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1000

1000화 대륙 (1)

지금으로부터 4년 전 보헤미른 마탑의 동력원이 폭주하면서, 마법 시대의 시작을 알린 10개의 완전한 물질이 9개로 줄어들었다.

무한한 마력은 인류의 기적.

이런 동력원이 발명되지 않았다면, 현재의 마법 기술력을 이룩하기 위해서 어림잡아도 수백 년은 더 진보해야 했으리라.

동력원이 특정 국가가 아닌 최고위의 마법사들이 즐비한 10대 마탑의 통제에 있다는 것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평생 고갈되지 않는 광산이 존재하다면 세상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쟁탈전이 영원토록 반복됐을 것이다.
무한한 광산의 주인이야말로 곧 대륙을 지배하는 세력이 될 테니까.

그러나 동력원 때문에 여러 잡음은 많았을지언정 여태까지 동력원의 소유권을 두고 실질적으로 전쟁을 벌이지는 못했다.

마탑은 마법계의 중심…… 그런 마법계와 살의를 주고받는다는 건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테러의 위험에 스스로 뛰어드는 꼴이므로.

전면 전쟁?

마법계에는 대규모 마법 폭격 전략이 있다. 또한 위계 마법이 정립된 이후로 약 천 년 역사에서 마탑에 초월자가 없었던 적은 없다.

정치적이고 음습한 압박?

지금까지 마탑의 공작에 유명을 달리한 고위직 인사가 몇 명인지 모른다. 마법은 다양하다. 사람이 죽는 방법도 다양하다.

1개가 아니라 10개나 되는 마탑의 동력원.

마탑의 권력과 재력, 그리고 무력.

마법에 의한 발전으로 마탑을 온전히 대체할 수 있는 마법적 세력이 존재하지 않다는, 대체 불가능의 고유성.

상기한 이유로 10대 마탑은 동력원의 주인으로서 군림할 수 있었고, 다음 시대로 향하는 급진적인 마법 발전을 이끌 수 있었다.
동력원이 하나가 줄었다고 해도 무려 아홉 개나 남았으니 이에 관해 마탑의 위상이 크게 추락할 일은 만무했다.

그런데…… 다름 아닌 아케나드 마도국이 새로운 변수를 창출했다.

약 8년 만에 개최한 올해의 마도 축제에서 7대 마도왕은 마도 <원천>을 이용하여 구축한 새로운 동력원을 선보인 것이다.

기존의 동력원보다 못할지언정 마도국 동력원은 발전 가능성이 남아 있다. 7대 마도왕은 그보다 많은 동력원을 제작할 수 있다고도 선언했다.

이로써 명제가 깨졌다.

무한한 동력원은 더 이상 마탑만 관리할 수 있는 전유물이 아니다.

현재 평론가들이 차세대 마법계를 주도할 거라고 평가하는 거대 세력은 아티슨 마탑, 에온, 아케나드 마도국이다.

후우우우우웅…….

마도국의 동력원, 일명 원천의 동력원이 은은히 푸른빛을 발산했다.
초대 마도왕의 성채인 센트럼에 순환하는 자연의 마력이 <원천>이 만든 통로를 따라서 거대한 구체의 기계 장치에 집약됐다.

끝없는 대자연의 마력이, 극도의 효율성으로 인간이 거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범용성 높은 마력으로 전환되었다.

원천의 동력원이 출력하는 마력은 그와 연결된 총 238개의, 마도국이 개조한 특수한 공간 마법진을 지속시켰다.

터벅, 터벅.

반젤리스는 뒷짐을 진 채 마법진 사이를 온종일 누비며 자신이 만든 동력원을 응시했다. 그의 상념이 멈추지 않았다.

“죽음의 문에서 나온 정체불명의 파장을, 우리가 수십 일에 걸쳐 해석하여 그를 상쇄하는 공간 마법진 배열을 완성했지. 그것이 어째서 공간을 불안정하게 만드는지 근원을 파악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마도국의 힘으로 공간의 소유권을 되찾았다…….”

