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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적과의 조우(5)>“용소아는 헛소리를 하지 않는 것이야.”
곤명으로 향하는 길에 당서희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곤 시무룩하니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협객이 바보 같은 것이야?’라고 물었다.
내내 용소아가 했던 말이 신경 쓰였나 보다.……
뭐, 실제로 용소아가 한 말은 아니었지만.
나는 당연하게도 그녀를 두둔하며 용소아를 욕했다.
“용소아가 더 바보 멍청이 말미잘 등신입니다.”
그러곤 나도 모르게 시무룩해져 있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왠지 차가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당서희.
난 그제야 내가 뭔가 잘못했음을 깨달았다.
사련이도 그렇고, 여자들은 머리 만지는 걸 극도로 싫어하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이유는 아니었나 보다.
“……
그 정도는 아닌 것이야.”
그녀의 눈이 차게 식은 이유는 내 말이 잘못되었기 때문이었다.
잘못된 건 아닌 것 같…….
“크흥…….”
가늘어진 눈빛과는 달리.
머리를 더 쓰다듬어 달라는 듯, 어느새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고 있는 당서희.
머리를 더 쓰다듬어 주자 왠지 그르릉 소리를 내는 그녀를 보며, 지난밤 용소아가 남긴 말을 되뇌었다.‘진소운. 넌…… 불확실성이다.’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애당초 정도회 기득권의 정점에 서있는 놈이 하는 말 따위가 내게 합리적으로 들릴 리가 없겠지만.
“흠…….”
그럼에도 애써 이해해 보자면.
나는 놈들의 예상을 벗어나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성가신 변수’라고 봐야겠지.
정도회나 백도회나 자신들이 예상하는 미래가 있을 것이고, 나는 매번 그것들을 철저히 부숴왔으니까.
그런 면에서 그들에게 있어 내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확실성이란 건, 맞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지금 나의 상태만 봐도 그렇다.
회귀한 이후에 내가 ‘지금의 내가’ 되리라 생각을 한 적이 있었나.
물론 처음부터 청룡환이라는 위험천만한 물건이 귀속되어 있던 탓에, 애초에 내 인생은 회귀한 순간부터 확실성과 한 천 리쯤 떨어진 건 맞다.‘근데 그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어찌어찌 부족한 것들을 기우고 꿰매서 살려고 하다 보니 이렇게 되어버린 거 아니겠나 이 말이다.
“근데 어째 너만 이리 멀쩡하냐?”
화정산의 밉살맞은 말에 달리 대꾸할 말이 없었다.
당장 나의 상태가, 내가 예상조차 되지 않는 비정상인 존재임을 말해 주고 있었으니까.
“아무리 만독문의 치료가 훌륭했기로서니…… 너는 애당초 아예 상처가 난 적도 없던 사람 같은데?”
만독문에서 강순탁 일당과 우리가 대립할 때, 용봉지회가 끝내 교관인 강순탁 일당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던 건.
누가 봐도 우리 쪽이 갖은 고생을 겪어낸 처참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제 발로 걸어온 이들도 온몸에 금창약을 바르고 피를 멎게 하려 천을 둘둘 감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어째 네놈 피부만 백옥처럼 깨끗하단 말이야…….”
가장 고생하고 가장 힘들었던 내가, 몸 어디에도 상처 하나 없다는 점이었다.
분명 급소나 요혈을 노리는 공격은 아슬아슬하게 피하거나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 나도 남들 못지않은 커다란 상처를 얻었다.
일례로 오른쪽 하복부.
이곳은 제금학에게 일 장을 내어준 탓에 주먹만큼 커다란 상처가 났었다.
왼쪽 팔도 그렇다.
허연 뼈가 보일 정도로 깊은 상처가 분명 있었다.
그래, 있었다.
내 상처를 보고 자지러질 듯 놀란 사련에게 ‘비단같이 부드러운 내 피부에 커다란 흉이 졌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었으니까.
그런데 그 모든 상처들이 회복되었다.‘이게 대체 뭔 일이냐.’작은 상처들은 흉조차 남아 있지 않았고.
큰 상처들은 빠르게 수복되고 작은 흉터만 남았다.
그런데 꼴을 보아하니 이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았다.
물론 흉터가 남지 않는다는 건 기쁠 만한 일이기도 하지만, 이 정도의 괴물 같은 회복력은…… 조금 고민이 된다.‘씨바…… 내가 봐도 너무 수상하잖아…….’누가 봐도 비상식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으니, 누구라도 조사하고 싶어지지 않겠는가.
더구나 나는 이것 말고도 켕기는 게 워낙에 많은 사람이고.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화정산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사실…… 태을진경의 요상결은 천하제일입니다.”
화정산이 전혀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응시한다.
그래서 나는 되려 공격을 감행했다.
뭐,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란 말도 있으니까.
“설마, 과거처럼 태을문 같은 삼.
류.
문.
파의 신공은 뛰어나면 안 된다…… 뭐, 그리 생각하시는 겁니까?”
과거 큰 잘못을 한 바가 있는 화정산이 역시나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네가 의심하면 뭐 어쩔 건데?
