝없이 구경하게 될 테니.
다만, 떠나는 그들을 향해 경고를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기억하라. 아브타르텔의 어느 곳에서 일을 벌이든.]
[우리는…… 그 밑에서 언제나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심연의 눈을…… 피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경고는, 마지막으로 도현에게까지 닿았다.
[투신의 그릇…… 아직 여물지 못한 반쪽짜리 계승자여.]
[다음에 보게 되었을 때도 지금과 같다면…… 그 날이야말로 최후의 날이 될 것이다.]
[죽지 마라…… 내 손에 죽음을 맞이해야 하니……. 크…… 흐흐…….]
그 말을 끝으로.
그들은 뒤를 돌아 떠났고, 뒤를 지키던 거대한 심연의 존재들이 그 뒤를 따랐다.
심연의 눈이 서서히 감기며 점차 멀어진다.
그렇게 통로가 닫히기 직전.
크어어-
심연의 마수로 추정되는 검은 무언가를 불러낸 그들이, 그 위에 올라타곤 말했다.
[15일.]
“……뭐?”
[그것이 너희에게 남은 시간이다. 그때 조각을 찾으러 오겠다, 계승자여.]
그렇게 일방적으로 선언하곤 사라지는 월령단.
그들이 떠나고 사라진 경기장은 그야말로 폭풍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듯 처참했다.
“미친, 대박…….”
“다 찍었어! 다 찍었다고! 이건 무조건 특종이다!”
“혀, 형님들 보셨습니까? 와씨, 진짜 목숨 걸고 찍었습니다. 아니 게임인데 무슨 엄살이냐고요? 새꺄, 네가 와서 찍어봐. 이게 막상 앞에 서면 오줌 지리지나 않으면 다행인 수준이라니까?”
관중석과 무대 사이 방호벽에 숨어있던 방송사 직원들과 스트리머, 그리고 기자들.
마지막으로 비틀대며 일어나는 멸살과 천마, 아스트 등을 비롯한 하이 랭커들과 다리가 풀려 쓰러지는 랭커들까지.
이곳의 모두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압도적인 것을 목격하였으니까.
“후우…… 힘들구만.”
그중 도현 무리가 있는 곳을 향해 다가오며, 권왕이 앓는 소리를 내었다.
“네가 카이저지? 딱 봐도 알겠구만. 다른 놈들이랑은 느껴지는 생체 에너지가 달라. 인간이라면 막혀있어야 할 문이 열려있어. 과연 극복을 개화한 게 확실하…… 흐음?”
도현을 물끄러미 보던 권왕의 눈빛이 이채를 띠었다.
“……우리와 단전 구조가 다르구먼? 하나의 단전에 기운을 쌓는 게 아니라, 신체 전체로 받아들이고 있어. 이런 원리라면 모든 재능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건데…… 허어? 인간의 몸으로 가능한 건가.”
단 한 번 훑어보는 것만으로, 사도들과 자신의 차이를 간파하는 모습에 도현은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심지어는 도현 본인도 모르는 원리였다.
그야말로 내면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
“이거 그 까다로운 양반이 관심을 가질 만도 하군. 잠재력만 두고 보면 나 이상의…… 어쩌면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돌연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홀로 골똘히 생각에 잠기던 그때.
그런 권왕을 향해 아스트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권왕. 덕분에 살았습니다.”
“……본좌도 감사를 표하지. 인상 깊은 무술이었다.”
“와, 이거 지금 보니 검성 녀석보다 더한 컨셉충이었네. 하다 하다 칠강한테까지 그 지X하는 거봐라.”
“닥치거라, 샌드백.”
두 사람의 대화에 권왕이 인자하게 웃었다.
“보기 좋구만. 나도 저랬던 때가 있었지.”
“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그 생각이 틀렸음을 짚고 넘어가고 싶군. 이 샌드백과 본좌가 그리 엮이는 건 무척 불쾌하다.”