죽음의 문이라는 명칭은 복귀한 베르덴에게 직접 들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메드레일.”
“위대한 핏줄의 일원으로서 자랑스럽죠.”

센트럼의 최상층부에 발을 디딘 메드레일 루인 아케나드가, 반젤리스 곁으로 향하며 주변에 가득한 마법진들을 둘러보았다.

“이 복잡한 공간 마법진들을 조율하고 안정화한 분이 조부님이니까요.”
“마도국의 마법사들이 없었다면 족히 57일은 더 걸렸을 거다.”
“무엇보다 조부님이 만드신 동력원이 아니었다면 천문학적인 양의 마석을 소모해야 겨우 모든 대륙의 공간 좌표를 안정시킬 수 있었을 거예요. 그것도 고작 수십 분 동안만요. 일시적이지만, 또 장기적으로 공간 이동을 다시 가능하게 한 것은 조부님의 위업이라고 기록되겠죠.”

조손은 나란히 동력원을 올려다보았다.

“물론 10대 마탑의 동력원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동력원 폭주 사태가 실재한 마당에 자기 심장을 내보일 만큼 마탑들은 과감하게 굴지 못하지. 게다가 마도국의 마법진 기술을, 마탑에 고스란히 보여 주고 싶지도 않았고.”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마탑은 우리의 것이 아니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타인에게 용납할 수 없는 것이 있다. 파생으로 발전을 거듭하는 마법계에서는 보통 자신만의 기술이 그러하다.

내일 세상이 멸망한다고 해도 마탑은 동력원을 내주지 않을 것이고, 마도국은 선뜻 마법적 기술을 내놓지 않을 것이다.

반젤리스가 이따금 보여 주는 이타성은 사실상 가족에 한정되어 있다.
다른 누군가가 반젤리스의 영역을 감히 넘보려고 한다면, 그는 지고한 7대 마도왕으로서 손을 쓰는 데 주저하지 않으리라.

“덕분에 이 완전하지 못한 동력원을 어떻게 해야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을 좀 했지. 실패했다면 힘들게 완성한 공간 마법진 배열을 몇 번 운용하지도 못했을 거다.”
“네 번만 운용해도 마도국의 재정이 휘청거렸을걸요. 원천의 동력원은 물질적으로 가치를 헤아릴 수 없다는 증명이죠.”
“하하하하, 확실히 노력한 보람은 있었지. 그래, 보람이 있었지만…… 무한한 동력원이란 것에 대해 생각할수록 의문이 들더구나.”
“의문이요?”
“센트럼에 순환하는 방대한 자연의 마력으로도 원천의 동력원을 유지할 수 없다. 간격을 두지 않으면 센트럼 전체가 정지할 정도지. 이만한 마력량조차도 무한과는 한참, 한참 거리가 멀어.”

반젤리스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그런데 마탑의 동력원은 무엇이길래 고갈되지 않을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 못하는 것이 마법계의 절대 명제인데.”

원천의 동력원은 여전히 빛을 뿜고 있다.

“절대 명제가 깨지지 않았다고 가정하면…… 도대체 마탑이 보유한 동력원의 마력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마탑의 동력원에 대한 여러 의문은 마법계에서 사장된 지 오래였다.
185년이라는 적잖은 세월 동안에 이미 동력원은 완전성으로 증명되었다. 그 자체가 개념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물은 물이고.
하늘은 하늘이며.
동력원은 동력원이다.

여기서 의문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것은 황폐한 사막에 씨앗을 심는 행위만큼이나 생산적이지 못하다. 마법계는 뒤를 돌아보기보다는 앞으로 향하기로 했다.
이런 인식은 마법계에서 평생 몸담은 반젤리스의 뇌리에도 깊게 박혀 있었다.

“그리고…….”

반젤리스는 히아레마르 내해에서 옛 왕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마도국은 언제나 있었다. 올다르크는 존재하지 않은 적이 없지.

난데없이 초대 마도왕의 이름을 언급하는 그놈은 전혀 거침이 없었다. 마치 아무도 모르는 진실을 알고 있다는 것처럼 굴었다.

