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5화 대륙 (6)
탐식의 조정소는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거대한 지하 시설이었다.
과거에 방대한 지하수가 머물렀던 공동을 개조한 것이었는데, 다양한 생체 실험이 진행되는 만큼 실험 구역의 환경은 무서울 정도로 깨끗했다.
호세는 7번 에리어에 있었다.
7번 에리어의 구석에 위치한 80평 남짓한 공간이 그의 감옥이었다. 침대도 있고, 책상도 있고, 적당히 읽을거리도 있다.
인간이 사는 방을 대충 흉내만 낸 것 같아 눈살이 찌푸려졌다.
팔목과 발목을 감싼 고리가 그를 에리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붙들었다. 어떤 신묘한 원리인지는 조각가라 알 수 없었다.
열병에 시달리게 된 이들을 위해 신전의 조각을 포기하고, 푸른 산맥에서 테르네티아 연방으로 급히 하산한 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연방의 병사들을 살해한 창백한 노인, 또 그를 압도한 잔혹한 사내와 여인에게 붙잡힌 지 얼마나 되었을까.
‘대략 십수 일은 지났나…….’
호세는 나름대로 날짜를 세어 보고는 벽에 머리를 기댔다. 그렇게 생각이 깊어지고, 또 깊어질 때 실험장의 문이 열렸다.
허기가 지려고 할 때쯤에 ‘개조 인간’ 같은 것이 식사를 가져다주곤 했다. 애써 말을 걸어 봤지만 그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지성이 부족할뿐더러 발성 기관이 제거된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개조 인간이 아니라 피폐하면서 매혹적인 여인이 식사를 가져왔다. 자신만의 어둠을 지닌 심오한 사람이었다.
“영양분에 따라 신체를 유지하는 기능은 평범한 인간의 범주에 속해 있네요. 신체의 특이성 관찰은 오늘로 끝이에요.”
두 번째 송곳니 – 키르에 몰턴 일리온스.
“다음은 해부죠.”
“…….”
호세는 큰 반응 없이 테이블 앞에 앉아서 식사를 시작했다. 지극히 평범한 빵과 물이라 의심하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키르에는 물끄러미 호세를 바라보다가 맞은편에 앉았다.
“해부가 시작되어도 죽지는 않아요. 살아 있어야 당신이 가진, 아직 해석되지 않은 힘이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요. 다시 봉합해 주겠지만, 산 채로 자신의 몸이 헤집어지는 광경은 꽤 충격적일 테죠.”
“의식이 있는 채로 해부하는 이유가 있소?”
“모든 힘은 생존 본능과 직결되어 있어요. 기도, 마력도, 신성력도. 목숨이 경각에 달했을 때 비로소 강렬하게 빛나죠.”
“잔혹한 실험이구려.”
“당신은 이상할 정도로 담담하네요. 연기를 하는 기색은 아닌데.”
키르에가 테이블에 양팔을 올렸다.
“하에넬, 레나르, 페이. 아이들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호세, 당신과 달리 특별한 것 하나 없는 구인류의 산물들이.”
하에넬은 쓸 만한 피부만을 벗겨 내고 나머지는 폐기했고, 레나르와 페이는 남매이니 아주 사이좋게 이식자의 재료로 사용했다.
아이의 장기는 연약한 대신에 노인이 되찾을 수 없는 젊음을 가득 품고 있다.
“이 조정소에는 현재 쓸모없는 구인류를 보관할 만한 여유가 없어서요. 최대한 잘 활용했으니 의미는 있는 희생이었죠. 그렇게 믿는 게 마음이 좀 더 편할 테고요. 유감을───”
“나를 기만하려 하지 마시오.”
호세가 그녀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세 사람은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구역에 갇혀 있지 않소. 그것도 사지 멀쩡히. 당신들은 아이들을 ‘아직’ 건드리지 않았소.”
