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1163

1163화 공방전 (4)

수왕이 살해당한 분노를 쏟아내던 수인들……그중 수왕 다음다음으로 강한 수인 부족장을 썰어버렸을 때와 비슷한 쾌감에 정수리가 저렸다.
그놈은 수왕이 본능대로 자유롭게 살지 못하게 한 짐승 중 하나였다.

히스릴은 약 3세기 전, 왕위에 오르기 전의 수인과 우연히 마주쳐 나눈 대화를 아직도 잊지 못했다.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수백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녀의 이상으로 이어졌으므로.

‘제대로 들어갔다.’

모든 기운을 집중시켜 발현한 초월기는 아칸드를 물어뜯었다.

두근.

루기나 혼의 창촉이 맥동하더니 곧 아칸드의 몸에 스며들었다.
그것은 다시 뽑아낼 수도 없이 사라졌다.

심지어 시야를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초대 마도왕과의 약속까지 지켰다. 엘프가 옛 왕의 그 검기에 버금가는 화살을 쏘아 보낸 덕에.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고 나지막이 말했다.
야생적인 통찰력을 보이며.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너한테서 역겨운 악취가 진동을 해. 전혀 이해가 안 가네. 그렇게나 강한데 왜 그따위로 사는 거야?”

히스릴은 가식적인 삶을 혐오한다. 자신을 감추고, 또 분수를 모르는 행동을 저지르는 존재들을 경멸하고 증오한다.
그녀의 관점에서 아칸드는 주제를 모르지 않았지만 거짓으로 가득한 인물이었다. 두꺼운 껍질이 알맹이를 꽁꽁 감싸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칸드는 야만적인 검기가 훑고 지나간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이것이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타고난 초월자니 뭐니…….”

히스릴이 피식 웃었다.

“결국 너도 우리와 다를 바 없었잖아?”

누가 뭐라고 해도 그저 자신의 이상만을 추구하는 정신병자들. 모든 초월자가 그러하듯이 아칸드 또한 지독한 이상주의자였다.

어두운 거울에 히스릴이 비쳤다.

히스릴이 베어 가르기 전보다도 훨씬 더 깊고 진한 눈이었다. 그건 다름 아닌 ‘당신’의 신성력으로 빚어진 눈동자였다.

검날이 정직하게 교차했다.

히스릴의 대검이 산산조각 났다. 이제까지 용검과 몇 번이고 충돌하고도 손상으로 그쳤던 무구가 결국에 파괴되었다.

사실 정해진 수순인 터라 히스릴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옛 왕을 죽인다고 했다.
그 말에 거짓은 없다.
히스릴이 쌓아 올린 초석이 옛 왕의 패배로 직결될 테니 그녀가 죽인 것이나 진배없다.

부활을 대가로 사문을 개방해 첫 번째 하인과 맺은 계약을 이행했으며, 이번에는 초대 마도왕과의 거래를 완수했다.
약속한 것은 전부 지켰으니까 델하룬의 여제로서, 초월자로서 체면은 세웠다.

아칸드가 뒷발을 앞으로 보내며 물 흐르듯이 몸을 회전시켰다.

쩍.

히스릴은 수평으로 양단됐다. 양팔과 허리가 함께 끊어졌다. 소리는 짧았다. 용검에 무참하게 두 동강 난 육체가 지면에 널브러졌다.
항상성이 파괴되었으니 곧 죽음이 그녀에게 안식을 강요할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 죽고 싶은가.”

히스릴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아칸드는 등 뒤에서 날아든 성검을 아무렇지 않게 붙잡았다. 신성력이 담기지 않은 일격은 그의 육체에 생채기도 낼 수 없었다.

안식의 권능은 모든 것으로부터 그 본연의 모습을 끌어낸다.

그 영향 아래, 초월자들은 더욱 광기에 물들었지만 레온하르트는 예외였다. 오히려 그에게는 신성력을 쓸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잘린 왼팔과 왼다리를 회복하지 못한 그는 불안한 자세로 성검에 힘을 주었다. 아직 아물지 못한 상처의 단면에서 피가 후두둑 떨어졌다.

“허억, 허억, 허억……!!”

레온하르트는 완전히 두려움에 질려 있었다.

기색은 패배자의 그것이었지만 그는 도망치는 대신 검을 쥐었다. 스스로 저항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목숨을 불태우니 자신도 함께 타오르는 보잘것없는 의무감 때문이었다.

무력한 인형.

그게 레온하르트의 본모습이었다.