‘옛 왕은 8세기 전의 존재고, 시조는 5세기 전의 초월자다. 오차의 오차를 고려해도 절대 둘이 마주칠 일은 없을 터. 그런데…… 옛 왕은 시조에 대해 말할 때 전혀 낯선 기색이 없었다. 그저 알고 있다는 거로는 설명이 안 돼.’

반젤리스가 천천히 턱을 쓸었다.

‘운명의 사도는 뭐지? 저항자라는 건? 옛 왕은 베르덴을 운명 파괴자라고 지칭했다. 운명의 사도는 베르덴의 적인가? 베르덴이 저항자인가? 그럼 왜 베르덴과 저항자를 굳이 나누었지? 또 마족이라는 종족은 무엇인가. 사룡이 베르덴을 보고 세계수를 언급한 것은 어째서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반젤리스의 직관이 단서를 연결했다. 결과적으로 정답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은 조금이라도 확률이 더 높은 가설로 이어졌다.

‘옛 왕은 몇 번이고 자랑스럽게 운명을 언급했다. 운명과 운명에 반하는 베르덴, 그 둘의 중심에 시조가 있다는 것인가.’

베르덴은 <아케인>이라는 초대 마도왕의 진전을 이어받았다. 로브도 마찬가지다. 칠흑에서 잿빛으로 바뀌었지만 그것은 여전히 드래곤을 소재로 제작된 초대 마도왕의 로브였다.

‘그렇다면 시조가 저항자……? 운명을 향해 저항했다고?’

반젤리스의 의문은 하나로 귀결됐다.

‘운명이 뭐길래?’

반젤리스가 처음으로 운명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운명의 일반적인 의미를 되뇌며 운명이, 시조와 베르덴과 세상의 혼돈과 어떤 식으로 연관되었는지 사유하려던 그때였다.

“조부님?”
“……나머지는 아직 입에 담기에는 이르군.”

고개를 좌우로 저은 그는 동력원에서 곧 시선을 거두었다.
그러고는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모두 도착했느냐?”
“아, 네. 조부님.”

메드레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센트럼의 최상부에 왜 왔는지 상기하며 가장 높은 발코니로 반젤리스를 안내했다.

그렇게 조손이 하늘에 가까운 곳에서 마도국의 수도를 내려다보았다.

“백작급 이상의 영주들이 각자 기사단을 데리고 집결했습니다. 마법도시 비렌테의 마법 협회도 함대를 이끌고 합류했고요.”

영지의 깃발을 당당히 건 비행정들이 수도 성벽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 마법 도시의 협회도 그 일각에 자리했다.
많은 마법사의 마력이 반젤리스의 마법적 감각에 아른거렸다. 기를 깨우친 자들도 있었지만 마법사의 수가 압도적이었다.

아케나드 마도국의 대군을 지휘할 머리들이 7대 마도왕의 명령을 받자마자 한달음에 마도국 수도에 방문한 것이다.

메드레일이 북부에서 보낸 서신을 꺼냈다.

“그리고 프로하스도 마도국과 세계를 맞이할 준비를 갖췄다고 해요.”
“북부를 지배하는 국가의 환대라.”

프로하스는 마도국과 크게 교류가 있는 국가는 아니었지만, 최근 프로하스의 젊은 국왕은 마도국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전쟁이 벌어진다면 마도국의 군세와 함께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의도는 알 수 없지만 나쁠 것 없었다.

이 차가운 북부의 유일한 지배 세력은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을 갖고 있으므로. 독한 추위에서 살아가는 자들은 강인하다.

“인류를 배신한 존재들이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돌이 챈다고 해서 발을 내딛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아니 될 일이지.”

프로하스의 국왕───에레스 아인드겔 프로하스의 친필로 쓰인 초대장을 읽은 반젤리스가 북쪽을 바라보았다.

“북부는 오랜만이군.”

옛 왕이 전령을 보내기 전에 개최될 긴급한 정상 회의는 프로하스에서 열릴 것이다.

* * *

“프로하스. 운치는 있군.”

