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4화 공방전 (5)
지상 최악의 난쟁이가 창조한 마력 연쇄 폭발 장치는 대륙에 영원한 상처를 남겼다.
마력 입자의 불안정성.
이를 이용한 최대 폭발은 난쟁이 자신과 대학살의 수인을 흔적도 없이 파괴했고, 동대륙과 중앙 대륙을 잇는 두 개의 육로 중 하나를 소거했다.
그롬멜의 설계도를 얻은 그하룬은 그때의 풍경을 온전히 재현하지 못했다.
준비가 부족했으니까.
그롬멜과 바르카젤의 마찰은 사실상 동대륙과 중앙 대륙의 전쟁이었다. 아무리 그하룬이 전설이라고 해도 단신으로 그런 수준의 장치들을 준비하려면 최소 수십 년은 걸릴 터였다.
그래서 그하룬은 범위를 조절하여 부족한 위력을 일부 보완했다. 마력 장막으로 3차 방어선을 감싼 다음 폭발을 그 안에 가두는 것이다.
가볍게 몽둥이를 휘두르면 타박상이 남지만, 그와 같은 힘으로 단검을 찔러넣으면 치명적일지도 모르는 자상이 남는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
섬광이 사방을 휩쓸었다.
스칼룸 단층협의 머리 부분인 연합의 3차 방어선이 송두리째 무너졌다.
드워프는 다른 인간종처럼 기나 마력이나 야성 등 고유한 힘이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필요하다고 느낀 적도 없었다.
금속과 창조를 사랑하는 손재주와 기술력이 그들의 힘이자 자부심이었으므로.
생명까지 자연에 환원하여 태초의 땅에서 마력을 빌렸던 세렌디아는, 메르퀴엔과 함께 완전히 탈진한 상태로 드워프의 이적을 보았다.
세계 연합군에 끼어 있던 라이너스는 심장이 쿵쿵 뛰었다.
“스, 스승…….”
아무리 마력 입자 폭발을 막을 보호막을 둘렀어도 무사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쿠오오오오.
광채가 그대로 머물다가 잦아들더니 난폭한 기류와 함께 푸른 곰팡이가 핀 것 같은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자욱한 분진 너머에 비친 그림자는 온전히 서 있지 못했다.
“……!……!!”
한순간 전방위에서 폭발하는 마력이 밀려드는 터라 검기로 상쇄할 수 없었다.
본래라면 경상으로 그쳤겠지만, 초월자들의 집요한 광기가 쌓여 기어코 옛 왕의 무릎을 꿇렸다.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
특히 태초의 화살을 맞받아치며 금이 간 양 팔뚝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아칸드가 딛고 있었던 땅은, 절벽 한가운데 외로이 솟은 기둥처럼 남아 있었다.
그 뒤의 아홉 번째 사문도 폐쇄되지 않았지만 다소 흔들렸다. 이러한 불규칙적인 일렁임은 보다시피 뒤틀림을 의미했다.
그렇다.
알파의 노림수는 아칸드의 폭사가 아니었다. 그런 것까지 기대하지 않았다. 추가 피해를 주면서, 도중에 셧다운이 해제됐을 시 잠시라도 퇴로를 차단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그롬멜이 불안정한 마력 입자 자체를 차단막으로 삼아 베르덴의 <전이>를 방해했던 지식이, 아칸드의 사문에도 통할 거라고 판단한 것.
세계 연합에서 공간 이동을 쓸 수 없으면 크세리온 제국도 공간 이동을 사용하지 못했다. 원리는 달라도 과정이 같으니, 알파는 계획이 성공할 거라는 계산이 있었다.
시야가 아주 가려진 먼지 속에서 알파가 아칸드를 식별했다.
[아칸드. 피해. 유의미.]
아칸드가 시간이 됐다고 한 이유는 간단했다. 공간 이동이 가능해지면 이곳에 연합의 추가 전력이 줄줄이 도착할 테니까.
예상대로 알파는 셧다운이 끝났음을 인지하자마자 긴급 통신을 돌렸다.
지상 최악의 기계 장치를 두른 그하룬이 마력으로 날아오르며 숨을 토해냈다. 치직, 치지직. 마력 장막을 발생시키는 장치가 망가진 상태였다.
“시발, 한 끗 차이로 뒈질 뻔했군!”
[48. 31. 88.]
“알았다!!!!”
알파가 가리킨 방향을 향해 그하룬이 기계 장치의 팔들을 뻗었다. 사전에 1부터 99까지, 알파는 대상을 중심으로 한 사각형 좌표계를 설정했다.
