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1136

1136화 초강수 (4)

사령관의 군단이 전선을 맡고, 주검의 영광은 연합과 대륙을 급습해 혼란을 일으킨다.
주검의 영광이 부여받은 역할은 그러했다.

르카리아는 동대륙 남부에서 토벌군단의 수뇌부를 처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초월자들은 사문을 공략하느라 여념이 없을 터.
사문 바깥에서 그녀에게 감히 대적할 수 있는 전력은 없으리라.

‘그런데 이 여자는 무슨 생각이지? 특이한 정신계를 가졌지만 고작 그것뿐인데.’

실리스 리벤 디 에스티리아.

‘베르덴의 권역 중 하나를 다스리는, 형제를 폐하고 왕위를 차지한 찬탈의 여왕.’

실리스의 이력을 떠올린 르카리아가 허리춤에 손을 얹고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정신 파동을 인지하여 자신의 접근을 감지한 것은 높게 평가할 만하지만…… 순수한 마법적 경지 차이는 변수가 무의미할 정도로 압도적.
아무리 통찰해도 호위조차 대동하지 않은 자신감의 근간이 보이지 않았다.

‘됐어, 의미 없다.’

마도 <억식(憶蝕)>

반추자 르카리아는 정신계에 특화된 초월자, 기억 조작으로 정신계를 어그러뜨려 지성체를 살아있는 폐인으로 만들 수 있다.
정신적 죽음을 곧 살인이라고 한다면 그녀는 가장 고요한 학살자였다.

“말해 봐.”

르카리아가 검지 손가락을 빙글 돌렸다.

“너는 어떤 기억으로 죽고 싶지?”

피잉, 실리스의 시야가 흔들렸다.
머릿속이 뒤엉켰다.
마녀의 고대 혈통을 통해 물려받은 어머니의 것을 포함한 기억 하나하나가 서서히 뭉개지더니 찰흙처럼 합쳐지려고 했다.

“……!……!!”

고대 혈통이 귀하고 대단하다고 한들 초월자에게는 미치지 못한다. 당연하게도 초월자는 그보다 훨씬 귀하고, 더 대단하므로.

마녀든 초월자의 제자든 간에 배경만으론 마주보는 것조차 할 수 없으니, 결국 혼자서 맞설 수 있는 것은 같은 영역에 도달한 개인뿐이다.

그때 시신경이 뒤집히려는 실리스의 어깨에 가벼운 무게가 얹혔다.

“어머, 남의 제자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네?”

보랏빛 은하수가 깃든 것 같은 찬란한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꼈다.

계외, 이그나시아.

대륙 최대의 거대 도시를 권역으로 삼은 초월자가 동대륙 남부에 등장했다. 방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인기척이 그제야 느껴졌다.

마도 <상계(想界)>

따악.

이그나시아가 짧게 손가락을 튕기자 실리스가 기억 조작에서 벗어났다.

르카리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계외…… 왜 네가 여기 있지? <전이>는 불가능할 텐데. 게다가 제자라고?”
“정보력이 허접하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데 <전이>의 여부가 무슨 상관이겠니? 당연히 매개체가 없으면 나도 어쩔 수 없지만.”

이그나시아가 조소했다.

“어쨌든 기다리고 있었어, 반추자 르카리아. 제법 오래 기다렸다고.”
“뭐?”
“네 존재감쯤은 진즉에 눈치채고 있었거든. 그래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었지. 네가 제 발로 사지로 들어올 때까지.”

르카리아는 진즉 연합의 군단을 감시하고 있었고, 이그나시아는 실리스를 통해서 르카리아의 정신계를 감지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그 거리에서.’

같잖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지만…… 르카리아의 존재가 이미 발각된 것은 사실이다.
마스터, 서약자, 교황, 마울러, 계외.
설마 베르덴이 동대륙 남부에 초월자 전력을 무려 5명이나 파견했을 줄이야.

환상의 일렁임이 주변 일대를 뒤덮었다.

“퇴로는 없단다.”
“베르덴과 친분이 깊은 편이라고 하더니 오만한 건 똑같네. 이곳이 네 영역도 아닌데, 혼자 다 이긴 것처럼 구는 걸 보면.”
“다른 계열이었으면 조금은 고려했을 거야. 그런데 너는 정신 계열이잖아?”

이그나시아는 실리스를 부드럽게 등 뒤로 물리고는 느긋하게 양팔을 펼쳤다. 완벽한 성인의 모습을 취한 그녀가 웃음기를 지웠다.

