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1075

1075화 군단들 (7)

에스퍼렌사 가문.

“……정말로 가실 겁니까.”

백결 기사단의 단장인 베스파가 진중한 목소리로 의중을 물었다.
어투에 걱정이 묻어났다.

백강 칼리아가 건틀릿을 점검하며 말했다.

“나는 귀족이자 기사. 에스티리아 왕국을 수호할 의무가 있고, 의무가 아니더라도 내가 마땅히 자처한 사명감이 있다. 그러니 세 번째로 말하지. 이 결정에 번복은 없어.”
“칼리아 님.”
“큰오라버니와 어머니께서 아르나크 제국에서 귀국하셨으니, 아버지의 가주직은 작은오라버니와 어머니께서 훌륭히 대행하실 터. 가문에 남아있으면 식량만 축낼 뿐이다.”

전신갑옷으로 무장한 칼리아가 강하게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이미 아버지에게 승인을 받았다. 나는 전선으로 간다.”

칼리아는 스스로 동대륙 남부 제1군단에 배속을 요청했다. 서약자가 이끄는 토벌군단. 즉, 이 전쟁의 최전선으로 말이다.

두 개의 사문이 개방된 지옥.

타락의 땅.

공포와 압제가 배신을 속삭이는 대지.

로니아 왕국과 하부 수인 부족의 많은 생존자는 세계 연합의 통솔과 지원 덕에 동대륙 남부 지역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사문의 영향권에서 벗어났으니 배신으로 난민이 언데드로 돌변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왕국의 남쪽은 아직 배신과 죽음으로 가득하다. 생명의 존엄을 포기해 버린 이들이 추악한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에스티리아 왕국은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에스퍼렌사 공작이 왕국군의 총지휘를 맡았고, 실리스 리벤 디 에스티리아도 [마녀의 가시왕관]을 쓰고 여왕의 출전을 선언했다.
마녀의 혈통 계승자이며 무려 계외의 제자이기도 한 이상 실리스 여왕은 에스티리아 최정예 왕국군에 필요 불가결했다.

여왕에게 문제가 생기면 왕가의 핏줄이 절멸할 수 있다는 이유로 귀족들이 반대했지만, 그 누구도 그녀의 의지를 꺾지 못했으니…….

세계가 사활을 걸었다.
에스티리아 왕국도 존망을 걸었다.

베스파는 승리만을 생각했지만 그 표정은 전혀 밝지 않았다.

‘이겨도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

베스파는 기사단장이지만 이 거대한 급류 앞에서 칼리아를 지킬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없었다. 칼리아가 왕국에 남아 기사보다는 귀족으로서 영지를 다스리길 바랐다.
대의를 위해 죽음마저 불사할 수 있지만 그녀의 죽음만은 두렵다.

“칼리아 님을 이해하기에…… 사지로 향하려는 그 심정을 압니다. 여왕 폐하와 공작 각하께서도 칼리아 님과 같은 마음이시겠지요. 하지만 칼리아 님만은 다른 분들과 다릅니다.”

베스파가 시선을 내렸다.

“베르덴 폐하께서는 칼리아 님을─큽!”
“누구를 들먹여.”

칼리아의 주먹이 조금 무겁게 베스파의 명치를 파고들었다.
무릎이 꺾여 버릴 것 같은 충격이었으나 칼리아의 충성스러운 기사단장은 어금니를 깨물면서 꿋꿋하게 견뎌 냈다.

“역시 너는 설득에 영 소질이 없군. 되레 말을 더 듣기 싫어졌어. 그리 목숨이 아깝다면 왕국에 남아라, 베스파 기사단장.”
“거절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내 대답이라고.”

칼리아는 미소와 함께 망토를 펄럭이며 베스파의 옆을 지나쳤다.

“마지막으로 비행정을 점검하지.”
“……네.”

에스퍼렌사 가문의 핏줄은 하나같이 고집이 강한 축에 속했다. 칼리아 드 에스퍼렌사도 마음을 정하면 굽히는 일이 없었다.

칼리아가 방문을 열었다.

에스퍼렌사 공작가 가신, 마도사, 역풍의 에드몬 로드리너가 앞에 있었다.

“에드몬 할아범, 무슨 일이지?”
“칼리아 아가씨, 각하께서 승인하셨다고는 하나 아무리 그래도 최전선은 너무도 위험합니다. 차라리 본진으로라도 옮기십시오.”
“나름대로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미덥지 못한 모양이군.”
“최전선에서는 누구도 목숨을 장담할…….”
“그럼 믿게 해 주지.”

칼리아의 사나운 표정을 본 에드몬의 눈이 점점 커졌다. 직후에 바람 마법을 시전해 가까스로 수염을 붙잡으려는 칼리아의 손을 피했다.

