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6화 총집결 (1)
세 번째 안배 – 여섯 번째 사도.
델하룬의 사문을 희생해 전 대륙에 언데드 군세를 퍼뜨려 사상자를 급증시켰다.
펜드렌 호수의 사문은 호수 근방의 도시와 생명을 오염시켜 사상자를 급증시켰다.
동대륙 남부의 제1사문은 산 자를 공포로 타락시켜 사상자를 급증시켰다.
테르네티아 연방의 사문이 중앙 대륙 남부를 거의 초토화했으며, 폐쇄되자마자 모든 언데드를 북상시켜 또 사상자를 급증시켰다.
이외의 다른 사문은 어디까지나 거점이자 미끼에 불과했다. 네 개 사문만이 크세리온 제국이 추구했던 목적대로 쓰였다.
최대한 많이 죽이는 것.
하지만 부족하다.
아직 덜 죽였다.
조금 더 죽어야 한다.
사룡 네크바엘에 의해 변화된 대기는 마렌 왕국의 활력을 앗아갔다. 또 사상자가 급증했다. 마렌 왕국은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국력을 회복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테르네티아 연방 또한 궤멸했고, 하부 수인 부족과 로니아 왕국은 멸망했다.
더 죽여야 한다.
아칸드가 이데라트 연맹국에서 스칼룸 단층협으로 남하하며 여러 도시를 무너뜨렸다. 생존자는 없었다. 역시 사상자가 급증했다.
불충분하다.
크세리온 제국이 흩뿌린 죽음이 악착같이 생명을 잠식했다. 생명은 투쟁했고, 죽음은 분투했다. 서로가 서로를 물고 뜯었다.
더 많은 희생이 필요하다.
세계 전쟁은 제단이고, 각 전장은 의식이다. 의식을 끝내려면 부패한 산맥과 붉은 바다가 공존하는 땅으로 향해야 한다.
시산혈해(屍山血海)야말로 여섯 번째 사도가 받은 사명이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광!
죽은 자의 영혼으로부터 기억을 뜯어낸 시타델이 세계 연합 본부를 특정해 궤멸시켰다. 사기가 응집된 거대한 질량의 사슬이 고대 성채를 관통하고 폭발해 내부까지 휩쓸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급습에 성채 밖에 있던 연합의 일원들이 아연실색했다.
“저게 뭔…….”
“크세리온 제국의 시타델이다. 방법은 모르겠지만 본부 위치를 찾았나 보군. 서둘러라. 너희는 지휘부의 생사부터 확인해.”
물론 살을 에는 듯한 사기에 평정을 되찾는 자들도 있었다.
“나머지는 무기를 들도록.”
시타델에서 언데드 군집이 이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꽃과 잎이 시들었다.
선선한 바람은 시타델을 지나친 순간 썩은 악취를 풍겼다.
검이 부딪혔다. 마법이 착탄해 평화로웠던 자연이 순식간에 전장으로 변했다. 기적을 바라는 성직자들이 신성한 찬가를 부르며 잔혹한 죽음과 오염과 공포에 대적했다.
그때 본부 잔해 위로 투명한 균열이 발생했다.
쿠오오오오오.
세계 연합의 정보망을 담당하고 있었던 정보원들이 균열에서 떨어졌다. 베타가 가장 앞에 있었고, 페일은 그 옆에 주저앉았다.
마도국의 조사국장, 제렌 체드윌이 손가락에 걸친 팔찌를 앞세운 채로 턱끝까지 차오른 숨을 내뱉으며 식은땀을 흘렸다.
‘느, 늦지 않았나……!’
고대 아티팩트 [세베렌스(Severance)].
공간 단층으로 외부와 내부를 일시적으로 단절시키는 마도국의 비보 중 하나.
발동한 순간 해당 지점에서 이동할 수 없지만 모든 영향을 무위로 돌릴 수 있다. 이는 조사국장이 대대로 물려받는 전유물이었다.
조사국장은 마도국의 기밀 대부분을 알고 있기에 스스로를 완벽히 보호할 수 있는 수단과 무엇으로도 살릴 수 없는 자결 수단을 언제나 갖고 있다. 그 또한 국장의 의무였다.