“말해 봐, 너는 어떤 기억으로 죽고 싶지?”
“건방진…….”

경지에 오른 정신계 마법사 간의 전투는 물질계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정신이 그러한 것처럼 그들의 대립조차 비물질적인 실재이므로.
종족의 한계를 벗어나 초월적인 정신계를 이룩한 존재는 더욱 그런 경향을 띤다.

시답잖은 수싸움은 필요 없다.
누구의 정신계가 더 강하냐가 승자와 패자를 정할 뿐이니.

초위 마법.

초위 마법.

이그나시아와 르카리아가 동시에 손을 모으며 서로 다른 수인을 맺었다.
각자의 마도를 질주하는 고유한 마력.

경계 현현: <환허계──진하(震河)>

재귀의 반추: <회귀(回歸)>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과 동시에 두 초월자가 자아낸 환상이 충돌했고.
그들의 정신계가 세상을 물들였다.

* * *

깊게 잠들어 있던 의식이 마침내 부상했다.

“…….”

루네시카 안테르노아(본체)가 눈을 떴다.

멍하니 호흡했다.

시야가 분명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앞으로 다리를 뻗었다. 발에 닿는 것이 없었다. 육체에 힘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은 탓에 그대로 넘어졌다.

“…….”

뒤를 돌아보니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새하얀 빛이 보였다. [아니무스]의 은은한 광채였다. 그녀는 영혼을 다루는 욕망이라고 불리는 귀물로 가까스로 몸과 혼을 재생하는 데 성공했다.

어째서 자신이 여기에 있는지 어렴풋이 떠올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스윽.

가만히 서서 침묵을 고수하던 언데드가 옷가지를 건넸다.
아칸드가 특별히 준비해 놓은 것이었다.

루네시카는 복장을 갖춰 입고 나가 공허한 복도를 거닐었다. 유리가 없는 창틀 너머로 어둠과 죽음으로 가득 찬 제국이 보였다.

‘드라벤 단장.’

강하게 손을 쥐었다 폈다.

영혼을 소모해 회복시킨 심신(心身)에 루네시카가 적응했다. 아칸드가 명령한 대로 [아니무스]는 그녀를 완전히 복구했다.

루네시카가 부러질 듯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베르덴……!!’

드라벤을 처단하고, 끝내 루네시카 자신을 처형한 증오의 대상이 떠올랐다. 개인으로서 주검의 영광에 가장 커다란 피해를 안긴 초월자.
위대한 주검은 부활했고 크세리온 제국은 재건됐지만 베르덴을 죽이지 않는 한 불멸의 세상은 오지 않으리라.

“깨어나셨군요, 루네시카 님.”
“티아즈라 모튼.”

부해성전──티아즈라 모튼이 같은 초월자임에도 예를 갖추었다. 주검의 영광에서 드라벤과 루네시카의 위상은 단순한 경지 그 이상이었다.

“루네시카 님이 복귀하셨으니 폐하의 명령을 따라 주검의 영광의 총지휘권을 이양하겠습니다. 이와 함께 전황을 보고드릴게요.”

티아즈라는 루네시카 처형 후 전쟁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는지 설명했다. 아주 사소한 요소조차도 잊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녀가 얼마나 루네시카를 진심으로 추종하는지 알 수 있었다.

“과거 크세리온 제국의 의식장을 이용해 언데드의 전력을 구축하고 있으며, 각 도시에 잠입시킨 주검의 영광의 일원들은 성 밖의 언데드 군단과 동조해 공작을 벌이고 있습니다.”
“나크텔과 르카리아는?”
“나크텔은 제5사령관이 아르나크 제국을 침공하는 동안 비렌테로, 르카리아는 제3사령관이 있는 동대륙 남부로 향했습니다.”
“…….”
“세계 연합의 저력이 생각보다 대단해 사문이 여럿 폐쇄되었지만 여기까지. 폐하께서 몸소 출진하셨으니 저 거짓된 빛과 대륙은 타오를 테죠.”

티아즈라가 미소를 품었다.

“베르덴이 돌아온다고 한들, 권역이든 어디든 그가 보게 될 것은 잿더미뿐일 겁니다.”

루네시카는 복수심에 반응해 마주 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베르덴의 권역을 노리는 건 네 판단이야?”
“아닙니다. 폐하께서 직접 명하셨습니다.”

