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1019

1019화 새벽의 별빛 (3)

극지 요새, 노르드발트(Nordvalt).

프로하스 서쪽에서 가장 굳건한 성곽을 자랑하며, 초대 프로하스 국왕이 북부를 통일할 당시 요충지로 삼았던 그곳에 동토(凍土)의 전사들이 차례차례 집결했다.

전국에 뿔뿔이 흩어진 대전사들은 물론이거니와 각지에서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강자들이 왕의 부름에 응했으니.
혹독한 땅에 적응한 북부인의 분위기는 타지에서 온 대륙인을 압박할 정도로 매서웠다.

‘과연 얼어붙은 하얀 대지처럼 강인함의 정도가 다르군요. 저들과 함께 싸운다면 든든하기 이를 데 없을 테지만…… 한편으로는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성위의 대주교───조제프는 두터운 털옷으로 얼굴을 가린 채로,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요새 거리를 거닐었다.

본능적인 신경전.
호기심.
업신여기는 시선.
…….

프로하스의 사람들과 프로하스 바깥에서 찾아온 사람들 사이에는 묘한 경계가 존재했다. 북부는 너무 거칠어서 북부에 생소한 이들에게 자극적인 충동을 일게 했다.
교국의 성기사들도 북부의 정제되지 않은 말투에 언짢음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다 할 분쟁은 발생하지 않았다.

피차 이 상황을 둘러싼 사안이 얼마나 중대한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툼 따위로 윗분들의 예민해진 심기를 거스를 멍청이는 여기 없었다.

노르드발트는 향후에 옛 왕과의 전쟁에서 사용될 프로하스의 최대 전초기지다.
지금은 긴급 정상 회의가 개최될 장소다.

각 세력의 요인들은 8할 정도 도착했고, 조제프 대주교도 그중 하나였지만…….
그는 루아스 교국의 7인의 대주교로서 회의가 시작되기 전까지 따뜻한 거처에 편히 머무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조제프 대주교가 인적이 없는 요새의 변두리에 도착했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유니아가 길게 하품하고는 앞장섰다.

“이쪽이에요.”

마법적으로 고도로 은폐된 마구간으로 들어섰다. 안팎이 차단된 이곳에서 나눈 대화는 결코 바깥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유니아는 나무 기둥에 등을 기댔다.

조제프 대주교는 마구간 안쪽에서 그가 만나기를 바랐던 인물과 대면했다.

“부활했다고 들었는데, 전과 차이는 없나. 세상에 다시 발을 디딘 소감이 어떻지?”
“아직 제게 살아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이 기쁠 뿐입니다.”
“대주교다운 감상이군.”
“그야 대주교이니.”

조제프 대주교는 수인 바르카젤에게 살해당했던 순간을 상기했다. 벨디른 공화국에서 함께 유골룡에 맞섰던 팔라딘 레일버의 죽음까지도.
하나 슬픔에 잠기지 않았다.
어두울수록 빛의 정십자가를 더욱더 빛내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기에.

“먼저, 이렇게 비공식 독대 요청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드리안 님, 제가 당신을 만나고자 한 것은…….”
“헛수고다, 조제프 대주교.”

마구간 그늘에서 아드리안의 공색 눈동자가 형형했다.

“성자는 선을 넘었다.”

에온이 계명을 집행하기 위해서 사로잡은 로니아 국왕을, 갑자기 나타난 성자 레온하르트가 단 일격에 쳐 죽였다.
이건 에온의 권역을 제멋대로 침범한 것과 다름없는 오만한 행동이었다.

“교국은 공교롭게도 동대륙 남부의 참극이 거의 끝나 갈 때쯤에 개입했지. 우연의 일치? 아무렇게나 갖다 붙여도 좋다.”
“…….”
“성자는 위상들이 피를 흘려 가며 지키고자 했던 에온의 정의(正義)를 무시했고, 강탈했다. 그러고는 교황을 앞세워 입을 다물고 있지. 배상이든 뭐든 간에 이미 용서를 운운할 범위를 벗어났다.”

차분한 분노를 표출한 아드리안이 마구간 내부를 존재감으로 짓눌렀다.

