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9화 총집결 (4)
균열은 자그마한 충격에도 파열로 이어질 수 있다. 균열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완전성이 깨졌음을 의미하므로.
‘내 피부가 한계에 달한 건가.’
어두운 갑각으로 덮인 피부는 더 이상 완충 작용을 하지 못하는 듯했다. 재생하고 있지만, 본래의 것보다 명백히 물러졌다.
바르카젤은 심장의 고동이 머리에서 느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살기를 날카롭게 벼렸다.
음식을 씹는 것처럼 하관을 움직였다. 즉각 통증과 감각에 적응하니 더 이상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 이제 아무렇지 않았다.
‘한계에 다다른 것은 당대의 수왕도 매한가지.’
타격 횟수는 바르카젤이 압도했다. 생명체인 이상 결코 멀쩡할 수 없다. 그는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가장 생명의 야성이 극대화된 상태.
그만큼 육체가 극도로 손상되었다는 이야기였지만 그렇기에 안티아스도 이미 한참 전에 본능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을 것이다.
상처에서 흐른 다량의 피.
반복되는 출혈.
억누르고 있으나 거칠어진 호흡.
보다시피 그걸 감추려고 애써 태연한 척 내색하지 않고 있지 않나.
과연 교활하기 짝이 없다.
‘약점은…… 심장.’
바르카젤은 뛰어난 관찰력이 무기. 사냥감을 계속 주시하여 사냥감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연약한 부위와 방심을 파고들 줄 알았다.
대척살의 각뿔에 받힌 가슴 정중앙이 드러나지 않도록 안티아스가 본능적으로 때리기 좋은 머리를 앞세우는 것을 포착했다.
한 번은 실패했지만 두 번째는 근육을 뚫고 심장을 꿰어 버릴 수 있으리라.
정확히 같은 지점을 노린다면.
실수? 확률?
개의치 않는다. 의도대로 이뤄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운명은 나의 편이니.’
세 번은 없다.
그때 안티아스가 드래곤 같은 거대한 꼬리로 땅을 후려치며 재차 말했다.
“쳐라. 네 차례다.”
“……그러지.”
바르카젤은 아주 아슬아슬하게 안티아스의 코끝을 스치도록 발을 차올리며 낮게 날아오르고 순간적으로 날개를 이용해 급강하했다.
쿠우우웅!!!
발끝에 힘이 축적됐다. 그와 동시에 칠흑의 날개로 안티아스의 시야를 한 번 더 교란한 뒤 날개를 젖히며 지근거리에서 맹진했다.
대척살.
쿠드드득───!!!
안티아스의 심장 부근에 놓인 자상에 정확히 뿔이 파고들었다.
잡았다.
안티아스의 다리가 밀리며 죽였다고 확신한 바로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제동이 걸렸다. 다리가 또다시 꿈쩍하지 않았다.
“뭐……??”
“네가 말했듯이 우리 같은 돌연변이들은 축복받은 육체 능력을 갖고 있지. 한데 역대 기록을 보니 나는 그 안에서도 별종인 모양이더군.”
수인의 신체는 대개 장단이 공존한다.
근력이 강하면 둔한 편이고, 신경이 발달돼 날쌔면 저항력이 비교적 약한 편이다. 날개를 갖고 태어나면 지상에서 활동할 때 타고난 불편함을 느낀다.
감각이 뛰어나면 과민하고 심할 경우 인지한 것에 압도당한다.
묘왕이 위기 감지 능력에 특화돼 대부분의 기습이 통하지 않으나,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을 감지하면 겁을 먹고 도망치기 바쁜 것처럼.
수인족은 이처럼 나름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 돌연변이란 간단히 말하자면 균형추가 하나 이상 무너진 수인이다. 그들은 기민하면서 힘이 셀 수 있고, 맷집이 강하면서 재빠를 수 있다.
바르카젤의 경우에는 근력, 기동성, 날개, 저항력을 두루 갖췄다.
그것들에 비해 감각은 떨어지는 편이나, 그마저도 수인 부족장 수준을 웃돌았다. 과연 고대 대륙을 호령한 수왕에 어울리는 특이성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자연이 장난이라도 친 것인지 안티아스는 상식을 벗어났다.
외상과 내상을 아우르는 초재생.
안티아스의 전신에서 상처들이 하나둘씩 메워지기 시작했다. 바르카젤처럼 피부 갑각만 회복하는 수준과 격이 달랐다.
게다가 이것을 임의로 조절할 수도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대충 내버려 두고, 내상만 수복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러니 바르카젤에게 두 번이나 받혔는데도 심장이 뚫리지 않는 게 당연했다. 이미 틈새를 어느 정도 채운 뒤였으니까.
만약 그가 짧은 시간을 두고 다시 심장을 노렸다면 닿았을지도.
근력, 저항력, 기동성, 초재생, 초감각…… 날개만 없을 뿐이지, 안티아스는 사실상 모든 수인족의 장점이 집약된 총체였다.