살아서 입을 닫거나.
죽어서 잊거나.
이 중 [세베렌스]는 전자에 해당했다.
페일이 즉각 소리쳤다.
“모든 군단장에게 통신을!”
[남은 사문 공략은 그대로 진행합니다. 생존자를 확인하십시오.]
베타는 대지의 골렘 특성을 써서 프레임의 규모를 극대화했다. 체고 6미터…… 11미터…… 19미터. 점차 몸집을 키우던 도중 입가가 기괴하게 벌어진 인간형 언데드가 들이닥쳤다.
[꺄아───]
콰아아앙!
녀석이 정신계를 뒤흔드는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베타가 뭉개 버렸다.
체고 23미터.
베타가 거대 골렘이 되어서 대규모 마력 방벽으로 일대를 보호했다. 그사이 정보원들이 <마력 감지>로 잔해 아래를 살폈다.
상당수가 즉사를 면치 못했다. 공성 병기에 준하는 충격을 생각해 보면 시신이 남은 것도 기적이었다.
“빌어먹을……!”
“여기 생존자다!!”
그러나 통제실을 제외한 모든 인원이 전멸한 것은 아니었다.
무너진 지하실 입구가 들썩거렸다.
여러 매직 아이템을 장착한 인공 골렘들이 잔해를 밀고 올라왔다. 본부의 지하는 골렘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연구 구역이었다.
“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아, 틸버! 당장 아래 있는 골렘 부대 모조리 끌고 나오시오! 연구 중인 것도 모조리!”
알파와 베타의 제자인 틸버 스팬기어가 운 좋게도 살아남았다.
폭발에 간접적으로 휘말린, 성채 외곽 부분에 있던 이들도 중상, 혹은 경상을 입은 채로 하나둘씩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황금의 죄인 마그누스와 죽음의 죄인 레지날프도 잔해 더미에서 나왔다. 마그누스의 황금 골격에 조금 금이 가 있었다.
[괜찮습니까, 레지날프?]
“그래, 아직 죽을 때는 아닌가 보군.”
레지날프가 시선을 올렸다.
“저것이 아칸드의…… 성채.”
[……무시무시한 죽음의 기운입니다.]
생전에 크세리온 제국의 전쟁에 일조했던 두 명의 죄인은, 마침내 자신들의 원죄와 마주했다.
통제실을 제외하고 본부 내에서 활동하던 인원 중 약 6할이 사망했다.
불의의 기습 단 한 번에.
일반적으로 절멸은 시간문제였지만 연합 본부에서 활동하는 인물들은 하나하나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공성 방어 전개!”
“큭……!”
“후퇴하면서 맞서라! 시간만 끌어!”
게다가 세계 연합 본부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할 병력 정도는 남겨 두었다.
적이 이곳까지 다다를 가능성은 사실상 없었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확률이 존재했기에 완전히 비워 두지 않은 것이었다.
물론 이대로 가면 몰살은 필연.
그러니 대륙 각지에서 임무 활동 중인 토벌군단이 유일한 구명줄이었다.
“곧 지원이 올 거다!”
고대 유적이 기반인 이곳은 직접적인 공간 이동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시타델이 어떻게, 어떤 원리로 곧장 전조도 없이 연합 본부로 넘어온 것인지는 베타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튼 일부 인원이 빠져 유일한 입구이자 출구인 고대의 문을 열었다. 이제 안개 낀 협곡에서 토벌군이 오길 기다리면, 시타델을 상대로 시간을 끈다면 살 수 있을 터였다.
물론 버틸 수 있다는 전제하의 이야기였지만──
“어?”
“뭐야, 왜…….”
그런데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됐다.
쿠구구구구구…….
본부를 초토화한 시타델이 공습을 지속하지 않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공에 머물며 거대한 쇠사슬만 쏘아 보내도 치명적으로 작용할 텐데 유리한 위치를 스스로 벗어난 것이다.
서쪽.