유니아가 “으.” 하고 진저리를 쳤다.

전 보헤미른 마탑주의 두 번째 제자인 레이셴의 직속 호위를 죽일 때 느긋하게 굴다가 아드리안에게 제대로 한 소리 들었던 게 떠올랐다.

“그걸 루아스 교국이란 배경으로 무마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성자님의 과오는 자명합니다. 아무리 증오해도 그런 식으로 복수를 해서는 안 됐지요. 하지만 에온과 교국이 반목하기에는 시기가 좋지 않습니다. 분열은 멸망의…… 도화선이 될 겁니다.”

조제프 대주교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 대주교가.
유니아는 무슨 신기루라도 본 사람처럼 경악하며 흠칫했다.

“부디 때를 미뤄 주시지 않겠습니까?”
“…….”
“별개로 정정하자면 성자님은 교황님의 그늘에 숨지 않았습니다. 교황님께서 그분을 지키고자 하나, 제가 지금까지 봐 온 성자님은 책임을 남에게 떠넘길 사람이 아닙니다. 순박하고, 자상하며, 열정과 노력이 무엇인지 아는 시골 청년이죠.”

그가 확언했다.

“성자님께서는 반드시 베르덴 님을 혼자 찾아갈 겁니다.”

조제프 대주교는 침묵한 성자와 최근 대화라고 할 만한 걸 나누진 못했지만 성자가 그렇게 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감정적인 충동을 결국 인내하지 못하고 저지른 잘못에 대해 직접 사과할 거라고 굳게 신뢰했다.

아드리안이 코로 숨을 훅 내쉬었다.

“대주교의 이런 모습을 보면 교국에서 길길이 날뛰겠군.”
“한 번 죽어 보니 새삼 깨닫게 되더군요. 대주교 이전에 저는 한 사람일 뿐이라고. 대주교가 아니라 조제프, 이 늙은이의 개인적인 부탁이라고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만 일어서라.”

아드리안이 조제프 대주교의 안쪽 팔꿈치를 잡아 일으켰다.

‘초연해졌군.’

죽음을 실제로 경험했기 때문일까.

아드리안은 조제프 대주교가 전보다 정신적으로 성장했다고 느꼈다.
주군께서 괜히 그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다.

“이 전쟁은 초월자 연합이 주도한다.”
“……!”
“루아스 교국도 엄연히 초월자 세력이니.”

루아스교를 연합의 일부로 삼아 초월자들의 지휘 아래에 두겠다, 라는 말뜻을 조제프 대주교는 단번에 이해했다.

“그 요구는, 아마 교황님께선 받아들이시지 않을 겁니다. 특히나 성녀님께서 아시면…….”
“정상 회의에서 주군께서 결정을 내리실 거다.”

아드리안은 단호했다.

“이 말을 추기경들에게 전하든, 교황에게 전하든 마음대로 해도 좋다. 성녀가 돌아와도 판은 바뀌지 않을 테니.”

그걸 끝으로 아드리안은 마구간을 나섰다.

유니아는 슬쩍 조제프 대주교를 봤다가 마법적인 은폐를 해제했다.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눈을 밟으며 아드리안을 뒤따랐다.

‘초월자가 된 이후로도 한층 더 정련되었군요.’

조제프 대주교는 아드리안의 심신이 성장했음을 느끼며 숨을 흘렸다. 그의 복잡한 머릿속처럼 입김이 어지럽게 피어올랐다.

난세.

태어나서 경험해 본 적 없는 혼란기에서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조제프 대주교는 한동안 마구간을 떠나지 못하고 생각에 잠겼다.

* * *

태고의 모험 속 헤르사온 왕국 수도.

인간의 피 냄새에 홀린 아인종과 이형종이 크게 주저앉은 성문의 틈새로 들어간다.
식욕과 잔학성의 발로였다.
드래곤이 내뿜는 위압감에 주저하기도 했지만, 거대한 괴이가 발산하는 알 수 없는 기운이 괴물들의 본능을 자극했다.

퇴로는 없다.

성벽에 갇힌 사람들은 몰려드는 적들의 숫자를 밀어내지 못했다. 감옥이 되어 버린 수도를 향해 두 마리의 군마가 질주했다.