“아, 아가씨? 베스파 단장, 아가씨 좀 잡게나! 일단 잡아!”
“칼리아 님, 진정을…… 컥!”
“믿게 해 준다니까!!!!”
“저 성질머리, 각하 젊었을 적 판박이구먼!”

와장창!

* * *

“할아범 수염을 뜯었어야 했는데, 쯧.”

칼리아가 혀를 찼다. 기의 운용 능력이나 검술 및 체술이 늘었어도 창문을 부수고 하늘로 도망가 버린 에드몬을 쫓을 방법은 없었다.

“크흠, 아무튼. 나는 에스퍼렌사 가문이 소유한 비행정, ‘벨로스’를 맡기로 했다. 비행정 운전을 좀 더 연습한 보람이 있었지. 벨로스…… 기억하나?”
“물론 기억하지.”

베르덴이 말했다.

“주검의 영광을 추적했을 당시, 네 작은 아버지의 영지에서 탈취한 비행정인데. 비행정 도둑질을 잊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너도 공범이다.”
“너처럼 주동자는 아니지만. 그때 우리가 죽였던 주검의 영광의 마도사들도 부활했더군. 교구를 부순 백골의 비올라가 옛 왕의 전령으로 왔길래 현재 전령 대우를 하며 구금 중이다.”
“정말인가? 내가 직접 상대한 적이 이렇게 다시 살아나다니…… 그러니 좀 이 사태가 실감이 나는 것 같군. 노사, 그자도 부활했다라.”

칼리아는 글로스 신성기사단장과 합격을 이루어 노사란 흑마도사와 전투를 벌였고, 분투했으나 결국 패배했다.
비물질계를 오가는 죽음의 수확자 – 그림 리퍼는 3년 전 그 둘의 실력으로는 운으로도 토벌할 수 없는 언데드였으니까.

바람이 부는 초원의 언덕.

초여름의 눈부신 햇빛이 내리쬐었다.

“베르덴.”
“듣고 있다.”
“너도 내가 지금이라도 생각을 재고해야 한다고 보나? 무모하니까?”
“무모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겠지.”

베르덴이 아공간을 개방했다.
에스티리아의 국보.
칼리아가 손수…… 베르덴이 부디 꿈을 이루기를 바라면서 끼워 주었던 반지형 아티팩트 [레인디아]가 붉게 빛났다.

“선택을 내리는 거는 너다, 칼리아. 그리고, 나는 네 선택을 존중한다.”
“이건…….”
“죄인들의 창고, 아노니움 은행의 황금 비고에서 가져온 룬검이다. 라이너스가 직접 작업해 룬 문자의 배열을 점검했지.”

소유자에게 어떤 신체적 및 정신적 부담도 주지 않는 대신 아티팩트처럼 강력한 기능은 없다. 균형이 뛰어나다, 그렇기에 혼란스러운 전장에 가장 적합한 종류인 셈이다.
적어도 검이 부러져 칼리아가 낭패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칼리아는 조심스럽게 건네받은 룬검을 이내 꽉 끌어안았다.

“고맙…….”
“하나 더 있다.”

베르덴이 가볍게 대기를 조작, 높은 바람 소리를 냈다. 그러자 근처 숲 속에서 뛰쳐나온 칠흑의 명마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질주했다.

콰드드드드드득!

무게가 실린 발굽에 흙과 풀이 밀려났다.

최상위 품종인 에본베인의 별종, 드레드미어.

베르덴을 주인 중의 주인으로 인정한 아드리안 같은 말이었다. <비행>이 불가능한 침묵의 사막에서 베르덴의 기동력을 맡기도 했으니, 그 능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푸르르륵.

녀석이 콧숨을 내뱉었다.
투레질을 했다.
그때마다 땅이 쫙쫙 파였다.

말을 다루는 데 아주 능숙한 칼리아조차 신경이 바짝 섰다. 드레드미어가 착용한 마갑은 일반 군마가 감히 버틸 수 있는 하중이 아니었다.

“알다시피 드레드미어다. 워낙 강인하니, 대규모 전장에서 이 녀석보다 더 믿음직스러운 말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겠지.”
“……날 태워 주지도 않을 것 같은데.”
“너는 가능할 거다.”

드레드미어의 육체 능력은 뛰어나지만, 이제는 기동력에 제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베르덴에게 도움이 되기는 어렵다.
아드리안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에온의 위상 중에는 라테온이 적합한데, 드레드미어가 등에 태우기 싫다고 미친 듯이 날뛰는 바람에 운용에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베르덴은 칼리아를 선택했다.

