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89화.
깡! 카앙!
콰아앙!
철과 철이 맞닿는 소리.
폭탄이 터지는 듯한 굉음.
쉴새 없이 움직이며 소음처럼 울려 퍼지는 발소리와 옷자락 소리들.
정신없이 고막을 강타하는 소음과 눈앞을 어지럽히는 번쩍번쩍한 움직임들에 어디선가 꿀꺽,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꼴깍, 꿀꺽.
헉.
한 곳에서만 나는 소리가 아닌지 연이어 울려 퍼졌고, 알 수 없는 감탄사마저 섞여 있었다.
하나 아무도 불평하는 이는 없었다.
“와…….”
“오우…….”
“대박.”
“미쳤네. 움직이는 게 보이지도 않아. 우리랑 같은 게임 하는 거 맞아?”
당장 본인들부터가 그러고 있었으니까.
대련을 구경하는 모든 이들이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정신없이 구경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보는 저 대련이 정녕 대련이라 불러도 되는 것인지 의심되었으니까.
캉! 카앙!
검이 부딪히며 스파크가 튀고, 소닉붐에 가까운 파공음이 뒤따른다.
그러고 나면 다시 신형이 사라지고, 다른 위치에서 나타나 검과 주먹을 맞댄다.
그게 수시로 반복되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전. 영상에서 보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야 당연한 일이었다.
영상에서 보는 10대 길드 마스터와 같은 정점급 플레이어의 전투는 대부분 레이드 영상들.
PVP 영상은 없다시피 했으니까.
혈살의 시나가 있긴 하나…… 그건 일방적인 암살 영상이지, 이런 치열한 전투라 부를 만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와씨, 카이저 형님 오지고 지리고…… 존경스럽습니다. 형님.’
‘이게 정점에 오른 이들의 싸움……. 격이 다르다.’
‘맙소사, 나도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수준이 다르잖아……’
‘내가 저런 경지까지 오를 수가 있을까?’
‘와…… 저게 카이저……. 역시 킹갓제너럴카이저인가.’
‘카이저 님도 카이저 님인데 여제가 저 정도였어? 대륙 퀘스트 때 올라온 영상에서 보기는 했는데…… 이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그동안 살던 세상은 우물 속이었다는 걸 깨달은 개구리의 기분이 이러할까.
처음 보는 정점들의 전력을 다한 전투는, 그들에게 깊은 충격을 주었다.
현실감조차 들지 않는 그들만의 리그.
늘 말로만 듣던 세상의 빙각의 일부나마 직접 보게 되니, 그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카멘…….”
“후후, 녀석들. 전력으로 한다더니 정말 제대로 하고 있구나.”
-음, 역시! 주군이야 말할 것도 없으나 동료분 또한 실로 극에 달한 실력입니다.
-어우, 저렇게 움직이고도 안 어지럽나 몰라. 난 보는 것만으로도 어지러워 죽겠는데.
-리자리자? 리자.
-응? 엘리자는 멀쩡하다고? ……사실 나도 멀쩡해. 그냥 리액션 해준 거야.
-리자…….
한데 도현의 가디언들이나 검성, 부길마인 광신도는 태연하기 그지없다.
마치 당연한 광경이라는 듯이.
그럴수록 그들의 눈빛은 점점 더 괴물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으로 바뀌었다.
선망의 대상?
맞다. 그들에게 카이저와 여제는 선망의 대상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다.
하나 그것도 정도껏이지.
‘이건 무슨…….’
‘이렇게나 차이가 나면 이게 같은 유저가 맞을까?’
‘나도 실력이라면 자신 있었는데……. 10년이 지나도 도저히 저 사람들과 겨룰 수는 없을 거 같아.’
‘……지금 옆에서 같이 구경하는 검성님도 저 정도라는 거지?’
‘그야 여제의 라이벌이니…… 와, 진짜 말도 안 되는 세상이다.’
카신교가 신생 길드라곤 하나, 명색이 10대 길드.
심지어 까다롭기 그지없는 아나스타샤가 뽑은 길드원 후보들인 만큼, 그들의 재능은 출중하다.
객관적으로 봐도 상위 1% 안에는 들 정도.
“눈으로 보여요? 저게? 전 보이지도 않는 거 같은데…….”
“안 보일 수는 없지 않을까요? 공방에 들어가는 디테일적인 것들은 저도 많이 놓치고는 있지만, 그래도 사람과 사람이 맞부딪히는데 보이기야 하죠.”
“아니, 뭐…… 그야 움직이는 건 보이는데. 뭔가 번쩍하니까 바닥 파이고, 상처 입고 그런 느낌인데.”
