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1021

1021화 새벽의 별빛 (5)

“이스 바에 노스…… 세룸 노아리…….”

태고의 시대에서 헤르사온 왕국의 전속 마법사로 발탁된 마법사가 큰 지팡이를 내세우며 영창 주문을 외웠다.

“세이르 카룸…… 바에!!”

밀도가 높아져 눈으로 식별이 가능한 칼바람들이 쏘아져 나갔다. 유적 지하도의 외길 통로라서 회피할 구석은 없었다.

카가가가강!

물론 베타의 프레임엔 흠집도 나지 않았다.

“머, 멀쩡하다고?”
“예사 골렘이 아니로군……!”

바위도 부수는 바람 영창 마법에도 멀쩡한 골렘의 모습에 왕국의 마법사들과 병사들이 경악했다.

그 순간 베타의 등 뒤에서 불쑥 테아렐의 손이 뻗어 나왔다.

<다중 수계 화살>

2위계의 <다중 물 화살>을 테아렐이 개조한 고유 위계 마법.

화살촉 부분에 수압이 집중되어 관통력이 높아진 수시(水矢)는 내부의 혈류를 밀어내어 주변의 혈관을 파괴한다.

현대의 공식 초월자 중 수류 계열 마법에 관해서 그녀를 따라올 마법사는 없다.

“무……?!”

영창 없이 쏘아진 마법을 인식하는 것과 동시에 전면에 있던 마법사의 미간이 뚫렸다. 그를 시작으로 여러 로브와 갑옷이 꿰뚫렸다.
십수 명의 사람이 왈칵 피를 분출하며 서로 만든 피 웅덩이에 잠겼다.

“무영, 창…… 전설…… 의…….”

심장에 화살이 꽂힌 늙은 마법사가 휘청거리다가 마지막으로 고꾸라졌다.

“먼저 공격한 건 그쪽이니 정당방위야.”

테아렐이 열심히 뛰어다니느라 흐트러진 호흡을 갈무리했다. 아주 평범한 체력. 육탄전은 생각도 안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근데 연산을 통한 마법 전개가 전설로 오해받는 걸 보니 마법적으로 시대가 낙후되기는 했구나. 영창 없는 마법은 현대에서 당연한 건데.”

강력한 마법사라고 해도 상황에 대응하지 못하면 어이없게 죽어 버린다. 한마디로 수싸움이다. 잘못된 수를 두면 그대로 끝장날 수도 있다.

누가 더 연산이 신속한가.
누가 더 마력회로의 흐름이 빠른가.
누가 더 판단력이 좋은가.
누가 더 창의적인가.
누가 더 상대를 잘 파악하는가.

현대의 마법전은 속도전이다. 거기서 초월자로서 군림한 테아렐에게 태고의 시대를 살아간 마법사들은 느려터졌다.

[위계 마법은 역사상 최고의 마법 체계입니다.]

마력회로의 창조를 누가 유도했는지를 떠나서 객관적으로 위계 마법은 영창 마법보다 거의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
현대 상식을 벗어난 금기 영창과 우주에서 거대 운석을 불러들이는 특수한 영창 마법 등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러니까 마법의 시대지.”

베타와 테아렐은 시체들을 가로질러 통로를 계속 나아갔다.

루자크가 말했던 것처럼 지하를 조작하는 장치가 꽤 있었는데, 베타가 스캔으로 파악한 다음 위험할 것 같으면 피했고, 괜찮다 싶으면 기계적인 판단력으로 이를 이용했다.

“그런데 왜 나를 따라온 거야?”

둘이 내딛는 지하도의 경사가 점차 위로 향하는 게 느껴진다.

“애셔의 곁을 떠나면서까지.”

[애셔 폐하는 책임감이 강합니다. 그리고 여기선 아르카디옴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일행을 지키는 것이 폐하의 책임입니다.]

베타의 대답은 명확했다.

[저는 애셔 폐하가 가진 책임감을 함께 짊어지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약하니까 보호해야 한다?”

[지금은 그렇습니다.]

“음, 틀린 말은 아니네.”

태고의 게임에선 눈먼 화살 하나만 잘못 맞아도 죽는다. 다른 일반 사람들처럼, 그게 당연한 순리인 것처럼 말이다.

테아렐은 자신의 옛 파티를 떠올렸다.

각성하기 한참 이전에 그녀는 파티의 모험가로서 후위를 담당했다. 흑요 등급에 도달했을 때 테아렐은 혼자가 아니었다.

