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63화.
직업 퀘스트.
직업에 관한 중요한 단서를 얻었을 때 발생하는 특수 퀘스트.
갓오세에 메인 퀘스트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을 때, 사실상 메인 퀘스트로 취급되던 퀘스트이기도 했다.
‘그만큼 중요하니까.’
갓오세에서 직업은 공평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구사하는 스킬들은 같지만, 선택한 신의 등급에 따라 고유능력의 위력이 달라진다는 건 누구나 알지 않던가.
그건 직업도 마찬가지였다.
높은 등급의 신에게서 얻은 파생 직업은 특별하다.
당장 마검사인 멸살과 마권사인 아시온, 그리고 마창사인 라이하스 등.
셋을 포함한 수많은 최상급 플레이어들이 특수한 직업을 얻고 있다는 것부터가 그 증거였다.
‘괜히 유저들이 죽어라고 현질을 해가며 신화신을 뽑으려 하는 게 아니지.’
튜토리얼의 성적으로 결정되는 특성과 달리, 신은 아주 많은 돈과 좋은 운만 있으면 얼마든지 높은 등급을 얻어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직업의 중요도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지금껏 말한 것들이 가장 보편화적으로 알려진 정보이며 그만큼 중요한 요소임은 맞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있었다.
-선택한 신마다 직업 퀘스트가 달라진다.
심지어는 똑같은 ‘검사’라는 직업군을 얻었어도, 선택한 신에 따라 직업 퀘스트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이는 마검사와 같은 특수 직업도 마찬가지.
하나 딱히 큰 논란이 되진 않았다.
‘몇몇 신화신의 경우엔 말도 안 되는 난이도와 보상이 주어진다곤 하지만…… 어디까지나 특수한 케이스니까.’
신화신을 뽑는 게 쉬운 것도 아니고.
어지간히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야만 뽑을 수 있는데, 그 정도 투자했으면 저 정도 혜택은 있어도 되지 않나?
딱 그 정도로 받아들이고 넘길 수 있을 만한 밸런싱.
그게 직업 퀘스트에 대한 인식이었다.
도현도 여타 유저와 다를 것 없이 그런 시선을 가진 사람 중 하나였지만…….
[특성 ‘극복’이 각성한 그릇에 맞춰 올바른 형태로 변화합니다.]
[특성 ‘극복’이 ‘투신(鬪神)’으로 개화합니다.]
[직업 ‘카시야르의 계승자’와 관련된 능력을 얻었습니다.]
[직업의 근원이 되는 능력을 얻었습니다.]
[직업 퀘스트 ‘투신(鬪神)의 그릇’이 생성됩니다.]
이 시간부로 그 시선은 산산이 부서졌다.
[투신(鬪神)의 그릇]
-등급 : 직업 퀘스트
-설명 : 과거 아브타르텔을 지배하던 다섯 종족.
다섯 왕좌의 주인이라 불리던 그들은 ‘라그나로크’로 인해 터전을 잃은 신들의 침략에 저항하여 오랜 세월 전쟁을 벌였다.
최고신들을 선두로 침략해온 신들의 세력은, 다섯 종족의 왕들조차 버거우리만큼 강력했다.
하나 그 시절.
유일하게 신들이 두려워한 남자가 있었으니…….
압도적인 무력으로 최고신들을 하나둘 처단하는 그를, 신들은 경외와 두려움을 담아 이렇게 칭하였다.
‘투신, 그가 오는가……!’
투신(鬪神)이라고.
수천 년의 세월이 흘러 그의 뜻을 이을 계승자가 현신하여 비로소 그릇을 개화하였으니, ‘예언의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온전한 계승을 이루진 못한 상태. 완전한 계승을 마쳐 예언의 날에 대비하십시오.
-클리어 조건 : 온전한 계승을 위한 조건 충족하기 (0 / 1)
-퀘스트 성공 시 : ???, 연계 직업 퀘스트 발생
-퀘스트 실패 시 : 연계 직업 퀘스트 삭제
‘허.’
척 봐도 범상치 않은 길이의 내용과 그 설명을 보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뭐,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긴 했다.
‘……이전에 얻은 것과 비슷하면서 다른데. 직업 퀘스트가 한 루트로만 진행되는 게 아니었나?’
재앙의 탑에서 데미서스에게서 승리하고 얻은 직업 퀘스트, ‘예언의 남자.’
그때부터 자신의 직업 퀘스트가 범상치 않음을 체감했으니까.
그도 그럴 게 ‘예언의 남자’는 무려 파생 메인 퀘스트라는 단어가 함께 적혀있지 않았나.
그런 면으로 보면 이번 퀘스트는 이전에 비하면 가치가 떨어진다 할 수 있었지만…….