“시끄러워 인마. 닥치고 보기나 해. 우리가 언제 카이저 님 싸우는 걸 이렇게 눈앞에서 직관하겠냐.”
“인정.”
유일하게 예외가 있다면 도현의 친구들이지만…….
그들은 길드명부터가 ‘킹갓제너럴카이저펀치’였기에 마음가짐과 인성이 상위 1%인 것으로 인정받았다.
여하튼 그런 그들이기에 이번 대련은 그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나름 재능러인 줄 알았던 자신들은 사실 별거 아니었구나, 진짜 재능 앞에서는 그저 범부일 뿐이었구나 하는.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큰 충격을 받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저게 오빠라고?’
현아.
모두가 괴물 보듯 바라보는 도현의 혈육인 그녀는 충격을 넘어 멍한 얼굴이었다.
카이저가 오빠라는 건 알고 있다.
‘매번 영상도 챙겨봐서 알고는 있었어.’
있었는데…… 눈앞에서 직접 본 카이저는 너무도 낯설었다.
방구석에 박혀 배나 벅벅 긁고 있는 한심한 오빠랑 저 신들린 묘기에 가까운 움직임을 선보이는 전사랑 도무지 매치가 되지 않는 것이다.
제 오빠지만 순간적으로 멋있게 보였을 정도.
짝!
‘그게 무슨 미친 소리니, 현아야. 저건 오빠야. 방구석에 누워 빈둥거리는 그 한량 강도현.’
현아가 냅다 제 뺨을 후려갈기자 되려 당황한 방패최고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혀, 혀나 님? 갑자기 왜 자해를…….”
“……아니에요. 그냥 조금 멍해서.”
“아, 하긴…… 저도 비슷한 기분이긴 해요. 저희도 어디 가서 재능 있단 소리 듣는 사람들이잖아요? 카이저 님 동경해서 이곳까지 온 사람들이기도 하고.”
“…….”
“좀 현타 오기는 하는데…… 한편으론 더 의욕이 나기도 해요. 이젠 제가 저 괴물 같은 사람 식구가 된 거잖아요. 앞으론 또 얼마나 기상천외한 것들을 보여줄지 기대되지 않아요?”
“그런…… 가요?”
“아, 혀나 님. 카이저 형님인데 당연한 거 아닙니까? 이거이거, 아직 진성 카이저 님 신도가 아니구만. 그치, 유빈아.”
“……그렇긴 한데, 넌 언제부터 신도가 된 거야?”
“우리 길드명 잊었어? ‘카신교’인데 당연히 길드원인 우리는 신도지.”
끼어든 미간딱대와 유빈뀽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에 현아의 눈빛이 달라졌다.
뭔가 묘한 기분이었다.
한량 취급하던 오빠가 누군가에겐 목표가 되어주고, 의욕을 안겨주는 존재라니.
좀 오글거리기는 한데 나쁘지는 않은 기분이었다.
콰앙! 쾅!
그에 저도 모르게 피식 웃던 현아가, 정신없이 싸우는 도현을 보며 문득 의문을 떠올렸다.
‘……그런데 대체 왜 운동선수 같은 거 안 하고 게임만 한 거지?’
지금이야 갓오세가 있으니 그렇다 쳐도 뎀로크 시절엔 VR이었다.
당시 VR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곤 하나, 그래 봐야 VR.
지금과 같은 완벽한 가상현실이 아니었다.
당연히 그리 돈이 많이 되지도 않았거니와, 게임으로 돈을 버는 쌀먹 업계에서도 린니지 같은 PC 게임에 밀릴 정도였다.
‘그런 VR 게임 중에서도 망겜이 되어버린 뎀로크를 굳이 왜?’
저런 실력이면 격투기 선수 했으면 엄청 벌었을 거 같은데.
하다못해 다른 투기 종목 운동선수라던가.
뭘 하든 몸 쓰는 건 다 잘했을 거 같은데 왜 돈도 안 벌리는 망겜을 붙잡으며 한량 취급받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웃고 있네. 계속.’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그래도 혈육이라서일까.
그녀에게는 보였다.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들떠있는 도현의 모습이.
그 모습은…… 오랜 세월 보아온 제 오빠의 모습 중에서도 가장 즐거워 보였다.
* * *
쾅! 카앙! 캉!
콰앙!
검과 건틀릿이 쉴 새 부딪힌다.
처음에는 쇳소리에 불과했던 그것은, 어느 순간 굉음으로 바뀌어있었으며 공방 또한 그만큼 격렬해졌다.
크르르……!