원형 테이블에 이미 개봉된 프로하스의 서신이 놓여 있다. 마도국을 경유해서 보낸 편지는 사실상 의견을 묻지 않는 통보였지만 제라클 황제는 굳이 반대하지 않았다.
이러한 프로하스 국왕의 뜻을 마도국이 지지해 준 모양이므로.

현재 마도국의, 정확히는 7대 마도왕의 입김을 무시할 순 없다. 대륙 규모의 공간 이동 저해 현상을 해결한 초월자니까.

업적을 이루었으니 존중해야 마땅하다.

“북부의 환경은 화산 지대와 완전히 정반대인데, 괜찮겠나?”
“매직 아이템의 힘을 빌리면 괜찮소. 맨몸이라도 가야 하고. 정상 회의가 열리는데 춥다고 불참할 수는 없지 않겠소?”

드워프를 대표하는 붉은 화산의 클랜장 아르쿨이 답했다. 처음으로 제국 수도에 방문한 그는 황실의 대접을 받고 있었다.

제라클 황제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한 마음가짐이네. 이번 전쟁에서 드워프의 역할은 지대하겠지.”
“물론이오. 옛 왕인지 뭔지 온 세상이 드워프가 진정 무엇인지 알게 될 거요. 드워프의 병기가 진정 무엇인지 말이오.”

아르클은 고급진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입맛을 다셨다. 벌컥 들이켜고 싶었지만 자제했다. 클랜들의 대표로서 위엄을 갖춰야 하므로.

“그나저나 이웃 나라들인 제국과 함께 하는 것에 소극적이라고 들었소. 발데라 왕국, 바림티엘 협국, 이텔 왕국…… 특히 이텔 왕국은 언데드 사태에서 제국의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말이요.”
“현재 대륙의 적이 언데드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죽음에서 탄생한 이형종을 상대하는 데는 결국 루아스교가 제일이니. 더군다나 말도 안 되는 일이 대륙을 다시 흔들고 있지 않나.”
“음…… 그렇긴 하오.”

아르쿨이 술잔을 내려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죽지 않는 생명들이라니. 최근 들어 못 볼 걸 다 보는 기분이오.”

죽음은 없다.

제대로 대응할 새도 없이 레프라기움 마탑주의 봉인에서 풀려난 옛 왕으로 인해 이 세상에서 죽음이 사라졌다.

칼에 찔려 진즉에 출혈이 과다한 인간이 치유의 기적을 받아서 살아남고.
몸통을 으깬 벌레의 머리가 움직이며.
도축 당한 가축의 동공이 쉼 없이 떨린다.

너무도 터무니없는 일이라서 사회는 들썩이지 않고 되레 가라앉았다. 폭풍에 실려 온 차가운 바람에 몸을 움츠리는 것처럼 말이다.

기괴한 사태를 맞닥뜨린 인간이라면 루아스교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두 왕국과 협국이 교국을 따르는 것에 불만은 없다.
제라클 황제는 서대륙 남부의 삼국의 전력 따위 별로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다.

아르나크 제국은 600년이 넘게 존재해 온 위대한 ‘제국’이다. 그 아케나드 마도국보다도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제국령에 종속된 영지들과 국가들의 병력은 가히 압도적이다. 아르나크 제국은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땅이 넓고, 인구수가 많은 국가다.

제국도 이미 대군을 소집했다.

“옛 왕에 그런 힘이 있다고는 들은 적이 없지만, 현실은 현실. 고대의 초월자와의 전쟁은 이제 피할 수 없는 흐름이겠지. 제국은 자네들의 창조를 기다리고 있겠네.”

제라클은 황제다운 여유를 보이며 위엄 있게 두 손으로 깍지를 꼈다.

“강대한 병기를 고대하지.”
“걱정하지 마시오.”

아르쿨이 장담했다.

“이미 궤도에 오른 지 오래이니.”

절개를 지니 망치이자 전설적인 그하룬이 화산 지대를 떠나고 정통을 중시한 드워프 파벌은 중심을 잃어버렸다.
그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컸지만 아르쿨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완강한 고집?
더 강한 고집으로 꺾으면 그만이다.