‘다들 잘 지내고 있으려나.’

테아렐을 제외한 다섯 명 중에서 한 명은 한적한 시골에서 모험가 길드장을 하고 있고, 나머지 네 명은 십수 년 전에 은퇴했다.
사실상 테아렐 혼자만 일선에 남은 것이다.

그것이 세월의 무게였기에…….

이곳에서 테아렐은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모험의 향취를 느꼈다. 설령 거짓된 세계라고 할지라도 그런 그리운 기분이 조금 들었다.

[도착한 모양입니다.]

가파른 계단이 보인다.

지하도의 경사면을 꽤 올라왔으니 바깥은 왕성의 저층과 이어져 있을 것이다. 지하도가 정말로 왕성과 연결되어 있다면.

[속도를 늦춥니까?]

“아니.”

[확인했습니다.]

베타는 계단을 부술 듯이 힘껏 박차고는 그대로 솟구쳤다. 콰아아아앙! 지하도 입구가 산산조각 나며 지상의 빛이 쏟아졌다.

동공이 수축된다.

계단을 끝까지 올라 베타의 뒤에 숨은 테아렐이 밝아진 시야에 적응하며 미세한 수분을 뿌려 주변을 탐지했다.

‘적진 한복판이네.’

갑자기 파괴된 지하문을 본 병사들과 기사들이 입을 떡 벌렸다. 자욱한 먼지 속에서 선명하게 빛나는 베타의 외눈은 위압적이었다.

‘마법사만 6명. 숫자가 많으니 광범위 마법으로 단숨에 몰아쳐야겠어.’

손끝에서 메아리치는 물의 파동.

<해류의── 테아렐이 4위계 마법 연산을 마치려던 순간 벽에 붙은 상층 계단에서 고위 지휘관으로 보이는 사내가 급하게 내려왔다. “드래곤 머리 위에 있던 ‘여자’가 사라졌다! 당장 그년을 찾아서 생포해서 드래곤의 지배권을 뺏으라는 대마법사님의 명령…… 엉?!” 아랫층의 난잡한 상황을 목격한 지휘관이 눈을 휘둥그레떴다. “이, 이게 뭔?” “……!” 테아렐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휘관 때문이 아니다. 지휘관 뒤쪽에 있는 창문 없는 창밖으로 거대한 그림자가 다가온다. 무언가가 왕성의 저층을 향해서 돌진했다. 쿠우우우우우우웅! 밖에서 안으로 벽면이 터졌다. 지휘관의 몸체도 분쇄됐고, 잔해에 짓눌린 사람들이 단말마의 비명을 질러 댔다. 베타의 보호를 받은 테아렐이 햇빛을 가리는 그 이형종을 보며 혀를 찼다. 콰드드득. 비늘로 뒤덮인 파충류의 앞발이 구조물을 단단히 붙잡는다. 세로로 갈라진 눈동자가 열등한 인간들을 노려봤다. [크르르…….] 동공이 움찔거리며 드래곤의 입안에서 서서히 불길이 흘러넘쳤다. 불행히도 예상하는 그것이다. 그야말로 상징과도 같은 드래곤의 대표적인 능력 중 하나. ‘브레스.’ 테아렐이 마력회로를 전신으로 활성화해 정신을 일깨웠다. 마도 <태해(太海)>

5위계급의 고유 영역을 형성. 푸른 바다를 구현해 작은 해일로 주변을 휘감았다. 동시에 베타가 특유의 마력 보호막을 전력으로 전개했다.

“완전히는 못 막을 것 같은데.”

[드래곤의 열에너지를 측정 완료했습니다. 방어 확률을 계산한 결과입니다.]

순간 기류가 멎었다.

[23.7%.]

열기만으로 주변 생명체를 모조리 잿더미로 만든 화염의 숨결이 뿜어졌고, 그것이 바다와 만나 강렬한 수증기를 일으켰으니.

──────!

샛노란 열광(熱光)과 함께 헤르사온 왕성의 북부 저층부를 붕괴시켰다.
살벌한 폭음에 수도 전역이 떨렸다.

“……?”

전신 화상을 각오한 테아렐이 느닷없이 느껴지는 시원한 공기에 천천히 눈을 떴다. 베타 옆에 데우스가 서 있었다.
그들은 폭발의 중심지가 아니라 어느샌가 수도의 성벽 위에 놓여 있었다.

“마기온 선생?”

