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1139

1139화 상잔(相殘) (2)

할디른의 흑마법과 벨트로아의 화염 마법이 지상에 착탄했다. 속성이 다른 각각의 폭발이 세계 연합군의 사기를 대변했다.

수인 대부족의 비왕이 상공에서 언데드군의 비행 병력을 요격하고, 영왕은 흑표범 수인다운 몸놀림으로 적의 진영을 흐트러뜨렸다.
타락에 빠지지 않을, 정신이 강인한 수인들이 전선 돌파를 담당했다.

그때 목소리를 높이는 로마누스.

“무구한 영광으로.”

루아스 여신의 광채가 한층 더 선명해졌다. 승리와 번영의 천사가 성직자만이 아니라 연합에 속한 인류를 위해 앞장서니.
그레고르반 추기경이 죽음의 땅에서 드높은 정의를 주창했다.

강제 서약: 예속隷屬

“후, 죽어도 드래곤이랍시고 애먹게 하기는.”

유리온은 서약을 통해 유골룡을 지배했다.

용골의 저항력 탓에 자칫 계약이 실패할 뻔했지만 끝끝내 강제로 복속시키는 데 성공.
언령의 기사단을 데리고 유골룡에 탑승했다.

“전설 속의 용기사 같습니다, 폐하.”
“용기사보다 내가 더 낫지.”

유리온이 웃으며 검을 뻗었다.

“적의 심장부가 코앞이다!! 멈추지 마라!!!”

두 개 토벌군단이 가레스가 무너뜨린 고대 성벽을 노렸다. 이윽고 각 세력의 간부들이 혼란을 틈타 적의 성채에 진입했다.

* * *

내가 꿈을 꾸는 것인가.
꿈이 나를 삼킨 것인가.

나비는 그저 꽃을 좇을 뿐이다.

* * *

동대륙 남부.

이그나시아와 르카리아의 초위 마법이 맞부딪치며 환상이 현실을 앗아 갔다.

거짓과 진실을 구분할 수 없는 세상.

실리스는 그곳에 있었다.

“여긴…… 레티아.”

왕도 레티아의 정경이 훤히 보이는 외부 테라스, 그녀는 현실에서 기거하는 왕성 에스노렌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뒤늦게 옷차림을 확인하니 여왕이 아닌 왕녀의 그것이었다.

인형 왕녀.

마녀의 혈통을 이어받았음을 감추기 위해, 그리고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수십 년 동안 인형을 연기했던 그때와 같은…….

‘여긴 꿈속이야.’

실리스가 정신을 차렸다.
고대 마녀의 피는 그녀가 환상에 깊게 잠식당하지 않도록 보호했다.

‘나갈 방법을 찾아야 돼.’

마법을 사용할 수 없어 테라스에서 뛰어내릴 수는 없었다. 이 공간은 거짓이되 진실. 일반적인 꿈과 달리 부상은 곧 현실과 직결된다.

쿵!

방문을 박차고 나오자 복도가 나왔다.
끝없는 복도였다.
좌우로 나열된 무수한 문.

끼이익…….

실리스에게 가장 가까운 첫 번째 문이 열렸다.

───우리 실리스.

왕비 레미엔이 갓난아기 실리스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운 어머니. 그리고 다시 느낄 수 없는 그 온기가 피부를 보듬었다.

그런 두 사람을 낯익은 사람들이 둥글게 에워싸고 있었다.

실리스의 아버지이자 에스티리아 국왕.
실리스의 큰 오빠, 발르그나.
실리스의 둘째 오빠, 로트닐.
실리스의 셋째 오빠, 에버스.
에스티리아 왕국을 인체 실험장으로 전락시킨 신임 재상…… 글러트니의 일원.
에스티리아 왕국의 궁정 마법사단장, 레오닐.

───나는 무능하지 않아……! 정복왕! 누구보다 위대한 왕이 되겠다……! 재상! 어서 왕비를 실험체로 써 다오!!! 나를 위해!!!