호세의 신성력이 신앙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을 포착했다. 다행히도 그들의 생명 반응을 알 수 있는 거리였다.
“공간을 밀폐했는데 눈치채다니, 놀랍네요. 한데 아직, 이라.”
키르에는 호기심을 보였다.
“우리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군요.”
“잘 알지는 못하지만 당신들이 선을 넘었다는 것은 이해하고 있소. 하려면 갓난아기도 살육하겠지. 하나 당신들에게 하에넬, 레나르, 페이의 목숨을 구걸하진 않겠소. 그런다고 해서 당신들은 자비를 베풀지 않을 테니까. 나는 되레 묻고 싶소.”
호세의 눈은 여느 때보다 선명했다.
“무엇이 당신들을 그리 절망하게 만든 거요?”
키르에는 살짝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진심으로 한쪽 입꼬리를 살짝 끌어 올렸다.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눈앞의 중년 사내가 일절 두려움 없이 그녀의 폐부를 건드렸다.
탁.
키르에가 품속에서 수술용 칼을 꺼내서 테이블에 올렸다. 예정대로 그녀가 직접 호세의 피부와 근육을 가르기 위한 정교한 도구였다.
“당신은 제 이야기를 들을 만한 처지가 못 돼요. 하지만…… 당신이 먼저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혹시 또 모르죠.”
“…….”
“제가 보기에 당신이 가진 미지의 힘은 신성력에 한없이 가까워 보여요. 기와 마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당신의 침착한 태도에서. 기댈 곳이 있기에 굴하지 않는 것은 독실한 신앙자의 특징이죠.”
키르에가 턱을 괴었다.
“호세, 당신은 어떤 신을 숭배하는 거죠?”
호세는 신성력을 발각당했음에도 당황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동공은 기이하리만치 석상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당신은 하늘이 개벽하는 순간을 본 적 있소?”
“개벽?”
“난 이 두 눈으로 보았소. 어느새 날마다 기도를 올렸던 루아스를 향한 믿음은 희미해졌고, 또 그것이 나의 길임을 뒤늦게 자각했지.”
호세는 목소리에는 호소력이 있었다.
“나는 이단자요.”
호세는 종교의 의미와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언뜻 포교처럼 들리기도 했다.
사실…… 지루할 줄 알았는데 처음 만난 이단자의 설교(說敎)라서 그런지 몹시 흥미로웠다. 구인류가 숭상하는 루아스 여신이 아니라 실체적인 힘을 가진 다른 신이라는 게 특히나.
키르에는 어느새 수술용 칼을 옆으로 치우고 호세와의 대화에 몰두했다.
* * *
그림낙스의 수장 – 블라드.
대륙에서 가장 위험한 암살자이자 마울러 휘하에 들어간 그가 만신창이로 한쪽 팔뚝이 잘린 채 바닥을 기고 있다.
이윽고 몸 내부에서 시작된 격통에 그가 온몸을 비틀었다.
“꺽…… 커헉……!!”
이는 히아레마르 내해의 섬에서 얻은 마도의 저주였으니…….
금환일식과 함께 내해에 떠오른 거대한 섬.
마울러의 명령을 받고 탐사대 비행정에 잠입하여 섬에 도착했다. 에온의 지원을 받는 디아문 마탑주의 아들, 그를 지지하는 르온 장로를 증거 없이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에온과 델하룬은 디아문 마탑을 두고 큰 갈등을 빚고 있었으니, 이것은 암투였다.
───네, 네놈은 그림낙스의…… 커헉?!!
당연하게도 암살은 성공했다.
미라 기사들이 상황을 혼잡하게 만든 틈을 타서 르온 장로와 호위 둘을 실수 없이 등 뒤에서 단칼에 심장을 찔렀다.
심장을 파내듯이 칼날을 사정없이 비틀어 확인 사살까지 했다.
시체도 아주 깔끔하게 처리하여 영원한 실종자로 남겼다.