[마기온 선생입니다.]

“…….”

데우스는 어울리지 않게 굵은 땀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상당히 힘에 겨운지 당장 말을 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마법의 잔향이 감돌았다.
그제야 뒤늦게 테아렐의 마법적인 인지 능력이 요동쳤다.

‘공간 마법…… 과는 뭔가 결이 달라. 저항할 틈도 없었어. 마도? 무슨 마법으로 우리를 강제로 이동시킨 거지?’

게임 무대에서 테아렐과 데우스의 종합적인 마법 능력은 동급이다. 그럴진대 저항력을 무시하고 몸에 간섭하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무슨 아공간에 저장한 물건을 멋대로 ‘소환’하는 것도 아니고…….

“드래곤을 탄 여자는, 어디로 갔지?”

데우스가 가쁜 호흡을 내쉬며 물었다.

테아렐이 고개를 저었다.

“못 봤어.”

[방금 사망한 왕국 지휘관이 여자가 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데우스는 베르덴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지하로 향한 걸 알고 있었기에. 필시 베르덴의 과업은 샛별과 관련이 깊을 것이다. 그녀도 지하도로 향했음이 틀림없다.

‘추적해야 하는데.’

데우스는 상념에 잠겼다. 그를 망설이게 하는 건 베르덴의 일행이다. 베타의 동그란 외눈이 데우스를 올려다본다.

“왜 애셔와 떨어졌지? 명령인가?”

테아렐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질문임을 이해한 베타는 즉답했다.

[명령이 아닙니다. 애셔 폐하에게 테아렐을 돕고 싶다고 제가 부탁했습니다.]

“……그렇군.”

데우스는 속으로 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연민’을 버리지 못한 탓이다. 그는 당장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결정했다.

“과도한 지식은 독이다, 라고 애셔에게 전했나?”
“응, 전했어.”
“그럼 됐다.”

데우스가 페가수스를 불렀다.

“모든 드래곤은 한번 찍은 먹잇감을 절대로 잊지 않는다. 죽었다고 여기지 않으면 언제가 됐든 반드시 찾아오지. 그리고 악신의 잔재는 왕성만을 집요하게 노리고 있다.”

쿠구구구구……!

건물 잔해에서 벗어난 드래곤이 정확히 테아렐을 응시했다.
악신의 잔재는 큰 머리에 달린 두 다리로 굳건히 버티며, 머리에 달린 거대한 팔로 왕성의 저항을 점차 무력화했다.

“오래 붙잡아 둘 수 없으니 서둘러 지식의 과업을 완수해라.”

드래곤이 날개를 펄럭인다.

페가수스가 울음소리를 내며 앞발을 들고는 성벽 위를 질주하려 한다. 테아렐과 베타가 무사히 왕성에 들어갈 수 있게 드래곤과 악신의 잔재를 상대하려는 것이었다.

테아렐이 묻는다.

“왜 도와주는 거야?”

데우스는 페가수스와 함께 날아오르며 단호하게 말했다.

“움직여라.”

* * *

아득한 높이에서 몸을 던진 베르덴 일행이 금방 바닥에 도달했다. 물론 <비행>이 없었으면 산산조각 났으리라.

루자크는 깊게 심호흡하고는 몸에 남은 부유감을 애써 떨쳐 냈다.

──! ───! ──────! ─!

창칼이 부딪치는 소리.
가열찬 함성.

아주 가까운 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괴물의 괴성은 없는 걸 보니 아마 인간과 인간이 대립하고 있는 듯했다.

‘샛별의 잔당과 왕국의 추적대인가.’

베르덴과 루자크가 승강기 구역을 벗어나는 길을 사이에 두고 벽에 몸을 숨겼다.

“직진해서 곧 좌측으로 틀면 거대한 공간이 나올 거요. 유적의 끝으로 이어진 마지막 외길이 바로 거기 있소. 샛별의 잔당은 그 길을 지키고 있고, 왕국 섬멸 부대는 그를 넘어서려 하지. 우리는 적진을 정면으로 뚫어야 하는 셈이오.”
“생전의 너는 어떻게 했지?”
“나는 변경백이 남긴 추적대를 떨치느라 수도에 너무 늦게 도착했소. 폐허가 된 수도에 들어와 힘겹게 지하를 찾았고, 오랜 탐색 끝에 겨우 여길 발견했지. 난 시체들밖에 보지 못했소.”

루자크가 벽에 뒤통수를 기댔다.