───색욕에 미친 자들에게 던져 줄 고깃덩어리로 이보다 좋은 소재는 없지. 실리스 리벤 디 에스티리아, 인형은 인형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법이다.

───실리스, 네 몸은 이제 내 것이다!

───정치적으로 활용할 만한 요소가 많지만, 내 입지를 위해서라면 로트닐 형에게 실리스를 주는 편이 이로울 터. 그깟 몸뚱이가 뭐라고.

───그럼 장기를 떼겠습니다.

───마녀의 심장…… 나 또한 초월의 영역에 닿고 말겠다. 반드시.

악인들이 저마다의 욕망을 드러내며 점차 거리를 좁혔다. 그 중심에서 레미엔은 자식을 끌어안은 채로 고개를 들어 실리스를 바라보았다.

실리스는 어머니의 죽음을 알고 있다.

사무치는 고통도.
산 채로 분해되는 최후까지도.

쾅!!

실리스는 일순간 구역질을 억누르며 방문을 닫았다.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보고 싶을 리가 없었다.
어머니의 육신이 들썩이며 장기가 헤집어지는 광경 따위……!

끼이익.

맞은편의 두 번째 문이 열렸다.

“아…….”

실리스는 도저히 항거하지 못하고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방안에서는 레미엔이 해부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 실리스.

어머니로부터 받은 기억이 강제로 떠올라 뇌리에 뿌리를 내렸다.
수년에 걸친 인체 실험.

온몸의 피가 역류했다.

끼이익.

세 번째 문과 네 번째 문이 열렸다.

───우리 실리스.

───우리 실리스.

투명한 마법 용기에 보관된 레미엔의 머리가 입을 뻐끔거리고, 수술대 위에 남은 팔이 펄떡거리며 손을 흔든다.

끼이익.

그리고 다섯 번째 문, 여섯 번째 문, 일곱 번째 문이 열렸다.

방문이 하나 열릴 때마다 1년 치 기억이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한순간에 불과했지만 그 여운은 지워지지 않는 흉터로 남았다.
눈을 몇 번 감았다 뜨는 동안에 실리스의 정신계가 무참하게 난도질당했다.

끼이익. 끼이익. 끼이익. 끼이익. 끼이익. 끼이익.

실리스가 복도를 질주했다.

───우리 실리스. 우리 실리스. 우리 실리스. 우리 실리스. 우리 실리스. 우리 실리스. 우리 실리스. 우리 실리스. 우리 실리스. 우리 실리스. 우리 실리스. 우리 실리스. 우리 실리스.

───마녀. 마녀. 마녀. 마녀. 마녀. 마녀. 마녀. 마녀. 마녀. 마녀. 마녀. 마녀. 마녀. 마녀. 마녀. 마녀. 마녀. 마녀. 마녀. 마녀.

───인형 왕녀. 인형 왕녀. 인형 왕녀. 인형 왕녀. 인형 왕녀. 인형 왕녀. 인형 왕녀. 인형 왕녀. 인형 왕녀. 인형 왕녀. 인형 왕녀. 인형 왕녀.

문이 줄지어 개방됐다.

실리스는 어머니만이 아닌 고대 마녀들의 기억까지 모조리 혈통의 능력으로 이어받았기에 수많은 과거의 편린에 직면해야 했다.
추억은 짧고, 악몽은 기니.
실리스가 내지르는 비명은 환청으로 덮였다. 문이 열리며 퍼져 나가는 기괴한 마찰음이 왕성의 복도, 그 실리스의 세상을 압도했다.

“허억, 헉……!!”

어느샌가 실리스는 복도의 끝에 도착했다.

문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마침내 끝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자 모든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복도에 들어섰을 때처럼.

끼이익.

다시, 첫 번째 문이 열렸다.

───우리 실리스.

…….

과거에 절망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이를 극복해 찬란한 미래를 거머쥐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과거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기록.