아칸드가 성검을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손을 놓고 주먹의 아랫부분으로 내치듯이 레온하르트의 하관을 후려쳤다.
목과 턱에 걸친 충격이 뇌를 흔들었다.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는 몸으로 지면에 처박힌 레온하르트가 의식을 놓았다.

“…….”

격전 끝에 마지막까지 선 자는 아칸드였다.

에르세티아와 아드리안만이 어떻게든 일어서려고 했다. 정신을 잃지 않은 게 둘뿐이었다. 애석하게도 한 명은 장기를 쏟지 않게 버티는 게 고작이었고, 다른 한 명은 속도를 잃었다.

“내 경고를 무시하고 위대한 전쟁에 개입한 것은 너희다. 그러니 내게 주어진 사명, 그 이상을 바라지 마라.”

뭐지?
누구한테 한 말이지?

아칸드는 느닷없이 허공을 향해 단호히 선언하고는 용검을 질질 끌었다. 카가가각…… 아직 회생 가능성이 있는 초월자들을 하나씩 끝장낼 셈일 것이다.

아드리안이 떨리는 손을 길게 뻗어 가까스로 광검 [실렌다르]를 쥐었다.

그런데 칼날이 끌리는 소리가 가까워지기는커녕 오히려 멀어졌다. 아칸드는 그들을 무시하고 협곡의 안쪽으로 향했다.

연합의 3차 방어선으로.

* * *

아칸드는 무심하게 붕괴된 단층 협곡의 중심부를 가로질렀다. 상처투성이였다. 공포심과 적개심 이전에 경외심이 들게 하는 모습이었다.
불구대천의 적이 아니었다면 역전의 용사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초월자를 제외한 연합군의 전력도 상당했지만…… 본래 그들은 아칸드가 지휘하고 있을지 모르는 언데드 군단을 상대하기 위한 군이었다. 그리고 초월자들을 구할 대비책이기도 했다.

휘오오오──

아칸드가 발걸음을 멈추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낮은 바람이 불었다. 그를 막아선 것은 늙은 드워프와 작은 골렘이었다.

그하룬은 대지 한복판에 앉은 채로 호쾌하게 독한 술을 들이켰다. 알파는 그하룬의 좌측 어깨에 자리를 잡고 아칸드를 마주했다.

“내 선조가 제작한 용검의 실물을 확인할 겸 용검의 주인이 누군지 궁금해서 와 봤더니…… 대륙 절반을 불태웠다는 이야기가 되레 과소평가였어.”

그하룬이 주황빛 수염을 팔뚝으로 쓸었다.
그러곤 술병을 던졌다.

“마셔라.”
“드워프다운 권유구나, 절개를 지닌 망치, 그하룬.”

아칸드는 그하룬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듯 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하룬은 그러거나 말거나 딱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칸드는 거절하지 않고 술병을 주워들었다. 한껏 목을 축인 다음 그걸 다시 그하룬에게 던졌다. 술병은 큼지막한 손안에 정확하게 들어갔다.

그하룬이 말했다.

“학살자라길래 용검에 휘둘리는 줄 알았다. 하지만 네놈은 신념이 있군. 대의가 있어. 그렇게 많은 생명을 빼앗아도 채워질 수 없는 목적이라…… 그러니 용검을 가질 자격이 있는 것이겠지.”
“전설적인 드워프 후손의 인정이라. 그래서 선조가 만든 최초의 용검을 본 감상은 어떤가?”
“확신이 생겼다. 나는 이미 선조를 뛰어넘었다는.”

그가 턱을 치켜들었다.

“용검 [마그라스]? 만물을 극하는 검이라고? 그게 뭐 어쨌다고. 그것은 애초에 소유주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제작자의 욕망과 대의만이 깃든 무구다. 네놈은 검을 가질 자격이 있을지언정 그다음 주인은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높겠지. 여태껏 용검의 주인이 되려고 죽은 놈들처럼. 그 따위 검보다 내가 대충 만든 철검이 더 낫다.”
“대단한 자부심이군.”
“용검은 선조의 과오다. 그릇된 대장장이의 표본과 같지.”

그하룬이 확언했다.

“네놈은 용검 [마그라스]의 마지막 주인이 될 것이다.”
“그리되기를 바라지.”

아칸드는 감정을 알 수 없는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시선을 살짝 옮겼다.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그의 피조물이여.”

[아칸드.]

알파가 질문했다.

[왜 안 죽였어?]

