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88화.
뎀로크 시절부터 함께했던 동료인 여제와 검성.
혈육인 여동생 현아.
그리고 현실에서 함께 다니는 친구 녀석들과 갓오세에서 처음으로 만난 인연인 방패최고 일행.
접전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무리들이다.
그도 그럴 게 모두 다른 곳에서 만나 친분을 이어가고 있을뿐더러, 방패최고 일행은 도현조차 아주 오랜만에 보는 이들이었으니까.
서로 소개시켜주고 싶더라도 소개 시키기 애매할 정도로 무관한 관계.
그게 저들의 관계성이었다.
분명 그럴진대…….
“와, 카이저 형님이 그러셨단 말입니까? 제가 봤던 모습과는 다르지만…… 형님이 그러셨다 생각하니 멋지네요.”
“인정합니…… 아니, 그런데 카이저 님이 왜 미간딱대 님 형님이에요?”
“어허, 우리는 카이저 형님의 위대한 첫 여정을 함께한 부하들이다 이거입니다. 한 번 형님은 영원한 형님. 정체를 몰랐던 그때부터 형님으로 모셨으니, 당연히…….”
“음~ 그런데 카이저 님은 너를 아우로 여기겠다 한 적이 없는 거 같은데?”
“아, 아니! 그건…… 유빈아. 너 우리 편 아니었어?”
……그런 그들이 한데 모여 오순도순 떠들고 있었다.
아주 즐겁다는 듯이.
‘이게 뭔…….’
상상도 못 한 조합도 조합인데, 저들이 떠드는 얘기의 주제가 전부 자신인 거 같은 건 기분 탓일까?
아니, 그보다 더 이해가 안 가는 건…….
“……꾸꾸, 검제. 너희가 왜 여기 있냐?”
길드를 혐오하던 자신만큼 기피했던 건 아니어도, 저 녀석들 또한 길드에 큰 관심이 없지 않았던가.
오죽하면 동료인 보라 아재가 길드에 들어오라 사정해도 쳐다도 안 본 녀석들이었다.
갓오세에선 길드가 없으면 피해를 볼 일이 많을 텐데도 말이다.
“크큭, 표정 봐라.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길드 수장이 되었다는데 흥미가 안 생기겠냐? 당연히 구경 왔지.”
“반대로 생각해봐라, 카이저. 이 녀석이나 내가 길드에 들었다고 하면 놀라지 않을 건지. 하물며 수장이라면 말 다 한 셈이지.”
“음…….”
저 녀석들이 길드 수장이 된 모습을 떠올리던 도현이 순순히 인정했다.
“……그건 그렇네.”
차마 반박할 말이 없었다.
뎀로크 시절부터 지금까지 무려 6년 동안 길드에 든 적이 없는 게 녀석들이다.
그런 놈들이 어느 날 돌연 길드에 들었는데, 그 길드가 10대 길드다?
심지어 그 길드의 수장이다?
‘이걸 어떻게 참아?’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길드 건물로 쳐들어가 온 힘을 다해 놀릴 자신이 있었다.
당장 자신만 해도 그런데 녀석들이라고 다를까.
하물며 비록 기간은 더 짧을지언정 저 녀석들보다 더 악조건 속에서도 길드에 들지 않은 게 자신이다.
오히려 이제야 놀리러(?) 왔다는 점에서 인내심을 높게 쳐줘야 했다.
“뭐래. 놀리긴 무슨, 그냥 구경이나 하러 온 거지. 이 새낀 왜 속마음을 말로 떠들고 있는 거야?”
“우리를 그렇게 생각했다니, 실망이구나. 카이저.”
“우와, 진짜 너무하네요. 그쵸?”
“혀나라고 했나? 좀 전부터 느꼈는데 너 되게 마음에 든다?”
“히히. 저도 언니 좋아요. 진짜 너무 멋있게 생긴 거 아니에요? 솔직히 여자 팬들 많죠?”
“몰라? 팬이라고 다가오는 사람이 없어서.”
“……그건 네가 눈만 마주쳐도 죽이려 하니 그런 거겠지. 성격 좀 죽이고 살아라.”
“뭐래. 정작 죽인 건 지가 더 많을 텐데.”
“수련을 방해한 건 명백히 고의성을 지니고 접근한 것. 눈만 마주쳐도 패고 시작하는 너와는 다르다.”
“아니, 진짜 그냥 마주친 게 아니라니까? 느낌이란 게 있잖아. 먼저 안 치면 내가 당할 수도 있다니까?”
“……네가 당할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런 문제가 아니지. 공격을 하더라도 내가 먼저 해야지, 선빵 맞으면 기분 잡치잖아.”
“와, 멋있다…….”
그렇게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요상한 흐름으로 넘어가는 대화들.
그 와중에 연신 감탄하며 초롱초롱한 눈으로 꾸꾸를 바라보는 현아가 무척 거슬렸다.
‘저거 저러다 옮는 거 아냐?’