잔혹한 묘사로 가득한 소설의 한 챕터를 정독하고 넘긴다고 해서 극복이라고 할 수 없다. 반복해서 그걸 읽을 때마다 감정은 마모되므로.
그러므로 해당 장면을 계속 그려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아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극복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앞으로도 넘어질 일이 가득할진대 고작 일어섰다고 트라우마를 타개했다니.

이 얼마나 오만한 정신이란 말인가.

끼이익.

9192번째 문이 열렸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상이 몇 번이고 억지로 삶을 다시 살아야 했던 실리스를 맞이했다. 정적이면서도 역겨움이 불쑥 고개를 쳐드는 공간이었다.

르카리아가 말했다.

“대부분의 인간은 장생, 더 나아가 영생을 바라며 연명을 갈구해. 인생이 너무나도 짧다면서. 근데 그건 착각이거든. 오직 자극적인 기억만을 과거이자 일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망각이 축복임을 깨닫지 못하는 저열한 동물들의 착각.”

르카리아가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이그나시아에게 칼을 댔다.

“누구에게나 삶은 길어. 다만 그걸 반추할 능력과 의지가 없을 뿐. 그들에게 기억은 보존되지 못해 서로 뒤엉켜 왜곡된 과거를 남기지.”
“아, 으, 아, 아.”
“그러니 현실이 뭐가 중요하겠어? 그저 제멋대로 형태를 빚고, 그걸 자기 자신이라고 우기는데.”

이그나시아의 눈가가 움찔거렸다.

그녀의 정수리는 깔끔하게 절개돼 뇌가 드러났고, 르카리아는 그중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를 절개하거나 접합했다.

반추자───르카리아.

기어코 이그나시아의 정신계를 집어삼킨 초월자가 실리스를 향해 미소 지었다.

“마지막으로 묻겠어. 실리스, 너는 어떤 기억으로 죽고 싶지?”

실리스가 주저앉았다. 정신계의 손상이 심해 더는 움직일 수 없었다. 멈추지 않는 식은땀이 그녀의 몸을 더욱 무겁게 하는 듯했으니.
눈앞에 펼쳐진 환상을 인식하고, 또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다.

‘시간이 꽤 걸리긴 했지만, 그래봤자 가장 평화로운 시대의 초월자에 불과할 뿐. 내가 이겼어.’

승리를 확신한 르카리아의 웃음소리가 환상 세계에 은은히 퍼져 나갔다.

그때 실리스가 입술을 달싹였다.

“인형은…… 자신의 세상 밖을 인지하지 못하기에 인형이죠.”
“뭐?”
“당신도, 나와 다를 바 없군요.”

이해할 수 없는 헛소리를 들은 르카리아의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보다시피 이그나시아는 확실하게 제압했는데, 방금 실리스의 목소리에 느닷없이 형용할 수 없는 불길함을 직감했다.

“제자가 기특한 말을 하네?”
“……?!”
“아하하하하하하.”

실리스의 기억에서 뽑아낸 왕성 에스노렌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벽이 갈라졌다. 머지않아 천장이 뜯어져 나갔다.

기현상에 서둘러 시선을 높인 르카리아의 동공이 확장됐다.

“나, 납득할 수 없어.”

르카리아가 방금까지 정신계를 어루만지고 있던 수술대 위의 이그나시아가 사라지고, 그 마력이 하늘로 솟구쳤다.

왕도를 뒤덮고도 남을 거대한 이그나시아.

그녀가 마도의 분신을 회수하고, 보랏빛 은하수가 넘실거리는 눈동자로 르카리아와 실리스가 존재하는 정신의 세계를 굽어보고 있었다.

왕성은 인형의 집이었고.
르카리아는 인형이었으며.

이그나시아는 그들의 주인이었다.

“어떻게 동위계인데도 이런 격차가…….”
“어머,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어?”

이그나시아가 검지 손가락을 들이대는 것만으로도 지축이 떨렸다.
세계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태생부터가 다르잖니?”