시타델이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거대한 섬의 그림자에 덮여 있던 사람들이 다시금 태양을 보게 됐다. 지상의 언데드는 남았지만, 비행이 가능한 개체들은 시타델 주변을 호위하듯 위협적으로 물러났다.
그건 후퇴나 다름없었다.
본능적으로 살았다는 안도감이 들었지만 그보다도 위화감이 더 컸다.
기분 탓일까.
하늘섬이 마치 루어(lure) 같았다.
눈앞에서 아른거리며 어서 덥석 물기만을 기다리는 탐스럽고 위험한 미끼…….
연합군은 멍청한 물고기가 아니었지만 시타델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그 거대한 유혹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크세리온 제국 황성인 시타델을 함락시키면 전쟁은 끝난다. 돌아갈 장소도, 군단도 없어 혼자 남은 옛 왕은 두려워할 것이 못 된다.
전쟁의 결말이 목전에 있다.
[모든 토벌군단에 새로운 명령을 전달합니다. 제렌 체드윌을 필두로 시타델을 추적하고, 그 실시간 위치 정보를 통해서 세계 연합은 모든 역량으로 시타델을 추격합니다.]
베타도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최후의 공성전입니다.]
최후, 라는 그 단어에 정보원들이 소름이 돋았다. 사람들이 무수히 갈려 나가는, 장장 수십 일 간 이어진 대전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도 좋았으므로.
제렌 조사국장이 함성을 질렀다.
“쫓아라──────!”
세계 연합이 하늘섬 공략에 돌입했다.
전부 오라.
* * *
연합 본부가 시타델에 기습당했다는 소식은 통신이 가능한 모든 군단장에게 즉시 전달됐다.
그것이 하이랜디아에서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정보 또한.
[적의 본진이 행차했다라…… 그것도 또 세계 연합 본부를 급습하며. 과연, 과연. 옛 왕의 의도가 다분히 느껴지는구나.]
천공룡 아에로돈이 세계 지도 위에서 작은 날개를 퍼덕거렸다. 자신이 책사이자 지휘관인 양 녀석은 옛 왕의 수가 읽혔다면서 눈을 빛냈다.
[함정이다. 시타델로 연합의 전력들을 끌어내려는 거대한 함정.]
“무슨 목적으로?”
[딱 봐도 세계 연합의 여력을 소모시키기 위함이겠지. 시타델을 함락시키기 위해 모든 병력을 집결시킨 다음 다시 알 수 없는 원리의 공간 이동으로 사라지면 연합 입장에서는 아주 성가실 테니. 아직 대륙에서 날뛰는 언데드가 좀 많으냐? 그런데 시타델이 나온 이상 우린 두고 볼 수도 없으니, 둘 다 신경 쓰다 이도 저도 못해서 질질 끌려다니게 될 테지. 즉! 옛 왕의 목적은 전쟁의 장기화인 것이다! 엣헴!]
아에로돈이 우쭐거렸다.
전쟁의 장기화.
제라클 황제는 내심 고개를 저었다. 그러려는 정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타고난 정치적 감각이 납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칸드 리니게아 타인 크세리온. 대악마 몰가른의 미래 벽화에 기록된, 시체의 산 위에 앉은 군주.’
회담에서 보았던 그를 기억한다. 인물로 보아 그는 전쟁을 지루하게 만들 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강하게 몰아치면 몰아쳤지.
‘시타델을 전략적으로 운용하려고 했다면 이보다 더 나은 시점과 방법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대부분의 사령관이 토벌되고, 절반 이상의 사문이 폐쇄된 하필 지금에서야…….’
아칸드의 남은 전략은 무엇인가.
어쨌든 아에로돈이 내놓은 해석에 동의하는 부분은 있었다. 시타델 자체가 거대한 함정이라는 것. 그것은 가장 두려운 함정일 것이다.
함정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으니 말이다.
[결국 갈 것이냐? 함정인데?]
“세상에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반드시 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지. 원한다면 너도 전장으로 보내줄 수 있다만.”
[싫다! 너나 가거라!]