말괄량이 같은 녀석이라 장난끼가 많긴 했어도, 시비를 걸고 다니진 않았는데 왠지 걱정된다.
시한폭탄은 꾸꾸 하나로 충분하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을 때, 문득 마주친 현아가 슬쩍 눈길을 피한다.
본인도 제 잘못을 아는 것.
‘쯧. 얘기는 집 가서 해야겠네.’
지금은 보는 눈도 많고, 무엇보다 여제와 검성까지 있으니 말이다.
혀를 차며 시선을 돌리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현아.
그런 그녀의 옆에서 떠드는 유빈뀽과 미간딱대, 그리고 친구 놈들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저놈들 텐션은 여기서도 똑같네.’
처음 보는 사람이 많으니 어색해할 법도 하건만.
활발한 녀석들답게 잘도 어울리고 있다.
중간중간 자신을 보며 예의 그 역겨운 선망의 눈빛을 보내는 것만 빼면 보기 좋은 모습.
그렇게 가만히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야. 뭐 할 말 없냐?”
“? 무슨 말?”
갑작스레 툭 내뱉는 여제의 말에 도현이 눈을 끔뻑였다.
하나 그것도 잠시.
“너 많이 세졌더라? 소문을 듣자 하니 이번에 보상 얻고 더 강해졌을 거라던데 아니야?”
“아.”
몸이 근질거린다는 듯 손을 뚜둑 풀며 묻는 그녀의 말이 도현에겐 다르게 다가왔다.
‘너 많이 세졌더라?’가 아닌, ‘한 판 뜨자’로.
이전이었다면 굳이 저 성깔 더러운 놈한테 맞춰주지 않았을 거다.
놈에게 대련은 거의 실전에 가까운 싸움이었으니까.
자신보다 약하든 강하든 중간이 없는 놈인지라, 대련을 하는 순간 무조건 끝까지 가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씨익.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안 그래도 궁금했던 차다. 지금 자신의 강함은 어디까지 닿아있는지.
과연 멸살, 그놈에게도 통할지 말이다.
‘제대로 파악하기에 꾸꾸만 한 상대가 없지.’
일인군단(一人群團).
갓오세 최고의 피지컬이자 최강의 여성 플레이어.
그녀라면 전력을 쏟아부어도 될 것이다.
“호오, 아무래도 그런 분위기인 모양이군. 검술 대련을 권하려 했는데 이번에는 양보하도록 하지.”
“이 년이 웬일로 맞는 소리 하네.”
흥미롭다는 듯 한 발 물러나주는 검성을 만족스레 바라본 여제가 한 발짝 앞으로 다가왔다.
어느새 그녀의 손엔 흉기가 들려있었다.
그래, 흉기.
그건 무기라기보단 흉기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사아아-
손에 장착한 장갑 형태의 무언가.
날붙이라곤 조금도 없었으나, 피처럼 넘실거리는 기운은 흉포함을 넘어 살인마의 그것처럼 섬뜩했으니까.
“내가 이번에 좋은 보상을 얻었거든. 그런데 마땅히 시험할 곳이 없더라고? 그래서 아직 성능 파악이 제대로 안 됐어.”
“그래? 이참에 시험해보면 되겠네.”
“그래, 그거지.”
맹수처럼 사납게 웃은 그녀가 툭 내뱉듯 말했다.
“금방 쓰러지지 마라. 힘 조절이 안 될 거니까.”
그런 그녀의 호기로운 말에 도현이 피식 웃었다.
“조절은 무슨. 너나 잘 버텨라. 조절 안 되는 건 피차일반이니까.”
도발을 태연하게 받아치는 도현의 모습에 여제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마치 ‘이것 봐라?’ 하는 듯한 눈빛.
그리고 그 눈빛은 곧 짙은 기대감과 흥분으로 가득 차올랐다.
“새끼, 돌아왔네. 내가 알던 카이저로.”
“글쎄.”
그런 그녀의 모습에 동화된 것일까.
도현의 입꼬리 또한 슬며시 올라가며 눈에 희미한 빛이 감돌았다.
아마 그녀와 비슷한 표정이 되어있지 않을까.
“그때 이상일 거 같은데.”
그리 생각하며 도현이 도발하듯 말을 이었고,
“뎀로크 때 이상이라…….”
그녀 또한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답했다.
“그거 너무 기대되는데?”
씨익, 마주 보며 웃은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등을 돌려 문을 나섰다.
꾸꾸 녀석과 재회한 지 대략 8개월.
비로소 그녀와 자웅을 겨룰 시간이 찾아왔다.
* * *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대련실이었다.
당연히 길드 건물 내부에 있는 대련실이었는데…….
아직 내부 인테리어가 완벽히 끝나지 않았는지 다소 휑한 모습이었다.
“……송구하옵니다. 길드전을 대비하여 내부 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나, 다른 곳에 더욱 신경 쓰느라 아직 완공되지 못하였나이다.”