검을 휘두를 때마다 눈보라와 하얀 사자가 휘날리고, 그 안에 소용돌이치듯 피의 기류가 솟구친다.
여제와 도현의 공격이 쉴 새 없이 맞닿으며 일어난 현상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공격을 허용하지 않는, 극에 달한 피지컬의 싸움.
그야말로 칼과 칼의 싸움이었다.
하나 전투가 이어질수록 도현의 공격이 닿는 횟수가 아주 조금이지만 더욱 많아지고 있었다.
[‘암벽을 뚫은 궁수의 활’의 옵션 ‘끔찍한 악몽의 낫’을 선택했습니다.]
[‘진(眞) 하얀 사자의 노래’에 ‘미약한 악몽’의 효과가 더해집니다.]
[미약한 악몽 : 적을 베어낼 시 낮은 확률로 상태 이상 ‘악몽’에 빠지게 한다.]
[일정 수치 이상의 강화로 옵션의 효과가 증폭된 상태로 적용됩니다.]
[상대를 악몽에 빠지게 할 확률이 상승하며 중첩 시마다 악몽의 강도가 강해집니다.]
끔찍한 악몽의 낫의 효과를 설화검에 적용하게 된 덕에, 꾸꾸에게 가하는 디버프가 점점 짙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상의 정신오염 면역 수치가 높습니다.]
[악몽을 일부 상쇄합니다.]
……
[악몽이 중첩되어 악몽의 강도가 더 강해집니다.]
정상급 스펙의 소유자답게 어지간한 디버프 면역을 가진 모양이지만, 물방울에 바위도 깨지기 마련.
완전 면역이 아닌 이상, 몇 번이고 두드리다 보면 결국은 걸리기 마련이었다.
무엇보다…… 이게 생각보다 더 사기적인 시너지를 자랑했다.
[하얀 사자의 공격에 ‘미약한 악몽’의 효과가 더해집니다.]
[눈보라에 ‘미약한 악몽’의 효과가 더해집니다.]
‘설마 여기에까지 악몽이 터질 줄이야.’
낫을 단일로 다룰 때는 직접 베어야만 적용되었던 효과가, 설화검과 함께하자 광범위 디버프 기술이 되어버린 것이다.
심지어 고강의 효과로 위력마저 증폭된 상태로.
이것만으로도 사기도 이런 사기가 따로 없었는데, 의외로 그 덕을 본 건 설화검뿐만이 아니었다.
[대상의 정신력이 약화된 상태입니다.]
[천왕진기(天王震氣)의 기세에 상대의 공격력이 10% 저하됩니다.]
[천왕진기(天王震氣)의 기세에 상대의 방어력이 10% 저하됩니다.]
[천왕진기(天王震氣)의 기세에 상대의 모든 속도가 5% 저하됩니다.]
1성의 천왕진기(天王震氣)는 기사왕이 다루던 기 운용법을 터득한 단계.
그리고 2성의 천왕진기(天王震氣)는 그 기를 강한 기세의 형태로 표출하는 단계다.
즉, 일종의 드래곤 피어처럼 작용하는 것.
‘그래, 이게 왜 안 터지나 했다. 저놈 정신력이 생각보다 더 높았던 건가.’
하마터면 그저 멋 부리기 용 스킬이 되어버릴 뻔했지만, 녀석의 정신력이 많이 약화된 지금 아주 훌륭히 그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이런 칼과 칼의 싸움에선 아주 조금의 차이로도 승패가 갈린다.
씨익.
이런 유의미한 능력치 저하라면 말이 필요 없을 터.
“아오, 이놈 성가신 거 얻었네.”
아니나 다를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밀어붙이고 있던 입장에서, 반대로 조금씩 밀리는 입장이 되어가고 있는 것에 참다못한 녀석이 버럭 화를 터트렸다.
하기야 능력치 저하에 시야까지 흐려지고 있으니 여간 성가시리라.
“아니, 넌 왜 디버프가 안 걸려? 지금쯤 출혈로 빈사 상태가 터졌어야 하는데?”
반면 도현은 이런 디버프에 있어 너무도 자유로웠다.
“좋은 면역 기술이 있어서 말이야.”
“?”
눈살을 찌푸리는 녀석은 그마저도 도발적인 미모를 자랑했지만, 도현은 그저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릴 따름이었다.
[위대한 기사왕의 의지가 발현됩니다.]
[강력한 의지가 발현되어 ‘극심한 출혈’을 무시합니다.]
‘그동안 몬스터만 잡느라 성능을 파악할 일이 없어서 긴가민가했는데…….’
기사왕, 루슬레인 발레몽.
그의 정수가 담긴 기술들은 과연 진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