도현은 고개를 저었다.
[투신(鬪神)]
-등급 : 특성
-설명 : 투신(鬪神)의 그릇을 타고난 자에게 주어지는 특성. 그에 걸맞은 잠재력을 개화합니다.
설명만 보면 심히 애매모호하지만, 이런 건 아무렴 상관없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커, 커헉…… 끄어…….]
“와, 미친…….”
“한 방에 나가떨어진 거야?”
“대박…….”
“홀리…….”
한 방에 나가떨어져 꼴사납게 콜록거리고 있는 바탄을 보면, 그 위력을 여실히 체감할 수 있었으니까.
“……놀랍군. 무슨 마술을 부린 거지?”
“그러게……. 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허.”
오죽하면 멸살마저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짓겠는가.
[특성 ‘투신(鬪神)’이 개화한 상태입니다.]
[전투에 돌입할 시 전투가 끝나기 전까지 신체 능력이 상승합니다.]
[전투와 관련된 능력에 한하여 한 단계 한계를 뛰어넘는 힘을 얻게 됩니다.]
[소드 오러 – 참격을 시전하였습니다.]
이게 모두 개화한 극복, ‘투신(鬪神)’의 힘이었다.
말 그대로 전투 시 신체 능력을 높여주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해주는 능력.
그 개고생을 하며 얻은 특성이라기엔 심히 단순명료하다.
그리고, 단순한 만큼 압도적으로 강했다.
‘이건…… 그냥 단순히 조금 강화된 수준이 아니야.’
아닌 게 아니라, 본인이 참격을 시전하면서도 얼떨떨했다.
아무리 참격이 일격 필살기라곤 하나, 이 정도 위력을 보일만큼은 결코 아니었으니까.
순간 역천기 2초식을 시전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더욱 사기인 점은…….
‘……다른 능력들에도 적용된다는 거지?’
소드 오러뿐만 아닌, 다른 전투 능력들도 이만한 상승폭을 보일 거라는 것이다.
‘전투 스킬’이 아니라 ‘전투에 관한 능력’이다.
이는 특성이나 아이템 효과에도 적용이 된다는 뜻일 가능성이 크다.
참격이 이 정도였는데 만약 역천기나 특성을 사용한다면?
꿀꺽.
그럼 과연 어느 정도의 위력을 보여줄까?
무엇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쩌면…….
‘이 정도면 4초식을 완성할 수 있을지도.’
이번에야말로 희미하던 경지의 끝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온몸에 감도는 왠지 모를 기운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띠링-
그런 그의 기대에 보답하듯, 경쾌한 알림이 울리며 한 줄기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메시지는 말하고 있었다.
[투신(鬪神)의 그릇을 각성하였습니다.]
[다음 경지의 길이 보다 선명해집니다.]
‘아.’
그 생각이 착각이 아니라고.
아쉬운 게 있다면 경지를 완성시켜줄 샌드백…… 아니, 대상이 쓰러진 채 몸을 제대로 못 가누고 있다는 점이었다.
서거걱- 콰아아앙!
참격에 쓰러진 놈을 향해 멸살의 마법검이 연신 폭격에 가까운 피해를 입힌 탓이었다.
가뜩이나 참격에 직격당해 치명상을 입은 와중에, 제대로 된 방어도 못 한 상황에 그 멸살의 공격들을 수십 방이나 허용했다.
‘끝났네.’
이건 못 일어난다.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는 놈을 향해 다가간 도현이 천변을 겨누었다.
“그냥 얌전히 죽는 게 어때? 네가 이길 리는 없을 것 같은데.”
[크으…… 크흐흐……. 내가 어떻게 왔는데.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
스릉-
“주변을 봐라.”
도현이 휙 주변을 고갯짓했다.
그에 무심결에 주변을 둘러본 바탄이 일어서려던 자세 그대로 우뚝 멈추었다.
보인 것이다.
그어어어- 크헉!
끄어-
“죽여라아!”
“와아아!”
“다 족쳐버려!”
이제는 일방적으로 밀리는 수준이 아닌, 전멸당하기 직전이 된 수하들과 마수들의 모습이.
어딜 둘러보아도 부하들의 시체뿐이었다.
이대로면 10분도 안 되어 전멸당하거나 마을 밖으로 모두 쫓겨나리라.
수하들이 수많은 이종족들과 사도들에게 끝없이 밀려난 탓에 오히려 마을 중앙에 가까이 있던 바탄만 홀로 포위당한 모양새였다.
“끝났다. 네놈의 패배다.”
[…….]
또 다른 중저음이 들려오며, 다섯 자루의 검이 허공을 날아 목을 겨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명백한 자신의 패배임을. 세력에서도 밀리고, 힘에서도 밀린다.