테아렐과 베르덴이 동시에 마법을 발동했다.

트리플 캐스팅: <파도>

<연쇄 번개>

파도가 삼면에서 성문을 크게 덮는 것과 동시에 벼락이 작렬했다. 뇌명이 확산했다. 범위 내에 있던 괴물들의 장기가 깊숙이 타 버리며 수십 구의 시체가 널브러졌다.

[입구 확보.]

“들어가서 근처부터 정리하겠소.”
“알겠다.”

<대지의 장막>

베르덴은 대지 계열의 보호막으로 전격이 깃든 물보라로부터 일행을 보호. 루자크가 말의 옆구리를 찼고, 높이 뛰어오른 말이 성문 잔해를 그대로 뛰어넘었다.

콰자자자작!

기를 운용하는 루자크의 장검이 오크의 목뼈를 단칼에 절단했다. 능숙하게 군마로 반 바퀴 원을 그린 그를 따라서 칼끝에 딱 걸린 코볼트와 고블린의 피가 낭자했다.

수도에 입성한 베르덴이 안장 위에서 아이젠폴을 지면에 갖다 댔다.

트리플 캐스팅: <석벽>

암벽이 솟아올라 성문을 대체했고, 이어진 <지형 조작>이 벽의 형태를 변형하여 괴물들이 진입할 법한 빈틈을 메꾸었다.

‘마력회로가 꽤 부담스럽군.’

전격 계열 마법이 상당히 힘에 겨웠다. 그보다 부담이 심한 공간 계열 마법은 가급적이면 쓰지 않는 편이 바람직하리라.

[수도 진입 성공했습니다.]

쿠구구구궁……! 쿠우우웅……!

헤르사온 왕국 마법사들의 영창 마법이 드래곤과 괴이를 강타했다.
현대 공성 마법에 필적하는 파괴력이었으나, 드래곤은 잠시 주춤했을 뿐이고 괴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브레스.

드래곤이 쏟아 낸 거친 불길에 수도 수호 첨탑 중 하나가 붕괴했다.

테아렐이 말했다.

“원래 경지가 아닌 이상 저쪽으로 가면 우리도 죽어. 특수 개체급이야. 특히 저 머리에 다리하고 팔 달린 이형종은.”

베르덴은 그녀가 가리킨 괴이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짐작은 확신이 되었다.

‘신의 잔재인가.’

세계수가 침묵의 사막에서 몰살한 신의 잔해에서 태어난 사막의 재해와 비슷한 개체다. 탄생의 원리는 다를지언정 결과물은 흡사했다.

‘샛별의 종교는 고대 악신들의 신물을 얻은 탓에 종교들의 적이 됐다. 누명이든 아니든 현재의 샛별은 악신들과 관련된 물건을 손에 넣은 것 같군.’

루자크가 폐허와 다를 바 없는 좌측 길을 검으로 가리켰다.

“새벽녘의 기사는 수도의 지하에 있소. 지하도는 복잡한 길이요. 저 왕성으로 가는 지름길도 지하에 있으니 나만 따라오시오.”

루자크는 마치 기사의 표본처럼 행동하며 기꺼이 선두에 섰다.
군마를 다루는 실력이 제법이다. 마상 위에서 휘두르는 검격에 시체를 탐하고 있던 이형종들이 잘려 나갔다.

“몸놀림이 괜찮은데. 이 정도라면 혼자서 변경백 죽일 수 있는 거 아니야?”
“실제로 생전의 나는 혼자서 변경백을 암살했소. 그리고 변경백이 모은 샛별의 추적대에게 미친 듯이 쫓기고 말았소. 내가 샛별이 된 셈이지. 그걸 모조리 끊어 내느라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겼는지…….”

변경백의 최측근인 비정의 기사는 루자크였고, 루자크는 이 태고의 모험에서 비정의 기사의 역할과 상황을 부여받았다.
우연인지 호스트의 의도인지 알 수 없으나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 셈이다.

이야말로 루자크가 자신이 누구인지 깨달을 수 있었던 원인이었다.