발각되지 않고 복귀하면 임무는 완료.
블라드는 마울러라는 거대한 존재를 등에 업고는 음지가 아닌 양지에서 군림하려 했다. 공훈은 쌓이고 쌓여 그를 볕으로 이끌리라.
그 순간.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
갑작스럽게 섬의 하늘에서 거대한 벼락이 추락해 지하 미궁을 일직선으로 관통했다. 검붉은 전격의 급류가 통로를 질주했다.
───무슨…….
애석하게도, 아주 운이 나쁘게도 블라드는 마법 범위의 경계선에 걸쳐 있었다.
불길한 광채를 보자마자 몸을 던졌지만 번개는 그보다 빨랐다.
그것은 천벌일지도 몰랐다.
───……?!?!?!!
강렬한 파멸이 덮쳤다.
미궁의 벽에 처박힌 블라드가 치명상에 가까운 중상을 당했다. 심지어는 초월자조차도 성가셔하는 파멸이 내부에 스며들었다.
육신이 안에서부터 파괴되기 시작했다.
섬이 멸망하는 와중에 가까스로 비행정에 몰래 탑승했지만 파멸의 여파는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생명을 야금야금 좀먹었다.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 불치병처럼 말이다.
그래서 의식이 온전할 때 그림낙스를 대동하여 로니아 왕국으로 남하했다.
로니아 왕국에 육신을 갈무리하여 새것처럼 만들어 주는 특수한 마법적 물건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아티팩트 [판데미르의 관].
대량의 혈액과 최상위 마석을 이용하여 육체를 갈무리하는 기능, 블라드는 즉시 그 관을 손에 넣어 로니아 왕성에서 자신을 숨을 끊으려고 하는 파멸을 벗어나려 했다.
효과는 확실했으나…… 회복이 끝나기도 전에 왕성이 습격받았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비행정에 올라타 마저 육신의 이물질을 정리하려고 했지만 그 에온의 계명 집행 부대가 나타나 추격해 왔다.
결과는 추락.
분전했으나 마법 폭격을 몇 번이고 당한 상태라 교전에 패색이 짙었다.
블라드는 위상들을 직접 상대하다가 몸속의 파멸이 움찔거린 순간 경직되어, 그레이브에게 한쪽 팔뚝이 잘리는 수모를 겪고 말았다.
언데드 군세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블라드는 그때 죽었을 것이다.
털썩.
격전지에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주해 혼자가 되었다. 주변은 안전했지만 아직 전부 지워지지 않은 파멸이 그를 집요하게 죽여 갔다.
‘베르, 덴……!!!’
분노를 못 이겨 땅을 후려쳤다.
블라드는 자신이 이런 꼴이 되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무투계의 극점이…….
그림낙스의 정점이 초월자의 초위 마법에 우연히 휩쓸렸다는 이유로 죽음을 맞이한다니, 도저히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살아남아야 한다.
반드시.
블라드는 여기서 무너질 사내가 아니었다. 내심 되뇌었다. 그가 숱한 생명을 암살해 왔던 것은 이따위 결말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간신히 무릎을 짚고는 다시 일어날 때 블라드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
숲 안쪽에서 실 가닥으로 이루어진 이형종이 얇은 촉수의 첨단에 달린 붉은 눈동자로 블라드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악마?’
종족이 무엇인지 간파한 블라드가 단검을 쥐고는 움직였다. 마도의 저주가 또 발작하기 전에 처리하지 않으면 위험했다.
그때였다.
[그분의 힘.]
강력한 정신파가 블라드의 정신계를 파고들었다. 고통에 지쳐 정신이 크게 무뎌진 그가 저항에 실패해 정신을 장악당했다.
전신에 제동이 걸린 블라드의 상반신이 천천히 기울어졌다.
푹!
“컥.”
날카로운 실 가닥이 좌우에서 쇄도해 귀 안쪽을 관통했다. 고막이 뚫렸다. 악마의 실이 뇌 안쪽까지 닿았다.
