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2화 제6사도 (1)
마도 폭주의 흐름을 몸에 가두고 증폭시켜 신체의 항상성을 인위적으로 파괴.
마도가 일시적으로 정지한 사이 필연적인 육체의 손상을 엘릭서로 보완하고, 대마력을 일으켜 폭주하는 마도를 상쇄.
그 과정에서 세계수라는, 베르덴의 입장에서 여러 의미의 변수가 생겼지만, 중요한 건 다시 싸울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게이트>
베르덴은 통신 장치로 상황을 파악하고 주인 없는 땅으로 가는 통로를 열었다.
멜라드, 마우펠, 시엘, 에네트, 제니아가 그의 뒤를 따랐다. 제니아는 다른 사람이 보고 있는 한 악마화를 사용할 수 없으니 두고 가려고 했지만, 그녀가 동행을 강하게 희망했다.
중앙 대륙 – 에온의 권역 수도 – 주인 없는 땅.
……바람이 불고 있다.
익숙한 대기에 금속의 비린내가 섞여 있다. 그것은 전쟁의 냄새였다. 짙은 혈향이 주인 없는 땅의 공기에 깊게 스며들어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분쟁지로서 대륙 평화의 균형추였던 이곳에, 메마른 혈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새로운 피가 뿌려졌다.
다만 주인 없는 땅이 가진 의미는 분명히 예전과는 달라졌다.
과거에는 국제 사회의 용인을 받아 사람들이 크고 작은 전쟁을 벌이며,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고 대륙의 묵은 갈등을 해소해 주는 역할로 쓰였다면.
지금은 일그러진 평화를 수복하기 위한 옛 왕과의 결전지였다.
베르덴은 <게이트>의 좌표를 지상이 아닌 하늘로 지정했다. 통신 장치만으로 전황을 한꺼번에 파악하기 쉽지 않았다.
마법사가 아니라 <비행>을 못하는 두 사람은 각각 마우펠과 시엘의 어깨를 잡았다.
아래로 고개를 향하자마자 시타델과 전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옛 왕, 그리고 사룡.’
3차원의 변방에서 탈출한 건가.
최악의 조합이다.
네크바엘에 올라탄 아칸드, 그 용기사가 병사들을 일직선으로 쓸어버리며 테아렐과 리반데일 대공에게 돌진했다.
‘지체할 틈이 없다.’
멜라드가 알아서 일행들을 데리고 연합군과 함께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본 역할에 충실할 때.
베르덴의 모습이 사라졌다.
<차원 전이>
연속으로 3차원과 4차원을 넘나들며 [인테리스]를 내던졌다. 공간을 관통한 그것이 정확히 네크바엘의 이동 경로에 수직으로 꽂혔다.
주변 일대가 전율하며 충격파가 순간 폭풍과 같이 몰아쳤다.
콰드드드드드득……!
이에 직격당한 네크바엘이 바닥을 긁으며 제동을 걸었고, 아칸드는 기다렸다는 것처럼 전장에 등장한 베르덴을 포착했다.
리반데일 대공이 방어 자세를 취한 모습으로 눈을 부릅떴다.
그 옆에서 테아렐이 입술을 달싹였다.
“너…….”
“놈은 내가 맡겠다.”
찰나에 스태프를 회수하고 비스듬히 솟구쳐 거리를 좁혔다. 네크바엘의 등 위에서 크세리온 황제와 세계 연합장의 눈빛이 교차했다.
쩌어엉!!!!!!
질서의 종말과 만물을 극하는 검이 충돌하자 작은 섬광이 폭발했다. 용골을 소재로 제작된 두 무구에서 나온 울림이 전장을 전율케 했다.
언제나 상대를 압도적으로 분쇄했던 [마그라스]가 튕겨 나갔다.
[인테리스]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동수를 이뤘다는 것 자체가 제1차 초월자 전쟁과 제2차 초월자 전쟁을 통틀어 처음이었다.
더 나아가 어느 드워프에 의해 용검이 세상에 나온 이래로 최초였다.
“……!”
아칸드의 낯빛에 놀라움이 스쳤다. 그런 와중에도 베르덴의 움직임을 간파해 허리를 틀며 반격할 준비를 갖췄다.
변수는 공간이 왜곡돼 발생한 물리적 감각 인식의 미세한 오차였다.
베르덴의 [인테리스]가 있을 수 없는 궤적을 그리며 아칸드에게 작렬했다.
쩍!