칼리아는 마상 전투에 능할뿐더러 드레드미어가 능력을 온전히 발휘함으로써 그녀의 전투력을 위로 끌어올릴 수 있을 테니까.
특히나 칼리아라면 드레드미어가 거절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흐음…….

드레드미어는 마치 사람처럼 새까만 눈동자로 칼리아를 살폈다. 이리 보고 저리 봤다. 그리고, 또 냄새를 맡았다.
녀석의 콧잔등에 올라가 버린 칼리아의 검붉은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히히힝.

드레드미어가 턱짓했다. 몸체를 내려서 안장에 내어줄 정도는 아니지만, 승마 자체는 허락하겠다는 의미였다.

“되, 된 건가?”
“직접 타 보도록.”
“아, 그래.”

베르덴이 전완부로 칼리아의 무릎을 감싸듯이 받쳤다. 시선이 높아지며, 자연스럽게 베르덴의 양 어깨를 짚은 그녀가 당장 안장에 몸을 싣지 않고 그를 빤히 내려다봤다.

칼리아가 살짝 베르덴의 볼을 꼬집었다.

“뭐 해.”
“피하지 않는군. 내가 어떻게 움직일지 훤히 다 알고 있으면서. 신분의 차이가 이렇게 달라졌는데도 예전과 변함없이.”

그녀의 다정한 손길이 애틋하게 잿빛 머리카락을 쓸었다.

“죽지 마라, 베르덴.”
“내가 할 말 같은데.”
“말 안 해도 돼. 난 절대로 안 죽으니까.”

칼리아가 호기롭게 웃었다.

“너하고 해 보고 싶은 게 너무 많거든.”

감정을 곱씹을 새도 없이 칼리아가 힘껏 안장에 허리를 실었다. 고삐를 당겼다. 드레드미어가 앞발을 들고 포효했다.

크세리온 제국과의 회담까지 D – 3

* * *

D – 3.

동대륙 남부 제1토벌군단, 준비 완료.
델하룬 토벌군단, 준비 완료.
프로하스 토벌군단, 준비 완료.
동대륙군단, 준비 완료.

D – 2.

테르네티아 연방 토벌군단, 준비 완료.
서대륙군단, 준비 완료.
펜드렌호 토벌군단, 준비 완료.

D – 1

중앙 대륙군단, 준비 완료.
동대륙 남부 제2토벌군단, 준비 완료.
마경 토벌군단, 준비 완료.

정상 회의에서 지정한 10개 중 7개 사문 공략을 맡을 토벌군단들과, 저마다 하나의 대륙을 통솔할 대륙군단.
10명의 군단장의 보고가 베르덴의 통신 장치에 전해졌다.

초월자 연합도 군세를 완벽히 정비했다.

세계 연합이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그리고, D – 0.

베르덴은 회담에 동석하기를 바라는 지배자들을 데리고 침묵의 사막과 중부 수인 부족 사이에 위치한 바닷가로 향했다.

아칸드가 서신으로 명시한 사해와 청해, 그리고 황야가 맞닿는 만(灣).

주인 없는 땅과 그리 먼 장소는 아니었다.

[약속 장소. 도착.]

“으우…….”

백골의 비올라가 덜덜 떨었다.

베르덴, 아드리안, 리반데일 대공, 제라클 황제, 반젤리스, 로마누스 등이 웃음기 하나 없이 내뿜는 기백이 무시무시했다.
제라클 황제는 그들처럼 무력을 자랑하는 사내가 아니었지만, 그의 위엄은 일반적인 인간의 범주라고 보기 어려웠다.

반젤리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최측근만 데려왔나. 사룡은 없군. 정말로 대화만 할 생각인 것 같은데.”

로마누스가 말했다.

“그러나…… 전원 극도로 위험한 존재들입니다.”

옛 왕 – 아칸드의 곁을 일곱 명의 존재가 지키고 있었다.

죽음에서 부활한 주검의 영광의 고대 초월자가 셋이었고, 나머지 넷은 생명체가 아니라 죽음에서 탄생한 언데드였다.

‘저들이 사룡을 제외한 아칸드의 최고 전력.’

금색으로 테두리가 치장된 로브를 둘러 외견을 드러내지 않는 언데드.
무자비한 전쟁 자체를 형상화한 언데드.
더러운 기운을 안개처럼 흘리는 언데드.
죽음 자체로 빚어진 듯한 언데드.

그들이 베르덴 일행을 보고 있다.

“내려가지.”

[확인.]

베르덴을 필두로 세계 연합에서 찾아온 자들이 황야의 언덕을 내려갔다.

크세리온 제국이 준비한 회담 자리를 향해.

바다가 보이는 절벽에 덩그러니 놓인 고풍스러운 테이블…… 그 상석에 앉아 있던 아칸드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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