“하지만 후회는 없소. 나는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결정을 내릴 거요. 그것이 내 필연이라고 느꼈기에.”

콰아아아앙!

악신의 잔재가 남은 세 개의 수도 수호 첨탑 중 하나를 부숴 버렸다. 시체와 함께 날아온 바위 잔해가 근방에 착탄했다.

군마가 비틀거렸다.

딱 한 끗 차이로 압사를 피한 루자크는 두려움에 떨긴커녕 웃었다.
베르덴은 생각했다.
이곳이 게임 무대가 아니었더라도 루자크는 역시 웃었을 거라고. 도대체 어떤 필연이 생전의 그에게 용기를 주었던 걸까.

그때였다.

측면에서 날아온 나무 화살이 테아렐이 유지하는 물의 장막을 관통했다.
첨예한 바람이 귓가를 스쳤다.

“아니, 이게 누구인가.”

건물 옥상에서 드리운 그림자들이 베르덴 일행을 포위했다. 수백 명의 엘프가 살기가 뻗치는 눈동자를 빛내며 정령들과 함께 등장했다.

그 사이에서 참으로 지식인 같은 말투를 구사하는 사내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존경하는 아르카디옴의 네 번째 주빈과 열아홉 번째 귀빈이 아니신지? 그 옆에 있는 분도 귀빈으로 보이오만.”
“이 교만한 말투는…….”

루자크가 상대의 정체를 간파했다.

“아홉 번째 귀빈, 모르텔란.”

* * *

“그 말투. 열여섯 번째 귀빈, 루자크 팔테인이군. 육지에서 네 번째 주빈의 곁에 오래 머물더니 그사이 줄을 섰는가. 현명한 선택이었지만, 여기서 어리석은 결말로 끝나게 되었구먼.”

모르텔란은 아르카디옴의 한 자릿수 귀빈 중에서 명성이 높았다.
악명이었다.
지식인은 지식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만, 지식 게임에 임하는 모르텔란은 그 이상이기 때문이었다.

뱃속에 검을 숨긴 자.

모르텔란은 패배를 경험한 적도 있지만 끝내는 승리했다. 그의 지식을 빼앗은 지식인은 결과적으로 누구도 존속하지 못했다.
죄다 지식의 망령이 되었다.
모르텔란은 순간의 굴곡이 아니라 종국을 볼 줄 아는 지식의 통찰자였다.

“걱정 마시게. 그대들의 지식은 한껏 음미해서 소화해 줄 테니.”

루자크가 활시위를 겨눈 엘프들을 보며 입술을 짓씹었다. 본 역사에는 없었던 엘프 습격을 유도한 것이 모르텔란이었나!

“……모르텔란은 자신의 승리가 확실하지 않으면 이렇게 나타나지 않소. 우리를 단번에 죽일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는 것이지.”
“…….”
“아무리 봐도 퇴로가 없소.”

루자크의 말대로 전진하든 우회하든 후퇴하든 도주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모르텔란은 이미 승리한 것처럼 한껏 미소 지었다.

‘겉모습은 인간인데 인간을 배척하는 엘프들을 자연스럽게 지휘하고 있군. 엘프에 해당하는 역할과 상황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엘프가 놈을 인간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건가.’

군마에 탄 베르덴은 조금 앞으로 나왔다.

뒤에서 테아렐이 묻는다.

“방법 있어?”
“있다.”

베르덴이 목소리를 높였다.

“전원, 활을 거둬라.”
“허허헛, 네 번째 주빈께서는 엘프에 대해서 모르시나 본데…… 어?”

엘프들이 일제히 활시위를 내렸다. 엘프 습격의 총지휘를 맡은 모르텔란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눈을 부릅떴다.

탓.

아름다운 여자 엘프가 지상에 착지했다. 녹즙과 진흙을 섞어 만든 반고형 분장제로 얼굴에 문신을 한 엘프였다.
태고 시대의 엘프라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아…… 아아……!”

적의를 완전히 거둔 엘프가 만면에 미소를 띠며 당장 다가왔다. 그러고는 베르덴의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였다.

“대자연의 자식들이, 위대한 어머니의 화신을 뵈어요.”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