날개를 제외하고 바르카젤의 모든 육체적 능력을 뛰어넘는 상위 호환적 존재.
“불가능하다. 아무리 돌연변이라고 해도 이런 말도 안 되는 불균형이, 불합리한 이치 따위가 성립할 수 있을 리가……!!”
안티아스는 이 정도 수준의 초재생력을 델하룬에서 옛 왕에게만 보여 주었다. 바르카젤은 알지 못했으니, 이는 정보의 부재였다.
“이렇다 보니까 어느샌가 주변에서 가장 위대한 생물이라고 칭송하더군. 그나저나 하나 묻지.”
안티아스가 흉근으로 뿔을 붙들고는 뼛소리를 내며 손가락을 굽혔다.
“살아남는 것이 강함이라면서…… 왜 도망가지 않았지?”
“……!”
바르카젤은 생각해 보면 이 자리를 벗어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두개골에 금이 갔을 때도 말이다.
추격을 따돌리지 못할 수도 있었으나 일단 하늘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전투를 유리하게 장기화할 수는 있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바르카젤 자신은 일련의 흐름에 승기를 거머쥔 줄 알았는데 이제 와서 되돌아보니 안티아스에게 편하게 흘러갔다.
도태를 운운한 도발.
재생의 은폐.
그로 인한 착각…….
전부 안티아스가 짜 놓은 덫이었다.
“자, 잠깐.”
바르카젤의 하악에 강권이 작렬했다. 뿔이 버티지 못하고 깨졌다. 안면만이 아니라 경추가 부러질 듯이 휘었다.
뿔을 빼낼 수 없었던 터라 충격이 고스란히 머리로 꽂혀 버렸다.
대참수.
시야가 흔들리며 눈앞이 순간 흐릿해졌지만 그 와중에도 반격을 가했다.
생명의 야성에 의해 신체 능력이 더욱 증폭됐다.
그러나 더 맞으면 죽는다.
죽을지도 모른다.
탓.
바르카젤이 거리를 벌리려고 몸을 뒤로 빼냈으나, 그걸 예측한 안티아스의 손아귀가 뒤쫓아와 머리뼈를 강타했다.
“끅……?!”
언덕에 몇 번이고 튕긴 그가 비틀거리며 일어나선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더, 더는 안 된다. 몸이 버티지 못해.’
머리가 심하게 울렸다.
등골이 오싹했다.
성녀에게 그러했듯이 후퇴를 수단으로 삼았지만, 이번에는 방심을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짜 도주극이었다.
바르카젤은 몇 번의 발돋움 끝에 간신히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안티아스가 제아무리 불합리한 괴물이라고 한들 타고난 날개가 없는 이상 하늘 끝까지 따라올 방법은 전무했다.
‘물러나서 옛 왕이 날뛰는 사이에 회복한다. 다음을 도모한다. 문제없다. 같잖은 함정에 걸려들어서 졌을 뿐, 살아남으면 몇 번이고 기회는 온다. 끝까지 가면 나는 절대로 패배하지 않는다.’
태양에 가까워지자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손을 뻗었고.
구름에 닿기도 전에 날개가 굳었다.
“아……?”
애초에 그의 가장 단단한 머리뼈가 갈라질 정도의 충격이었다.
그럴진대 뇌가 무사할 리 없었다. 날개의 균형과 속도, 미세한 움직임을 관장하는 소뇌가 일부 파열되어 곧 통제력을 잃었다.
바르카젤이 다시 지상으로 추락했다.
태양이 멀어졌다.
지상 최악의 난쟁이와 함께 폭사해 첫 번째 죽음을 맞이했고, 성녀와의 전투에서 패배해 두 번째 죽음을 경험했다.
[아니무스]를 통한 부활과 주검의 영광의 개입으로 구사일생하여 생존을 지속했다. 과연 세 번째 죽음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기, 기다려라, 안티아스! 내게 정보가 있다. 죽음 뒤에 관한 정보가! 내가 어떻게 죽은 상태에서 대륙 공용어를 익혔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금기만 어떻게든 한다면 내가 말해 줄 수 있다! 나는, 살려 둘 가치가 있단 말이다!!”
바르카젤은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나열했지만, 주어진 운명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대학살의 수왕에게 세 번은 없다.
교아咬牙
추락하는 바르카젤과 스치듯 교차하며 안티아스가 거칠게 물어뜯었다.
훅──────쿠당탕!!
곤두박질친 바르카젤의 몸뚱이가 피를 흩뿌리며 널브러졌다. 더 이상 미동도 없었다. 그의 어깨 위가 허전했다.
뚝…… 뚝…… 뚝…….
바르카젤의 머리는 목째로 물어뜯겨 안티아스의 이빨에 걸려 있었다.