와락 인상을 찌푸리며 부정하고 드는 두 사람을 가뿐히 무시하며, 권왕이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심연이 도움이 될 때도 다 있구만. 저 월령단이라는 녀석들…… 들었던 것보다도 더 강해.”
“하지만 혼자서 막아내지 않았습니까.”
“아니.”
권왕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약조가 깨지긴 했으나, 모든 약조가 깨지진 않았기에, 녀석들이 전력을 발휘하지 않았던 게지.”
“맙소사.”
“전력이…… 아니었다고?”
“……믿을 수가 없군.”
뒤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멸살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깃들었다.
이렇게까지 당한 게 처음인데, 그 대상이 전력도 아니었다 하니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 것이다.
하나 권왕은 어김없이 말을 이어갔다.
“저 단원이라는 녀석들 하나하나가 이 늙은이와 필적하네. 그중 두 녀석은…… 어쩌면 나보다도 강할지도 모르겠군.”
“…….”
그에 아무런 부정이나 반응이 돌아오지 않았다.
권왕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던 것도 있지만, 상황이 생각보다도 더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단원이 칠강 중 한 좌인 권왕과 필적하거나 그 이상…… 그렇다면 단장은 어느 정도인 거지?’
직접 부딪혀본 단장의 강함은, 단원들과는 그 궤를 달리했었다.
아무리 리스크를 짊어지기 싫다 했더라도, 그 심연의 강자들조차 맞서지 않고 화를 가라앉힌 것부터가 말 다 했다.
심연의 강자 셋과 군단이 한 번에 덤벼도, 그들을 단숨에 제압할 자신이 없단 소리였으니까.
‘그놈들이 나눈 대화도 심상치 않았고.’
격이니, 뭐 자리에 올랐다 내려왔니…….
알 수 없는 얘기가 오갔는데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들도 월령단의 존재를 알고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인물이 한 명 더 있었다.
“……권왕. 월령단에 대해 어디까지 아십니까?”
권왕(拳王), 드란 그라디트.
고대 역사에 대해선 전무한 인간 NPC들과 달리, 그는 어지간한 이종족 장로보다도 더 깊게 알고 있는 눈치였다.
“어디까지라…… 할 이야기가 많겠군. 이곳에서 얘기할 게 아니라, 함께…….”
그에 권왕이 진중한 얼굴로 답하던 때였다.
띠링-!
갑작스레 울린 알림.
동시에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창을 확인한 도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돌발 퀘스트 ‘운명의 조각을 지켜라’를 클리어하였습니다.]
[클리어 보상이 주어집니다.]
[월령단(月令團)에 대한 정보를 권왕을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모든 운명의 조각이 접촉하여 약속의 날이 찾아옵니다.]
[조건을 달성하였습니다.]
[아브타르텔에 15일의 유예 기간이 주어지며, 모든 유저들에게 메인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정신없이 떠오르는 시스템 창의 향연.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도현을 놀라게 한 건, 마지막 퀘스트 창이었다.
[메인 퀘스트 ‘종막(終幕), 약속의 날이 발생하였습니다.]
[선택지가 존재하는 퀘스트로, 선택지에 따라 메인 퀘스트의 내용과 조건이 달라집니다.]
[종막(終幕), 약속의 날]
-등급 : 메인 퀘스트, 아브타르텔 급 퀘스트
-설명 : 지금은 잊혀진 역사.
고대 시절에 맺은 약조가 깨지고, 약속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과거 모든 것을 바꾼 전쟁에 참여했던 ‘다섯 왕좌의 주인’을 비롯한 수많은 존재들이 비로소 활동을 재개합니다.
이에 아브타르텔의 신들이 분노를 표하며 자신의 사도들에게, 그들을 저지하라 명합니다.
-유예기간 동안 신의 편이 되어 집행자가 될지, 신을 거역하고 대항자가 될지 정하십시오.
[집행자의 길 : ‘신의 사도’로서 종막(終幕)에 참여합니다.]
[대항자의 길 : ‘신을 거역한 대항자’로서 종막(終幕)에 참여합니다.]
‘……허.’
비로소, 종막의 서막이 도래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