“새벽녘의 기사, 그녀도 예외는 아니었지…….”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건가. 살아 있는 새벽녘의 기사를 보기 위해서.”
“뭐, 비슷한 소망이오.”

루자크가 검을 세워 굳게 다잡았다.

“난 준비됐소. 귀하께서는?”
“언제든지.”

[확인.]

베르덴에게 부여 마법을 받은 루자크가 단숨에 질주했다. 베르덴은 촉각을 곤두세우며 그의 뒤를 쫓았다.

머지않아 여러 횃불의 빛이 소란과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것이 보였다.

통로를 빠져나갔다.

“달의 동지들이여! 샛별을 떨어뜨려라!!!”
“샛별의 여신을 위해!!”

정면으로 충돌한 두 개의 집단이 검과 마법, 또 샛별과 달의 기적으로 혈투를 벌인다. 복장 구분이 명확했기에 누가 어느 세력에 속했는지 헷갈릴 일은 없었다.

샛별의 잔당은 열세.
전멸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샛별의 기사 두 명이 지키는 작은 도개교. 저게 마지막 관문이군.’

<비행>으로 넘어갈 틈이 없기에 도개교를 내려야 한다. 물론 <지형 조작>도 방법이나 마력회로 출력이 제한되어 도개교를 강제로 내리려면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 불가결하다.

“우리가 도와줄지언정 잔당은 절대로 새벽녘의 기사를 절대 만나게 해 주지 않을 거요. 전부 적이라고 생각하시오. 도개교는 이 내가 내릴 테니. 저 앞에 도달하게만 해 주시오.”
“알겠다.”

타다다다다닥!

베르덴과 루자크가 전장을 파고들었다. 둘에게 이목이 쏠렸다. 갑자기 등장한 제삼자를 본 병사들의 적의가 집중됐다.

“저건, 브로흐나트 변경백의 표식?”
“왕성의 섬멸 부대를 제외한 자는 전부 적이다! 저지해라!”
“달빛을 가려라!!”

당연하게도 양측에 적으로 규정된 직후 좌우에서 날붙이가 쇄도했다.

루자크가 검으로 걷어 내며 갑옷으로 막아 내었고, 베르덴은 유려한 몸놀림으로 사방을 방어하며 샛별의 잔당이 날린 철창을 잡아챘다.

‘역시 검보다는 창이 편하군.’

베르덴은 아이젠폴을 납도하고 철창을 제 것처럼 휘둘렀다. 아르카디옴에 참석하기 전에 모든 경지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흩어진 조각을 하나로 모아 추가적으로 개별적인 마법과 기술을 완성한 것이다.

<아케인>과 체술을 토대로 무한과 파멸을 결합한 ‘마도 창술’.

마안의 즉발성을 봉인하여 시간으로 마법의 위력 자체를 변질시키는 ‘의식 마법’.

하르칸 다제스트의 다섯 별을 규합하여 두 개의 별로 구축한 ‘새로운 성신 마법’.

마도와 영창을 융합한 ‘마도 영창.’

신격을 해방한 ‘마도 신위.’

독자적인 8위계 원소 마법은 아직 정보가 부족해 미완성이지만, 베르덴은 난잡한 자신의 마법 체계를 최대한 압축했고 조금은 추가했다.

에온 식(式) 창술──베르카엘룸(Vercaelum).

카가가가가가강! 콰직! 콰드드득!

회전을 거듭하는 변화무쌍한 베르덴의 창격이 전방을 휩쓸었다.
무엇이든 부술 것처럼 직선적이고 파괴적이나, 어느새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면서 공백을 파고드는 모순적인 움직임.

궤도를 읽을 수 없다.

지금은 마도를 개방하기 어려워 본래의 위력을 조금도 내지 못하지만, 스태프를 이용하는 몸놀림에 녹아든 베르덴의 기술과 경험은 역전의 전사보다도 농도가 짙었다.

……!

그때 창의 궤적을 무시한 왕국의 기사가 몸으로 들이받았다. 둘이 동시에 튕겨졌다. 창으로 막았는데 베르덴은 팔뚝이 욱신거렸다.

‘강하다.’

상대는 기를 원활하게 운용하는 시대의 강자임이 분명했다.
물론 기예도 쓸 수 있을 터.

“예사롭지 않은 실력이군.”

헤르사온 왕국의 섬멸대장이 검끝을 세웠다.