아칸드가 초월자들을 끝장내려고 했으면 병기들을 총동원하고, 모든 전력을 투입해서 초월자들을 구했을 것이다.
준비는 갖춘 상태였다.
그런데 아칸드는 히스릴을 제외한 다른 초월자에게 더 이상 손을 쓰지 않았다. 무력화한 다음 걸어서 이곳 3차 방어선으로 왔다.

“그래야 했으니까, 또한 그러고 싶었으니까. 답이 되었나?”

[절반 정도?]

“그런가. 언젠가 전부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때 아칸드가 고개를 돌리더니 주변 일대를, 정확히 말하면 공간을 지켜봤다. 그러곤 한 발 물러나며 말을 이었다.

“시간이 됐군.”

쩍.

아칸드의 뒤에서 사문이 개방되었다. 델하룬에서 후퇴할 때 쓴 그 방식이었다. 알파는 그걸 보자마자 새로운 변화를 인식했다.

7대 마도왕이 공간을 안정화시켰다.

셧다운이 해제됐다!

[당장.]

“오냐!”

그하룬이 망설이지 않고 버튼을 눌렀다. 지면에서 마력의 광채가 번쩍였다.
아칸드를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이 느껴졌다.

지상 최악의 난쟁이──그림멜 그롬파르──가 알려 준 기계 장치를 재설계한 다음 사전에 라이너스와 함께 3차 방어선 아래에 매설해 두었다.

마력 입자 폭발.

대륙의 일부를 날려 버린 폭발이 모든 것을 삼키려 했다. 동시에 그하룬과 알파는 기계 장치에 의한 마력 보호막을 둘렀다.

광범위한 폭발을 마주한 아칸드가 주저 없이 용검을 올려쳤다.

* * *

아칸드가 3차 방어선으로 향하자마자 몰래 우회한 연합군이 초월자들을 구출했다. 상처가 너무도 극심해 보는 것만으로도 전율을 느꼈다.

아드리안은 한 다리를 잃은 채 히스릴에게 다가가 주저앉았다.

“하아…… 하아…….”

히스릴은 아직도 살아 있었다.
죽음이 코앞이었다.
고농축 리산드로의 열매는 전부 소모했기에 이곳에 없었다. 사실 있어도 도움은 되지 못했다. 엘릭서라면 살릴 수 있겠지만, 당장 가져올 수도 없고, 히스릴에게 사용할 만한 것도 아니었다.

“왜 이곳에 왔지?”
“너, 보려고.”
“헛소리는 집어치워.”

아드리안은 잠시 의식을 잃고 있엇기에 히스릴과 아칸드가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녀의 배경에 누가 있는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히스릴은 주군과의 전투에서 크나큰 부상을 입고 도주했다. 그건 엘릭서가 아닌 이상 단시간에게 나을 수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히스릴의 새로운 무구는 그 용검에 대적할 정도로 대단했으니, 아드리안은 살면서 본 적이 없는 형식을 갖고 있었다.

“……그가 보냈나?”

다른 사람이 있는 곳에서 초대 마도왕을 언급할 수 없어 그렇게 지칭했다.

히스릴은 힘없이 웃었다.

“이렇게, 까지 했으니…… 대충 동대륙에서, 사문, 연…… 거…… 만회는, 했나?”
“…….”
“도움, 됐어?”

아드리안은 히스릴의 난입이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생각했다.

“도움이 됐다.”
“그럼…… 빚진 거잖아.”
“빚이라니…….”
“그럼…… 하나, 약속해.”

히스릴은 한없이 가련한 표정을 지었다. 얼굴은 창백해진 지 오래였다.

“나중에……부탁 하나 들어줘.”

나중이라니?

아드리안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기 전에 히스릴이 강요했다. 그녀는 스스로의 죽음으로 그를 압박했다.

“……알겠다.”
“부탁 하나 들어주기로 약속한 거다?”
“……!”

히스릴은 갑자기 정확히 발음하더니 포악한 미소를 지었다.

“우린 다시 만나게 될 거야.”

그 말을 끝으로 히스릴이 축 늘어졌다. 눈에서 빛이 꺼졌다. 죽었다. 항상성까지 파괴된 그녀는 두 동강이 나서 죽었다.
옛 왕의 힘으로 부활할 일은 없으니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없었다.

그런데 왜일까.

히스릴의 유언은 모순적이게도 생기가 넘쳤다.

─────────!

그때 멀리서 막대한 폭발이 일었다. 3차 방어선이 전부 사라졌다. 그하룬이 직접 준비한 최후의 함정이 아칸드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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