“뭐, 뭐라는 거…… 크흠, 누가 뭐라 했느냐? 그냥 이상해서 물어본 거지.”
역시나 설득보다 억지가 납득시키기 빠르다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다.
그렇게 여러 가지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가지고 곤명에 도착했다.
그리고 용소아가 말한 이야기가 저주처럼 내 몸에 찰싹 붙었는지, 또다시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진소운. 너를 항명 및 간자 행위에 관한 법률에 의거 긴급 체포하겠다.”
곤명 지부에 왔을 때 어느 정도 문제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강순탁과 그 일당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했고, 그들과 연줄이 있는 곤명 지부의 인원들이 우리를 짓누르리란 정도는 예상했다.
그런데.‘집행각이라고? ’정작 강순탁을 비롯한 교관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자신들을 집행각이라 소개한 이들이 나를 체포하려 하고 있었다.
무림맹 안에서도 쉬이 만나기 힘든 사람들을 이역만리(異域萬里) 떨어진 곳에서 만나다니.
이거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그런데 이들은 아닌가 보다.
“포박하라!”
내게 추상과 같이 말했던 자가 고갯짓을 하자, 그 뒤에 선 자들이 일제히 내게로 다가와 점혈을 하려 했다.
나는 즉시 그들의 손을 막아냈다.
탁. 타탁.
꽤 거칠게 막아냈기 때문인지, 일개 학관생 따위가 자신들의 손을 막아섰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표정이 흉악하게 변했다.
“이 새끼가!”
“가만히 안 있어!!”
마치 자신들에게 절대적인 명령권이 있다는 듯 행동하는 인원들.
나는 그들의 흉한 얼굴을 무감하게 쳐다보았다.
“명령서가 있습니까?”
“허…….”
내 말에 집행각의 인원들이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터트린다.
그 웃음 사이로, 체포를 명했던 자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너에겐 중대 범죄를 위반한 혐의가 있다. 고로, 명령서가 없이도 긴급체포를 할 수 있다.”
“강순탁 교관의 사주가 있었던 겁니까?”
나는 대표 격의 사내를 바라봤다.
노 교관과 강 교관의 또래로 보이는 얼굴.
일그러진 그의 미간이 내 말을 완벽하게 부정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강 교관에게 부탁을 받아 움직일 정도라면, 학관 동기일 것이 분명하고.
“흐음…….”
대충 당주급 인사라 예측하고 머릿속 인명록을 살펴보니.
비슷하게 나오는 인물이 딱 하나 있었다.
“나작충 당주님.”
내막을 파헤쳤을 때도 본심만은 잘 드러나지 않았던 얼굴이 드물게 허물어진다.
어찌 자신을 알았는지 의문이 가득한 표정.
하지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곧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하는 집행각의 인원답게 그는 금세 무뚝뚝한 얼굴로 돌아왔다.
“만독문에서 오는 길이지? 이미 만독문에서 기거하며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것도 사실로 확인되었다. 더 이상의 증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말이라는 게, 참으로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달라지니 무섭다는 게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소리겠지.
만독문에 기거했던 것도 사실이고, 거기서 얻어먹은 밥이나 치료, 작지만 연회까지 생각하면.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말도 거짓은 아니니까.
애당초 왜 강순탁은 이곳에 자리하지 않았을까?
몸을 빼냈다는 건, 우리보다 먼저 무림맹에 가서 밑작업을 함과 동시에 외압의 흔적을 지우겠다는 뜻이겠지.
아직도 자신들이 추락하지 않을 거라 확신하고 있는 모습에 정말이지 절로 박수가 나온다.
멋지다, 강순탁. 정말로.
아마 진짜 자신들의 추락을 깨닫게 되면 그때 표정은 볼만하겠지.
나중에 결국 모든 것이 소명되어 일이 좋게 풀린다 할지라도, 애초에 집행각에 끌려가 줄 생각이 없다.
진위가 밝혀지기까지 꽤 시간이 걸릴 것이고, 집행각의 지하실은 감찰각과 그리 다르지 않을 테니까.
거기다 지금 당장 나작충을 물러서게 할 방도도 있고 말이지.
“후…… 거참.”
대충 머리를 정리하고 말을 하려는 찰나.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입니까!!!”
쩌렁쩌렁한 사자후가 곤명 지부 전체를 울렸다.
“진 단주의 긴급 체포라니……!!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곳에는 맨들거리던 두피가 불에 달군 쇠붙이보다도 시뻘겋게 달아오른 일각이 서 있었다.
“우리는 묵림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만독문에 도움을 요청한 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고요. 사건의 내막도 파악하지 않은 채 겉으로 드러난 일만을 가지고 간자 혐의를 씌운다니…… 당최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일각은 평소보다 훨씬 더욱 흥분한 상태였다.
뭐야, 쟤 왜 저래…….
내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 사이.
“일각 스님 말이 맞습니다. 이건 확실히 이해가 되지 않는 처사군요. 진 단주를 체포하려면…….”
철순직이 사람 잡아먹을 냉막한 표정으로 내 앞을 막아섰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를 체포해야 할 겁니다.”