“끝까지 살려고 추하게 발버둥 치든가, 제왕답게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든가. 추함을 인정하기 싫어서 진실된 본성을 외면하니 이도 저도 안 되지. 그래서 네놈의 야성에 미학이 없는 거다.”
“…….”
“뭐, 어쨌든. 재밌었다.”
대학살의 수인을 꺾으면서 얻은 충족감이 상당히 기분 좋았다. 잠시간 여운에 잠긴 그가 바르카젤의 머리를 뱉었다.
그리고 표정이 탁 풀린, 코가 없는 얼굴을 밟아서 으깨 버렸다.
“끝났으니까 나와라, 묘왕.”
“냐, 냐앗.”
묘왕이 언덕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 * *
끈질긴 추격으로 간신히 안티아스와 바르카젤이 충돌한 흔적을 찾았다. 하지만 너무도 살벌한 터라 도중에 끼어들 수 없었다.
사냥이 끝났는데도 아직 사라지지 않은 무시무시한 분위기가 묘왕을 떨게 했다.
“그 고대의 수왕을… …이기셨군요. 가, 감축드립니다, 폐하.”
“막강하더군, 나를 제외한 역대 수왕들은 이길 수 없을 정도로. 내가 직접 죽인 사냥감 중에서 최고임은 분명하다. 일단, 아직은.”
바르카젤이 적극적으로 비행 능력을 활용했다면 아주 성가셨을 것이다.
순전히 시간의 문제였다.
한 대 맞으면 날아가 버리니 피해를 누적시키는 데 얼마나 오래 걸리겠는가? 고도의 심리전과 기만책이 먹힌 덕에 빨리 잡을 수 있었다.
“마지막에 한 말이 의미심장하지만…… 역시 그건 베르덴을 통해 알아보는 게 좋겠지. 녀석은 아무래도 그런 미지에 아주 익숙한 듯했으니. 재밌겠어.”
안티아스는 혼자 고개를 주억거리며 중얼거리다가 묘왕에게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지?”
“그러니까…….”
묘왕은 전투 도중에 통신 장치가 파괴된 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현재 전황을 이해한 그가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하하하! 그런가, 에온의 수도에서. 아주 흥미롭게 흘러가는군. 알겠다. 집결지로 합류하지.”
“그, 괜찮으시겠습니까?”
“힘은 꽤 소모했지만 오히려 좋다. 기꺼울 정도다.”
안티아스가 피 묻은 이빨을 드러냈다.
“처절할수록 재밌으니까. 나든, 너든, 누구든.”
* * *
벌레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는 고요한 숲속에서 작은 왜곡이 발생했다.
어둡고, 섬뜩한 균열이었다.
자세히 보니 그건 어떤 사슬 같은 구조로 이루어진 듯했다.
촤르르륵…….
사슬이 끌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이내 거기서 손이 나왔다. 촘촘한 사슬은 길을 열지 않았으나, 그 손은 기어코 균열을 헤집고 나왔다.
손을 따라서 팔뚝과 어깨, 그리고 몸통과 머리까지 대륙의 공기를 쐬었다.
“허억…… 허억…….”
라인델 넥스레온이 무릎을 꿇은 채 어렵게 호흡을 골랐다. 사슬로 형성된 왜곡은 그를 주시하며 천천히 모습을 감췄다.
다크워튼 마탑주.
크세리온 제국의 제1사령관───기근의 묵시록───제르마엘에 의해 ‘금기의 늪’에 빠진 연합의 최고 전력이 살아 돌아왔다.
그야말로 만신창이나 다름없는 라인델의 거친 숨결이 잦아들었다.
“크흐흫…….”
이윽고, 그가 어깨를 떨었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라인델이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지식이 조금 채워졌다. 금기 너머를 살짝 들춘 그는 죽음의 개념을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
사후 세계.
라인델은 그곳을 보았다. 거대한 금기가 둘러싼 그 금지된 구역을. 이상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야 할 작은 목적지가 정해졌다.
잠시 후에 감정을 갈무리한 라인델이 통신 장치를 켰다. 며칠이 지났는지, 그리고 현재 전황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
상황을 이해한 그가 움직였다.
중앙 대륙으로.
주인 없는 땅으로.
* * *
시타델이 연합 본부 위에서 출현한 뒤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시타델의 저지에 실패했다.
노뎅 공국에서 막지 못했다.
속도가 너무 빨랐다.
압도적인 그림자가 국경을 넘었다.
시타델은 주인 없는 땅의 영역에 들어섰다. 이미 애온의 수도를 중심으로 집결한 연합군에서 나온 여러 정찰대 중 하나가 시타델을 응시했다.
방주의 로크.
용병으로서 연합군에 참가한 그는 어떻게든 싸워 살아남았다. 전직 글러트니 출신인 테온과 더불어 말이다.
“저거…… 막을 수 있을까?”
“모르지.”
테온이 입맛을 다셨다.
“좆 된 건 확실하지만.”
“베르덴 형님, 어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