역시 아칸드 폐하께서도 베르덴이라는 존재를 가장 성가신 적수라고 여기신 것이다. 국제 사회의 저항은 극렬했지만, 결과는 정해져 있다.

누구도 위대한 주검을 죽일 수 없으므로.

비로소 영혼이 고통받지 않는 불멸의 세상이 진정 머지않았다.

* * *

최근 루시라는 이름이 주어진 소녀가 배낭을 메고 산을 올랐다. 인적이 없는 깊은 숲속.
안개로 가시거리가 좁아졌지만, 루시는 혼자가 아니었기에 전혀 두렵지 않았다.

“주인님, 방금 시타델?에 있는 마지막 영혼 조각이 깨어났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위대한 주검이라는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게…… 기억을 봉인했는데. 어떻게 그 영혼이 스스로 금제를 풀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세요?”

루시는 배운 것 하나 없는 고아였지만, 루네시카의 영혼 조각을 산 채로 받아들이는 특이형질에 걸맞게, 그녀는 꽤 총명했다.
도시의 약쟁이들을 몰살하고 노획한 돈으로 계속 배불리 먹으니 살이 금방 차올랐다. 루네시카의 교육 덕에 언변도 좋아졌다.

───금제를 푸는 방법은 습관이고, 습관은 그리 간단히 잊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습관이요?”

───아칸드가 근처에 있을 때는 나는 나름대로 충성을 다하겠다는 이유로 고개를 쳐들지 않았지만, 옛날부터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걸 좋아했어. 그건 어느새 습관으로 굳어졌고.

루시가 저도 모르게 시선을 높였다. 루시 안에 있는 루네시카의 영혼도 자연스럽게 탁 트인 푸른 하늘을 눈에 담게 되었다.

───나는 결국 하늘을 보게 될 거야.

“…….”

───도착했어, 여기야.

루시가 멈췄다. 문득 신발 너머로 느껴지는 촉감이 다른 것 같아 고개를 숙였다. 산속 한가운데에 기묘한 원형 석판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직 이곳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나 보네.

“안 좋은 건가요?”

───아니, 상관없어. 다른 영혼 조각들이 주검의 영광을 장악하며 빼돌린 정보를 에온에 잘 넘기고 있을 테니까. 우리는 우리대로 준비하면 돼.

루시에게만 보이는 루네시카의 영혼 조각이 턱을 까딱거렸다.

───마력회로를 활성화하면서 그 석판에 손을 얹어.

“네, 주인님.”

루시는 반문할 생각조차 없이 루네시카의 명령을 이행했다.

───물러나.

키잉, 쿠구구구…….

원형 석판이 두껍게 내려앉은 먼지를 떨어뜨리며 열리기 시작했다. 보름달에서 초승달로 변하는 순간을 보는 것 같았다.
석판 아래에는 깊은 공간이 있었다. 소용돌이 같은 지하 계단이 보였다.

───자, 밥값하러 가자.

“밥값.”

배고픔을 아는 루시는 밥의 대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터벅!

주검의 영광의 마지막 신입 흑마법사───루시는 배낭끈을 단단히 잡고서 크세리온 제국의 의식장으로 내려갔다.

* * *

전쟁 36일 차.

동대륙 남부에 파견된 세계 연합의 제1토벌군단과 제2토벌군단이 공성전에 돌입한 지 이제 5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연합군과 언데드가 충돌하는 격전지에서 파공음이 들렸다.

제8사령관───루에린이 성벽 위에서 미친 듯이 활시위를 당겼다. 생전에는 오르지 못했던 초월적인 경지로 사기를 담아 화살을 쏘아 대니 그 자체로 공성 병기나 다름없었다.

가레스가 방패를 쥐고 기를 불어넣었다.
벤디에가 빌려준 무구였다.

터어어어엉!

루에린이 표적으로 삼은 것은 토벌군단이 아니라 초월자였다. 당장 언데드의 두터운 벽을 넘을 수 없어 일방적으로 방어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저 시발년이……!”

가레스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물러났다.

루에린이 활을 내렸다. 그녀는 연합군을 노리려고 했으나, 로마누스가 넓게 신성 보호막을 전개한 탓에 공세를 이어나가지 못한 것이다.

연합의 병기들이 일제히 포화를 퍼부었다.

콰과과과과광!