생명을 바쳐 심연화까지 진행하고 있는데도 결국 쓰러진 건 자신이었다.
더 이상 뒤집을 수단이 없다.
‘이대로…… 이대로 끝난단 말인가?’
그토록 바라마지않던 염원의 순간이 코앞이다.
앞으로 몇 발짝.
단 몇 발짝이면 닿을 수 있었거늘, 여기서 이렇게 끝이 난다?
빠드득.
‘……아니.’
……인정할 수 없다.
[크, 끄윽……. 이대로.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스스로에게 되뇌듯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며 지면에 핀 작은 풀들을 꽉 쥔 바탄의 얼굴은, 두 눈 뜨고 보기 꺼려질 만큼 흉흉했다.
반쯤 녹아 일렁거리는 안면 사이로 독기를 가득 품은 눈빛이 번들거리는 게 뭐랄까.
공포 영화에나 나올 법한 비주얼인 건 둘째치고, 가만히 보고 있기 힘든 지독한 살기가 느껴졌던 것이다.
“으…….”
“무슨 눈빛이…….”
“뭔가 기세가 심상치 않은데 빨리 죽여야 하는 거 아니냐?”
실제로 눈이 마주친 몇몇 유저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을 정도였다.
몇몇은 안색이 창백하게 질리기까지 했다.
“죽이는 게 좋겠군.”
“그래. 그게 좋겠…….”
무언가 싸함을 느낀 멸살이 도현의 답을 채 듣기도 전에, 겨누던 마법검들을 이기어검으로 조종하여 죽이려던 찰나였다.
——!!!
“윽……?”
“!”
놈에게서 솟구친 검은 기운이 시야를 뒤덮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마치 그것이 신호탄이라도 된 듯이 놈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꿀렁-
마치 오염된 점토와 하수구 물이 버무려지듯.
바탄의 신체가 무너지더니 불쾌하게 꿀렁이며 섬뜩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바탄은 더 이상 인간형이라 부를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네발 달린 짐승 형이라고 말하기도, 몬스터라도 칭하기도 기이한 생김새.
적절한 비유를 찾기 힘든 끔찍한 혼종.
“심연…….”
그렇기에 그를 칭할 수 있는 단어로서 이보다 완벽한 것은 없었다.
저것이야말로 심연 그 자체였으니까.
그리고 그 순간.
하늘을 가득 채운 어둠이 한층 더 짙어졌다.
“저, 저길 봐!”
“맙소사…….”
“누, 눈! 눈이 감겼…….”
“어어?”
하늘을 집어삼킨 눈.
코즈믹 호러 그 자체였던 그 거대한 눈이 처음으로 서서히 감기며 어둠이 찾아온 것이다.
마치 세상을 전부 집어삼킬 듯한 아득한 어둠이었다.
일순간 밤이 찾아온 듯 캄캄해진 것도 잠시.
쩌저적-
“하, 하늘이…… 하늘이 열리고 있어!?”
“왓 더 퍽!”
“이런 제길…… 저건 그때의 그! 시간이 남았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맙소사.”
감겼던 눈이 뜨이자, 어둠이 걷히며 섬뜩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균열이 일어났다.
[이길 수 없다면…… 나 혼자 가지 않겠다.]
—–!!!!
“으윽!”
“끄으……. 이, 이게 무슨 소리야.”
소름 끼치는 목소리 너머로, 찢어지는 듯한 굉음이 세상을 집어삼킬 듯 거세게 울려 퍼졌다.
소리의 발생지는…….
놀랍게도 지면이 아닌, 하늘 위였다.
[크흐…… 크흐흐하. 어차피 죽게 된다면…… 네놈들 모두 길동무로 데려가겠다.]
“뭐?”
“저, 저게 무슨 소리야?”
유저들의 토해낸 의문에 답한 것은, 바탄이 아니었다.
애석하게도 바탄은 제대로 된 답을 할 틈도 없이, 몸이 기체화되며 하늘로 떠오르고 있던 탓이었다.
그 대신 답을 내려준 것은 메시지 창이었다.
[바탄의 심연화가 70%를 돌파하였습니다.]
[히든 페이즈에 돌입합니다.]
[바탄이 위협을 느껴 스스로를 제물로 ‘라그 베헤모스’의 부족한 심장이 되어 강림을 앞당기려 합니다.]
[경고! ‘라그 베헤모스’의 강림을 막을 수 없습니다.]
[전(前) 심연의 강자, 하늘을 집어삼킨 눈 ‘라그 베헤모스’가 강림합니다.]
“……!”
“미친…….”
전(前) 심연의 강자.
라그 베헤모스가 강림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