손끝을 따라서 에스노렌을 넘어 레티아가 급속도로 가라앉았다. 두 사람 위로 정신계에 구성된 모든 것이 일제히 들이닥쳤다.

이렇다 할 고통은 없었다.

어둠과 빛.
어둠과 빛.
어둠과 빛.

백색과 흑색이 번갈아 점멸해 내면 속 세상을 가득 채울 뿐이었다. 이윽고 어둠이 완전히 걷히고 눈부신 마도의 광채가 널리 확산했다.

……털썩!

“읏.”

실리스가 강하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촉감이 분명했다.
땅의 질감도 진실되었다.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린 실리스는 초위 마법에 휩쓸리기 전의 풍경을 마주했다.
그렇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같은 초월자와 순수한 정신계만으로 충돌하는 건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재밌네. 베르덴이 그래서 센 녀석들을 찾아서 죄다 죽이는 건가? 아하핫.”

이그나시아의 손아귀에 잡힌 자그마한 구체 속에, 다름 아닌 의식을 잃어버린 르카리아의 정신이 봉인돼 있었다.
정신을 빼앗긴 르카리아의 본체는 멍한 표정으로 정지한 상태였다.

“그, 처리하시지 않는 건가요?”
“나름대로 쓸 데가 있거든. 뭐, 솔직히 내게 필요한 건 정신뿐이지만, 저 몸도 그냥 폐기하기는 아까우니 활용할 거야. 적장의 신체인데 전쟁에서 효과적으로 써먹을 방법이 얼마나 많겠니?”

이그나시아가 손가락을 굽혀서 르카리아를 완전히 봉인하고, 실리스를 일으켜 세웠다.

“그래서 반추자의 초위 마법을 경험한 소감은?”
“무척…… 힘겨웠어요.”
“하지만 버텨 냈지.”

실리스를 보호할 수 있었지만 이그나시아는 그러지 않았다. 적대적인 초월자의 진심 어린 살의를 경험한 순간이 피가 되고 살이 될 테니까.

“우르반, 쟤 챙겨.”
“예.”

이 전쟁에서 실리스의 호위를 맡았던 이그나시아의 오른팔이 아무렇지 않게 나타나 르카리아의 몸뚱이를 어깨에 걸쳤다.

‘대체 언제……?’

실리스가 침을 삼켰다.

“스승님, 혹시.”
“전쟁에 일대일이 어딨어?”

이그나시아가 히죽거렸다.

“이기면 끝이지.”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그나시아가 정신계 싸움에서 밀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르반이 난입해 르카리아의 몸을 부쉈을 것이다.

이그나시아는 쾌락적인 재미를 추구하기에 다양한 기행을 일삼지만, 단언컨대 순진하거나 가벼운 존재는 아니었다.

“지금 전황은 어때?”
“누런 엄니 성채에서 올라온 적들의 공세가 상당히 거칠지만 방어선은 아직 견고합니다.”

초위 마법이 맞부딪친 이후로 대략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우르반은 그동안에 있었던 전투를 생략하고는 결과만을 보고했다.

“그리고 초월자들의 군단이 사문의 근원체가 있는 고대 성채에 진입했다고 합니다.”
“오호, 그래?”

* * *

선두로 성내에 진입한 가레스가 손에 닿는 모든 걸 때려부쉈다. 기둥과 벽을 연이어 파괴하면서 활잡이를 탐색했다.
그렇게 단신으로 더 깊은 지하로 내려가던 도중에 갑작스럽게 지반이 꺼졌다.

‘함정? 받아 주마.’

가레스는 되레 가속해 짙은 어둠이 도사린 지하로 낙하했다.

쿠우우웅!!!

“하, 십새끼가 뭘 노리나 했더니.”

가레스가 양 주먹을 부딪쳤다.

“이까짓 걸로 날 죽이겠다고?”