뭐야, 얜 또 왜 이래.
내가 놀랄 틈도 없이.
챙
-“강 교관의 자백이 이미 나온 상태예요. 더 이상 들을 것도 없어요.”
이번엔 남궁선화가 검을 뽑아 나섰고.
분위기는 순식간에 심각해졌다.
아니, 왜들 이러는 거야.
이러는 게 뭐 하루 이틀 있었던 일도 아니…….
“시발……! 우리가 묵림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데. 감히 우릴 간자로 몰아?”
뚜두둑
-남화성에 종남파 곽수산.
“단주는 우리가 지킨다.”
이어 당가의 당기한과 유월문 왕조은까지.
모두가 전쟁이라도 벌일 듯 흉흉한 기세를 내뿜었다.
“단주는 가장 앞에서 우릴 위해 목숨을 내던진 사람이다. 이런 이를 간자라고 모함하는 건, 곧 우릴 간자로 내모는 것과 같다!”
“당신들이 긴급체포해야 할 건 교관 새끼들이다! 묵림에 우릴 버리고 갔던 그 빌어먹을 새끼들!!”
“겨우겨우 살아 돌아온 우리를…… 고작 이따위로 취급한다고?!”
학관생들은 억지 모함을 난생처음 당해본 사람처럼 분개하고 있었다.
열기가 가득 피어오른 학관생들의 본격적인 기세에, 무림맹원들이 주춤 물러섰다.
집행각의 인원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했기 때문이었던지.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었다.
하긴 학관생 전체가 이렇게 격렬하게 저항하리라곤 상상조차 못 했겠지.
당장에, 나도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니까.
어쨌든 분위기는 훨씬 편하게 변했다.
나는 나작충을 바라보며 웃어 보였다.
“강순탁 교관이랑 꽤나 친분이 있으신가 보군요. 그 사람 때문에 자신의 목까지 걸어버리시다니.”
나작충이 무표정한 상태를 유지하곤 있지만, 바로 직전에 용소아를 상대했기 때문일까?
얼굴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과 변화로 인해 훨씬 풍부한 감정이 느껴진다.
마치, 제대로 허를 찔린 사람처럼 말이야.
“혹,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듣지 못하신 겁니까?”
“제대로 된…… 이야기?”
“지금 학관생들의 상태가 왜 이런 거라 생각하십니까?”
내 말에 나작충의 시선이 학관생들에게로 향한다.
격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지만 대부분이 제대로 된 거동조차 못 하고 있는 상황.
나는 학관생 하나하나를 살펴보며 나직이 설명을 시작했다.
“묵림에서 공격을 당했습니다. 강순탁을 비롯한 교관들은 저희 학관생들을 두고 내뺐고요. 학생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자들이 말입니다.”
나작충의 얼굴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그들은 지금, 자신들의 잘못을 면피하기 위해 당주님을 이용하는 겁니다.”
“책임 소재가 잘못된 일에 권한을 행사한 사실이 밝혀지면…….”
나는 나작충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그냥 사과로는 끝나지 않을 겁니다.”
이미 감찰각의 악병비가 자신의 권한을 휘두르다 징계받은 전적이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나작충은 여기서 쉬이 물러서지 못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어린 후배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시인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
습격자들에 대한 증거는 있나?”
후퇴하기 위한 명분을 찾는 것 같은데.
흠. 장단을 맞춰주고 싶지만, 우리에겐 마땅히 제시할 만한 증거물이 없었다.
“그렇게 많은 적을 죽였다면 뭐라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린 부상자들 옮기는 것만 해도 죽을 똥을 쌌다.
증거를 챙길 시간 따윈 당연히 없었다.
그렇다고 오는 길에 묵림에 다시 들어가 챙겨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만약 그 미친놈들이 아직 있으면 어떡해.
그때.
지부의 입구에서 청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학관생들의 말이 진실입니다.”
마치 고고한 향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한 그 음성에,삼엄한 기세를 품고 있던 학관생들이 멍청한 표정으로 저마다 뒤로 물러났고.
그 사이로 푸른 무복의 미남자.
“증거, 가져왔습니다.”
몹시 재수 없는 용소아가 커다란 보퉁이를 지고 고고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우르르.
그가 봇짐을 풀어 내용물을 바닥에 쏟아내자.
몇 개의 병장기, 부러진 무기. 그리고 잘려나가 부패가 시작된 신체 일부분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묵림 곳곳에 치열한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적들이 쓰는 병장기의 철은 중원에선 잘 쓰지 않는 각철입니다.”
묵림엘 다녀온 건가?”
“현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생각했습니다.”
집행각의 인원들이 혼란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학관생들도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인가 웅성대기 시작했다.
애당초 그 묵림에 혼자 들어갔다는 것에 반신반의하기도 했고.
하지만.
제일 혼란스러운 건 다름 아닌 바로 나였다.‘이 새끼는 대체 뭐지?’며칠 전엔 이상한 소리를 하며 나를 죽이려 난리를 치던 놈이.
“그의 말은 진실입니다.”
내 혐의를 부정해 주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