기묘한 사기가 에워싸고 있어 고대 성채엔 흠집도 나지 않았지만, 처음에 비해서 언데드 군단은 분명히 약화되고 있었다.
사문의 근원체에서 탄생하는 언데드보다 연합이 처리하는 수가 더 많았으므로.

그러나…… 아직 충분하지 못했다.

사상자가 늘어갔다.

무려 5일이나 지났음에도 초월자들은 적의 성벽을 넘보지 못했다.

쾅!

가레스가 천막 중앙에 놓인 테이블을 부숴버렸다.

“이런 식으로는 못 뚫는다. 그렇다고 후퇴 따위는 불가능하니, 밑에 있는 놈들이 한계에 다다르기 전에 총력전을 감행하지.”

언데드의 특성상 장기전으로 가면 연합의 필패다. 적당히 소모전을 벌인 뒤에 총력으로 방어를 돌파하는 전략이 사실상 유일했다.

‘문제는 제3사령관.’

놈은 철저하게 언데드의 영역을 이용해서 혼란을 가중시켰다. 벤디에와 정면으로 맞붙다가도 언데드를 방패 삼아 퇴각했다.
추격은 무리였다.
그렇게 적진에서 네크라논을 마주하는 것 자체가 함정이었으니까.

심지어 네크라논의 순간적인 가속도는 벤디에보다 느렸지만, 그런 가속도로 인해 최대로 올라간 속력은 그녀보다 빨랐기에…… 혼잡한 전장에서 놈을 붙잡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렇다.

이길 수 있다.
이길 수 있는데 시간이 걸린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과 타락의 영향력으로 인해 연합의 승산은 낮아진다.

비대칭 전력이 의도적으로 그 시간을 끌기 위해서 유격전을 벌이고, 그걸 제8사령관이 보조하니 참으로 난제였다.
빌어먹을 타락.
빌어먹을 지형의 불리함이 코앞까지 다가온 승리를 가로막았다.

‘가레스의 말이 맞아. 하지만 남은 언데드의 숫자가 애매하다. 자칫 군단의 벽에 막혀버리면 사기가 꺾일 수 있어.’

기세가 무너지면 타락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죽음의 공포에 굴복해 연합을 배신하는 자가 생기면 토벌군단 전체가 위험하다.
타락의 선택은 전염병처럼 퍼질 테니.

좋은 방법이 없을까.

유리온이 인상을 쓰며 새로운 활로를 찾으려 하는 그때였다.

탁.

벤디에가 아공간 무기고에서 ‘미니어처 투기장’과 같은 작은 아티팩트를 꺼내, 가레스가 박살낸 테이블 모서리 위에 올렸다.

“모두 알다시피 관건은 네크라논을 전장에서 아예 이탈시키는 겁니다.”
“그건…….”
“유리온, ‘금약(禁約)’을 부탁합니다.”

로마누스와 가레스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벤디에와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한 유리온은 단번에 그 뜻을 이해했다. 봉쇄형 아티팩트와 금약의 조합은 단 하나의 의지를 시사했다.

“제한된 공간에서 네크라논을 상대하겠다?”
“이길 수 있습니다.”
“나도 알아. 근데 그다음이 문제지.”

유리온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 아티팩트를 기동해 너와 네크라논이 갇혔다고 치자. 그리고 내 금약으로 둘 중 하나가 죽지 않는 이상 나갈 수 없다는 제약을 걸었다고 치자고.”
“…….”
“우리는 즉각 총공세를 펼칠 거고 사문의 근원체를 파괴할 거야. 그때부터 사문이 폐쇄되기 시작할 텐데, 그 전에 네크라논을 처리하지 못하면 너는 그대로 이 사문에 갇혀. 그 아티팩트로 이루어진 공간은 대륙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니까.”

유리온이 재차 강조했다.

“영영 못 돌아올 수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벤디에가 아무렇지 않게 아티팩트를 내밀었다.

“그러니 금약을 걸어 주시죠.”

벤디에는 말하자면 정의로운 인물이다. 세상의 해악을 적대하며 신념이 굳건한 제자들을 양성하는 템플의 마스터가 바로 그녀다.

고집은 꺾을 수 없다.
그보다 나은 전략도 없다.

유리온은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사문이 폐쇄되기 전에 끝내. 기다릴 테니까.”
“노력해 보겠습니다.”

가레스는 침묵하다가 천막을 나섰다.

로마누스는 그녀의 드높은 결의 앞에서, 그저 여신에게 기도를 올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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