직후에 지근거리에서 베르덴의 손아귀가 아칸드를 겨누었다. 초대 마도왕의 <아케인>이 아니라 새로운 흐름이 한데 응집됐다.
<대마력: 광조(光潮)>
파멸의 마도와 <아케인: 마력 융합>가 결합한 <아케인──명(明)>의 광선.
파멸의 마도와 <아케인 : 임팩트>가 융합한 <아케인──궤(潰)>의 파동.
두 고유 마법이 대마력의 기틀에서 조화를 이루어 생겨난 빛이, 온 시야를 뒤덮으며 순수한 파괴 작용을 일으켰다.
육체와 영혼을 아우르는 압력이 엄습했다.
버틸 수 없다.
───────────────!
아칸드가 검붉은 광류에 휩쓸려 곧 전장 한복판에 추락했다.
죽은 자와 산 자가 서로를 불태우고 있는 경계선상, 그곳에서 용검을 지면에 꽂아 가까스로 멈춘 아칸드의 모습에 인근의 인간, 수인, 드워프, 엘프가 숨이 멎은 듯 주춤했다.
눈앞에 옛 왕이 있다는 사실에 저도 모르게 온몸이 경직되었다.
그러나 연합군 대부분은 옛 왕을 날려 버린 특유의 암적색 광채에 보다 주목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와중인데도 어떻게든 눈동자를 기울였다. 그제야 연합군은 자신들의 수장인 베르덴을 볼 수 있었다.
때마침 제라클 황제가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의 정점이 돌아왔노라!!”
모두의 뇌리에 폴테인 평야를 작살내 버린 검붉은 운석이 스쳤다. 에온의 베르덴. 그가 다시금 그 운석을 불러낼 수 있다면 저 거대한 시타델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당연하게도 베르덴을 환영한 이는 세계 연합만이 아니었다.
[베르덴!!!]
네크바엘이 양 날개로 풍압을 일으키며 몸을 크게 틀었다.
베르덴을 떨어뜨리고 격노를 실은 용의 발톱으로 공간을 찢어발기려고 하자, 리반데일 대공이 파동을 조작해 그 참격을 사전에 차단했다.
리반데일 대공은 이번에 고룡급의 적을 처음으로 상대했다.
‘두 번째는 완벽하게 막을 수 없다.’
적룡 사르칸드라도 이런 수준의 괴물일까. 아니, 사룡 네크바엘의 전신인 청룡 탈리시아를 살해했다고 하니 분명히 그 이상이겠지.
아르나크 제국의 존립에 위협적인 존재들을 하나둘 나열하자, 옛날 황제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케케묵은 광기가 들끓었다.
누구도 아르나크 제국을 넘볼 수 없다.
확.
리반데일 대공이 [에테스]를 곧게 다잡았다. 최선은 공격이 아닌 방어. 궤도 간섭. 지금부터 위험한 일격을 골라 상공으로 날려야 한다.
그가 베르덴과 테아렐의 움직임에 맞추려는 순간 또 증원이 도착했다.
콰아아아아앙!
수왕 안티아스가 전광석화처럼 달려오더니 몸으로 사룡을 들이받았다.
지진이 발생했다.
네크바엘은 쓰러지지는 않았으나 그대로 약 십수 미터나 밀려났다.
“죽여 주는 등장.”
[일개 수인 따위가…….]
“크흐흐흐, 이런 무게감은 생전 처음이군.”
바르카젤을 사냥하고 바로 온 터라 그의 육신에는 피딱지가 털에 엉켜 있거나 눌어붙어 있는 등 전투의 흔적이 선명하게 보였다.
“더할 나위 없다.”
안티아스는 심리전을 걸거나 효율적으로 야성을 발휘할 생각이 없었다. 바르카젤과 다르게 어쭙잖은 술수는 통하지 않는다고 직감한 것이다.
광폭화로 신체 능력을 강화한 그가 드래곤에 못지않은 날카로운 동공을 번뜩였다.
세계 연합의 비대칭 전력들이 도착하면서 전황은 또 새롭게 바뀌었다.
그 순간이었다.
쩍…….
금속이 갈라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귓가를 깊숙이 파고드는 작은 파열음.
언데드든 인간이든 상관없이 전장에 자리한 모두가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는 메아리를 들었고, 그 흐느낌이 만물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만물을 극하는 용검 – [마그라스(Magrath).]
그하룬의 선조가 우연히 발견한 드래곤의 유해에 모든 생을 바쳐 제작한, 문자 그대로 모든 물질계에 상극으로 작용하는 5대 전설.