실 가닥이 풀리며 뇌를 뒤덮었고, 블라드의 눈이 위로 젖혀졌다.
[그분의 힘이 깃든…… 뛰어난 육신. 아아, 우리의 신께서 제게 선물을.]
실 가닥의 악마가 아주 얇아지며 블라드의 머리로 들어갔다. 망가진 인형처럼 삐걱거리면서 그가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아, 아…….]
악마가 다시 목소리를 조정했다.
“아, 아.”
한없이 약해진 블라드의 정신을 지배해 육체를 빼앗은 악마가, 블라드의 기억과 기술을 포함해 모든 걸 가져갔다.
내부의 파멸은 악마를 죽이지 않고 오히려 힘을 더욱 강화해 주었다.
“악마 신앙자로서 최초로 대륙을 밟게 된 것에 영광을.”
블라드가 된 악마가 기도했다.
“우리의 신이시여, 하드라스 군단장님이 명령한 대로 대륙의 악마들을 통합한 뒤에 찾아뵙겠습니다. 부디 저희를 보살펴 주소서.”
세계의 틈새는 베르덴으로 인해 둘로 나뉘었다.
인간계 최초의 왕이 다스리는 틈새.
악마들이 모이는 틈새.
공간이 분리돼 운명의 군세가 악마들을 정리하지 못하니, 악마의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악마가 틈새에서 대륙으로 넘어오는 확률도 조금씩 높아지는 중이다.
그렇다.
세계의 틈을 넘은 베르덴의 신자가 현실 대륙에 발을 디뎠다.
* * *
대륙의 모든 세력이 움직인다.
* * *
에온이 프로하스의 긴급 정상 회의에 참석할 준비를 하는 동안, 베르덴은 명상을 하며 8위계의 경지를 조금씩 갈무리했다.
마법이 줄어들고.
마법이 파생되며.
마법이 통합된다.
마법의 숫자를 줄이면서 베르덴은 마도는 더욱 선명해졌다. 푸른 마력으로 이루어진 무한의 태양과 검붉은 마력으로 이루어진 파멸의 태양이 베르덴을 중심으로 공전했다.
여제와의 전투를 돌이켜 보며 마법적 전법을 더욱 효율적으로 개선했다.
“…….”
베르덴이 마력회로를 비활성화했다. 두 마도의 태양이 그에게 스며들었다. 일순간 눈이 각각 다른 색으로 빛났다가 벽안으로 돌아왔다.
때가 됐다.
베르덴이 정확히 시간에 맞춰 대전당의 복도를 걸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다른 이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 완료.]
[참석 준비 완료했습니다.]
“안 늦었으면 됐어.”
“주빈과의 만찬회. 필시 최고의 식사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소.”
알파, 베타, 테아렐, 루자크.
베르덴과 함께 호스트가 개최한 지식의 만찬회에 참석할 인원이었다. 알파와 베타를 양어깨에 얹고는 모두와 시선을 마주쳤다.
베르덴이 아공간에서 그링 아르카넘을 소환했다.
바다의 냄새가 짙게 풍겼다.
“그럼 출발하겠다.”
그링 아르카넘의 책장을 열자 바다의 소용돌이가 솟구쳐 그들을 감쌌다. 베르덴 일행이 다시금 심해의 밑바닥으로 이동했다.
* * *
{주빈이 오는가.}
호스트는 문어 머리의 촉수를 쓰다듬으며 낮게 웃었다. 그 또한 몹시 기대되는지 오래 앉아 있지 못하고 방 안을 거닐었다.
{나조차 애를 써 가며 특별히 준비한 재료다. 어서 반응을 보고 싶군.}
호스트가 기다란 팔을 뻗었다.
호화롭게 장식된 새장이 손끝에 걸려서 허공에 떠올랐다.
{그렇지 않나, 초월자의 영혼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