아르쿨도 정통을 없앨 마음은 없다. 단지 정통에 융통성을 부여할 생각이다. 드워프의 금기인 도구의 양산까지 그리 멀지 않았다.

“아참, 주검의 영광에 붙은 드워프가 하나 있다고 들었는데. 혹시 어떤 난쟁이였소?”
“뭐라 설명하기 어렵군. 정상 회의에서 직접 보는 편이 나을 걸세.”

정상 회의에서 그림멜과 루네시카의 심문은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이번에는 베르덴도 참석한다.

황제와 클랜장의 대화는 조금 더 이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고 짧은 보폭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황실 근위대를 물린 제라클 황제는 제국 집행 기관의 로드이자 그의 그림자와도 같은 크라일을 곁에 둔 채 말했다.

“지상 최악의 난쟁이, 그림멜 그롬파르의 실물은 확인했을 텐데 아직 조용하군. 침묵을 협조할 준비를 마쳤다는 의미로 이해하지.”

[…….]

“루네시카 안테르노아의 영혼이 어떤 상태인지 설명해라, 아에로돈.”

천공룡 아에로돈은 조언을 대가로 지상 최악의 난쟁이를 직접 확인하고 싶다고 요구했다. 원하는 걸 들어줬으니 녀석이 입을 열 차례였다.

[이 빌어먹을 황제 놈. 아주 칼같구나.]

천장에 숨은 아에로돈이 작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사뿐히 내려왔다.

[알았으니까 그만 좀 보채거라. 안 그래도 심각해 죽겠는데…….]

* * *

공사 중 사고로 자재에 상체가 짓이겨진 사람이 있다. 장기는 으깨져 곤죽이 되고, 척추는 가루가 되었으니 죽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죽지 않는다.

머리와 하반신이 남은 사람이 고통에 울부짖으며 살려 달라고 소리친다.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광경에 사람들이 구토했다.

말 그대로 죽음이 사라지니 사람들은 당혹감에 빠져 얼어붙었다.

다행히 죽지 않는다고 치료를 받을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위처럼 상반신이 뭉개졌어도 잔해는 남아 있으면 고위급 기적으로 나을 수 있고, 잔해가 없으면 결손된 신체를 복구하는 기적으로 되돌릴 수 있다.

대륙에서 루아스 교회로 향하는 발길이 끊이지를 않았다. 교구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교국은 본래의 방치대로 세간에 베풀 수 있는 기적과 그럴 수 없는 기적을 구분했다.

최고위 기적을 받을 수도 없고, 헌금을 낼 재산도 없으며, 그저 죽지만 못하는 인간들의 원성이 교국을 비난했다.
그럼에도 빛의 여신 루아스를 신앙하는 이들은 더욱더 많아질 뿐이었다.

죽음은 없다.
그럴수록 빛은 선명해진다.

교황 로마누스는 로브로 얼굴이 감춰진 여신상 앞에 꿇어앉아 기도했다. 신앙자만이 아니라 빛을 원망하는 인간을 위해서도 기도했다.
교황은 인간을 구분하여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

“로니아 왕국에서의 일은 들었습니다. 성자.”
“…….”
“인내할 수 없었던 겁니까. 그 복수심을.”

성자 레온하르트는 기도를 위한 의자에 앉은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야 겨우 그가 입을 열었다.

“해야만 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 해도 전 로니아 국왕을 죽일 겁니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것만큼은…… 후회하지 않아요.”

레온하르트는 몇 번이고 똑같은 선택을 내렸을 거라며, 끝끝내 복수를 이루고 나서야 느꼈던 불안한 후련함을 긍정했다.

어리기에 미숙하다.
하나 어리기에 배울 수 있다.

“베르덴은 진즉에 로니아 국왕의 죽음을 들었을 텐데 아직 에온에서 반응이 없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좌시하지 않겠지요. 아마도 정상 회의에서 이에 따른 보복을 해 올 겁니다. 루아스교는 베르덴에게 빚을 진 게 많은 상황이기에.”
“제가 책임을…….”
“제가 대화를 나눠 보겠습니다.”

교황은 망설임이 없었다.