손바닥만 한 마력의 입자들이 알파가 말한 좌표로 순식간에 쏘아졌다. 세 개의 좌표는 아칸드의 부상과 움직임을 분석해 도출된, 그가 동시에 대응하기 가장 까다로운 배치였다.
“과연…….”
아칸드가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용검을 극단적으로 크게 올려쳤다.
제8형단 – 플루비오스Pluvios
쩍, 버섯 구름이 갈라졌다.
마력의 입자들을 모조리 집어삼킨 거대한 검기가 한없이 솟구쳐 오르다가 정지하더니, 곧 지상을 향해 추락하며 분열됐다.
검기의 폭우가 쏟아졌다.
그 살인적인 비는 알파와 그하룬이 아니라 연합군 진지를 노렸다.
“막을 수 있을까.”
“어렵다.”
“하지만 피할 수도 없네.”
연합군이 반사적으로 기막이든 마법 장막이든 신성 보호막이든 전개했다. 앞선 검기들을 상쇄했지만 모든 비를 피할 수는 없었다.
수인 부족장들이 작은 것들은 어떻게든 막았지만, 뒤이어 떨어지는 거대한 빗방울들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결국 국가급 상위 전력들이 몸으로 막으려던 찰나 눈앞에 공간 마법진이 떠올랐다.
마도 <원천(源泉)>
스태프에서 터져 나온 <아케인>의 광선이 큼지막한 검기 네 개를 분쇄했다. 그와 함께 휘몰아치는 흐름에 남은 검기는 모조리 좌우로 비껴나가 연합군 주변을 절단 냈다.
잠시나마 소리가 멎었다.
“이 시간부로 모든 공간 좌표는 안정됐다.”
7대 마도왕──반젤리스 루인 아케나드가 마침내 전선에 도착했다. 세계 연합의 마지막 비대칭 전력이 맡은 소임을 마친 것이다.
“셧다운은 종료되었다.”
선언이 끝나자마자 사방에서 비행정에 의한 공간 이동이 발생했다. 하나가 아니었다. 점차 늘어나 공간 균열이 십수 개에 이르렀다.
연합의 대규모 함대가 옛 왕을 죽이기 위해 스칼룸 단층협에 도착했다.
아칸드는 홀로 막대한 군세를 마주했다.
입자 단위의 마력 파장의 영향으로 사문의 공간 좌표가 왜곡되었다. 시타델로 이어졌어야 할 통로가 뒤틀린 것이다.
사문을 넘는 순간 어떤 좌표로 이동될지 아칸드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최후에 이를 날을 기약하지.”
아칸드는 뒤로 걸음을 옮겨 곧 불안정한 사문으로 모습을 감췄다. 직후 반젤리스가 들이닥쳐 그가 있던 공간을 쳐부쉈다.
마력의 압력에 붕괴된 기둥의 잔해가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쯧, 놓쳤군.”
[사문. 불안정.]
알파가 확언했다.
[아칸드. 본래 목적지. 도착 불가.]
아칸드를 끝장내지 못했지만 세계 연합의 수확은 결코 적지 않았다.
수많은 희생 끝에 여러 중상을 입히는 데 그치지 않고, 이데라트 연맹국부터 시작해 중앙 대륙을 피와 시체로 장식하던 아칸드의 공포스러운 진격을 도중에 막아냈으니까.
더군다나 퇴로까지 비틀어 후퇴조차 원활하게 하지 못하게 했다.
단언컨대 옛 왕이 전선으로 돌아오는 데 꽤 시간이 걸릴 터.
[총공세. 준비.]
알파는 비로소 전쟁의 종착점을 계산했다.
* * *
왜곡된 사문을 통과하자 그 앞에는 시타델이 아닌 숲이 펼쳐져 있었다. 어떠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숲.
아칸드는 나무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쿵.
용검에 손을 걸친 채로 지면을 바라보았다. 피로를 모르는 몸이지만, 여러모로 소모가 컸다. 그래서인지 지쳤다고 느껴졌다.
초대 마도왕의 후손을 상대할 만한 여력이 부족할 정도였다.
“훌륭한 저력이었다.”
아칸드가 중얼거리다가 팔뚝을 응시했다. 히스릴이 찔러 넣은 기이한 창촉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육체 어딘가로 스며든 듯한데 아무리 관조해도 그 잔재조차 찾을 수 없었다.
저항자의 계략.
필시 아칸드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초석일 테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는 이미 800년 전에 모든 걸 각오했으므로.
개인적인 판단으로 초월자들을 죽이지 않았지만, 세계 연합의 총력은 크게 깎였다. 그들은 짧은 시간에 본래의 힘을 회복할 수 없으니 아칸드에게 대적할 수 없다.