고대어로 ‘위대함’을 뜻하는, 여러 시대를 풍미했던 단 하나의 검.
질서의 종말 – [인테리스(Interis)]
절개는 지닌 망치이자 전설적인 드워프로 명성이 자자한 그하룬이 드래곤의 두개골과 드래곤의 생혈 등 다양한 소재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 제작해낸 인생 최고의 역작.
무한의 마도와 파멸의 마도를 대변하여 현존하는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세운다는 의미가 부여된 스태프.
버려진 자들에게 진심 어린 숭배를 받아 베르덴과 함께 신의 영역에 도달한 ‘신기’.
[마그라스]와 만물이 충돌하면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손상된다.
이는 필연이고, 여태껏 [마그라스]를 이겨 낸 물질은 없었기에 용검은 파괴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세간에 확립되었다.
그러나 마법계가 완전한 물질이라 단언했던 10대 마탑의 동력원도 소실되는 세상이다. 절대적인 명제가 언제든 붕괴돼도 이상하지 않는 시대.
쩌적…….
베르덴의 스태프를 훼손하지 못한 대가로 아칸드의 검에 미세한 금이 갔다. 한 뼘도 안 되는 크기였지만, 그 여파는 어마어마했다.
[마그라스]의 절대성이 무너졌다.
아칸드는 용검을 잠시 바라보더니 느닷없이 웃기 시작했다. 어딘지 모르게 소름 끼치면서도 처연하게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기대 이상이군.”
아칸드는 근방에 있는 연합군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오직 베르덴만을 응시했다.
“네가 있기에 위대한 전쟁은 완성된다.”
네크바엘이 포효했다.
[카아아아아──────!]
드래곤 로어가 전장의 한 축을 무너뜨렸다. 테아렐, 안티아스, 리반데일 대공이 충격을 피하거나 견디거나 상쇄하고 놈을 상대했다.
베르덴과 아칸드는 세상이 보는 앞에서 정면으로 재차 격돌했다. 무구가 다시 부딪쳤지만 이번에는 둘 중 무엇도 손상되지 않았다.
성녀 에르세티아가 신성력으로 성창을 보호했듯이 아칸드는 사기를 용검에 입혀 직접적인 접촉을 차단한 것이었다.
베르덴이 단언했다.
“너는 여기서 죽는다.”
“바라던 바다.”
아칸드가 대답하며 스태프를 물리쳤다. 검이 신의 천벌처럼 떨어졌다.
땅이 폭발했다.
이를 흘려 낸 베르덴이 대마력으로 파멸의 창날을 형성했다.
───! ─! ──────! ────────!
초월의 영역에 도달한 수준의 안목이 아니면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는 치열한 공방전에 파공음이 멈추지 않았다.
소리는 물론이거니와 눈으로 좇을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섰다.
순간순간 보이는 모습만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였다.
쩌저저저적!
권격에 맞은 베르덴이 머리가 좌측으로 젖혀지고, 마도의 뇌격에 강타당한 아칸드가 주춤거리다가 공간 파괴에 쓰러졌다.
짓누르듯이 휘둘러진 용검이 스태프를 억누르고 베르덴의 어깨에 박혔다. 동시에 베르덴의 손날이 아칸드의 우측 복부를 반쯤 꿰뚫었다.
“허…….”
“저게 옛 왕의 본력이란 말인가.”
“그런데 그에 맞서는 연합장은 도대체……?”
옛 왕의 다수의 8위계 초월자를 상대로 승리했다는 사실을 연합군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두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베르덴이 단신으로 아칸드를 상대로 호각을 이루고 있었다.
<대멸절>
파멸의 벼락으로 변화한 [인테리스]가 아칸드를 끌어안고 그대로 뻗어 나가다가 기울면서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착탄했다.
그를 중심으로 폭발이 일며 반경 수 킬로미터가 초토화됐다.
호각, 아니…… 어쩌면 압도하고 있는 걸지도.
* * *
검붉은 폭발이 시야에 걸쳤다.
베르덴.
그게 누구에게서 비롯된 것인지 인지한 안데스가 속력을 높였다.
[즉각 돌입하겠네!]
“네, 안데스 님!”
카스티안은 검을 다잡는 척하며 자신에게 깃든 [루기나 혼]을 의식했다. 그들은 빠르게 나아가 곧 시타델에 도달할 것이다.
그 모습을 데우스가 보고 있었다.
“마침내 결실을 맺는군.”
계획대로 육사도는 죽을 것이다.