“괜찮아. 대련할 곳만 있으면 되지.”
“하오나…….”
면옥이 없다는 듯 눈치를 살피는 아나에게 다시금 괜찮다고 한 도현이 주변을 슥 살폈다.
괜찮다고 한 것은 그저 그녀를 위로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길드가 설립된 지 이제 겨우 일주일인데, 이 정도 결함은 있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솔직히 결함이라 부르기도 애매했다.
“이야, 여긴 대련실도 좋네.”
“그러게.”
학교 운동장만 한 넓디넓은 대련실.
그 압도적인 크기답게 그 중앙을 차지한 대련장 또한 상당한 사이즈를 자랑했다.
대련실이 운동장이라면, 무대가 될 대련장은 강당쯤이랄까.
그리고 그 넓은 대련장을 반투명한 막이 마치 둠처럼 감싸고 있었는데, 이게 이 대련실의 화룡점정이었다.
[전설 등급 마도 공학 제작품 ‘하얀 마탑주의 삼중 결계’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대련장을 벗어나려는 모든 공격의 여파를 막아냅니다.]
‘하얀 마탑주의 마도 공학 제작품…… 이거 부르는 게 값 아녔나?’
갓오세의 모든 NPC와 유저를 포함해서 가장 뛰어난 마도 제작 실력을 자랑하는 하얀 마탑주.
제국의 칠강이기도 한 그녀의 제작품은, NPC들마저 가진 이가 몇 없을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게 그녀의 모든 제작품은 수량이 몇 안 되는 한정판이기 때문이었다.
‘아재가 엄청 자랑했었지.’
그 한정판을 여럿 소지한 아재조차 이 결계를 그리 극찬했었건만.
이걸 제 길드 대련실에서 보게 될 줄이야.
새삼 아나의 정체가 궁금해졌으나, 도현은 빼꼼 고개를 내미는 호기심을 집어넣었다.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으니.
콰아아앙!!!
“흐익!?”
“뭐, 뭐야!”
대뜸 울려 퍼진 폭탄 터지는 듯한 소리에 비명이 튀어나왔다.
저들의 길드장과 여제가 대련한다는 소리에 구경 온 사람들이었다.
멤버는 당연히 휴게실에 있던 사람들.
그러니까 여동생과 친구들, 그리고 방패최고 일행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놀라게 한 장본인은 다름 아닌, 여제.
“오, 튼튼한데? 이 정도면 전력으로 해도 되겠네.”
피처럼 넘실거리는 흉흉한 기운을 장갑에 갈무리한 그녀와 그런 그녀의 앞 바닥에 길게 그어진 커다란 상흔.
확실히 처음 보는 기술이었다.
그간 그녀에겐 저런 강력한 광역기는 없었으니까.
확실히 더 강해졌다는 녀석의 말이 허언은 아니었던 모양.
하지만…….
[무변자(無變者)를 발동합니다.]
[현재 무구인 하얀 사자의 설화(雪華)검에 적용할 무기 효과를 선택하십시오.]
[적용 가능한 무기]
-카야나의 단검
-암벽을 뚫은 궁수의 활
-아스트라의 화살
-끔찍한 악몽의 낫
……
-특제 공방에서 만든 특제 은방패
‘재밌겠네.’
그건 피차일반이었다.
[천왕진기(天王震氣)를 시전합니다.]
[기사왕, ‘루슬레인 발레몽’의 기 운용법을 활용한 천왕진기의 기세를 발현합니다.]
—-!!
고대 시절 하늘에 닿을 만큼 압도적인 기세를 뿜어냈다는 기사왕, 루슬레인.
그의 정수가 담긴 기 운용법을 통해 뿜어낸 기세는, 가히 천하를 지배한 패왕의 것과도 같아 보였다.
자신보다 격이 낮거나, 정신력이 약한 이들은 기세에 직격당한 것만으로도 디버프가 걸릴 정도.
[현재 천왕진기(天王震氣)의 경지는 2성입니다.]
[최대 5성까지 존재하며 5성의 경지에 도달할 시 ‘진(眞) 천왕진기(天王震氣)’로 진화합니다.]
‘이게 겨우 2성…….’
처음에는 1성조차 발현하기 쉽지 않았으나, 일주일간 악착같이 사용하며 도달한 경지.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수준에 불과한 지금이 이 정도 기세라니.
과연 루슬레인은 어떠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하나 여제도 난 놈은 난 놈이었다.
“새끼 봐라?”
도현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맹렬한 기운에, 놀라기는커녕 오히려 몸이 근질거린다는 듯 주먹을 풀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결국, 참지 못하고 자세를 잡은 그녀가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준비는 된 거 같은데 바로 시작해볼까.”
“좋지.”
고개를 끄덕인 두 사람의 신형이 사라졌고,
까앙!!!
거의 동시에 검과 건틀릿이 부딪히며 경쾌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대련이 시작됨을 알리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