“성자는 지나간 행동을 곱씹고, 그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고민하십시오. 그리고 저에게 절대로 사과하지 마십시오. 진정으로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
“우리는 언제나 더 나은 존재가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번의 복수가 성자에게 큰 거름이 될 거라고 믿겠습니다.”

레온하르트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예, 교황.”

자리에서 일어난 레온하르트가 성소의 기도실을 떠났다. 그는 가족을 생각했다. 어머니와 여동생에게 티르 마을의 복수를 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질질 끌리다시피 했던 그의 발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가족은 레온하르트의 전부였다.

쿵.

혼자가 된 교황은 작게 기침을 하고는 여신상을 향해 기도했다. 옛 왕이 봉인에서 풀렸다. 교국에서도 현재 군을 집결시켰다.
성전을 치르듯 대규모 성직자 및 성기사 군세가 조직될 것이다.

“루아스시여, 부디 당신의 양을 보살펴 주소서,”

기도가 닿은 걸까.

성소의 밀실에서 두 번째 신열을 앓고 있는 성녀 에르세티아의 손끝이 움직였다.

세 명의 신인이 다시 모이리라.

* * *

옛 왕이 전령을 보내기까지 아직 여유가 있다.

지식의 만찬회는 며칠 남지 않았다.

후웅.

베르덴은 주어진 시간 동안 마도국의 안정시킨 공간을 빌려 대륙을 누볐다. 하이랜디아에 방문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하이랜디아는 고산 지대에 자리 잡은 서약자의 나라.’

가장 가까운 국가와도 높은 절벽을 사이에 두고 있으니, 험준한 만큼 타인의 눈을 속이고 무언가를 꾸미기에 좋다.

가령 군대라거나.

그렇다.

초월자 연합의 군세는 하이랜디아의 영토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황금의 죄인과 죽음의 죄인도 다 그곳에 머물고 있다.
연합군은 죄인들이 남긴 황금 비고로 양성과 무장을 갖추었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폐하.”

현재 에온에 적을 두고 있는, 전 마스터의 제자인 맹용 에네트가 연합군 양성소의 안내자로서 베르덴을 맞이했다.

베르덴은 특정 장소를 철저하게 은폐한 시설을 감지했다. 그의 감지 능력으로도 해당 장소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유리온이 흥미로운 걸 숨기고 있었군.”
“이곳에 남은 고대 유적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아드리안 님, 유리온 님, 벤디에 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하겠습니다.”

에네트를 따라서 하얀 안개가 자욱한 협곡으로 진입했다. 협곡의 중심부는 머나먼 고대의 건축물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문이 있었다.

베르덴과 에네트의 존재를 인식했는지 내부에서 문이 열렸다.

협곡의 끝에 도달했다.

그 너머엔 광활한 영역이 있었다. 협곡의 대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관측할 수 없는 하이랜디아의 가장 은밀한 은신처였다.

중심에는 아주 작은 도시가 있었고, 도시 근처에 널린 연합군 주둔지에서는 연합군의 병력이 양성되고 있었다.

초월자 연합군의 전체는 아닐지언정 그 중심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전부 서약자의 계약을 통과하여 배신자, 즉 운명의 추종자가 단 한 명도 없이 초월자를 따르는 존재들이었으니.

템플의 제자들, 언령의 기사단, 주인 없는 땅의 정예, 에온의 마법사, 리비안트 공국의 귀족, 벨디른 공화국의 처형자, 에스티리아 왕국의 기사단, 일부 모험가, 일부 마탑의 마법사 등 초월자의 권역에서 제법 추려서 조직한 결과물이었다.

쿵!

초월자 연합에 찾아온 초월자를 향해서 일제히 발을 굴린다.

누군가에게는 에스티리아의 절대자.
누군가에게는 에온의 수장.
누군가에게는 블랙 아워의 3대 지도자.
누군가에게는 신성.
누군가에게는 주인 없는 땅의 대군주.
누군가에게는 경이의 답파자.

“에온의 베르덴을 뵙습니다.”

앞으로 수십만 명, 혹은 그 이상의 대군을 지휘할 수천 명의 정예가 베르덴에게 경례했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