“샛별에 당신과 같은 성기사가 있다고는 못─”

베르덴이 마안을 번뜩였다.

콰드드득!

섬멸대장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틀었다. 코앞에서 쇄도한 대지의 가시가 사슬갑옷을 부수고 그의 목을 2할쯤 뜯어냈다.

‘직격을 피했나. 과연, 이 신체 능력으론 승산이 없겠어.’

기습은 먹혔지만 역시나 헤르사온 왕국과 샛별의 정예를 혼자 상대할 수는 없다. 피가 줄줄 새는 목을 틀어막은 섬멸대장의 눈가가 떨렸고, 왕국 마법사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마법……?”

베르덴이 대놓고 팔을 높이 들었다가 곧 지면을 내리찍었다.

<폭풍>

거센 회오리가 몰아쳤다.

동시에 근처에 있던 샛별의 잔당을 보란 듯이 제압했다. 헤르사온 왕국과 샛별, 그 둘의 적임을 이 공간에 각인시킨 것이다.

그렇게 베르덴은 모두의 이목을 사로잡아 공세를 감당했다. 덕분에 루자크는 별다른 저항 없이 도개교 앞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 * *

현재를 바꿀 수 없더라도 두 번째 기회가 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샛별의 성기사 둘이 막아섰다.

“샛별을……!”
“이미 늦었소.”

루자크가 창날을 쳐 내며 투구로 성기사의 코를 부수었다. 옆에서 쏘아진 창격이 루자크의 옆구리를 찔렀다.

“이미…… 늦었지.”

서늘한 날붙이가 갑옷을 뚫었지만 루자크는 이를 악물고 다리에 힘을 실었다. 넘어진 성기사의 머리를 짓밟아 기절시키고, 남은 성기사 하나를 벽까지 힘껏 몰아붙였다.

“우리는 진즉에 모두 죽었으니.”

힘겨루기를 하다가 루자크의 품에서 뭔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알파였다. 알파가 전투 도중 루자크에게 옮겨 탄 것이었다.

[눈.]

“악……!”

알파에게 눈을 가격당한 성기사가 흐트러졌고, 그때를 틈타 루자크가 검 손잡이로 그의 면상을 네 번 후려쳐 제압했다.

“이것만…… 돌리면……!!!”

루자크가 권양기(捲揚機)를 붙잡아서 도개교를 고정한 쇠사슬을 풀었다.

묵직한 진동이 퍼졌다.

어쩔 수 없이 관심이 이쪽에 다시 쏠렸다.

<전이>

때마침 베르덴이 공간 마법으로 전장을 벗어나 루자크와 알파 옆에 나타났다. 공간 마법의 반동 탓에 마력회로가 마비될 것 같았다.

알파가 베르덴에게 다시 올라탔다.

[애셔 폐하. 상태.]

“괜찮다.”

전신에 크고 작은 상처가 생기고, 마력회로에도 부담이 상당히 쌓였지만 새벽녘의 기사까지 고작 한 걸음 남았으니 가치는 있었다.

촤르르르르르르르륵.

한번 움직인 도개교의 쇠사슬은 외력이 없어도 저절로 빠르게 풀어졌다.

“첫 번째 도개교를 시작으로 빠르게 다섯 번째 도개교까지 연결될 거요. 앞으로만 가시오. 무조건 앞으로만.”

화살을 쳐 낸 루자크가 소리쳤다.

“달리시오!!”

쿵!

첫 번째 도개교가 이어지는 것과 동시에 베르덴 일행이 내달렸다. 공기가 답답하다. 옆으로 어둠이 내려앉은 지하 저수지가 보였다.
좌우는 공간이 조금 있으나 높이는 고작 5m밖에 되지 않는다.

작은 도개교에 딱 알맞게 설계된 모양이다.

그들이 전력으로 도착할 때쯤에야 다음 도개교가 연결되는 구조.

‘마력회로에 여유가 없다.’

공간 마법을 억지로 시전한 탓이다. 당장 화살과 마법을 방어하는 장막을 거두고 <비행>을 했다가는 격추당할 확률이 높다.
영창 마법으로 날아오를 수 있는 마법사도 있는 이상 다리를 무너뜨려도 소용없을 터.

얼마 남지 않은 샛별의 잔당을 넘어선 왕국의 섬멸대가 쫓아온다.

“새벽녘의 기사는 우리와 왕국, 둘 중 누구를 적대시할까.”
“왕국을 적대할 거요. 저들을 끝까지 데리고 가서 그녀와 함께 싸우는 것도 방법은 방법이겠지.”