그 외 세계 연합의 남은 정점들을 생각했다.
7대 마도왕, 반젤리스 루인 아케나드.
수왕, 안티아스.
다크워튼 마탑주, 라인델 넥스레온.
마스터, 벤디에 카에나르.
레프라기움 마탑주, 데우스 위덴.
그리고.
운명 파괴자, 베르덴.
여섯 번째 사도로서 전력을 다한다고 해도 전부를 감당할 수 없다. 그러니 시타델에서 베르덴과 결전을 벌이려면 적어도 세 명 이상의 발목을 잡아 줄 존재가 필요 불가결했다.
“……네크바엘이 있어야겠군.”
사룡 네크바엘은 다른 3차원에 갇혀 있다.
알아서 나올 것이다.
단지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아칸드도 소모된 힘을 비축하고 부상을 다스릴 여유가 있어야 했다.
네크바엘을 기다리는 지금이 적기였다.
그동안 전황이 압도당할 테지만 괜찮다.
기세가 오른 세계 연합의 사기를 꺾을 수는 이미 두었다.
……툭.
아칸드가 고개를 떨구었다. 의식을 놓은 그는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숨소리도 말이다. 그저 시체처럼 깊은 안식에 잠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동물들이 아칸드 주변에 모였다. 현대 역사상 최악이자 최대의 학살자를 앞에 두고도 그들은 겁도 없이 몸에 올라탔다.
새가 지저귀는 숲은 고요하고 안락했다.
* * *
제2차 초월자 전쟁의 시작과 끝을 조형하고, 또한 주도하는 안배는 세 개였다.
서로 다른 이들이 각자의 그림을 그렸다.
* * *
첫 번째 안배 – 저항자.
펠디안느와 인드렌으로 시타델을 묶어둘 수단을 마련했으며, 적룡 사르칸드라의 개입은 성공적으로 격퇴했다.
그리고.
히스릴 델 로하룬이 여섯 번째 사도에게 [루기나 혼]의 창촉을 찔러넣었다.
이로써 필연적인 죽음은 마련되었다.
대적자를 준비하라.
쿠구구궁! 쿠궁!
와아아아아아아아아!
딘엘 왕국의 방어선에서 북상하는 언데드와 전투가 이어졌다. 테르네티아 연방의 사문이 폐쇄되어 올라온 초대규모 군세와의 전쟁이었다.
연방에서부터 추적을 거듭하며 숫자를 줄이고, 또 줄였지만 위협은 좀처럼 꺾이지 않았다. 그만큼 많은 숫자였다.
“모험가는 나를 따르라!!”
완벽한 모험가───망국의 죄인───카스티안 리니게아 타인 크세리온이 전선에서 위험도가 높은 개체만을 토벌했다.
모험가는 난전보다 소규모 인원으로 강한 개체를 상대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
모험가 길드의 최고 전력인 흑요 등급 모험가가 앞에서 활약하자 다른 모험가들도 거침없이 그를 따라 사선을 극복했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
초대 네크로맨서가 유골룡의 모습으로 언데드를 휩쓸었다. 그의 거체와 마도는 대규모 전장에서 훨씬 더 빛을 발했다.
“…….”
어지럽고 격렬한 전장에서 어느 모험가의 눈동자가 카스티안을 좇았다.
그는 저항의 씨앗 중 하나였다.
카스티안이 스칼룸 단층협에서 아칸드와 조우하지 못하도록 조치했으나, 창촉의 길이 이어졌으니 그들을 만나게 해야 했다.
마침내 망국의 죄인을 사용할 때다.
* * *
두 번째 안배 – 베르덴.
세계 연합을 창설하고 연합장으로 등극한 베르덴은 그야말로 모든 방면에서 공헌했다. 폴테인 평야에서 드높인 사기는 아직도 이어질 정도였다.
베르덴이 직접 가르간트에서 처형했던 루네시카는 현재 주검의 영광을 장악하며 크세리온 제국의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계획의 진행과 별도로 변수가 많았다.
네크바엘을 3차원의 변방에 격리하거나, 혼자서 세 명의 사령관을 상대하는 등…… 베르덴은 그런 현실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극복했다.
하지만, 지금은 당황스러웠다.
“여긴…….”
동대륙에서 몸을 재건하다가 의식을 잃은 베르덴이 눈을 뜨자 초원이 그를 반겼다. 푸른 초원이었다. 마치 세계수의 본체가 있던 태초의 땅처럼.
“이곳은 그대의 땅입니다. 그대가 뿌리내린 태초의 땅.”
베르덴이 고개를 돌렸다.
엘프가 보였다.
“다른 말로 하면 신역(神域)이죠.”
세계수가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