아에로돈이 방석 뒤에 숨었다. 적룡 사르칸드라가 마경에서 출현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 녀석은 방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갸악! 사르칸드라가 얼마나 잔혹한 고룡인지 알면 그런 소리 못 할 것이다! 차라리 바로 죽으면 호상이지, 장난감이 되면 죽고 싶어도 못 죽느니라……!]
보다시피 사르칸드라와 관련된 얘기만 나오면 아주 경기를 일으켰다.
사르칸드라의 습성.
마경의 생태.
…….
아에로돈은 자신이 지닌 가장 강력한 무기가 그런 지식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모든 정보를 선뜻 제국에 제공하지 않고, 오직 거래만으로 내놓아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했다.
아직도 들을 것이 많다.
제라클 황제는 순수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순결한 인간이기에, 또한 진정한 인간을 위해 세계의 미지를 드러내고 싶었다.
스윽.
제라클 황제가 투구를 썼다. 그는 전시 내내 갑옷을 두르고 있었다. 대단한 전투 능력은 없지만 그 위상이 곧 제국이었다.
“대전이(大轉移)를 준비하라.”
그림자 로드가 휘하 기사단을 통해 군단에 어명을 하달했다.
시타델의 소식이 전해지기 전에 아르나크 제국의 병력은 집결시켜 두었다. 결말의 윤곽이 점차 보이는 듯했기에.
“중앙 대륙으로 진군하겠다.”
전쟁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순간이 언제인지 아는가?
바로 시작과 끝이다.
지금이야말로 나설 때다.
정치적으로 그게 옳다.
* * *
아르나크 제국의 국경을 사이에 두고 두 개 집단이 충돌했다. 난잡한 전장에서 목에 구속구를 찬 인간들은 최전선을 담당했다.
“자유! 자유!!!!!!!!!”
“하하하하하핫, 감형이다!!”
그들 대부분은 보통 같으면 살아서 나올 수 없는, 경지가 높아 별도의 지하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특수 범죄자들이었다.
하나같이 다루기 힘든 족속들이었지만, 전쟁에서의 활약상에 따라 제한적인 자유, 혹은 감형을 황제에게 약속받은 터라 누구보다 열심히 언데드를 분쇄하는 데 앞장섰다.
오랜만에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라 흥분이 극에 달하기도 했다.
국제 사회에 하등 쓸모가 없는 쓰레기들을 전쟁에 투입하여 국력의 소모를 줄인다──이보다 효율적인 재활용도 없으리라.
로벨린을 비롯한 마탑의 마법사들이 전장을 태우고 일그러뜨려, 원소의 장벽을 연이어 형성해 언데드를 광범위하게 토벌했다.
드워프의 병기들이 적진을 강타했다.
겨우 그 선을 넘은 개체는 접근전에서 동대륙 방어군을 상대해야 했다. 제국의 전략과 전술은 수백 년 동안 쌓아올린 역사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전장의 측면에서는 초월적인 존재들이 격돌했다.
쩌어어엉!
리반데일 대공이 균열에서 뻗어나온 거대한 팔을 막아 내며 밀려났다.
애검 [에테스]가 진동했다. 파동검이 사기의 흐름을 갈랐다.
방어가 불가능한 검기에 134번째로 팔뚝이 절단된 균열───제5사령관이 미약하게 반응했다. 놈에게서 분노의 감정이 느껴졌다. 그 밀도는 분명히 아까보다 더 커져 있었다.
‘균열은 외골격이자 껍질이며, 그 안의 무수한 팔은 본체와 연결된 실체. 균열 내부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놈은 죽일 수 없다.’
리반데일 대공은 전투 내내 제5사령관을 면밀하게 분석했다. 격전으로 그의 온몸이 만신창이였지만 결국 경상뿐이었다.
옷만 찢어지거나 더럽혀졌을 뿐이지 중상에 이르는 피해는 전무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는 제5사령관도 날 죽일 수는 없다.’
현재 전황은 제국에 유리하다.
새로운 언데드 군단이 들이닥치지 않는 이상 밀릴 이유가 없다. 크세리온 제국은 이곳에 대규모 전력을 추가 투입할 만한 여력이 없을 터.