그때였다.

루자크가 곧바로 몸을 틀더니 세 번째 도개교가 시작되는 지점에 있는 석재 기둥을 후려쳤다. 기둥은 부서지지 않고 크게 기울었다.

철컹!

다리 틈새와 저수지에서 솟구친 철창이 베르덴과 루자크 사이를 갈랐다.

“그리고 이것도 방법이오.”
“너…….”
“이 지하도는 수명이 다한 지 오래요. 노후화된 이 길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겠지. 실제로도 그러했듯이.”

쿠구구구구구구…….

“하지만 저들은 이런 철창쯤은 어렵지 않게 부술 것이고, 도개교가 가라앉기도 전에 새벽녘의 기사에 당도할 것이오. 그러니 이 내가 남아 시간을 끌겠소.”
“루자크 팔테인.”

베르덴이 눈살을 찌푸렸다.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군.”
“이것이 나의 과업이오.”

루자크가 웃으면서 등을 돌리고는 검을 수직으로 세웠다.

“지식의 과업 따위가 아니라 내가 결국 이루지 못한 과업. 나는 이미 죽었고, 게임에서 죽어도 나는 망령이 되지 않소. 지식이 제법 많으니까.”

천장 일부가 갈라지면서 육중한 바위가 베르덴 옆에 떨어졌다. 도개교 전체에 금이 갔다. 머리 위로 여러 잔해가 추락하기 시작했다.

“가시오.”

콰아아아앙!

폭이 십수 미터나 되는 천장의 파편이 베르덴의 모습을 가렸다.
돌이킬 수 없다.
그렇게 루자크는 본인 의지로 베르덴 일행에서 벗어났다.

‘나는 샛별의 은혜를 받아 어린 시절에 살아남을 수 있었고, 이렇게 기사가 될 수 있었소. 하나 샛별이 몰락할 때 무엇도 하지 못했지…… 고작해야 변경백의 지시대로 움직이며 왕국민이자 달빛의 신앙자를 향해 무력한 복수심을 불태워 세간에서 비정의 기사라 불렸을 뿐.’

통로가 실시간으로 붕괴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샛별을 포기하지 못하는 왕국, 아니 달빛의 신앙자를 보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본명조차 잊은 나는 이 거짓된 세계에서 생전에 바라던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소. 그 덕에 네 번째 귀빈께서는 새벽녘의 기사와 만날 수 있게 되었지. 그녀가 남긴 영혼과.’

루자크가 앞꿈치로 지면을 밀어냈다.

“나는 이 흐름에 어떤 필연이 있다고 생각하오.”

그는 갈 곳 없는 자신을 거두어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지원해 준 어느 샛별의 신앙자를 마음속으로 떠올렸다.

“귀하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하드라스’ 대주교.”

함성을 질렀다.

루자크가 왕국의 섬멸대장과 검격을 부딪치고는 혼자서 기사들을 상대했다. 일방적인 수십 합이 오간 끝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영창 마법에 ‘코’ 주변이 날아갔다.
철퇴에 찍힌 뒤통수가 깨져 ‘뇌’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루자크 팔테인이 사망했다.

그리고 통로가 무너지며 왕국의 섬멸대도 모조리 전멸했다.

* * *

[루자크.]

베르덴에게 업힌 알파는 시야에서 사라진 도개교 통로가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베르덴은 묵묵히 앞으로 향했다.

처음부터 죽으려고 한 루자크를 막을 방법은 없었기에. 하나, 이곳은 게임 무대다. 죽어도 죽지 않으며, 이미 죽음이 만연하다.

[커다란 문.]

“내부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군.”

베르덴은 지체 없이 잠겨 있지 않은 문을 손으로 밀었다. 먼지가 떨어진다. 석재가 긁히는 그 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졌다.

“이미 늦었습니다. 추레한 달이여.”

관을 옆에 둔 여인이 샛별의 신성력을 머금은 검을 늘어뜨렸다. 새벽녘의 기사. 그녀가 무감정한 눈으로 베르덴을 직시했다.

“오늘은 달빛이 몰락하는 시발점이 되어, 모든 빛이 멸망…….”

새벽녘의 기사가 흠칫했다.

베르덴을 노려보는 그녀의 동공이 수축했다가 확장했다. 이윽고 믿을 수 없다는 듯 감정의 동요를 보였다.

“신(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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