암흑 속에서 총 13쌍의 푸른 눈동자가 아른거리고 있었다. 특수 개체급의 언데드 두 마리와 제8사령관이 그를 환영했다.
극점 여럿이 초월자에 대항할 수 있듯.
능히 초월자를 상대하고도 남는 전력이지만 유리온이나 로마누스가 오기 전까지 가레스를 처단할 수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였다.

‘당장 숫자를 줄이는 것보다 저 활대부터 없애는 게 우선.’

가레스는 판단이 서자마자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 전력으로 가속했다.
거대한 체격에 어울리지 않는 기민함으로 공격을 최소한의 출혈로 회피, 그리고 돌파. 루에린의 경로를 예측해 허공으로 권격을 뻗었다.

연환 – 낙추落錐

권압에 격중당한 루에린이 나가떨어지면서 충격을 줄였고, 동시에 낙법을 취했다.
쩌적.
활대가 크게 손상됐다. 그 활시위를 몇 번 당길 수 없을 정도로.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손맛이 시원하지 않았다. 제대로 때리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때린 것 같은 직감.

“시발아.”

가레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사령관 새끼 어디 갔어.”

[킥.]

가짜 루에린이 조소했다.

* * *

콰아아아아아앙!

유리온과 언령의 기사단이 유골룡과 함께 성채의 북쪽을 강타했고, 루아스교의 천사는 서쪽에 광휘의 기적을 쏟아 냈다.

“카하아아악!”

[우어어어어어!]

가레스에게 정통으로 맞고도 죽지 않은, 로니아 국왕의 영혼을 흡수한 거체의 타락자와 수인 대부족의 영왕이 안뜰에서 격돌했다.

비왕이 급강하하며 거슬리는 언데드를 낚아채고는 상공에서 던져 버렸다.

카앙!

[너에게. 종언을. 고한다.]

“바깥은 우리가 맡겠습니다.”

불굴의 이닉토르가 종말의 기사 두 마리의 주의를 끌며 검을 맞댔다.

“근원체를 우선하십시오.”

고대 성채는 바깥에 있는 전장과 성벽으로 분리돼 있다. 성내의 적들은 강했지만 개체 수가 적어 공간이 제법 있었다.
모험가들에게 익숙한 전장.
고위 모험가들이 평소의 토벌을 진행하는 동안 그 외의 전력이 저마다 다른 방향에서 성채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화아아아아악!

에온의 위상들 또한 전진을 거듭해 어둑한 복도를 <비행>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비행의 숙련도가 무척 높았기에 달리는 것 이상으로 변수에 즉각 대응할 수 있었다.

다른 입구로 성채에 들어온 이들이 복도 곳곳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다.

커다란 벽면이 무너졌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

정의의 그레고르반이 등장해서는 철퇴를 든 해골의 집합체에 올라타 주먹을 내리쳤다. 연합군의 사망자도 적지 않았으나 위세는 드높았다.

유니아 일행은 전투를 최소화하며 성채의 지하로 직행했다.
가급적 인적이 없는 방향을 고집했다.
다른 이들이 향하지 않는 장소 어딘가에 근원체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현자님, 저 문!”
“그래, 수상하기 짝이 없는 문이구나!”

드디어 다른 장소와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거대한 문을 찾아냈다. 일반적으로 개방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규모. 게다가 고풍스러웠고 불길했다.

역원뿔의 수정은 저 안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이제 정말로 눈앞에……!’

유니아는 어서 타락이 만연한 이곳 전장을 끝내고 싶었다. 그 마음은 카인도, 알더니스도, 알데반도 물론 마찬가지였다.

그 순간 작은 문틈에서 뭔가가 번뜩였다.

본능이었을까.

모두가 그것이 무엇인지 인지하기도 전에, 그리고 반응하기도 전에 카인은 반사적으로 좌측의 유니아를 어깨로 밀쳤다.

무음의 쐐기.

루에린의 화살이 카인의 심장을 관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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