‘조급한 것은 제5사령관.’
그러니 기다린다.
놈이 과감해질 때까지.
카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강!
리반데일 대공이 절도 있고 유연하게 741개의 크고 작은 팔에 대응했다.
기본기의 완성형.
무기술에 있어 마스터를 따라올 자가 없듯이, 이런 무투의 기본만 따지면 리반데일 대공을 앞설 수 있는 초월자는 없다.
균열이 순간순간 점멸하며 이동하여 대공의 사각을 잡으려고 했지만, 애석하게도 완성된 기본에는 빈틈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잡히지 않는 기름과 같았고, 때로는 암반마저 분쇄하는 파도와도 같았다.
총 180개의 팔이 날아갔다.
[아르나크의 검.]
[로드릭 리반데일.]
이윽고 231개의 팔이 잘려 떨어지는 순간 균열이 맥동했다.
‘오는군.’
균열이 벌어졌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
510개의 팔이 일제히 쏟아졌다. 좌우로 흘러넘치며 퇴로를 넓게 봉쇄하며 공간을 압박했다. 그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짓눌릴 것 같은 압력이 리반데일 대공의 숨통을 틀어막았다.
시체의 팔로 이루어진 그 흐름이 공간을 압도하며 장악했다.
“스읍.”
대공의 [에테스]에서 기파가 울려 퍼졌다.
초월기.
세류世流
검이 그리는 잔상을 따라 파장의 본질이 뒤바뀌어 밀도가 변화했다.
밀도나 한없이 낮은 곳은 그 무엇도 들어설 수 없는 공허한 공간이 되었고, 반대로 밀도가 높아진 곳에는 현상이 집중되어 제5사령관의 팔들의 궤도를 억지로 비틀었다.
모든 흐름이 그의 검로를 뒤따랐다.
리반데일 대공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진각을 힘껏 밟으며 허리를 틀었다.
칼날이 굽이치며 쇄도했다.
초월기, 그 연계.
반향反響
칼날에 실린 파동이 몇 배로 증폭되더니 정반대로 작렬했다. 흐름이 역행했다. 사기가 뒤틀려 주인마저 잊었다.
[아?]
510개의 팔이 모조리 박살 나더니 균열 자체에 크게 금이 갔다. 그리고 부숴졌다. 그 안에서 거대한 아기의 형상이 끌려나왔다.
“그게 네 본체인가.”
파동의 검기가 순식간에 살갗을 갈랐다. 뼈는 곧장 절단됐다. 제5사령관의 본체에 일곱 개의 검흔이 이내 떠올랐다.
그때 녀석이 말했다.
[대공, 제국은 네 것이 아니다.]
“……과거의 영혼이라.”
리반데일 대공은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게 하는 그 아기를 뒤로했다.
어느 인간의 영혼, 혹은 기억을 품은 그 언데드에게 더는 관심이 없었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도 말이다. 그는 제국을 수호할 뿐이다.
“꺼지도록.”
푸화아악!
제5사령관이 절명했다.
리반데일 대공은 대충 턱끝에 맺힌 땀을 닦아내고 자기 진영으로 돌아갔다. 확인 사살은 하지 않았다. 죽었다는 걸 확신했기에.
그는 돌아오자마자 제라클 황제가 내린 명령을 전달받았다.
중앙 대륙으로.
시타델의 공선전으로
* * *
사르칸드라에 의해 마경 주둔지는 초토화되었지만 생존자는 있었다. 그들은 연합의 도움을 받아 일대를 수습하고 후퇴했다.
오직 몇 명만이 남아 마경을 감시했다.
마경 토벌군단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알아야 했으니까. 만약 사문이 폐쇄되지 않았다면 연합군은 즉각 대응해야만 했다.
“……뭔가 온다.”
마경의 경계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이윽고 누군가가 나왔다.
“검성?”
“뭐? 언데드인가?”
“아니, 살아 있다!”
곧바로 돕기 위해 움직였다.
제국의 로드───검성 프리발트는 참혹한 몰골로 숨을 내쉬었다가 무릎을 꿇었다.
“드디어…… 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